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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저는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입니다!” /요한복음 17장 6~16절

by 【고동엽】 2023. 1. 23.

2008.6.15 주일 설교(요한복음 강해 66)

 

주여 저는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입니다!”

요한복음 176~1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지난 611일 금식 성회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은혜를 주셨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좀 힘든 날이기도 했습니다. 다섯 번 집회에 잠깐 잠깐 개인 기도 시간과 쉬는 시간을 두었는데, 그 시간에 기도를 요청해 오신 교우들이 계속 이어지는 바람에 집회 끝나면 안수 기도를 하는 연속이었습니다. 나중에는 몸이 힘들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기도받기 원하는 교인들을 위하여 안수 기도하다가 주여, 저는 누구에게 가서 기도를 받아야 합니까?’ 하는 탄식이 나왔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즉각 깨닫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나를 위하여 기도하신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직접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해 주신다는 것을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오늘 그 놀라운 비밀을 말씀 중에 우리에게 열어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모두 놀랍게 예수님의 기도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질 때를 앞두고 제자들과 함께 공개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그 전에는 예수님이 기도하셨다는 것만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예수님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으로 기도하셨는지에 대해서 온전한 기록이 복음서에 없지만, 한번 요한복음 17장에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공개적으로 하나님께 하신 기도가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십자가를 통하여 자신을 영화롭게 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예수님이 떠난 다음에 남게 될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기도는 단순히 그 당시 제자들만 아니라 그 이후 예수님 믿는 모든 시림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곧 우리들을 위한 기도이기도 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점검해 볼 일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사람, 제자들로 인하여 전해 준 말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되는 그 사람이 도대체 정확하게 누구냐? 나는 그 사람인가 아닌가 하는 것부터 분명하게 확인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정말 예수 믿는 사람, 구원받은 천국 백성인 것은 사실입니까?

아침에는 하나님의 사람 같다가 저녁에는 마귀 자식 같아지는 것이 우리 자신입니다. 그런데도 정말 예수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 백성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분명한 증거가 있습니까?

 

 

저도 저 자신이 예수님의 사람이라는 확신이 없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저를 볼 때 아마 천국 갈 사람이라고 믿었을지 모릅니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목사의 아들이고 생활도 모범적이니 당연히 유기성이야 천극 가겠지.’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 자신은 과연 하나님 앞에 가면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다고 하실까? 모르신다고 하지 않으실까?’ 확신이 없었습니다. 무엇으로 확신을 가질 수 있는지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볼 때도 그랬습니다. 어떤 사람은 분명히 천국 갈 사람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애매한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 같기도 하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 같기도 한 애매한 사람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사람이 천국 갈 사람인지 아닌지는 무엇을 보고 판단해야 하지요?

결신자에게 세례를 주어야 할 때 고민이 생겼습니다. 이 사람이 정말 구원받았는지 아닌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한 때는 교회에서 셰례 시험을 보기도 했습니다. 주기도문, 사도신경 외웠느냐? 성경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아느냐? 어릴 때 기억으로 세례문답을 위한 예상 문제도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천국도 시험을 봐서 들어가는가?’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단정하실 수 있었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판단하셨습니다.

6절에서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나이다8절에서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했습니다.

예수님의 사람은 말씀에 대한 반응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에 대한 반응을 보면 예수님의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누가 구원받은 사람인지 구분하는 기준에 대하여 고민할 때, 성경 구절이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고린도후서 135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이것을 확인하면 되겠구나!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연구해 보니 우리 안에 와 계시다는 예수님은 성령님을 말씀하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중에 우리 안에 오실 수 있는 하나님은 성령님 한 분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오시면 어떤 역사가 일어나는 지를 찾았습니다. 그랬더니 크게 일곱 가지 증거가 나오는 것입니다.육신적인 눈으로 볼 때는 일곱 가지 변화가 거의 두드러지게 깨달아지지 않지만, 영적인 눈을 뜨고 보면 사람이 완전히 바뀌어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오시게 되면 사람이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첫째 고린도전서 123절 말씀에 보니 예수를 주라 시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증거임을 알았습니다. 8절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로 믿었사옵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둘째 로마서 815-16절 말씀에 보니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또 하나의 증거임을 알았고,

셋째 고린도전서 212절 말씀에 보니 하나님의 은혜가 느껴지는 것이 증거입니다. 아무나 말씀을 듣고 찬양을 들을 때 은혜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오신 사람만 은혜를 은혜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 요한일서 412-13절을 보니 원수라도 용서하고 사랑의 마음이 성령님 때문에 일어나는 것을 알았고,

다섯째 에베소서 430절에 보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 마음이 무겁고 고통스러운 것이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책망이라는 것입니다.

