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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강 느부갓네살 임금의 조서(4:1-3)

by 【고동엽】 2022. 4. 13.

제34강 느부갓네살 임금의 조서(4:1-3)

 

4:1-3
느부갓네살 왕은 천하에 거하는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에게 조서하노라 원하노니 너희에게 많은 평강이 있을지어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이적과 기사를 내가 알게 하기를 즐겨하노라 크도다 그 이적이여 능하도다 그 기사여 그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 권병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다니엘서 4장에는 느부갓네살 임금이 꾸었던 두번째 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3장과 4장 사이에는 시간적인 간격이 넓게 있습니다. 역사가들의 기록에 의하면 느부갓네살 임금은 43년을 통치했습니다. 상당히 오래 통치를 한 것입니다. 그러면 4장의 사건이 언제 일어났는지 생각해보십시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죽고 나서 바벨론의 역사가들이 느부갓네살 임금이 겪었던 정신병에 대해서 기록을 남겼는데 느부갓네살 임금이 통치 말기에 정신병을 겪었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뒤로 넘어가서 4:28∼29을 보십시다.
"이 모든 일이 다 나 느부갓네살 왕에게 임하였느니라 열두 달이 지난 후에 내가 바벨론 궁 지붕에서 거닐 새."
꿈을 꾸었던 모든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데, 꿈을 꾼 지 열두 달이 지난 후에 일어났습니다. 그러니까 꿈을 꾸고 나서 1년 후에 정신이 나가 버렸습니다. 몇 때를 정신병으로 고생했습니까? 일곱 때를 정신병으로 고생했습니다. 정신병으로 7년 고생하다가 그 뒤에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일곱 때를 7년으로 보고 꿈을 꾼 지 1년이 지난 다음이라고 했으니까 8년으로 잡아봅니다. 그러면 43년간 통치를 했다고 했으니까 43-8은 35입니다. 그러니까 느부갓네살 임금이 통치한 지 35년이 되기 조금 전에 이와 같은 일이 생겼을 것입니다.
제가 한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다니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것은 느부갓네살 원년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다니엘이 약 15세라고 했으니까 지금 다니엘은 몇 살이겠습니까? 예, 50세쯤 되었을 것입니다. 머리카락이 희끗희끗 희어지기 시작하는 중년의 나이입니다. 이와 같이 3장과 4장 사이에는 시간적으로 넓은 간격이 있습니다.
1절을 보시겠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천하에 거하는"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의 스타일입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은 어디의 왕입니까? 바벨론 왕입니다. 그런데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느부갓네살 왕은 천하에." 무슨 뜻입니까? 자기는 천하의 임금이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높였습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보여주는 스타일입니다.
요즘 보니까 대선 주자들이 저마다 "내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어야 합니다"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점을 자꾸 강조합니다. "박씨는 나밖에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저는 박 대통령처럼 경상북도 출신입니다"고 내세웁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내가 박 대통령과 모습도 닮았고 키도 같습니다"고 자기를 내세웁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박 대통령처럼 장기 집권하다가 총 맞아 죽겠다는 것입니까?
우리는 그런 스타일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믿는 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겸손히 자기를 낮출 수 있는, 다른 사람을 나보다 높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낮아질 때 하나님께서 나를 높여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최고가 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단지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할 때에 하나님께서 나를 높여주실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천하에 거하는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에게 조서하노라." 옛날 중근동 지방에서 글로 다른 사람에게 편지를 하든지 조서를 발표할 때는 항상 누가 누구에게 보낸다는 것을 밝히고, 그 다음에 인사말을 씁니다. 오늘 본문에서 발신자는 느부갓네살 임금입니다. 그 다음에 조서를 받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천하에 거하는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 그 다음에 세번째로 인사말이 나왔습니다. "원하노니 너희에게 많은 평강이 있을지어다." 사도 바울이 편지를 쓸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 바울은"이라고 하면서 발신자를 밝혔습니다. 그 다음에 수신자가 나옵니다. "어디어디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그 다음에 인사말을 합니다.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중근동 사람들의 인사말은 평강입니다. 이것을 "샬롬"이라고 합니다. 아랍 말로는 "살람"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샬롬!" "살람!"이라고 인사합니다. 우리가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옛부터 지금까지 그곳의 인사말은 평화, 평강입니다.
그 다음에 2절을 보면 왜 느부갓네살 임금이 조서를 쓰게 되었는지 이유가 나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이적과 기사를 내가 알게 하기를 즐겨하노라." 자기가 경험한 이적과 기사 때문에 조서를 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느부갓네살 임금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이적과 기사를 두 번 체험했습니다. 다니엘서 2장에서 하나님께서 은밀한 것을 다니엘에게 나타내 보이신 것을 목격했습니다. 자기가 꾸었던 꿈과 해석을 다니엘이 알려주었습니다. 그 다음에 3장에서는 무슨 이적과 기사를 체험했습니까? 하나님께서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서 다니엘의 세 친구를 건져주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사건들은 느부갓네살 임금에게 직접적으로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다니엘에게, 또 다니엘의 세 친구에게 일어나 이적과 기사입니다.
그런데 2절을 보니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이적과 기사를"이라고 했습니다. 누구에게 행하신 것이라고 했습니까? 자기에 행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4장에는 느부갓네살 임금 자신에게 행하신 이적과 기사가 나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정신병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소처럼 풀을 뜯어먹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그 병을 고치셨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직접 경험한 이적과 기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적(異蹟)이라고 하는 것은 다를 이(異)자에다가 자취 적(蹟)자를 씁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의 자취가 아닙니다. 신의 자취입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베푸신 자취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기사(奇事)라고 하는 것은 기이한 일을 말합니다. 놀라운 일을 말합니다. 보통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경이로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3절을 보니까 느부갓네살 임금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크도다 그 이적이여 능하도다 그 기사여 그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 권병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세 가지로 찬양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크심과 위대하심, 둘째로 능하심과 전능하심, 세번째로 하나님의 주권을 찬양했습니다. 그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권병은 대대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권병(權柄)은 권세 권(權)자에 역시 권세 병(柄)자입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이렇게 찬양하는 마음을 우리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은 정신병에 걸려서 권좌에서 물러났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나이 많고 늙었습니다. 잠시 뒤에는 죽는 것만이 남아 있습니다. 죽고 나면 그 권좌에서 영원히 물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자기의 현재 처지와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주권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크도다 그 이적이여 능하도다 그 기사여 그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 권병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우리가 이 사실을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내가 붙들고 있는 세상 줄이라고 하는 것은 다 끊어집니다. 물질의 줄, 내 부모, 내 형제, 내 남편, 내 아내, 심지어는 내 자식의 줄까지도 다 끊어집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지금이라도 헤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것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 나라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우리 인생을 가리켜 없고, 없고, 없고, 없다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릴 때는 철이 없습니다. 좀 자란 다음에는 자기 짝을 찾아 연애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중년이 되면 애들 키우느라, 돈 버느라 바빠서 시간이 없습니다. 나이가 70이 되고, 80이 되면 쪼글쪼글 형편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영영 없어집니다. 이것이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 4:14에서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이것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야단법석을 떨면서 살아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가야 합니다. 맥없이 쓰러지고 마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언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지라도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고 이 세상에 미련 두지 말고 잠시 잠깐이면 떠날 이 세상 너무 생각하지 말고 주님을 생각하면서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주님으로 우리의 마음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이 하루가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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