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제22강) 아브라함의 순종!① (창 12:1-2)

by 【고동엽】 2022. 4. 12.

(제22강)     아브라함의 순종!① (창 12:1-2)

 

  옛날 황해도 재령에 있는 동부 교회에 정찬유라고 하는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모든 사람에게서 존경받는 훌륭한 장로님이셨습니다. 본시 그는 학교 앞에서 작은 문방구점을 경영하면서 어렵게 살았습니다. 가난하게 살다 보니까 그는 하나님께 드려야 할 십일조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말씀을 듣는 가운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 내가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십일조를 떼먹고 드리지 않는다고 해서 내 형편이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래도 배가 고프고, 저래도 배가 고프다면 차라리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고 배가 고픈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그때부터 그는 아예 굶을 각오를 하고서 십일조 생활을 철저하게 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차츰차츰 그의 형편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이 그에게 물질의 복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느 정도 자금이 모였을 때, 그동안 하던 문방구점을 문을 닫고서 그 대신 건축자재 상회를 열었습니다.
  때마침 건축 붐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앞을 다투어서 자기가 살던 집을 신식으로 고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바람에 그는 떼돈을 벌었습니다. 건축자재가 없어서 못 팔정도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황해도에서 몇째 가는 큰 갑부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자기가 사는 허름한 집도 현대식으로 고쳐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집 마당에 건축자재들을 잔뜩 쌓아놓았습니다. 그는 흐뭇한 심정으로 건축자재를 바라보던 순간 불현듯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던가? 그런데 하나님의 성전은 허름한 채로 내버려두고서 내가 내 집만 새롭게 고친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닌가?'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성전을 새로 짓기 전에는 자기의 집을 절대로 고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는 즉시 그동안에 모아놓았던 모든 돈을 교회 건축헌금으로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 당시 돈으로 3만 환이었습니다.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30억에 이르는 많은 돈이었습니다.
  교회는 그 돈으로 새로운 교회부지 3만평을 산기슭에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현대식 건물로 예배당을 아름답게 지었습니다. 교인들은 그의 귀한 뜻을 기르기 위해서 예배당의 머릿돌에 이렇게 적어놓았습니다.
  '정찬유 장로 기념 예배당' 그런데 웬일인지 갑자기 정 장로님의 모습이 교회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는 그 교회에 다니지 않고, 멀리 떨어진 다른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목사님과 성도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부랴부랴 목사님과 교인들은 그의 집을 찾았습니다. 그리고는 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니 장로님, 왜 본 교회를 두시고 일부러 다른 교회에 출석하십니까? 무슨 섭섭한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동부 교회에 출석한 것은 그 교회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교회의 주인이 바뀌어서 정찬유 장로가 지은 정찬유 개인의 교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더 이상 사람이 주인으로 앉아있는 교회에는 다닐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그저 조용히 돌아가 주십시오."
  그제야 목사님과 성도들은 그의 깊은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즉시 예배당의 머릿돌에 있는 '정찬유 장로 기념 예배당'이라는 글씨를 깨끗이 지워버렸습니다. 그때서야 그는 예전처럼 본 교회 출석을 하면서 더욱 충성을 다했다고 합니다.
  정말 그분은 훌륭한 사람이요,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인간적인 의를 자랑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기를 원했던 사람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은 지금도 역사 하십니다. /할/ 오늘은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의 이야기입니다. ◀제목소개!▶

 

