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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강) 말씀을 좇아간 아브라함! ② (창 12:1-9)

by 【고동엽】 2022. 4. 12.

(제23강)      말씀을 좇아간 아브라함! ② (창 12:1-9)

 

  베이컨은 말하기를 '인생에는 세 가지 종류의 인생이 있다'고 했습니다. '거미 같은 인간, 개미 같은 인간, 또 꿀벌과 같은 인생이 있다'고 했습니다.
  거미처럼 일생동안 남에게 해를 주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개미처럼 남에게 해도 유익도 주지 않고 오직 자기만 살면 그만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며, 꿀벌처럼 남에게 도움을 주고 유익을 주어가며 사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성도들은 꿀벌처럼 남에게 유익을 주고 자기를 만족한 삶을 살아야 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아브라함은 꿀벌처럼 살았던 사람입니다. ◀제목 소개!▶

 

  성도들에게는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다 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의 삶을 세상 사람들과 구별해서 신앙생활이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직 믿음으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있어서 믿음을 빼 버린다면 세상 사람과 생활현장에서 선명하게 구별할 수 있는 칼라가 없어지고 맙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을 가리켜 크리스천이라고 합니다. 크리스천이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그 사람의 머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그 사람의 마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 사랑의 입술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하시고, 그 사람의 손을 통해 예수가 남을 도울 때, 그 사람을 크리스천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소속은 하늘에 시민권을 주었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늘나라의 법칙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 법칙은 갈6장에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는 심고 거두는 법칙에 적용해야 합니다.
  심고 거두는 법칙은 생명과 축복과 이 땅에서의 승리의 법칙입니다. 우리에게 아무리 문전옥답이 있다 할지라도 그 밭에 씨를 심지 아니하면 아무것도 생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밭에 씨를 심어 놓으면 우리가 기대하는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자연법칙을 영적인 법칙과 동일합니다. 여러분 복 받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께 심으십시오, 부지런히 모이십시오, 믿음을 심으면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충성을 심으면 생명의 면류관이 기다립니다. 헌신을 심으면 부활의 축복이 있습니다. 물질을 심으면 물질의 축복이 30배 60배 100배로 넘칩니다. /할/아멘!/
  오늘 본문의 주인공 아브라함은 심고 거두는 법칙대로 복의 근원이 된 사람입니다. 지난 시간에 1-2절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른 각도에서 한번 다시 조명해 보겠습니다.

 

  ▶1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버리고 하나님이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명하십니다. 하나님이 지금 아브라함을 시험하고 계십니다. 당시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 살았는데 그 고향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갈대아 우르는 현 세상의 상징입니다. 세상에는 재산도 부모, 일가, 친척, 또 정다운 친구를 떼어버릴 수 없는 갖가지 인연들이 떠나는 것을 주저하도록 가로막는 장애물입니다.
  세상은 먹고 입고 잠자기에 넉넉한 호조건들이 손짓하면 유혹하는 곳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에 롯의 아내가 못내 못 잊어 뒤돌아보도록 강력하게 유혹한 것들입니다. 세상은 사람을 속삭이고, 정담을 나눌 수 있고, 단락한 인간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으며, 먹음직하고 보암직한 향락의 물결이 우리로 하여금 떠나라는 명령을 멈추게 만드는 요인들입니다.
  지금 아브라함은 인간적으로 가장 살기 좋은 그 고향을 떠나라고 명령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가장 큰 명령 중의 하나는 떠나라는 명령입니다.
  '죄에서 떠나라! 게으름에서, 세속에서, 나태함에서, 불 신앙과 불순종에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곳 실패의 자리에서도 떠나라는 것입니다.
  본문의 주인공 아브라함의 믿음은 갈대아 우르를 떠날 만큼 확실했습니다. 오랫동안 인습과 조상 대대의 기업을 버릴 만큼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 철저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났습니다. '갈대아'라고 하는 뜻은 '파괴 또는 멸망'이라는 뜻입니다. '우르'라는 뜻은 '화염, 혹은 불꽃'이라는 뜻입니다.
  지금 아브라함은 파괴의 불로 가득한 곳에서 살아왔던 자기 자신도 모르고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셨고, 그곳을 떠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순종과 믿음으로 고향을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길을 떠났습니다. 어떤 성인은 '시작하는 사람이 위대하다'고 했습니다. 시작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꿈과 이상이 있어야 하며, 결단과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시작하는 사람은 모험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 시작이 반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부터 기도를 시작합시다. 오늘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십시다. 다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위대한 일을 시작하는 사람만이 위대한 것입니다.
  믿음의 일은 위대합니다. 기도하면 능력이 오고 하늘 문이 열립니다. 봉사하면 내 마음이 기쁩니다. 전도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 위대한 일 중에 제일 큰일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시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
  2절은 믿음으로 심고 위대한 순종의 삶을 사는 자에게 축복이 임합니다.

