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강 구원의 하나님(3:28-30)
3:28-30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가로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방언하는 자가 무릇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설만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고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도에서 더욱 높이니라
느부갓네살 임금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결박시켜서 평소보다도 칠 배나 더 뜨거운 풀무불에 던졌습니다. 그러나 그 세 사람의 믿음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서, 또 왕이 손에서 구해주셨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은 그 기적을 보면서 경이로움과 아울러 마음에 큰 두려움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노하게 만들어서 자기가 화를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 임금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높이고 있습니다. 찬송하고 있습니다. 안 그러면 벌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했는지 보십시다. 28절입니다.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가로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라고 했습니다. 아직까지 느부갓네살 임금이 온전히 회개하지 못했습니다. 온전한 회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 큰 신상을 당장 박살내 버려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야! 너희가 섬기는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 그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냐?" 이런 것을 물어보면서 "이제 바벨론의 신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고 선포했어야 옳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느부갓네살 임금에게 있어서 여호와 하나님은 그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어떻게 높이는지, 왜 찬송을 했는지 보십시다. 우선 하나님을 찬양하는 두 가지 이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로,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극심한 시련을 맞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그저 높은 보좌에 앉아서 "큰일났네, 어떻게 하지? 불쌍하구나!" 이렇게 하지 아니하시고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사자를 보내셨습니다. 그 시련 가운데 다니엘의 세 친구를 홀로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함께 하셨습니다.
경우에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극심한 시련을 허락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홀로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그 시련 가운데서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손을 붙잡고 우리로 하여금 그 시련을 이기도록 보살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두번째로,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사자를 보내주셨고, 두번째로는 극심한 환난 가운데서 세 사람을 구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높이고 찬송하고 있습니다.
다시 28절 중간 부분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 종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 종들이 어떠한 종들이기에 극심한 환난 가운데서 구원하셨습니까?
첫째로, "자기를 의뢰하고." 사람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물질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자기 힘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구원해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하루도 사람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을 신뢰하고, 의뢰하고, 더욱더 의지하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그 몸을 버려서." 롬 12:1에 보면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자기 몸을 아끼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 이것 필요합니다. 이것 주십시오. 저것도 필요하니 저것도 주십시오." 그저 고개만 숙이면 "이것도 주시고, 저것도 주시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것도 필요합니다"라는 주시고 행진곡뿐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구원하신다고 했습니까? "내 몸을 던져서 하나님께 드리리라. 이 몸까지도 아낌없이 드리리다"라고 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십니다.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이 아침 내 마음과 내 몸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나머지도 다 공급해주실 것입니다. 왜 사랑하는 아들이 고난 당하도록 내버려두시겠습니까? 오늘 이 아침도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드리는 모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번째로, "왕의 명을 거역하고." 불의 앞에서는 아무리 엄한 왕의 명령이라도 용감하게 거역할 수 있는 신앙, 목에 칼이 들어와도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할 수 있는 일사각오의 신앙을 가졌습니다. 용기 있는 믿음을 가진 자를 하나님은 구원하십니다.
넷째로, "그 하나님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일편단심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고, 하나님 한 분만을 사랑하는 일편단심의 신앙입니다.
다시 한번 정리를 하면 첫째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둘째로 하나님께 몸을 드리고, 셋째로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용감하고 담대한 신앙 가지고, 넷째로 일편단심의 사랑, 충성을 하나님께 드리는 자를 하나님께서 환난 가운데서 구원해주셨다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정확히 보았습니다.
그 다음에 29절을 보십시다. "그러므로." 여기서 "그러므로"라고 하는 말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극심한 환난 가운데 있을 때 구원한 역사를 분명히 보았으므로"라는 말입니다.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라고 했습니다. 단순히 말로 명령을 내리는 것보다 조서를 내리는 것이 권위가 있습니다. 더 분명하고 확실하게 명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조서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그 다음을 보세요.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방언하는 자가"라고 했습니다. 3:4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반포하는 자가 크게 외쳐 가로되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아 왕이 너희 무리에게 명하시나니."
