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강) 본 받아야 할 안디옥 교회! (행 13:1-12)
사도행전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1-12장으로 '예루살렘을 근거로 한 유대인들을 상대로 하여 복음을 전했는데, 전도의 중심인물은 베드로'이고, 또 하나는 13-28장으로써 '안디옥 교회를 근거로 한 이방인 상대의 복음 사역으로써 전도 중심의 인물은 바울'입니다.
행1:8절의 주의 지상명령에 따라 1-12장까지는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의 전도'였으며 13장부터 28장까지는 '땅 끝까지의 전도로서 바울이 1,2,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드디어 복음이 로마에까지 들어가는 4차 전도여행까지를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1차 전도여행은 행13:1-15:35절이고, 2차 전도여행은 15:36-18:23절까지이며, 3차 전도여행은 18:24-21:16까지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전도여행의 중심지는 안디옥교회였습니다. 안디옥이란 지명이 사도행전에서 두 곳이나 나오는데 하나는 '수리아 안디옥'이고, 다른 하나는 '비시디아 안디옥'입니다.
본문의 안디옥은 '수리아 안디옥'으로 주전 300년경에 수리아의 왕 '셀류코스' 1세가 건축한 수도로서 로마 관내의 3대도시 중의 하나입니다. 여기에 세워진 안디옥교회는 이방교회의 어머니역할을 한 교회입니다.
▶안디옥교회가 지향하는 정신 몇 가지가 있습니다.
①선교정신입니다. 안디옥교회의 선교 열정은 안디옥에서만 끝나지 않고 널리 아시아에서 지중해를 거쳐 구라파(유럽)에 이르기까지입니다.
②협동정신입니다. 모든 구성원들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③구제정신입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어려운 사람들은 있기 마련입니다.
④봉사정신입니다. 봉사는 자비와 긍휼의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⑤기도정신입니다. 기도로 무장하지 않고서는 위의 '선교정신, 협동정신, 구제정신, 봉사정신'으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기도는 모든 것을 연결해 주고 하나로 묶는 능력입니다. /할/
안디옥교회는 아주 이상적인 교회였습니다. 안디옥교회는 많은 일꾼들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협동이 잘되는 교회였습니다. 우리 성림교회도 안디옥교회를 닮아 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아멘!/ ◀제목소개!▶
▶1절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안디옥 교회는 흩어진 피난민들이 세운 교회인데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이룬 교회입니다.
경상도 사람들만 모인 교회도 아니었고 전라도 사람들만 모인 교회도 아니었습니다. 백인들만 모인 교회도 아니었고 흑인들만 모인 교회도 아니었습니다. 경상도 사람도 있었고 전라도 사람도 있었고 이북 사람도 있었고 충청도 사람도 있었고 강원도 사람도 있었고 백인도 있었고 흑인도 있었던,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이룬 교회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안디옥교회는 일꾼이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교회는 재정도 풍성해야 하고, 은혜가 더욱 넘쳐나는 것도 중요합니다 만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능력 있는 일꾼'들입니다. 안디옥교회는 바나바와 시므온과 루기오와 마나엔과 사울이 똘똘 뭉쳐 '하나님중심, 교회중심'으로 충성했습니다.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여기서 '선지자'는 '성령의 역사를 따라 예언도 하고, 설교도 하고, 다스리기도' 했습니다(행11:27, 15:32, 롬12:6-7). 또 '교사'는 가르치는 은사를 가진 자로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연구하여 가르치는 자'를 말합니다(고전12:28, 엡4:11).
▶천거된 다섯 분은 어떤 사람들인가?
⑴바나바: 구브로 사람으로 권위자라는 뜻을 가진 초대교회 기둥으로서 안디옥에 파송된 일꾼으로 바울을 키워 대 사도로 만든 장본인입니다.
⑵니게르라 하는 시몬: 니게르는 니그로와 같은 말로서 검다는 뜻으로 흑인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이었습니다.
⑶구레네 사람 루기오: 구레네는 아프리카 지역을 말합니다. 이 사람도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입니다.
