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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강) 베드로의 설교! (행 10:36-48)

by 【고동엽】 2022. 3. 10.

(제32강) 베드로의 설교! (행 10:36-48)

 

사도행전을 공부하다보면 여러 가지 장벽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 첫째로는 2-6장에서 히브리파 유대인들과 헬라파 유대인들의 장벽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이것은 각 계파간의 장벽을 허무는 소리입니다.
두 번째로는 8장에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의 장벽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이 복음 안에서 하나되는 화합의 소리였습니다.
그리고 행10장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간의 크나큰 담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이 일들은 전적으로 주의 성령이 인도하심과 말씀을 통한 역사입니다.
행10장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행동하는 두 사람이 나옵니다. 한 사람은 가이사랴에 주둔하고 있는 로마 정규 군인인 백부장 '고넬료'이고, 또 한 사람은 주님의 수제자요, 위대한 사도의 신분을 가진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격인 '베드로'입니다.
고넬료는 비록 이방 나라인 로마군의 백부장으로 있으나 그의 속 사람은 경건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구제에 힘쓰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24절 이하에 보면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라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준비하고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신앙은 준비하고 기다리면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자를 쓰시고, 기다리는 자를 축복하십니다. /믿/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기다립니까? 출세를 기다리고, 복권당첨을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고넬료는 한 차원 높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렸습니다.
그 다음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로 3년 간 예수님을 따라 다녔지만 그에게는 아직까지 유대사상이 가득 들어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베드로의 굳어진 유대주의를 깨뜨리기 위하여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레11장에 나오는 정결한 짐승들과 정결치 못한 짐승들이 함께 섞여 있는 보자기를 보여 주시면서 잡아먹으라고 하셨고, 베드로는 지금까지 더러운 것을 먹어본 바 없으므로 못 먹겠다고 거절했을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부정하다고 하지 말라'고 세 번씩이나 말씀하시고 공중으로 올라갔습니다.
베드로가 무슨 뜻인지 묵상하다가 고넬료가 보내온 사람들의 초청을 받았을 때,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심으로 그들과 함께 고넬료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러니까 두 사람 모두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을 통하여 고넬료에게는 '시몬에 있는 베드로를 청하라'는 계시를 받았고, 베드로에게는 '의심치 말고 일어나 내려가라'는 계시를 주신 것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계시로, 성령의 인도로 베드로가 고넬료 집에 도착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고넬료가 말씀을 받는 태도가 너무 귀합니다.
33절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이런 자세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통로입니다. 사실 전도란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시간표대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본문에도 보면 베드로가 한 번도 고넬료에게 복음을 제시한 일이 없는데 하나님은 복음으로 가득 찬 베드로를 보내서 고넬료를 건지신 것입니다. 전도는 되어지는 것이 확실합니다. 아나니아도 하나님의 시간표 따라 사울에게 보내어 위대한 사도바울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내가 복음으로 무장하고 기도로 무장하고 있으면 하나님은 현장으로 보내십니다. '무디'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나온 사람이지만 복음으로 무장하고 있으니까 가는 곳마다 전도의 열매가 나타났습니다. ◀제목소개!▶

 

34-35절은 지난 시간에 상고했습니다만 본문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서론으로서 소위 말하는 접촉점이 됩니다. 설교를 할 때나 전도를 할 때, 접촉점을 잘 찾아야 된다고 하는데, 상대방의 마음의 문을 열도록 처음에 서론이 중요합니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예수님도 산상보훈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이 나아오매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그 유명한 산상보훈의 서론입니다.
베드로의 서론을 듣고 고넬료의 마음이 얼마나 푸근했겠습니까? '아! 하나님은 혈통을 보시지 않는구나! 하나님은 순수한 마음 가진 자에게 은혜를 주시는구나! 사모하는 마음을 가진 자에게 은혜를 주시는 구나! 그래서 베드로를 보내주셨구나!' 마음의 장벽이 다 무너진 것입니다.
로마사람과 유대사람과는 아무래도 장벽이 두껍습니다. 지배민족과 피지배민족이므로 아무래도 껄끄럽습니다. 아직도 우리나라 사람과 일본 사람과의 관계는 껄끄럽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능력은 이런 감정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제 본문으로 돌아가 복음을 증거 합니다.

