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행복의 파랑새를 좇지만 행복의 파랑새는 찾지 못하고 비 맞아 떠는 참새처럼 삽니다. 그 모습은 행복의 근거를 ‘외적 소유’보다 ‘내적 존재’에서 찾으라는 도전입니다. 파스칼은 말했습니다. “어떤 것에도 놀라지 않는 것은 행복을 주고 행복을 유지시킬 수 있는 유일의 길에 가깝다.” 행복을 존재에서 찾으면 엄청난 횡재를 해도 마음이 높아지지 않고, 극한 슬픔이 와도 마음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는 행복을 찾아 방황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소설에 행복의 표상으로 부자, 귀족, 학자, 미인, 영웅, 예술가, 군인, 사제 등을 등장시켰지만 진정한 행복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돈과 성공이 행복의 근원이 아님을 깨닫고 그는 자기가 가진 돈을 행인들에게 뿌리기도 했지만 역시 행복을 발견하지 못했고, 행복의 파랑새를 향한 고뇌 끝에 마침내 자살을 기도했지만 그것도 실패했습니다. 어느 날, 톨스토이는 들을 헤매다 묵묵히 농사짓는 가난한 농부를 만났습니다. 농부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고 입술에는 연한 미소가 깃들어 있었습니다. 그때 농부의 표정에서 그토록 찾았던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발견했습니다. 행복은 무엇을 추구하다가 그것을 소유하는 것에 있지 않고 자기가 무엇을 추구할 수 있는 살아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엷은 미소 속에 자리합니다. ‘소유의 철학’으로 살면 소유할 때 느끼는 행복만큼 잃어버릴 때 느끼는 불행도 감수해야 하지만 ‘존재의 철학’으로 살면 무엇을 잃어버려도 여전히 무엇인가 소중한 것이 남았음을 생각하고 행복해합니다. 소유의 철학으로 살면 소유와 손실의 교차선상에 살면서 ‘단기 행복’에 회의를 품고 “산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다!”라고 인생을 결론짓지만 존재의 철학으로 살면 인생 자체에서 감사의 조건을 발견합니다. 삶의 목적을 ‘소유’보다 ‘존재’에 두십시오. 존재 중심적인 삶은 인색함과 상극입니다. 소유 중심적으로 주판알을 튕기며 살면 행복도 튕겨나갑니다. 소유는 존재의 덤입니다. 끝까지 남는 것은 존재입니다. 재물은 쌓으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누라고 있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 나눈 것만이 영원까지 메아리칩니다. 움켜쥔 손을 펴면 신기한 일이 생깁니다. 바로 그때 마음도 펴지고, 가슴도 펴지고, 얼굴도 펴집니다. 어부들이 바다가 주는 태고의 음성을 당연시하며 그것에 대한 감격을 잊고, 알프스 계곡의 농부들이 눈 덮인 알프스의 아름다운 장관을 당연시하며 그것에 대한 감격을 잊듯이, 많은 사람들은 가장 신비한 작품인 인생을 당연시하며 그것에 대한 감격을 잊고 있습니다. 이런 혼돈의 시대에 자기 존재에 대한 감격을 잊어버리지 않고 그 안에서 행복의 원천을 발견하는 삶은 진정 아름다운 삶입니다. (070104) ⓒ 글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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