  어느 주석학자는 창12장부터 창세기의 본론으로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아브라함을 불러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지금으로부터 4000년 전 사람이지만, 그의 믿음이 너무 훌륭하기 때문에 아직도 우리 모든 신앙 인들에게는 가장 모범이 되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인들 중에 신앙생활을 얼마 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예수님 다음으로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에 대하여 많이 들게 됩니다. 그만큼 아브라함은 위대한 신앙의 사람입니다. 그가 나이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가나안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왜 하나님이 그를 불러 고향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라고 했는가? 그가 살던 곳은 우상이 다스리는 곳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가나안으로 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는 그곳에서 복의 근원이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흔히들 아브라함을 가르쳐서 히브리 민족의 조상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부터 시작하여 히브리 민족이란 말이 나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히브리인이란 말은 '건너온 자'입니다. 아브라함이 원래 살고 있던 고향은 갈대아 우르 지방입니다. 현재 위치는 이락 중부지방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그곳에는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이 흐르는 메소포타미아 평아 중심지에 아브라함의 고향 갈대아 우르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왔기 때문에 그때 가나안에 살던 사람들이 아브라함을 보고 '저 사람은 강 건너 온 사람'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이 유래가 되어 '히브리 사람'이란 이름이 생긴 것입니다.
  11장까지는 인류의 뻗어 가는 역사를 기록했고, 이제 본 12장부터는 히브리 민족의 역사로 옮겨갑니다. 히브리 민족의 뿌리와 역사는 구원의 계통의 뿌리요 역사이기에 히브리 민족사는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그만큼 소중한 것입니다.
  바울은 롬4:11절에서 '아브라함을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라고 말했습니다. 신약 성경의 첫 장은 아브라함과 더불어 시작이 됩니다. 마1:1절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바울사도는 갈3:16절에서 오늘을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아브라함의 영적인 후손이며 또한 아브라함이 받았던 복이 우리의 복이 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말할 때, 성경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해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붙여진 많은 별명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영광스러운 별명은 '하나님의 벗, 하나님의 친구'라는 별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구약성경에서만 아브라함을 귀하게 취급한 것이 아닙니다. 신약성경에서도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이 무려 74번이나 걸쳐 언급했습니다. 확실히 아브라함은 믿음의 본보기가 된 사람입니다. 본문의 시작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며 시작했습니다.

 

  ▶1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이 먼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계속해서 당신의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아브라함은 나중에 하나님께서 바꿔줄 이름이고 원래는 '아브람'입니다.
  아브람은 '위대한 아버지'란 뜻으로 굉장히 거창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비, 많은 사람의 아버지'란 뜻입니다. 우리가 육신 적으로 본다면 아브람의 이름의 뜻이 더 거창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위대하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개인적으로 위대한 것보다 영적으로 믿음의 근원으로, 믿음의 뿌리'로 아브라함을 세우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여기 '여호와께서'란 말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의역하면 '약속의 하나님!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약속의 하나님이란 말씀을 할 때는 반드시 사랑의 하나님을 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대로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셔서 인류의 죄를 속량하시려고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셨습니다.
  이 사건의 요약이 바로 그 유명한 요3: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할/ 우리가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의 사랑을 덧입었습니다. 이 사랑을 우리도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아멘!/
  ▶미국 보스턴에 있는 한 정신병원에 불쌍한 소녀가 수용돼 있었습니다. 이 소녀는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외롭게 지냈습니다. '회복불능'이라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소녀에게 한 나이 많은 간호사가 매일 과자를 들고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얘,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너는 결코 외톨이가 아니야 내가 있잖니?' 그렇게 6개월 동안 한결같이 찾아와서 소녀를 위로하고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그러자 소녀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면서 밝은 웃음을 되찾고 정상이 되었습니다.
  간호사의 사랑으로 회복이 된 이 소녀는 자신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베풀기 원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신문에서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어린 소녀를 돌볼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어린 소녀의 스승이 되어 그를 훌륭한 인물로 만들었습니다.
  이 어린 소녀의 이름은 '헬렌 켈러'이고 그의 스승이 되었던 소녀의 이름은 바로 '앤 설리번'입니다. 후에 사람들이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훌륭한 일을 해 낼 수 있었습니까?'라고 묻자, 설리번 선생은 '나도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사랑을 줄 수 있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이 은혜를 주고, 사랑 받은 사람이 사랑을 주고, 축복 받은 사람이 축복을 주는 것입니다. /믿/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야 합니다. 사랑을 받았습니까?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축복을 받았습니까? 축복을 전해야 합니다. /아멘!/
  우리 주변에는 마음에 상처를 받고 고통 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 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전해서 영혼을 구원해야 합니다. 여러분도 복음을 전파하여 하나님 나라 확장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할/
  또한 여기 '여호와께서'란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부르심으로서 '은혜의 선택'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나님! 나를 불러주소서!' 이래서 불러주신 것이 아니고, 또 아브라함의 아비 데라가 '우리 아들을 불러주소서'했기 때문에 불러주신 것도 아닙니다.
  수24:2절에 보면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섬긴 자입니다. 당시 갈대아 우르에는 우상을 많이 섬겼는데 학설에 의하면 데라는 일월신상을 깎아서 만들어 파는 우상 조각가였다고 합니다.
  이런 우상을 섬기는 아버지 밑에 있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일반적으로 선택해주셨습니다. 우리 집안도 할아버지 때부터 원불교를 믿는 우상의 집안인데 하나님께서 저를 일반적으로 선택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의 선택'입니다. /할/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오셔서 말씀을 듣게 된 것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초청이요, 부르심이 특별히 있었기에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믿/


