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강) 바울의 설교!② (행 13:24-41)
안디옥교회에서 파송 받은 선교사 바울과 바나바는 실루기아에서 구브로로, 또 살라미를 거쳐 서 여러 섬 지역을 지나 바보지역을 거쳐 지금은 비시디아 안디옥까지 왔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 도착한 바울과 바나바는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예배를 드렸는데 그때 회당장의 요청으로 설교할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바울은 설교를 통하여 구약의 예언된 '여자의 후손'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되었음을 설교하고 있습니다. 즉 여자에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우리가 대망하는 '메시아'임을 설교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 시간에 그 '여자의 후손'인 예수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에 합한 자를 지금도 쓰십니다.
▶어떤 미국 회사에서 애완용 개의 밥을 개발했습니다. '단백질, 무기질, 지방, 그리고 탄수화물'이 골고루 들어 있고, 영양도 풍부했습니다. 또 광고도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상품은 점차 판매량이 줄어갔습니다.
사장은 시카고에 각 지구별 세일즈 매니저들을 모아놓고 말했습니다. '경쟁회사보다 가격은 저렴합니다. 광고도 월등합니다. 영양도 좋습니다. 포장도 이렇게 아름답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쥐 죽은 듯이 조용한 분위기를 깨고 뒤에 있던 한 사람이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사장님, 강아지들이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개밥을 파는 기업들도 '개들이 무엇을 좋아하는가'에 대하여 깊이 연구한답니다. 그렇습니다. 개가 원하는 음식을 개발해야 됩니다. 좀 비유가 그렇습니다 만은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무시하면 안됩니다. 신앙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인간이 순종함으로 시작'됩니다. /아멘!/
사람이 아무리 좋다고 생각해도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면 무효입니다. /믿/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내 방법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라고 명하시면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사람! 그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명하시면 쉬지 말고 기도할 수 있는 사람! 그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하시면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 그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입니다. /할/ ◀설교제목!▶
오늘 본문의 바울의 설교는 하루에 삼천 명, 또는 오천 명을 회개시킨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와 스데반의 순교설교와 함께 '초대교회의 3대 설교'로 꼽히는 유명한 설교입니다. 바울의 명 설교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셨다는 것이 그 주제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실패한 하나님의 뜻을 성취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기도할 때에도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게'(주기도문) 기도하게 하신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다 이루었다!'고 하심은 성부 하나님께서 하라고 명하신 사명을 '다 이루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두신 하나님의 뜻(목적)은 무엇입니까? 구원(救援)입니다. /아멘!/
바울의 설교의 핵심은 한마디로 구약의 예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성취되었음을 말하고 있는데 본문부터는 주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세례요한에 관한 말씀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24절 "그 오시는 앞에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바울은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권위를 강조하기 위하여 세례요한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세례요한을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를 보증하는데 이용한 것은 당시 사람들이 세례요한을 선지자로 믿고 있었으며 당시 세례요한의 회개의 세례가 유대인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세례요한은 구약의 어떤 인물보다도 위대했고, 신약의 어떤 인물보다도 뛰어났으며 그리고 인류사의 어떤 사람보다도 거룩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보다 6개월 앞서 세상에 선지자로 미리 와서 주의 길을 예비했던 사람이었으나 결코 오래 살지 못하고 불의와 부정에 항거하다가 헤롯에 의해 일찍 처형된 사람이었습니다.
왕은 어디서나 혼자 나타나지 않습니다. 반드시 수행원이 따릅니다. 그래서 그 길을 예비하는 행렬이 먼저 나타나고 모든 준비가 끝나면 팡파르를 울리는 가운데 왕이 등장하는 법입니다. 바로 만 왕의 왕이신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6개월 전에 미리 길을 닦고 선구자로 세례요한이 온 것입니다. 그는 유대 광야에서 회개를 외쳤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이 세례요한의 메시지는 오늘날 여러분들도 들어야 하고, 목사인 저도 들어야 합니다. /아멘!/
'회개'란 말은 '메타노에오'란 말로 두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메타'는 '다르다'는 뜻과 '노에오'는 '생각'이라는 뜻이 합쳐져 된 말로 원문의 뜻은 '생각을 다르게 하라, 생각을 고치라'는 뜻으로 '잘못된 곳에서 돌아서는 것이요, 방향을 바꾸는 것이요, 결정된 마음과 뜻에서 돌이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행동이 뒤따라야 합니다. 회개는 후회하고는 차원이 다릅니다. 회개는 단호히 돌아서는 행동의 변화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마3:8절에서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했습니다. 즉 눈물로 입으로 하는 회개가 아니라 열매 있는 회개를 요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찍어 버리고 불태우라고 했습니다. 그러신 다음 천국을 전파하셨습니다.
