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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기쁨/누가복음 15장 11-24절

by 【고동엽】 2023. 1. 23.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기쁨

2001-12-06 17:00:50 read : 368

 

누가복음 1511-24

 

오늘날 범죄의 가장 큰 요인은 애정의 결핍이라고 합니다.

특히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자녀는 아주 공격적이 됩니다.

그만큼 아버지의 사랑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물론 그런 환경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달라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넘치는 아버지의 사랑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연줄이 없고, 후원자가 없는 것을 아쉬워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런 아쉬움이 절대 없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믿는 우리에게는 가장 위대한 연줄이요, 가장 위대한 후원자이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버지는 정말 사랑이 많은 아버지입니다.

이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이렇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이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관련한

3가지 신앙적 교훈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우리의 고난도 허용하시는 사랑입니다.

 

왜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토록 능력이 많으시면서

우리에게 고난을 당하도록 허용하십니까?

그 이유는 삶의 고난은 자기 발견의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고난의 순간에 우리 믿음의 진가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평안할 때는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구분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려울 때에는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구분이 뚜렷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믿는 사람은 "어려움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이란 "어려움에 대한 해석이 달라진 사람"입니다.

 

이처럼 어려움에 대한 해석이 달라진 모습을 보일 때

하나님은 그 어려움을 반드시 축복의 디딤돌로 만들어 주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문제의 발단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둘째 아들의 이기심 때문이었습니다.

12절 말씀에 나오는 이 둘째 아들의 말을 보십시오.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문제가 일어나는 가정, 문제가 일어나는 공동체를 보십시오.

무엇이 문제입니까? 사람의 이기심이 문제입니다.

문제가 없거나 문제가 극복되는 가정, 공동체를 보십시오.

무엇 때문입니까? 믿음으로 십자가를 지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이기심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본문의 가정에도 둘째의 이기심 때문에 가정에 어려움이 생깁니다.

그런데 둘째가 재산을 나누어 달라고 할 때 아버지가 어떻게 합니까?

아버지는 분명히 이 둘째가 재산을 잘못 쓸 것을 압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나눠줍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바로 이런 사랑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랑에는 낭비성이 포함되어 있다."

아무리 봐도 낭비할 것 같은데 어느 경우에는 제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제재한다고 해도 듣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는 요구한대로 해 줍니다. 한번 실수할 기회도 줍니다.

 

사랑에는 이처럼 때로 낭비하는 모습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낭비벽이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헌신과 사랑이 담긴 낭비는 필요합니다.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에게 부은 여인은 분명 낭비를 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길을 가시는 주님에게는 꼭 필요한 낭비였습니다.

 

그래서 자세히 보면 약간 순진한 사람이 진짜 사랑을 합니다.

왜냐하면 계산하기 시작하면 온전한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에는 적절한 손해가 예상되어도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이처럼 아낌없이 주십니다. 실패할 기회도 주십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한 증거입니다.

그러자 둘째는 즉시 그 나눠 받은 재산을 가지고

멀리 가서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다 허비했습니다.

 

예상한 그대로 이 둘째 아들은 낭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낭비한 자리에서 비로소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 자리에서 비로소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17-18절 말씀이 바로 그런 말씀입니다.

 

이처럼 사람은 어려운 상황을 만나 봐야

비로소 소중한 것의 가치에 눈을 뜰 때가 많습니다.

 

말씀을 많이 들어도 어떤 때는 한번의 체험이 더 큰 역사를 이룹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의 체험에는 2가지 종류의 체험이 있습니다.

좋은 일을 통해 하나님 만난 체험이 있겠고,

반대로 쓰라린 일을 통해 하나님 만나는 체험도 있을 것입니다.

 

저의 경험으로 볼 때 좋은 일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 체험은 3개월쯤 갑니다.

그러나 쓰라린 일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 체험은 최소한 30년 이상은 갑니다.

84, 모든 길이 막힌 느낌이 들었을 때 저를 만나 주신 주님을

저는 지금까지 결코 잊을 수 없고, 앞으로도 일생 다하도록 잊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려움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서울에서 목회하시던 어떤 목사님이 어느 겨울날 집에 들어가다가

한 여인이 아파트 길에 나와 벌벌 떨며 서 있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 목사님이 지나가다가 너무 안스러워서 왜 서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학원에 간 딸이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돌아오지 않아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왜 밖에서 기다리느냐고 물으니까

옛날에 어머니가 생각이 나서 나와 기다린다고 합니다.

