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강) 베드로가 본 환상! (행 10:9-23)
행10장은 고넬료가 기독교로 개종되는 사건을 기록했습니다. 이 사건은 선교 역사상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복음이 유대인들에게만 전파되었으나 고넬료를 기점으로 해서 복음이 이방에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로마의 정규사관학교를 나온 엘리트 백부장 고넬료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 당시 로마는 황제 신을 섬기는 그런 민족입니다. 그런 그가 주님을 섬기는 성도가 된 것입니다.
2절을 보면 고넬료의 신앙 인격을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그는 ⑴경건한 사람이었고, ⑵온 식구가 하나님을 섬기며 경외하는 가정이었고, ⑶어려운 백성들을 많이 구제하는 사람이었고, ⑷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할/
그가 제 9시 기도시간에 기도하다가 환상을 보았는데 환상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고넬료의 구제와 기도가 하나님께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청하여 구원의 말씀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떠나자 고넬료는 자기의 수하에 있는 사람 중에 경건한 사람 둘과 병사 한 사람을 뽑아 베드로가 있는 욥바에 보냈습니다.
한편 베드로는 그 다음날 제 6시기도 시간에 피장 시몬의 집 지붕 위에 올라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은 그에게 환상을 보여 주시는데 비몽사몽간에 하늘이 열리고 하늘에서 유대인들이 먹지 않는 음식이 담긴 보자기가 내려오며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베드로는 '저는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습니다'고 하며 잡아먹기를 거절하였습니다. 그때 주님은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은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마침 베드로가 그 환상의 뜻이 무엇인지 궁금해하고 있을 때 고넬료가 보낸 심부름꾼이 베드로에게 도착했습니다. 그때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내가 저희를 보내었노라'고 지시를 하십니다.
베드로가 내려갔을 때 그들은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입니다. 유대 온 족속이 그를 칭찬하고 있습니다. 저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당신을 청하려고 왔습니다'라고 심부름 온 이유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날 저녁 그곳에 머무르고 이튿날 베드로와 함께 가이사랴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베드로가 본 환상!▶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행9장 하반부에 보면 베드로가 온 유대지역에 교회들과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들을 순방하고 룻다에 내려와 8년 된 중풍병자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낫게 했습니다. 그때 마침 이웃 욥바에는 선행을 잘 베풀었던 다비다라는 여성도가 이유도 없이 죽게 되자 그녀의 사랑을 받았던 성도들이 다비다의 사신을 다락에 눕히고 슬퍼하던 중 이웃 룻다에서 일어난 베드로를 통한 기적의 소식을 듣고 베드로를 청하여 죽은 다비다를 다시 살리는 부활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베드로가 욥바에 오게 되었고, 그는 그곳 욥바 피장의 업을 가진 시몬의 집에 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고넬료가 기도 중에 환상을 봅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로 지붕에 올라가서 기도하는 중에 환상을 봅니다. 그 시각은 서로 다릅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이 다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시간을 정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일부러 계시를 받고자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일이 있게 해 주십사' 하고 제목을 놓고 기도한 것도 아닙니다. 일상적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루에 세 번씩 시간을 정하고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어느 순간에 특별한 환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특정한 기도 제목을 놓고 '이것을 주세요, 꼭 주셔야 합니다, 믿습니다,' 이렇게 부르짖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항상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항상 기도하는 자세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그런 의미에서 이 두 사람의 자세가 아주 중요합니다.
▶9절 "이튿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시더라"
'이튿날'은 8절에서 고넬료가 하인 둘과 군인하나를 묶어서 욥바에 보냈습니다. 가이샤랴에서 욥바까지는 약 50Km입니다. 먼 길 이었지만 그들은 군인들이었기에 말을 타고 갔을 것이라는 학설이 많습니다.
