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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기억하며 사는 삶/전 12:1-2

by 【고동엽】 2023. 1. 23.

하나님을 기억하며 사는 삶

2002-11-13 14:44:44 read : 6739

 

12:1-2 // 021027

 

하나님을 기억하며 사는 삶

전도서 12:1-12/ 20021027/ 주일 낮 예배

 

<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

 

지난 4, 폐암 수술하신 아버님을 마지막으로 뵈러 온 가족이 LA에 갔습니다.

암 중에서도 폐암이 가장 힘들고, 수술 후에도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고 들었기에

착잡한 심정으로 아버님을 뵈러 갔는데 80이 넘으신 아버님이 힘들어 하셨습니다.

 

특히 큰 병에 걸리고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자신감도 많이 없어지신 듯했습니다.

가족회의를 통해서 아버님이 힘드신 것 같으니까 아버님을 위로해 드리기 위해서

7남매가 한 달에 한번씩 돌아가면서 아버님을 찾아 뵙자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제가 없을 때 다른 형제들이 그런 얘기를 한 것을 듣고 좋은 얘기라고 여겼지만

저는 가슴이 덜컹 했습니다. LA에 한번 가려면 거의 백만 원 가까운 비용이 듭니다.

다른 형제들이야 전혀 문제될 것 없지만 목회자에게 그 비용은 정말 만만찮습니다.

 

전화만 하면 됐지 무슨 대단한 효자라고 그런 일에 비용을 들일 필요가 있습니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낭비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부모님 뵐 날이 얼마 없다면 그 일은 결코 낭비만은 아닐 것입니다.

 

부모님은 우리의 뿌리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는 자녀에게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그래서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이 땅에서 해야 할 어떤 일보다도 중요한 일입니다.

 

십계명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첫 번째 계명에서 네 번째 계명까지는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할 계명이 나오고,

다섯 번째 계명에서 열 번째 계명까지는 사람 앞에서 지켜야 할 계명이 나옵니다.

 

그 사람 앞에서 지켜야 할 첫 번째 계명이 바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입니다.

그 다음에 여섯 번째 계명인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이 나옵니다.

이 순서에는 심각한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금방 느끼지 않습니까?

아마 하나님은 부모님 공경하지 않는 것을 살인하는 것보다 더 나쁘게 보실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님께 최대한 잘 해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잘 해 드릴 기회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되돌아보면 온통 받은 것뿐입니다.

이번에 가서도 부모님께 해 드린 것은 하나도 없이 그냥 받기만 하고 돌아왔습니다.

 

여러분! 이제부터는 부모님께 받을 생각은 하지 말고 드릴 생각만 하십시오.

부모님이 자녀에게 무엇인가를 줄 때에는 본능적으로 주지만 자녀는 그렇지 않기에

의지적으로 드릴 각오를 하지 않으면 부모님께 드릴 기회를 어느새 뺏기게 됩니다.

부모님께 받기만을 바라지 않고, 드리려고 하는 데에만 신경을 바짝 써도

어느새 보면 부모님께 드린 것보다 받은 것이 훨씬 많은 인생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야 합니다.

 

이번에는 감사하게도 교단 총회가 LA에서 열렸기에 아버님을 찾아뵐 수 있었습니다.

금년 4월에 6개월밖에 못 사신다는 그 6개월이 지나 이번에 아버님을 찾아뵈었는데

하나님이 도우심으로 인해서 폐 하나를 가지고도 지금 얼마나 정정하신 지 모릅니다.

요새는 시속 110킬로로 운전하며 다니시고, 내년에는 다시 학교도 가시겠다고 합니다.

활력이 넘치셨고 지금 상태로 보면 6개월은커녕 100살까지도 사실 것 같아 보입니다.

 

사람에게 건강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건강을 가지고 힘써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이미 늦은 인생은 없습니다. 모세는 80세부터 멋있게 하나님의 쓰임을 받았습니다.

지금부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면 어느 누구나 멋진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런 꿈을 꾸어야 합니다. 남은 생애로 거룩한 작품을 남겨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서 이미 늦은 인생도 없지만, 젊다고 시간을 흘려보낼 인생도 없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빨리 가는지 모릅니다. 우리도 항상 건강하게 사는 것만은 아닙니다.

 

제가 작년에 눈이 침침하고 성경이 잘 보이지 않아 큰 글자 성경으로 바꿨습니다.