 

  ▶2절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속담에 '어른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명심보감에 '순천자는 흠하고 역천자는 망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는 흥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자는 망한다는 말입니다. 말씀에 절대 순종하며 고향을 떠난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약속하고 계십니까?
  ①'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더 잘 아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은 우리들보다 더 잘 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정말 더 잘 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내게 필요한 것을 모를 때가 있습니다. 내 딴엔 이것만 있으면 행복하리라 싶은데 얻고 나면 오히려 더 허전해 집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잘 아시고 큰 민족을 주실 것을 약속합니다.
  ②'네게 복을 주어'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1:1로 만나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복주시기를 원하십니다.
  ③'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습니다. 안중근, 이순신, 성삼문, 그들은 오래 전에 사람들이지만 우리들의 정신적인 지주로 영원토록 남아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이름이 이 땅에서 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불리어지는 이름입니다.
  ④'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우리는 복이라고 하면 나 혼자 부자 되고, 나 혼자 잘 살고, 다른 사람은 실패하는데 나 혼자 성공하여 보아란 듯이 살아가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복은 그런 복이 아닙니다. 참 복이란 내가 많은 사람으로 복되게 하는 삶입니다. /아멘!/
  ▶복의 근원이 된 아브라함은 어떤 삶을 살았는가? 아브라함은 만민에게 도움을 주는 자였습니다. 그는 일생동안 만민에게 도움을 주는 자로 살았습니다.
  ⑴그는 물질적으로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신28:12절에 보면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고 성경대로 살아가면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⑵아브라함은 정신적으로도 남에게 도움을 주며 살았습니다. 날마다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는 말, 확신을 주는 말, 승리할 수 있고 축복 받을 말만 전해 주어서 남에게 정신적인 큰 용기와 힘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이런 사람이 됩시다.

 