이 때는 고넬료가 보낸 사자가 성 가까이 이르렀을 때입니다. 그들이 오고 있다는 것을 베드로는 알지 못하였고 또 베드로가 기도하는 중이라는 것을 그들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베드로와 그들을 다 보고 계시는 하나님은 그들의 만남을 준비하셨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목적에는 시기 즉 하나님의 적절한 때가 있습니다.
그들이 욥바에 도착했을 그때에 베드로는 지붕에 올라가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시간이 제 육시였습니다. 유대인들의 지붕은 우리나라 지붕과는 달리 '스라브'형입니다. 지붕이 평평하여 그곳에서 기도를 하고, 운동을 하고, 곡식을 말리고 심지어 목욕까지 했습니다.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가 지붕 위에서 목욕하다가 다윗에게 보인 것입니다.
신22:8절을 보면 지붕을 만들 때는 반드시 난관을 만들도록 법적으로 정해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1m 정도의 발코니를 만들어 떨어지지 않도록 해 두었으니 그곳에서 기도하기 좋았던 것입니다. 그곳에서 베드로가 정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 6시는 우리나라 시간으로 낮 12시를 가리킵니다.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하루에 두 번씩, 즉 아침과 저녁에 기도합니다. 그러나 경건한 유대인들은 한 번 더 즉, 12시에 또 기도를 합니다.
▶다니엘이 그런 기도를 했습니다. 단6:10절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13절 "그들이 왕 앞에서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그 다니엘이 왕과 왕의 어인이 찍힌 금령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하나이다"
▶다윗도 그런 기도를 했습니다. 시55:17절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따라서 베드로가 12시에 기도하러 지붕 위에 올라갔다는 말은 그의 경건 성을 증명해 주는 사건입니다. 그의 능력이 어디서 왔습니까? 바로 기도에서 온 것입니다. 믿음의 능력은 기도에서 나옵니다.
그가 '지붕에 올라가서' 기도한 것은 거기서 그는 '개인적인 시간'을 가진 것입니다. 거기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그의 소리 또한 아무도 들을 수 없는 곳입니다. 이런 시간을 우리가 만들어야 합니다. '나와 하나님과의 만남의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여기에서 응답을 받고 환상을 볼 수 있습니다. /할/
▶10절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이 준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시몬 피장의 집에서 하나님의 종을 대접하려고 분주합니다. 본문에 보면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이 준비할 때'라고 한 것을 보면 베드로는 아침 식사를 하기 전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하루에 두 끼를 먹었습니다.
아침은 10-11시 사이에 먹고, 저녁은 오후6-7사이에 먹습니다. 아침은 대게 과일, 우유, 치즈 등을 먹었고, 저녁은 주식으로 아주 푸짐하게 먹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12시에 시장하였다고 했고, 그 집사람들이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했으니 그는 아침을 그때까지도 먹지 않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음식을 준비하는 짧은 시간도 낭비하지 않고 부지런히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기도할 때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여기 '비몽사몽간에'란 말은 헬라어로 '엑시타시'라는 말인데 '외적 감각은 중지된 채 영혼의 대화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계시라고도 하며 환상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시장한 가운데 기도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비몽사몽간에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비몽사몽'간은 '무아지경 또는 황홀한 상태에 빠져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공포에 사로잡힌 것이 아니고 깊은 명상에 잠기어 그의 마음은 세상을 완전히 떠나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에서 하나님과 대화하는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죄 없을 때에(하와를 창조하시기 위하여) 깊은 잠이 그를 엄습하였을 때와 같은 현상이라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지금 자신이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를 알지 못하는 상태가 '비몽사몽'간의 모습입니다.
왜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여주었습니까? 당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과의 벽이 너무 두텁기 때문이었습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굳은 유대사상에 젖어 있기 때문에 말로 이방사람들에게 가라고 하면 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 굳은 유대사상을 깨뜨리기 위하여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방편이십니다. 베드로는 헬라어를 전혀 못하는 토종 유대인인데 유대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로마군인 그것도 백부장에게 가서 전도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렵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압제시대에 우리나라 사람이 일본 고등계 형사에게 찾아가는 것과 똑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만나러 가는 것이 싫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비몽사몽간에 보여주신 것입니다.