 

▶36절 "만유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고넬료는 이제까지 복음에 대한 소식만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베드로를 통해 복음 자체를 듣게 되었습니다. 복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고넬료는 이 말씀을 듣고자 베드로를 청한 것입니다.
다시 33절을 보자!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베드로를 통해서 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고넬료는 받았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몇 가지 유형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①말씀을 들어야 할 그 시간에 딴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②자기에게는 아닌 다른 사람에게만 주시는 말씀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③하나님의 말씀으로 듣지 않고 철학 강의 교양 강좌 정도로 생각하고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④듣기는 듣는데 하나하나를 비판하고 분석하고 난도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⑤오늘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말씀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본문의 고넬료가 그렇습니다. 우리도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아멘!/
▶본 절에서 베드로는 복음의 권위를 세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⑴'만 유의 주되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베드로는 창조주 하나님에게 사용하던 칭호를 주님께 사용하면서 '구원의 유일한 길'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여기 '만 유'의 헬라어의 뜻을 보면 '세계만물, 또는 모든 사람'을 뜻합니다.
롬10:12절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의 주'가 되신다고 했습니다. '만 유'란 표현은 '모든 피조물을 지칭하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 되십니다. /믿/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건지신 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메시아로 기름부음 받은 자이십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십니다.

▶제사장으로서 인간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선지자로서 하나님 앞에 가는 길을 여셨으며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오셨으며, 왕으로서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신 '여자의 후손'입니다(창3:15). 여자의 후손이 와서 뱀의 머리를 깨뜨리셨습니다.
지금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 유의 주로서 이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 되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의지하고 굴복해야합니다. 만약 거역하게 되면 멸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 되십니다. 생명의 주인을 따르는 것이 인간 근본문제의 해결책입니다. /믿/
⑵예수 그리스도는 화평의 주인공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화평의 복음을 전 하사' 예수가 구주로 오셔서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하늘과 땅 사이에 화평을 이루셨습니다.
롬5:1절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 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리고 롬5:11절에 보면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할/
⑶인간과 만물간의 화평으로 오셨습니다. 롬8:20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복음은 화평의 주제입니다. 요14:27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37절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반포'는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널리 퍼뜨리는 모든 말을 지칭합니다. 그러니까 반포는 선포와 같은 의미로써 그 반포에 '받지 않은 그 사람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세례요한이 회개의 복음을 전한 뒤에 예수께서 갈릴리로 시작하여 온 유대 땅에 복음을 전하신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여기 '그것'은 예수께서 전하신 말씀을 의미하는데 36절에서는 '로고스'로 표현했고, 37절에서는 '레마'로 표현했습니다.
본래 '레마'란 단어는 '말씀'이란 뜻이지만, 때로는 '사건'을 뜻하기도 합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가이사랴에 오셔서 복음을 전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에 대하여 듣고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큰 사건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너희도 알거니와'라고 말한 것입니다.

 

▶38절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나사렛'이라는 지명과 함께 예수님을 언급하여 그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성령을 기름 붓듯 하시고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다고 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가 메시아 되심을 증거 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베드로의 설교는 예수님이 메시아 되심을 증거 한 것입니다. '착한 일을 행하시고' 이 말은 헬라사상에 뿌리를 내린 말입니다. 즉 왕이 백성들을 보살피고 그들에게 애정으로 도움을 베풀어 줄 때, 헬라인들은 그 군주를 향해 선한 일을 행한다고 평가했습니다.
다시 말해 왕을 자기의 은인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통치자적인 모습은 연상시키면서 착한 일을 행하시는 것으로 진술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선하신 본질을 지니신 분임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선하심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마귀에게 눌린 자를 고쳐주셨고, 병든 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요10:10절에 보면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에 오늘날도 우리 가운데 오셔서 착한 일을 행하십니다. 마18:20절에서 예수님은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구원받은 성도는 임마누엘을 누려야 합니다. 이 누림이 바로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임마누엘 신앙이 얼마나 능력 있는 신앙인지 모릅니다. 여러분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으십니까? 이 사실을 늘 묵상하셔서 주님과 교제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할/
지금 베드로는 38절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셨으므로 성령과 권능으로 그와 같은 능력이 나타났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를 건져 주실 수 있는 분이심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고통에서, 죄에서, 모든 질병'에서 건져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그분은 '만유의 주'가 되시는 분입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할 때는 주님은 전능하신 분임을 전해야 합니다.
창3장의 인간 근본 문제를 해결하신 분임을 전해야 하고, 죄의 문제, 사탄의 권세를 꺾으신 분임을 말씀하고, 주께서 인간을 사랑하시는데 죄인까지도 사랑하시는 분이셨음을 전해야하고 인간에게 화평을 주시고자 오신 분임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전도의 주제도, 설교의 주제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할/