'천국이 가까웠다'는 말은, 여기서 천국은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통치의 개념입니다. 곧 천국은 어떤 장소라기보다는 누가 통치하는가가 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다는 말은 천국이 임했다는 말로 직접 해석한 것입니다. 천국의 지배자요, 통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곳이 천국이요, 예수님이 지배하는 곳이 바로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천국은 이미 우리에게 와 있습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계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믿/
▶25절 "요한이 그 달려 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 풀기도 감당치 못하리라 하였으니"
세례요한은 주님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사람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과 태도가 분명했습니다. 그의 신앙의 태도를 보세요! 마3:11절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또 요1:27절에서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하더라.'
이것이 바로 세례요한이 주님께 대한 태도였습니다. 또 세례요한은 예수님에 대하여 요3:30절에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진정 주님을 따르는 자의 모습입니다. 자기의 삶과 죽음을 송두리째 맡기고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 세례요한의 모습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주님을 섬기는 자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어떤 경우에도 영광을 받으셔야 하고 나는 어떤 경우에서도 그 영광의 그늘에 숨겨져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세례요한은 자기의 위치와 사역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는 사역의 월권도 없었고, 사역의 포기도 없었습니다.
대부분 우리들은 일을 하다보면 월권 아니면 포기를 합니다. 요1:19절 이하를 보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볼 때 세례요한의 인기와 능력이 보통 아님을 알고 이런 질문을 합니다. '네가 누구냐?' 그때 세례요한은 숨김없이 큰 소리로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라고 대답합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그가 그리스도인줄 알았습니다. 그만큼 그는 능력과 불같은 메시지와 하늘의 음성을 들려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숨기지 아니하고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요1:23절을 보면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대답했고, 본문에서처럼 '나는 그분의 신 들메를 감당치 못하였다'고 고백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보내신 '구원의 말씀'이 누구이십니까? 요한복음에서 '말씀(로고스)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신'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헬라철학에서 로고스는 '피조물 중에 가장 높은 존재'를 말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로고스'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로고스'입니다. 히브리어 적인 표현으로 하면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입니다.
로마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란 표현이 높은 사람에게 흔히 쓰는 말이어서 '로고스'로 번역했다고 '곽선희' 목사님은 그의 설교 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말씀'이신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구약에서 선지자들을 통해 주셨던 하나님의 모든 말씀들은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예언된 그 말씀들이 성취되었습니다.
창3:15절의 말씀이 사실로 나타났습니다. 유월절 사건이 완성되었습니다. 성막에서의 제사들이 실체를 찾았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모든 말씀은 그림자였지만, 실체가 있는 그림자였음이 밝혀진 것입니다.
구약의 예언들은 그 실체이신 예수님이 오심으로 인하여 구원에 대한 모든 하나님의 목적은 뚜렷이 이루어졌습니다. 선지자 세례 요한은 이 사실을 깨닫고 사람들에게 실체이신 예수님을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 풀기도 감당치 못하리라' /할/ 이런 위대한 신앙을 보신 예수님이 세례요한을 가리켜 눅7:28절에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 보다 큰이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26절 "형제들 아브라함의 후예와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아브라함의 후예'는 이스라엘 백성을 말하며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란 이방인들 가운데 유대교로 전향한 사람을 말합니다.
본문을 통하여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의 말씀을 보내주셨다고 하셨습니다. 구원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합니다. 여기서 유대인들의 개념을 깨뜨리는 말씀을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해서 무조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유대인들에게는 충격적인 말씀입니다만 이방인들에게는 큰 은혜가 되는 말씀입니다.
▶27절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구원의 말씀이신 예수께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 예수님을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무덤에 매장해 버렸습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손쉬운 방법입니다. 세상은 나에게 꺼리는 대상을 죽이고 매장해 버립니다. 그것으로 성취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왜 못 박았습니까?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정통한 종교지도자들에게 '알지 못하므로'라는 표현을 쓴 것은 단지 성경적 지식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순종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목적보다 자신들의 목적을 앞세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신이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목적이신 예수를 못박아버리고 매장해버린 것과는 정반대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믿/
여기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은 유대인들을 가리키고 '관원'들은 당시 종교, 정치지도자들과 예수 그리스도를 처형했던 주범들을 가리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안식일마다 읽었습니다. 율법 중에서 신명기서와 선지자의 글은 이사야서를 읽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구주가 이 땅에 오실 것을 예언해 놓은 선지서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매 안식일마다 율법서를 읽고 선지서는 읽지만 건성으로 읽었는지 그 뜻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줄줄 외우면서도 그 뜻을 몰랐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줄줄 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말씀을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아 이 땅에 구주가 메시아로 오신다는 글이로구나!' 깨달아야 되는데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선지자들의 말에 응'하게 하였다고 설교하고 있습니다. 사53:5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는 이사야의 예언을 이루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이같이 지적한 것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무지함을 강조한 것도 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형한 책임이 그들에게 있음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28절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본문에서부터 빌라도의 재판과정을 언급합니다. 빌라도와 유대종교지도자들로부터 예수님을 넘겨받아 심문을 해 보았으나 그에게서 아무 죄목을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백성들에게 '이 사람의 죄가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할까?'했는데 유대 백성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바나바를 놓아달라'고 아우성을 췄습니다. 빌라도는 주관이 없는 지도자였습니다.
