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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한 사람 (복Ⅲ) (마태복음5:1-5)

by 【고동엽】 2022.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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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한 사람 (복Ⅲ)   (마태복음5:1-5)

요즈음 우리사회의 가장 주요한 관심은 ‘경제문제’ 입니다. 어제 일간지 신문 1면에는 실린 세 가지 중요기사는 다 경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는 우리나라의 최대기업가이자, 최고부자인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한 말입니다.  
“한국경제 심각하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4~6년 뒤에는 아주 혼란스러운 상황이 올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기사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 후임자로 한덕수 전 경제부총리를 지명하였다는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경제는 총리에게 맡기고, 본인은 외교를 챙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기사는 부동산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지난 해 토지보상금의 상당액수가 부동산 투기자금으로 활용 되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수도권에서 보상금을 받은 사람의 자금 1조 6,091억 원 중, 82.4%인 1조 3,251억 원이 부동산 자금으로 재투입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잘 살려고 하면, 밝고,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상황판단을 빠르고 정확하게 하며,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이 시대에 예수님께서 8복을 다시 말씀하신다면 혹시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을까요?  
“투자를 잘하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에서 잘 살게 될 것이요.”  

  그런데 2천 년 전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온유한 사람”(ο? πραε??)이라는 헬라어 본뜻은 “겸손한 사람”이라는 말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 뜻이 있습니다. 겸손은 단순히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그러나 온유는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허세를 부리지 않고, 자기에게 악을 행하는 자에 대해서도 오래 참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온유한 마음을 가지게 되면 결국 사람을 얻게 됩니다. 세상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사람을 통해서 모든 것을 얻기도 하고, 잃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인사가 만사다.” 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이렇게 바꾸어 말할 수 있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사람을 얻을 것이요.”
시편127:3-5의 말씀은 이 사실을 뒷받침해 줍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니라.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많은 자식을 얻은 사람은 경쟁에서 그만큼 우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사람을 얻는 복을 받습니다.

  성당에서 일어난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느 날 한 어린 소년이 작은 마을의 시골 성당에서 일요미사를 진행하는 신부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제단에서 하는 새로운 역할에 다소 긴장한 그 소년은 무심결에 포도주 병을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신부는 곧바로 소년의 뺨을 세게 때렸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매우 거친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제단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마!” 그 손년이 바로 수십 년 동안 유고슬라비아를 통치한 공산주의 지도자 티토(Tito)였습니다.
  어느 날, 어린 소년이 큰 도시에 있는 성당에서 일요미사를 진행하는 한 주교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 소년도 우연히 포도주 병을 떨어뜨렸습니다. 그러나 주교는 분노로 반응하지 않고, 부드럽게 두 눈으로 윙크하면서 속삭였습니다. “언젠가 너는 신부가 될 거야.”그 소년이 바로 풀턴 쉰(Fulton Sheen)대주교 입니다.
강퍅한 마음의 사람은 주변의 좋은 사람들을 놓치지만, 온유한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들을 얻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 번째 복을 말씀하실 때에 염두에 두신 말씀은 시편37:9-10입니다.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여기서 행악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인색하고 강퍅하여 결국 사람을 잃는 삶이요, 온유한 사람은 좋은 사람들을 많이 얻는 사람이 되어 결국 땅을 차지하게 되고, 풍부한 화평으로 인생을 즐기게 됩니다.