  ▶3절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하나님이 '다 버리고 떠나라, 내가 너를 창대케 하리라'고 하셨지만 아브라함이 얼마든지 '아이쿠 그렇지만...'하고 머뭇거릴 가능성도 있습니다.
  재산 많은 사람이 원래 걱정이 더 많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그럴까봐 3절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한마디로 본문은 '주님께서 쓰시는 자를 축복하면 자기도 축복을 받으며 주님께서 존귀케 한자를 축복하면 자기도 축복을 받는 다는 원리'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또한 본문은 하나님과 아브라함과의 각별한 관계를 나타내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 언약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아멘!/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는 '감소시키다. 낫게 여기다.'는 뜻으로 남을 멸시하거나 하찮게 여기는 행위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하나님과 특별계약을 맺은 하나님의 종 아브라함을 멸시와 천대로 여기는 행위는 곧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행위가 된다는 뜻'입니다.
  ▶본문 10-20절에 보면 3절에 약속하신 그대로 시행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합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들어 왔는데 가는 날부터 가뭄 흉년이 들어 다시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자기 아내를 동생이라고 속여 바로가 취하려고 했으나 하나님께서 큰 재앙을 내려서 바로를 책망하자 바로가 쩔쩔매고 벌벌 떨었습니다. '아이고 이 여자를 건드렸다가는 큰 일 나겠구나!' 깨닫고 자기를 속인 아브라함을 책망했으나 저주는 하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부족하여 실수를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부족하지 않으셔서 바로 지켜주셨습니다. /아멘!/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이 말씀은 2절의 '복의 근원이 될지라'에 대한 보충 확대 설명입니다.
  오늘 여기서 나오는 복은 물질적인 복과 영적인 복이 아울러 주신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아브라함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구상의 모든 민족이 죄에 대하여 해결 받고 영생복락을 누릴 것이라는 예언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할/
  ▶여기서 2-3절을 다시 한번 정리해 봄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7가지 축복을 정리해 보고 우리도 이 복을 받는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⑴'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즉 자손의 축복입니다. ⑵'복을 주어' 물질의 축복입니다. ⑶'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명성, 명예의 축복입니다. ⑷'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복된 존재가 되는 축복입니다. ⑸'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내리고' 하나님이 내편이 되고 내가 하나님 편이 되는, 그러니까 하나님과 한편이 되는 축복입니다. ⑹'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하리니' 하나님께서 모든 저주를 막아주시고 또 보호하시는 축복입니다. ⑺'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복의 근원이 되는 축복입니다.
  갈3:14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과 축복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성취되도록 그가 길을 여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면, 하나님께서 우리편이 되시고, 내편이 되신다면, 우리는 결코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자 요셉은 가는 곳마다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는 보디발의 집에 팔려 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요셉을 축복하시니까 보디발의 집도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창39:5절에 "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고 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가는 곳마다 축복이 따라옵니다. 회사를 가면 그 회사가 잘 됩니다. 집안에 있으면 그 집이 잘 됩니다. 나라도 형통합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셔야 합니다. 이 복을 형통의 복이라고 합니다. /믿/
  복의 근원이 된다는 것은 내가 복을 받아서 다른 사람도 축복 받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나도 성공하고 당신도 성공하고, 나도 행복하고 당신도 행복합니다. 내 복을 타인에게,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그런 역사를 베푸는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기독교 국가는 많은 나라들을 도와줍니다. 기독교 회사도 많은 회사들을 도와줍니다. 우리 모두도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으면 많은 사람을 도와주고 전도하는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는 참 행복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4절부터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본향을 떠나 가나안으로 향하는 여정을 보여줍니다.

 