⑷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 헤롯 1세의 아들로서 헤롯은 갈릴리와 베뢰아를 통치하는 분봉 왕이 되었으나 그의 동생 마나엔은 왕족이요 귀족임에도 불구하고, 세상 권세에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 의지했습니다.
⑸사울: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난 바로 그 '사울'입니다.
바로 안디옥교회는 성도와 선지자와 교사들이 또는 왕족과 천민이 빈부귀천 지위고하를 초월해서 협동이 잘되는 교회였습니다. 아프리카 흑인 루기오와 왕족 마나엔이 교회에서 같이 어울렸습니다. 당시 흑인이란 매우 멸시받고 천대받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마음, 한뜻으로 협동했습니다. 안디옥교회는 물질이 중심이 되거나 어느 명예나 사람이 중심이 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 온 성도들이 협력을 잘하는 교회였습니다. 가정이나 국가나 어떤 공동체든지 협력이 잘 될 때에 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안디옥 교회 안에는 수리아 출신의 이방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이룬 교회였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의 하나는 인간들 사이에 존재하는 인종적 장벽과 문화적 장벽을 깨트리고 하나를 이루시는 일이었는데, 이와 같은 일이 안디옥 교회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안디옥 교회는 좋은 교회요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한 가정의 행복도 서로 돕고, 이해하며 하나가 될 때, 행복해집니다. 한 국가의 운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단합된 민족성을 가졌느냐에 따라 흥망이 좌우됩니다. 그래서 고 이승만대통령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말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안디옥교회처럼 하나님 중심으로 성도들이 한 마음으로 기도로 뭉치고, 사랑으로 뭉치고, 믿음으로 뭉쳐야 합니다. 그러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믿/
▶증원의 사자 징기스칸이 임종 시 4형제를 모아 놓고 화살을 하나씩 주면서 꺾어보라고 했습니다. 4형제는 모두 쉽게 꺾었습니다. 이번에는 4개를 한 묶음으로 만들어서 꺾어보라고 했습니다. 한사람씩 꺾어보았으나 한 사람도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징기스칸은 마지막 유언으로 '너희 한 사람 한사람의 힘은 이렇게 약하지만 4형제가 힘을 합한다면 이 나라도 능히 통일할 수 있다'고 하면서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교회 안에는 천민이나 귀족이 있을 수 없습니다. 교회는 세상 적인 지위, 높은 자리를 자랑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주님만을 높이고, 주님만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아멘!/
▶2절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여기에서 우리는 안디옥 교회의 영적 능력을 볼 수가 있습니다.
⑴안디옥 교회는 오직 주님만 섬기는 교회였습니다. '주를 섬겨' 선지자가 가르쳐 준 주님만 섬기고, 교사가 가르쳐준 주님만 섬겼습니다. 교회는 주님만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곳입니다. 신앙생활은 섬김의 생활입니다. 위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주의 종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생활이 믿음의 생활입니다. 교회에서 대접받고자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⑵안디옥교회는 뜨겁게 기도하는 교회였습니다. '금식할 때에'는 금식기도를 말합니다. 금식 기도는 일상 생활의 일들을 다 중단하고 먹는 일까지도 중단하고 기도에 몰두하는 기도를 말합니다.
금식기도는 우리 모두 할 수 있으나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회개할 때 금식을 했습니다. 다윗이 이런 기도를 드렸는데 '그냥 기도하면서 회개하기에 너무나 부족하고 가슴이 아프기에 생명을 걸어놓고 기도하오니 용서해 달라'는 기도가 금식기도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생활에 승리하는 사람은 인생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성도의 가장 큰 무기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영적인 전쟁터에 있습니다. 우리의 대적은 원수 마귀입니다. 기도로 무장하고 물리쳐야 합니다.