▶11절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하늘이 열렸다는 말은 계시가 하나님 편에서 왔다는 것을 말합니다. 베드로가 원해서 보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늘은 베드로 뿐 아니라 야곱(창28:12), 에스겔(겔1:1), 스데반(행7:56), 바울(행9:3)에게도 열렸습니다. 하늘은 하나님을 만나고자 준비하는 사람에게만 열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찾는 자만이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또한 육에 속하지 않고 영적인 눈이 먼저 열려야 환상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 '큰 보자기'같다는 말은 복음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말로써, 기독교는 '작은 보자기'에 비유되는 유대교와는 달리 큰 보자기처럼 유대인 뿐 아니라 모든 세상 사람들을 포함한다는 말입니다.
또 '네 귀'라고 했는데 이것은 동서남북 사방을 말할 때 쓰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세계 전체를 복음화 하라는 하나님의 환상인 것입니다.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는 말씀은 장차 교회가 온 세상 땅 끝까지 이르러 모든 족속으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라는 뜻입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를 불렀을까요? 복음을 전하라고 부른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이 땅에 5만여 교회를 세웠을까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늘 말하는 '세계 복음화'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에 눈을 뜨면 그때부터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계획안에 세우시고 당신의 스케줄 따라 시간표 안에 세우십니다. /믿/
▶12-13절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베드로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먼저 하늘이 열리고 큰 보자기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 '각색 네 발 달린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나는 것'이 들어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내용을 읽을 때, 별 이상한 마음이 들지 않지만 유대인들이 볼 때는 뒤틀리는 것들이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속에 있는 짐승들은 유대인들이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동물로써 레11:2-27절과 신14:3-20절에서 금지된 것들입니다. 하늘로써 내려온 보자기에 비해서 그 속에 담겨 있는 내용물은 너무 뜻밖입니다.
'각 색'이라고 한 것은 모든 속된 것들을 다 포함하는 말입니다. 레1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동물은 먹고, 어떤 동물은 먹지말고, 어떤 물고기는 먹고, 어떤 물고기는 먹지 말라고 분류해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짐승을 잡아먹을 때는 반드시 되새김질하며 굽이 갈라진 짐승만 먹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양이나 소 같은 짐승은 먹을 수 있게 되어 있는데 돼지는 굽이 갈라져 있으나 되새김질을 안 하기 때문에 안 먹습니다.
그리고 물고기 중에는 비늘이 있고, 지느러미가 있는 것은 먹고, 비늘이 없고 지느러미가 없는 것은 먹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추어탕이라고 해서 미꾸라지를 좋아하고, 또 메운 탕에 메기탕, 또 정욕식품이라고 해서 장어를 좋아합니다만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비늘이 없는 것은 먹자 말라고 해서 먹지 않습니다.
그런데 베드로 앞에 내려온 보자기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더럽다고 안 먹는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보기에는 이방 사람은 부정한 동물과 같고, 자기들은 정결한 동물로 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는 눈은 다 똑같은 죄인인 것입니다.
본문의 베드로는 그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는 음성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지체 없이 14절에서 '주여! 그럴 수 없습니다.'라고 거절한 것입니다.
▶14절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대"
유대교적 율법의 사고로는 너무나 당연한 거절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율법을 잘 지켜서 속되고 더러운 것들을 먹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것들을 먹겠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사람들은 음식문화가 대단히 까다롭습니다.
