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2.21 주일 설교 (사도행전 강해 6)
하나님께서 마음을 치실 때
행 2:37-41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
저는 이 본문을 읽고. 흥분되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설교자라면 누구나 그랬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설교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엄청났습니다. 그 날 3천 명이 회심하였다고 했습니다. ‘설교를 한다면 이런 설교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것이 제 기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설교를 하고 싶어하는 저에게 꿈을 통하여 “대가를 지불할 각오가 있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한번은 제가 사람들 앞에서 눈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사람들이 화가 난 모습으로 제게 달려드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찔림을 받은 사람들은 "형제들이여, 어찌할꼬!"하고 회개했으나 스데반 집사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은 사람들은 돌을 들어서 스데반 집사를 쳐 죽였음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너는 스데반처럼 되어도 좋겠느냐? 물으시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때 설교의 은혜도 욕심으로 구할 것은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때 “하나님 비록 설교를 하다가 돌에 맞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제가 설교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하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저를 설교자로 택하신 이유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첫째는 설교에 제 자신의 의도를 갖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어떤 내용으로 설교하고 싶은 것을 전적으로 배제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 받는 설교 방법 중 하나가 강해설교입니다. 어느 성경 하나를 택하여 1장 1절부터 연속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만 설교하자. 제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성경 본문을 제 의도를 가지고 택하지 않으려고 하는 뜻입니다. 주어진 본문 말씀으로 설교하겠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오직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전하자.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으니까 말씀 준비를 다 해놓고도 마지막에 “하나님, 이 말씀을 전하게 하시는 것입니까?” 성령의 기름부음을 확인하고 전합니다. 셋째는 어떤 결과가 있어도 그 결과를 받아드리자는 것입니다. 3천명이 회개하고 돌아오든지 아니면 돌이 날아와서 내가 죽든지 첫째 둘째 원칙을 잘 지켰다면 결과는 하나님께 완전히 맡긴다. 결과에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설교를 듣는 여러분도 “목사님, 성령 충만하여 우리 마음을 치는 그런 설교 한번 해보세요!” 하지만 말고 설교를 듣는 여러분도 올바른 원칙을 가져야 합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회중과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회중이 달랐듯이 설교를 드는 사람도 말씀 듣는 자세가 올바라야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설교를 듣는 원칙은 말씀이 찔러오면 첫째, 설교자를 생각하지 말고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설교자가 누구냐 하는 것보다 그 설교 내용이 정말 성경에 있는 내용인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이 맞다면 내 감정과 상관없이 받아들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강력한 성령의 역사를 여러분에게 허락하십니다. 말씀 받는 준비가 되어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역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자세를 가지면 하나님께서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에게도 동일한 역사를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은 베드로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찔림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마음의 찔림을 직역하면 심장을 관통한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큰 자극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비로서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니!’ 이보다 더 심각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들이 이것을 깨달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치셨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이런 죄책감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마음을 치시는 것은 큰 복이고 은혜입니다.
설교를 들을 때마다 마음에 찔림이 있나요? 좋은 징조입니다. 영적 감각이 살아 있다는 증표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의 불행은 하나님이 마음을 치서도 마음의 찔림이 없는데 있습니다. 사람들의 다른 감각은 참으로 예민합니다. 누가 내게 잘하는지, 아니면 잘못하는지, 아주 잘 알아차립니다. 정욕과 탐욕, 미움, 시기, 질투의 감각, 슬픔, 불쾌함은 다 잘 느낍니다.
그런데 유독 하나님께 대한 감각은 죽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셔도, 하나님이 마음을 치셔도 전혀 느낌이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께 대한 감각이 무뎌진 사람들을 이렇게 책망을 하셨습니다.
마 11:17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인도의 영성 신학자 앤소니 드 멜로(Anthony de Mello)라는 분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든 채 태어나서 잠든 채 살며 잠 속에서 혼인하고 잠 속에서 자녀를 낳고 깨어나 본 적이라고는 없이 잠 속에서 죽는다.”
