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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강) 바울의 설교!① (행 13:13-24)

by 【고동엽】 2022. 3. 10.

(제38강) 바울의 설교!① (행 13:13-24)

 

지난 시간에 우리는 안디옥교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선교사를 파송한 사건을 배웠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파송했는데 안디옥교회는 금식기도하고 안수해서 선교사를 파송하면서 모든 경비를 부담하였습니다.
먼저 그들이 선교지로 잡은 곳은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섬이었습니다. 구브로 섬 구석구석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다가 '바보'섬에서 그곳 총독인 서기오 바울을 개종시켜 그 섬을 복음으로 장악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사울이 바울로 개종해서 본격적인 선교활동을 개시합니다.
이 바울의 선교영향으로 소아시아를 변화시키고, 영국을 변화시키고, 바다 건너 미국을 변화시키고 다시 바다를 건너 한국을 변화시켰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처음에는 이 선교의 물결이 초라하고 잔잔한 물결이었지만 이 물결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승리의 물결로 바뀌었습니다.
종횡무진으로 유럽의 들판을 달려온 나폴레옹도, 인류사에서 가장 광활한 영토를 다스렸던 징기스칸도 결국은 다 패배자로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맨주먹으로 세상을 향해 복음의 물결을 일으킨 바울의 선교역사는 온 지구촌을 복음의 물결로 휩쓸어 놓았습니다.
본문은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파송된 선교사 바울과 바나바는 키프로스 섬에서 배를 타고 다시 육지로 올라와서 지금의 터키 지방인 비시디아 안디옥교회에서 선교활동을 폈습니다.
성경에는 안디옥이 두 군데가 나옵니다. 한 군데는 선교사를 파송한 안디옥교회가 있는 안디옥 지방인데, 이 안디옥을 수리아 안디옥이라고 하고, 본문에 나오는 안디옥은 비시디아 지방에 속한 안디옥입니다.
이곳은 지형이 험한 산악지대로서 군사의 요충지였고, 상업상 중요한 위치에 있는 도시였습니다. 바울은 이곳을 뒤에 세 번이나 지나갔으며 고후11:26-27절에 바울이 당한 수난이 이곳에서 당한 것으로 학자들은 추측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곳에서 회당을 돌아다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강조하였으며 선교의 주제는 '오직 예수'입니다. 사도행전 속에는 베드로의 유명한 설교와 바울의 유명한 설교와 스데반의 유명한 설교와 야고보의 유명한 설교 등 총 24편의 설교가 들어있는데 오늘 본문은 바로 사도바울의 1차 선교여행 중 행하였던 첫 번째 설교가 됩니다. ◀제목소개!▶

 

먼저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선교(전도)에 대하여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①전도는 특별한 시기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라' 다시 말해서 선교의 시기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 지금도 세계의 많은 영혼들이 주를 모르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죽어 가는 영혼들을 우리가 건져내야 합니다.
②선교는 영적 전투입니다. 쉽게 말하면 선교는 한 생명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치열한 전투와 같습니다. 전투란 패자에게는 죽음을, 승자에게는 생명을 안겨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전투에 참가한 군인들은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들고 지역 현장에 나갈 때, 그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사단의 공세가 만만치 않습니다. 사단은 우리보다 강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 앞에는 벌벌 떱니다.
그러므로 사단보다 약한 우리가 사단보다 훨씬 강한 예수 그리스도로 무장해서 사단을 물리쳐야 합니다. /믿/
③전도는 일심으로, 전심으로,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아멘!/

 

