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강) 헤롯왕의 핍박! (행 12:1-12)
행11장에서 선교의 역사가 놀랍게 발전해 나가는 현장을 보았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핍박을 받자 성도들이 그 핍박을 피하여 곳곳으로 흩어져 떠나 살면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안디옥교회도 핍박을 받던 성도들이 헬라인에게 예수님을 전해서 세워진 교회입니다. 안디옥교회는 '모범적인 교회요, 이방인 교회의 어머니 교회이며, 이방 선교의 센터'가 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처음으로 크리스천이라는 칭호를 얻습니다.
▶안디옥교회를 한번 점검해보겠습니다.
①참 성도들이 세운 교회입니다. 환란과 핍박 중에서 믿음 하나 지켜보려고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안디옥까지 도망간 평신도들이 세운 교회가 안디옥 교회입니다. 참 믿음은 환란을 먹고 자랍니다. 좋은 교인들이 세운 교회는 좋은 교회입니다. 건물이 좋은 교회가 좋은 교회가 아닙니다.
②하나가 된 교회입니다. 온 성도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선배 바나바와 후배 바울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무식한 자와 유식한 자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목회자와 성도들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③오직 주님만 전하는 교회입니다. 행11:20-21절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교회 성장에는 비결이 없습니다. 그저 우직스럽게 오직 예수만 전하면 성도가 살고, 교회가 살게 됩니다.
④최초로 '그리스도인'이란 칭호를 받은 교회입니다. 오직 예수만 높이고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의 마음을 품고 그리스도인의 사업만 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 그리스도인입니다.
⑤은혜가 충만한 교회입니다. 행11:23절에 바나바가 안디옥교회를 가보니 은혜가 충만하였습니다.
⑥구제하는 교회입니다. 온 천하가 크게 흉년이 들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안디옥교회는 도와주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쓰고 남은 것 도와주는 교회가 아니라 안 쓰고, 안 입고 도와준 교회입니다.
⑦선교하는 교회입니다. 세계 역사상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가 안디옥교외였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을 파송한 교회가 바로 안디옥입니다.
▶이제 본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지상에 세워진 교회는 '전투적 교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세상에 세워진 모든 교회는 항상 죄악과 더불어, 사탄과 더불어 거룩한 전투를 하는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을 배우면서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새롭게 탄생한 초대교회가 심한 박해와 돌풍 속에서도 승리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먼저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는 사도들에게 유대의 교권주의자들이 갖가지 박해를 가했는가하면 5장에 보면 교회 안에 일어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이 있었고, 7장은 다시 교권주의자들로 말미암아 스데반 집사의 순교가 계속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죽음에 이르는 박해의 물결 속에서도 오히려 교회는 이 풍랑으로 더 활기를 띠고 복음의 무대가 예루살렘에서 유대로, 유대에서 사마리아로, 안디옥으로 확산된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 운동의 확산을 문 앞에 두고 주님의 교회는 다시 헤롯왕으로부터 가해지는 큰 박해를 받게 됩니다. 그것은 주의 제자 야고보가 순교를 당하는 엄청난 환란이요, 주의 수제자 베드로가 감옥에 갇히는 핍박이 온 것입니다.
스데반의 순교는 교권적, 종교적 박해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헤롯의 박해는 정치적, 권력적, 박해의 첫 케이스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은 야고보의 순교와 베드로가 감옥까지 들어오는 헤롯의 박해로 시작됩니다. ◀제목소개!▶
▶1절 "그 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하여"
'그때에' 이방교회인 안디옥교회가 아주 부흥이 되어 선교사를 파송하고 구제헌금을 예루살렘교회에 전하고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고 있을 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지상교회를 가리켜 '전투적 교회'라고 하고, '천상 교회'를 '승리적 교회'라고 합니다. 앞으로 우리가 갈 곳은 전쟁이 없는 곳, 저 영원한 천상 교회인 천국에는 감사와 찬양만이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의 교회는 전투적 교회로서 주님 앞에 갈 때까지 계속하여 죄악과 사탄과 싸워야 하고 세상과 싸워야 합니다. 우리 신앙 인들은 교회가 부흥되고, 또 성도들 안에 모든 일들이 잘 되어질 때, 그때에 사탄이 틈타기가 쉽습니다.
