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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자/누가복음 15장 25-32절

by 【고동엽】 2023. 1. 23.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자

2001-12-06 17:06:41 read : 436

 

누가복음 1525-32

 

지난주에는 오늘 본문 바로 앞부분에 나오는 비유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 비유를 흔히 "돌아온 탕자의 비유"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비유는 흔히 "집안의 탕자의 비유"라고 합니다.

 

어떤 내용입니까?

둘째 아들이 돌아온 것에 대해서 아버지는 기뻐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 첫째 아들이 대단히 못마땅해 합니다.

그러면서 아버지에게 자기는 열심히 아버지 명령을 따랐는데

무엇 하나 자기에게 해 준 것이 있느냐고 대듭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이 첫째 아들을 설득하는데 다시 애를 쓰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을 보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4가지 조건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사람일까요?

 

1. 형제 사랑을 실천하는 자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아버지가 첫째 아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첫째 아들에게 원하는 것은 둘째 아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형제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려 주고 있습니다.

첫째가 둘째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이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둘째를 받아들인다면 아버지의 축복은 첫째에게 훨씬 더 많이 갈 것입니다.

 

대개 아버지들은 자식들이 효도하는 것도 보지만

형제간의 사랑하는 것도 봅니다.

그리고 형제간에 사랑하는 것도 사실상 아주 중요한 효도입니다.

그런 효도를 해야 아버지의 마음을 얻을 수 있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며칠 전 신문마다 왕자의 난으로 시중이 떠들썩했습니다.

이성계의 아들들이 권력 때문에 600년 전에 왕자의 난을 일으켰는데,

지금은 정주영 회장의 아들들이 재물 때문에 왕자의 난을 일으켰습니다.

부자간에 재물 때문에 싸우고, 형제간에 재물 때문에 싸웁니다.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그들이 신문에서 말한대로 패륜적인 사람들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나름대로 배운 사람들이고, 양식이 있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우리도 그 위치에 있으면 어떻다 라고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자리를 보전하려고

한편에 서서 자기들의 주군을 옹립하고 끊임없이 충동질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그런 모습을 참으로 많이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절대 그런 모습을 보여서는 안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도 그런 모습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바로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형제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 사랑을 느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형제끼리 싸우는 모습으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형이 동생을 시기하는 것 때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동생에 대한 시기와 질투를 억제할 수 있어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못하기 때문에

처음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처음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동생의 입장에서도 아버지에게 돌아온 것으로 다 되지 않았습니다.

돌아온 후에 또 한번의 훈련 과정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형의 시기와 질투에서 자기 마음을 지키는 훈련입니다.

그런데 이 훈련은 쥐엄열매로 배를 채울 때보다 오히려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우리도 가끔 교회 내에서 형제들에게 이런 시련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대해서는 항상 이런 마음의 준비를 가져야 합니다.

교회가 천국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인 큰 가정이지만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내에서도 시기와 질투가 있습니다.

없어야 되고, 없기를 희망하지만, 그런 현실을 인정하고

대비하며 신앙생활을 해야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아주 현실적인 문제이고, 심각한 문제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사람을 고달프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가까운 사람, 손윗 사람의 시기심일 것입니다.

별로 중요한 이유도 아닌데 시기심을 가지고

자기에게 힘든 요구를 하거나 자기에게 심한 말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 가장 중요한 것이 복수하지 않고 미워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평가하시는 믿음의 내용이 바로 그것입니다.

먼저된 자는 시기와 질투를 가지지 않는 훈련이 필요하고,

나중된 자는 시기와 질투를 이기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훈련을 잘 이겨낸 사람이 진정 하나님의 축복된 존재가 됩니다.

 

다윗이 어떻게 왕이 되었고, 지금까지 가장 칭송받게 되었습니까?

그가 바로 이 훈련을 잘 통과했기 때문입니다.

사울의 끊임없는 시기와 질투 속에서도 다윗은 끝까지 자신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울의 뒤를 이어 큰 후유증 없이 왕위를 물려받았습니다.

 

만약 다윗이 직접 사울을 향해 분노의 칼을 갈고 휘둘렀다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처럼 놀라운 축복을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의 시기라는 이 고통스런 훈련 속에서

자신을 지키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나니까

하나님은 사울의 축복을 떼어다가 다윗에게 맡겨 주십니다.

 

여러분! 큰 축복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가까운 사람, 손윗 사람의 시기와 질투의 훈련을 넘어서야 합니다.