  ▶4절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여기서 중요한 말씀은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그러니까 '좇아갔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쫓아갔던 것이지 다른 것을 쫓아가지 않았습니다. 보이는 어떤 증거를 쫓아간 것이 아니고 오직 말씀을 쫓아갔으니 얼마나 귀한 신앙입니까? 롬4장에서 바울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바라볼 수 없는 중에도 바라보고 믿고 달려간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아브라함은 말씀을 행동의 절대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여러분! 축복 받는 비결은 말씀대로 행하는 믿음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32,500가지의 축복을 예비해 놓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복을 받으려면 먼저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시는 명령이 있습니다. 이 명령만 잘 지키면 축복은 받아 놓은 밥상입니다. /믿/
  '하나님을 경외하라! 율례와 법도를 지키라! 말씀을 읽으라! 기도하라! 전도하라! 충성하라! 감사하라!' 이런 말씀들은 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순종하면 오늘 이 시간에도 역사가 일어납니다. /믿/
  여러분! 해바라기는 어느 곳에 있든지 항상 태양을 향한다고 합니다. 성도의 참모습은 태양을 향하는 해바라기처럼 언제나 하나님을 향하는 모습이어야 합니다. 이것을 가리켜 신앙심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신앙심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확고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 약속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 성경 66권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자신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따라가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인간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항상 현실보다 미래를 생각했습니다. 자기 계획보다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택했습니다. 하나님 편에 서서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7가지의 기적적인 축복과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충남 부여에서 한 교회 장로님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을 간증했습니다. 그는 포도 농사를 지었는데 그 포도나무들 중에서 한 나무를 정해 놓고 '이 포도나무는 하나님 것입니다. 여기서 열리는 포도는 교회에 바쳐서 성찬식을 하겠습니다. 이 포도나무는 성찬식 하는 포도나무입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드릴 포도나무를 정해놓고 포도농사를 시작했는데 얼마나 포도농사가 잘 되는지 풍작일 뿐 아니라 질도 좋아서 포도농사로 아주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TV에 출연하게 되었고 일본에 연수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린다고 정해놓았던 그 포도나무 한 그루 때문에 온 포도원이 다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수박농사도 짓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교회 가기 전에 수박밭을 돌아보니 수박 꽃이 만발했습니다. 이럴 때 인공수정을 시켜야 하는데 교회는 가야 되겠고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집사 시절에 '나는 꼭 주일성수 하겠다'고 결심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장로가 되었으니 '성도들에게, 재직들에게 더욱 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게다가 주일 학생들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수박농사를 망친다 하더라도 먼저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내 사명을 감당하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수박은 하나님께 맡기고 교회로 갔습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부랴부랴 수박밭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수박밭에 웬 개미떼가 그렇게 많은지 사방이 다 개미떼였습니다. 동태를 가만히 살펴보니 개미가 수박 꽃에 붙어서 수정을 시켜주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할/
  하나님께 먼저 예배드렸더니 하나님께서 개미를 통해서 수정시켜주시고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하셨습니다. 수박농사, 포도농사가 모두 다 잘 되니 여기저기서 강의 요청이 오고, TV, 라디오에도 출연하고, 300개 교회에 다니면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간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믿어도 진짜로 믿으면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축복하십니다. /아멘!/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롯도 그와 함께 갔다고 합니다. 롯을 데리고 간 것은 불순종의 행위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했는데 아브라함은 인정상 조카 롯을 데리고 간 것입니다. 롯은 큰 형의 아들인데 그 형이 죽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롯은 아브라함이 키운 것입니다. 인정상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후에 아브라함이 롯 때문에 여러 번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75세, 이 나이를 인간적으로 볼 때 가망 없는 나이입니다. 결혼한지가 아마도 40년은 넘었을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아브라함은 아들 딸 하나 없는 무자식이었습니다.
  이런 가망 없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큰 민족을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 가망 없는 아브라함이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좇아갔더니 위대한 믿음에 조상이 되어진 것처럼 우리의 형편도 보십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가망이 없고 조건을 볼 때 아무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주님의 말씀만 붙들고 좇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좇아가면 하나님께서 그 모든 조건을 다 이기고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십니다. 홍해를 갈라서 길을 열어주시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고 길을 열어 주셨던 하나님이 우리의 가로막는 홍해 바다를 높은 여리고를 무너뜨려 줍니다. /할/ 그래서 주님은 '너의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크게 믿읍시다. 굳게 믿읍시다. 담대하게 믿읍시다! 그리하면 지금도 기적은 일어납니다. /아멘!/


  ▶여기서 보면 아브라함의 믿음은 3단계로 성숙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⑴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이 단계가 부르심의 단계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을 부르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아브라함의 극적인 삶의 전환은 하나님께서 부르셨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가 이 성전을 찾아 나온 것은 우리 인간의 힘으로 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날씨는 참 덥습니다, 가정에 할 일도 참 많습니다, 나를 기다리는 친구는 얼마나 많습니까? 참으로 분주합니다. 교회에 나올 수 없는 조건들과 사정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자리에 나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내 마음의 중심 속에서부터 나를 불러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멘!/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을 수 있는 영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모세는 호렙산의 불꽃사이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거꾸러져 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나 부르심의 단계가 있습니다.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할/
  ⑵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응답하는 단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실 때에 '하나님! 내가 여기 있습니다.' 하고 그 부르심에 응답해야 합니다.
  ⑶결단의 단계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자, 곧 하나님의 명령에 따르기로 결단하고, 그 부르심을 따라 순종했습니다. 그는 고향을 떠났습니다. 부르심을 따라 재산도 포기했습니다. 친구도 버렸습니다. 자기가 자라왔던 집을 떠났습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났습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는 떠났습니다. 이런 믿음이 그를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할/