'그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교회가 왕성할 때에 선교와 구제가 잘 될 때에 사탄이 도전해 옵니다. 교회 안에 부패가 일어나도록 도전해 오기도 하고 핍박을 통해서 도전해 오기도 합니다.
헤롯왕이 처음에는 이름 없는 몇 몇 성도들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간교한 헤롯은 그 칼날을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인 야고보에게 들이댔습니다.
▶신약에는 다섯 명의 대 헤롯이 나오는데 잠시 그들을 살펴보겠습니다.
⑴대 헤롯: 그는 유대의 왕으로(B.C.37-A.D.04) 베들레헴의 어린아이들을 학살한 자로 아기 예수를 죽이려 했습니다(마2:16-18). 그는 11명의 아내를 거느리고 그 중 다섯이 자녀를 낳았는데 자녀들 간에 반목과 질시, 불륜관계 등 비극의 연속이었습니다.
⑵헤롯 아칼라오(A.D4-6): 그는 대 헤롯의 4번째 아내였던 사마리아 여인 '말디스'의 소생으로 대를 이었으나 곧 폐위되었습니다.
⑶헤롯 안티파스: 그는 아켈라오의 친동생으로 제수인 헤로디아를 빼앗고 세례요한의 목을 베어 죽인 자(마14:1-11, 막6:14-39)입니다.
⑷헤롯 아그리바 1세: 그는 대 헤롯의 손자로서 오늘 본문의 주인공입니다. 그는 철두철미한 권력형이며, 기회주의자였습니다. 그는 황제에게 아첨할 뿐 아니라 유대인들에게도 환심을 사기 위해서 친 유대교 정책을 폈으며 유대교인들이 싫어하는 기독교 박해 운동에 그의 권력을 여지없이 보여주었습니다. 본문의 야고보를 칼로 죽이고, 베드로를 투옥시킨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⑸헤롯 아그리바 2세: 1세의 아들로서 가이사랴에서 바울을 재판했던 자입니다.
본문의 헤롯이 야고보를 죽인 것은 정권이 교회를 박해하는 기독교 기독교역사의 첫 번 케이스입니다. '손을 들어'란 말은 헤롯에 의하여 박해가 시작되었음을 나타내는 문학적 표현방법입니다. 공동번역은 '박해의 손을 뻗쳐'입니다.
'해하려 하려' 고통을 주거나 심지어 죽이는 것과 같은 핍박과 관련된 악한 행위전부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야고보의 순교를 너무 간단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2절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예수님 당시에는 유대인들에게 사형 권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요청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그립바 때에는 이런 사형 권이 허락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 첫 번째 순교의 잔을 마신 야고보는 세베대의 아들로 큰 야고보라고 불렸습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작은 야고보로 구별하여 불렀습니다.
그의 아버지 세베대는 어부이면서도 선주였습니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제자들 중 베드로 요한과 더불어 세 명의 수제자 중 한사람입니다. 그는 성질이 급하고 칼 같아서 '우뢰의 아들'이란 별명을 예수님께서 지어 주셨습니다.
본문의 야고보는 주님이 야이로의 딸을 살릴 때(눅8:49-55), 변화산상의 기도회에(마17) 그리고 마지막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같이 동행한 제자입니다.
제1차 박해 때는 사울이 신실한 스데반 집사를 죽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도 야고보를 죽였습니다. 야고보는 요한의 형입니다(마10:2). 그는 예루살렘 교회를 세운 주역 중에 하나입니다. 베드로는 선교 지원을 위하여 이방의 사미리아, 욥바, 가이사랴로 나갔으나 야고보는 항상 교회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의 책임자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를 죽이는 것은 예루살렘 교회의 뿌리를 뒤흔든 것입니다.
야고보는 예수님이 마20:23절에서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순교자가 나온 것은 예언하신 것처럼 첫 번째 잔을 마신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제자 중에서 첫 번째 순교자입니다.