  오늘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소명'이라고 합니다. 본문에 보면 '여러 사람에게 이르시되'가 아니고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은 개인적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구원과 생명과 하나님의 축복은 언제나 개인적입니다. 아버지의 믿음으로 자식이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아내의 믿음으로 남편이 구원받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철저하게 1:1의 관계입니다. 그렇습니다. 본문은 아브라함이 부름을 받은 '소명'장입니다. 소명을 받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두 가지의 명령을 내리십니다. '떠나라'는 것과 '가라'는 것입니다. 이 명령은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내려진 명령입니다.

 

  ①'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명령하십니다.
  첫 번째 부르심의 명령은 '떠나는 생활'입니다.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고향을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버릴 것을 명령하십니다. 성경은 역설적입니다. 버리지 않는 자는 취할 수도, 얻을 수도 없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해 먼저 버릴 것을 요구하십니다.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이 말씀 속에 몇 가지 뜻이 있습니다.
  ⑴옛 생활을 청산하라는 뜻입니다. 
롬12: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또 엡4:22-24절에서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할/ 그러니까 '옛 생활을 버려라'고 하십니다. '죄를 버려라'고 하십니다. 즉 '회개하라'는 말씀이고 결심, 결단하여 지키라는 것입니다. /믿/
  ⑵우상숭배에서 떠나라는 뜻입니다.
  ⑶자기중심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모든 것을 끊으라는 뜻(눅14:26)입니다.
  ⑷육신의 생각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롬8:6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우리는 이래봬도 하늘나라 시민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천국 시민의 법도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믿/ 그래서 우리는 육신대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아멘!/
  ⑸이기적인 생활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삶 속에 커다란 희열이 있습니다. ▶외나무다리에서 개 두 마리가 만났습니다. 개들은 서로 먼저 가겠다고 으르렁대면서 싸우다가 그만 둘 다 물어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양 두 마리가 역시 다리 위해서 만났는데 양들은 개들과는 달리 서로 인사를 나누고 한 마리가 엎드려주니 등을 타고 넘어가서 둘 다 무사히 건넜다는 이솝의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대접을 받고 섬김을 받으려 하시지 않고 오히려 많은 사람을 섬기며 목숨을 버려 남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는 희생이 있었기에 만민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⑹본토도 버리라고 합니다. 사실 버린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굉장한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장 믿음직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토지, 친척, 아비'입니다. 땅이 얼마나 믿음직스럽습니까? 얼마나 많은 돈 다발을 안겨줍니까? 그런 땅을 버리고 본토를 떠나라고 합니다.
  지금 아브라함은 전라도에서 강원도로 옮기라는 것이 아닙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민을 가는 것입니다. 낯설고, 물설고, 풍속과 언어와 습관이 다른 곳으로 가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당시 갈대아 우르는 굉장히 문명문화가 발달한 곳이랍니다. 지금부터 4000년 전인데도 고고학의 재료에 의하면 학교가 세워졌고, 대중목욕탕이 있었고, 도서관이 있었습니다. 이런 문명이 발달한 고향 본토를 떠나라고 하니 참으로 결단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인간적으로 의지하고 마음먹고 살아있는 그곳을 떠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가 이 땅에서 의지하고 있는 것들을 한 번씩 흔들어 보십니다. 돈을 특별히 의지하고, 돈 때문에 신앙이 자라지 못하는 사람에겐 돈을 잠깐 흔들어서 돈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서 깨닫도록 하는 은혜를 주십니다.
