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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강 풀무불 속의 네 사람(3:24-27)

by 【고동엽】 2022. 4. 13.

제32강 풀무불 속의 네 사람(3:24-27)

 

3:24-27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가로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옳소이다 왕이 또 말하여 가로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느부갓네살이 극렬히 타는 풀무 아구 가까이 가서 불러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서 나온지라 방백과 수령과 도백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슬리지 아니하였고 고의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

참으로 은혜스러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결박된 채 평소보다 7배나 더 뜨거운 풀무불 속에 던져졌습니다. 사건이 이것으로 끝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그랬더라면 다니엘의 세 친구는 우리들에게 영원토록 순교자로 기억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사건에 친히 개입하셨습니다. 어떻게 개입하셨는지 보십시다.
24절 말씀입니다.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느부갓네살 임금이 보여준 반응을 통해서 무엇인가 특이한,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서 급히 일어났습니다.
무슨 일에 그토록 놀랐습니까? 틀림없이 결박시켰는데, 풀무불 안에서는 결박되지 않은 자유로운 사람들이 거닐고 있었습니다. 평소보다 더 뜨겁게 한 극렬한 풀무불이기 때문에 집어던진 사람들도 불에 타 죽었는데 지금 풀무불 속에는 사람들이 살아 있습니다. 살아서 돌아다니고 있는 모습이 어른거리고 있습니다. 또 뜨거운 풀무불 속에 사람을 집어넣었으니 인육이 타는 냄새가 나야 하는데 그런 냄새가 전혀 나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느부갓네살 임금의 시선을 끈 사실이 있습니다. "모사들에게 물어 가로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숫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 세 사람 말고 다른 사람을 더 집어던졌느냐고 모사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주변에 있는 모사들이 왕에게 대답하였습니다. "저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옳소이다"고 했습니다. 틀림없이 세 사람을 던졌다는 것입니다.
2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왕이 또 말하여 가로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틀림없이 용사들이 묶었습니다. 그런데 불 속에서 세 친구를 결박시킨 끈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불에 타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극렬히 타는 풀무불은 다니엘의 세 친구들에게 오히려 도움을 주었습니다. 묶고 있던 끈을 다 태워 버린 것입니다. 그 외에는 다니엘의 세 친구를 조금도 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실 때 우리가 당한 시련이 오히려 우리에게 도움이 됩니다. 우리를 해치는 것이 아닙니다.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불 밖에서 구한 것이 아니라, 불 가운데서 구하셨습니다. 물론 그 옛날 소돔 성에서 롯과 가족들을 구할 때 사람들의 눈을 얻기 위해서 달아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느부갓네살 임금과 거기 모인 사람들의 눈을 얻기 위해서 다니엘 세 친구를 도망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맑은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와서 비가 내림으로 인해서 극렬히 타는 풀무를 꺼지게 하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아니하시고 그대로 무서운 시련을 다니엘의 세 친구로 하여금 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도 불 가운데서도 다니엘의 세 친구와 함께 하시면서 저들을 지켜주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더 큰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하나님 살아 계심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시기 위해서 다니엘의 세 친구를 불 가운데서 구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 41:10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불 가운데서도 함께 하시며 홀로 두지 아니하시고 함께 하시면서 저들을 보살펴주신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시련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더욱더 분명하게 보여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극심한 시련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시험한다고 포항 종합 제철소의 뜨거운 용광로 속에 들어가라는 말이 아닙니다. 거기에 들어가면 그 다음날로 입관 예배 드려야 합니다.
기적이라는 것은 꼭 그것이 필요한 사람에게만 일어납니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일어나면 그것은 기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실 수도 있고 저렇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기적은 모든 사람에게 같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에게 일어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면 안됩니다.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참 놀라운 체험입니다. 뜨거운 풀무불 속을 자유롭게, 뜨거운 불을 즐기면서 왔다갔다합니다. 아마 세상 역사상 뜨거운 불 속에서 거닐었던 사람은 다니엘의 세 친구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신들의 아들과 같다고 했습니까? 누구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다니엘의 세 친구를 보호하기 위해서 보내신 사자입니다. 28절에 나옵니다.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가로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하나님이 다니엘의 세 친구를 보호하시기 위해서 보내신 천사입니다.
그 다음에 26절을 보시겠습니다. "느부갓네살이 극렬히 타는 풀무 아구 가까이 가서"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풀무는 극렬히 타고 있습니다. 가까이 가지 않으면 타는 소리 때문에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 임금이 극렬히 타는 풀무 아구 가까이 가서 불렀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느부갓네살 임금의 태도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전에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누가 어떤 신이 너희를 능히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서 건져내겠느냐?"고 하면서 자신만만했었는데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너희가 믿는 하나님은 과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시구나." 자기가 졌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은 다니엘의 세 친구가 믿는 신이 이 세 사람을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서 구해내지 못하도록 세 가지 조치를 취했었습니다. 평소보다 풀무불을 칠 배나 더 뜨겁게 했습니다. 강한 용사를 시켰습니다. 결박시켰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기의 강한 용사만 죽었습니다. 결박이 풀렸습니다. 또 뜨거운 풀무불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보내신 네번째 사람, 사자가 함께 하면서 자유롭게 거닐었습니다. 그러니 느부갓네살 임금은 자기가 패배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서 나온지라." 풀무가 우유 병처럼 생겼다고 했습니다. 네 사람이 거닐 정도면 풀무가 얼마나 큰 것인지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27절을 보세요. "방백과 수령과 도백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왕의 신하들이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에 대한 증인이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나왔을 때 네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습니다. 첫째로, "불이 능히 그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피부에 화상을 입은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피부가 깨끗합니다. 둘째로, "머리털도 그슬리지 아니하였고." 피부보다 더 빨리 타는 것이 머리카락입니다. 불에 들어가면 금방 타 버리는 것이 머리카락인데 머리털도 그슬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셋째로, "고의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입고 있던 옷도 연기에 그슬렸다든지 불에 탔다든지 하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넷째로,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 불에 타는 냄새가 얼마나 지독합니까? 담배를 태우는 사람을 보면 옷에 담배 냄새가 찌들어서 가까이 가면 담배 냄새가 납니다. 타는 냄새도 전혀 없었습니다.
27절 말씀 가운데 꼭 한 가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나와서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할렐루야! 너희들 다 봤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봤지?" 이렇게 말하였습니까? 전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침묵을 지켰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의 모습을 본받아야 합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의 신앙은 개울물처럼 시끄러운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깊은 물처럼 기적이 있기 전이나 기적이 있고 난 후나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어떤 상황에 의해서, 하나님이 무슨 은혜를 베풀어주시는가에 따라서 달라지는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런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감정에 따라서 좌우되고, 눈에 보이는 어떤 상황에 의해서 왔다갔다하는 신앙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변함없이, 기적을 보기 전이나 기적을 보고 나서나 그것에 좌우되지 않는 신앙이 진짜 신앙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의지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다니엘의 세 친구가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전혀 말이 없습니다. "내가 이런 기적을 체험했다. 내가 풀무불 안에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와 함께 유유히 다니는 것을 체험했다." 이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귀한 신앙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얕은 물과 같이 소리만 요란한 신앙이 아니라 깊은 물처럼 요동치 않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일편단심 하나님을 바라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늘 보살펴주시는 것처럼 우리도 상황에 따라서 변하는 신앙이 아니라 변함이 없는 깊은 신앙을 다 갖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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