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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자료실 종합모음

히스기야 왕의 신앙 (왕하20:1-7/사38:1-6)

by 【고동엽】 2022. 8. 29.

히스기야 왕의 신앙  (왕하20:1-7/사38:1-6)

히스기야 왕은 유대의 제13대 왕으로서 '아하스'의 아들이며, 25세에 왕이 되어 29년간 나라를 다스렸던 왕입니다.
그의 신앙을 배우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히스기야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신앙은 신앙이 좋은 사람을 본받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본 받고, 요셉을 본 받고, 모세도 다윗도 모두 위대한 신앙의 인물들입니다. 성경에 신앙이 좋은 인물들을 소개할 때는 그 인물의 신앙을 배우라는 것이고, 못된 인물을 소개할 때는 그렇게 살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바울은 친히 '내가 예수를 본받은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 받으라'고 가르칩니다.
◀제목소개▶

1. 그 당시 히스기야의 정황은?(1)

▶히스기야를 바로 알려면 그의 일생동안에 일어났던 중요한 사건 세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 번째 사건은, 히스기야가 남 유다의 왕으로 즉위한지 6년 만인 31세에,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한 것입니다.
이 사건은 그 자체로서 굉장한 충격이었습니다. 사실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는 서로 미워하기도 했고 전쟁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사실은 한 민족이요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일체감이 그들을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미워하면서도 왕들에 따라서는 서로 교통하고 형제의 우의를 다지기도 했던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이방민족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당하는 것을 보고, 남 유다는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설마 했는데 정말 예언자들의 말씀대로 나라의 운명이 끝나는 것을 보고 경악하게 된 것입니다.
특별히 히스기야는 이 문제로 인하여 많이 놀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깨닫고, 신앙적으로 바르게 살아야 되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을 수리하고, 우상의 단을 제거하고, 성전의 제사를 회복했습니다. 또한 백성들이 감사 제물과 첫 열매,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도록 교육을 시키고, 유월절 절기를 지켰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신실한 신앙을 지키고자 노력을 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셔서 예루살렘 온 성에는 큰 기쁨이 있었고, 백성들도 축복을 받았습니다.
대하30:26-27절 "예루살렘에 큰 희락이 있었으니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 때로부터 이러한 희락이 예루살렘에 없었더라 그 때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일어나서 백성을 위하여 축복하였으니 그 소리가 들으신바 되고 그 기도가 여호와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 상달하였더라"
또한 히스기야 왕, 개인도 범사에 형통의 복과 많은 재물을 주셨습니다.
대하32:27-30절 "히스기야가 부와 영광이 극한지라 이에 은금과 보석과 향품과 방패와 온갖 보배로운 그릇들을 위하여 국고를 세우매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산물을 위하여 창고를 세우며 온갖 짐승의 외양간을 세우며 양떼의 우리를 갖추며 양떼와 많은 소떼를 위하여 성읍들을 세웠으니 이는 하나님이 저에게 재산을 심히 많이 주셨음이며 이 히스기야가 또 기혼의 윗 샘물을 막아 그 아래로 좇아 다윗성 서편으로 곧게 인도하였으니 저의 모든 일이 형통하였더라"

두 번째 사건은 앗수르와의 전쟁이었습니다.
종교를 개혁하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자 하나님은 유다에 태평성대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나라가 강해지고 경제가 튼튼해지니까 히스기야가 약간 교만해졌고, 그 당시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앗수르의 입장에서 보면, 그대로 놓아두면 너무 기고만장할 것 같아서 조치를 취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앗수르의 20만이 넘는 엄청난 병력이 히스기야가 다스리는 남 유다를 치기 위해서 물밀듯이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히스기야는 너무너무 겁이 나서 왕에게 "어떤 조건이면 물러가겠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앗수르왕이 어려운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궁전에 있는 보물과 하나님의 성전에 있는 모든 보물을 다 가져와라." 그래서 성전 기둥에 금으로 입힌 것까지 다 벗기고 성전에 있는 하나님의 기구들까지 모든 재물을 다 가져다가 바쳤습니다. 그런데 그 보물을 다 접수하고 나서 앗수르 왕은 결국 예루살렘까지 내어놓으라고 하여 국가가 위기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그 때 비로써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듣고, 철저하게 회개하고 주의 종 이사야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일시적으로 신앙의 교만에 빠져 있는 히스기야 왕을 신앙으로 길들이기 위해 앗수르를 붙이신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성전에 엎드려서 통곡을 할 때에 하나님이 앗수르를 물리쳐 주십니다. 하룻밤사이에 앗수르 군대 18만 5천명이 급사했습니다. 성경은 거기까지만 말합니다만, "18만 5천명이 하룻밤에 어떻게 죽게 되었을까?" 학자들은 그 이유를 "급성 전염병" 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앗수르가 물러갔습니다. 그리고 침입했던 그 왕은 암살을 당하게 됩니다. 이것이 두 번째 큰 사건입니다.