그래도 글자를 볼 때마다 무엇인가 초점이 안 맞는 것 같아서

그저 잠을 많이 자지 않고 컴퓨터 앞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우연히 아버님 안경을 한번 껴보고 참 잘 보이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저도 노안에 접어든 것입니다. 비로소 저도 나이가 드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우리의 건강이란 것이 그렇습니다. 언제 건강이 나빠질지 모릅니다.

본문 1절 말씀대로 언제 곤고한 날, 아무 낙이 없다고 말할 날이 올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건강할 때 힘써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시간, 우리의 만남, 우리의 헌신, 우리의 우정, 우리의 사랑이 다 중요합니다.

우리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서로를 소중히 여기며 사명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 평소에 느끼지 못한 사랑의 발견으로 인한 경이 >

 

이번에 10여일 간 한국을 떠나 있으면서 가족과 교인들이 참 보고 싶었습니다.

3분 전도사님과 2분의 안수집사님, 기관장들, 지역장들과 구역장들,

지금은 교회 일에 많이 참여하지 못하고 웅크리고 있지만 앞으로 잘 헌신할 분들,

그리고 최근에 새롭게 등록한 성도들, 인터넷 식구들이 다 그립게 느껴졌습니다.

 

이곳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는 같은 시간에는 저도 똑같이 이곳을 생각하면서

사회 보시는 김건환 집사님과 성가대원들, 그리고 모든 성도들을 마음속에 그렸고,

또한 예배 광고 시간에 재미있게 체육대회 광고를 하실 남주희 집사님을 생각하면서

미국에서 혼자 정신 나간 사람처럼 좋아서 웃었습니다. 하나님도 웃으셨을 것입니다.

평소에 잘 느끼지 못한 사랑을 발견한다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목회자에게 교회를 잠깐 떠나 있는 안식년이 중요한 것도 새삼 깨달았습니다.

사람은 대개 그 자리를 떠나보아야 그 자리가 주는 은혜와 감동을 새롭게 깨닫습니다.

교회를 한 주간 빠졌는데도 그리움이 컸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귀국하고 싶었습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허겁지겁 김치찌개, 고추장, 라면을 먹고 나니 살 것 같았습니다.

한국을 떠나니 김치도 그리운데, 교회가 얼마나 그리운지는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성도님들이 한 주간 주일예배를 빠지면 이런 그리움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한 주간 주일예배를 빠지면 이런 그리움이 있습니까?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서로를 잠깐 못 만나 그리워할 때 그 그리움 안에는 참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그러한 그리움으로 어떤 분들은 매주 2시간이 넘는 거리를 초월해 교회를 다닙니다.

이 근처에 제가 지금 알고 있는 분들 중에서도 그런 분들이 몇 분이나 있습니다.

거리가 멀면 대개 신앙생활에 손해가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육체는 피곤해집니다.

 

그러나 그 먼 거리까지 초월할 수 있다면 그 신앙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됩니다.

그때에는 육체는 피곤을 느끼지만 마음은 하늘 높이 올라가는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 기쁨이 있기에 어떤 분은 몇 년을 그렇게 하다가 결국 교회 근처로 이사옵니다.

그런 신앙은 "다 똑같은 교회지!"하며 금방 교회를 바꾸는 신앙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나에게 오만 정을 준 교회에 대한 그리움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다니는 교회가 떠나 있으면 그리워지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한 주일을 빠지면 교회가 궁금하고, 성도가 보고싶은 마음이 있는 교회가 아니라면

'내가 다니는 교회'가 그저 '내가 다니는 교회'이지 아직까지는 '내 교회'가 아닙니다.

 

아직 '내 교회'가 없다면 빨리 내가 땀과 눈물을 흘릴 '내 교회'를 찾아야 합니다.

지나고 나면 큰 영상을 남기는 그런 그리움이 넘치는 교회가 있는 것이 행복입니다.

많은 군중 틈에서 교제하고 즐기는 교회가 아닌 내 땀과 눈물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 시간이 지나면 그리워지는 교회 >

 

이번에 돌아오는 길에 샌프란시스코에 하루 들렸다가 왔습니다.

오직 한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 유명하다는 금문교를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샌프란시스코에 아는 분들이 몇 분 있었지만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잠깐 들리는 것이고, 아름다운 금문교만은 혼자 음미하며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얼마나 아름답기에 죽어도 그곳에서 죽고 싶다고 그곳까지 가서 자살할까?"