온유한 사람은 어떻게 사람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이 시간 몇 가지 성경적인 실례를 들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성경은 믿음과 축복의 조상으로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란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창12:1) 이 말씀을 들은 아브라함은 그 조카 롯과 함께 주저하지 아니하고 떠났습니다. 사실상 이것은 대단한 모험이었습니다.
히브리서기자는 히브리서11:8에 이때의 아브라함을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상속을 받을 땅으로 가라는 부르심을 받고,
순종하여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고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은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를 부르신 하나님이 자신을 극진히  사랑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어 반드시 좋은 곳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이 믿음이 그를 순종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결정적인 믿음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쳐드리는 때에 나타났습니다. 이삭이 번제에 쓸 나무 짐을 지고 산에 오를 만큼 성장하였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22:2입니다.
“아브라함아,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가서 하나님이 지시하는 그 산으로 함께 오르고 있던 아들 이삭이 물었습니다. “아버지 번제할 어린양이 어디 있습니까?” 이 때 아브라함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22:8) 그리고 산에 올라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할 때에, 우리는 여기서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고 할 때, 아들 이삭은 전혀 반항하지 않고, 스스로 제단에 올라가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께 대한 절대 신뢰심을 아는 이삭의 신뢰와 순종이 이루어낸 작품입니다.  하나님은 이 부자의 믿음을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
하나님께 대한 신뢰는 순종으로 나타나는 온유함입니다.  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이삭을 얻는 것은 물론, 아브라함의 자손을 하늘의 별과같이 많이 얻게 하셨습니다.  

미국의 역대대통령 가운데 가장 탁월한 사람은 링컨이라고 평합니다. 링컨에게는 탁월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좋은 사람들을 많이 붙이신 것은 그의 절대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링컨대통령이 되었을 때 가장 심각한 것은 노예문제로 말미암은 남북 간의 갈등이었습니다. 노예문제를 합법적이라고 생각하는 남쪽에 대하여 분리를 주장하는 사라들도 있었습니다. “남쪽은 탈퇴하라고 내버려두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귀찮기만 했는데 시원히 잘 가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링컨은 말했습니다.
“강철 사슬의 고리처럼 굳게 단결하라.” “
나는 하나님이 계심을 믿고, 그가 불의와 노예제도를 증오하심을 압니다.
나는 폭풍우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그 속에 하나님의 손이 계심을 압니다.
만약 그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또 나는 있다고 확신하는데-나는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결국 남북전쟁의 포성이 울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미합중국의 통일과 노예제도의 종말을 주셨습니다. 믿음의 사람에게 하나님은 사람들을 붙이십니다.

2.온유한 사람은 자신의 죄를 회개합니다.  
사무엘하16:7,8에서 다윗의 생애에 가장 비참했던 때의 일을 읽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다윗 성을 공격해 들어옴으로 도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의 상황을 사무엘하15:30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올리브 산언덕으로 올라갔다.
그는 올라가면서 계속하여 울고, 머리를 가리고 슬퍼하면서, 맨발로 걸어갔다.
다윗과 함께 있는 백성들도 모두 머리를 가리고 울면서 언덕으로 올라갔다.”

다윗의 일행이 ‘바후림’에 이르렀을 때에, 사울왕가의 족속인 ‘시므이’ 라는 사람이  다윗의 일행을 따라오면서 돌을 던지며, 저주하며 말하였습니다.
사무엘하16:7.8이다.
“영영가거라! 이 피비린내 나는 살인자야! 이 불한당 같은 자야!
네가 사울의 집을 다 죽이고, 그의 나라를 차지하였으나,
이제는 주께서 그 피 값을 모두 너에게 갚으신다.
이제는 주께서 이 나라를 너의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겨주셨다.
이런 형벌은 너와 같은 살인자가 마땅히 받아야 할 재앙이다.”

이 때 다윗왕의 장군 ‘아비새’가 말했습니다.
“왕이여, 저놈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이 때 다윗이 한 말은 그가 온유한 자임을 알게 합니다.
“스루야의 아들아, 나의 일에 너희가 왜 나서느냐?
주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고 분부하셔서 그가 저주하는 것이라면 그가 나를 저주한다고 누가 그를 나무랄 수 있겠느냐?
···주께서 그에게 그렇게 하라고 시키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내버려두어라.
혹시 주께서 나의 이 비참한 모습을 보시고,
오늘 시므이가 한 저주 대신에 오히려 나에게 좋은 것으로 갚아주실지 누가 알겠는가?”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계속 길을 가는데 ‘시므이’는 여전히 산비탈을 타고 따라오면서 저주하며, 돌을 던지고, 흙먼지를 뿌렸습니다.
다윗은 자기에게 주어지는 비참한 현실을 통해서 스스로 회개하는 기회로 삼았을 뿐 누구에게도 책임을 전가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비난하고 저주하는 시므이를 얼마든지 없이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죽이지 않고 그 아픔을 회개의 기회를 삼았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계기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다윗의 이 온유한 마음을 안 부하들은 끝까지 다윗을 따랐습니다. 결국 압살롬의 반란을 잠재우고 다윗성으로 복귀하여 끝까지 성군으로 남았습니다.  

