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자
2002-06-18 12:24:37 read : 2336
왕상 8:27-30 // 20020616
< 기도가 승리의 비결입니다 >
어떤 분들에게는 죄송한 이야기가 될 수 있어도
사실상 기도가 없는 신앙생활은 살아 있는 신앙이라고 말하기가 힘듭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 있다고 믿으면 하나님과 대화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나도 살아있다면 기도하는 삶이 있어야 정상일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살아 계신 아버지로 진실로 믿고 기도해보십시오.
인생은 구하는 대로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인생은 자질과 능력보다 "얼마나 열심히 구하느냐?"에 따라 더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성공비결입니다.
그러한 기도자가 많이 나타날 때 하나님은 우리 교회에도 큰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을 기뻐하실까요?
오늘 본문은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장면의 일부입니다.
이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 4가지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기도
솔로몬은 성전 봉헌 기도를 하면서 기도합니다. 27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성전)이오리이까."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5백년 숙원사업이던 성전건축을 이룬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성전을 봉헌하면서 솔로몬의 자랑하는 모습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성전은 건축했지만 이 성전에서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을 모실 수 있습니까?"
얼마나 겸손한 모습입니까? 이런 겸손한 마음이 있어야 그 기도가 응답될 것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달라!"고 하지 말고 먼저 마음의 겸손함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겸손한 마음은 구하지 않고 그냥 눈앞의 축복부터 구합니다.
참 유치합니다. 그런 유치함을 버리지 않으면 반드시 실망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주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백성들이 소리쳤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그들은 억압받고 있는 자기들을 구원해줄 정치적인 메시야를 기대했습니다.
그 기대가 충족되지 못하자 5일만에 그들은 소리쳤습니다. "십자가에 못박아라!"
"메시야라면서 왜 우리들 기대한 대로 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때도 이런 우격다짐으로 기도하는 것은 아닙니까?
그렇게 기도하다가 안 들어준다고 하나님 앞에서 "실망했네!" 하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제일 곤란한 태도는 자기 기대를 다른 사람에게 투사해서
자기 기대대로 움직여주기를 바라고, 기대대로 안되면 "실망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자기 기대대로 자녀가 되지 않는다고 "실망했다!"고 하면 됩니까?
남편과 아내가 서로 자기 기대대로 되지 않는다고 "이럴 줄 몰랐네!" 하면 됩니까?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내 기대대로 해 주기를 바라고, 내 교우들이 내 기대대로 해 주기를 바랍니다.
어떤 분은 이런 경우의 기대는 순수한 기대가 아니라 '변형된 지배욕'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어떤 대상을 놓고 "실망했네!"라는 말을 참 조심해야 합니다.
실망하는 경우가 자주 생기면 혹시 나의 마음이 높아진 것은 아닌가 살피면 좋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무엇보다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사실 기도는 하나님께 무엇을 요구하는 시간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다듬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로 겸손하게 되면 모든 것이 달라 보이게 됩니다.
옛날에 어떤 분이 진리를 찾으러 인도로 가다 비바람을 피해 동굴로 들어갔습니다.
너무 목이 타서 물을 찾다가 바가지에 물이 있는 것을 보고 마셨는데 꿀맛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보니까 그 바가지는 다름 아닌 사람의 해골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구토가 나면서 어제 먹은 것과 마신 것을 다 토해내었습니다.
바로 그때, 그분은 "인간사가 다 마음에 달렸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상 우리는 마음먹기에 따라 우리는 어떤 상황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내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열정이 대단합니다. "하나님! 제가 말씀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겠습니다."
좋은 열정입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자기를 먼저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변화되지 못한 분이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불행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기도할 때, 주변 돌아가는 상황이 영 마음이 들지 않아도
"하나님! 세상을 변화시킬 힘을 주소서!"라고 기도하기 전에
"하나님! 저를 변화시킬 힘을 주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겸허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 기도를 기뻐하실 것입니다.
2. 순종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기도
솔로몬은 성전 건축이라는 대 역사를 이루고도 머리를 조아려 기도합니다.