안디옥교회는 어려운 시련과 고난이 많았던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온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특별 기도를 드렸습니다. 금식을 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기도를 했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역사는 기도하는 곳에서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기도를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기도는 슬플 때 위로가 되고, 마음이 괴로울 때 평안을 줍니다. 또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을 때 기도하면 주님께서 눈 녹듯 녹여주십니다. 여러분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까? 앞길이 막혀있습니까? 먼저 기도의 무릎을 꿇으시기 바랍니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도 원망, 불평,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께 찬양하고 기도했더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홍해도 여리고도 기도 가운데 갈라지고 무너집니다. 기도는 모든 것을 역전시킵니다. /할/
⑶안디옥교회는 성령이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성도는 항상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까? 성령 충만한 자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안디옥교회는 성령이 충만한 교회로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왜 따로 세우라고 했습니까? 안수해서 선교사로 보내기 위해서입니다.
▶3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음성을 듣자 말자 그 음성에 순종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는 성령의 지시를 그대로 따랐습니다. 그 당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서 그들을 선교사로 파송하라'는 성령의 지시는 안디옥 교회의 형편에 비추어 볼 때 너무나 엄청난 지시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세워진 지 불과 2,3년밖에 안 되는 어린 개척 교회였습니다. 선교가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교회의 두 기둥과 같은 지도자를 뽑아서 선교사로 파송하라는 성령님의 지시는 너무나 지나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은 달랐습니다. 비록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성령님의 지시에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금식기도를 계속하기로 했습니다.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굴복시키기 위해서 또 다시 금식기도에 들어갔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지시를 받으면서도 그것을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계속해서 기도에 몰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지시를 받은 즉시 또 다시 기도에 몰두했습니다.
기도를 계속하는 동안 그들의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과 동화하기 시작합니다. 천하 만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보내셨고 이사야를 택하셔서 보내셨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택하셔서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깊으신 사랑과 뜻'을 헤아려 알게 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를 세우신 목적도 바로 세상 만민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크신 뜻을 이루시는데 있음을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저들은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기로 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님의 지시에 따라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고 두 사람에게 안수한 후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그러니까 안디옥교회는 처음으로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최대관심은 오직 선교입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소원도 역시 전도입니다. 지금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소원을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이 예정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을 다 구원시키는 일입니다.
마24:14절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본문에서 바나바와 사울을 안수했습니다. 모세가 여호수아를 새로운 지도자로 세워 모든 이스라엘의 백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안수하여 지혜와 능력의 성령 충만하기를 하나님께 기도한 것같이 오늘 두 선교사들에게 성령이 매우 충만하기를 비는 마음으로 안수 식을 거행한 것입니다.
여기서 안수한다는 것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대표로서 파송 함을 인정하는 뜻'이요, 또 하나는 '축복의 의미'를 가집니다.
여기서 축복이란 성령 충만이 임하여 그들의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하자면 오늘날 목사 안수와 같습니다.
본문 3절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줍니다. 금식하고 기도하고 안수해서 선교사로 보냈습니다. 선교사를 보냈는데 그 모든 비용까지 안디옥이 감당했습니다.
안디옥교회는 예루살렘교회가 흉년이 들어 어려울 때 사랑의 헌금을 보냈고 지금은 자비 량으로 선교사를 둘이나 파송하고 있습니다.
'교회와 선교', 이것은 절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안디옥교회는 세계선교의 센터였습니다. 살아 있는 주님의 참된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입니다. '가든지, 아니면 보내든지' 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이요, 가치요, 목적입니다.
안디옥교회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선교사를 파송할 것입니까? 성령님이 파송합니다. 누구를 파송했습니까? 바나바와 바울을 파송했습니다. 누가 뒷받침을 했습니까? 안디옥교회였습니다. 어떻게 보냈습니까? 금식하고 기도로 준비하고 평강의 안수를 하고 보냈습니다. 그들은 어디로 떠났습니까? 먼저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로 떠났습니다.