 

▶39절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여기서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에 관한 모든 일에 실제적인 증인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증언'이란 법적 용어로서 어떤 사실을 증명하신 사람을 의미합니다. 증인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있는 그대로 전해야 합니다.
지금 베드로는 예수께서 병을 고치신 것을 보았고, 귀신을 쫓아내신 것을 보았고, 천국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들었고, 그래서 증인이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이 증인들의 말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순신 장군을 보지 못했지만 전해오는 글을 통해서 믿고 있습니다. 본 사람이 적어 놓은 것이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본 사람이 기록으로 남겨 둔 것이니 확실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대부분 다 순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왜 순교했는지 아십니까? 그들은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보았고, 그 사실을 증거 했기 때문에 순교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본문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었으나'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입니다. 왜? 주님이 십자가에 죽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이제 저주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 십자가 위에서 사망 권세, 저주, 질병 등 모든 것을 해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멸망 받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으로 보이지만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들에게는 구원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믿/
구원의 능력!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덧입었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원수 마귀의 권세를 꺾을 수 있습니다. /아멘!/

 

▶40절 "하나님이 사흘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베드로는 지금 주님의 부활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구세주를 몰라보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예수님은 죽은 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지금 베드로는 '사흘만에 다시 살리사' 완전히 죽었다는 것은 확실히 증거 한 것입니다. 또 그의 부활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리셨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능력이 있습니다. 죽은 것 같지만 살아납니다. 부활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종교는 절대 부활이 없습니다. 왜? 공자도, 석가도, 마호메트도 지금은 무덤 속에 잠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단 교주들이 다 죽었습니다. 박태선 장로도 죽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그 무덤 가에서 박태선 교주의 부활을 기다리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는 죽어서 지금 지옥 불에 떨어져 있습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도 전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제주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지금도 복음의 핵심을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할/

 

▶41절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이 말씀은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께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모든 백성들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의 무덤 가에서 예수님만을 바라보았던 막달라 마리아와 또 다른 마리아에게 보이셨고, 그 다음은 제자들에게 보이셨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예수를 믿지 않고 예수를 따르는 사람에게 나타나서 '내가 예수다'고 말해 보았자 그들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봐야 증거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들에게만 나타나신 것입니다. /할/
예수님은 아무에게나 사명을 맡기지 않으십니다. 3년 간이나 같이 동고동락했던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먹고 같이 잠을 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증인의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본문에서 베드로는 사도 권에 대한 정당성과 그 권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42절 "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
'우리를 명하사' 예수 그리스도의 12제자들을 가리킨 말입니다. 그 후에 사도바울이 사도로 들어갔습니다. 사도란 주님이 직접 뽑은 제자입니다. 사도바울도 부활의 주님께서 다메섹 도상에서 직접 불러 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도에 대한 많은 도전을 받았지만 그는 자신 만만하게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임을 강조했습니다.
롬1:1절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또 고전1:1절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형제 소스데네는" 그의 서신 모두에서 그는 자랑스럽게 사도임을 강조했습니다.
예수님이 3년 동안 제자를 훈련시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바로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백성에게 전도하되' 성경의 모든 하나님의 명령은 전도입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제일 관심이 되는 것이고 지금도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고, 최후에도 집중되는 것입니다.
모든 세상사는 전도에 포커스를 맞춰서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 종말이 전도에 있습니다. 마24:14절을 보세요!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이 누구십니까? 오직 예수님만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분이십니다. /믿/ 지금 베드로는 재판장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산 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요, 죽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를 말합니다.
히9:27절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하나님의 심판이 왜 무섭습니까?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저 영원한 천국이 예비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밖에 있는 자는 영원한 지옥의 심판이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판단하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십니다. /믿/ 어느 누구도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바울은 고전4:5절에서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오시면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때 구원받은 사람은 상급의 심판을 받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 사람은 멸망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베드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증거 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43절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지금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안 모든 식구들이 이방인들이므로 구약을 잘 모르기 때문에 상세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고넬료는 구약 성경에 대한 깊은 조예가 없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모든 선지자'라고 했는데 그 대표적인 선지자로 '예레미아나, 이사야' 같은 선지자가 '예수의 오심'을 예언한 선지자들인데 그 예언대로 예수님이 오셔서 죄를 사해 주셨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는 지금 본문에서 ⑴예수 그리스도는 구약 언약의 성취의 메시아임을 선포한 것이고, ⑵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다 죄 사함을 받는다'는 구원론을 전하고 있습니다. /할/