28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종이 주모를 바람 같이 얼마나 간절히 기도합니까?
"그러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종이 오늘날 주의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그는 왕이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철저한 종의 자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종의 자세를 가지고 철저히 순종하는 자의 기도를 하나님은 들어주십니다.
아무리 간절히 기도해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그것은 무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 없이 주어지는 것들은 다 불행의 씨앗일 뿐입니다.
우리는 말씀 많이 듣습니다. 왜 듣습니까? 순종하며 살라고 듣는 것입니다.
"야! 말씀 좋다"하고 끝나면 안됩니다. "말씀대로 살아야지"라고 다짐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주일, 매일새벽, 수요일과 금요일 합해서 총 11번 말씀을 듣습니다.
훌륭한 일이지만 "나는 11번 말씀을 듣는 교인이야!"라고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어떤 분은 성경을 하루에 4장씩 읽습니다.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나 "나는 성경 많이 읽기 때문에 훌륭한 성도야!"라고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자랑할만한 것이지 말씀 많이 듣는 것은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분이 "나 오늘 밥을 4시간이나 먹었어!"라고 자랑하면 되겠습니까?
밥을 많이 먹는 것도 중요하고, 게다가 좋은 반찬을 먹으면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나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밥 먹고 얻은 에너지를 좋은 데 잘 사용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말씀을 많이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씀대로 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는 말씀 듣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가정으로 가고, 직장으로 가야 합니다.
그것이 전혀 없이 말씀만 듣고 끝나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도피'가 됩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사랑을 배워 세상에서 사랑 받는 행동을 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이 힘들다고 교회에 와서 좋은 말씀 듣기만 하고 끝나면 되겠습니까?
중세 유럽의 헨리 3세가 가장 부러워했던 삶이 바로 수도사들의 삶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말씀을 보고 기도하는 삶을 동경해 그는 수도원 입회신청을 했습니다.
그때 수도원장이 말합니다. "이곳에서는 절대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까?"
왕이 "예!"하고 다짐하니까 수도원장이 바로 이런 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럼 지금 당장 왕궁으로 돌아가셔서 맡겨진 백성들을 잘 다스려주십시오."
아마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이런 명령을 지금도 계속 내리실 것입니다.
말씀 듣는 것, 기도하는 것 중요하지만, 그렇게 힘을 얻어 세상으로 가라고 말입니다.
말씀을 듣는 곳은 교회일지라도 말씀을 붙들고 사는 곳은 세상이어야 합니다.
그곳에 들어가 말씀을 붙들고 가정을 일으키고, 직장을 일으키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말씀 붙들고 살면서 그 안에 같이 부대끼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사람들의 기도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3.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기도
솔로몬의 봉헌 기도를 보면 "이 전을 향하여'라는 구절이 많이 나옵니다.
그것은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9절 말씀을 보십시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옵시며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너무 사랑하셔서 주야로 교회를 지켜보시고 계십니다.
그처럼 하나님이 교회를 향해 있는 상황에서 우리도 교회를 향해 있으면
교회에서 하나님과 우리가 만나서 영적인 스파크(불꽃)가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성전에 자주 나와서 예배하고 기도하면 얼마나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이제 주일뿐만 아니라 다른 날에도 나오시고, 혼자서도 찾아와 기도해보십시오.
하나님은 교회를 사모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기도를 기쁘게 받아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성전을 사모한다는 말은 교회에 나의 최선의 힘을 보탠다는 말입니다.
성도 한 사람이 헌신해서 우리의 역량이 조금씩 발전해간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교회를 사랑한다는 것은 교회에 내가 필요한 부분을 알고 헌신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교인들이 "내가 조금이라도 교회의 어려운 부분을 맡겠다"고 나서면
저도 참 기쁜데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기뻐하시고 그 기도를 기뻐하시겠습니까?
1992년 12월에 인천에서 교회를 개척할 때 개척멤버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개척 멤버를 얻기 위해서 매일 하루에 2시간씩 전도를 나갔습니다.
그러면 일주일에 꼭 한 사람은 전도할 수 있었는데, 아내가 그 전도를 힘들어했습니다.
