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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사에 감사하십시오 (민수기 29장 12-40절)

by 【고동엽】 2022. 12. 29.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민수기 29장 12-40절) < 장막절 규례가 교훈하는 삶 >

 며칠 전 아침에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일찍 데려가셔도 좋지만 성경 전체 강해를 다 끝낼 때까지만 죽음을 유보해주세요. 그러나 하나님 뜻대로 하소서.” 그날 저녁, 집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하마터면 소천할 뻔 했습니다. 다행이 죽 미끄러져 두 팔뚝이 머리보다 먼저 땅에 닿아 머리의 충격이 덜했습니다.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죽거나 크게 다친 사람이 주변에도 꽤 있었는데 저도 그렇게 될 뻔한 것입니다. 바로 그때 아침에 드렸던 죽음 유보 기도를 생각하며 감사했습니다. 살다보면 그런 감사거리들이 참 많습니다.

 살면서 감사거리를 작게 생각하고 불평거리를 크게 생각하면 점차 불평거리가 커지면서 악순환 인생이 되고 결국 악인이 됩니다. 반면에 불평거리는 작게 생각하고 감사거리를 크게 생각하면 점차 감사거리가 커지면서 선순환 인생이 되고 결국 선인이 됩니다. 불평거리는 10분의 1로 줄여 생각하고 감사거리는 10배로 늘여 생각하면 불평보다 감사가 100배가 넘치는 삶이 됩니다. 그러면 대략 범사에 감사하는 인생이 되고 그때 이삭처럼 백배의 축복을 얻는 복된 인생이 펼쳐집니다. 복된 인생이 되려면 감사는 필수적입니다.

 본문에는 장막절 절기에 행할 규례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장막절은 우리나라의 추석이나 미국의 추사감사절과 유사한 개념의 절기입니다. 본문에 언급된 장막절 규례 가르쳐주는 삶의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쉴 때는 확실히 쉬십시오

 유대 종교력으로 7월 15일은 유대 민간력으로 정월 보름이고 오늘날의 태양력으로는 9-10월경의 추석 때입니다. 그때 추수와 수확에 대해 감사하는 성회로 모였고 그때부터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7일 동안 장막절(초막절)을 지켰습니다(12절). 그때는 추수 후 수확물을 창고에 저장하는 날이기에 수장절이라고도 했습니다. 추석 명절처럼 장막절은 하나님 안에서 민족과 가족이 함께 쉬며 즐거워하는 날입니다.

 열심히 일하고 쉴 때는 확실히 쉬는 삶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입니다. 그림은 여백을 통해 아름다움이 빛나고 말이나 문장은 쉼표를 통해서 뜻이 빛나듯이 행복은 일과 쉼의 조화 속에서 빛납니다. 살면서 혼자 있을 때도 있어야 인간관계도 빛나고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동행과 대화도 필요하지만 고독과 침묵도 필요합니다. 그처럼 6일 동안 열심히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7일째에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어떤 인디언은 앞으로 달릴 때 가끔 서서 뒤를 돌아보며 미처 따라오지 못한 자기 영혼을 기다립니다. 느림보는 되지 말아야 하지만 느림의 철학은 필요하고 게으르면 안 되지만 기다림의 철학은 필요합니다. 약속을 잘 어기는 사람은 교육 목적상 기다려주지 말아야 할 필요도 있지만 적절한 때를 구하는 문제에서는 넉넉히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십시오. 열정적으로 살면서도 여백과 기다림이 있는 삶이 결국 승리합니다.

2. 감사의 예물을 드리십시오

 장막절 첫 날에 드릴 제물은 매일 숫양 2마리씩 드리는 상번제물(continual burnt offering, 민 28:3) 외에 번제물(burnt offering)로 흠 없는 수송아지 13마리, 숫양(ram) 2마리, 1년 된 숫양(lamb) 14마리가 드려졌고(13절), 속죄제물(sin offering)로 숫염소(goat) 1마리가 드려졌습니다(16절). 그렇게 모두 32마리의 짐승이 장막절 첫날에 드려졌습니다. 그 외에 소제(grain offering)와 전제(drink offering)가 함께 드려졌습니다(14-15절).

 장막절 둘째 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드릴 제물은 수송아지가 매일 한 마리씩 줄어드는 것을 빼고는 나머지 제물은 다 똑같습니다(17-34절). 그렇게 총 7일간 203마리의 많은 짐승을 드린 것은 감사 제물을 드리는 삶의 중요성을 잘 보여줍니다. 은혜를 받으면 거기서 끝내지 말고 마리아처럼 자기 옥합을 깨서 드리려고 하십시오. 은혜의 깊은 바다를 체험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불같은 시험과 십자가의 헌신 단계를 통과한 사람들입니다.