레11장에 주로 나타납니다. 짐승에 대해서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하는 것이라야 먹습니다. 약대는 먹지 못합니다. 새김질을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토끼도 먹지 못합니다. 돼지는 굽은 갈라졌는데 새김질을 아니하므로 못 먹습니다.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을 하는 짐승만 먹으라는 것입니다. 물고기 중에서는 비늘이 있고 지느러미가 있는 것이라야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장어 같은 것은 먹지 못합니다. 이런 것은 거룩하고 저런 것은 속되다고 구별하는 것입니다. 소는 거룩하고 돼지는 속되다고 돼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베드로가 굉장히 성결한 것 같은데 아직까지 베드로가 복음의 깊이를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하심은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님의 선언인 것입니다.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아직까지 복음의 깊이를 알지 못했고, 아직까지 환상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여기 '주여! 그럴 수 없습니다.'라고 한 것은 베드로가 주님의 명령을 거부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자신의 생활이 얼마만큼 철저한 율법적인 생활인지를 강조한 말입니다.
이 같은 베드로의 대답은 모든 유대인들의 대답으로 상징될 수 있습니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이란 이 구절은 베드로가 그 짐승들을 잡아먹을 수 없는 이유에 대한 설명입니다.
①제공된 짐승이 종교적으로 부정한 짐승으로써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먹지도 가까이 하지도 않는 속된 것이기 때문이요,
②자신이 어려서부터 이 짐승들을 멀리하고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철저하게 구별하여 살아왔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주여!' 하면서도 율법에 어긋나는 명령에 대하여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주여!'라고 고백한 것은 생명의 주인을 고백한 말로서 철종 내지는 순종관계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주님을 부르고는 그럴 수 없다고 거절하였습니다. 일꾼의 자세가 무엇입니까? 주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드느냐를 떠나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일꾼의 자세입니다. /믿/
▶15절 "또 두 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리를 깨끗케 하실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들을 깨끗이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인 된 인간들에게 죄를 없이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것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게 하신 것입니다. 이 피를 믿는 자는 죄 씻음 받아 의롭다 함을 얻게 됩니다. /아멘!/
롬5:8절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또 9절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로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은 것이니" /할/
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믿습니까? '아멘!' 하셨으면 여러분의 죄는 씻음 받았습니다. 깨끗해졌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인간의 죄를 씻어주시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이 선언은 베드로에게 보인 짐승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피조물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지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전도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방인들도 예수 그리스도 통해서 깨끗하게 되었으니 그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라.'는 하나님의 계시가 임한 것입니다.
우리도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우리는 문화인이고, 저 아프리카 사람들은 미개하다하여 속으로 멸시하는 일이 있는데 이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 기준을 가지고 평가를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인간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으로, 인간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으로 봐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인간의 기준 관점으로 보지말고 하나님의 기준, 관점으로 보라는 음성입니다. /아멘!/
여러분, 우리 주님은 누구든지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모두 용서하셨습니다.
▶복음서에 보면, 간음한 여인을 고소한 자들이 예수님을 시험해 보고자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그 여인을 돌로 쳐죽여야 하는데 사랑과 용서를 주장하는 예수는 도대체 어떻게 심판을 내리는지 보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고소하는 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돌을 들어 이 여인을 치라'고 하시고 나서 주님이 땅 바닥에 손으로 어떤 글씨를 쓰는데 무리들이 그것을 보더니(어떤 이들은 십계명을 씀 것), 그녀를 정죄하던 자들은 어른에서 젊은이까지 하나씩 둘씩 그 자리를 떠나고 여인과 예수님만 남았습니다. 주님은 그 여인에게 말했습니다.
"너를 정죄하던 자들이 어디 갔느냐" "예, 다 가고 없나이다" 예수께서도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실은 개인적인 용서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보는 공중 앞에서 이루어진 용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율법에 의하면 돌에 맞아 죽었어야 할 여인을 용서해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는 용서 못할 죄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용서하시고 깨끗케 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든지 정죄하면 안됩니다. 정죄할 것이 아니라 구원의 복음을 주어야 합니다. 나도 죽을죄에서 용서함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뜻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아멘!/
▶16절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리워 가니라"
하나님께서 잡아먹기를 거부하는 베드로에게 무려 세 번씩이나 잡아먹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나서 부정한 짐승이 담겨 있는 그릇을 하늘로 올리셨습니다.
