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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자/요 15:7-8

by 【고동엽】 2023. 1. 23.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자

2002-06-25 16:23:30 read : 1684

 

15:7-8 // 20020623

 

 

< 영혼이 무거운 사람이 되십시오 >

 

요새 월드컵 열기가 뜨겁습니다. 얼마나 자랑스런 일인지 모릅니다.

저도 월드컵에 관한 기사를 가끔 보는데 얼마 전 인상적인 기사를 보았습니다.

월드컵에서 승승장구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히딩크 감독에 관한 기사입니다.

 

히딩크 감독은 처음 국가대표 선수를 선발하면서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대표팀에서 오래 뛰었다고 선발하는 것은 아니다.

31세건 21세건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잘 뛸 수 있는 능력 있는 선수를 원한다."

 

그리고 히딩크 감독은 영혼이 가벼운 선수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분은 항상 무게가 있고, 진지하며, 배울 자세가 되어 있는 선수를 좋아했고,

또한 배운 것을 자기 몸을 던져 실천에 옮기는 선수를 가려낼 줄 알았다고 합니다.

 

저는 축구를 거의 보지 않아서 선수들을 잘 모르는데 몇 명의 선수는 압니다.

그런데 대표팀 부동의 스트라이커로서 제가 가장 잘한다고 생각하는 최용수 선수가

이번 월드컵에서 거의 출전하지 않아서 제가 어떤 분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 이유는 최용수 선수가 참 잘하는데 몸을 사리는 편이라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히딩크 감독은 잘 하는 선수보다 몸을 다 바쳐 뛰는 선수를 더 원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큰 일을 하실 때 어떤 성도를 선발하실까요?

오래 교회를 다닌 성도를 선발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교회를 30년 다녔건, 20년 다녔건 상관없이 열매 맺는 성도를 선발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도 영혼이 가벼운 성도는 별로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항상 무게가 있고, 진지하며, 배울 자세가 되어 있는 성도를 기뻐하실 것이고,

또한 자신이 배운 것을 온 몸을 다해 실천하려는 성도를 기뻐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성도를 성경은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바로 '제자'라고 말합니다.

제자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이 시간에는 4가지만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제자는 하나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7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하나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한다"는 말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다"는 말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삶은 훈련된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아주 필수적인 삶입니다.

 

어떤 분은 자유로운 삶을 좋아해서 얽매인 삶이나 훈련된 삶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자유에는 '훈련이 없는 자유'가 있고, '훈련이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훈련이 없는 자유'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자유의 폭이 줄어듭니다.

그러나 '훈련이 있는 자유'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자유의 폭이 확대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은 진짜 자유를 위해서는 필수적인 삶입니다.

 

기독교는 순종의 종교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멘'의 종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고후 1:20).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아무 일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힘들어도 아멘 하고, 아파도 아멘 하고, 실패해도 아멘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축복과 약속의 말씀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가끔 우리가 사는 지구가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생각하고 깜짝 놀랍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했는데, 그 말씀에 순종하는 그 모습을 보십시오.

지구는 365일 동안 그 먼 거리의 태양을 돌면서 1년에 1초도 시간을 어기지 않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지구에게 "율법주의야! 너무 딱딱해!"라고 욕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묵묵하게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우신 창조 질서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없는 경외감이 듭니다. 그런 경건하고 아름다운 성도가 되면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께서 적은 일에 묵묵히 순종하는 사람에게 더 큰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그러므로 축복 받기 전에, 성공하기 전에 우리가 꼭 먼저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순종입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제자를 기뻐하시고 축복해주실 것입니다.

 

2. 제자는 기도도 제자다운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다시 한번 7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언뜻 보면 우리가 아무 것이나 기도하면 다 주실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8절 말씀을 보면 주님의 초점은 다른 데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여기서 우리는 기도의 목적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열매 맺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그런 삶을 구해야 합니다.

열매 맺는 삶을 외면하면서 기도 응답만을 기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육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는 성공하고, 문제가 풀리고, 가정이 잘되기를 원하는 기도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항상 그런 기도제목만 가지기보다 이제 이런 기도제목도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열매를 맺는 삶, 복음을 전파하는 삶을 잘 감당하게 도와주세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기도제목에 응답해주기를 바라면

먼저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에 자신을 헌신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 뜻은 부와 명예와 성공에 있기 쉽지만 하나님의 뜻은 열매 맺는 삶에 있습니다.