여섯째 빌립보서 213절을 보니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하는 소원이 성령님 때문에 생기는 것을 알았습니다. 불신자에게는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일곱째 마태복음 1019-20절을 보니 전도할 때 자신의 입으로 복음이 증거되는 것이 성령의 역사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이것을 새 가족에게 그대로 적용해 보았습니다. 확인해 본 것입니다. 그랬더니 정확한 것입니다. 조금도 갈등하고 미심쩍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양육 메세지 9번과 제자 훈련 교재에 그 내용을 자세하게 삽입하였던 것입니다.

 

물론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계신 말씀의 증거는 전체적으로 살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하지만 구원받은 자가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 말씀에서 보듯이 성령께서 하시지 않은 주여라는 고백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불법을 행하면서도 성령의 근심을 느끼고 회개하게 되지 못한다면 그의 주여라는 고백은 가짜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도 습관이나 배워서 부르는 것일 수 있습니다.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증거에 대해서도 때때로 그리스도인들이 부끄러울 정도로, 몸을 내어 주기까지 사랑하는 휴머니스트와 타 종교인들을 봅니다. 그러므로 단 그것만 보고 그가 성령 받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전체 말씀을 적용해 보면 우리는 분명히 분별할 수 있습니다.

내가 정말 하나님의 사람인지 아닌지확인할 수 있습니다. 무조건 믿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믿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자녀된 증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이루어졌습니까? 성령님께서 여러분 안에 계신 증거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예수님의 사람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과 피가 다릅니다. 너무 자극적인 표현이라 충격입니까? 확신을 가지기 원합니다. 우리 영혼에는 보혈이 흐르고 있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이 사랑하시는 자입니다!”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음을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사람에게 관심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9)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예수님의 사람에게는 예수님의 기도가 있습니다. 본문에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세 가지 기도가 나옵니다.

 

첫째는 제자들이 하나가 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11)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여기 주님께서 말씀하신 우리란 말은 성부, 성자, 성령을 가리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 하나이듯. 모든 성도들이 하나가 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어떤 일이 있어도 기쁨을 지켜 달라는 것입니다.

(13)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제자들이 세상에서 미움을 받기도 하고 핍박을 당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제자들의 마음에 기쁨이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셋째는 악에 빠지지 않게 보호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15)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여러분, 우리는 주님의 이 중보기도 속에 살고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도 응답받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친히 기도하신 것이 어찌 응답이 되지 않겠습니까? 응답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기도하셨다는 말은, 우리에게 반드시 그 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쉽지 않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도 너무나 두렵고 염려스런 일들이 우리에게 계속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물 위를 걷는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유가 문제, 미국산 쇠고기 문제, 정치적인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 화물연대 총파업, 지진 소식 등 우리를 너무나 두렵게 하는 소식들이 많지만, 그보다 더 분명한 사실은 우리는 예수님의 중보 기도 아래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기도를 받고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님의 사람들은 담대해야 합니다.

 

 

어떤 목사님이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에게 다윗 왕의 용감성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답니다. "다윗은 목동 소년이었음에도 키가 3미터나 되는 골리앗에 대항하여 물맷돌 몇 개를 가지고 나가 싸우려고 했으니 얼마나 용감하냐?" 그러자 그의 아들이 "아빠, 제가 보기에는 다윗보다는 골리앗이 더 용감한 것 같은데요." 하더랍니다. 아버지가 ?” 라고 물으니 "골리앗은 다윗이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라고 했는데도 다윗과 싸우겠다고 나갔으니 얼마나 용감합니까?" 그 아들의 믿음에 목사님이 놀랐답니다.

우리도 이 아이처럼 믿어야 정상입니다.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사람들로 인하여 영광을 받으셨다고 했습니다.

(10) “...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지금도 동일하게 예수님은 우리로 인하여 계속하여 영광 받으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도 살다 보면 삶이 휘청거릴 정도로 위기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가정과 교회 안에서 깨어지는 아픔이 있을 수도 있고 어떤 때는 기쁨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어려움에 빠질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세상의 죄와 악에 나도 모르게 그만 물들어 우리 영혼이 비참해 지는 때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반드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문제를 기도해 주셨습니다. 자신이 예수님의 이 기도의 대상이며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실 것을 믿으면 하나님은 우리 삶을 통하여 영광 받으십니다.

 

 

서울역에서 1천여 명에게 급식을 하고, 교회에서 노숙인 150여 명을 섬기고 죽음을 앞두고 있는 말기암 환자들을 돌보는 '소중한 사람들' 설립자인 유정옥사모님이 그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쓰임받은 것은 지금은 목사가 된 남편이 사업을 크게 하다가 3억 부도를 맞아 열세 식구가 연립주택 지하 창고에 가서 살아야 하는 극한 어려움 때문이었습니다. 남편은 그 일로 죽음까지 생각하다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유정옥사모님은 남편이 예수님을 믿은 것이 너무 감사하여 사업 부도로 인한 모든 어려움을 감사로 하나님께 올려 드렸답니다.