 많은 은혜를 받은 성도가 십자가의 헌신을 외면하면 성숙한 믿음을 위해 시험이 주어질 때가 많습니다. 시험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참된 영성은 ‘은혜를 많은 사모하고 많이 받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 자기 유익을 포기하고 드릴 줄 아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즉 영성의 은혜는 대개 자기 포기와 드림을 통해 얻습니다. 어떤 성도는 월세로 살면서도 기쁨을 잃지 않고 선교와 구제에 힘써 동참합니다. 그것이 은혜이고 기적입니다.

 예전에 어렵게 살던 한 집사가 선교사님의 차 구입에 헌금하겠다고 자기 학원 운행 차를 팔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집사님! 그 마음을 다 받았으니 그 차를 팔지 말고 나중에 열심히 벌어서 선교하십시오.” 결국 다른 성도의 드림으로 선교사님의 차가 마련되었습니다. 그런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들이 오고가며 여러 사람들을 감격시켰습니다. 그 장면을 보고 하나님도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극적으로 성공한 것보다 죽음을 각오하고 헌신하는 것이 진짜 기적입니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면 드림을 주저하지 마십시오.

3. 예배 중심적으로 사십시오

 장막절 마지막 날인 8번째 날은 장엄한 대회로 모이고 그날도 아무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35절). 그날에 모두 12마리의 짐승을 드렸습니다(36-37절). 결국 장막절 8일 동안 총 215마리의 짐승이 제물로 드려졌습니다. 장막절은 한 해의 모든 절기 중  마지막 절기인 동시에 가장 큰 감사절기로서 다른 절기보다 더 많은 제물을 드려 하나님께 감사했고 그 모든 절기 행사를 대 성회로 마무리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생업 전선에 뛰어들기 전에 마지막 대 성회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도 듣고 새로운 믿음생활을 결단하는 모습은 예배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예배하는 삶, 특히 주일성수는 믿음생활의 가장 기초입니다. 주일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말씀으로 자기를 살피며 성도간의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면 얼마나 좋습니까?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주일을 지키는 사람이 주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보다 평균 7년을 더 산다고 합니다. 삶의 위기 때 가장 필요한 것도 예배이고 나라와 민족의 위기 때도 가장 필요한 것이 예배하는 삶의 회복입니다. 모든 승리의 원천은 예배에 있습니다. 예배에 승리해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면 다른 승리도 주어집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 1절에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 영적 예배다.”라고 했습니다. 왜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지 않고 “너희 몸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을까요? 몸과 얼굴까지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도 몸과 마음의 깨끗함은 물론 얼굴과 복장까지 밝고 단정하게 해서 예배드리기를 원하십니다. 성도의 몸은 거룩한 성전입니다. 몸도 마음만큼 소중한 것입니다. 몸까지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참된 예배가 있어야 사람이 사람답게 되고 성도가 성도답게 됩니다.

4. 감사를 오래 지속시키십시오

 왜 하나님께서 장막절을 비롯해 각종 절기를 지키게 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게 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오래 지속시키려는 목적 때문입니다. 감사를 오래 지속시키려면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체질화시키십시오. 아픈 말을 듣고 아픈 일이 생기면 그런 일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감사하고 악인이 있으면 그런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감사하십시오. 그런 일과 그런 사람은 부정적으로 자신을 성숙시키고 돕는 것들입니다.

 고독한 순간이 찾아오면 그것도 감사하십시오. 고독도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고독을 즐기며 그때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극심한 고난 중에도 감사하십시오. 청교도들이 먹을 것이 없어 낙심할 때 한 노인이 말했습니다. “그래도 신앙의 자유를 찾은 것으로 인해 감사합시다.” 그때 감사를 회복하고 고난을 이겨냄으로 신대륙 번영의 초석을 닦았습니다. 고통과 불행을 축복과 행복으로 바꾸는 결정적인 태도가 감사입니다. 하나님은 감사할 때 은혜를 넘치게 주십니다. 감사하며 얻은 축복은 오래가지만 불평하며 얻은 것은 금방 사라집니다.

 며칠 전 한 시골 동네 주민들이 장의사 차량을 막고 500만 원을 내야 길을 통과시켜주겠다고 했습니다. 그처럼 동네 주민을 모아 데모하고 떼를 써서 부당하게 큰 보상금을 타내는 일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렇게 부당하게 떼를 써서 얻어낸 돈이 나중에 보면 인성과 행복과 가정과 인생을 망칠 때도 많습니다. 때로는 다른 비극적인 일로 그렇게 얻어낸 돈보다 더 많은 돈이 극심한 아픔과 상처를 남기고 사라질 때도 많습니다. 물질의 지경을 넓히려고 할 때는 정당한 방법으로 감사를 앞세워 넓히려고 하십시오.