▶29-30절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살리신지라."
'말씀을 다 응하게 할 것이라' 바울은 예수님의 재판과 처형을 이미 성경에 예언된 바의 성취로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 번이나 '내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잡혀 십자가에 죽을 것이나 3일 후에 부활할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바울은 이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무에서 내려 무덤에 두셨으나' 지금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재확인하면서 부활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즉 장사지내고 무덤에 들어가셨다는 점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분명하게 증명해 주었습니다.
막15:42절 이하에 보면 아리마대 요셉이 담대하게 빌라도에게 가서 '주의 시체를 달라'고 해서 세 마포에 싸고 예수님을 자신의 가족묘에 두었습니다. 이 사실을 바울이 설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살리신지라' 부활신앙의 고백은 초대교회에서 이미 공통된 교리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기독교의 5대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죽음, 부활, 승천, 재림'입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신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31절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날 보이셨으니 저희가 이제 백성 앞에 그의 증인이라"
본문은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목격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확실성을 설교한 것입니다.
여기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은 12제자를 비롯한 여인들과 70인의 제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의 첫 증인은 베드로가 아니고 요한, 야고보도 아닌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였습니다(마28:1).
눅24:5-7절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천사가 여인들에게 준 메시지는 '그가 살아나셨느니라'입니다.
여기 살아나셨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2천 년 전에 아리마대 요셉이 예비한 새 무덤에 예수님의 시체가 누워 있지 않고 살아나셨다는 것은 그때만 살아나셨다는 뜻이 아니라 2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살아 계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살아나셨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당시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들이 12제자들과 70인의 제자들과 그리고 여인들뿐이었습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인 줄 믿습니다. 바울은 고전15:6절에서 12사도들과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여기 '여러 날'이란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지상에 계셨다는 말입니다. '백성 앞에 그의 증인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이 부활의 산 증인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32절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바울과 바나바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 하는데 이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그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롬4:13절과 갈3:16절에서도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오신 분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갈3:16절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의 복음이 유대인들에게 이단적인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믿는 그 하나님의 약속이며 그 약속이 성취된 소식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유대인들의 오해와 무지를 벗어주고자 힘썼습니다.
▶33절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곧'이란 말은 그 성경에 약속을 설명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 곧 하나님의 약속대로, 예언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무덤에서 일으켜 세우셨다고 말합니다. 여기 나오는 하나님이 다른 하나님이 아니라 너희가 믿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빨리 눈치 채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무덤에서 일으켜 세우셔서 오늘날 저와 여러분들의 자녀들 앞에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바울은 시2편을 예언의 증거로 들고 있습니다.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하셨고, 둘째 편은 2장이란 말입니다. 시2:7-12절은 메시아에 대한 예언입니다.
시2:7절을 보면 '내가 영을 전하노라' 하나님의 명령을 전한다는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예수님을 가리켜 한 말씀인데 '낳았다'는 말은 '아버지가 아들을 낳고'란 개념이 아니라 3위1체의 개념으로 하나님과 그 아들을 영원히 자존해 계셨음을 말씀해 주는 영원현재분사입니다.
또 시2:11-12절에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라는 말입니다. '아들에게 입 맞추라'는 말은 기쁨으로 예수님을 맞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내신 구주를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입 맞추지 아니하면 즉 영접하지 아니하면 뭐라고 했습니까?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그러니까 바울은 지금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믿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방편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34절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란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사망에 지배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썩음을 당하지 않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장례를 치르면서 니고데모가 몰약 섞은 침향 백근을 예수님의 몸에 넣었습니다. 몰약은 시체를 썩지 않게 하는 방부제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임을 당했으나 썩지 않았다고 하였는데 그 말씀을 사람을 통해서 이루셨던 것입니다.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는 말씀은 사55:3절을 인용한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서 약속한 확실한 은혜입니다. 즉 구주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이 말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주로 오신 것을 의미한 말씀입니다.