세 번째 사건은 오늘 본문의 히스기야가 병들어서 죽게 된 사건입니다.
1절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저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처치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그 때에" 여기서 그 때라고 함은 앗수르 군대가 쳐들어 왔을 때 히스기야가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앗수르 군대 18만 5천명을 하룻밤 사이에 다 송장으로 만든 바로 그때를 말합니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히스기야가 왕이 된지 14년째가 되는 해, 그의 나이 39세가 되던 해를 말합니다.
39세라면 한창 일할 나이입니다.. 그러한 히스기야가 병이 들었습니다. 그것도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이사야 선지자가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당신은 곧 죽게 될 것이며 다시 회복되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에 의해서도 아니고 의사의 진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생명을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죽는다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것인데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 라는 말을 들었으니 히스기야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이 충격적인 선언! 이 절망적인 선언! 이 말씀은 히스기야 만을 향한 선언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다 들어야 하는 선언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 중에서 가장 쓸쓸하고 외로운 시간이 있다면 그것이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종말의 시간, 죽음의 시간일 것입니다.
그 시간은 엄숙하고 두렵고 떨리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아주 심각한 시간 시간입니다. 정답게 살던 부부 사이를 사정없이 갈라놓고, 부모와 자식 사이를, 형제와 형제 사이를 무지막지하게 갈라놓는 시간입니다.
거기에는 용서도 없고, 정상 참작도 없고, 인정 사정도 없습니다. 가정으로부터, 처자식들로부터, 이웃으로부터 그리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인정 사정없이 갈라놓습니다.
이것이 죽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죽음에 대해서 아예 생가하기조차 꺼려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바로 나 자신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역대 임금 중에서도 칭송을 받았던 임금입니다. 그는 청교도적인 깨끗한 신앙인으로 왕이 되자마자 선왕들이 세워 놓은 우상들부터 모두 제거했습니다. 그래서 그 나라를 쇄신하고 기강을 바로잡고 신앙을 정화하는 데 우선했습니다.
그 결과 히스기야는 정치 군사적인 면에서 다윗에 버금 가는 역대왕으로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의 재임 때 비로소 백성들은 진정한 예배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마침내 하나님으로부터,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받으며 나라를 든든하게 세워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도 종말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마침내 히스기야가 병이 들어 죽을 날이 임박해 왔습니다.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그 병은 죽을병입니다. 병에도 사람이 일시적으로 고치면 낫는 병이 있습니다. 일을 많이 해서 발생하는 몸살이라든지, 불결해서 발생한 전염병은 고치면 낫습니다. 쉬든지 약을 먹으면 곧 낫습니다. 그리고 몸 속에서 발생하는 병의 경우는 수술하면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병중에도 죽을 병이 있습니다. 이 병은 고칠 방법이 없습니다.
여기 히스기야가 바로 이 죽을병에 걸린 것입니다. 사람이 이쯤 되면 정신이 들게 되어 있습니다. 생각이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 동안 막연했던 신앙들도 이쯤 되면 다급한 신앙으로 바뀌어지기 시작합니다.
형식적으로 교회를 다니던 사람들도 이쯤 되면 발걸음이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그 동안 별소리를 다하고 우습게 굴던 사람들도 이쯤 되면 머리를 숙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끔 사람들을 이 같은 막다른 처지로 몰아놓기도 하십니다. 그래야 자만하고 교만하던 마음을 거두어들이기 때문입니다.
다가오고 있는 죽음을 대처하는 방법이 대체로 세 가지 유형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①지극히 인간적인 방법으로 나타납니다.
몸에 좋다는 약이 있으면 값이 아무리 비싸도 아낌없이 사다가 먹습니다. 그래도 안 되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법을 강구합니다. 그리고 무엇인가에 의지해 보려는 속성이 강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어떤 이는 답답하니까 무당에게 찾아가 보기도 합니다.
▶어떤 권사님은 하도 답답하니까 점쟁이한테 찾아갔었다고 합니다. 가서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니까 점쟁이가 쳐다보지도 않고 하는 말이 '예수나 잘 믿지 여기는 왜 왔느냐'고 핀잔을 줘서 혼나기만 하고 그냥 돌아왔다고 합니다.