우리는 내 뜻이 이루어지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앞세워 기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부와 명예와 성공은 참 매력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얻은 분들의 한결같은 말은 "막상 얻으면 별 것 아니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얻으면 뭔가 새로운 행복이 있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산의 정상에 오르면 기쁘지만 그 기쁨은 오래 가지 않고, 금방 보통으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또 다른 산으로 목표로 하지만, 사실 그 산에 올라가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진정한 기쁨과 만족은 예수님 안에 있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의 목표를 좀더 가치 있는 것, 좀더 고상한 것에 두어야 합니다.

"어떻게 얻을까?"에 대한 목표도 가지면서 "어떻게 살까?"를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항상 하나님과 이웃을 조금 더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어떤 분은 많이 벌어도 그 많은 것은 선교와 구제를 위해 쓰는데 얼마나 훌륭합니까?

 

지금 저희들이 요삼일육선교회의 인터넷 사역을 통해 여러 선교사님들을 후원하고,

또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있는데 선교후원회원으로 가입해 선교에 동참해주십시오.

여러분들의 소리 없는 헌신을 사람은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은 알아주실 것입니다.

 

산에 가면 가끔 한적한 곳에 혼자 피어 있는 아름다운 꽃을 보게 됩니다.

보는 사람은 적어도, 알아주는 사람은 적어도 아름답게 향기를 날리며 피어있습니다.

미모 경쟁을 할 필요도 없고, 향기 경쟁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아름답게 삽니다.

우리의 목표는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름답게 존재하는 것입니다.

언제 인간이 가장 아름답게 됩니까? 항상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며 살 때입니다.

 

미국에 '홀리데이 인'이라고 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호텔이 있습니다.

전 세계 60여 개 나라에 26백여 개의 호텔을 거느리고 있는 호텔 체인입니다.

이 호텔 클라이머 회장은 자기 호텔에 도박장을 안 만들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했습니다.

돈을 생각하면 빠찡코 허가를 내고 싶었지만 그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가끔 사람들이 "도박장을 해야 돈을 번다!"고 건의했지만 클라이머 회장은 말합니다.

"저는 제가 경영하는 호텔 안에 도박장을 안 두기로 하나님과 약속을 했습니다."

하나님과 약속을 했다고 말하는데 어떻게 합니까? 사람들은 고집스럽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망했습니까?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는 이 호텔을 최고 호텔로 만드셨습니다.

 

여러분! 손해와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할지라도 말씀을 따라 살려고 노력해보십시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순종하며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책임져 주십니다.

아무리 물질을 벌어도 뒤로 새면 끝입니다. 큰 병이라도 들면 금방 날아가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려고 하면 우리 것이 새지 않도록 막아주실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뜻에 대한 열린 마음을 위해 기도하며 선교와 구제에 동참해주십시오.

 

3. 제자는 인내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제자는 과실을 많이 맺어야 하는데 과실을 많이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역시 무엇보다 인내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상황이 절망적이어도 인내해야 합니다.

아무리 절망적이어도 끝까지 참고 견디면 반드시 그 절망은 희망으로 바뀔 것입니다.

승리는 누구에게 주어집니까? 두말할 것도 없이 '끝까지 인내하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가끔 신문을 보면 '절망 이민 급증'이라는 기사가 눈에 띕니다.

정치 때문에, 경제 때문에, 아이들 교육 문제 때문에 절망해서 이민 간다는 것입니다.

외국은 좋습니까? 순진한 생각입니다. 이민 가도 분명한 비전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 절망해서 간다면 그곳에서는 더욱 절망적인 환경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민 가면 훨씬 더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도 대개 보면 잘 이기는 편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에 고생할 각오를 하고, 새로 시작한다는 기분으로 임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이곳에서도 그런 마음을 가지면 잘 살 수 있습니다.

 

절망은 약자가 항상 내리는 결론이지만, 우리는 항상 희망으로 결론을 내야 합니다.