  본토는 자기중심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중심, 자기의 본바탕을 전부 끊으라고 하십니다. 자기의 본바탕을 전부 쏟아버리고 그곳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차곡차곡 채우시기를 바랍니다. /할/
  ⑺본토뿐만 아니라 친척집까지 떠나라고 하십니다.
  살아가는 데는 돈도 중요하지만 인간관계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람은 외로워서는 못삽니다. 미국에 이민을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은 고생해서 돈은 벌겠지만 그들의 가장 큰 병은 고독,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 병, 외로움이 가장 크다고 합니다.
  감방에서 가장 큰 형벌은 독방에 넣는 것이랍니다. 오늘 친척을 떠나라고 한 것은 인정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인정에 얽매이고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야! 낚시 가자, 산에 가자, 동창회 가자, 향우회 가자'는 소리가 많습니다. 그런데 성도는 그런 인정을 따라 가다보면 신앙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인정을 끊을 때는 인정 사정없이 과감히 끊어야 합니다. /아멘!/
  ⑻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십니다. 그 당시 그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섬겼으므로 우상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또 아비 집을 떠나라는 것은 세상 전통과 풍속, 습관 그리고 의지하고 살던 모든 것을 떠나라는 뜻입니다.
  주님을 따라가는데 방해되는 세상의 권세와 명예, 돈, 인기, 영광을 떠나야만 생명의 길을 걸을 수가 있습니다. 보이는 우상만이 우상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이 우상일 수도 있습니다. 우상은 어떤 형태만이 아닙니다. 성경 속에 우상의 개념은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고 빠지는 것을 다 우상으로 봅니다.
  마19장 예수님을 찾던 젊은 부자는 하나님보다 더 재물을 사랑했기에 생명의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오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친척이고, 친구고 담을 쌓고 끊고 살아야 하느냐?'는 오해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이 떠나라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하면 너희가 만약 그런 것을 '본토, 친척, 아비'를 의지하고 있다면 그 의지하는 마음을 끊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무슨 일이 있으면, '땅이 있으니 괜찮다, 우리 삼촌이 청와대 비서관인데' 이런 생각을 가지면 하나님께 기도하기는커녕 '땅이 있으니 든든하다 배경이 있으니 큰소리치는 놈 나와 보라고 해' 이렇게 되어 버립니다.
  떠나라는 것은 한마디로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이해가 되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안기부가 못하는 것, 대통령이 못하는 것, 이 믿음 안에서 새롭게 이루어집니다.
  ▶저는 성북교회 이태희목사님의 간증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 목사님의 아버지는 장로님, 어머니는 권사님이십니다. 안성에서 중학교를 다녔는데 중학교 일 학년 때부터 잭 라이프로 사람을 찔러 불광동에 있는 소년원에 들어갔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과 거리가 먼 생활을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치는데 다섯 군데를 다니면서 겨우 졸업장을 받았고, 영등포 역전에서 깡패 생활로 형무소를 다니며 별을 몇 개를 달았다고 합니다.
  한번은 자기 부하가 그 당시에 방첩 대에 끌려가서 죽도록 맞고 온 것을 복수한다고 겁도 없이 방첩 대를 찾아가서 큰소리 쳤는데 선임하사가 권총을 빼들고 위협하더랍니다. 이태희가 이단 옆차기로 넘어뜨리고 권총을 빼앗아 엉겁결에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선임하사는 쓰러지고 그대로 달아나 대마도로 도망하여 그곳에서도 7개월 동안 있다가 다시 서울에 왔는데 다행히 선임하사가 죽지는 않아서 자수해서 몇 년을 살고 왔다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6,25때 교회를 지키다가 공산당에게 순교를 당한 그런 순교자의 집안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못된 짓을 했으면 그의 형제 8남매 중 7남매가 모여 이태희를 독살해 버리자고 가족회의를 열었다고 합니다. 그때 어머니 권사님이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한시도 잊지 않고 이태희를 사람 만들어서 하나님의 종으로 써 달라고 눈물로 기도했다고 합니다.
  결국 한얼산 기도원에서 깡패 목사 이천석목사님께 깨어져서 지금은 큰 교회를 이끌고 있으며 한국과 온 세계를 다니며 부흥사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그의 어머니의 눈물어린 기도와 하나님을 의지했던 그 뜨거운 믿음이 자식을 어둠에서 건져내 하나님의 종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할/


