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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론의 삼위일체
Ⅰ. 모더니즘, 이신론 그리고 삼위일체론
이신론이란 이성으로 신을 생각한다는 이론이다. 지금까지 성서의 계시를 바탕으로 신을 생각했다면 17세기 말과 18세기 초기, 소위 ‘이성의 시대’에 나타난 일련의 영국 사상가들은 “하나님의 창조자 되심은 유지하나 이 피조 세계에 계속 개입하는 것과 임재하는 것은 부인하는 하나님 이해”를 주장했다.
르네상스를 통하여 나타난 새로운 문화적 흐름, 1453년 동로마 제국의 멸망, 아메리카 신대륙의 발견, 십자군 전쟁, 교황 체제의 쇠퇴 등으로 인해 중세가 무너지면서 아울러 서구 세계의 새로운 사유체계로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근대성이고, 이 근대성에 근거하여 새롭게 형성된 시대 전반에 대한 포괄적 명칭이 모더니즘이다. 근대성이 18세기 이후 인간 삶의 제반 영역에 실현되어 나타난 것이 계몽주의이며 바로 이 시대를 대변하는 것이 이신론이다.
Ⅱ. 모더니즘의 사유체계와 삼위일체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속사
1. 중세적 존재론으로부터 모더니즘의 인식론적 주체로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은 인간과 자연과 세계를 해석할 수 있는 새로운 해석학적 안목을 필요로 했는데, 15세기경부터 고대 그리스 철학이 그에 대한 사상적 기초를 제공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감추어져 왔던 플라톤 사상이 부각되기 시작했는데, 피토 델라 미란돌라, 피치노, 그리고 쿠누스의 플라톤 철학이 데카르트를 비롯한 근대 철학자들에게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진 문화운동을 일컬어 인문주의라 했는데, 인문주의는 인간으로 하여금 “이성의 힘에 대한 신념과 개체로서의 인간이란 자신감”을 지니게 한 배경이 되었다. 중세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한 개인을 인식했다면 근대는 단독자인 개체로서 자의식을 인식하여 개인을 인식의 주체로 삼았다는 것이다. 중세의 신학이 계시와 신적인 이성에 근거를 두었다면 근대는 인간을 주체의 인식자로 여기는 것이다. 곧 성서가 그렇게 말하니 믿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기에 신은 이것이 합리적이기에 믿는 것이다. 종교개혁의 신앙과 신학이 공동체적이며 교회의 이름 아래 이루어졌지만, 그 가운데서도 개인적인 신비주의와 스스로 내면화된 신앙은 중세적 보편으로부터 근대적 개체성으로 나가는 중간역할을 했다.
2. 인간중심의 목적론으로
근대의 세계관 가운데 특히 주목할 것은 수학적 세계관이다. 이 수학적 세계관을 근거로 세계를 잘 짜인 기계처럼 이해하는 기계론적 세계관이 나타나게 되며, 자연을 체계화하고 분류하는 근대과학의 방법론은 바로 여기에 기인한 것이다. 근대에 들어서 자연을 이해하는 틀은 이전시대와는 근원적으로 달라진다. 근대에는 인간 자신이 절대적 중심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중세에 자연은 하나님의 계시 사건을 읽어내는 터전이지만 근대에는 존재의 주인으로 자신을 중심에 위치시키는 인간 중심의 목적론 외에는 여타의 목적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 자연에 대해 주인의식을 갖는 것은 신이 아니라 바로 인간이다. 근대 이전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돌보심 아래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종말론적 구속사를 향하여 살아가던 인간이, 근대에 들어서는 그 모든 신적인 목적론을 벗어버렸다. 근대 이전에는 구원의 대상이요 죄인이던 인간이 이제는 그가 주체가 되어서 주인의 자리에서 신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근대 이전의 신학이 인간을 구원하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에 근거한 신학이라면 근대는 단지 인간의 인식론에 근거하여 신을 서술하는 인간학적 서술에 불과하다.