 

옛날에 어머니가 자기가 늦게 돌아올 때면

늘 문밖에 서서 초조히 기다리시다가 자신이 돌아오면

자기 손목을 잡고 좋아하시던 어머니 생각이 났던 것입니다.

가만히 보니 50쯤 되어 보였습니다. 사람이 철들기란 이처럼 어려운 일입니다.

스스로 부모가 되어야 비로소 부모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그 입장이 되어서 체험해 보아야 비로소 그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저도 목회를 하면서 가끔 그런 비슷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15년 전 청년 때에 저도 교회 봉사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촉망 받는 젊은 청년이었고, 목사님의 총애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목사님께 죄송한 생각이 많이 납니다.

봉사하면서 더 사려 깊게 봉사했으면 좋았을 것을 하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교회를 너무 사랑하고, 목사님을 너무 돕고 싶어서

혼자 소리 없이 전도를 해야지 하는 갸륵한 마음을 가지고

저 스스로의 돈을 들여서 온갖 좋은 글귀는 다 모아 가지고

교회 전단지 수만장을 만들어 혼자서 열심히 뿌리며 동네 전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목사님이 그 전단지를 보고 제가 그렇게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목사님이 그 일로 저를 대견하게 생각하실 줄 알았습니다.

물질헌신, 시간헌신, 소리 없는 전도... 아무리 봐도 좋아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기쁜 표정은 없고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저는 그때 마음의 상처는 받지 않았지만

목사님이 그런 모습을 보여준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한참 후 목회를 하다 보니까 그 심정이 이해가 됩니다.

혼자 전도지 만들어 전도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상하고 좋은 일입니까?

교회를 위해 전도하겠다고 혼자 전도지 만들어 전도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전도지는 교회의 중요한 얼굴 중의 하나인데,

그 문구나 내용에 대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최소한 목사님에게는 상의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뜻은 좋고 훌륭했지만 사려는 깊지 못한 행동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은 목회를 해 보면서 비로소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그러한 종류의 깨달음과 이해가 언제 생깁니까?

우리가 상대방이 당하는 똑같은 일을 당하게 될 때 그러한 깨달음이 오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끔 우리의 생각을 폭을 넓히고, 시야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 자신의 참 모습을 보게 하기 위해서 고난을 허용하십니다.

 

2.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변함없는 사랑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둘째 아들이 재산을 다 날리고 난 다음에 어떻게 됩니까?

그때에야 비로소 자기를 발견하고 아버지의 사랑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아버지께로 돌아옵니다. 그때 아버지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이 둘째가 다 날렸지만 아버지는 돌아온 것만으로도 기뻐합니다.

이처럼 아버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사랑이 변함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은 있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였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선한 것을 주고자 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정성, 우리의 헌신, 우리의 간절한 기도에도 응답이 없으신 것!

나중에 알고 보면 그것도 하나님이 다 사랑으로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사랑하는 자녀에게 가장 선한 길을 허락하지 않겠습니까?

 

작년 말에 새벽기도에 나오는 한 분이

첫째 딸의 의대 편입시험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효자촌에서 새벽마다 차를 타고 우리 교회로 하루도 빠짐없이 나왔습니다.

그분도 한번 하면 한다는 정도로 꾸준한 인내를 가진 분이었습니다.

정말 보기도 좋았고,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의 기도제목과는 달리 딸의 의학도의 길을 막으셨습니다.

그런 결과를 놓고 인간적으로는 실망하지 않을 분은 한 분도 없을 것입니다.

그분도 실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모른 척 했습니다.

하나님께 맡겨야지 무슨 위로의 말이 필요합니까?

그러나 저는 그분의 정성과 눈물이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는 확신은 있었습니다.

 

그 뒤 의약분업 문제로 인한 의료계 파동이 일어났습니다.

전국 의사 6만명 중에 3만명이 데모하러 모이는 사태까지 일어났습니다.

그제서야 우리 일반 국민들도 의사들의 사정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공부만 꼬박 11년을 하고 전문의가 되어서도 형편이 어려운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치원에서 비뇨기과를 개업한 한 친구에 왜 거기서 개업했느냐고 물었더니

수도권에서 개업하면 80%가 망하기 때문에 그랬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얼마 전에 다른 친구가 충주 건대의대 교수 겸 부속병원 외과 과장을 하다가

서울 태능에 있는 한 일반병원으로 옮겼습니다.

그 부인도 의사인데 얼마나 심성이 아름답고 고운지 모르겠습니다.

그처럼 의사 부부로 지내는데 교수라는 명예를 포기하고 일반 병원으로 간 이유가

세 명의 아이를 키우는데 수입이 넉넉지 않아서 옮긴 것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저와 대화하면 제가 부럽다고 하고 괜히 의사가 됐다고 합니다.