  ②'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첫 번째 명령은 현재 환경에서 일어나 떠나라는 것이고 두 번째 명령은 하나님이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여기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것은 성별 된 새 이스라엘을 건립할 가나안 땅으로 가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위대한 신앙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 배경을 바울은 히11:8절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이 말씀을 대할 때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얼마나 믿음과 순종의 사람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떠나라고 하니까 다 버리고 떠났습니다. 또 약속의 땅으로 가라 하니까 그 땅에 대한 사전 지식도 없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같다는 사실에 순종하는 믿음을 봅니다.
  여러분 신앙 안에서 복 받는 첫째 비결이 순종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 인들이 다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지금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세인데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평생 자기의 생각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기 때문에 축복의 근원이 되어졌습니다.
  여러분이여! 앞에 뚜렷한 목표가 보이지 않아도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도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도 귀에 들리는 것이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 내가 믿나이다. 이런 신앙만 있다면 산이 옮겨집니다. 홍해가 갈라지고 여리고 성이 무너지며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믿/아멘!/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면 기적이 생깁니다. 여리고 성도 지시대로 순종했더니 무너졌습니다. 나아만도 지시대로 순종했더니 문둥병이 나았습니다.
  날 때부터 눈먼 소경을 보고 제자들을 예수님에게 그것이 부모의 죄냐 자신의 죄냐 묻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부모의 죄도, 자신의 죄도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하시고 그를 불러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을 발라주고 저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소경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했을 때 두 눈이 번쩍 떴다고 요한복음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신앙은 모험입니다. 모험이 없으면 축복도 없습니다. 떠나라고 할 때 떠나시기 바랍니다. 죄에서 불의에서, 불 신앙에서 불순종에서 떠나시기 바랍니다. /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일평생 걸어갔습니다. 그의 아들, 이삭도 그의 손자 야곱도 가나안으로 갔습니다. 요셉은 죽은 유골이라도 가기를 원했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발걸음이 가나안을 향해 가는 발걸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향해 달려가는 발걸음이 되어야 합니다. /할/
  ▶하나님의 말씀대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버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어떤 복을 주셨습니까? 2절을 보면 세 가지 복이 임했습니다.

 