여기서 말하는 잠은 생리적인 수면이 아니고 영적 차원의 잠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는 아무런 감각적인 교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셔도 듣지도 못하고 하나님이 치셔도 깨닫지 못하는 태어나서 죽는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에 태어나서 영적으로 깨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다가 그냥 죽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다가 그냥 죽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것이 잠에서 깨어나 보지도 못하고 죽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가 그렇게 되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죄의 종노릇하며 살면서도 심각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누가 여러분의 주인이라고 한다면 인생 자체가 사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겠지요? 그런데 죄가 여러분의 주인이라면 이보다 심각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실제로는 죄의 종노릇하면서도 그 심각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은 것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하나님의 심판이 그렇게 심각한 일인지? 사람들은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그렇게 살다가 하나님 심판 앞에 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지금 이 시간 여러분이 심각한 상태에 있는 것을 알게 해주시고 그것을 깨우치고 돌이키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치실 때, 우리는 평소에 전혀 심각하게 여기지 않던 일이 심각한 일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삶 전체를 바꾸어 돌이키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어느 집사님이 보통 한국 어머니처럼 자녀들을 위한 열심이 대단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기도 중에 하나님이 마음을 치셨습니다. ‘네 아이가 지금 죽으면 천국에 갈 확신이 있느냐?’ 깜짝 놀랐습니다. 그동안 아이들의 대학 입시나 유학, 직장, 결혼 문제에 대하여 관심 가진 것에 비하면 영적인 상태에 대하여는 너무나 무심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성적에 대하여는 너무나 예민하면서 성경 읽고 기도하고 교회 나가 예배하는 것에 대하여는 얼마나 무신경하였던가? 너무나 바보같이 우선순위가 뒤바뀌었음을 깨닫고 회개하였다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시간에 여러분의 마음을 쳐서 깨닫게 하시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열심히 살지만 그것이 정말 중요한 것을 위해서 사는 것인지 보장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가족들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소중한 부모이고 형제고 자식이고, 아내이고 남편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 가족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지날 때가 많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대로 죽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만약 영원히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어진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가 처해있는 심각한 상황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것이 우리 마음을 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이렇게 찔러 주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본당 건축을 앞둔 때, 의사 전도왕 이병욱 장로님을 초청하여 간증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단에 나오신 장로님께서 말씀하시다가 “용서하고 하나 되십시오!” 하시더니 우셨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모두 일어나 서로 마음에 상처준 이들을 찾아가서 화해하라고 하였습니다. 좀 어색한 시간이었습니다. 정말 그런 사람이 있어도 찾아가기가 어려운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장로님은 그 말씀을 계속하시면서 우셨습니다. 우리 교회 사정을 정확히 알지 못하시면서도 강단에 서셨을 때, 교인들 마음에는 벽이 있는 것을 느끼신 것 같았습니다. 그 날 어떤 특별한 회개의 역사가 일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저는 장로님의 눈물을 통하여 성령님의 마음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교회가 여러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교인들 마음에 깊은 상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하나 되었습니다. 저는 이 정도도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본당 건축을 앞둔 우리에게 성령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마음 중심까지 하나되는 것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쳐서 깨닫게 하시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속으로는 ‘저 사람과는 함께 일할 수 없어요. 저 사람은 안돼요. 저 사람은 싫어요.’ 하는 마음이 해결되지 않으면 예배당 잘 건축하면 무엇하나? 하는 것입니다. 그 후 저에게는 예배당 건축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성령 안에 하나 되는 것임을 깨달았고 끊임없이 그것을 강조해왔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평소에는 먹고 사는 일에 시급하게 살다 보면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살 때가 있습니다. 예배당 건축 과정도 예배당 건물을 짓는 것에 큰 어려움이 있다 보니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를 하나님께서 다루신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설교를 들은 청중은 반응이 컸습니다. “우리가 어찌할꼬” (37절)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찌르실 때 무감각하게 넘기면 안됩니다. 그러면 더 이상의 성령의 역사를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치실 때 우리도 “우리가 어찌할꼬” 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 때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회개하라!"
1907년 한국 교회 부흥 당시의 회개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회개가 강하게 일어났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람에 이어 사람이 일어서서는 죄를 자복하고 넘어져서는 죄책감으로 땅을 쳤다. 사람들이 죄를 자복하고 온 청중이 통성기도를 하는 데 청중은 울음 바다가 되었다. 이렇게 기도회는 새벽 두시까지 자백과 울음과 기도로 계속 되었다.”
예루살렘의 초대 교회도 그랬고, 한국 평양의 초대 교회도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치실 때 회개하면 삽니다. 부흥이 일어납니다. 인생이 바뀝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치시고 찔림을 주셔도 그것이 회개로 꼭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이 마음을 치셔도 반응해야 되겠다고 하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우리 마음을 치셔서 찔림은 왔는데 반응은 정반대로 나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 말을 한 자에게 돌을 던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처음 만난 베드로가 무릎을 꿇고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고 고백했을 때 주님께서 떠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가까이 오셨습니다.
평양의 부흥 운동보다 약 10년 전에 황해도 소래교회에서 놀라운 부흥이 먼저 일어났습니다. 소래교회는 만주에서 복음을 들은 한국인들이 선교사의 도움 없이 스스로 세운 교회입니다. 1889년 한국에 도착한 캐나다인 선교사 말콤 펜윅 선교사가 1896년 말 소래를 방문하여 집회를 인도하였습니다. 약 300명의 신자들이 모여서 열심히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드렸으나 무엇인가 빠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펜윅은 한 사람을 불러서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임에 역사하고 계시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제 눈에는 감격하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오직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서로 미워하는 신자 두 사람만 있으면 하나님의 역사는 중단될 수 있습니다. 자, 이제 이곳 신자들 중에서 누가 서로 미워하고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펜윅의 말이 끝나자 그 사람은 엎드려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기와 다른 두 사람이 서로 미워하며 불편한 관계에 놓이게 된 배경을 이야기 했습니다. 펜윅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미워했던 그 사람에게 가서 사과하지 않겠느냐"고 권했습니다. 그 사람은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사람은 그 길로 미워하던 두 사람을 찾아가 용서를 구하고 서로 화해했습니다. 다음 날인 주일 회중들 앞에서 자신의 죄를 자백하자 모든 신자들이 함께 회개하였습니다.