 

▶44절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이 말 할 때'의 이 말은 누구의 말을 의미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말할 때, 성령이 모든 사람 위에 임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은 예수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 할 때' 곧 '예수님을 말할 때' 성령께서 내려오신 것입니다.
여기 '성령이 내려오시니'란 말은 '위에서 떨어지다. 덮치다. 압도하여 사로잡다'는 뜻입니다. ▶행2장의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전심으로, 일심으로, 지속적으로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하셨고, 또 행8:17절을 보면 사도인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할 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는 베드로가 설교할 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중에 성령께서 그들 가운데 임하시니 그들이 베드로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요3:5절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벧전1:23절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할/
왜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십니까? 말씀과 성령은 동전 양면과 같습니다. 말씀 사역과 성령의 사역은 동일하게 하나님을 높이는 사역입니다. 성령은 말씀을 증거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증거하시는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이 듣는 자에게 임하게 됩니다. 요일5:7절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45-46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베드로와 함께 간 성도들이 고넬료의 일가가 은혜를 받은 것을 보고 깜짝 놀라서 '하나님께서 저들에게도 성령을 주시는구나!' 하고 감탄했을 것입니다. 사실 그들은 '이방인들이야말로 개 같은 인간들이라고 생각하여 자기들과는 완전 다른 족속으로 알았는데 자기들과 똑같은 은혜를 받은 것'에 많이 놀랐습니다.
그 다음 46절에서 복음을 받은 결과 '모인 사람들에게 방언'이 터졌습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문도에게 성령이 임하셔서 방언이 터진 것과 같이 고넬료가에 성령이 임하셔서 모인 사람들에게 방언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할/
그들은 방언이 터지자 너무나도 감격하여 '오-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분들을 보내주셔서 진리를 깨닫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높여드렸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본문의 사건을 '가이사랴의 오순절, 고넬료가의 오순절'이라고 부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은 뭐니뭐니해도 성령 충만한 가정인줄 믿습니다. 행복한 가정이란 바로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과 행복을 소유한 사람들이 사는 곳입니다. 부부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부모자식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형제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그 가정은 자동적으로 복이 굴러옵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사랑하는 영이며, 화목케 하는 영이며, 온유하게 하는 영이며, 인내하게 하는 영이며, 희생하게 하는 영'이므로 성령의 충만한 가정은 행복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믿/
성령을 충만히 받으면 원망이 감사로 변하고, 미움이 사랑으로, 다툼이 화목으로 바뀌게 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성령은 사랑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47절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물세례를 주는 이유는 '성령을 받았다'는 증거로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물세례를 받았다고 성령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성령을 받아 구원을 받았기에 주는 것'이 물세례입니다.
이때는 학습문답이나 세례문답이 없이 그대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왜? 이들은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학습문답, 세례문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마음에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는 그 중심이 중요한 것입니다.
저희 교회는 아직까지는 학습문답이나 세례문답에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교회를 나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신앙으로 준비되어 있으면 때를 따라 세례를 베푸는 것입니다. /아멘!/

 

▶48절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마침내 고넬료 일가는 모두 세례를 받았습니다. 빌립이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바로 세례를 주었습니다(행8:38).
이때 세례를 준 것은 베드로가 아니라 베드로와 같이 온 수행원들에게 베드로가 세례를 주도록 명한 것입니다.

