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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복/시편 128편

by 【고동엽】 2023. 1. 23.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복

2002-02-16 11:06:38 read : 625

 

시편 128// 20020210

 

 

< 행복의 조건 >

 

요새 우리 나라도 이혼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이혼할까요?

대개, 행복해야 할 결혼생활에 행복은 없고 힘들기만 하니까 이혼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행복해야 계속 같이 살 수 있다는 생각은 별로 바람직한 생각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내가 먼저 은혜를 받아야 하나님께 헌신할 수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사람들마다 다 먼저 받겠다고 합니다. 먼저 은혜 받아야 전도도 하겠다고 합니다.

그 말은 전도 안 하는 사람에게는 그 동안 한번도 은혜가 없었다는 말이 됩니다.

그처럼 신앙생활에 조건이 많으면 그 신앙생활은 성숙한 모습을 보이기 힘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은혜를 잡으려 하면 은혜는 오히려 멀리 달아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 자연히 은혜는 찾아오게 됩니다.

 

가정생활에서도 내가 행복해야 같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실망할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랑하고 헌신하기 위해서 결혼하고 그것을 실천한다면 행복이 주어집니다.

결국 행복은 사랑을 아는 사람의 몫입니다. 사랑하면 반드시 행복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사랑하지 않고 행복하기를 원하면 행복은 반드시 멀리 달아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 조건 붙이지 마시고 그냥 먼저 사랑해보세요. 그러면 행복해집니다.

 

<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다 복 받기를 원하지만 도대체 누가 복을 받을까요?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여기서 "여호와를 경외하며...."라는 말은 결국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없이 복을 찾고, 사람을 찾고, 산에 가서 비는 것은 복 받는 길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울하고, 답답하고, 괴롭고, 의지할 곳이 없이 힘들게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분들이 어디에 가서 누구를 만나야 합니까? 교회에 가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면 우리는 복 있는 자입니다.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깊이 경외하면 축복도 더할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이란 어떤 삶을 말할까요? 다시 1절 말씀을 보십시오.

1절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도 많이 알아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성경에 밑줄만 긋고 끝나면 안됩니다.

 

어떤 분은 말씀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남편을 보면서 남편 옆구리를 쿡 찌릅니다.

"저 말씀은 당신 들으라는 말씀이다"라는 신호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나의 실천입니다.

어떤 분은 남편이 들어야 할 말씀이라면 꼭 그 말씀 테이프를 사 남편 차에 놓습니다.

심지어 어떤 분은 남편이 들어야 할 말씀만 테이프를 편집해서 남편 들으라고 줍니다.

그러나 말씀은 남을 공격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내가 실천하라고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들은 대로 행하려고 해야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때 우리에게는 구체적으로 어떤 복이 주어질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3가지 큰 축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1. 물질의 축복(땀흘려 소산을 얻게 됨)

 

본문은 먼저 수고한 대로 열매를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2절 말씀을 보십시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이것은 물질적 축복을 의미하는데 우리는 물질적 축복을 경멸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경멸해야 할 것은 땀을 흘리지 않고 물질적인 축복을 얻으려는 태도이지

정당한 땀의 열매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태도조차 경멸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물질을 우상처럼 섬겨서도 안되지만 물질을 괜히 경멸의 대상으로 봐도 안됩니다.

 

어떤 분은 너무 물질을 바랍니다. 삶의 목표도 물질이고, 기도의 목표도 물질입니다.

반면에 어떤 분은 너무 물질을 경멸합니다. 그냥 무조건 기복주의라고 시비를 겁니다.

목회자가 물질의 축복을 위해 기도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이상하게 쳐다봅니다.

그처럼 물질을 비웃는 분들을 보십시오. 그런 분들에게는 물질도 따라오지 않습니다.

물질도 소중히 아껴주어야 따라오고, 대개 보면 그런 분들이 선교와 구제를 합니다.

 

물질축복이 축복의 전부는 아닙니다. 그러나 물질축복이 없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을 약속하실 때 물질이 없는 축복만 약속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물질적인 축복도 많이 받으십시오. 단 두 가지 단서만 꼭 지키시면 됩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앞세워야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땀을 흘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가 열심히 일하며 사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입니다.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성철 스님은 장좌불와 10년을 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10년 동안 가부좌를 튼 채 눕지 않았다고 하니까 그쪽 면으로는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보면서 "정말 기독교와 불교가 이토록 다르구나!"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기독교는 노동을 신성하게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땀흘려 사는 것을 원하십니다.