여기에는 "백성들과 나라들과"라고 하여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29절에는 무슨 단어가 더 들어가 있습니까? "각"이라는 말입니다.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방언하는 자," 즉 누구든지 빠짐없이 모든 사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무릇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설만히 말하거든." 지금까지는 느부갓네살 임금 자신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 앞에 설만히 말했습니다. 설만히 말한다는 것은 대항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능히 내 손에서 너희를 건져내겠느냐?" 그랬던 느부갓네살이 이제는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설만히 말하면 어떻게 한다고 했습니까?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지니"라고 했습니다. 아직도 느부갓네살 임금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인간의 생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누구라는 것입니까?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 임금은 마치 자기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것처럼 "그 몸을 쪼개고"라고 말합니다. 또 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지니"라고 했습니다. 아직도 교만합니다. 아직도 제대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4장에 보면 하나님이 느부갓네살 임금을 치셨습니다. 그래서 정신이 빠져서 미쳐 버렸습니다. 소처럼 풀을 뜯어먹는 비천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생사 화복을 주관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았어야 할 느부갓네살 임금이 아직도 교만합니다. 자기가 모든 것을 다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29절 마지막 부분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그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믿는 신은 여러 신 가운데 좀 뛰어난 신, 지극히 높은 하나의 신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유일한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느부갓네살 임금의 말 속에서 느부갓네살 임금이 다신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도에서 더욱 높이니라." 왕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어떻게 했습니다. 바벨론 도에서 더욱 높였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주를 위해서 자기들의 높은 지위를 다 버렸습니다. 몸을 드렸습니다. 생명까지도 주를 위해서 아낌없이 바친 사람들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오히려 저들을 더욱 높여주셨습니다.
반대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참소했던 갈대아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이들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죽임으로써 그 자리를 자기들이 차지하려고 참소했습니다. 그러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높아졌습니다. 이들을 참소한 갈대아 사람들은 더욱 비참해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를 위하여 죽으면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귀한 교훈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이신지요. 다니엘의 세 친구는 뜨거운 풀무 속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해주실 줄 믿습니다"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면서 그들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찬양이 있습니다. 이 찬양을 함께 부르면서 오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참 좋으신 우리 하나님.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주시는
참 좋으신 우리 하나님."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가로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방언하는 자가 무릇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설만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고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도에서 더욱 높이니라
느부갓네살 임금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결박시켜서 평소보다도 칠 배나 더 뜨거운 풀무불에 던졌습니다. 그러나 그 세 사람의 믿음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서, 또 왕이 손에서 구해주셨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은 그 기적을 보면서 경이로움과 아울러 마음에 큰 두려움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노하게 만들어서 자기가 화를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 임금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높이고 있습니다. 찬송하고 있습니다. 안 그러면 벌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했는지 보십시다. 28절입니다.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가로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라고 했습니다. 아직까지 느부갓네살 임금이 온전히 회개하지 못했습니다. 온전한 회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 큰 신상을 당장 박살내 버려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야! 너희가 섬기는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 그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냐?" 이런 것을 물어보면서 "이제 바벨론의 신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고 선포했어야 옳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느부갓네살 임금에게 있어서 여호와 하나님은 그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어떻게 높이는지, 왜 찬송을 했는지 보십시다. 우선 하나님을 찬양하는 두 가지 이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로,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극심한 시련을 맞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그저 높은 보좌에 앉아서 "큰일났네, 어떻게 하지? 불쌍하구나!" 이렇게 하지 아니하시고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사자를 보내셨습니다. 그 시련 가운데 다니엘의 세 친구를 홀로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함께 하셨습니다.
경우에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극심한 시련을 허락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홀로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그 시련 가운데서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손을 붙잡고 우리로 하여금 그 시련을 이기도록 보살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두번째로,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사자를 보내주셨고, 두번째로는 극심한 환난 가운데서 세 사람을 구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높이고 찬송하고 있습니다.
다시 28절 중간 부분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 종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 종들이 어떠한 종들이기에 극심한 환난 가운데서 구원하셨습니까?
