사랑을 확증해 주신 하나님. (롬5:6~11)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은 사랑에서 나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아8:6)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가운데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고 말합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여자는 처녀 때에는 조금만 무거운 것이 있어도 들지를 못하고, “아이구 난 못 들어”하고 포기하는데 결혼한 후에는 장독같이 무거운 아이를 하루 종일 업고 다녀도 무겁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불평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어머니 안에는 세상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밤에 그렇게 잠이 많던 여자도 어머니가 된 후에 자녀가 병이 들어 괴로워하면 밤새 머리맡에 앉아 병간호를 해도 피곤을 모릅니다. 이런 힘이 여자들 어디서 나올까요? 바로 자녀에 대한 [사랑의 힘], 즉 [모성애]에서 나옵니다. 이처럼 사랑의 힘은 우리를 지탱해주는 힘이 되고, 세상을 헤쳐 나가는 힘이 됩니다.
아주 여러 해 전에 저는 한 어머니가 어린 자녀와 함께 기차에 치여 죽게 되었을 때에 자기의 몸을 날려 자식은 구하고 자신은 기차에 치여 죽은 사건을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에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런 힘은 사랑의 힘이 아니고는 생겨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확증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란 제목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1.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구구절절이 언급하고 있는데 무엇을 보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까? 구체적인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처럼 미워하시는 우리의 죄를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독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기까지 하신 것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가 바로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죄악을 가장 미워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중에서도 우상숭배를 가장 미워하십니다. 왜냐하면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고, 담을 쌓게 하고, 하나님의 원수 되게 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십니다.
특별히 우상숭배를 미워하시는 것은 우상숭배가 바로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고, 욕되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한 사랑이 너무도 크시기 때문에 우리가 회개하기도 전에, 우리가 심지어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셔서 그의 사랑을 확증하여 주신 것입니다.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다]는 말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다 같이 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어떻게 했다고요?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했다고 했습니다. 십자가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구체적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해 전 일입니다. 얼굴에 화상을 입은 엄마를 창피하게 여기고 심지어 미워하는 딸이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부모를 불러도 엄마가 찾아와도 딸은 거절하였습니다. 친구들에게는 식모라고만 속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은 어머니가 화상을 입게 된 것이 딸이 어렸을 때에 성냥으로 장난을 하다가 불이 났을 때에 어머니가 딸을 구하려다가 화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이웃 아줌마를 통해서 알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완악한 딸이었지만 엄마의 사랑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엄마의 사랑이요 주님의 사랑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비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엄마의 사랑입니다.
2. 그러면 이 사랑의 결과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은 무엇입니까?
(1)첫째로 하나님과의 화목이요 이웃과의 화목입니다.
9절에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무엇을 얻었다고 했습니까?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화목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원수 된 관계를 풀어주어야 합니다. 10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먼저 하나님과 화목이 이루어졌다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세상에서는 푸닥거리를 합니다. 푸닥거리는 샤머니즘이지만 그러나 심리적으로는 유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원수 된 것은 심리적인 것이 아닙니다. 죄 때문입니다. 그런데 롬6:23절에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했습니다. 죄의 결과는 사망이기 때문에 죽어야 해결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들을 죽게 할 수가 없어서 대신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어 주님이 대신 우리의 죄 값을 받아 십자가 위해서 죽으심으로 이제 믿기만 하면 아무 공로 없이도, 하나님과 화목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과 화목 된 사람은 그 다음에는 사람들과 화목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참된 화평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평화는 바로 십자가를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그 십자가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입니다.
(2) 다음은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화목의 결과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1절에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화목의 결과는 참 즐거움입니다.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참 행복은 화목에서 시작되고, 화목에서 성취됩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항상 기뻐하라”(살전5:16)는 말씀의 근거는 바로 이 하나님과의 화목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이 근본적인 관계가 해결되지 않고는 세상에서 아무리 기쁨을 누려도 참 기쁨이 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이 참 기쁨입니다.
빌립보서에 보면 “기뻐하라 내가 말하노니 기뻐하라. 주안에서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참 기쁨은 주안에서만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주님 밖에서 기쁨을 찾습니다. 그러나 참 기쁨은 오직 주안에만 있습니다. 주안에서 발견한 이 영원한 기쁨을 상실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다 같이 1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즐거움이 누구를 통해서 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주가 되시고,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뜻입니다. 그를 통해서 참 즐거움이 온다는 말씀입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말은 “하나님 안에서”라는 말입니다. 세상에 즐거움은 잠시 동안의 것이요 떼 묻은 것입니다. 꿈과 같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 참 즐거움을 찾으시기를 축원합니다.
3.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우리는 외롭게 사는 고아가 아니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믿고, 어떤 역경에서도 참고 견디며 일어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지난 금요일 날 충주서 중학교 때 저와 가장 가까웠던 세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다 은퇴를 하고 노인정에 가서 소일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 중에 저와 제일 가까웠던 친구가 저의 집 사람을 향해서 말합니다. “이 친구는 추운 겨울에 빨가벗겨 밖에 버려도 살 사람입니다”. 바로 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주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재확인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사랑을 받은 자는 그 사랑을 남들에게 주면서 살아야 합니다.
주면 그 사랑이 살아 움직이면서 샘처럼 사랑이 계속 솟아납니다.
예 화
달을 보면 둥근 보름달이 있고, 반만 보이는 반달이 있고, 손톱만큼만 보이는 손톱달이 있고, 전혀 보이지 않는 그믐달이 있습니다. 낮에 지구에 가려지는 정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참 태양이 되신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아 사랑을 나눠주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끝으로 남은여생 오직 십자가만 바라보며 살기를 축원합니다.
그것은 십자가 외애는 참 사랑의 확증이 없고, 십자가외에는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시켜주는 다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찬송가의 구절처럼 “십자가, 십자가 무한 영광일세.”
이제 설교를 맺으려고 합니다.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 시간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확증하고 날마다 확신 속에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생겨지면 어떤 역경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를 바라보는데서 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십자가를 바라보며 사는 우리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신성종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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