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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성령님묵상 요약(1-7편)

by 【고동엽】 2022. 12. 9.

아래 성령님 묵상 요약은 이한규 목사님의 40일 특별새벽설교 원문에서 첫 번째 설교에서 일곱 번째 설교까지 말씀을 요약한 것입니다. 원문 40편을 모두를 다 보시기를 원하면 미션퍼블릭으로 파일을 신청해주세요. (신청하시려면 이곳을 클릭하세요) 성령님묵상 요약(1-7편) 1. 성령께서 오지 않았다면(요 14:18-20) 만약 예수님이 이 땅에 오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요? 구원과 복음이 없었을 것이며, 교회와 성경도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만남도 없었을 것이며, 장례식 날은 가장 비참한 날이 되었을 것입니다. 저는 천국에 먼저 가신 아버님과 누님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설레고, 사랑하는 마음이 더 생기고, 기분이 왠지 좋고, 입에서 찬송이 흘러나옵니다. 예수님이 오지 않았다면 이 놀라운 천국소망이 가능했겠습니까? 만약 성령께서 이 땅에 오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요? 예수님이 수고스럽게 성취하셨던 일들을 충분히 맛보지 못하고 우리는 고아와 같은 처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위로자 성령님의 다시 오심’은 예수님을 이전보다 더 실제적인 위로자로 만든 복된 사건이었습니다. 2. 성령의 현존하심(요 16:5-8)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다. 성령이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왜 ‘성령의 현존’이 ‘예수님의 현존’보다 더 유익일까요? 예수님이 이 땅에 계속 계셨다면 예수님의 현존은 지엽적이고 개인적인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어디에나 계실 수 있고, 단번에 수많은 사람과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즉 성령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은혜가 확장되고 보편성을 띄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만이 아니요, ‘우리의 하나님’이 된 것이 바로 성령께서 오신 사건의 의미입니다. 이 보편적 은혜 속에서 은혜를 발견하는 사람이 정말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특별한 증거가 있어야 은혜 받았다고 합니다. ‘은혜에 눈을 뜬 사람들’은 평범한 삶을 통해서 그 이면에 흐르고 있는 은혜의 물줄기를 발견하는 사람입니다. 더 나아가 ‘은혜가 충만한 사람들’은 어려움 속에서 은혜를 발견하는 사람입니다. 3. 어머니 같으신 성령님(사 66:12-14) 성령님을 묵상하면 ‘하나님의 모성애’를 느끼게 됩니다. 성령님은 어머니처럼 우리를 낳고 우리를 부드럽게 키워 가십니다. 성령님의 가르침과 인도하심의 특징은 사려 깊은 부드러움과 인내하심에 있습니다. 강요는 성령님의 역사가 아닙니다. 성령님은 아직 받을만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진리를 우리들에게 강요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고통의 순간에 어머니처럼 우리에게 달려오십니다. 시험과 슬픔을 겪어가며 사는 인생에게 성령님의 동정과 위로는 얼마나 큰 힘이 됩니까? 때때로 성령님은 어머니처럼 채찍을 드십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방관적인 사랑’이 아닌 ‘책임적인 사랑’을 가지고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같은 성령님의 위로와 사랑을 힘입으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4. 비둘기같이 임한 성령님(요 1:29-34)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 성령님이 비둘기같이 임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공생애를 비둘기같이 평화의 사자로 보내셨습니다. 성령님께서는 독수리같이 임한 것도 아니요, 참새같이 임한 것도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독수리는 힘, 강요, 강탈을 상징합니다. 어떤 분은 성령 받았다고 하는데 독수리같이 임한 성령을 받은 것 같습니다.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르고, 적극적으로 나아가지만 그 적극성에 수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고 있습니다. 참새는 수다, 불안, 가벼움을 상징합니다. 어떤 분은 성령 받았다고 하는데 참새같이 임한 성령을 받은 것 같습니다. 교회에 가서는 “성령이여 오소서!”라고 열심히 파닥파닥 거렸는데, 집에 와서는 또 걱정과 불안에 싸여 있으며, 참새처럼 입만 살았습니다. 이제 비둘기같이 임한 성령을 받으셔서 위로, 평화, 부드러움, 온유함이 삶에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5. 성령님의 사랑(롬 15:30-33) 은혜를 아는 자에게는 은혜가 더 내립니다. 감사를 아는 자에게는 감사거리가 더 주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는 것’이 복입니다. 그리고 ‘깨닫는 것’은 복중의 복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사랑을 깊이 인식하는 것은 성령님의 사랑을 깊이 받는 최선의 길입니다. 성령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이제까지 우리들과 함께 하신 모습, 죄인을 찾아 구원하시는 모습, 우리에게 지칠 줄 모르는 관심을 표하는 모습, 우리의 잘못된 태도를 보고 근심하시는 모습 등을 통해서 성령님을 사랑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사랑은 무가치한 대상을 향한 ‘자발적 사랑’이었고, 받을 내용보다는 줄 내용을 더 따지신 ‘헌신적 사랑’이었고, 행동으로 직접 실천한 ‘의지적 사랑’이었습니다. 6. 반석에서 흐르는 물(고전 10:1-4) 출애굽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목말랐을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반석을 쳐 물을 내게 했습니다(출 17:2-7). 그리고 39년 후 똑같은 상황에서 모세에게 반석을 치지 말고 다만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기감정대로 반석을 두 번 쳤습니다. 물이 넘치게 흘렀나왔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능력입니까? 모세도 흡족했고, 백성들도 “모세는 역시 달라!” 하며 신나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믿음 없는 행위’요, ‘신성모독 행위’라고 보셨습니다(민 20:8-12). 그리고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흥분하지 마십시오. 시끄럽게 표시하지 마십시오. 반석이 갈라진 사건(십자가 사건,고전 10:4)이 이미 있었기에, 이제는 믿음을 가지고 반석에게 인격적으로 말씀하십시오. 그러면 언제든지 성령의 생수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7.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요 4:14; 7:38) 본문의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로 인한 삶은 무엇을 시사합니까? 첫째, 그런 삶은 자신의 노력으로 불가능함을 시사합니다. 둘째, 그런 삶은 환경 및 조건과 관련이 없는 활력 있는 삶을 시사합니다. 셋째, 그런 삶은 우리의 목마름을 해결하는 강력한 힘이 성령충만한 삶이라는 것을 시사합니다. 왜 영혼이 목말라 있습니까? 두 가지 주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을 아는데 그것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수치라 말합니다. 또 하나는 분명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아는데 그것을 끊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죄라 말합니다. 수치와 죄로 목말라 하는 여러분에게 지금 생수의 샘이 있습니까? ⓒ 글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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