1903년에 원산에서 시작된 한국교회의 부흥의 역사는 바로 이 온유한 마음에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1903년 여름 선교사들의 여름수련회에서 설교하던 로버트 하디목사는 한국에서 선교가 시원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자신의 죄 때문이라 고 고백하며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주일 교회의 성도들 앞에서 이 사실을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한국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무시하는 교만한 마음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못하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교회부흥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은 것이 누구의 탓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교만 때문이라고 회개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사탄의 역사는 모든 원인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립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에서 죄지은 아담과 하와는 회개하기는커녕 오늘의 이 지경이 된 것은 바로 너 때문이라고 서로에게 책임을 돌렸습니다. 이 결과는 에덴에서의 영원한 추방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모든 원인을 나에게서 찾고 회개합니다.

우리들의 삶의 현실에 다가오는 크고 작은 어려운 일들을 만날 때마다, 그 원인을  남에게서 찾는 한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고 해답은 없습니다.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원인이 바로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고 회개하기 시작하면 문제는 풀리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온유한 마음입니다.  

3.온유한 사람은 용서하고, 위하여 기도합니다.    
민수기12:3 말씀입니다.
“모세로 말하자면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다.”
모세를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정하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 이유가 민수기1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가 되어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였습니다.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 모세의 본처인 ‘십보라’가 죽었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구스여자를 선택하여 아내로 삼았습니다. 구스 여자라 함은 아프리카지역에 흩어져 살던 피부색갈이 검은 여성이었습니다. 출애굽 할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는 이집트에서 함께 살았던 사람들도 동참하고 있었습니다. 모세가 구스여인을 아내로 삼은 것은 순수이스라엘 사람뿐만 아니라, 피부색갈이 다른 사람들까지도 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일깨우기 위한 결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에 대하여 모세의 누이였던 ‘미리암’이 아주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미리암은 아론을 충동질하여 모세를 비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민수기12:2입니다.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미리암은 모세의 지도력에 도전하는 격이 되었습니다. 자기들과 별반 차이가 없으면서 백성을 지도하고 있다고 비아냥거렸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함께 불러놓고서 말씀하셨습니다.
민수기12:7,8입니다.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를 비방하기를 두려워아니하느냐?”

이 일로 인하여 ‘미리암’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문둥병에 들었습니다.
바로 이 때, 모세의 탁월한 온유함이 드러났습니다. 자기를 향하여 악의적으로 비난하고 선동하던 미리암을 용서할 뿐만 아니라, 위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민수기12:13입니다.
“하나님이여, 원하오니, 그를 고쳐 주옵소서.”