 

공항에서 4시에 차를 렌트하고 5시쯤에 금문교를 통과했습니다.

통과하자마자 조망지점(vista point)로 가서 약 20분 동안 금문교를 감상했습니다.

그저 그랬습니다. 혼자 보니까 아름답다기보다는 쓸쓸하고 처량한 느낌이었습니다.

교인들이 같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가족들도 없으니까 하나도 재미가 없었습니다.

"내가 이것을 보려고 호텔비와 렌트카 비용으로 200불을 들였다니 정말 아깝다!"

 

다음 날 아침,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아침 830분에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공항으로 들어올 때 돈 아까운 생각에 괜히 샌프란시스코에 들렸다고 생각했습니다.

허전한 마음으로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계속 저의 머리 속에 깊은 영상을 남기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금문교였습니다.

볼 때는 그저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나니까 그 영상이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비행기가 미국에서 멀어질수록 그 영상은 더 남았습니다. 그 뒷맛이 정말 좋았습니다.

확실히 금문교는 사람들로 가득한 디즈니랜드나 유니버셜 스튜디오와 달랐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저 그런 것 같았지만 더 영상에 오래 남아있는 것은 금문교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때 생각했습니다.

"교회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렇게 오래 영상에 남는 금문교와 같은 교회여야 한다!"

많은 분들이 교회생활도 디즈니랜드나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하는 것 같이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교회생활은 많은 군중 속에서 휩쓸려 즐기는 생활이 되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의 교회생활은 어떻습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더 영상에 남게 될 생활입니까?

 

< 창조자 하나님을 기억하며 사십시오 >

 

우리의 기억 속에는 항상 그런 아름다운 영상들이 남아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건강할 때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며 산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그래서 오늘 본문 1절에서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청년의 때가 언제입니까? 20대와 30대입니까? 아닙니다. 지금이 청년의 때입니다.

뚜렷한 삶의 목표가 없는 20대보다 삶의 목표가 분명한 때는 다 청년의 때입니다.

지금 우리가 나의 사명을 인식하고 살면 우리는 언제나 청년의 때를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처럼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면 얼마나 많은 은혜 체험이 있는지 모릅니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미리 준비한 돈이 한 푼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신기하게 하나님께서 필요한 때마다 도와주셨고, 나중에는 돈이 남았습니다.

그런 믿음의 체험이 있으니 어떤 상황도 겁나지 않습니다. 믿음의 체험이 중요합니다.

 

이번에 미국에서 총회를 마친 다음날 식당에서 한 목사님과 식사를 마치고 나왔는데

누군가 제가 몰고 간 아버님 차의 유리창을 깨고 제 서류가방을 들고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여권, 국제운전면허증, 휴대폰, 총회회의록과 성경 등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돈도 안 되는 것을 훔쳐간 도둑이 밉기보다는 오히려 불쌍한 마음이 들어서

하나님께 도둑이 성경까지 훔쳐갔는데 성경 보고 회개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식당 주인은 자기 주차장에서 도둑 맞아 안절부절못하는데 저는 마음이 편했고,

또한 이런 경미한 사건으로 나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때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어렵고 불편한 상황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릅니다.

그런 인생의 브레이크가 없다면 우리는 교만해져서 얼마나 파괴적으로 살겠습니까?

 

저는 이번 주에 감기몸살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진실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감기 몸살이 창조하셨기에 자기 몸을 학대하다가 잠시 쉬지 않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감기 몸살이 얼마나 인생에 큰 도움이 됩니까?

 

그처럼 모든 상황과 어려움 중에도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는 믿음으로 사십시오.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며 산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선한 길로 인도하심을 믿으며 사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뜻과 비전을 생각하며 사십시오 >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며 산다는 것은

항상 하나님을 머리 속에 그리며 하나님의 뜻과 비전을 생각하며 산다는 것이고,

항상 하나님 말씀을 열린 마음으로 받으며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30, 60, 100배의 열매 맺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돈이 필요하고, 학력이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하고, 그와 함께 운도 따라야 합니까?

아닙니다. 마태복음 13장에 의하면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 옥토밭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는 마음에 따라 열매가 달라지고, 축복도 달라지고, 행복도 달라집니다.

 

오늘 전하는 말씀도 길가밭, 돌밭, 가시밭, 옥토밭 등의 여러 밭에 떨어질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도 옥토밭 마음으로 받으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실 것입니다.