Ⅲ. 이신론의 삼위일체
1. 성서적 진리가 아닌 공통의 종교적 기반
교리적 정통성과 교회의 권위를 강조하려는 경향을 생각할 때, 종교개혁은 근대적이기보다는 중세적이다. 종교개혁에 이은 17세기 개신교 스콜라주의 시대는, 복음적 열정의 시기가 아니라 교리를 정확하게 정의하고 체계화하는 시기로서, 그 시대에 맡겨진 과제는 루터와 칼뱅에 의하여 재발견된 순수한 교리를 정의하고 체계화하고 보존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17세기 개신교 스콜라주의는 과학과 철학 분야에서 일어난 당대의 혁명적 변화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리빙스턴은 17세기의 개신교 스콜라주의가 특별히 두 측면에서 18세기 이성의 종교를 등장시켰다고 주장한다. 첫째, 17세기 스콜라주의는 고도로 합리주의적이었다. 신학적 진리는 종교적 경험을 통해서가 아니라, 어떤 제일 원리들로부터 논리적 연역에 의하여 도달되었다. 진리의 시금적은 합리적 일관성 바로 그것이었다. 17세기 개신교 정통주의에서는 이성+계시 였는데, 18세기에 와서 이성이 계시로부터 벗어났다. 그러니까 개신교 스콜라주의 시대의 정통주의적 초자연주로부터 이신론으로의 전환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둘째, 17세기 정통주의 시대의 기독교 유럽은 종교 전쟁과 박해를 겪는 동안 분열과 탈진의 고통을 겪어 왔다. 그러한 시대의 합리적인 사람들은, 서로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의할 수 있는 어떤 공통의 종교적 기반을 찾으려는 열망을 지니게 된다. 그러한 합리적인 사람들이 성서를 귀하게 여기기는 했지만 성서의 해석과 적용에서는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전통적인 계시와 교리와 성서적 진리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공통의 종교적 기반”의 자리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2. 계시를 식별하는 이성적 전제
- 이신론의 아버지 허버트 경-
성서적 진리가 아닌 다른 공통의 기반을 찾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영국의 허버트 경이다. 허버트 경은 30년 전쟁 동안 군인이며 외교관으로서 살아오는 동안에 그 시대의 주요 현안이 종교간 갈등의 해소와 평화 수립이라는 점을 깨닫고 “종교적 믿음에 관하여 합의할 수 있는 몇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그는 『진리론』에서 보편적으로 공유된 선험적 원리들은 다섯 가지라 주장했다. 1)하나님은 존재하신다. 2) 하나님은 예배를 받으셔야 한다. 3) 선행은 하나님께 대한 예배의 중요한 부분이다. 4)인간은 항상 죄를 혐오해왔고 자신들의 죄를 회개해야 할 의무를 느끼고 있다. 5)사후에는 보상과 형벌이 있을 것이다. 계시라고 주장되는 어떤 것도 이 선험적 원리들에 의하여 검증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허버트는 이신론의 아버지라 알려지게 된다.
3. 이성에 반대되지 않는 계시(합리적 초자연주의)
-칠링워드에서 로크까지-
17세기 말엽에 영국의 종교 사상가들은 대개 두 부류로, 합리적 초자연주의(정통주의적 초자연주의)와 이신론자들로 나뉘게 된다. 합리적 초자연주의 자들은 계시의 독특한 역할과 “이성만의 행사로써 알려질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할 것”을 주장했고, 이신론자들은 계시의 필요성을 거부하고 종교에 있어서 자율적 자연이성의 충족성을 주장했다. 칠링워드(1602-1644)는 성서를 신앙의 유일한 안내자로 고수하려 했고, 성서 이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최소화하려고 했다.그러한 칠링워드의 사상을 이어받아서, 나타난 사람이 존 틸로슨(630-1694)이다. 그는 “자연종교의 원리와 명백히 모순되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께로부터 온 계시라고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주장하며 “자연적인 이성에 배치되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수용할 수 없고, 기적이란 전적으로 합리적이고 종종 신적 계시의 증명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로크는 『인간 오성론』에서 하나님 개념은 인간의 이성적 도덕적 특성으로 구성된 것이며, 그것을 무한성에 투사시킨 것이라 하였다. 로크는 그의 계승자인 이신론자들과는 달리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 구성요소로서 합리성과 신비를 보존하기를 원했다. 로크는 이성과 성서 라는 두 주인을 섬기는 데 아무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로크는 신비를 기독교 신앙의 참된 요소로 보존하려고 했지만, 로크의 후계자들 대부분은 모든 신비를 계시에서 제거하려고 했다.
3. 계시를 거부하는 이신론
1) 존 톨랜드
톨랜드는 자신이 로크의 제자라 생각하면서도 이성을 초월하는 계시적 진리를 거부했다. “복음에는 이성에 반대되는 신비나 이성을 초월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기독교의 교리를 순수한 의미에서 신비라고 불릴 수 없다”고 주장한다. 보수진영에서 그는 사실상 무신론자로 취급했다.