 

  ▶5절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 갔더라"
  이렇게 간단하게 한 절로 되어 있지만 이 길은 굉장히 길고 험한 길입니다. 강을 건넜습니다. 성경은 강을 건넌다는 것은 의미가 큽니다. 요단강을 건너야 가나안이 있습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아브라함 때부터 히브리 민족이라고 했는데 한마디로 강을 건넜다는 말입니다. 잠깐 성경 속에 강을 건넌 인물들을 보겠습니다.
  ①본문은 아브라함이 맨 먼저 강을 건넜습니다. 본문 4절은 '말씀을 좇아 건넜다'고 합니다.
  ②그의 후손 야곱이 강을 건넜습니다. 어떻게 건넜습니까? 기도하며 떠났습니다. 창32장을 보면 밤중에 기도했고, 홀로 남아 기도했고, 간청하는 기도했고, 회개하는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기도의 응답을 받고 얍복강을 건너 형과 아름다운 재회를 했습니다.
  ③모세와 그의 백성이 강을 건넜습니다. 믿음으로 건넜습니다. 히11:29절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④여호수아와 그의 백성들로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제사장들이 법궤를 매고 건넜습니다.
  ⑤엘리야와 엘리사가 요단을 건넜습니다. 왕하2:8절 "엘리야가 겉옷을 취하여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육지 위로 건너더라" 엘리야는 엘리야의 영감을 갑절이나 받으려고 한사코 그를 따라 다녔을 때, 요단강을 건너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신앙은 모험이요, 결단이요, 꿈이요, 오래 참음입니다.
  ⑥베드로는 주님을 바라볼 때, 갈릴리 바다를 건넜습니다.
  ⑦우리는 죽음이란 강을 건너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게 됩니다. /믿/ 강을 건넜다는 것은 믿음이 없이는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현재의 삶 속에서도 수 없는 강을 건너야 합니다. 의심의 강, 실패와 낙심의 강, 불 신앙의 강을 건너야 믿음으로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에 붙잡히게 됩니다. /아멘!/할/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여러분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지켜 주셨기에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갈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 믿고 믿음으로 걸어가면 그 땅 위에 모든 축복이 우리를 따라 옵니다. 우리가 축복을 따라다니면 그 축복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가면 하나님이 도우면서 모든 부귀영화와 우리를 따라옵니다. /믿/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순종하기만 하면 반드시 '마침내' 닿게 되는 땅이 있도록 해 주십니다. /아멘!/ 영육간에 승리하게 해 주십니다.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고백하게 해 주십니다. /할/
  여기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는 것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았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마침내' 도착했습니다. 우리도 '마침내'의 은혜가 올 줄 믿습니다. 거기까지 '언제 어떻게 가나'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 길은 힘든 길이기는 하지만 주님의 인도를 따라 걸어가기만 하면 '마침내' 약속의 땅에 도착하는 날이 분명히 옵니다. /아멘!/

 