▶13절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저희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우리는 본문에서 이제 선교의 주역이 바뀌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지난 시간에 바보 섬의 바예수 사건과 서기오 바울 총독의 개종 사건이후 본문에서부터 선교의 주역을 바나바에서 바울로 옮기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울이 '엘루마'와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총독 서기오 바울을 기독교인으로 회심시킴으로 선교사역에 있어서 지도자급으로 바울이 부상했기 때문입니다.
바울 일행이 구부르섬 바보를 떠나 두 번째 선교지로 찾은 곳은 밤빌리야 지역이었습니다. 이 지역은 지중해 북단에 있는 소아시아의 남쪽 해안에 접한 지역으로 '동쪽에는 길리기야, 서쪽에는 루기아, 북쪽에는 비시디아가 인접해 있는 곳'입니다.
이 지역은 내륙지방으로 강의 위험과 도적의 위험이 있는 산길이 있었는데 이 길을 바울 일행이 갔습니다. 이곳에서는 큰 수확이 없었습니다. 앞에서는 총독이 복음을 받아들여 예수님을 믿었으니 그야말로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도를 하다보면 즐겁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냉대하고 나쁜 사람 취급하여 박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탄의 계략이 무섭습니다. 바울 일행은 이곳에서 좋은 일은 없었고, 오히려 불행한 일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마가 요한이 그 팀에서 이탈한 것입니다.
'요한은 저희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요한이 누구인가? 여기에 나오는 요한은 자기의 집을 주를 위해 바쳤던 마리아의 아들 마가입니다. 요한의 어머니가 제공한 그 집 다락방에서 예수는 최후의 만찬을 제자들과 함께 나누셨는데, 예수 승천 후에 그곳은 성도들의 모임 터가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옥에 갇혀 있을 때 성도들이 그 집에 모여 베드로를 위한 기도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성도들을 위해 모임의 장소를 제공한다는 것은 순교 정신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처럼 요한의 어머니는 강인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둔 요한을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교회의 부조를 전달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했다가 데리고 왔고 선교여행에도 그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선교여행의 고난을 감당하지 못하여 중도에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중도에 돌아간 요한에게 바울은 실망했기에 제 2차 전도여행 때는 그를 데려가지 않으려 했고 그 문제로 바나바와 다투기까지 했습니다.

▶요한이 돌아간 배경에 대하여 여러 학설이 있습니다.
⑴나이 어린 요한이 처음 장거리 여행을 하다가 마침내 향수병에 걸려 어머니에게 돌아갔다는 설입니다. 마가 요한은 부자 집 아들이었습니다. 그 집은 매우 큰집이므로 120문 도가 묘여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부자 집에서 호화롭게 자란 요한이 전도를 가보니 욕하는 사람도 많고 박대하는 사람도 많아 그만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⑵바울이 갑자기 유행병에 걸렸습니다. 아마도 말라리아였을 거란 학설이 있습니다.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는 산악지대로 환경이 좋지 않아서 유행병이 많이 도는 지역이었습니다.
⑶이제부터 여행이 더 험해질 것에 겁이 나서 포기했다는 설입니다. 어느 것이 진짜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째든 마가 요한은 이 일로 인해 바나바와 바울이 큰 의견 충돌이 일어나 2차 전도여행 때는 서로 헤어지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바울은 요한을 데려가기를 원치 않았지만 바나바는 요한을 데려가기를 고집한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바나바는 요한을 데리고 가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전도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14절 "저희는 버가로부터 지나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바울과 바나바는 마가요한이 가버리자 서먹서먹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버가에서 큰 진척을 보지 못했고,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돌아왔습니다.
이곳은 해발 약100m에 달하는 고원지대로 오늘날 터키 중남부지역의 얄바크 근처의 폐허지역을 말하며 당시에 이곳은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행18:23절을 보면 바울은 3차 여행 때도 이곳을 들려 재차 복음을 전했습니다.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갔습니다. 그 당시 디아스포라(흩어진 유대인)들이 세계 곳곳에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거하는 곳에는 틀림없이 회당이 지어져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바벨론 70년 포로생활이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못하고 우상과 타락에 빠졌기 때문에 하나님이 버리셔서 그런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들이 거하는 곳곳마다 회당을 세우고 안식일을 지키며 율법을 들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회당이 있었고, 바울 당시에도 회당이 있었습니다.

 

▶15절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 회당의 예배 순서 중 한 부분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율법서는 '모세 오경'을 가리키며 선지자의 글은 '예언서'를 가리킵니다.
1세기경의 회당예배는 쉐마(신6:4-9), 기도, 율법서와 예언서 낭독 그리고 설교나 권면의 말씀과 축복의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성경이 회당에서 낭독되었던 전통은 바벨론 포로이후에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주로 율법서는 신명기서를 많이 읽었으며, 선지서는 이사야서를 많이 읽었습니다.
신명기서를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저렇게 살라고 하였으니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된다.'고 권하였으며, 또 이사야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앞으로 우리 민족을 구원하시고 세계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메시야를 보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마음의 준비를 다하여 그 메시아를 받아들이자'고 가르치는 곳이 회당이었습니다.
바울 일행이 회당에 들어가니 회당 장이 신명기서 한 부분을 읽고 다음 이사야서를 한 부분을 읽고는 형제들 중에 누구든지 나와서 간증할 사람이 있으면 하라고 했습니다.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고 한 것은 '신명기서 말씀에 있는 대로 순종해 보니 이러한 일이 생겼다. 그래서 이러한 복을 받았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니 이러한 채찍이 있더라'는 식으로 나와서 백성을 권하라는 말이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그 소리를 듣고 그야말로 복음을 전할 절호의 찬스가 왔구나 생각하고 벌떡 일어나 손짓하며 설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손짓을 하면서 '서두를 꺼냈다'는 말입니다. 그 사건이 16절부터 나옵니다.