 

성철 스님은 돌아가실 때 애통해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내가 이제까지 수많은 청춘남녀들을 속였구나! ! 나는 무간지옥에 가야 하는구나!"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고승의 말이니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진짜 지옥에 간다는 말이 아니고 겸손하게 그렇게 표현해본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좋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훌륭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런 모습을 기뻐하실까 하는 점에서는 의문이 됩니다.

 

기독교는 땀흘림을 중시합니다. 예수님도 열심히 다니시면서 계속 일하셨습니다.

어떤 분이 교회에서 밤낮으로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에 열심히 나올수록 집안 청소 잘하고, 설거지 깨끗이 하고, 살림 잘해야 합니다.

영혼의 병, 육신의 병이 대개 어디에서 옵니까? 열심히 살지 않는 것이 큰 이유입니다.

열심히 땀을 흘리면 살면 죄도 줄고, 병도 줄고, 시험도 잘 들지 않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땀흘림을 통해서 생산적 가치가 있을 때에만 진정 축복을 받은 줄 아십시오.

땅을 샀는데 갑자기 땅값이 올라 부자가 되었으면 너무 간증하러 다니지 마십시오.

그때 너무 지나치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하면 판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내가 땅을 사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할 때 판 사람의 입장에서는 가슴을 칠 일이 되고,

내가 산 증권이 상한가를 칠 때 그것을 판 사람은 얼마나 억울하게 생각하겠습니까?

 

재테크도 필요합니다. 돈을 잘 쓸 줄 모르는 사람에게만 가도록 방치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집, , 증권도 경제를 돕는다는 목적을 가지고 사십시오. 사실 도움이 됩니다.

그런 좋은 마음으로 샀다가 가치가 오르면 조용히 은혜를 음미하는 것이 좋습니다.

항상 땀흘려 가치를 창조하고, 모두가 좋은 상황에서 물질의 복을 받으려고 하십시오.

우리는 항상 같이 축복 받고, 같이 웃고, 같이 행복하고, 같이 잘 살려고 해야 합니다.

우리 가족만 잘 살려고 하지 말고, 더 나아가서 우리 나라만 잘 살려고 하면 안됩니다.

실제로 다 같이 잘 살 수는 없어도 그렇게 살려고 해야 진정한 의미의 복된 삶입니다.

 

그러나 땀 흘려 열매를 얻는 것도 그것에서 끝내면 사실상 온전한 축복이 아닙니다.

그 열매를 가지고 내가 나누고, 내가 누릴 수 있기까지 해야 그것이 바로 축복입니다.

어떤 분은 30년 가까이 잠도 5시간 이상 자지 않고 가족들과 외식도 거의 안하고

자녀들과 따뜻한 대화를 거의 못하고, 해외여행을 한번도 안하고 회사를 키웠습니다.

그런데 IMF가 터지자 몇 달만에 그렇게 힘들여 키운 회사가 남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그는 땀 흘려 열매를 얻기만 했었지 그것을 베풀고 누리는 축복은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물질을 누리는 축복을 받는다는 것'도 얼마나 중요한 일이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런 축복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때 주어진다고 합니다.

여러분! 많이 버는 사람보다는 많이 베푸는 사람이 부자임을 항상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러한 분들이 이 세상과 하늘 나라에서 많이 남긴 자로 기록될 것입니다.

 

2. 가정의 축복(행복한 가정을 얻게 됨)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또 하나의 매우 중요한 축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행복한 가정을 얻는 축복입니다. 본문 3-4절 말씀을 보십시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여기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의 복을 말하면서 왜 아내와 자식의 축복을 말할까요?

그것은 가정의 중요성을 말해줍니다. 사람은 가정이 행복해야 진짜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좋은 집'을 얻으려고 '좋은 가정'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물질의 복이 있어도 가정의 복이 없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소유한 것은 별로 없어도 가정의 행복이 있다면 그 삶이 바로 천국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가족들은 서로 사랑하고, 서로 서로에게 관대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어떤 분은 가족에게 화풀이하며 "그렇게 안 하면 누구한테 하겠느냐?"고 변명합니다.

아닙니다. 가족은 나의 화풀이의 대상이 아니라 내가 가장 축복해야 할 대상입니다.

'행복한 가정'을 원하면서 '행복한 가정'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어떻게 행복합니까?

