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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증거자/딛 1:1-4

by 【고동엽】 2023. 1. 23.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증거자

2002-07-02 11:23:17 read : 1641

 

1:1-4 // 20020630

 

< 가끔 걸음을 멈추고 하나님을 생각하십시오 >

 

지난 수요일 저에게 약간의 쉼이 필요한 것을 느꼈습니다.

전도사님에게 수요 예배를 부탁하고 차안에 있는 성경책과 공책 하나를 들고

광림수도원에 가려고 하는데 아내가 같이 가고 싶다고 해서

이곳에서 25분 거리에 있는 힐사이드 호스텔이라는 곳에 가서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놀게 하고, 우리는 그곳을 찬찬히 걸어다니면서 대화를 나눴습니다.

 

한 참 대화를 나누다보니까 그곳이 어두워졌습니다.

9시 가까이 되어서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별이 아주 밝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제가 혼자 중얼거리듯이 말했습니다. "이곳은 참 별이 잘 보이네."

별을 의식한 것이 3년 전 휴가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습니다.

많은 날을 변함없이 우리의 밤길을 비춰주었겠지만 그 동안 별을 잊고 살았습니다.

 

약간 쌀쌀했는데 하늘의 온기가 전달되고 마음이 편안하게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우리가 별을 의식하지 못해도 별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여전합니다.

우리는 그 은혜와 사랑의 전파자로서 항상 축복의 길을 예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 하나님의 증거자와 마귀의 증거자 >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증거자가 있습니다.

한 종류는 하나님의 도를 전도하고 선한 열매를 맺는 하나님의 증거자가 있고,

또 한 종류는 마귀의 도를 전도하고 악한 열매를 맺는 마귀의 증거자가 있습니다.

 

마귀도 끊임없이 자기의 도를 전도합니다. 에덴 동산에서부터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담 부부는 그냥 지켰습니다.

그런데 마귀의 증거자인 뱀이 와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하는 질문을 합니다.

"진짜 하나님이 선악과 먹지 말라고 했어?" 질문에서 벌써 사악한 의도가 느껴집니다.

 

그런 의도가 느껴지면 당장에 대화를 중단하고 마귀의 유혹을 물리쳐야 하는데

하와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마귀가 더 친절한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행동을 제약하는 것 같았고, 마귀는 나를 더 이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말 한 마디에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 불신하는 것은 결국 망하는 길입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마귀의 증거자가 얼마나 많이 그들의 전도를 하는지 모릅니다.

"매 주일 열심히 교회에 가야 복 받는다는 것은 형식적 신앙이야! 마음이 중요해!"

 

그런 식으로 마귀의 증거자도 열심히 그들의 도를 증거합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에게도 "천하영광을 다 줄 테니까 자기에게 절만 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에게까지 그렇게 유혹했다면 우리에게는 얼마나 집요하게 공격하겠습니까?

 

성도가 어렵게 한 명의 영혼을 교회에 인도하면

마귀는 어떻게 해서라도 자기의 도를 전하며 그들을 교회 밖으로 내몰려고 합니다.

그래서 틈이 보이는 것 같으면 곧 미혹해서 그 마음을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기회가 생기면 허점을 찾고, 기회가 생기면 불평하고, 기회가 생기면 원망합니다.

끊임없이 튑니다. 루시퍼가 왜 하늘에서 쫓겨났습니까? 튀는 행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왜 튀는 행동을 합니까? 결국 그것은 자기를 드러내고 높이려는 표시입니다.

요새 신세대 말 중 '먹튀'라는 말이 있습니다. '먹물을 튀기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먹물을 한번 튀기면 그 물을 정화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과 에너지가 듭니다.

내일의 꿈과 비전을 위해, 전도를 위해 써야 할 에너지가 그 일에 많이 소모됩니다.