저는 그 말이 농담인 줄 알았는데, 이번에 병원 옮기는 것을 보고

그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 K 집사님도 가끔 만나면 그런 문제로 하소연을 했습니다.

11년 동안 피나게 공부를 해서 전문의 따도 개업은 힘들고,

병원에 근무하면 그 스트레스가 엄청나다고 했습니다.

연봉도 그저 그렇고, 의사들은 연봉제이기 때문에 퇴직금이 없어서

실질적으로는 공부한 것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가끔 새벽기도에 나오는 분 중에 의사 부인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상담을 하는데, 지금 아파트 대출금 갚느라고 허리가 휠 지경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십일조를 해야 하는지 깊은 고민을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아무리 존경받는 직업이라지만 존경만 받고 살라고 하면 말이 됩니까?

지금 의료계 현실이 그런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정삼호 집사님으로부터 그 집사님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집사님의 첫째 딸이 이번에 대학 졸업하고 의대 편입 시험에는 실패했지만

얼마 전에 외국계 회사에 지원했는데,

1명을 뽑는데 5차 면접까지 통과해서 그곳에 취직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대졸 신입 남자 사원 연봉의 2배 이상을 받는 자리였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길을 통과한 것이라면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작년에 우리 교회 K 집사님이 영안모자 계열사 사장 1명 뽑는데

경영의 베테랑들만 500명이 모인 중에서 뽑혔습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뽑힐 때까지 얼마나 많은 기다림이 있었습니까?

그래도 됐습니다. 그것은 실력이나 다른 재능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500명 중에 한명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안됩니다.

 

그리고 이번에 5차 면접까지 가서 최후의 한명으로 남는 것도

실력만 가지고는 그 일을 해석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 자리에 그 자매가 필요하기 때문에 주신 것입니다.

결국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무리 봐도 하나님께서 본인이 원하는 의사의 길을 막으시고

그 자매에게 더 좋게 생각되는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최선을 길을 예비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이 헌신하고 난 후, 내일의 소망을 가지고 기대하면 더 좋고,

그러나 때로 인간이 연약하여 넘어진 모습을 보여도

하나님은 우리의 그 순간의 넘어진 모습을 보시고 외면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뿌렸던 씨앗을 차근차근 열매맺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최선을 다해 많이 뿌리시기를 바랍니다.

뿌린 후에 인내하지 못하고 혹 넘어지는 한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뿌린 씨앗 자체를 결코 잊어버리시는 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적절한 때에 꼭 좋은 열매, 귀한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3. 하나님 아버지의 시각으로 우리를 보자는 것입니다.

 

우리의 부족한 모습 속에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귀히 보십니까?

오늘 본문이 이 사실을 얼마나 생생하게 우리에게 도전하고 있습니까?

 

이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허랑방탕하여 다 날려버렸습니다.

정말 얼굴 들 낯이 전혀 없어야 하고, 실제로 본인도 그런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아버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이 아들이 돌아오니까 그 사실 자체로 얼마나 그 아들을 기뻐합니까?

아버지는 여전히 그를 가장 소중한 아들로 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아버지의 시각으로 우리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너무 자신을 낮추어 보면서 "벌레 같은 죄인"이라고 하고,

날마다 자기가 가치 없는 존재라고 하면 별로 바림직한 일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의 무가치성에 대해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가치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역사를 바꿉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겸손함이 지나치면 "보아달라는 겸손함"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아버지의 시각으로 우리를 본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슨 말입니까?

다른 것이 아닙니다. 무슨 큰 일을 성취하는 것도 아닙니다.

원래 가졌던 아버지의 둘째 아들의 위치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시각으로 자신을 보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의 위치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미국의 한 잡지사에서 남편들을 대상으로 캠페인을 벌였는데,

그때 이런 구호를 내세웠습니다.

"어서 가정의 가장으로 빨리 돌아가서 제 위치를 찾으십시오."

 

낮은 위치에서 높은 위치로 올라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위치를 잘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위치를 올리시는 일은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야 할 일이고,

우리의 할 일은 우리의 위치를 잘 지키는 일입니다.

그것에 합격해야 하나님께서 우리의 위치를 올려주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까 둘째 아들이 다시 둘째 아들의 위치로 돌아오니까

아버지는 불문곡직하고 이유 없이 기뻐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우리 자리로 되돌아오는 것!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가장 큰 기쁨이 되실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정말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게 하며,

아버지를 기쁘시게 할 때 주어지는 축복이 여러분들에게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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