주님! 주님은 머리 둘 곳도 없으셨는데 저에게는 아직 너무 많아요. 주님이 분을 품고 잠들지 말라고 하셨는데, 저는 매일 밤 분을 품었어요. 속 옷을 달라는 자에게 겉 옷을 벗어주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에게 빼앗긴 것 때문에 어떻게 다시 빼앗아 오나 매일 궁리했어요. 매 시간 그를 저주하고 미워했어요. 그러나 이젠 됐어요. 남편을 예수 믿게 해준 것으로 저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요.”

그 후 부도를 낸 대리점 사장이 초췌한 몰골로 찾아와 이젠 도망다니는 것도 지쳤으니 차라리 감옥에 보내달라고 했을 때, 그 사람 앞에서 3억 부도 수표를 찢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3억의 부도 수표에서 자유하세요. 당신은 우리에게 더 이상 빚이 없어요. 이 돈이 당신에게 빚이었다고 생각되거든 나중에 당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갚으세요. 우리는 하나님께 이미 이 돈을 받았으니 당신은 하나님께 갚으세요.” 했답니다. 그리고 사업가로 성공하는 것보다 더 엄청난 일로 하나님께 쓰임 받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갖지 못하였을 때, 세상을 이길 담대함도 없었습니다. 험상궂은 사람 하나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약했습니다. 항상 비교의식에서 열등감에 시달리고 문제는 회피하고 싶고, 혼자 있기 좋아하는 내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안에 성령께서 계시며 제가 예수님의 제자라는 증거가 분명함을 알고 난 다음부터는 영적인 담대함이 생겼습니다. 두려움과 염려가 떠나가고, 하나님이 끝까지 나를 지키시며 동행해 주신다는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제가 가장 휘청거렸던 순간은 아내에게 암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습니다. “여보. 저 암이래요.” 전화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탁 막히면서 아무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머리로는 아내에게 무슨 말이라도 위로를 해야 하겠는데, 아무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서울에 있는 동광교회 부흥회 인도 중이라 아내에게 달려갈 수도 없어, 병원에서 혼자 집으로 가는 아내를 생각하니 더욱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날 저녁집회에 설교할 힘도 없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마음에 주시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만약 네 아내처럼 오늘 암 판정을 받은 사람이 오늘 저녁 집회에 힘과 위로를 받으러 온다면, 네 설교가 힘이 되고 위로가 되겠느냐?’ 그 마음이 드는 순간, 그 날 설교 제목과 본문 말씀이 제게 주시는 응답임을 알았습니다. 설교 제목이 [죽음과 승리]였고 본문은갈라디아서 220절 말씀이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제 마음 깊은 곳에서 기쁨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죽으면 되는구나! 하나님 감사합니다.” 눈물로 고백하였습니다. 제 아내의 암은 우리 부부를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죽게 하심으로 오직 주님께서 마음대로 사용하시겠다는 메시지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저희 부부에게 새로운 영적 시대가 시작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제 인생에 가장 엄청난 불행이 시작되는 것 같았는데 제 심령이 완전히 바뀌어졌습니다. 그리고 제 기도가 바뀌었습니다. 정말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오늘 제가 증거하는 말씀이 암 판정을 받고 온 그 사람에게도 힘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제 아내의 마음도 지켜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사람들의 마음에 기쁨과 확신으로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분열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험하고 악한 세상에 살다보면 기쁨도 잃어 버리고, 자신도 모르게 세상을 닮아 악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 되도록 기도하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쁨을 잃지 않게 기도해주셨습니다. 우리를 악으로부터 보존해 주시기를 기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절망의 순간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도무지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시험에서 이기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휘청거리는 순간이 우리에게도 옵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그런 상황에서 우리를 지켜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다는 말은 이미 응답은 되었다는 뜻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려두고 다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기도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미 그 제자들을 위해서 이렇게 기도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다 하나님의 위대한 사도들이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에게도 똑같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100번 넘어질 수 있지만, 101번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그렇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기도하실까요. 여러분, 오늘 주님이 주신 약속을 정확하게 알고 정확하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제가 바로 주님께서 그렇게 사랑하시는 그 사람입니다. 지금 제 안에 그 증거가 너무 분명합니다.

주님 제가 세상 사는 동안에 휘청거리고 살았습니다. 지금 제가 정말 시커먼 바다 위를 걷는 처지에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를 능히 바다 위를 걷게 하시고 풍랑도 잔잔케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역사해 주옵소서. 저를 통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응답이 계속 드러나게 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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