 

▶16절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바울은 자신 있게 구약에서 말씀하신 '메시아 즉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세하게 전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여기 바울이 일어나 '손짓했다'는 것은 회당장이 '말할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으므로 바울이 '손을 번쩍 들고 나갔다'고 설명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본래 회당 안에서의 설교는 관습적으로 앉아서 하는데(눅4:20) 바울은 일어나서 손짓까지 하면서 설교를 한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모습에서 청중을 사로잡은 것입니다.
바울의 설교를 들은 청중이 누구인가는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누가 들었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입니다. 여기 '이스라엘사람'들은 '유대인들을 지칭하는 말'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성전에는 들어가지 못해도 회당에는 참석할 수 있었다.
바울의 설교의 강조 점은 '들으라'입니다. 누구든지 믿기 위해서는 듣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듣지 않고서는 모르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듣는 자세가 정말 귀합니다.

 

▶여기서 잠깐 신앙의 자세 4가지를 알아보겠습니다.
①예배드리는 자세가 바로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즉 아벨의 제사처럼, 사도행전10장에 나오는 고넬료 가정의 예배처럼 되어야 합니다. /아멘!/
예배에도 축복 받는 예배가 있고, 들이나 마나한 예배가 있습니다. 이런 예배는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예배라고 성경에는 말합니다. 이사야 1장을 보면 하나님 앞에 형식적으로 소나 양을 잡아 드릴 때는 하나님의 진노를 산다고 했습니다.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너희가 내 성전 뜰만 밟을 뿐이라'고 하나님은 탄식하십니다.
②말씀을 듣는 자세가 바로 되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자세가 바로 되었습니다. 살전2:13절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할/
똑같은 자리에서 같은 물을 먹어도 양이 먹으면 젖을 만들어내고, 뱀이 먹으면 독을 만들듯이 우리가 같은 자리에서 같은 말씀을 들어도 믿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면 힘이 되고, 용기가 되고, 지혜가 되고, 능력이 되지만, 반면에 육의 생각으로 말씀을 받아들일 때 그 말씀이 나를 올무에 걸리게 하는 시험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 자세가 귀합니다.
③하나님을 섬기는 봉사의 자세도 바로 되어야 합니다.
④성도의 기도의 자세도 바로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바로 들으라'고 했습니다.

 

▶이제 다음절부터 바울이 1차 전도 여행 중에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행한 '전도 설교'의 한 부분입니다. 17-22절까지를 요약해 보면,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따라서 애굽 땅에서 나그네로 고생할 때에 큰 권능으로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아서 해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광야 40년 간의 시험과 연단을 통하여 가나안 땅에 일곱 족속을 멸하고 그 땅을 기업으로 얻어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에 의해 통치되었습니다.
그 후에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국가처럼 왕을 세울 것을 사무엘에게 원함으로 하나님께서 베냐민 지파 사울을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사울을 왕의 자리에서 폐하시고 새로운 왕 다윗을 세우시며 하시는 말씀이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 속에는 다윗의 계보를 통하여 이 땅에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이루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습니다. ▶차례대로 보십시다!

 

▶17절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지금 바울의 선교는 아브라함에서 다윗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구속적 활동을 강조하는 이스라엘 역사의 요약으로 시작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민족 가운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12지파를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큰 권능으로 인도하신 사건을 주입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본문 17-22절까지는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요약을 신앙적 고백으로 설교한 것입니다. 이 설교형태는 7장의 스데반 설교형식과 비슷합니다.
바울이 이스라엘을 구원시킨 하나님을 언급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라고 말한 것은 이방 신이 아닌 유일신을 강조한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한 출애굽의 하나님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 바울은 이스라엘을 택한 백성임을 강조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아브라함을 택하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택해 주셨기에 오늘 이 자리에 우리가 왔습니다.
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높였습니다. '그 백성을 높여' 하나님은 어린 다윗을 높여 골리앗을 넘어뜨렸으며 요셉을 높여 애굽의 총리로 세웠으며, 다니엘을 높여 국무총리에 세워 주셨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전 민족을 선민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높여주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큰 권능으로 인도해' 출애굽의 10가지 재앙을 말하고 바위에서 생수를 터뜨린 것은 하나님의 큰 권능이요, 불기둥, 구름기둥, 만나와 메추라기 또 홍해를 가르는 기적, 여리고를 무너뜨린 기적, 기브온 동산에 태양을 멈추게 한 기적들은 하나님의 큰 권능의 역사였습니다. 본문에 '택하시고 높이시고 큰 권능으로 인도하신 것'은 모두가 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이스라엘을 높이신 하나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높여 주실 줄 믿습니다. /할/