절망은 강하지만 희망은 더 강합니다. 희망이 있으면 원망도 없고 타락도 없습니다.

원망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원망을 한다면

그 마음으로는 전 세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고 해도 원망할 것이 계속 보이지만

현재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더 어려운 상황에서도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가끔 자녀들 중에 이런 의문을 가지는 자녀가 있습니다. "부모님이 나를 정말 사랑하나?"

사실 이미 받은 사랑만 생각해도 그런 말이 어떻게 나옵니까? 정말 많이 사랑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내가 정말 부모님을 사랑하나?"로 질문이 바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경우에는 성도님들도 가끔 의문을 가집니다. "목사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는가?"

교회가 조금씩 커지고 새로운 일꾼이 늘어나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제 질문을 조금 지혜롭게 바꾸면 어떻습니까? "내가 정말 목사님을 사랑하는가?"

 

자녀들이 부모님의 사랑에 대해 의심하는 사실을 부모님들이 알면 깜짝 놀랄 일입니다.

물론 사랑합니다. 살인마도 자기 자녀는 사랑합니다. 미워도 사랑하고, 속상해도 사랑합니다.

그런데 왜 그런 의심을 합니까? 사랑하는 방법이 다르고, 사랑의 개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지는 이유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날 사랑한다면 내가 건강해야지"라고 우리는 생각하지만 하나님 생각은 다릅니다.

때로 우리가 병들게 되지만 그것은 아마 더 중요한 것을 주기 위한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진지하게 생각하면 그런 의문은 바로 사라질 것입니다.

 

제자란 십자가에서 엄청난 사랑을 발견하고, 그 사랑이면 족하다고 여기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십자가 뒤에 예비된 하나님의 축복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제자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교만도 사라지고, 고집도 사라지고, 자기에 대한 연민도 사라집니다.

 

십자가가 무엇일까요? 마음을 비우는 것입니다. 마음을 비우면 고통이 사라집니다.

남에게 마음을 비우라고 하면 고통이 생기지만 내가 마음을 비우면 고통은 사라집니다.

그처럼 십자가 안에서 자기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고 인내하는 사람이 참 제자입니다.

우리가 견고한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인내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길을 열어주십니다.

 

70년대에 어떤 목사님 아들이 군 헌병대로 배치되었는데 주일이 되어 말했습니다.

"소대장님! 오늘은 저 교회에 가야합니다." 버릇이 없다고 단체기합이 벌어졌습니다.

그 당시 주일날 교회에 가겠다고 말하는 신병이 헌병대 역사상 없었다는 것입니다.

소대장이 기합을 끝내고 이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너 맞아 죽을래? 교회에 갈래?"

이 아들이 대답했습니다. "맞아 죽겠습니다."

 

그래서 엎드려 놓고 때리는데 여럿이 보는데서 길 수도 없을 정도로 때렸습니다.

결국 기절했습니다. 물을 뿌리고 소대장이 다시 물었습니다. "너 교회에 가겠냐?"

그래도 또 대답합니다. ", 가겠습니다. 저는 반드시 가야 합니다."

결국 그 소대장이 "너는 제대하는 날까지 교회를 다녀라"하고 허락했다고 합니다.

 

"어려움이 있다. 손해가 난다. 문제가 있다."고 물러서면 주님이 도와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힘써 교회를 사모하는 자에게 길을 열어주시고, 만나주시고, 응답하시고,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 믿음을 주시고, 열매를 구하는 자에게 열매를 주실 것입니다.

 

가을에 나뭇잎이 다 떨어져도 우리가 풍성함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열매가 있기 때문입니다. 열매 있는 알곡과 열매 없는 쭉정이의 차이는 어디에 있습니까?

열매 있는 알곡은 바람을 타지 않습니다. 그러나 열매 없는 쭉정이는 바람을 탑니다.

여러분!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꾸준히 인내함으로 열매 맺는 알곡이 되길 바랍니다.

 

4. 제자는 책임의식을 가지고 행동할 줄 알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1426절을 보면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이 주님의 말씀은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가족을 다 버려야 한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을 우선 순위로 두는 삶''가족을 외면하는 삶'은 전혀 다릅니다.