이 훈련에 우리가 실패하면 우리는 큰 인물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훈련에 합격하면

하나님은 시기하는 사람의 축복을 떼어다가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2. 환경을 바라보고 헌신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이 첫째 형은 아버지가 돌아온 아들을 환대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러해 동안 명령대로 순종한

자기가 더 환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기보다 동생을 더 환대하는 것 같이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첫째를 아버지가 설득했습니다.

그 설득이 30-31절 말씀입니다.

"아들아 내 것이 다 네 것이지 않니.

지금 동생이 죽었다가 살아난 것과 같으니까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을 이해해라."

그 아버지의 설득을 듣고 깨닫고 계속해서 아버지께 순종했다면

이 첫째는 둘째보다 훨씬 더 큰 축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 경우에 대해 분명히 성경은 말합니다.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 잠시 잠깐 있었던 아버지의 둘째 동생 환대를 보고

그 다음부터 아버지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는 길로 들어서게 되면

"내 것이 다 네 것이다"라는 이 약속은 그에게 성취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참으로 아버지의 것이 그의 것이 됩니다.

 

때로 우리에게도 이런 순간이 찾아옵니다.

내가 그렇게 열심히 헌신하고 봉사했는데,

아무리 봐도 나보다 못한 저 사람이 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과 같은 기분..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헌신의 진정성을 보기 위한 시험입니다.

그때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헌신하면 하나님 것이 다 우리 것이 됩니다.

 

여러분! 절대 주변 환경을 보고 헌신을 포기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요즘 사람들은 버티기보다는 포기하는 것이 더 익숙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달라야 합니다.

포기하는 것보다 버티는 것이 더욱 익숙하도록 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버티면 버틸 수 있습니다.

그만 두면 모든 길이 막힙니다. 열릴 길도 막힙니다.

그러나 버티면 모든 길이 열립니다. 막힐 길도 열립니다.

하나님의 인도에 의한 새로운 목적을 위한 포기는 괜찮습니다.

그러나 시험 때문에 선한 일을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갈보리 십자가 상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선한 일이라면 끝까지 선을 이루려고 해야 합니다.

시험 때문에 포기하는 것은 항상 잘못된 결과를 낳게 됩니다.

 

몰론 헌신의 모양이 달라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헌신 자체를 포기하면 우리 하나님의 것이 우리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것을 우리 것으로 만드는 가장 큰 비결은

정말 힘든 환경, 납득할 수 없는 환경, 참을 수 없는 환경을 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헌신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소리 없는 헌신을 좋아하시기에 그런 자를 축복하십니다.

 

29절 말씀을 보니까 이 첫째 아들은

자기가 여러해 동안 아버지에게 순종했음을 내세웁니다.

아버지가 그것을 왜 모르겠습니까? 굳이 말을 안 해도 압니다.

그런데 내가 이랬습니다 라고 말하면 자기 공로의식이 나타납니다.

자기 공로 의식이 나타나는 순간 하나님의 축복도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나 자기 공로를 내세우지 않으면 하나님이 인정해주십니다.

자기 공로의식은 하나님의 축복을 떠나게 하지만

칭찬의 소리가 나지 않아도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면

하나님의 축복이 주어지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입니다.

 

아무리 봐도 소리 없는 헌신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습니다.

사랑도 소리 없는 사랑이 진짜 사랑인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도 소리 없이 주어지는 축복이 진짜 축복인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꽤 오래 전에 이해인 수녀의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라는 시집을 읽었는데,

그 시집에 이런 시 한편이 나옵니다.

"기쁠 때는 너무 드러나지 않게 감탄사를 아끼시고,

슬플 때는 너무 드러나지 않게 눈물을 아끼십시오."

 

여러분! 슬픔을 너무 드러내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믿는 사람입니다.

믿는 사람에게 감격의 눈물은 필요해도 슬픔의 눈물은 필요 없습니다.

반면에 기쁨도 너무 드러내지 맙시다.

오직 신앙적 도전과 권면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만 겸손하게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간증이 신앙적 도전이 아닌, 자기 신앙 자랑으로 흘러서도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믿음의 보상을 받지 못해 힘들어 하는 분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기쁨도 절제하고 즐거움도 절제하는 것이 좋고,

좋고 훌륭한 일을 해서도 드러내지 않고 절제하는 것이 좋은데,

하물며 원망과 불평을 절제하지 못한다면 좋은 결과가 생길 수 없습니다.

 

본문 29-30절 말씀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첫째 아들의 이 말을 둘째 아들이 들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재산을 창기와 함께 날려 버린 이 아들에게 그러면 됩니까?"

그 말을 들었다면 둘째 아들에게 깊은 상처가 되었을 것입니다.