 

< 하나님의 증거자가 되어야 합니다 >

 

우리는 하나님의 증거자가 되어야 하지, 결코 마귀의 증거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전도가 얼마나 어려운데 마귀의 증거자가 된다면 하나님의 진노를 어떻게 피합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기본적으로 알고 대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귀가 마귀의 도를 가지고 우리를 전도하는 것은 아주 쉽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가진 죄성과 본능과 감정 때문에 마귀의 전도에는 대개 잘 넘어갑니다.

 

교회에 가서도 마귀는 기분 나쁘게 해서 전도합니다. 싸우게 해서 전도합니다.

목사님 밉게 만들어서 전도합니다. 심지어는 꿈속에까지 나타나 전도하려고 합니다.

어떤 분은 꿈속에서 목사님이 자기를 욕했다고 해서 교회에 안 나온다고 합니다.

 

마귀도 이토록 사력을 다해서 전도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잘 믿는 사람까지 실족시킵니다.

어떻게든지 교회에 대한 신뢰를 깨려고 하고, 목사님에 대한 신뢰를 깨려고 합니다.

 

이상한 곳에 가면 자칭 '위대한 하나님의 종'으로부터 이런 말을 종종 듣게 됩니다.

자기는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받기 때문에 말씀을 준비할 필요도 없다고 합니다.

이런 도박신앙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런 비참한 모습을 신령한 모습으로 오해합니다.

그것은 게으르고 무책임한 것일뿐더러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는 큰 죄입니다.

 

전 세계에서 교회를 섬기는 목사님들의 99%는 말씀을 준비하기 위해서 애씁니다.

성경도 보고, 혼자 묵상하고, 묵상한 것을 적고, 그것이 잘못되지 않았나 주석도 보고,

2천년 동안 내려온 다른 성경연구가들의 연구도 참고하고, 다른 경건서적도 보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도 하고, 다른 목사님들의 설교도 들어보고, 서로 의견도 나누고,

생활 속에서 깨달은 것들을 적어 두었다가 활용하는 등 거의 그런 식으로 합니다.

 

그렇게 말씀을 준비하는 것이 신령한 것이 아닌 것처럼 이상한 언사를 써서 미혹하면

기존 목사님들은 마치 다 신령한 사람들이 아닌 것처럼 무의식에 상처를 주게 됩니다.

그처럼 자기를 높이는 이상한 말들이 바로 기존 교회들을 불신하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왜 한번 이단에 빠진 사람들이 그곳에서 벗어난 후에도 일반 교회에 적응하기 힘듭니까?

이단들이 자기들이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선전하는 과정에서 일반 교회를 불신하도록

끊임없이 세뇌하면서 무의식에 상처를 입어 일반 교회들을 처음부터 불신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마귀의 전도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깨어 근신하라고 합니다.

 

< 무속적인 신앙을 멀리해야 합니다 >

 

요새는 무속적인 신앙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의 3분의 1 이상이 점치는 곳에 간 적이 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그런 모습이 교회에 들어와 말도 무속적이고, 행동도 무속적이고, 기도도 무속적입니다.

귀신 쫓는다고 살구나무 가지만 손에 들고 떨지 않았을 뿐이지 모습이 거의 흡사합니다.

 

요새 세미나에 가면 제일 경계해야 할 말이 "당신 사명 받았다"는 말이라고 합니다.

가정에 분란이 많은 사람에게 "당신 사명 받았다"고 해서 문제의 본질을 호도합니다.

사업에 실패한 사람에게 "당신 사명 받았다"고 해서 자기 성찰의 기회를 박탈합니다.

병든 사람에게 "당신 사명 받았는데 딴 일을 해서"라고 하며 가족을 고민하게 만듭니다.

그러면 가정이 깨지고, 사업에 실패하고, 병든 사람들은 다 목회자가 되어야 합니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가정을 평화롭게 이끄는 정도의 능력은 목회자의 기본 자질입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더 큰 가정인 교회를 평화롭게 이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의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이 교회에서의 갈등을 극복하기는 더 힘듭니다.

그래서 성경은 가정을 평화롭게 이끌 수 있는 건강한 사람을 지도자로 세우라고 합니다.