이 같은 환상과 내용과 음성이 세 번씩이나 반복된 것은 그 중요성을 말해 줍니다. ⑴이 환상의 확실성을 알려주기 위함이고, ⑵그 중요성을 알려주기 위함이고, ⑶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씩이나 환상을 반복했고, 베드로는 세 번씩이나 거절했습니다. 베드로는 삼세번을 좋아합니다.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고, 또 세 번씩이나 주께 대한 사랑의 맹세를 다짐한 일도 있습니다. 결국 그 환상은 '곧 하늘로 올리어' 갔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받으셨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부정한 동물들은 이방인들을 상징합니다. 베드로에게 부정한 동물들을 잡아먹으라고 한 것은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하지 말고 이방인들까지도 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 큰 도전이었습니다. 또 이것은 기독교가 세계적 종교로써의 시작을 알리는 큰 전환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유대인 중에는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이 음식에 관한 법을 지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레11장의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 음식은 '적합한 것, 합법적인 것'이라는 표를 붙여서 판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 예수님은 막7:19절에서 '모든 식물은 깨끗하다'고 하셨고, 바울도 딤전4:4절에서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다.'고 말합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베드로의 환상은 구약에서 신약으로 옮겨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유대에서 세계로 향하는 전환점이 된 것입니다.
▶17절 "베드로가 본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심하더니 마침 고넬료의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비추어 보고 성경의 감동을 주시기를 기도하여 바르게 깨닫기를 노력해야 합니다.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심하더니' '의심하더니'란 원어는 '어리둥절'하다는 뜻입니다. 베드로가 한참 묵상하고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 문 앞에 온 것입니다.
사실 베드로는 세 번씩이나 그 환상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일은 참으로 질서 정연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환상을 본 것은 고넬료의 사절단이 욥바에 도착하여 그의 집을 찾아오는 동안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환상을 다 보고 올라왔을 때, 고넬료의 사절단이 베드로가 머물고 있는 시몬의 집 문 앞에 당도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주신 계시나 환상은 분명히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깨닫게 하십니다. 앞으로 나옵니다만 베드로는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을 보고 '아! 그 뜻이었구나!', '아! 이런 일이 있으려고 그것을 보여주셨구나!' 깨달아지는 것이 바로 섭리적 인도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 섭리로 인도하십니다. /믿/
17절의 배경은 '베드로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생각하고 있을 때,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도착'한 것입니다.
▶18절 "불러 묻되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여기 우거하느냐 하거늘"
그들이 문을 두드리면서 '이곳에 베드로라는 선생님이 손님으로 계십니까?'하고 물은 것입니다. 그들은 천사가 말해준 바를 의심치 않고 확실하게 믿었기 때문에 확실하게 베드로를 찾은 것입니다.
신앙은 내가 얼마나 확신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내가 믿음만큼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내 속에 들어있는 불 신앙을 제거하면 제거한 만큼 우리의 신앙이 커집니다. 믿음이 크다는 말은 그만큼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지킨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온 세계의 복음화입니다.
'너희는 온 세계에 다니며 천하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바로 생명을 살리는데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의 모든 핵심은 전도에 있습니다. 이 일을 증명하시기 위해 모든 사건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부터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깨달읍시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전도임을 깨닫고 그 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 위에 복을 주십니다. /믿어지면 아멘!/
▶19절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베드로는 굉장한 사색가입니다. 신앙은 묵상이 절대 필요합니다. 베드로는 그 환상에 대하여 17절을 보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본문 19절을 보면 '그 환상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봤던 환상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자 그것을 깨닫고자 몸부림치면서 고민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위해 고민하는 것을 거룩한 고민이라고 합니다. 거룩한 고민을 많이 하면 할수록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세상 적인 문제로 고민하고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요14:1절에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할/
베드로가 이 환상에 대하여 거룩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그 환상의 진의가 풀어지는 사건이 베드로에게 보여 지고 들려졌습니다.