자기를 정죄하고 비난하며 대적한 미리암을 위하여 용서를 비는 기도를 드린 모세를 가리켜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뛰어났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용서의 마음은 상대방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알지 못해서 그런 일을 했다고 생각하여 그를 불쌍히 여기어 용서하고 치유를 위하여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이 온유함이 미리암의 마음뿐만 아니라, 그렇게 변덕이 심하고 불순종하는 백성들을 끝까지 가나안의 문턱까지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이 마음은 십자가위에서 주님이 기도하신 마음입니다.
이 온유한 마음의 기도가 온 인류를 구원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이 마음을 성령 충만한 스데반의 마음입니다.
이 온유한 마음의 기도가 사울의 강퍅한 마음을 돌이키게 하는 결정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용서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나를 비방하고 도전하며 나의 일을 힘들게 한 그 사람을 대하여 용서하고 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한다고 하는 것은 온유한 마음의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누가복음6:32-35에 기록된 주님의 말씀입니다.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 사랑하면 하나님께 은혜 받은 자라고 할 수 있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과는 사랑한다. 또 너희에게 잘해주는 이들에게만 잘해주면 그것이 무슨 은혜가 되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네끼리는 그렇게 한다.···너희는 원수도 사랑하며, 잘해주고, 되받을 것을 바라지 말고 빌려주어라. 그리하면 (하늘의)보상이 클 것이며,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 될 것이다.”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 마음을 배우라 하십니다.  
마태복음11:29,30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쉬게 되리라. 사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기 때문이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마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당신의 마음의 왕좌에 주님으로 모셔 들이십시오.
예수님이 우리 속에 들어오시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무한한 에너지도 우리 속에 함께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는 우리 속에 모든 에너지의 공급원을 차단하는 죄의 찌기들을 모두 깨끗이 쓸어주십니다. 그래서 예수 안에서 그 무한한 능력을 공급받을 수 있게 하십니다. 그 무한한 능력이 우리의 삶에 연결되도록 역사하십니다. 기도입니다.
우리를 억누르고 있는 증오, 분노, 질투, 자기연민, 권태, 외로움, 슬픔 때문에 의기가 저하되고 마음이 피곤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에너지가 말라버립니다. 몸이 피곤하고 지치게 됩니다.
시편34: 해결되지 않는 죄는 내 뼈를 마르게 하고, 내 심령을 여름 가뭄의 메마름 같이 만들어버립니다.
“하루 종일 싸우는 생각을 하면 밤에는 싸움으로 지쳐 있을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의 영혼을 힘들게 하는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을 고쳐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들을 고쳐서 좋은 것으로 바꾸어주십니다.
미움을 사랑으로! 정죄를 용서로! 조급함을 인내함으로! 슬픔을 기쁨으로! 어둠을 밝음으로!  
십자가의 복음-십자가에서 당신의 구속의 은총을 내려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십자가 그 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 마음이 온유입니다.
죄지은 사람을 이해하고 용납하는 마음을 넘어서서 그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는 마음입니다. 그 죄까지 속죄하는 마음입니다.  
부활이후 성령의 임재하심 후에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시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능으로 되지 않습니다. 오직 주의 성령으로 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저와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주님께서 이 복된 마음으로 살도록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히브리서12:2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저희가 땅을 얻게 될 것입니다.”
070311주일낮설교     복3·온유한 사람     마태복음5:1-5

  요즈음 우리사회의 가장 주요한 관심은 ‘경제문제’ 입니다. 어제 일간지 신문 1면에는 실린 세 가지 중요기사는 다 경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는 우리나라의 최대기업가이자, 최고부자인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한 말입니다.  
“한국경제 심각하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4~6년 뒤에는 아주 혼란스러운 상황이 올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기사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 후임자로 한덕수 전 경제부총리를 지명하였다는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경제는 총리에게 맡기고, 본인은 외교를 챙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기사는 부동산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지난 해 토지보상금의 상당액수가 부동산 투기자금으로 활용 되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수도권에서 보상금을 받은 사람의 자금 1조 6,091억 원 중, 82.4%인 1조 3,251억 원이 부동산 자금으로 재투입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잘 살려고 하면, 밝고,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상황판단을 빠르고 정확하게 하며,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이 시대에 예수님께서 8복을 다시 말씀하신다면 혹시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을까요?  
“투자를 잘하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에서 잘 살게 될 것이요.”  

  그런데 2천 년 전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온유한 사람”(ο? πραε??)이라는 헬라어 본뜻은 “겸손한 사람”이라는 말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 뜻이 있습니다. 겸손은 단순히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그러나 온유는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허세를 부리지 않고, 자기에게 악을 행하는 자에 대해서도 오래 참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온유한 마음을 가지게 되면 결국 사람을 얻게 됩니다. 세상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사람을 통해서 모든 것을 얻기도 하고, 잃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인사가 만사다.” 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이렇게 바꾸어 말할 수 있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사람을 얻을 것이요.”
시편127:3-5의 말씀은 이 사실을 뒷받침해 줍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니라.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많은 자식을 얻은 사람은 경쟁에서 그만큼 우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사람을 얻는 복을 받습니다.