 

▶18절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저희 소행을 참으시고"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은 수도 셀 수 없이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고 원망했습니다. 마실 물이 없다고 하나님을 원망했고, 길이 좀 험하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툭하면 우상에 빠집니다. 가장 큰 죄는 바로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악한 수행을 참으신 것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시기 위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은 우리가 순간, 순간 잘못을 저질러도 하나님께서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는 말씀의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인내하십니다. 그래서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주께 돌아오면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행동하여 우리 가운데 계시는 성령을 근심하거나 성령을 소멸해서는 안 됩니다.

 

▶19절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 (약 사백 오십 년간)"
가나안 땅은 일곱 족속이 기반을 닦고 살고 있었습니다. 신7:1절을 보면 '헷, 기르가스, 아모리, 가나안, 브리스, 히위, 여부스' 이렇게 7족속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 땅의 7족속들의 죄악이 너무도 심했기 때문에 심판하시고 그 땅의 기업을 다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개간한 것이 아니라 이미 포도나무가 심겨진 땅, 무화과나무가 심겨져 있는 땅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생활도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면 이 사실을 알고 삽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땅은 젖과 꿀은커녕 빼빼 마른 사막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땅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니 때를 따라 비를 주시고, 풍작을 주신 답니다.
정말로 이스라엘의 포도는 얼마나 단지 모릅니다. 또 그곳 석류는 신맛이 없고, 꿀 송이처럼 달았습니다. 태양이 얼마나 작렬하든지 신맛이 다 없어진 것입니다.
여기 가로 속에 <450년>은 이스라엘이 애굽에 들어갈 때부터 출애굽 하여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나눌 때까지의 연대입니다. 즉 애굽 생활 400년, 광야생활 40년, 그리고 가나안 정복 기간 10년을 합하여 450년이 되는 것입니다.

 

▶20절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사사시대는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신 기간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기드온, 삼손, 드보라, 이런 사람들이 다 사사들입니다. 우리가 사사기서를 보면 하나님의 간섭을 확실히 볼 수 있습니다.
삿3:10-14, 30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더니 하나님께서 80년 간 태평하게 하셨더라.' 또 그 다음, 또 '바알을 섬기니 누구를 데려와 치시니 20년 간 골탕을 먹였더라. 또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왔을 때 그들을 돌아 보사 40년 간 태평하게 하셨더라'고 나와 있습니다.
최후의 사사는 사무엘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사무엘은 순종의 사람,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고백한 주의 종입니다.
사사시대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부터 사무엘 때까지 왕은 없고 하나님이 친히 택하신 사사들만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사사에게 임하여 지혜와 총명과 권능을 주시므로 사사는 하나님의 뜻을 펼치고 재판을 하며 이스라엘을 잘 다스렸습니다.

 

▶21절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사사시대가 끝나고 왕정국가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왕정국가의 시작은 이스라엘 백성의 요청에 의한 것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았지만 그들의 요구를 받아주신 것입니다. 그들의 요구는 먼저 사무엘이 너무 늙었다는 이유와 다른 열방들의 왕권 통치에 대한 부러움에서 시작되었습니다(삼상8:5). 사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세상 왕을 선택한 것입니다.
사실 그들은 그것이 올무가 되었는지 몰랐습니다. '사울을 40년 간 주셨다가' 사울의 통치기간은 40년간 계속 되었는데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함과 동시에 그와 그의 아들들이 죽음으로 그의 통치는 끝이 났습니다(삼상31:1-6).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결정적으로 불순종하다가 망했습니다. '아말렉을 전멸하라'고 했는데 그는 '아말렉 왕 아각을 사로잡고 기름진 소와 양떼'를 몰고 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다가 최후에는 비참했습니다.