이것은 그가 죽기까지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고, 예수님을 증거하고 소망한 결과입니다. 이렇게 야고보는 첫 순교자가 되어 첫 열매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스데반은 평신도로서 첫 순교자였지만 야고보는 사도들 중에서 첫 순교자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순교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순교하고 싶어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 압제 시대에 어떤 사람이 순교하고 싶어서 주재소에 찾아가서 '나를 잡아죽이시오, 순교하겠습니다.'했더니 주재소 순경이 발길을 차면서 '미친놈'이라고 내쫓았답니다. 그래서 '아 순교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순교해야 될 사람, 순교해야 될 때를 주셔야 합니다. 계6장을 보면 순교가 최고의 복이기 때문에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계6:9-11절에 보면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자들이 예수께서 빨리 재림하셔서 심판해 주시기를 말씀드렸더니 아직 순교할 사람이 더 있으니 그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시면서 '흰 두루마리를 주셨다'고 했는데 '순교자의 수가 더 있다'는 것입니다. 그 순교자의 수가 차면 심판이 시작된다는 말입니다. 지금도 남미나 회교도 국가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는 사람들이 종종 나온다고 합니다.
▶3절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일이라"
사도 야고보를 처형한 헤롯 정권에 유대인들이 특히 예수님을 핍박했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그들은 추종하는 무리들이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헤롯 정권에 대하여 열렬히 지지했던 것입니다. 이 기뻐하는 모습을 본 헤롯이 이번에는 두목 격인 베드로를 잡아죽이면 저들이 더욱 기뻐하고 나를 지지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베드로까지 잡아 감옥에 넣은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정치는 '진리냐 거짓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여론에 놀아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정치란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헤롯도 여론에 놀아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잘 죽었다고 좋아하니까 한 사람 더 죽이면 인기를 끌겠다 싶어 베드로까지 옥에 가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를 잡아넣은 날이 언제라고 했습니까? 그때가 무교절이라고 했습니다. 무교절이란 유월절 다음날부터 한 주간을 말하는데 이 기간에는 누룩 없는 빵을 먹습니다.
이 절기는 출12:15-18에 명령한 것입니다.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이 무교절 날을 이용하여 베드로를 잡아넣었습니다. 이때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절기를 지키기 때문에 여론을 잘 탈 기회를 포착한 것입니다.
헤롯은 민중의 인기가 올라가니 기분이 좋아서 베드로까지 잡아 옥에 가두었는데 결국 이 헤롯은 천벌을 받아 죽습니다. 미리 23절을 보면 '충이 먹어' 죽습니다. 사람 따라, 인기 따라 걸어가다가 그의 말로가 비참하게 된 것입니다. /믿/
▶4절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사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내고자 하더라"
그 당시 예루살렘 인구가 10만 정도였는데 유월절, 무교절이 있을 때는 무려 100-200만이 모인다고 합니다. 외국에 살고 있는 헬라파 유대인들까지 다 올라와서 절기를 지키기 때문에 그 절기 마치고 타이밍을 잘 마쳐 베드로를 죽이면 헤롯의 인기는 급상승할 것을 기대하고 절기동안 옥에 가두어 군사 16명을 세워 지키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보통 죄수는 이렇게 하는 법이 없습니다. 보통 죄수를 지키는 데는 두 사람이면 족합니다. 중죄인도 죄인의 쇠사슬을 군사 두 사람의 발과 손목에 매 둠으로 아무도 도망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베드로는 그렇게 묶어 두고도 보초서는 자를 4조로 겹겹이 쌓아둔 것은 행5:20절부터 나오는 사건 때문입니다. 그때는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 원로들에게 잡혀 옥에 들어왔는데 그 다음 날 회의를 통해 잡아서 심판하고자 보냈더니 옥은 굳게 잠겨있고, 보초병들도 다 서 있는데 열고 보니 사도들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저번에는 저희들이 무슨 요술을 부렸는지 모르지만 이번에는 안 된다.' 싶어 철저하게 지킨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이제는 끝장이다 싶습니다. 야고보도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니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낙망하기 딱 좋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멘!/
진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조개가 부드러운 속살인 혀끝을 내밀어 모래 뻘을 기어다니다가 모래알이나 이 물질이 부드러운 속살의 혀끝에 박히게 됩니다. 이때 조개는 이 이 물질을 뽑아 내려고 온 몸이 고통을 겪으면서 진 액을 뿜어냅니다. 이렇게 해서 쥐어 짜낸 진 액이 싸이고 싸여서 점점 굵어져 진주 알이 됩니다. 조개가 고통 중에서 온몸으로 뿜어낸 진 액의 결정체가 바로 진주라는 값진 보석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약1:2-4절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기도할 때 역경을 없이 해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역경을 이길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5절은 옥에 갇힌 베드로를 위하여 교회가 기도로 하나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5절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베드로는 감옥에 갇혔지만 교회는 베드로를 위하여 긴급 기도회가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묶였지만 기도는 묶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기도는 어떤 기도인가?