  성당에서 일어난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느 날 한 어린 소년이 작은 마을의 시골 성당에서 일요미사를 진행하는 신부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제단에서 하는 새로운 역할에 다소 긴장한 그 소년은 무심결에 포도주 병을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신부는 곧바로 소년의 뺨을 세게 때렸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매우 거친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제단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마!” 그 손년이 바로 수십 년 동안 유고슬라비아를 통치한 공산주의 지도자 티토(Tito)였습니다.
  어느 날, 어린 소년이 큰 도시에 있는 성당에서 일요미사를 진행하는 한 주교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 소년도 우연히 포도주 병을 떨어뜨렸습니다. 그러나 주교는 분노로 반응하지 않고, 부드럽게 두 눈으로 윙크하면서 속삭였습니다. “언젠가 너는 신부가 될 거야.”그 소년이 바로 풀턴 쉰(Fulton Sheen)대주교 입니다.
강퍅한 마음의 사람은 주변의 좋은 사람들을 놓치지만, 온유한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들을 얻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 번째 복을 말씀하실 때에 염두에 두신 말씀은 시편37:9-10입니다.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여기서 행악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인색하고 강퍅하여 결국 사람을 잃는 삶이요, 온유한 사람은 좋은 사람들을 많이 얻는 사람이 되어 결국 땅을 차지하게 되고, 풍부한 화평으로 인생을 즐기게 됩니다.

온유한 사람은 어떻게 사람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이 시간 몇 가지 성경적인 실례를 들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성경은 믿음과 축복의 조상으로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란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창12:1) 이 말씀을 들은 아브라함은 그 조카 롯과 함께 주저하지 아니하고 떠났습니다. 사실상 이것은 대단한 모험이었습니다.
히브리서기자는 히브리서11:8에 이때의 아브라함을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상속을 받을 땅으로 가라는 부르심을 받고,
순종하여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고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은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를 부르신 하나님이 자신을 극진히  사랑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어 반드시 좋은 곳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이 믿음이 그를 순종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결정적인 믿음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쳐드리는 때에 나타났습니다. 이삭이 번제에 쓸 나무 짐을 지고 산에 오를 만큼 성장하였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22:2입니다.
“아브라함아,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가서 하나님이 지시하는 그 산으로 함께 오르고 있던 아들 이삭이 물었습니다. “아버지 번제할 어린양이 어디 있습니까?” 이 때 아브라함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22:8) 그리고 산에 올라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할 때에, 우리는 여기서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고 할 때, 아들 이삭은 전혀 반항하지 않고, 스스로 제단에 올라가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께 대한 절대 신뢰심을 아는 이삭의 신뢰와 순종이 이루어낸 작품입니다.  하나님은 이 부자의 믿음을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
하나님께 대한 신뢰는 순종으로 나타나는 온유함입니다.  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이삭을 얻는 것은 물론, 아브라함의 자손을 하늘의 별과같이 많이 얻게 하셨습니다.  

미국의 역대대통령 가운데 가장 탁월한 사람은 링컨이라고 평합니다. 링컨에게는 탁월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좋은 사람들을 많이 붙이신 것은 그의 절대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링컨대통령이 되었을 때 가장 심각한 것은 노예문제로 말미암은 남북 간의 갈등이었습니다. 노예문제를 합법적이라고 생각하는 남쪽에 대하여 분리를 주장하는 사라들도 있었습니다. “남쪽은 탈퇴하라고 내버려두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귀찮기만 했는데 시원히 잘 가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링컨은 말했습니다.
“강철 사슬의 고리처럼 굳게 단결하라.” “
나는 하나님이 계심을 믿고, 그가 불의와 노예제도를 증오하심을 압니다.
나는 폭풍우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그 속에 하나님의 손이 계심을 압니다.
만약 그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또 나는 있다고 확신하는데-나는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결국 남북전쟁의 포성이 울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미합중국의 통일과 노예제도의 종말을 주셨습니다. 믿음의 사람에게 하나님은 사람들을 붙이십니다.