 

▶22절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사울의 뒤를 이어 다윗이 이스라엘의 2대 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세우시고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여기 '마음에 합한 사람'이란 말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 생각도 마음도 뜻도 하나님과 일치를 이룬 사람'을 말합니다.
사랑도 물질도 마음도 드려야 합니다. 자장면 한 그릇이라도 마음에 드는 음식점에서 먹어야 행복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을 다시 한번 조명해 보아야 합니다.
⑴다윗은 그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했습니다. 삼상 16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사무엘이 베들레헴에서 이새의 여덟 아들 중에서 사울 대신에 이스라엘의 새 임금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왕의 자격은 무엇입니까?
삼상13:14절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야 이스라엘 왕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이새의 여덟 아들이 순서대로 사무엘 앞에 나와 섰습니다. 먼저 장자 엘리압이 나왔습니다. 키가 크고 용모가 준수하고 잘 생겼습니다. 사무엘이 속으로 '이 사람이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합당이 여기지 아니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하십니다.
그 다음 차남 아비나답, 다음 삼남 삼마가 나왔으나 다 합격하지 못하고 장자로부터 일곱 번째 아들까지 다 낙방했습니다. 그러자 사무엘은 이새를 불러 '네 아들이 다냐?' '아닙니다. 막내 다윗이 들에서 양떼를 지키고 있습니다. 왕 되기에는 너무 어리고 볼품이 없어 선택하는 자리에 아예 데려오지도 않았습니다.' 사무엘이 빨리 불러 오라 해서 왔는데 주의 음성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명하십니다.
⑵다윗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다윗의 형제들은 모든 조건을 다 훌륭하게 갖추었으나 믿음이 없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것은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삼상 17장의 다윗과 블레셋 대장 골리앗과의 대결에서 다윗의 신앙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골리앗이 막대기와 몰매를 가지고 싸우러 오는 다윗을 향하여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오느냐? 내게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짐승에게 주리라.'고 하자 다윗은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하고 나가 물맷돌 하나로 골리앗의 머리를 맞추어 쓰러트리고 골리앗의 칼을 뽑아 그의 목을 베었습니다. 다윗은 오직 '여호와의 이름만을 의지하는 믿음'의 소유자입니다. /할/
⑶다윗은 순종의 사람입니다. 그 조건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서 버림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그 유명한 말씀을 했습니다. 15:22절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음으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그렇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어야 자격이 되는 것입니다.
⑷다윗은 충성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충성의 사람을 마음'에 두십니다.
다윗은 어릴 때 아버지의 양을 치는 일에도 충성했고,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돌보는데도 충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입니다.
⑸다윗은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성령 충만한 사람을 쓰십니다.
삼상16:13절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할/
⑹다윗은 너그러운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너그러운 사람'을 쓰십니다.
사울 왕에게 쫓기면서 여러 차례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종을 내 손으로 죽일 수 없다는 것이고, 또 그의 너그러운 마음' 때문입니다.
⑺다윗은 회개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한 사람'을 쓰십니다.
다윗은 간음죄와 살인죄를 지었지만 나단 선지자가 책망하고 죄를 지적했을 때, 회개했습니다. 그 마음 중심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일이라면 어찌 하든지 해야 되겠다는 열심과 충성심이 있었습니다.
또 다윗은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은 이룰만한 그릇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후손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태어나게 하셨고 구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크게 쓰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안목은 넓고 크고 깁니다. 눈앞에 것만 보지 않고 멀리 보신 것입니다. 다윗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되기에 넉넉한 사람이었습니다.

 

▶23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다윗의 자손인 예수님은 구세주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약속하신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구주로 삼으셨다고 바울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다윗에게 삼하7:12-16절에서 하신 약속이요, 또 창15:18절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땅을 애굽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또 창22:18절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근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갑자기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대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설명입니다. 이 말씀은 구약에서 예언해 놓으신 언약의 메시아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아멘!/
한마디로 바울의 설교의 결론은 '이스라엘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선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으니, 즉 '하나님께서 바로를 패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 내셨으며, 그들의 불성실에도 불구하고 오래 참으시고 인내하사 마침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도록 허락해 주셨고, 거기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사들을 세워주셨으며, 사울 왕도 세우셨다가 그를 폐하셨고, 다시 역사의 새로운 분기점으로 다윗 왕을 세우셨으며,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역사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인가? 사람은 '하나님 나라 역사의 도구'입니다. /믿/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당신나라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그런 사람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을 앞두고 찾으신 의인 10명이요, 기드온의 300용사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역사는 사람을 찾습니다. 이 시대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이해하는 사람을 찾고 있으며, 역사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겸허하게 드려 쓰임 받기를 원하는 일꾼을 찾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선입니다. 하나님의 일이 우선 순위를 두는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를 놀랍게 쓰십니다.
잠28:10절에 '성실한 자는 복을 얻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성실하다'는 말은 '하나님을 모시고 진실히 행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얼마나 커지느냐? 교회에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모이느냐?'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발견한 사람이 그 공동체 가운데 '얼마나 있느냐?'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며 주께 쓰임 받기를 헌신하기를 다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믿/ 우리 모두가 그런 사명 의식 속에 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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