2) 매튜 틴들
-『창조까지 소급되는 기독교』-
매튜 틴들의 『창조까지 소급되는 기독교』라는 책은 이신론자들의 경전이라 일컬어 진다. 그는 거기서 참된 종교는 두개의 선험적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고 한다. 첫째, 하나님은 영원히 동등하시고 무한히 지혜롭고 선하시다. 둘째, 인간 본성은 그 자체에 있어서 항상 동일하고 불변하다. 그러니까 하나님께로부터 기원하는 완전한 종교는 그 자리를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등등하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 그러니까 성자 하나님을 통한 특정 시대의 역사적 계시나 성령의 인도를 따라 선택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주어진 계시적 언약들은 보편성을 결핍한 것이요, 완전한 종교의 내용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예수 그기스도를 통한 역사적 계시보다는 창조 이전부터 선험적 이성으로서 존재했던 이성의 완전한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만약에 기독교만이 유일하게 참되고 완전한 종교라고 가정한다면 완전한 종교에 적합한 보편성을 이미 지니고 있어야 하는데, 따라서 기독교는 처음부터 모든 인류를 위하여 창조되었음에 틀림없다. 기독교라는 이름은 최근의 것이지만, 기독교의 핵심들은 창조 때부터 있어 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계시종교가 보편성을지닌 참 종교가 되려면 "계시종교는 자연종교의 재판(再版)"이라는 것이다. “항상 동일하시고 무한히 지혜롭고 선하신 분의 변치 않는 동일한 의의 내적 차원이 자연종교라면 외적으로 나타난 경우가 계시종교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그것을 외적 계시라고 하는데, 그것은 최초부터 존재해온 내적 계시인 이성에 대한 존귀한 분이요 그와 동일한 본성으로서, 내적으로 계시된 것이든 외적으로 계시된 것이든 간에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자연종교는 계시종교와 다르지 않고 전해지는 방법에서 다르다” 자연종교로서 외적 계시요 자연이성의 존귀한 모범으로서의 성자, 이성적인 피조물인 인간을 이해시키려고 인간의 의지에 영향을 주어 이성의 요구를 인식하게 하고 실천하게 하는 성령, 그것이 틴들에게서 나타난 이신론적 삼위일체라고 판단된다. 틴들에게 있어서, 창조시 하나님의 목적은 그 자신의 영광이나 유익이 아니라 그의 피조물의 행복에 있다. 따라서 하나님은 인간의 완성과 행복에 기여할 수 있는 것만을 요구한다. 따라서 참 종교란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선을 행하고 그럼으로써 창조의 목적에 응답하게 하는 마음의 성향에 근거하는 것이다. 틴들에게는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을 증명하려는 합리주의적 종교보다는 도덕의 실천과 관련된다. 실천이성의 종교의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다.
Ⅲ. 나가는 말
1. 요약
이신론이란 말이 교회사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1564년 칼뱅주의자 피에르 비레 에게서 이다. 그는 하늘과 땅을 만드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기독교 교리는 거부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이신론자란 말을 사용했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에서 일반적으로 거론되는 이신론은 17세기 전반 허버트 경을 비롯한 영국의 저술가들을 통하여 나타난다.
이신론자들에게서 나타난 공통적인 입장은, 제도적 교회와 타락한 성직에 대한 비판적인 자세이다. 그들이 그렇게 된 것은 미신과 비 도덕적인 교리를 지니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계시종교는 이성종교에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틴들은 참 종교란 바로 도덕적인 것이다.
2. 합리적으로 의문시 되는 합리주의적 이신론
이성의 종교는 영국에서 기원했지만, 프랑스에서 대중화되었으며, 프랑스의 이신론은 박해와 억압으로 인하여 부정적이고 호전적인 성격을 지녔던 것으로 평가된다. 프랑스의 그러한 이신론을 대표할만한 인물이 바로 볼테르이다. 볼테르는 이신론적인 비유로서 하나님과 시계 제작자 사이 비유를 제사한 바 있다. 시계가 제작자가 정해 넣은 법칙대로 돌아가듯이, 이 세상과 인간도 이미 주어진 법칙대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런 이신론에 치명적인 공격은 신학자들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철학자인 흄으로부터 나왔다. 흄은 이신론 안에 내포된 문제점을 밝힘과 동시에 순수한 경험주의 인식론의 불가능성을 밝혀낸 것이다. 칸트에게 와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모든 전통적인 논증은 가치를 잃었으며, 그에 따라서 18세기 영국에서 번창했던 이신론도 마찬가지로 합리적으로 의문시 되었다고 볼 수 있다.
3. 이성에 대한 왜곡된 사랑
칸트는 후대의 사상가들에게 몇 가지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이성은 이제 더 이상 지고의 심판관이 될 수 없다는 것이요, 계시를 신앙한다고 해서, 이성이 그에 대해여 무가치한 일이라 말할 수 없게 되었으며, 이성은 계시의 효용성을 증명할 능력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성의 시대에 이성의 논리가 결국은 자기 부정의 고백을 하기에 이른 셈이다. 그러니까 이제 계시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열린 셈이다. 바로 그런 흐름이 19세기의 키에르케고르와 20세기의 칼 바르트에게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신론적인 저술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제도적 교회와 부패한 성직에 대한 예리한 비판들이 나타난다. 그러한 이신론자들의 비판은 기독교 세계의 정신적 유산을 걸머지고서 집을 떠나 온갖 합리적인 세상을 헤매는 탕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렇게 헤매던 합리적인 탕자는 흄과 칸트라는 지점에서부터 고향에 계신 아버지(계시)를 생각하기 시작한 셈이요, 20세기 초의 세계사적 파국들을 통과하는 동안에 구체적인 발걸음을 계시라는 고향으로 옮기기 시작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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