②또 아예 처음부터 포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사람은 무당을 찾아갈 만한 용기도 없습니다. 무슨 좋다는 약을 먹어 보려고 하는 의지도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암이라는 진단이 내려지자마자 지레 죽습니다. 대처해 보려는 의지가 전혀 없습니다. 처음부터 포기해 버립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에게는 병명을 미리 알려 주면 안 됩니다. 그러면 더 살 것도 며칠 못 가서 죽고 맙니다.

③그런가 하면 똑같은 죽음이라고 할지라도 '신앙적으로 대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진정한 신앙의 힘은 바로 이런 때에 위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모건 노이스'라는 사람은 "신앙은 마치 채권와 같다"고 했습니다. 채권은 분명히 재산이지만 그러나 어느 시간이 지나기까지는 돈으로 바꿀 수 없습니다. 어느 시간이 지나야만 재산으로서의 값을 인정받게 되는 것이 채권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통 때는 신앙은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이 건강하고 힘이 있고 먹을 것이 있어서 평안할 때에는 신앙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어느 시점에 가서는 신앙이 그렇게 절실하게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위기의 때, 절망의 때에 신앙이 위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진정한 신앙인은 종말 때 가서 보아야 진실된 신앙의 모습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지금 한창 외롭고 고독하며 두려움마저 엄습해 왔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종 이사야 선지자가 찾아왔습니다. 히스기야는 한 가닥 희망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자기를 찾아왔으니 혹시 살려 주지 않을까 하고 기대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이 말은 '가족들에게 유언을 남기라, 왕위를 계승할 사람을 선택하고, 재산도 이제는 정리하라'는 뜻입니다. 이제 죽을 차비를 하라, 죽음이 지금 문턱까지 다가왔다'는 의미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착각하는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예수만 믿으면 만사형통이야' 이러한 착각입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성경 적으로 잘못된 해석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잘 믿어도 고난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환난, 실패, 질병, IMF 어려움을 만나기 일수입니다.
마치 바다에 풍랑이 있는 것과도 똑 같습니다. 풍랑 없는 바다를 본 적이 있습니까? 그래서 욥5:7절에 보면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태어났으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불티는 위로 올라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이면 누구나 고난을 당하도록 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은 요16:33절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무슨 뜻입니까? 예수를 믿어도 고난을 당한 다는 말이요, 환난도 당하고, 질병도 만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 안에서 그 고난을 능히 이겨 낼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고전10:13절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히스기야는 이 죽음의 고비에서 신앙적으로 대처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배워야 합니다.

2. 낯을 벽을 향하여 기도했습니다(2).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히스기야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19;1절 '...굵은 베 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19;2절에서는 "궁내대신, 서기관, 제사장, 장로들 모두에게 굵은 베 옷을 입혔다고 했습니다. 자신만 아니라 백성의 지도자 모두에게 회개의 기도를 하게 했습니다. 평소에 기도를 많이 하던 히스기야는 이 번에도 기도한 것입니다.
기도는 훈련입니다. 기도는 습관입니다. 우리 예수님도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히스기야는 벽을 향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벽을 향했다'는 말은 사람과의 관계는 완전히 단절해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향하여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벽 쪽에는 그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성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히스기야의 눈앞에는 두터운 벽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벽 너머에는 하나님의 성전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벽 너머에는 응답하시는 하나님께서 계신 것을 뜻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문제의 벽 앞에 설 때가 많이 있습니다. 고난, 질병, 실패, 낭패의 벽 앞에 설 때가 있습니다. 이 벽만 바라보면 절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벽 건너편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 없었던 소망이 생겨난다는 말입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얍복강 강가의 벽 앞에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환도 뼈가 부러질 만큼 기도했을 때 기어이 응답을 받지 않았습니까?
주님을 보십시오. 십자가의 벽 앞에서 땀방울이 핏방울 되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십자가의 쓰디쓴 잔을 마실 수 있었습니다. 이 잔이 없었더라면 부활의 태양이 따라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히스기야를 보세요! 지금 죽음이 눈앞에 왔습니다. 그는 죽음의 벽을 향하여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기도를 한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왕이 벽에다 얼굴을 대고는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통곡을 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가장 솔직한 모습입니다. 죽음 앞에서 왕이 어디 있습니까? 죽음 앞에서 체면이 어디 있습니까?
체면은 배가 부를 때 세우는 것이고, 여유가 있을 때 세우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배가 부를 때 하나님이 어떻고, 교회가 어떻고, 시간이 없다 있다 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 다급해 보십시오. 체면이 어디 있고 어디라고 바쁘다는 소리가 나옵니까? 그래서 우리는 평소에 신앙 점검을 잘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어느 때고 은총을 입을 수 있습니다.
렘29:11-13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3. 어떤 기도를 했습니까? 기도의 내용이 3절입니다.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