 

우리 가족 중에 한사람이라도 불행을 느끼면 그 가정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부모도 행복하고 자녀도 행복해야 하고, 남편도 행복하고 아내도 행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가정 행복을 위해서는 자기 중심적인 이기적 태도는 절대 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가족의 전 구성원을 힘써 사랑하는 것이 결국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1) 가정의 아내가 존경받아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먼저 남편은 아내를 최대한 존중해야 합니다. 3절 말씀을 보십시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여기서 결실한 포도나무 같다는 말은 많은 열매가 아내로부터 주어진다는 말입니다.

사실 가정에서 아내가 병들어 보십시오. 그 가정은 열매 없는 삭막한 가정이 됩니다.

그러므로 아내와 어머니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가정은 복된 가정이 될 수 없습니다.

 

옛날에 위대한 선생을 만나 인생에 대해 배우기 원하는 한 청년 가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열심히 다녔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어느 날 지친 채 강변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한 노인이 신비하게 다가와 물었습니다. "청년! 자네 무엇을 열심히 찾고 있지?"

그 청년이 "위대한 선생님을 찾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그 노인이 말했습니다.

"청년! 빨리 집으로 돌아가게. 그때 자네를 기쁘게 맞아주는 사람이 위대한 선생일세."

그 말을 듣고 집에 돌아갔는데 누가 기쁘게 맞아주었을까요? 바로 자기 아내였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선생을 만나도 아내를 존중하지 않으면 결코 인물이 될 수 없습니다.

 

요즘도 보면 아내에게 너무 험하게 말하는 남편이 많습니다.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어떤 분은 다른 점은 별로 흠잡을 것이 없는데 가끔 "이 여편네가!"라는 말을 씁니다.

그 한 마디 때문에 그 인격이 얼마나 추하게 보이고 가정이 불안해 보이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런 분과 같이 지내보십시오. '여편네 말 귀신'이 어느새 들어옵니다.

 

한번은 나이가 50이 넘은 어떤 분이 가끔 자기 입에서 "여편네"라는 말이 튀어나와서

스스로 깜짝 놀라서 "내가 어떻게 이런 나쁜 말을 쓸까?" 하고 곰곰이 생각했더니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 자꾸 그 말을 쓰니까 자기도 그 말이 튀어나왔다고 합니다.

나이가 50이 넘어도 어디에 가서 말 한마디를 어떻게 듣느냐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남편들은 항상 아내에게 긍정적인 말, 신앙적인 말, 적극적인 말, 사랑한다는 말,

칭찬하는 말, 용기를 주는 말, 소망의 말, 감사의 말들을 많이 사용해야 합니다.

칼은 마음까지 찌르지는 못하지만 말은 마음도 찌르고 영혼까지 찌른다고 합니다.

그런 말로 배우자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찌르고, 영혼을 꺾으면 안될 것입니다.

 

(2) 남편도 존경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아내뿐만 아니라 남편도 의식적으로 존중되어야 하는 시대입니다.

왜 오늘날 사회가 어려워집니까? 무엇보다 아버지가 건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되려면 그 가정에 꼭 건강한 아버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자녀들에게 건강한 아버지의 모습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한때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던 아버지가 너무 바빠서 얼굴 보기 힘들어지고,

점점 아빠에 대한 신화에 금이 가면서 결국 아빠는 대화가 안 되는 존재로 여겨지고,

결혼한 자녀에게는 아버지가 경제적 부담만 주는 거의 잊혀진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다가 마흔을 넘어서면서 자기 행동이 영락없이 아버지를 닮았음을 깨닫게 되고,

자기도 늙으면서 "아버님이 조금만 더 사셨다면"하고 아버지를 그리워한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이 오늘날 고개 숙인 남성 및 실종된 아버지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지금 가정에는 아빠의 영향력과 권위보다는 엄마의 고함과 힘이 커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간 큰 남자 시리즈'가 유행했습니다. 그것은 고개 숙인 남성을 상징합니다.

20대의 간 큰 남자는 누구일까요? 부인에게 "밥상 차려 오라!"고 하는 남자입니다.

30대의 간 큰 남자는 누구일까요? 외출하는 부인에게 "어디 가?"하고 묻는 남자입니다.

40대에는 아무 소리 못하고 외출하는 부인을 쳐다만 봐도 간이 큰 남자라고 합니다.

50대에는 "당신 몇 시에 들어올 거냐?"고 묻기만 해도 간이 큰 남자라고 합니다.

60대 이상이 되면 "여보! 당신 따라가도 돼?"하고 사정만 해도 간 큰 남자라고 합니다.

이처럼 나이가 들수록 남자의 힘이 약해져 옛날 생각하면 마음고생이 매우 심해집니다.