⑴환난 중에 올리는 기도입니다. 성도들이 베드로의 체포를 교회의 위기로 판단한 것입니다. 이미 야고보는 처형되었고, 베드로 역시 처형될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예루살렘 교회는 큰 환난이 온 것입니다. 시50:15절을 보세요!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⑵교회적인 기도입니다. 그들은 야고보의 순교나 베드로의 투옥이 결코 개인 문제가 아니라 저들이 당하는 환란은 바로 교회의 문제요, 교회의 문제는 곧 자신들의 문제로 알고 기도한 것입니다.
⑶간절한 기도입니다. 열렬한 애원의 기도입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의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는 생명력이 넘치는 기도입니다.
⑷굳게 단결한 기도입니다. 교회가 기도했다는 것은 교회가 하나 되어 뭉쳐다는 것입니다. 즉 교회의 위기 앞에서 두려워 흩어진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합력하고 단결하는 기도였습니다.
이 사건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줍니까? 고난 중에 있는 교회가 기도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기도는 오늘도 역사를 일으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오는 통로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오는 통로입니다. 기도는 모든 문제의 해결의 키입니다. 기도의 맛을 아는 사람은 늘 깨어 기도합니다. 믿음의 기도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주님은 '믿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어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히11:6절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우리가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인격의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이요, 또한 하나님을 찾는 자는 기도로 말하고 상주시는 응답임을 믿고 기도합니다.
지금 베드로가 살아 나올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기도말고는 다른 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옥에 갇혀있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빌었다'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간절한 기도는 능력이 있습니다. 힘이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말씀하기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5:16)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도 얼마나 간절한 기도였는가를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눅22:44절에서 누가는 기록하기를 '예수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 같이 되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바브로 디도를 칭찬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저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였다.'(골4:12)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간절히 기도했다'는 말은 '피나는 노력이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실로에 있는 성막에 나가 기도하는 한나를 여러분 보십시오, 그가 얼마나 간절히 기도를 하였는지 엘리 제사장이 곁에서 보고 술에 취한 여인인줄 알았을 정도입니다. 간절히 기도한 다는 것은 모든 정신을 거기에 집중한다는 말입니다.