▶세례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⑴죄를 씻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죄를 사함 받는 비결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 받고 세례를 받음으로 죄를 씻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이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믿음으로 살겠다는 서약입니다.
⑵새롭게 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세례를 받기 위해 요단강 물 속에 들어간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고, 다시 새롭게 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천국백성답게 살기 위해서 죄에 대해선 날마다 죽는 생활을 하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육신의 혈기, 교만, 욕심, 불의한 모든 자신의 정욕은 날마다 죽는 생활에 힘쓰고 이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시 새롭게 산다'는 의미입니다.
바울 사도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육신의 사람이 죽으면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사신다는 뜻입니다. 세례는 죄에 대해서 날마다 죽는 생활에 힘쓰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새롭게 거듭난 믿음의 삶을 힘써야 함을 의미합니다.
⑶온전히 하나님의 것이 되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세례는 '인 친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례를 통하여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내 백성이라 인 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례의식을 통해서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고 하신 언약처럼 세례 받는다는 것은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것이 되었다는 표시이자 구원받았다는 표시입니다.
바울은 살아도 죽어도 주의 것이라고 고백하고 살았습니다. 이제부터 내 뜻대로 살려고 하지말고 주님 뜻을 찾아 주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한 자매님이 남편을 구원시키기 위해서 오랫동안 기도하다가 총동원 주일을 통하여 남편을 교회로 인도했습니다. 목사님이 새로 등록한 그 남편 집에 심방을 갔습니다. 같이 식사를 하면서 여러 대화를 나누는 중에 그 남편이 '목사님, 예수 믿는데 비용이 얼마나 듭니까? 친구들이 기독교를 다니면 비용이 많이 드니까 천주교를 다니라고 합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얼마나 비용이 들면 믿으시렵니까?' '담배 값 정도만 괜찮겠습니다,' '왜 담배 값 정도를 생각했습니까?' '예수 믿으면 담배를 끊을 테니까 그 돈을 주님께 바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 정도면 넉넉합니다.' '비용이 별로 안 드네요?'
그 다음 주일부터 그 남편은 착실하게 교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교인들과도 교제가 잘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헌금 액수가 조금 올랐습니다. 목사님이 이상해서 물었습니다. '어떻게 비용이 올랐습니까?' 그는 '술까지 끊어서 술값을 더 보탰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신앙생활을 착실히 하는 것을 보고 목사님이 세례를 받을 때라고 권면을 하자 그 남편이 거절을 합니다. 자매님이 대답하기를 '목사님, 제 남편이 무슨 말을 들어서 안 받습니다.' '무슨 말을 들었는데요' '세례 받으면 십일조를 바쳐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십일조 안 바치려고 세례를 안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월이 또 흘렀습니다. 그 남편이 '목사님, 십일조를 바치려면 수확의 십일조입니까 비용을 다 제하고 십일조입니까?'라고 묻습니다. 목사님은 '비용을 제하고 바쳐도 되고 수확의 십일조를 바쳐도 되는데 믿음대로 하면 됩니다.'
'비용을 다 제하고 나면 얼마 안 되는데' 중얼거리면서 그 해 비용을 제하고 쌀 두 가마니를 바쳤습니다. 그리고 그 해 세례를 받고 몇 년 후 집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음에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는데 이 분이 추수감사주일에 쌀 20가마니를 바쳤습니다.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아니 무슨 비용이 10배나 올랐습니까?' '목사님 비용을 많이 올렸습니다. 자식도 공부 잘 시키려면 유학 비용이 많이 들고 옷도 좋은 옷을 사 입으려면 비용을 많이 들이는데 내가 천국 백성이 되어서 어떻게 비용을 값싸게 지불할 수 있겠습니까? 성령께서 감동하셔서 비용을 비싸게 지불하기로 했습니다' /할/ 세례 받고 성령의 인 침을 받은 성도는 이렇게 신앙이 잘 자라게 되는 줄 믿습니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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