①기도의 대상을 바로 알고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구하오니" 그렇습니다. 오직 기도의 대상은 우상이나, 달이나, 해나. 선황당이나, 바위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툭하면 무당을 찾아가 빌고 그럽니다. 그러나 진정한 기도의 대상은 '약속을 주시고 그 약속을 지금도 신실하게 이루어 주시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해야 응답을 받습니다.
렘33:3절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그 다음 '내가' 내 목소리로 기도해야 합니다. 시141:1절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속히 내게 임하소서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 문제는 내가 잘 알고, 내 사정, 내 형편도 내가 제일 잘 압니다.
감사도, 찬송도 내가 해야 합니다. 시138:1절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신들 앞에서 주께 찬양하리이다"

②진실되게 산 것을 기억하옵소서.
"내가 진실과" 이는 평소에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산 것을 기억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즉 진실하게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성도의 본분을 다했으니 그것이 결코 헛되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고후1:12절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진실은 믿음입니다. 진실은 아멘입니다. 주님은 막11:23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엡5:9절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③전심으로 산 것을 기억하옵소서.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여기 전심은 최선을 다 했다는 말입니다. 기도도 전심으로 했고, 봉사도 전심으로 했고, 감사도 헌신도 전심으로 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일을 하십니다. 그러니까 생전에 하나님 앞에 작품을 남겨 놓아야 합니다. 전도하는 일, 작품을 남기는 일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성전 건축도 작품을 남기는 일입니다. 성가대도, 지휘도, 반주도, 꽃꽂이도, 식사대접도, 주의 종 섬김도 하나님 앞에서 작품을 남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전심을 다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최고보다는 최선을 다하라고 하십니다.
딤전4:15절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롬12:11절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④선하게 산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다는 신앙의 행위를 말하고 있습니다. 종교 개혁을 하고, 말씀을 운동을 일으키고, 우상을 다 파괴하고, 바른 예배 운동, 온전한 십일조 교육, 유월절 절기 예배를 회복시켰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선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다 인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할 때도 좋은 일 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 그래도 하나님 앞에 충성했습니다. 봉사했습니다. 헌신했습니다. 물질 드렸습니다.'
그러나 평소에 하나님 앞에 선을 행한 게 없는 사람은 기도를 못합니다. 기도도 할 체면이 있어야 할 게 아닙니까? 잘한 게 있어야 할 게 아닙니까? 그저 생각나는 건 죄 밖에 없습니다. 불순종밖에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어려움 당할 때 기도하기 참 힘듭니다.
그러니까 평소에 진실과 전심으로 하나님 앞에 충성되고 선하게 살아서, 그것을 기억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⑤눈물의 기도, 통곡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심히 통곡하더라" 어떤 심리학자가 아이들이 왜 우는가? 라는 글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욕구불만 때문에 울고, 의사표시를 위해서 울고,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 운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울음은 어린아이들에게는 언어입니다. 아이들은 아파도, 기분 나빠도, 배가 고파도 웁니다. 그런데 울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최근 미국의 보건과학센터에서는 웃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는 것도 건강에 좋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우는 것도 그냥 우는 것이 아니라, 소리 내서 눈물을 흘리고 우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합니다.
우는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해소되기 때문에 우리의 신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남자가 여자보다 평균 수명이 짧은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이유 중의 하나는 남자가 여자보다 덜 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눈물에 약하십니다. 이 눈물은 어떤 눈물입니까? 분해서 우는 눈물입니까? 억울해서, 슬퍼서 우는 눈물입니까? 아닙니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구원에 은총에 감격하는 눈물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주님 앞에 바로 살지 못한 것을 통회하는 참회의 눈물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눈물에 약하십니다.
▶어느 시골 교회 목사님이 심방을 갔습니다. 할머니가 정성껏 대접을 하려고 감자 껍질을 잘 벗겨서 삶아서 목사님에게 대접을 했습니다. 목사님이 말하기를 '할머니 기도하세요' '저 기도할 줄 몰라요' '그래도 짤막하게 기도해 보세요' 할머니가 기도합니다. '하나님 내 죄를 감자껍질 벗기듯이 다 벗겨 주세요' 이렇게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감자껍질 벗기듯이 하나 하나 벗겨야 될 죄가 너무도 많습니다.
시126:5절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오늘 '히스기야의 신앙을 배우자'라는 설교 제목입니다. 히스기야의 눈물의 기도도 배워야 합니다.
사38:14절에 히스기야 왕의 기도하는 모습이 아주 시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나는 제비같이 학같이 지저귀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나의 눈이 쇠하도록 (하나님을) 앙망하나이다."
여러분도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낮아져서 기도해 보세요!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눈물의 기도는 분명히 응답이 있습니다.
시34:18절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痛悔)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4. 히스기야 왕의 기도의 응답!(4-7)