첫째로, "자기를 의뢰하고." 사람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물질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자기 힘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구원해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하루도 사람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을 신뢰하고, 의뢰하고, 더욱더 의지하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그 몸을 버려서." 롬 12:1에 보면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자기 몸을 아끼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 이것 필요합니다. 이것 주십시오. 저것도 필요하니 저것도 주십시오." 그저 고개만 숙이면 "이것도 주시고, 저것도 주시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것도 필요합니다"라는 주시고 행진곡뿐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구원하신다고 했습니까? "내 몸을 던져서 하나님께 드리리라. 이 몸까지도 아낌없이 드리리다"라고 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십니다.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이 아침 내 마음과 내 몸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나머지도 다 공급해주실 것입니다. 왜 사랑하는 아들이 고난 당하도록 내버려두시겠습니까? 오늘 이 아침도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드리는 모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번째로, "왕의 명을 거역하고." 불의 앞에서는 아무리 엄한 왕의 명령이라도 용감하게 거역할 수 있는 신앙, 목에 칼이 들어와도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할 수 있는 일사각오의 신앙을 가졌습니다. 용기 있는 믿음을 가진 자를 하나님은 구원하십니다.
넷째로, "그 하나님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일편단심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고, 하나님 한 분만을 사랑하는 일편단심의 신앙입니다.
다시 한번 정리를 하면 첫째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둘째로 하나님께 몸을 드리고, 셋째로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용감하고 담대한 신앙 가지고, 넷째로 일편단심의 사랑, 충성을 하나님께 드리는 자를 하나님께서 환난 가운데서 구원해주셨다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정확히 보았습니다.
그 다음에 29절을 보십시다. "그러므로." 여기서 "그러므로"라고 하는 말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극심한 환난 가운데 있을 때 구원한 역사를 분명히 보았으므로"라는 말입니다.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라고 했습니다. 단순히 말로 명령을 내리는 것보다 조서를 내리는 것이 권위가 있습니다. 더 분명하고 확실하게 명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조서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그 다음을 보세요.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방언하는 자가"라고 했습니다. 3:4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반포하는 자가 크게 외쳐 가로되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아 왕이 너희 무리에게 명하시나니."
여기에는 "백성들과 나라들과"라고 하여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29절에는 무슨 단어가 더 들어가 있습니까? "각"이라는 말입니다.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방언하는 자," 즉 누구든지 빠짐없이 모든 사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무릇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설만히 말하거든." 지금까지는 느부갓네살 임금 자신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 앞에 설만히 말했습니다. 설만히 말한다는 것은 대항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능히 내 손에서 너희를 건져내겠느냐?" 그랬던 느부갓네살이 이제는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설만히 말하면 어떻게 한다고 했습니까?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지니"라고 했습니다. 아직도 느부갓네살 임금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인간의 생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누구라는 것입니까?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 임금은 마치 자기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것처럼 "그 몸을 쪼개고"라고 말합니다. 또 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지니"라고 했습니다. 아직도 교만합니다. 아직도 제대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4장에 보면 하나님이 느부갓네살 임금을 치셨습니다. 그래서 정신이 빠져서 미쳐 버렸습니다. 소처럼 풀을 뜯어먹는 비천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생사 화복을 주관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았어야 할 느부갓네살 임금이 아직도 교만합니다. 자기가 모든 것을 다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29절 마지막 부분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그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믿는 신은 여러 신 가운데 좀 뛰어난 신, 지극히 높은 하나의 신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유일한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느부갓네살 임금의 말 속에서 느부갓네살 임금이 다신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도에서 더욱 높이니라." 왕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어떻게 했습니다. 바벨론 도에서 더욱 높였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주를 위해서 자기들의 높은 지위를 다 버렸습니다. 몸을 드렸습니다. 생명까지도 주를 위해서 아낌없이 바친 사람들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오히려 저들을 더욱 높여주셨습니다.
반대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참소했던 갈대아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이들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죽임으로써 그 자리를 자기들이 차지하려고 참소했습니다. 그러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높아졌습니다. 이들을 참소한 갈대아 사람들은 더욱 비참해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를 위하여 죽으면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귀한 교훈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이신지요. 다니엘의 세 친구는 뜨거운 풀무 속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해주실 줄 믿습니다"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면서 그들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찬양이 있습니다. 이 찬양을 함께 부르면서 오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참 좋으신 우리 하나님.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주시는
참 좋으신 우리 하나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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