▶4절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선교는 인류의 최대과제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지상명령이기도 합니다. 이제 파송 받은 선교사는 철저하게 세상 적인 욕망을 포기해야 합니다. 온 교회가 금식하여 피택한 선교사를 '금식하며 기도'하게 한 후에 파송한 것은 '주님을 위하여 굶어 죽을 각오를 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기를 따르던 자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24-25)고 하셨습니다.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3절에서 '안수하여' 보내었습니다. 교회가 합법적으로 '인 치신 것'입니다. 이들의 뒤에는 안디옥 교회가 있으며 안디옥 교회 위에는 주님의 손이 있습니다. /할/
이들은 자신들이 가고 싶은 곳을 간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께서 가라고 해서 간 선교사들입니다. 먼저 '실루기야'로 내려갔다고 했는데 이 실루기야는 안디옥에서 가까운 항구도시입니다. 그곳에서 배를 타고 구브로로 갔다고 했습니다. 구브로는 바나바의 고향입니다.
왜 그곳으로 먼저 갔습니까? 틀림없이 바나바가 우리 고향에 가서 먼저 전도하자고 했을 것입니다. 복음은 가까운 곳에서부터 전해야 하고 특히 선교사는 정보를 잘 알아야 합니다.
바나바는 자기의 고향이기 때문에 문화, 전통, 경제를 속속히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바나바는 예수라는 보배를 제일 먼저 자신의 고향의 동족과 함께 나누려 했던 것입니다. 구브로는 로마의 한 지방으로서 조선 업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5절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종자로 두었더라"
바나바와 바울이 제일 먼저 간 곳은 '살라미'라는 동네였습니다. '살라미'는 해안 도시로서 항구가 있으며 지중해를 통한 해상 무역으로 인한 상업도시로 번창했습니다. 그 곳은 로마의 지배아래 있는 땅입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이미 유대인들의 회당이 여러 개 있었는데 바나바와 바울이 먼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바울의 전도 원칙은 롬1:16절을 보면 '첫째는 유대인에게요'라고 한 것처럼 바울의 선교원칙대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요한을 수종자'로 데리고 갔습니다. 여기 요한은 바나바의 생질이고, 이 사람이 바로 '마가 요한'입니다. 마가는 로마의 이름이고, 요한은 유대식 이름입니다.
그때 요한이 한 일은 세례를 베푸는 일이었고, 또한 두 사람의 여행 경비를 관리하는 일을 했습니다. 당시 바울은 중요한 요원들만 직접 세례를 주고 다음은 요한에게 맡겼습니다.
지금도 큰 교회 목사님들도 자기가 직접 세례를 주지 않고 부목사님들을 시켜 준다거나 교구장을 시켜서 줍니다.
▶6절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 박수를 만나니"
성 곳곳에 다니면서 전도를 하던 중 '바보'란 곳에 이르렀는데 이름이 좀 그렇습니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멍청이 바로란 동네가 아니라 여기 나오는 '바보'는 지명입니다. 당시에 바보란 지명이 두 곳이 있었습니다.
한 곳은 베니게의 도시에 있는 바보로 '구 바보'이고, 본문의 바보는 '신 바보'로 로마의 지배에 있는 도시입니다. 이 성안에 총독(7절)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성중에서 가장 큰 성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전할 때, 전략도시는 잘 선택한 것입니다.
그들이 그곳에서 전도하다가 거짓 선지자 '바 예수'를 만났습니다. '바 예수'는 '예수의 아들, 또는 여호수아의 아들'이란 뜻을 가진 유대 식의 이름입니다. '바 예수'는 총독 관저에서 일하는 유대인으로 그의 신분은 거짓 선지자 박수였습니다.
여기 '박수'는 당시 마술적 또는 주술적 치료행위를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여기에 거짓 선지자라고 덧붙여진 점으로 보아 자칭 하늘의 계시자로 행세하면서 활동한 자입니다. 사실 이 박수는 '신의 아들'로 행세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많이 유혹한 자입니다.
학자들의 견해를 보면 이 사람은 그 성의 총독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니까 옆에 붙어있지 않습니까?
▶7절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여기 '서기오'는 구브로 총독입니다. 그 섬의 총 책임자입니다. 이것은 아마 이 지역의 정보를 가지고 있는 바나바에 의한 선교 전략일 것입니다. 그가 복음을 받으면 섬 전체에 영향력을 미칠 것입니다. 선교 현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사람을 얻으면 모든 것을 다 얻게 됩니다. 하나님은 전도자가 가는 곳에 필요한 사람을 예비해 두십니다.