창32장에 야곱이 고향 땅으로 돌아오는 길에 형에서가 자기를 죽이려고 4백인의 군사들을 이끌고 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야곱은 간담이 써늘했습니다. 그리고 식구들을 앞서 다 보내고 그 밤에 얍복강가에 홀로 남아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그것을 씨름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씨름도 날이 새도록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처절한 몸부림이었습니다. 결국은 환도 뼈가 이골 될 때까지 하나님께 부르짖더니 하나님께서 에서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셔서 극적인 상봉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변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창32:28).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었음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을 이기겠습니까? 그러나 여기서 '이겼다'라고 표현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과 위대하심을 믿고 반드시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심을 확신함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져 주신다'는 것이요, 응답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믿/
▶6절 "헤롯이 잡아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애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숫군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사형 당하기 전날 밤에도 베드로는 두 개의 쇠사슬에 묶인 채 두 군사 틈에서 자고 있습니다. 또 다른 두 명의 군사는 첫째 문과 둘째 문에서 굳게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 베드로가 자고 있습니다. 우리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잠을 잘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불안해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놀라운 평안이 그를 감싸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만나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멘!/
어느 수필가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총각이 한 처녀를 너무나 사랑하여 결혼하자고 매일 편지를 보냈습니다. 365일을 계속해 보내었습니다. 우체부가 매일 편지를 날라다 주면서 그 처녀를 매일 365번을 만났답니다. 나중에 보니 그 처녀가 우체부와 결혼했습니다. 계속적인 만남은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만난 베드로에게 평안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고장난 인간입니다. 고장난 자동차는 정비공을 만나야 하듯이 고장난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고장난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야만 고쳐질 수가 있습니다. 잘 정비되지 않은 비행기는 하늘을 무사히 날 수 없습니다.
베드로가 극한 상황 속에서도 평안히 꿈속을 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만나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시127:5절에서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베드로의 모습에서 ⑴절대로 탈출이나 구출을 엄두도 못할 만큼 삼엄하고 철저하게 감시당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으며, ⑵베드로 자신도 탈출할 의도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교회에서 성도들이 간절히 기도하니 하나님의 역사가 드디어 일어나고 있습니다.
▶7절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교회의 위기를 맞이해서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권능을 의지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를 위하여 정말 간절히 기도했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가 기적을 가져 왔습니다. 바로 그들이 베드로를 위하여 기도하기 시작하였던 그 밤입니다. '홀연히 주의 사자'가 베드로에게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곁에 섰습니다. 옥중이 대낮과 같이 밝게 빛났습니다.
'주의 천사'가 자기의 사랑하는 백성을 구원하시는데 동원된 것을 여기서 봅니다. 언제 그의 천사가 그에게 찾아 왔습니까? 그들이 기도를 시작할 때였습니다.
단9:23절에 보면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시작하면 하나님도 움직이기 시작하십니다. /할/ 하나님께서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무엇이 필요하신 지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겔36:37절에서는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하면 주시고, 찾으면 찾게 하시고, 두드리면 열리게 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온갖 좋은 은사들을 주실 때에 무조건 주시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게 하심으로 응답의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지금도 문이 열립니다.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초자연적인 간섭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천사를 동원하십니다.
여기 '사자'는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하늘의 능력을 말하는 것으로 '천사 또는 사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의사자가 나타난 것은 성도들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며 한편으로 베드로의 구출에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주의 사자가 나타나자 갑자기 옥 속에 광채가 환하게 비추었습니다. 그곳은 어두운 곳이었고, 또 밤이었지만 찬란한 광채가 베드로에게 갈 길을 확실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천사는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서 그를 단잠에서 깨웠습니다. 그는 너무 곤하게 잠이 들었으므로 빛이 비춰도 잠에서 깨어나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어찌 이렇게 잠꾸러기가 되었습니까? 내일 사형 당한다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쿨-쿨' 잠을 잡니까?
베드로가 잠을 푹 잤다는 것은 분명 하나님께 맡기니 주의 평강이 그 마음을 사로잡아서 육신도 평안히 잠을 잘 수가 있었습니다. 이런 신앙이 귀합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하나님은 살아 계심으로 역사는 일어납니다. /믿/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일을 하십니다.
렘33:2절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지금도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과 응답의 일을 행하십니다. '그 일을 성취하시는 여호와'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성취하시는 여호와이십니다. 그 이름이 '여호와, 스스로 계신 자, 만물을 다스리는 자, 언약을 주시는 자' 그 하나님이 지금도 일을 하시고 성취시킵니다. /믿/
지금 그분이 베드로를 일으켜 세우십니다. 교회의 기도의 역사입니다. 주의 사자가 '일어나라'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겨졌습니다. 사람이 쇠사슬로 결박해 놓아도 주의 명령 한 마디면 쇠사슬이 불탄 실같이 순식간에 다 벗겨집니다.