  ▶6절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을 통과하여' '통과한다'는 말은 '순례한다'는 말로써 그 땅을 죽 지나서 '살펴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살펴보았습니까?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한 약속의 땅이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나옵니다만 '네가 밟는 땅을 내가 네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냥 '하나님! 구경해 보니 좋습니다. 가겠습니다.'가 아니라 그 땅을 지나오면서 쭉 살펴보았다고 합니다. '아 이 땅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려는 구나!'하며 감탄하며 보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에만 머물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구석구석 다 살펴보면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 안에 우리에게 주시는 복이 너무나 많습니다. 성경은 한 절, 한 절 연구하는 것보다 전체적으로 연구해야 오류를 범하지 않습니다.
  다시 한 번 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무슨 말입니까? 한마디로 자기 땅은 하나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 땅에 가보니 땅 주인이 모두 있더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을 다 주시겠다고 해서 가보니 주인이 전부 있더란 말입니다.
  얼마나 실망이 큽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믿음으로 보았습니다. '지금은 이 땅에 전부 주인이 있으나 앞으로 이 땅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언젠가 실상이 되어 내게로 돌아옵니다. /믿/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지금은 다 주인이 있지만 자기 것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믿음은 '계란을 바라보고 그 속에서 병아리를 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여러분 환경을 보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조건을 보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내 환경은 안 돼, 내 병은 중한 병이야, 낙심은 신앙의 금물입니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들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할/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여기 '모레'라는 지명까지 구체적으로 밝힌 것은 '모레'라는 말에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모레'라는 말은 '가르치다. 혹은 베풀다. 알게 하다'는 말의 어원을 가진 말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이 말은 무당이나 점쟁이나 이방종교의 제사장과 관계되어서 쓰였습니다. 그리고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가 있는 곳이었다고 했는데 성경에 보면 상수리나무는 신을 섬기는 것과 관련이 있는 나무입니다(사1:29/호4:13) 그러니까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렀다는 말은 '세겜 땅의 이방신전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는 말입니다.

 

  ▶7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 곳에 단을 쌓고"
  가나안 사람들이 모두 집 짓고 살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하십니다. 즉 이런 의미입니다. '아브라함아 내가 지금 보니 가나안 사람이 살고 있다고 하여 마음이 자꾸 동요가 되느냐? 염려 말아라. 이 땅을 내 자손에게 주리라' 이런 약속입니다.
  만약에 아브라함이 와서 보니 주인도 없고 기름진 땅만 있고, 포도나무와 올리브 나무만 있었다고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 정말 멋있다. 주인 없는 땅이 이렇게 많아.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더니 수지 맞추라고 그러셨구나! 아멘 할렐루야' 했을 텐데 가보니 그와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해서 왔더니 주인이 다 있네, 내가 차지할 것은 없구나!' 이렇게 실망할 때, 하나님이 오셔서 '이 땅을 주리라'고 다시 한번 다짐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실망할 때 다시 오셔서 다시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고후1:20절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아멘!/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이 말씀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내가 믿나이다.' 아멘으로 화답하는 행위입니다.
  여기서 '단을 쌓는다'는 것은 히브리 언어 상 '죽음의 장소, 희생의 장소'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죽음의 장소에서 희생의 단을 쌓았더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려고 했는데 왜 죽음에 장소를 팠겠습니까?
  다른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 저는 죽습니다. 내 고집, 내 생각, 방법, 수단 이런 모든 것을 다 물어 버립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겠나이다.' 이런 의미입니다. /믿/아멘!/

 

  ▶8-9절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6절에서는 모레 상수리나무가 있는데서 단을 쌓더니 이젠 벧엘 동쪽에다 옮겼습니다. 한마디로 장소를 옮길 때마다 단을 쌓습니다. 예배중심, 성전중심의 생활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은 받듯이 예배를 통해서 얻어집니다. 순종할 때 그 순종을 모아 두었다가 예배드릴 때에 하나님이 부어주십니다. /믿/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여기서 단을 쌓는 것은 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드리는 것을 의미하며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찬송과 기도가 있는 공적인 예배를 뜻합니다.
  성경학자들은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들어온 후부터 모든 식물들을 모아놓고 공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여러분 그곳이 어떤 곳입니까? 우상의 도성입니다. 우상이 가득한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원주민들로부터 많은 핍박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담대히 부르면서 신앙을 지켰으므로 큰 능력으로 보호해 주셨고, 큰복을 내려주셨습니다. /할/
  여러분! 아브라함처럼 결단 있는 신앙을 가지십시오, 떠나라고 하면 떠나십시오, 바리라고 하면 버리십시오, 가는 곳마다 예배 중심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그 축복을 우리에게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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