그렇습니다. 전도하다 보면 현장에서 하나님이 붙여주는 영혼들이 있습니다. '갈급한 자, 사모하는 자, 믿기를 결정한 자, 충성된 자, 사명 자'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전도는 이런 사람들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본문의 바나바와 바울이 바보성에서 복음을 전하는 데 그 섬의 총독을 하나님이 붙여주신 것입니다. 그 성의 총독만 무너지면 다 무너집니다. 아마 바 예수는 총독 서기오가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의 복음을 듣지 못하도록 갖은 방법들을 다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서기오 바울은 교양과 지식과 지혜가 있는 인물이므로, 바 예수의 말만 듣지 않고 두 사도를 청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한 것입니다.
당시 로마에는 두 가지의 총독직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로마의 황제가 보내는 총독이었고, 다른 하나는 원로원에서 보내는 원로원의 선거권을 가진 총독이었습니다.
서기오 바울은 원로원에서 보내는 지혜 있는 총독이었습니다. 여기 '지혜 있는 사람'이란 말은 '본래 신중하고 지성적이며 자신의 주관이 뚜렷한 사람'을 말합니다. 이 사람은 정치를 하면서도 공명정대하고 했고, 분별력이 있는 정치를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혜 중에 큰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지혜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모든 인간의 근본 문제가 하나님을 모르는 데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매사에 지혜가 있다는 총독 서기오가 바나바와 바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했습니다. 아마도 총독은 지금까지 자신에게 접근하고 있는, '바 예수'의 말만으로는 '진리를 발견할 수 없다'는 어떤 영혼의 갈증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총독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바나바와 바울의 사역은 여러 방법으로 방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8절 "이 박수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박수라) 저희를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박수 엘루마의 방해가 있습니다. 그가 어떻게 해방했는가? '궤계'입니다. '기만과 속임수'를 쓴 것입니다. 언제나 거짓된 자는 자신도 진리를 믿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남들도 그 진리를 믿지 못하도록 유혹하고 방해합니다.
'엘루마'는 구브로 지역의 어두움의 권세를 대변하는 적 그리스도적 인물이었습니다. 엘루마의 뜻은 '교활, 간교, 또는 올무, 미끼, 거짓 선지자, 사기꾼' 등의 뜻입니다. 한마디로 그는 사탄의 권세 아래 있는 자입니다.
'박수'는 그 당시 '마술적 또는 주술적 치료 행위릍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6절에 '거짓 선지자'라고 한 것으로 보아 자칭 하늘의 계시자로 행세하면서 동시에 주술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을 치료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자기 기득권을 총 동원하여 선교사역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있을 때 여러 박해자와 핍박자가 있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탄 원수 마귀는 지금도 끊임없이 다가와 복음을 받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발악을 합니다. 또 사탄은 어찌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훼방을 합니다.
한 예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 졸음이 막 쏟아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에 불안해서 졸음이 오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탄의 지혜와 수단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이길 수 없습니다. 결단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있는 이름으로 사탄을 결박시킬 수 있습니다.
본문에 박수 엘루마가 총독으로 하여금 믿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습니다. 바로 귀신이 그 속에 들어가 복음을 방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엘루마'는 아람어로 본뜻은 '요술쟁이 또는 마법사'란 의미로 박수와 똑같은 의미입니다.
▶9절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여기서 처음으로 사울이 바울로 개명되어 나옵니다. 그의 변화된 모습을 우리는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울은 '큰 자'라는 뜻이고, 바울은 '작은 자'란 뜻입니다. 고전15:9절에서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겸손한 자를 더 크게 쓰십니다. 모세를 보세요! 모세가 처음에는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줄로 알고 자기가 하려고 설치다가 사람을 죽인 살인자가 되어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곳에서 모세는 40년을 지내면서 생각해 보니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이 그를 불러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로 영도자로 그를 쓰셨습니다. /믿/
우리는 여기서 사울이 바울로 개명된 것을 학문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사울이 회개한 다음 바울로 바꿨다고 하지만 본래부터 바울이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합니다. 사울은 유대식 이름이고, 바울은 로마식 이름이랍니다.