사실상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을 버리는 것은 불신자보다 더 못한 행동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하나님의 제자들이 가족에 대한 책임도 철저히 잘 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특이하게 보여야 더 신앙이 좋을 것 같다는 이상한 환상을 버려야 합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성철 스님은 하나밖에 없는 딸과 평생 인연을 끊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위대하다고 하지만 정작 스님은 그 일을 가장 큰 잘못으로 여겼습니다.

 

그처럼 사람들은 특이하게 보여야 신앙이 좋을 것 같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정을 버리고 특이하게 살아야 신앙이 좋을 것이라는 환상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책무, 사람에 대한 책무 둘 다 잘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가끔 작은 교회를 목사님들은 교회 성장이 안되는 것으로 좌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큰 교회를 담당하시는 분들 중에도 좌절감을 느끼는 분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왜냐하면 교회 안에 '멋진 성도'는 많은 편이지만 진정한 제자가 없다는 점 때문입니다.

 

저도 이 근처 어떤 큰 교회의 목사님으로부터 그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교회에 대한 책임의식이 없는 교인들을 많다는 것에 좌절감을 느낀다"고 말입니다.

여러분! 책임을 많이 지려고 해야 합니다. 그래야 풍성한 열매가 주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책임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소원만 빌지 말고 행동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한 후, 행동을 보여주는 사람에게 반드시 그 믿음대로 되게 하십니다.

 

어떤 분은 술을 끊으려고 하지는 않고 "끊어주세요. 끊어주세요." 기원만 합니다.

그렇게 기원만 하지 말고 딱 끊으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끊는 힘을 주실 것입니다.

어떤 분은 "담배를 끊어야 되는데.. 끊어야 몸에 좋은데..." 하면서 기원만 합니다.

어떤 분은 "전도해야 되는데... 그래야 내 믿음도 자라는데..." 하면서 희망만 합니다.

기원만 하지 말고, 희망만 하지 말고 딱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내가 요단강에 발을 옮겨 놓아야 요단 강물이 멈추고 마른땅으로 변하게 됩니다.

믿음으로 나아가면 기적이 일어나고, 물러서거나 머물면 거기에서 실패합니다.

조금 어렵다고 후퇴하거나 머무르면 안됩니다. 앞으로 나아가면 문제는 해결됩니다.

우리 교회의 어떤 집사님은 잘못된 것이라 여기면 즉시 돌아서서 새 길을 갑니다.

사람이기에 잘못된 길을 갈 수는 있지만 중요한 것은 즉시 돌아서는 결단입니다.

 

얼마 전 신문을 보니까 서울 유흥업 여 종사자의 50%가 자궁경부암이라고 합니다.

겉으로는 멀쩡한 것 같아도 몇 년 지나면 다 암으로 발전하는 것을 보십시오.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면 빨리 돌아서는 것이 상책입니다.

좋은 것을 위해 돌아서면 주님이 돌아설 힘도 주시고, 좋은 것도 준비해주십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탕자가 돌아와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어거스틴도 18살에 사생아를 낳고 탕자로 지내다가 30살에 돌아와 성자가 됩니다.

돌아서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돌아서면 주님을 만나고,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죄에서 돌아서는 것도 용기이고, 제자에게는 그런 용기와 책임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사실상 인생의 열매는 용기 있고, 담대하고, 책임을 다하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여러분! 주님 안에서 열매 맺고 더욱 성장하기를 위해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성장이 없는 것에 대해서 어떤 분은 "제 탓이죠?"라고 말합니다. 참 지혜롭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고 끝나면 안됩니다. 더욱 성장을 위해서 힘쓰고 애써야 합니다.

듣는 것이나 공부하는 것만으로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행해야 성장할 수 있습니다.

 

지금 주님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시지요? 그 일에 더욱 힘쓰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하시면 반드시 성장할 것입니다. 행동을 투자하면 반드시 성장은 있습니다.

항상 말씀에 순종하고 열매 맺는 삶을 위해서 애쓰는 참 제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선교후원회원으로 가입해주시면 저희 선교회의 선교사역에 큰 격려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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