①사람을 통해서 알게 해 주셨습니다. 바로 그 시간에 저 가이사랴에서 온 고넬료의 사환들이 피장 시몬의 집에 도착해서 베드로를 찾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②성령께서 이 문제를 베드로에게 풀어주시려고 임재 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환상과 계시와 성령의 인도는 별개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언제나 성령의 인도를 받습니다.
요16:13절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또 고후1:22절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 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본문의 성령께서 이 문제를 풀어주시려고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라고 유도하십니다.
▶20절 "일어나 내려가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내가 저희를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내가 저희를 보내었노라 의심치 말라' 베드로에게는 사실 의심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았습니다. 유대인이 먹을 수 없는 것을 먹으라고 하는 것부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또 이방 족속들을 집 안에 들여보낸다고 하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건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의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저희를 보내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의심'이 생깁니다. 이 의심은 에덴동산에서도 있었다고 합니다.
아담에게 하나님께서 그의 갈비뼈로 아름다운 부인 하와를 만들었습니다. 매일매일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하와의 마음 속에 의심이 생겼습니다. 자기 남편의 화난 얼굴을 바라보는데 '혹시 이 남자에게 다른 여자가 있으면 어떡하나' 하는 근심이 생겼습니다.
그 날 밤에 아담이 잠이 들었는데 하와는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갈빗대를 세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러고 있습니까? 혹시 하나님이 또 갈빗대 하나를 뽑아 가지고는 또 다른 여자를 만들었을까 의심이 나서 그런 것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여기 '의심'이란 말은 17절의 의심과 다릅니다. 여기 의심은 '나누어진 마음'인데 '의심하지 말고, 한 마음을 가져라'는 말입니다.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운 하나님의 정확하신 섭리를 보십시오, 시간도, 사람도, 환상도, 장소도 자로 잰 듯이 정확합니다.
▶21절 "베드로가 내려가 그 사람들을 보고 가로되 내가 곧 너희의 찾는 사람이니 너희가 무슨 일로 왔느냐"
'무슨 일로 왔느냐?' 누가 보내서 왔느냐보다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묻습니다. 베드로는 성령의 지시에 담긴 의미를 알고 싶은 마음에서 다른 말보다는 제일 먼저 그들이 온 목적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베드로는 결코 자기를 들어내지 않았습니다.
▶22절 "저희가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저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너를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한대"
그들이 고넬료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왜? 고넬료가 보냈기 때문입니다. 고넬료는 ⑴의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 의인입니까?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자가 의인입니다. ⑵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요, ⑶유대 온 족속들에게 칭찬 받는 자요 ⑷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기도하다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베드로 당신을 청하여 구원의 메시지를 받으라는 분부를 받고 우리는 그의 심부름으로 왔습니다.
▶23절 "베드로가 불러 들여 유숙하게 하니라 이튿날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갈새 욥바 두어 형제도 함께 가니라"
'베드로가 불러 들여'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영접했습니다. 이것은 큰 사건입니다. 왜/ 베드로가 이방인들을 영접했기 때문입니다. 불러 들였다는 것은 이방인을 한 형제로써 용납함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말입니다.
'유숙하게 하니라' 할례 받지 못한 이방인을 집으로 불러들이고 함께 잠을 잤다는 것은 당시에는 매우 반 유대교적 행위입니다. 이 사건 때문에 베드로는 비난을 받았습니다(11:1-3). 그러나 무엇보다도 베드로는 환상을 통하여 주님의 뜻을 분명히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입니다. 깨닫는 순간 신앙은 달라집니다. 기적이 오고 체험이 옵니다. /할/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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