당시 유대인들 중에는 유대식 이름이외에 로마식 이름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특히 사울은 나면서부터 로마시민권(22:28)을 가졌던 사람으로 보아 틀림이 없습니다. 사울이 이방 선교 차 이곳에 와서 느끼게 된 것은 로마식 이름보다는 유대식 이름이 자연스러울 것 같아 그렇게 했을 것이란 학설이 유력합니다.
바울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사탄을 겪고 이길 수 있는 가장 큰 비결은 바로 '성령 충만'함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보다는 마귀가 더 강하고, 마귀보다는 성령님이 더 강하기 때문에 마귀보다 더 약한 우리는 마귀보다 더 강한 성령'을 붙잡아야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다. /믿/
그리고 마귀를 이길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은 '주목하라'입니다. 볼록 렌즈의 초점이 모아지면 종이도 타는 것처럼 능력 있는 눈길로 주목하여 마귀와 대결해야 합니다. /믿/ 귀신은 능력 있는 자를 똑 바로 못보고 항상 피합니다.
또 마귀를 이기려면 마귀의 정체를 똑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요10:10절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0절 "가로되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이 말은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어떻게 사람을 앞에 두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그러나 박수 무당은 마귀의 지배를 받고 행동하는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령이 그냥 두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본 절에서 마귀의 정체를 다섯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⑴궤계가 있는 영물입니다. 교묘한 속임수와 꾀가 있습니다. 그래서 안 넘어 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⑵악행이 가득한 영물입니다. 왜 악한지 아십니까? 다른 사람의 생명을 복에 길로 가지 못하게 막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못 가도록 방해하고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온갖 술수를 자행하는 자이기에 악질 중에 최고의 악질입니다. 얼마나 악한 자입니까?
⑶마귀의 자기입니다. 요8:44절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원래 거짓의 아비였습니다.
⑷의인과 원수가 된 자입니다. 여기 의인은 예수 믿고 구원받은 백성이고,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원수입니다.
⑸바른 길을 구부러지게 하는 자입니다. 진리는 바릅니다. 그러나 불법은 구부러진 길입니다.
지금 바울의 책망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바른 길을 막고 있는 원수야!’ 하나님께서 전하라는 진리를 막는 일을 그치라는 준엄한 책망입니다.
▶11절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마귀는 꾸짖고 저주해야 합니다. '보라! 주의 능력이 네 위에 있으니 너는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앞을 보지 못하리라!' 하고 저주하자 즉시 그를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 소경이 되었고, 그는 혼자 걸을 수 없어서 도와줄 수 있는 보호자를 구해야 했습니다.
바 예수가 소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징계는 멸망이 목적이 아니라 회개가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징계에는 몇 가지의 특징이 있습니다.
⑴일시적입니다. 깨달으면 물리쳐 주십니다.
⑵즉각적입니다. 말이 떨어지자 말자 눈이 멀어 버렸습니다.
⑶기이한 현상입니다.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깔렸습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총독인 서기오 바울이 예수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할/
▶12절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히 여기니라"
총독 서기오 바울이 예수를 영접했습니다.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박수 '엘루마'가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소경이 된 것을 보고 하나님의 권능을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들고 선교 현장에 나가면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선교지는 바로 영적 전쟁터입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나가면 사단권세가 정복되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총독이 '주의 가르치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신앙은 교육이 중요합니다. 예수를 가르쳐야 합니다.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를 가르쳐서 영접을 시킬 때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히 여기니라' 이 말씀은 총독이 주님의 말씀을 너무나 오묘하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을 뿐만 아니라 그 가르치는 말씀을 듣고는 아주 '신비롭게 여기고 받아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체험적인 신앙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 신앙이 정말 귀합니다. 이것이 다 하나님이 하시는 성령의 놀라운 섭리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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