 

요새 목회자 세미나에 가면 오늘날 교회를 불신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은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 병든 사람이 사명 받았다고 신학교에 가는 것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난 화요일 저의 중학교 은사 선생님이고 B 중학교 교장선생님으로 계신 장로님이

아드님의 병 때문에 저에게 기도를 부탁해서 가서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사모님 말에 의하면 병원에 있을 때 출처를 모르는 어떤 분이 기도해준다고 하는데

그분이 안수기도 해주겠다고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해서 심히 고민이 되었다고 합니다.

 

, 장로님이 1대 신앙인이고, 아들은 2대 신앙인인데, 2대가 믿으면 그 중에 하나는

주의 종이 되어야 하는데 그 사명을 버려서 이렇게 병이 들게 되었다는 얘기였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전 가족이 "주의 종이 안되서 그런가?" 하고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말 한 마디로 이제 앞으로 가정에 어려움이 생기면 그 말만 생각나게 생겼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모님! 그저 믿음생활 잘 하라는 소리로만 듣고 잊으세요."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왜 무속적인 말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보다 더 크게 들립니까?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성경은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사망과 저주가 다 물러갔는데 조금 어렵다고 그 약속을 의심합니까?

하나님의 말씀보다 무속적인 말이 더 크게 들린다면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시겠습니까?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 없는 행위는 다 하고 천국 가는 데만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까?

 

< 분별력을 키워 스스로 자기를 지키십시오 >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면 무속적인 말을 멀리하고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도대체 2대가 믿음생활 하면 그 중에 하나는 주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누가 말했습니까?

왜 믿음이 그렇게 없습니까? 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그렇게도 신뢰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말씀은 너무 평범합니까? 그래도 그 평범한 말씀이 천지만물을 붙들고 있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어떤 전도사가 성도에게 돈 버는 사명을 받았다고 예언해줍니다.

자기 교회 전도사가 그런 말을 하니까 고민하는데 전도사가 돈 버는 곳까지 소개합니다.

소개해 준 곳이 'OO'라고 하는 회사인데, 회사 말대로라면 엄청난 떼돈을 벌긴 법니다.

그러나 지금 그 회사 간부들 이외에 28명이 사기 죄로 구속 기소된 상태라고 합니다.

 

저도 네트워크 마케팅을 하는 사람을 몇 명 알고 있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모릅니다. 많이 땀을 흘립니다. 땀 흘리고 얻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2천만 원어치 물건을 사면 3-4대에 걸쳐 매 달 수천만 원이 나온다니 말이 됩니까?

이런 곳에 전도사가 성도를 돈 버는 사명 받았다고 예언한 후 소개해주니 상상이 갑니까?

 

성경에 한 사람을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달고 바다 속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죄입니까? 한 사람을 교회로 인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그렇게 합니까?

물론 자기 영혼은 자기가 지켜야 합니다. 네트워크 마케팅 업계에서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단기간에 떼돈을 번다는 것에 현혹되지 않도록 소비자 스스로 분별력을 키우라는 말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도 스스로 분별력을 키워야 합니다.

분별력이 없다면 보통 사람, 보통 목사님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자신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내 앞에 나타난 모습만 가지고는 분별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나를 이용 대상으로 삼을 목적으로 접근하려는 사람이 마귀의 모습으로 접근해 오겠습니까?

 

어떤 분은 미혹에 넘어갈 뻔하다가 돌아서는데 어떤 분은 끝까지 자기가 옳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먹물을 튀기며 사람들의 마음을 혼란하게 만듭니다.

교회에 나오면서 사람들을 교회로부터 마음이 멀어지게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입니까?

사람들이 이맛살을 찌푸리니까 근신하는 줄 알았는데 근신이 아니라 기회를 엿본 것처럼

좋은 기회를 잡은 것 같으면 불나방처럼 달려들어 교회와 목사님을 욕하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산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겨우 건져내니까 자기는 죽이는 길로 보내서야 됩니까?

