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정의를 믿으라 (이사야 9장7절) < 하나님의 정의를 믿으라 >
주님은 평강의 왕으로 오셔서 정의와 공의로 주님의 나라를 영원히 보존하실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떠받치는 2개의 기둥은 정의와 공의다.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의심하지 말라. 하나님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은 자기 모습을 너무 보지 못하는 생각이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받을 자격이 충분한데 받지 못하고 있다는 교만한 생각이다. 그런 생각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은 더 멀어질 수 있다.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믿고 어떤 일로 생긴 실망과 상처와 고통을 삶에서 지혜롭게 떠나가게 하라. 왜 그런 잘못이 생겼는지에 대해 너무 분석해서 이해하려고 하지 말라. 사람들은 가끔 자신의 처지에 대해 실망해서 설명을 요구하는 질문을 한다. “왜 아기가 유산되었을까? 왜 나는 이런 가정에 태어났을까?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왜 그가 나를 떠났을까?” 그런 질문에 대한 정답을 추구하면 낙심만 커지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직면하는 많은 상황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난 이유를 정확하게 알거나 이해하지 못해도 좋다. 모든 실패의 이유를 정확하게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 사람은 하나님이 아니다. 모든 상황을 다 이해하려고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라. 하나님의 생각과 길을 사람이 정확하게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몰라야 할 것을 모르고 지나치는 태도는 능력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태도다.
사람들은 어떤 상황을 잘 분석하고 어떤 일의 이유를 찾다가 마침내 결론을 내린다. “그가 저렇게 된 것은 잘못된 사람과 지냈기 때문이다. 그가 어떤 가정환경에서 자랐기에 그런 일을 했다.” 언뜻 보면 그런 분석이 이치에 맞는 것 같다. 그러나 세상 이치대로 모든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무차별 살상 테러 현장에 있다가 갑자기 죽은 사람들도 많고 여객기가 추락해 많은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하기도 한다. 그런 일들에 대해 이치에 맞는 원인 해석이 가능하겠는가? 아이가 극심한 장애아로 태어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그 아이가 무슨 죄를 지었겠는가? 술 취한 사람의 차에 의해 엉뚱한 사람이 목숨을 잃는 일도 것이나 좋은 사람이 암에 걸려 시한부인생을 사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를 어떻게 잘 설명하겠는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만나면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라고 말할 때도 있다. 그처럼 이해할 수 없으면 이해할 수 없는 대로 내버려두고 그 벌어진 상황에서 다시 새롭게 시작하라. 좋지 않은 일에 대해 너무 연연하며 분석하려고 하지 말라. 그런 행동은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의심하는 행동으로 비춰질 수 있다. 설명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설명을 추구하는 것은 낙심과 실패와 절망의 수은을 마음에 서서히 주입하는 것과 같다.
어떤 고난과 실패의 이유를 알아야 한다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이유를 알려주셨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알려주시지 않으면 그 문제에서 생각을 떠나게 하라. 어떤 문제에 대해 하나님은 성도가 알기를 원치 않으실 때도 많다. 하나님이 어떤 사실을 비밀로 붙이는 것도 하나님의 크신 섭리 때문이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해답이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를 믿고 나아가라.
신학을 깊이 연구하면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오해하지 말라. 고난의 이유를 잘 해석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의와 공평을 신뢰하고 고난에 대한 해석을 지혜롭게 멈추는 것이 좋을 때가 많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시고 공평하시다. 하나님이 마침표를 찍은 것에 대해 물음표를 놓지 말라. 최선을 다했어도 실패했다면 하나님이 마침표를 찍으신 것이다. 그 상황을 인정하고 새로운 문장과 단락을 시작하라.
중요한 기도제목을 놓고 믿고 기도했어도 응답이 없었다면 하나님이 마침표를 찍으신 것이다. 그때는 선하고 의롭고 공평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다른 길을 찾아 새롭게 시작하라. 그때 “하나님! 왜 제 기도를 외면하십니까?”라고 기도하지 말고 이렇게 기도하라. “하나님!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믿고 이전의 장은 흘려보냅니다. 새로운 장을 펼쳐 새로운 때를 준비하게 하소서.” 그렇게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찬양하며 새롭게 시작하면 이전에 계획했던 것보다 더욱 복된 미래가 펼쳐질 것이다.
인생의 느낌표를 자꾸 찍지 말라. 인생의 물음표는 더욱 찍지 말라.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계획하고 있음을 믿으라. 언젠가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완벽하게 구현될 날이 온다.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재림하실 때다. 그 날을 준비하며 살라. 주님이 초림하신 성탄절은 주님이 재림하실 날을 새롭게 기대하고 사모하는 절기다. 주님이 다시 오면 정의와 공의로 모든 불의와 부조리를 심판해서 한과 눈물을 씻어주고 귀한 상급도 내려주실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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