결혼과 동시에 교회를 개척했는데 신혼 초부터 전도를 나가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미안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지만 그 당시에는 전도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지 아십니까? 제가 전도 나가려고 하면 아내가 못 나가게 합니다.
자기가 내 몫까지 2배를 할 테니까 그 시간에 더 기도하고 더 말씀 준비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심방이 없는 날에는 거의 매일 오전과 오후 2시간씩 전도를 나갑니다.
이 지역에서 전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자기가 내 몫까지 맡을 테니
저에게 말씀과 기도를 더 준비하라고 하는 그 마음이 얼마나 저에게 힘이 됩니까?
그렇게 해도 저는 매일 한 시간 하루에 150장씩 주보를 처음 2년간 돌렸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면 성도들도 따라하겠지"라고 기대했으면 아마 몇 달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2년 후에는 전도하다 남은 주보를 가지고 금요일과 토요일 새벽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한 집사님이 그 시간에 말씀 준비하라고 저 대신 매주 그 일을 합니다.
우리 교회가 새벽기도회를 강조합니다. 그래서 매주 새벽기도 광고를 꼭 합니다.
그런데 교회 개척 후, 2년 반 동안 저는 매일 새벽 4시쯤에 본당에 대걸레질을 했습니다.
새벽기도 오는 분들이 조금이라도 쾌적한 환경에서 기도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겨울에는 건조하기 때문에 그 일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거의 매일 했습니다.
그때 "내가 이렇게 하면 곧 누군가 나서겠지" 했으면 얼마 못하고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작년부터 저 대신에 어떤 집사님이 매일 새벽마다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기도하고, 더 말씀을 준비하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모습이 얼마나 고맙습니까? 그런 것이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지금도 그런 식으로 내가 교회에 참여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있습니다.
교회의 필요를 알고 "이것은 제가 할 테니 염려 마시고 다른 일을 하세요"라는 분들이
많이 일어나면 우리 교회의 역량은 우리가 참여한 만큼 더 커지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마음을 가진다면 우리 기도가 얼마나 능력 있는 기도가 되겠습니까?
여러분! 교회를 주님처럼 지극히 사랑하고 꾸준히, 묵묵히 봉사의 손길을 펴보십시오.
가끔 보면 교회에서 너무 쉽게 시험 들고 교회를 멀리하는데 참 지혜롭지 못한 것입니다.
어떤 분은 어느 날 갑자기 화려하게 나타나서 교회 일을 혼자 다 할 것처럼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또 바람처럼 사라집니다.
왜 사라졌을까요? 대개 보면 처음부터 요구가 참 많고, 이유도 사소한 것이 참 많습니다.
바람처럼 나타나는 것은 좋지만 바람처럼 나타나 선생이 되려고 하면 갈등이 생깁니다.
"누가 당신을 선생으로 임명했느냐?"고 합니다. 이것은 모든 공동체의 생리입니다.
그래서 묵묵히 봉사하는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장님 3년의 기간이 필요합니다.
성도는 말할 것도 없고, 담임목사로 부임한 경우에도 그런 겸양의 기간이 필요합니다.
그 기간이 어렵기에 자기 장점을 살려 소신껏 목회하려면 직접 개척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바람처럼 나타나서 선생님 역할을 하려면 갈등의 씨앗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갈등 중에 상처를 입고 다시 바람처럼 사라지면서 "누가 어떻다"고 말합니다.
조금 더 심한 분은 "교회가 어떻다"고 말합니다. 그런 모습은 지혜롭지 못한 모습입니다.
또한 어떤 분은 "교회가 작다. 교육관이 없다. 사랑이 없는 것 같다"라는 이유를 대고,
심지어는 "에어컨이 시원하지 않아서... 엘리베이터가 느려서.."라고 이유를 대기도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교회생활을 한다면 어찌 하나님이 그 기도를 기뻐하시겠습니까?
교회가 부족한 모습이라면 내가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 부족한 것을 위해 조용히 기도하며 채우려 할 때 그것이 공동체를 살릴 것입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설교가로 많은 분들이 영국의 스펄전 목사님을 꼽습니다.