<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

 무엇보다 자기 분복에 대해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은 각 사람마다 다른 특성을 주셨습니다. 급한 성격도 있고 느린 성격도 있습니다. 다 하나님이 주신 성격이기에 고칠 수도 없고 고칠 필요도 없습니다. 자기 개성을 선하게 잘 쓰면 좋은 것이고 악하게 잘못 쓰면 나쁜 것입니다. 자기 성격에 대해 고민하거나 자학하지 말고 열등의식을 가지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다른 개성을 주신 것은 그 개성을 따라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에게 획일적인 입시 공부만 너무 강요하지 마십시오. 자녀가 입시 공부를 싫어하면 이렇게 말해주십시오. “꼭 공부하기 싫다면 안 해도 좋지만 네 개성과 재능을 살려 쓰임 받는 인생이 되라.” 그러나 많은 한국 부모들은 공부만 하라고 아이들을 달달 볶습니다. 사실 부모 자신도 공부를 얼마나 싫어했습니까? 그런데 자녀에게 그렇게 공부하라고만 하니까 자녀가 참다가 마침내 “엄마아빠는 공부 잘했어요?”라고 말하고 싶어도 엄마아빠의 자존심을 생각하고 그 말을 하지 않고 끝까지 참는 것을 보면 자녀가 정말 위대합니다.

 자기에게 맞춰 자녀에게 요구하지 마십시오. 자녀의 개성과 재능에 맞게 길을 잘 열어가도록 도와주십시오. 사람은 늘 자기 수준에 맞춰 생각하고 요구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큰 교회 성가대 지휘자는 대개 음대를 나온 전문가인데 그가 성가대원들을 자기 수준에 맞추려면 열이 나서 제 명대로 못삽니다. 수준에 맞춰주고 이해해줄 줄 아는 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다 똑같이 잘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 개성을 살려 “네 적성과 사명을 따라 살라.”고 할 수 있는 영안이 열려야 하늘과 통하는 지혜를 얻습니다.

 다 대학을 나올 필요도 없습니다. 대학을 졸업했다고 직장생활을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 재능을 살려 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학 안 나오고도 어떤 분야의 대가가 된 경우도 많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대학 때의 전공대로 직업을 가진 사람이 20%가 채 되지 않습니다. 대학을 나오는 것보다 자기 재능을 따라 성실하게 자기 일에 매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너무 불필요한 일을 많이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이 주신 자기 재능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는 재능이 없다.”고 하지 마십시오. 하늘은 재능 없는 사람을 세상에 내놓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재능이 있습니다. 다 공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공부 많이 한 사람이 자상한 남편이나 아내가 되지 않습니다. 대학원을 졸업한 여자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여자한테 빚지며 굽실거리며 사는 경우도 많습니다. 인생 공부나 살림 공부는 학교 공부와 다른 것입니다.

 어느 날, 한 여 집사가 부부싸움 후 눈이 빨개진 채 목회자를 찾아왔습니다. 목회자가 먼저 위로해준 후 자기 경험을 살려 덧붙여 말했습니다. “집사님! 남편 공부를 조금 더 해보세요. 남자가 원래 갈비뼈가 빠져서 약간 모자라서 조금만 가려운 데를 긁어주면 정신 못 차려요.” 일류 대학을 나왔다고 인생 공부까지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인도 교회 공부를 잘해서 섬김의 원리에 탁월해져야 교회생활이 즐겁습니다. 예수님 공부를 잘하면 됩니다. 믿는 것이 너무 즐거워서 취미처럼 되게 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범사에 감사하면 됩니다.

 청년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들어설 때 흔히 3가지 고민을 합니다. 첫째, 누구와 살 것인지에 대한 결혼 고민입니다. 둘째,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직업 고민입니다. 셋째, 인생을 어떻게 가치 있게 살 것인지에 대한 비전 고민입니다. 성도는 한 가지 고민이 더 필요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가치 있게 살 것인지에 대한 거룩한 비전 고민입니다. 지금까지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까?”를 생각하며 사십시오.

 부모가 자녀를 보면 어쩌다가 자기 자녀가 되었는지 자기 자녀가 되어준 것만도 고맙습니다. 또한 자녀가 “아빠! 엄마!” 하고 부르면 부모로 인정받아 기쁩니다. 게다가 한 가지를 더해주면 부모는 감격합니다. 그것은 부모님께 감사하며 “나중에 부모님을 크게 호강시켜 드려야지.”라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범사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은혜를 갚으려는 성도를 가장 기뻐하시고 그 마음의 소원을 이뤄주시고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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