2.온유한 사람은 자신의 죄를 회개합니다.  
사무엘하16:7,8에서 다윗의 생애에 가장 비참했던 때의 일을 읽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다윗 성을 공격해 들어옴으로 도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의 상황을 사무엘하15:30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올리브 산언덕으로 올라갔다.
그는 올라가면서 계속하여 울고, 머리를 가리고 슬퍼하면서, 맨발로 걸어갔다.
다윗과 함께 있는 백성들도 모두 머리를 가리고 울면서 언덕으로 올라갔다.”

다윗의 일행이 ‘바후림’에 이르렀을 때에, 사울왕가의 족속인 ‘시므이’ 라는 사람이  다윗의 일행을 따라오면서 돌을 던지며, 저주하며 말하였습니다.
사무엘하16:7.8이다.
“영영가거라! 이 피비린내 나는 살인자야! 이 불한당 같은 자야!
네가 사울의 집을 다 죽이고, 그의 나라를 차지하였으나,
이제는 주께서 그 피 값을 모두 너에게 갚으신다.
이제는 주께서 이 나라를 너의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겨주셨다.
이런 형벌은 너와 같은 살인자가 마땅히 받아야 할 재앙이다.”

이 때 다윗왕의 장군 ‘아비새’가 말했습니다.
“왕이여, 저놈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이 때 다윗이 한 말은 그가 온유한 자임을 알게 합니다.
“스루야의 아들아, 나의 일에 너희가 왜 나서느냐?
주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고 분부하셔서 그가 저주하는 것이라면 그가 나를 저주한다고 누가 그를 나무랄 수 있겠느냐?
···주께서 그에게 그렇게 하라고 시키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내버려두어라.
혹시 주께서 나의 이 비참한 모습을 보시고,
오늘 시므이가 한 저주 대신에 오히려 나에게 좋은 것으로 갚아주실지 누가 알겠는가?”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계속 길을 가는데 ‘시므이’는 여전히 산비탈을 타고 따라오면서 저주하며, 돌을 던지고, 흙먼지를 뿌렸습니다.
다윗은 자기에게 주어지는 비참한 현실을 통해서 스스로 회개하는 기회로 삼았을 뿐 누구에게도 책임을 전가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비난하고 저주하는 시므이를 얼마든지 없이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죽이지 않고 그 아픔을 회개의 기회를 삼았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계기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다윗의 이 온유한 마음을 안 부하들은 끝까지 다윗을 따랐습니다. 결국 압살롬의 반란을 잠재우고 다윗성으로 복귀하여 끝까지 성군으로 남았습니다.  

1903년에 원산에서 시작된 한국교회의 부흥의 역사는 바로 이 온유한 마음에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1903년 여름 선교사들의 여름수련회에서 설교하던 로버트 하디목사는 한국에서 선교가 시원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자신의 죄 때문이라 고 고백하며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주일 교회의 성도들 앞에서 이 사실을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한국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무시하는 교만한 마음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못하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교회부흥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은 것이 누구의 탓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교만 때문이라고 회개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사탄의 역사는 모든 원인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립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에서 죄지은 아담과 하와는 회개하기는커녕 오늘의 이 지경이 된 것은 바로 너 때문이라고 서로에게 책임을 돌렸습니다. 이 결과는 에덴에서의 영원한 추방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모든 원인을 나에게서 찾고 회개합니다.

우리들의 삶의 현실에 다가오는 크고 작은 어려운 일들을 만날 때마다, 그 원인을  남에게서 찾는 한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고 해답은 없습니다.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원인이 바로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고 회개하기 시작하면 문제는 풀리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온유한 마음입니다.  

3.온유한 사람은 용서하고, 위하여 기도합니다.    
민수기12:3 말씀입니다.
“모세로 말하자면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다.”
모세를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정하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 이유가 민수기1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가 되어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였습니다.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 모세의 본처인 ‘십보라’가 죽었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구스여자를 선택하여 아내로 삼았습니다. 구스 여자라 함은 아프리카지역에 흩어져 살던 피부색갈이 검은 여성이었습니다. 출애굽 할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는 이집트에서 함께 살았던 사람들도 동참하고 있었습니다. 모세가 구스여인을 아내로 삼은 것은 순수이스라엘 사람뿐만 아니라, 피부색갈이 다른 사람들까지도 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일깨우기 위한 결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에 대하여 모세의 누이였던 ‘미리암’이 아주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미리암은 아론을 충동질하여 모세를 비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민수기12:2입니다.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미리암은 모세의 지도력에 도전하는 격이 되었습니다. 자기들과 별반 차이가 없으면서 백성을 지도하고 있다고 비아냥거렸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함께 불러놓고서 말씀하셨습니다.
민수기12:7,8입니다.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를 비방하기를 두려워아니하느냐?”