▶35절 "그러므로 또 다른 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또 다른 편에'란 말은 33절에서 언급한 둘째 편(2:7)과 구별되는 시편을 뜻하는 말로 여기서는 시16:10절 이하를 근거로 해서 구약 적인 부활사상을 다시 언급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증거를 더 굳히고 있습니다. 시16:10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나이다"
다윗은 이와 같이 썩음을 당하지 않는 장차 오실 메시아를 바라보면서 이 시를 지었습니다. 구약의 성경의 인물들은 오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았고, 신약의 인물들은 오신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전부가 예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할/
▶36절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바울은 22절에서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고 언급했는데 여기서도 다윗의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낼 사람으로 언급하면서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던 인물임을 말하며 다윗을 높이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윗을 언급한 것은 유대인의 정서를 바울이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다윗 왕 같은 성군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그 다윗의 예언을 인용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강조한 것은 유대인들의 조상들이 아브라함 때부터 오실 메시아를 예수 그리스도로 보고 있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나이 많아 죽어 이미 무덤 속에서 썩었습니다. 이 말을 강조한 것은 시16:10절의 '주의 거룩한 자'를 다윗 자신이 자신을 가리킨 말이 아니고 '오실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 말로 그 분이야 말로 사망의 권세를 썩어질 몸이 아닌 부활의 주님이심을 선포한 것'입니다.
▶37절 "하나님의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바로 이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지금 유대인들은 구약만 알고 있기 때문에 구약을 설명하면서 구약의 시편 말씀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신다고 하셨고, 그 아들이 오시면 입 맞추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시편에 다윗이 예언하기를 '의로운 자가 오시는데 그분은 썩음을 당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만약 그 말이 다윗 자신을 두고 한 말이라면 다윗은 죽어 썩고 없으니 성경의 오류가 됩니다. 그러므로 죽었다가 살아난 분이 있어야 그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 되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너희들이 믿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초대교회 설교의 대 주제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 만물은 죽음으로 끝장납니다. 재벌도 죽으면 끝장입니다. 진시황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이 끝장입니다. 김일성의 대를 이은 김정일이 그 정권이 오래 가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그것도 오래 지속되지 못합니다. 소련이 끝장나는 것처럼 마지막이 멀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죽음으로 끝장나게 되어 있습니다. 온 세상은 죽음의 권세 앞에서 쥐 죽은 듯이 침묵할 뿐입니다.
그러나 오늘 부활에 관한 말씀을 하시면서 34절부터 '당하지 않게 하신다.'는 말씀을 세 번 연속 되풀이하십니다.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의 권세에 썩어져 가는 그런 패배를 당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가족으로서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이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통치권이 회복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이루어졌을까요? 하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는 산 자 가운데서 통치하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사탄의 권세, 사망의 권세를 깨는 것입니다. 죄를 정복하고 사망의 권세를 이기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목적은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주의 거룩한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살아 계신 주님께서 지금도 주의 백성을 다스리십니다. 살아 계신 주님께서 고난 당하는 성도들을 방치해두지 않으십니다. 돌보시고, 동행하십니다. 욥과 같이 악한 사단의 시험 속에 있는 성도를 보고 계십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와 함께 풀무불 속에까지 가셔서 돌보십니다. 다니엘과 함께 사자굴 속에까지 동행하십니다. 다시 사신 주님은 오늘도 주의 백성을 눈동자처럼 지키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목적을 완전히 성취하신 것입니다. 죄로 인하여 에덴을 쫓겨 난 인간을 살아 계신 하나님의 통치 속으로 들어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아멘!/할/
▶38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그러니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그분을 믿어야만 죄 사함을 받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구원자에 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지금으로 4천 년 전 사람이고, 다윗은 3천 년 전 사람인데 아브라함에게 복의 근원이 된다고 약속하신 것은 그의 후손 중에 구원자가 오신다는 약속이요, 다윗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다고 약속했는데 아들을 믿는 자만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가장 신임하는 아브라함, 다윗 그리고 39절의 모세를 들어 증언하고 있습니다.
▶39절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사도바울은 계속해서 모세의 율법을 통해서는 어느 누구도 의롭다함을 얻지 못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모든 죄를 다 사함 받고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해 주신다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40절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여기서 '선지자'는 하박국 선지자를 가리키며, 말씀은 1:5절에 경고한 말씀으로 이는 하나님을 불 신앙하는 이스라엘이 멸망당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바울이 이 말씀을 인용한 것은 구세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그들은 멸망 받을 수밖에 없음을 경고하기 위해서입니다.
▶41절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이를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바울은 합1:5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조상들이 선지자의 말씀을 멸시하다가 망한 것같이 너희도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의 말씀을 믿지 않고 멸시하다가 망할까 두려워하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합1:5의 말씀을 70인 역은 약간 변형시켜 사용한 말로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예수님의 복음을 멸시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멸시하는 자들은 '놀라고 망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일을 행할 것이니'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운동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운동은 하나님의 비밀이므로 사람의 지혜로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고 믿지 못합니다. 오직 성령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고전2:6-14참고). 그래서 바울은 고전1:18절에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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