  ▶2절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①'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아마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이 말씀을 주셨으면 한마디로 '웃기네!'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세, 그 아내 사라는 65세에 자식하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늙은이들에게 큰 민족을 이룬다니 누가 곧이듣고 믿겠습니까?
  현대인들은 감각적으로 믿습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 보고, 입으로 맛을 보고, 코로 냄새를 맡아보고 느낍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무조건 믿었습니다. 생명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오,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인격적인 사고방식과 어떤 계산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하지마는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음을 아브라함은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100세 때 이삭을 허락하시고 아브라함의 후손이 영적으로, 육적으로 큰 민족을 이루어 나갔습니다.
  여러분! 유대민족이 얼마나 강하고 얼마나 큰 민족인가를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잘 압니다. 유대민족이 1948년 이스라엘 나라를 재건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정말 기적 중에 기적입니다. 2천년 동안 나라 없는 백성이었습니다. 그것은 나라는 없을지라도 그 민족들이 이스라엘 땅에 함께 모여 살고 있었더라면 괜찮을 것이지만 그들은 이스라엘 땅에 살지 못하고 그 땅을 아랍 사람들에게 빼앗겨 버리고 세계 방방곡곡으로 뿔뿔이 흩어져서 2천년 동안 방황하며 살아온 백성입니다.
  나라 없이 국토라는 땅덩어리도 없이 남의 나라에서 이리 저리 흩어져서 살아온 민족들입니다. 그것도 수난을 숱하게 받았습니다. 로마시대는 유대인 200만 명이 학살당한 기록이 있고, 제 2 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의 히틀러에 의하여 600만이 넘는 유대인들이 학살당했습니다. 그렇게 비참한 박해를 받아가면서도 2천년동안 나라 없이 돌아다니던 그들이 팔레스타인 땅에 한나라를 다시 건설할 수 있었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역사의 기록을 보면 세계 제1차 대전을 독일과 터키, 연합군대에 대한 영국과의 전쟁이었습니다. 한참 전쟁이 치열할 때, 영국은 화약이 떨어져 곤경에 빠졌습니다. 그때는 수지에서 화약을 뽑아냈을 때입니다.
  그럴 때 영국 맨체스터 대학에 화학교수인 '와이만치' 박사가 화학적으로 화약을 만드는 법을 발명했습니다. 그 결과 영국을 화약을 대량생산 압도적인 화력으로 독일과 터키 연합군을 격파하고 터키가 점령하고 있던 팔레스틴을 점령했습니다.
  영국은 1차 대전 승전국으로 의기양양했습니다. 영국의 왕실은 전쟁의 일등 공로자인 와이만치 박사를 불러 '경이 위대한 전적을 남겨 포상하려고 하는데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와이만치 박사는 '나는 유대인입니다. 그러므로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이 들어가 발붙일 곳을 주십시오.'
  그러자 영국의 정부는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1917년 11월 2일 발포 외상을 통해 유대민족이 팔레스타인 귀환을 허락한다는 선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감격에 눈물을 흘리며 팔레스타인으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1930년 독일 나치정권의 유대인 박해로 600만이 학살되자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도망쳐서 팔레스타인은 유대인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팔레스타인의 아랍민족과 유대 민족 간에 끊임없는 갈등과 투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영국은 이 때문에 골머리로 앓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1947년 영국 총독부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UN에 상정했고, 유엔은 팔레스타인 분할 안에 동의하여 이스라엘과 아람 민족 간에 지역을 나누어주게 된 것입니다. 이 결과 나라를 잃고 2천여 년을 세계에 흩어져 살던 이스라엘민족은 1948. 5. 15 독립을 선포한 독립국가로 출범했습니다.
  여러분! '왜 이스라엘 나라의 독립이 중요 하느냐?'하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어 주신 것을 약속한 것을 이스라엘의 독립을 통해서 곧 주님 재림의 때가 결정되어서 영원한 영적인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이 곧 도래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보십시오! 마24:32-33절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독립을 못함으로 죽을 것만 같았던 이스라엘 그 무화과가 1948년 5월 15일에 와이만치 박사를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해서 독립국가로 나섬으로서 다시 잎사귀를 내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독립한 후 아람은 총 단결해서 이스라엘을 없애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의 섭리로 이스라엘을 세우셨기 때문에,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민족이기에 아랍진영이 총공격을 해도 이스라엘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1948년 5월 14일부터 11월 6일까지 여섯 달 동안 일억의 아랍과 300만 이스라엘과 전쟁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아랍이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 1956년 10월 29일부터 11월 2일까지 이집트가 수에즈운하의 국유화를 단행하자 이스라엘이 시나이 반도를 공격했습니다.
  다시 이집트가 참패하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에 이스라엘은 1967년 6월 5일부터 10일까지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연합군과 유명한 6일 전쟁을 치러 승리했고, 이 전쟁의 승리로 골란 공원을 차지했고, 예루살렘 옛 성지를 완전히 회복했습니다.
  이후 이스라엘은 1973년 10월 6일부터 20일까지 이집트 연합군과 또 전쟁을 했습니다. 이 전쟁은 유명한 10일 전쟁입니다.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이 취임하자 곧 일으킨 이 전쟁도 이스라엘의 승리로 돌아갔습니다.
  이스라엘의 승리는 전쟁사적으로 보면 기적입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이 곳곳마다 이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이 직접 싸워 주셔서 이겨줍니다. /믿/
  오늘 이스라엘의 역사를 자세하게 말씀드린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확증한 것도 되지만 때가 심히 가깝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②'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 이 말씀 앞에 '네게 복을 주어'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창22:18절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아브라함에게 내린 이 복이 우리에게도 내려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여러분! 우리는 이래봬도 시시한 어머니, 아버지가 아닙니다. 복을 물려주는 부모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꼭 들게 신앙생활해서 후손에 축복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아멘!/
  ③'복에 근원이 될지라' 여기 근원이란 말은 '샘터, 샘 줄기'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샘물이 쏟아 나서 많은 사람들에게 마시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그 후손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셨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받아야 합니다. 요셉도 가는 곳마다 복을 받았습니다. 보디발 집에서도, 감옥에서도, 결국은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애굽을 다스릴 때 애굽이 복을 받았습니다. /믿/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