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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노래를 불러주십시오

by 【고동엽】 2022. 12. 9.

얼마 전, 중학교 은사 선생님이 암에 걸린 소식을 듣고 의형제를 맺은 중학교 동창 7명 중에 5명이 위로차 선생님 댁에 모였습니다. 모임을 마치고 돌아올 때, 의사인 A 친구가 말했습니다. “이 목사! 필요한 거 없어? 차 한 대 사줄까? 필요한 것 있으면 꼭 말해!” 그때 옆에 있던 역시 의사인 B 친구가 말했습니다. “나중에 교회 옮기면 나도 도울게. 꼭 말해!” 그날 나는 너무 들떠서 어떻게 귀가했는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그 며칠 후, 주인과 전세협의가 잘 되지 않아 이사를 해야 했습니다. 그때부터 재정적 압박 때문에 수시로 A 친구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A에게 전화할까?” 전화하면 친구가 기쁘게 반응할 것이란 확신은 있었지만 선뜻 전화기를 들 수 없었습니다. 매일 아침 기도할 때마다 “오늘은 꼭 전화해보자!”고 다짐했지만 실천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복잡 미묘한 감정을 겪으며 무엇보다 선교사들의 심정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선교지에서 선교하다 보면 꼭 필요한 것이 있지만 마치 구걸하는 것 같아 많은 선교사들이 후원요청을 제대로 못합니다. 한 선교사는 현지인에게 맞아 두 달간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현지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치 않게 해 달라!”는 기도요청을 해왔지만 정작 시급하게 필요했던 병원비 요청을 하지 않아 큰 곤욕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선교사를 만나면 항상 먼저 말합니다. “선교사님! 필요한 것 없으세요?” 가장 복된 귀는 ‘이웃의 탄식소리에 열린 귀’입니다. 그런 귀에 하나님의 음성도 들립니다. 일전에 가난에 지친 19세 소녀가장이 자살했습니다. 아침에 신문배달하고, 낮에 약국 점원으로 일하며 6식구를 부양하던 그녀가 왜 자살했을까요? 사람은 ‘가난의 이유’만으로 자살하지 않습니다. 아마 그녀는 자신의 탄식을 들어줄 한 사람이 없었기에 자살했을 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이웃의 탄식을 들어줄 한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이웃의 탄식을 못 들을까요? 너무 바빠 정신적 여백이 없기 때문이고, 세상 소음이 그 소리들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루 중의 잠깐이라도 귀를 세상의 소음에서 해방시키고 마음을 진정시켜 자신의 심장 소리라도 들어보십시오. 그러면 이웃의 가슴 소리도 따라 들릴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들을 후에는 침묵을 끝내고 세상에 사랑과 위로를 전해주십시오. 그러면 세상의 탄식소리는 조금씩 잦아들 것입니다. 어느 날, 꾀꼬리가 풀이 죽어 있어 현자가 물었습니다. “너 왜 요새 노래가 없지?” 꾀꼬리가 불평하며 말했습니다. “개구리 소리가 하도 커서 제 소리가 소용없잖아요?” 그때 현자가 말했습니다. “네가 조용히 있으니까 개구리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거야.” 침묵은 금광석입니다. 그러나 사랑과 격려와 축복의 말은 금덩이입니다. 탄식이 있는 곳에서 희망의 노래를 불러주고 사랑의 나눔을 위해 나의 소중한 소유를 기쁘게 도려낼 때 세상의 한탄(恨歎)은 곧 찬탄(讚歎)으로 바뀔 것입니다. (061027) ⓒ 글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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