남에게 상처를 입히고 하나님의 축복을 바란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나중에 혹시 일이 잘되어 첫째와 둘째가 잘 지내도 그 흔적이 남을 것입니다.

물론 공격적 언사를 쓴 첫째가 나중에 와서 이렇게 사과할지 모릅니다.

"동생! 미안해! 그때는 내가 제 정신이 아니었어!"

그렇다고 해서 즉시 이해가 됩니까? 그래도 상처가 남게 됩니다.

그래서 불평의 말, 나쁜 말, 공격적인 말은 최대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분은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해 놓고 뒤끝이 없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도 공동체를 항상 상처가 없는 상태에서 보존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목회를 하면서 주의 깊게 보고 몇 가지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흔히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책 한권 읽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교회생활에서도 비슷한 원리가 적용됩니다.

교회생활에서도 제일 무서운 사람은 한번 체험한 사람입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의 다이고, 한번의 체험으로 대단한 영적 승진을 했는 줄 압니다.

 

그리고 성경 한 구절 들이대며 따지는 사람도 무서운 사람입니다.

성경은 종합적으로 봐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 앞에 항상 겸허한 모습으로 서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이 더욱 더 온전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목회하면서 또 한 가지 느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뒤끝이 없는 분 중에 무서운 분이 많다는 것입니다.

 

뒤끝이 없는 분들은 대개 남의 마음에 상처를 입혀 놓고

자기 혼자만 뒤끝이 없다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항상 기가 막힐 일입니다.

 

미국에 빌리 썬더 목사님이라고 유명한 설교가가 있습니다.

그분에게 한 중년 여인이 찾아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순간적으로 참지 못해 성질 잘 내는 것이 흠이예요.

그것을 저도 알지만, 저는 뒤끝이 없어서 금방 풀어버리죠."

 

그러자 빌리 썬더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자매님! 자매님이 성질을 낸 후 자매님이 뒤끝이 없기는 쉽지만

그 성질 부린 것으로 누군가의 마음에 남겼던 상처는

아주 오래 간다는 것을 항상 잊지 말고 조심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뒤끝이 없는 것을 자랑하는 분들을 보십시오.

대개 공격적이고, 자기 공격이 얼마나 상처를 주는지 잘 깨닫지 못합니다.

반대로 뒤끝이 있다고 놀림받는 분들을 보십시오.

그분들은 대개 당하는 입장이고, 상처를 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신경질 나도 그냥 말을 내뱉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내뱉기는 쉬워도 그것을 주워 담기는 쉽지 않습니다.

자기는 주워 담았다고 하지만, 남에게는 칼 베임의 흔적이 남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신경질 나는 일이 있거든 정말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신경질을 자주 내서 제가 인생의 실패자임을 드러내지 않게 하소서!"

우리는 정말 이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인가 실패하고 있다는 좌절감이 자꾸 신경질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서 일시적인 실패에 좌절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그리고 그 좌절감이 신경질로 나오는 것은 더욱 절제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신경질 정도는 충분히 억제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여러분! 둥글둥글 살면서도 우리는 충분히 의롭게 살 수 있습니다.

꼭 모나게 살고 뾰족하게 살아야 의롭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항상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저의 삶에 뾰족한 가시가 없게 하옵소서."

 

여러분! 부부 싸움을 해도 은혜롭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도 하나의 소중한 훈련입니다.

그리고 남에게 감추어야 할 일은 아예 하지 말고

남에게 해가 되는 말은 아예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은 우리를 기쁘게 보시고 우리를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4. 자기가 받은 것을 오래 기억하는 자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다시 한번 느끼는 것은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참으로 어지간하시다는 것입니다.

둘째 아들과 첫째 아들을 상대하면서

끝없이 인내하고 끝없이 참으시는 이 모습을 보십시오.

그러나 아들들은 이 아버지의 사랑을 거의 이해하지 못합니다.

 

특히 본문에 나오는 이 첫째 아들을 보십시오.

자기가 무엇인가를 했다는 것은 잘 기억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아버지로부터 무엇을 받았다는 것은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가장 성공적인 사람이 되는 비결이 있습니다.

자기가 준 것은 오래 기억하지 않고,

자기가 받은 것은 오래 기억하는 사람이 성공적인 사람입니다.

그것이 행복이고, 그 행복을 아는 자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자입니다.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말을 잘 하는 것이 축복된 자가 되는 제일 비결입니다.

 

헝제를 사랑하시고, 환경으로 인해 헌신을 포기하지 마시고,

소리 없이 헌신하시고, 항상 감사를 아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크신 축복을 받아 누리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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