1904년 영국 웨일즈에 영적 부흥이 일어났었을 때, 한 작은 교회의 한 부인이 주기도문을 하다가 끝낼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이 대목에 이르러 더 계속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가 미워하고 있는 한 형제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기도를 중단하고 그 형제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갈등은 당신의 책임이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나의 책임이라고 그 여자는 자백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이 두 사람을 묶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에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교회에 큰 부흥이 임했다는 소문을 듣고 보석 가게를 경영하던 한 상인이 처음으로 교회에 나가 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이 예배 시간에 격한 감정으로 기도하고 우는 것 외에 특별히 마음에 감동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부흥'이라는 것이 별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교인들의 '요란한 감정의 잔치'라고 생각하고 다시는 교회에 발을 안 들여놓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며칠 후 자기 가게에 한 젊은이가 오더니 자기가 이 보석가게에서 보석을 훔친 일이 있다고 보석을 내놓으며 용서를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결심을 하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자기 마음에 성령이 임하고 부흥이 일어나서 자기가 회개하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교회에 나가 자신도 영적 부흥을 체험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손기철 장로의 책 [기름부으심]에 규장 출판사의 여진구 대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분이 2006년 성령의 기름부음을 체험한 후 어느 날 기도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갑자기 직원들에게 회개하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아니 하나님, 갑자기 회개라니요?" 너무나 당황했지만 직원들에게 잘못한 것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하나 하나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는 직원 예배 시간에 전 직원들 앞에서 공개 자복을 했습니다. 회사 대표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자기 마음에 품었던 사랑하지 않은 죄, 미워하고 정죄하고 판단하고 상처를 준 말과 행동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니 직원들도 당황했지만 그 후 출판사 안에 놀라운 일은 시작되었습니다.
4월 6일 규장과 갓피플 전 직원에게 강력한 성령님의 능력이 임하는 성령체험 사건이 일어났고, 모든 직원들이 공개 자복하는 역사가 일어나 업무적으로 반목한 직원, 개인적으로 마음에 앙금이 쌓인 직원들과 부서 간에 회개와 용서, 화합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다시 가족들에게도 사과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가정 예배를 드리는 자리에서 가족들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아내와 초등학생인 큰 아들과 딸, 다섯살 막내 아들 모두 깜짝 놀라서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무릎을 꿇은 채 아내와 막내 아들까지 한 명씩 손을 잡고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신 잘못을 낱낱이 말하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가 마주잡은 손에 눈물을 떨어뜨리며 전심으로 회개하자 가족 모두 울음을 터뜨려 거실이 울음 바다가 되었습니다. 회개하는 가정 예배 이후로 가족들의 기도가 깊어지고 은사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 역시 더 밝은 마음으로 하나님과 부모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큰 아들이 말하더랍니다. “아빠, 성령님 만나더니 많이 착해졌어."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 놀라운 일을 계획하고 계시고 실제로 그 일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치실 때 즉각 반응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교세가 1만3천 명이나 되는 큰 교회 담임 목사님이 교인들을 대상으로 세례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들을 파악해 보았더니, 40%인 최소한 5천 명 이상이 세례를 받지 않았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고 했습니다. 세례 받아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교인들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입교인은 2700명 입니다. 세례를 받지 않은 원입인은 100명도 안됩니다. 등록 과정에서 세례를 확인하고 세례를 받게 하기 때문입니다. 셰례받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세례를 안 받고 신앙 생활하는 분들이 있는 까닭은 세례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는 것은 공개적으로 예수 믿게 되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는 정말 회개하였습니다.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사는 자가 되었습니다.” 고백하라는 뜻입니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그렇습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받은 가장 큰 선물은 성령님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된 증거가 우리 안에 오신 성령님 입니다. 거듭남은 성령님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최대의 선물로서 우리는 영생, 천국, 구원 등을 말씀합니다만,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담아서 주시는 큰 그릇이며 실체인 선물이 성령님이십니다.
영국의 버트란트러셀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의 도덕률은 너무 높아서 나는 도저히 감당 못하겠다. 그래서 나는 아예 처음부터 예수쟁이가 되지 않겠다.”
정확한 십자가 복음과 성령의 역사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뜻대로 살고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능력이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성령님의 역사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그렇게 살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기 위하여 할 것은 단지 하나님께서 마음을 치실 때 회개하고 공개적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세례 신앙을 갖는 것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이 마음을 치실 때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반응했던 그들처럼 반응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겸손의 무릎을 꿇고 성령의 지배를 간절히 구하는 여러분에게 이런 성령이 충만히 임하실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상황은 우리에게 그 놀라운 믿음의 세계를 열어주기를 원하십니다. 얼마든지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그전에 한번도 그렇게 살아보지 못했던 분들도. 여러분, 하나님의 부르심과 약속을 붙잡으세요. 예수님의 손을 잡고 파도 위를 걷는 것입니다. 남은 생애를 사시기 바랍니다.
이제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 마음을 치시는 것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서 즉각 반응하십시오.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십니까?” 회개하고 예수님을 정말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사람들 앞에 선포하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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