이렇게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몇 가지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둘째, 병만 고쳐 주신 것이 아니라, 나라도 성도 보호해 주셨습니다.

①하나님이 급하게 주의 종을 통하여 응답을 주셨습니다.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②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내가 네 기도(祈禱)를 들었고"

③눈물도 보십니다. "네 눈물을 보았노라"

④치료의 광선을 발하십니다.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⑤성전에 올라가는 축복도 받았습니다. "네가 삼 일만에 여호와의 전(殿)에 올라가겠고"

⑥15년 생명을 보너스로 받았습니다. "내가 네 날을 15년을 더할 것이며"

⑦나라도 견고하게 지켜 주셨습니다.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이 성을 보호하리라"
앗수르는 전쟁에서 패한 후 다시 쳐들어오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보호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야 안전합니다.
여러분! 앗수르가 침입하지 못하도록 예루살렘을 지키시고 보호하신 것같이, 하나님께서 우리 나라를 지키고 보호하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시면 반드시 기적이 나타납니다.
6.25 전쟁 때는 미국이라는 기독교 국가를 통해서 중국과 공산주의 국가로부터 우리 나라를 보호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주권도 찾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셔서 IMF가 터져도 위기를 잘 모면하도록 해 주셨고, 핵문제도 주님이 지켜 주실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애국가를 크게 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절에서도 애국가를 부릅니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무당들도 애국가를 불러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만세.'
시121:5-6절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右便)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의 지키심과 보호하심이 언제나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내 인생 나 혼자 살겠다고 뛰어다니지 마시고, 마귀의 시험에 빠져 죄악에 물들지 마시고, 임마누엘의 하나님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⑧치료의 방법도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이사야가 가로되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가 그 종처(腫處)에 놓으니 나으니라"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서 무화과 반죽을 붙이라고 하셔서 붙였더니 나았습니다. 예수께서 소경을 치료하실 때 침을 뱉은 진흙을 눈에 바르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하셔서 씻으니까 눈이 나았습니다. 물을 가져다 연회장에 가져다주라고 하셔서 가져다주니까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여러분이 순종하지 아니하면, 교회 나와서 신앙 생활하고 하나님 믿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고 효과도 없습니다. 그러나 순종하면 죽어 가는 사람도 살아나는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히스기야 왕은 회개하며 눈물로 기도하고 순종했습니다. 무화과 반죽을 종기에 얹자 병에서 고침을 받고, 생명이 15년 연장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54세까지 살았고, 42세에 아들 므낫세도 낳았습니다.
그때 그냥 죽었으면 아들도 낳지 못하고 죽었을 텐데, 하나님께서 생명도 15년 연장시켜 주시고, 그 기간 동안에 아들도 축복으로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는 하나님, 치료하시는 하나님, 축복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이런 멋쟁이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 모두 히스기야 왕의 신앙을 배워서 그대로 삽시다! 그리하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님의 능력이 역사하여 주십니다.

출처/송수천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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