우리가 진짜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영혼을 사랑하는 길이 무엇인지 알고 실천해야 합니다.

내 옆 사람이 천국 길로 가고 있는데 그 길을 우리가 돕기 위해서 애써야 합니다.

그런데 그를 끌어내리고 주님의 몸이라고 말하는 교회에까지 상처를 입히면 됩니까?

교인이면 교회를 사랑하게 하고, 천국 백성이면 천국에 가도록 도와야 하지 않습니까?

 

누가 나 때문에 믿음이 떨어지고, 나 때문에 교회와 멀어지고,

나 때문에 목사와 멀어지고, 나 때문에 교회에 실망한다면 나는 누구의 증거자입니까?

 

북한에서 내려와 남쪽에서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을 우리는 간첩이라고 합니다.

그 간첩보다 더 무서운 간첩이 있습니다. 바로 마귀의 사명을 받은 간첩입니다.

전화통을 붙들고 말합니다. "아무개 집사! 요새 목사님이 이상해!"

 

기어이 아름다운 신앙을 훼손하고, 기어이 교회에서 마음이 멀어지게 하면 됩니까?

진짜 교인이라면 지옥에 가는 영혼을 붙들어야지 그곳으로 밀어내면 안될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교회로 전도는 그만두고 교회에서 밀어내면 됩니까?

믿노라 하면서 기어이 끌어내리고, 기어이 실족시키고, 기어이 불신을 조장하는 사람!

하나님께서는 불신자보다 이런 사람들을 더 미워하실 것입니다.

 

생명이 얼마나 고귀한 것입니까? 내 생명이 귀한 줄 알면 남의 생명도 귀한 것입니다.

산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입니까? 살기 힘든 시대에 살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어떤 집에 할머니가 중풍으로 일어나지 못해서 오줌똥을 받아내고 있었습니다.

그 집에 불이 났습니다. 아들이 "어머니!" 하면서 급히 집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디 가셨는가 했더니 벌써 밖에 나와 있었습니다.

오줌 똥 받아내는 할머니도 불길을 피해 살려고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해 나옵니다.

 

그것이 생명의 힘입니다. 사람들이 그처럼 아름답게 살고 싶다고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처럼 살고 싶다고 교회에 나온 사람들의 영혼마저 죽이고 시험에 들게 하면 됩니까?

내 말 한 마디가 저 사람의 교회생활에 도움이 될지, 교회에 정을 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목사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게 할지, 아니면 멀리하게 할지 정도는 생각해야 합니다.

 

< 다시 한번 하나님의 도를 받으십시오 >

 

그래서 어떤 목사님은 "먼저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전도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전도 받지 않으면 열심히 하려는 사람마다 콕콕 찍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조금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8년 전에 서울에 있는 어떤 교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 교회에는 열심히 하려는 사람이 생기면 콕 찍어 마음 상하게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양의 가죽을 쓴 이리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말씀의 검으로 꼭 잘려나갑니다.

그러면 본인이 스스로 나간 것 같지만 잘린 것이고, 어디 가서도 또 그런 행동을 합니다.

그러면서 개척을 일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개척에 사명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없어도 하나님의 일은 됩니다. 자기만 망하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끔찍한 생각을 합니다. "나 없으면 되나 보자!"

만약 이런 마음이 만 분의 일이라도 있으면 정말 그 사람이 없어주어야 무슨 일이 됩니다.

그 사람 때문에 안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없으면 안되지만 그런 사람은 없어야 됩니다.

 

만약 무엇이 안되는 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남 탓이요, 남 책임으로 돌리면 됩니까?

누구나 인정하지만 사실 그런 사람 때문에 무엇이 안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닙니까?

교회가 영적 전쟁을 하니까 힘을 합쳐도 힘든데 힘을 흩으려고 하면 아주 힘들게 됩니다.

 

왜 사람이 되어서, 더 나아가서 교인으로서 복 받을 일로 가야지 저주받을 일로 갑니까?