한번은 어떤 분이 물었습니다. "목사님! 말씀이 참 좋은데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스펄전 목사님은 그를 교회 지하실의 작은 방으로 안내했습니다.
그 방에는 두 분의 할머니가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분들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 할머니들이 바로 비결입니다. 저분들이 교회와 저를 위해 계속 기도해주십니다.
저분들은 오직 교회를 위해서만 기도하는데, 그 기도 때문에 우리가 존재합니다."
여러분!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새벽기도를 나오지 못해도 어떤 형태로든 교회를 위해서 힘써 기도해주십시오.
교회의 부족함을 애틋함과 안타까움으로 바라보고 그 부족함을 채우려 노력할 때
하나님이 그 사람이 드리는 기도를 기쁘게 받아주실 것입니다.
4. 회개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기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위한 기도제목입니다. 본문 30절 말씀을 보십시오.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의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이 말씀에서 솔로몬은 '축복하여 주소서!" 하지 않고 '사하여 주소서!"라고 합니다.
'축복을 얻는 것'보다 '죄 사함을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축복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 다음에 이루어져야 진정한 축복일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이 없는 상태에서의 성공과 번성은 결코 하나님의 축복이 아닙니다.
우리가 인간관계를 할 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두 가지 말이 있습니다.
하나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을 잘 하는 사람이 최고의 인격자입니다.
또 하나는 "미안합니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을 많이 한다고 해서 내가 깎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미안하다는 말을 하면 족보 망가지는 줄 아는 사람도 있어 참 안타깝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관계를 할 때에도 이 두 가지 말을 잘해야 합니다.
하나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을 잘 하는 사람이 최고의 신앙인입니다.
또 하나는 "용서해주세요"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할수록 하나님의 은혜를 입습니다.
회개의 깊이가 깊을수록 은혜의 높이는 높아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분은 다른 사람의 죄를 쳐다볼 겨를이 없습니다. 자기 죄가 크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저 사람 때문에!"라고 다른 사람의 죄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내가 기도하지 않아서! 내가 부족해서"라고 자기를 돌아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에 대해 변명할 것도 없고, 팔자 소관으로 돌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면 한 가지만 잘 하면 됩니다. 그것은 바로 회개입니다.
왜 회개가 중요합니까?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청결해야 행복합니다. 사실상 행복은 마음이 청결한 만큼 주어집니다.
번민이 많고 마음이 자주 무너지는 이유는 청결하지 못한 것이 중요한 원인입니다.
죄사함을 통해 마음을 청결하게 가꾸면 그의 기도도 능력 있는 기도가 될 것입니다.
< 기도가 시작될 때 큰 일이 시작됩니다 >
오늘 우리는 어떤 기도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인지 살펴보았습니다.
우리에게 기도의 특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것을 활용해야지요.
기도는 오래 할 필요도 없고, 잘 할 필요도 없지만 꼭 해야 할 필요는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무릎꿇는 사람은 어떤 사람 앞에서도 당당하게 설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무릎꿇는 사람은 어떤 환경을 만나도 당당하게 설 수 있습니다.
오늘날 누구나 행복을 원하지만 그것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분은 참 적습니다.
그러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가 없으면 축복도 없다고 믿는 사람이 바로 성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큰 일을 하려고 하실 때마다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는 일일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그토록 중요합니다.
진실한 기도가 시작되는 순간, 이미 큰 일은 시작되고 있다고 믿으시고
항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통해서 큰 축복을 예비하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 자료 18,185편 ◑ > 자료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한이 진 십자가 /요한복음 19장 23~27절 (0) | 2023.01.23 |
---|---|
십자가로 가까이 나를 이끄소서!” /요한복음 19장 17-18절, 28-30절 (0) | 2023.01.23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학 1:1-9, (0) | 2023.01.23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자/요 15:7-8 (0) | 2023.01.23 |
기적 중의 기적 /요한복음 17장 20~26절 (0) | 2023.01.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