 

지금 남편들은 아내가 자신을 남편으로 인정만 해주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남성들은 대개 영웅심이 강합니다. 그래서 아내가 인정해주면 만사 오케이입니다.

그러나 온 세상이 인정해줘도 아내가 인정해주지 않으면 결코 행복을 느끼지 못합니다.

대개의 남편들은 아내의 인정받는 일에 굶주려 있습니다. 그 필요를 채워주어야 합니다.

남편을 인정하며 격려해보십시오. 그러면 대부분의 남편들은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실제 있었던 이야기로 IMF로 실직 당한 어느 가장이 매사에 자신감을 잃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산에 가려고 나오는데 직장에 나가는 부인이 봉투 하나를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산에 가서 그 봉투를 펴보니 돈 3만원과 함께 편지 한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여보, 당신은 직장을 잃어도, 돈이 없어도, 못나도 내 남편이에요.

당신이 있는 곳에 나도 있을 것이고, 당신 가는 곳에 나도 갈 것이니까 실망 마세요.

당신은 잘 모르겠지만 당신이 내 옆에 있어 준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해요.

진작 이렇게 이야기하지 못해 미안하지만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요!. 당신의 아내가."

 

그 편지를 읽고 감동이 되고 삶의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 길로 산에서 내려와 약간의 밑천을 마련해서 붕어빵 장사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붕어빵 장사를 하면 어떻습니까? 가족이 서로 인정해주며 사는 것이 행복이 아닐까요?

 

그러나 행복한 가정이 되려면 무엇보다 하나님이 가정의 주인이 되어주셔야 합니다.

본문 4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가정이 행복해지는 가장 위대한 비결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있습니다.

어떤 가정은 남편을 너무 경외합니다. 남편 말 한 마디에 가슴 조이며 살아갑니다.

그것은 남편과 아내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 가정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어떤 가정은 아내를 너무 경외합니다. 아내가 중전마마이고, 가정이 여인천하입니다.

어떤 가정은 자녀를 너무 경외합니다. 자녀라면 벌벌 떨고 부부가 최면에 걸립니다.

그렇게 사람에 얽매이고 벌벌 떨면 행복할 것 같지만 결국 모두 불행해질 뿐입니다.

하나님이 가정의 주인이 되시고, 하나님만 경외해야 그 가정이 행복해질 것입니다.

 

3. 교회의 축복(교회를 통해 은혜가 주어짐)

 

물질의 복이 있고, 가정의 복이 있어도 교회의 복이 없으면 진정한 복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교회를 복의 통로로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5-6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여기서 시온은 예루살렘과 같은 말로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복을 주시고, 평강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물질의 복과 자녀의 복도 모두 이 교회의 복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이 모든 복이 우리에게 참되고, 의미 있고, 유익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행복한 존재가 되려면 내가 생명처럼 사랑하는 교회가 있어야 합니다.

성도에게 인생의 가장 큰 낭비는 내가 생명처럼 사랑하는 교회가 없다는 것입니다.

삶이 여러 번 나를 속일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기쁜 날을 기다리라는 푸시킨의 시처럼

'교회의 삶'이 여러 번 나를 속였을지라도 결코 교회의 회색인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교회생활에서 군중 속의 고독을 즐기는 것처럼 가장 고상한 인생 낭비는 없습니다.

"부담 없는 교회생활!"은 오늘날 우리의 신앙을 가장 멍들게 하는 대표적 요소입니다.

 

어떤 분은 교회를 하나님의 집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면 큰 은혜가 주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교회를 주막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면 신앙에 발전이 없게 됩니다.

사실상 교회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생각의 차이가 신앙생활의 성패를 가릅니다.

우리가 교회를 하나님의 집으로 생각할 때 우리는 영적으로 풍요롭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를 주막처럼 생각하면 교회의 아름다움이 너무 쉽게 훼손되기도 합니다.

그러면 시험 드는 일이 잦게 일어나면서 신앙이 뿌리내리고 성숙해질 수 없습니다.

 

교회를 소중히 여기고 다니는 것과 적당히 교회 다니는 것의 차이는 매우 큽니다.

교회를 '하나님의 집'으로 알고 '나의 영혼의 구원의 방주'로 알고 깊이 사랑할 때,

우리는 진정 교회로부터 주어지는 하나님의 축복과 은총을 더욱 얻게 될 것입니다.

이번 구정을 맞이해서 다시 한번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새롭게 작정해 보십시오.

그래서 2002년에 여러분에게 물질의 복, 가정의 복, 교회의 복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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