같은 시간, 같은 인생을 살면서 망하는 길로 가고, 진노를 쌓는 길로 가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힘써 전도하십시오. 하나님의 증거자가 되시고, 마귀의 증거자가 되지 마십시오.

정직한 신앙을 가지십시오. 땀을 흘리는 신앙을 가지십시오. 죽는 신앙 가지지 마십시오.

 

어떤 분은 전도하라고 하면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도할 시간은 없다고 하면서 TV볼 시간은 많습니다.

밤늦게까지 보면서 아쉬워서 또 여기 저기 채널을 있는 대로 다 돌려봅니다.

그래도 볼 것이 없으면 "! 아쉽다!"고 하면서 TV를 끄고 잡니다.

그렇게 아쉬운 마음으로 예수님 믿고, 그렇게 아쉬운 마음으로 전도 한번 해보십시오.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을 위해서는 참 아쉬워하고 정말 중요한 것은 무시하면 됩니까?

 

< 전도는 선택이 아니고 필수입니다 >

 

에스겔 33장을 보면 우리가 전도하지 않아 죽은 사람의 피 값을 누구에게 찾습니까?

하나님의 생명의 길을 알고 구원받았으면서 전도하지 않은 사람에게 찾겠다고 합니다.

주님은 승천하시면서 전도의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전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엉뚱하게 다른 것 회개하지 말고, 전도하지 못한 것, 사람 실족시킨 것 회개해야 합니다.

 

타락이 무엇입니까? 술 먹고, 카바레 가고, 춤판 벌이고, 도박하는 것만 타락이 아닙니다.

진짜 타락은 내 주위의 신앙을 격려하기는커녕 죽이는 언행이 바로 진짜 타락입니다.

한 영혼에 대한 주님의 심정이 얼마나 간절합니까? 그 주님의 심정을 생각해야 합니다.

 

전도는 잃어버린 자를 찾으려고 하나님의 간절한 명령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만 분의 일이라도 생각한다면 최대한 전도에 힘써야 할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사람의 영혼에 믿음을 말을 주어야 합니다.

그의 영혼을 살려주는 말, 그에게 믿음을 주는 말, 그에게 힘을 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힘써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하는 일에는 무조건 아멘 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실한 은혜를 생각한다면 전도에 관심이 없고, 핑계를 대고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생각하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형편과 처지를 따져가면서 이 핑계 저 핑계를 댑니까?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의 언행의 어느 한 가지라도 연습이 없습니다. 진지해야 합니다.

주님이 주신 생명을 다시 내놓고 그 생명을 바치려는 지점에서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핑계 대며 외면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축복과 건강의 은혜를 받습니까?

어떤 분은 너무 핑계를 잘 대서 자기가 주님 만나지 못하는 것까지 남 핑계를 댑니다.

그런 핑계를 대면서 어떻게 주님 만날 수 있습니까? 빌리 그래함이 만나게 하겠습니까?

내 생명은 주님의 생명이기에 주님께 바친다는 그 진실점에서만 주님을 만날 것입니다.

 

형식적으로 거의 기만에 가까운 찬양과 예배를 드리면서 어떻게 주님을 만납니까?

말씀도 기만에 가깝게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에게 좋은 말씀만 아멘 합니다.

전도도 하지 않고 오히려 상처 주는 말을 하면서 사랑한다는 말이 어떻게 나옵니까?

 

무슨 말씀이든 내게 좋은 말만 "아멘!"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내가 죽어 무너지는 말이라도 "아멘!"으로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거침이 되면서 "왜 은혜가 없을까? 왜 전도가 안될까?" 하지 마십시오.

죽고자 하면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절대 복종하며 살려고 해보십시오.

그렇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는 거침없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힘써 전도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전도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보이는 것으로 하려고 하고, 우리는 보이지 않은 것으로 하려고 하니까

본질적으로 참된 전도는 정말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끊임없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끊임없이 전도에 힘써서 복된 날을 예비하며 사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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