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강 그리 아니하실지라도(3:16-18)
3:16-18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1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느부갓네살 임금은 다니엘의 세 친구를 죽이기가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다니엘의 세 친구들에게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라고 단호하게 자기들의 뜻을 표현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꿈을 꾸었을 때 불려왔던 갈대아 수사들은 시간을 천연하려고 했습니다. 시간을 끌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세 친구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지금 느부갓네살 임금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만든 금 신상 앞에서 절해라." 그러나 다니엘의 세 친구는 신앙이 분명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이외에는 이 세상에 그 어떠한 신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시간을 끌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다니엘의 세 친구가 무례하다든지, 교만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일편단심, 일사각오의 신앙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몸은 죽여도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불에 던져 넣는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그분을 다니엘의 세 친구는 두려워했습니다. 사람을 보면 하나님이 안 보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안 생깁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7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그럴 것이면."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 집어던질 것이면"이라는 말입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이 말은 느부갓네살 임금이 한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15절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라도 너희가 예비하였다가 언제든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그 다음에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
이렇게 질문한 것에 대해 다니엘의 세 친구가 대답한 것입니다.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에 대해서 조금도 의심치 않았습니다. 분명하고도 확고한 신앙이 있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그 옛날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하신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사 43:1∼3을 보시겠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이 말씀을 다니엘의 세 친구는 깊이 묵상하면서 용기를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비록 느부갓네살 임금이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로 던진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불 가운데서도 함께 하셔서 지켜주실 것이라는 분명한 믿음을 다니엘의 세 친구는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17절을 다시 한번 보십시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신앙입니까? 용기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더 아름다운 말씀, 더 귀한 말씀이 18절에 나옵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신앙입니다. "우리를 건져주셔도 좋고, 우리를 순교의 자리에 이르게 하셔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라는 믿음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믿음이 있어야 할 줄 압니다. "하나님, 제게 물질이 필요합니다. 제게 물질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이 극심한 환난 속에서도 믿음 잃지 않고 주님의 손 붙들고, 주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주옵소서." 이것이 바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입니다.
"하나님, 제게 건강이 필요합니다. 저의 병을 고쳐주시기 바랍니다. 그 옛날 히스기야의 병을 고쳐주시고 15년이나 생명을 연장해 주신 하나님, 저의 병도 고쳐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라도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겠습니다." 이것이 아름다운 신앙 아니겠습니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세 친구는 비록 순교하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사신 우상 앞에서는 절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다니엘의 세 친구는 풀무불 속에서 죽는 것으로 다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죽고 나서는 더 영화로운 하늘 나라에 가서 아름다운 금 면류관을 쓰고 주님과 더불어 영원토록 복락을 누릴 것이라는 내세의 소망,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잠시 뒤에 삼성의료원에서 사랑하는 박의령 성도의 발인 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어느 권사님의 말씀대로 국가적으로 보나 교회적으로 보나 막대한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피아노를 얼마나 잘 쳤습니까? 박사 과정에 있었는데 참 아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슬픔 가운데서도 위로를 얻는 것은 우리에게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잠시 뒤 영원한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소망이 있고, 구원의 역사를 알기 때문에 슬픈 가운데서도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비록 젊은 나이에 일찍 갔지만 그러나 괴로움 많고, 사고 많고, 고통 많은 이 세상에서 영원한 세계, 하나님의 영원한 품으로 간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가 위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언제나 살아도 좋고, 죽으면 더 좋고 하는 신앙으로 살아가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의 신앙이 바로 그런 신앙입니다.
"살아도 좋고 주를 위해서 죽어도 더 좋고!" 오늘 이러한 신앙이 저와 여러분의 신앙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1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느부갓네살 임금은 다니엘의 세 친구를 죽이기가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다니엘의 세 친구들에게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라고 단호하게 자기들의 뜻을 표현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꿈을 꾸었을 때 불려왔던 갈대아 수사들은 시간을 천연하려고 했습니다. 시간을 끌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세 친구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지금 느부갓네살 임금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만든 금 신상 앞에서 절해라." 그러나 다니엘의 세 친구는 신앙이 분명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이외에는 이 세상에 그 어떠한 신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시간을 끌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다니엘의 세 친구가 무례하다든지, 교만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일편단심, 일사각오의 신앙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몸은 죽여도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불에 던져 넣는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그분을 다니엘의 세 친구는 두려워했습니다. 사람을 보면 하나님이 안 보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안 생깁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7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그럴 것이면."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 집어던질 것이면"이라는 말입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이 말은 느부갓네살 임금이 한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15절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라도 너희가 예비하였다가 언제든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그 다음에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
이렇게 질문한 것에 대해 다니엘의 세 친구가 대답한 것입니다.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에 대해서 조금도 의심치 않았습니다. 분명하고도 확고한 신앙이 있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그 옛날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하신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사 43:1∼3을 보시겠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이 말씀을 다니엘의 세 친구는 깊이 묵상하면서 용기를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비록 느부갓네살 임금이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로 던진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불 가운데서도 함께 하셔서 지켜주실 것이라는 분명한 믿음을 다니엘의 세 친구는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17절을 다시 한번 보십시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신앙입니까? 용기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더 아름다운 말씀, 더 귀한 말씀이 18절에 나옵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신앙입니다. "우리를 건져주셔도 좋고, 우리를 순교의 자리에 이르게 하셔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라는 믿음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믿음이 있어야 할 줄 압니다. "하나님, 제게 물질이 필요합니다. 제게 물질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이 극심한 환난 속에서도 믿음 잃지 않고 주님의 손 붙들고, 주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주옵소서." 이것이 바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입니다.
"하나님, 제게 건강이 필요합니다. 저의 병을 고쳐주시기 바랍니다. 그 옛날 히스기야의 병을 고쳐주시고 15년이나 생명을 연장해 주신 하나님, 저의 병도 고쳐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라도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겠습니다." 이것이 아름다운 신앙 아니겠습니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세 친구는 비록 순교하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사신 우상 앞에서는 절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다니엘의 세 친구는 풀무불 속에서 죽는 것으로 다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죽고 나서는 더 영화로운 하늘 나라에 가서 아름다운 금 면류관을 쓰고 주님과 더불어 영원토록 복락을 누릴 것이라는 내세의 소망,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잠시 뒤에 삼성의료원에서 사랑하는 박의령 성도의 발인 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어느 권사님의 말씀대로 국가적으로 보나 교회적으로 보나 막대한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피아노를 얼마나 잘 쳤습니까? 박사 과정에 있었는데 참 아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슬픔 가운데서도 위로를 얻는 것은 우리에게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잠시 뒤 영원한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소망이 있고, 구원의 역사를 알기 때문에 슬픈 가운데서도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비록 젊은 나이에 일찍 갔지만 그러나 괴로움 많고, 사고 많고, 고통 많은 이 세상에서 영원한 세계, 하나님의 영원한 품으로 간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가 위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언제나 살아도 좋고, 죽으면 더 좋고 하는 신앙으로 살아가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의 신앙이 바로 그런 신앙입니다.
"살아도 좋고 주를 위해서 죽어도 더 좋고!" 오늘 이러한 신앙이 저와 여러분의 신앙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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