실패는 환경 탓도 아니고, 건강 탓도 아니고, 사람 탓도 아니고, 내 마음 탓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비전이 회복되고, 말씀에 열린 마음이 되면 길은 열립니다.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배하는 사람과 설교를 듣는 사람도 많고, 교회 일을 하는 사람은 많은 것 같아도

하나님을 생각하기보다 다른 것을 더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많은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1순위에 두기보다, , 자녀, 출세에 밀려 4-5순위쯤에 두지는 않습니까?

 

인간의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자녀의 앞날도 그렇습니다.

그것을 인식하며 항상 하나님을 삶의 1순위에 두고 사는 분이 예수님의 제자이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제자에게 축복의 길을 여시고 좋은 사람도 붙여주실 것입니다.

 

어느 날, 인도의 고든 맥스웰 선교사가 유학 경험이 있어 영어를 아는 수도승에게

언어를 가르쳐달라니까 수도승은 전도하려고 접근하는 줄 알고 응하지 않았습니다.

선교사가 "절대 전도하지 않을 테니까 꼭 가르쳐달라"고 부탁해도 소용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당신과 가까이 지내며 믿지 않은 사람 있습니까?"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가슴 벅찬 말입니까? 모두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 항상 교회를 기억하며 사십시오 >

 

그리고 또 한 가지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는 삶의 구체적인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는 사람은 교회를 사랑합니다.

 

그런데 교회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교회를 사랑한다는 것은 교회를 위해서 구체적인 사랑의 손길을 베푸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데에는 많은 숨은 손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제 저도 열심히 말씀을 준비했지만, 어떤 분은 힘써 청소하며 예배를 준비했습니다.

오늘 체육대회도 보이지 않는 수고의 손길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교회의 비전은 저절로 성취되지 않습니다. 누군가 수고해야 그 비전이 성취됩니다.

 

이제 여러분들의 손길도 교회를 위해 수고하는 주인의 손길이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에는 대접받는 손님도 필요하지만 손님보다는 주인이 되기를 더욱 힘쓰십시오.

 

우리가 주는 삶보다 받는 삶에 익숙하다는 것은 가장 큰 반성 제목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받는 삶에 익숙합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으면 그 삶이 달라집니다.

은혜 받은 삶이란 받는 삶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주는 삶을 실천하는 삶을 말합니다.

 

왜 교회가 중요합니까? 주는 삶을 실천할 수 있는 소중한 터전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주는 삶을 실천하면 우리의 삶에는 주고받는 삶의 균형이 생길 것입니다.

익숙했던 받는 삶을 줄이고, 낯선 주는 삶을 늘리면 삶의 지평은 반드시 넓어집니다.

 

교회는 주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주는 삶, 섬기는 삶, 나누는 삶을 실천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복음을 나눠주고 사람을 구원하는 구원의 방주 역할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왜 이 분당 지역에 세워졌습니까? 그 목적을 항상 분명히 해야 합니다.

성남과 용인 지역을 중심으로 구원받을 사람을 찾고 주님 제자를 만들라는 뜻입니다.

 

교회가 크든 작든 상관없이 우리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면 됩니다.

우리는 그런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교회의 주역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상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사람이 교회입니다. 바로 여러분들이 교회입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기도하며 섬기는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 일을 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영적 순례자들로 가득한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오늘 새벽에 저는 초대교회 교인들을 생각하며 충격 받은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도대체 그들은 어떤 교인들이었기에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30년만에

당시 고린도, 에베소, 로마와 같은 유력한 도시들을 복음으로 정복할 수 있었습니까?

 

그들의 숫자는 적었습니다. 그들에겐 돈도 없었고, 학력도 없었고, 지위도 없었습니다.

또한 큰 예배당도 없었고, 좋은 프로그램도 없었고, 교회성장 세미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바로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그 영향력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나는 순례자다"라는 철저한 신분의식에서 왔습니다.

 

우리도 그런 철저한 신분의식을 가지고 우리 주변에 영향력을 미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영원히 정착할 자가 아니라 사명 받아 잠시 와서 사는 순례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제자로서 복음을 전파하고 오라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 사명을 가지고 힘써 일한 후에, 하나님 품에 안긴다면 얼마나 축복 받은 삶입니까?

 

세월이 참 빠릅니다. 금방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때가 우리에게도 올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우리는 항상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손길이 있음을 기억하며 사시고,

항상 하나님의 뜻과 비전을 가슴에 품고, 더욱 교회를 사랑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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