그리고 '절로 열리는지라'는 말대로 기적적인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이 사실을 믿고 우리는 기도의 힘을 얻습니다. 기도의 힘을 얻어야 영적으로도 육적으로도 살 수 있습니다. 기도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렘33:3절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아멘!/
▶8절 "천사가 가로되 띠를 띠고 신을 들메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가로되 겉옷을 입고 따라 오라 한대"
베드로가 잠을 잘 때 허리띠를 풀어놓고 겉옷을 벗어 덮고 잤습니다. 신발을 벗고 잤습니다. 아주 평안하게, 절대로 도망갈 생각을 안 하고 잤습니다. 그런데 천사가 띠를 매고 신을 신으라고 합니다.
당시의 복장은 반드시 허리띠를 띠어야만 걸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신발은 나무나 가죽으로 밑바닥을 만들어 가죽끈은 발목에 매는 것이었으므로 벗었다가 신을 때는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그만큼 시간이 걸렸지만 보초병들이 깊이 잠들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행5장에서도 사도들이 감옥에 갇힌 적이 있습니다. 그때 주의 사자가 옥문을 열어 주시면서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사자는 죽음 앞에 놓인 베드로에게 전격적으로 개입하십니다. 그리고 천사를 통하여 '급히 일어나라' '띠를 띠고 신을 들메라' '겉옷을 입고 따라 오라'고 하십니다. /할/
▶9절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 새 천사의 하는 것이 참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베드로는 이전에 환상을 본 사람이었습니다. 고넬료가의 사건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환상인가? 꿈인가? 생시인가?'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중에도 천사의 지시대로 따랐습니다. 따라가면서도 환상인가 싶었습니다. 너무도 뜻밖이었기 때문입니다.
▶10절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성으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절로 열리는지라 나와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천사의 인도를 받은 베드로는 위험에서 벗어났습니다. 파수꾼들이 통로마다 지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옥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직도 통과해야 하는 철문이 있었지만 손도 대지 않았는데 철문은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서 저절로 열렸습니다. 베드로가 이 문을 통과하여 거리로 나왔습니다. 이때 주의 천사가 떠났습니다.
▶11절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나서 가로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줄 알겠노라 하여"
서늘한 밤 공기에 제정신으로 돌아온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헤롯과 유대인들에게서 구출해 주심을 깨달았습니다. 유대인들은 베드로가 다음 날이면 교수형을 당하리라고 분명히 믿고 있었습니다.
기독교계의 최고의 지도자의 목을 침으로서 기독교 전체의 목을 치는 효과가 있을 것을 바라는 대다수의 유대 백성들은 기대감에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베드로를 살리시어 그 기대감을 무너뜨렸습니다. 베드로는 비로소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얼마나 '강하냐? 약하냐?'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얼마나 '돌아보시느냐'가 중요합니다. /믿/ 세상이 악하고 강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바르게 믿느냐가 문제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만큼 돌아 보시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아멘!/
▶12절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이 집이 바로 마가의 다락방입니다. 가보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고 있는 것이 밖에서까지 다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성도들이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합력의 기도가 이렇게 역사를 일으킵니다. /믿/
▶고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죠지 뮬러'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얻은 기도 응답이 무려 5만 번 이상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세운 고아원만 해도 9,975개였고, 그 고아원을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들을 먹이고 입히고 돌보았다고 합니다.
그가 기도하면 기적같이 따뜻한 도움의 손길들이 고아원에 들어옴으로 그 많은 고아들을 돌볼 수 있었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이 그의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원래 '죠지 뮬러'의 성장기는 불행했습니다. 그는 어려서 집에 있는 물건들을 훔치는 좀도둑의 기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는 그를 신앙으로 키워보려고 온갖 노력을 했지만 그는 결국 16살에 교도소에 들어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교도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고, 그가 교도소를 나와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면서 기도하기를 시작했고, 그 기도가 '죠지 뮬러'의 인생을 고아의 아버지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구원의 책이며, 기도의 책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문제를 만나고, 고난을 만나고, 역경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했으며 하나님은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들의 부르짖음을 응답해 주셨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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