이 일로 인하여 ‘미리암’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문둥병에 들었습니다.
바로 이 때, 모세의 탁월한 온유함이 드러났습니다. 자기를 향하여 악의적으로 비난하고 선동하던 미리암을 용서할 뿐만 아니라, 위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민수기12:13입니다.
“하나님이여, 원하오니, 그를 고쳐 주옵소서.”

자기를 정죄하고 비난하며 대적한 미리암을 위하여 용서를 비는 기도를 드린 모세를 가리켜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뛰어났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용서의 마음은 상대방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알지 못해서 그런 일을 했다고 생각하여 그를 불쌍히 여기어 용서하고 치유를 위하여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이 온유함이 미리암의 마음뿐만 아니라, 그렇게 변덕이 심하고 불순종하는 백성들을 끝까지 가나안의 문턱까지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이 마음은 십자가위에서 주님이 기도하신 마음입니다.
이 온유한 마음의 기도가 온 인류를 구원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이 마음을 성령 충만한 스데반의 마음입니다.
이 온유한 마음의 기도가 사울의 강퍅한 마음을 돌이키게 하는 결정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용서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나를 비방하고 도전하며 나의 일을 힘들게 한 그 사람을 대하여 용서하고 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한다고 하는 것은 온유한 마음의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누가복음6:32-35에 기록된 주님의 말씀입니다.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 사랑하면 하나님께 은혜 받은 자라고 할 수 있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과는 사랑한다. 또 너희에게 잘해주는 이들에게만 잘해주면 그것이 무슨 은혜가 되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네끼리는 그렇게 한다.···너희는 원수도 사랑하며, 잘해주고, 되받을 것을 바라지 말고 빌려주어라. 그리하면 (하늘의)보상이 클 것이며,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 될 것이다.”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 마음을 배우라 하십니다.  
마태복음11:29,30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쉬게 되리라. 사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기 때문이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마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당신의 마음의 왕좌에 주님으로 모셔 들이십시오.
예수님이 우리 속에 들어오시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무한한 에너지도 우리 속에 함께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는 우리 속에 모든 에너지의 공급원을 차단하는 죄의 찌기들을 모두 깨끗이 쓸어주십니다. 그래서 예수 안에서 그 무한한 능력을 공급받을 수 있게 하십니다. 그 무한한 능력이 우리의 삶에 연결되도록 역사하십니다. 기도입니다.
우리를 억누르고 있는 증오, 분노, 질투, 자기연민, 권태, 외로움, 슬픔 때문에 의기가 저하되고 마음이 피곤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에너지가 말라버립니다. 몸이 피곤하고 지치게 됩니다.
시편34: 해결되지 않는 죄는 내 뼈를 마르게 하고, 내 심령을 여름 가뭄의 메마름 같이 만들어버립니다.
“하루 종일 싸우는 생각을 하면 밤에는 싸움으로 지쳐 있을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의 영혼을 힘들게 하는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을 고쳐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들을 고쳐서 좋은 것으로 바꾸어주십니다.
미움을 사랑으로! 정죄를 용서로! 조급함을 인내함으로! 슬픔을 기쁨으로! 어둠을 밝음으로!  
십자가의 복음-십자가에서 당신의 구속의 은총을 내려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십자가 그 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 마음이 온유입니다.
죄지은 사람을 이해하고 용납하는 마음을 넘어서서 그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는 마음입니다. 그 죄까지 속죄하는 마음입니다.  
부활이후 성령의 임재하심 후에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시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능으로 되지 않습니다. 오직 주의 성령으로 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저와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주님께서 이 복된 마음으로 살도록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히브리서12:2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저희가 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출처/최이우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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