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미국에 혼자 살면서 기억력이 급속히 떨어진 80세 노모께서 자식들의 강권으로 한국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지극히 만족해하시는 어머님에게 물었습니다. “어머님! 행복하시죠? 그런데 왜 미국에 계속 사시겠다고 하셨어요?” 어머님이 대답하셨습니다. “너희들에게 부담을 줄까 그랬지. 사실 참 외로웠어.”
어느 날, 가족 한 명이 제의했습니다. “어머님의 기억력 훈련과 한국생활 적응을 위해 대중교통을 스스로 이용하게 해보자!” 그래서 형수님이 말했습니다. “어머님! 인천의 막내 아가씨 아파트로 혼자 한번 찾아가보세요.” 어머님은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주소를 들고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물어물어 인천에 잘 도착했습니다. 그때 어머님 등 뒤에는 어머님 몰래 그림자처럼 따르며 안쓰럽게 지켜보던 형수님이 있었습니다.
미국에 수잔 앤더슨(Suzanne Anderson)이란 여인이 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눈 수술을 받다 실명했습니다. 그때부터 남편은 아내의 직장 출퇴근을 도와주었습니다. 얼마 후 남편이 말했습니다. “여보! 계속 이럴 수 없으니 내일부터는 혼자 출근해요.” 그 말에 남편에게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그때부터 그녀는 이를 악물고 혼자 출퇴근했습니다. 여러 번 넘어지며 서러워 눈물도 흘렸지만 점차 출퇴근이 익숙해졌습니다.
그렇게 보름쯤 지날 무렵, 그녀가 버스를 탔을 때 운전기사가 무심코 말했습니다. “부인은 좋겠어요. 좋은 남편을 두셔서요. 매일 한결같이 부인을 살펴주시네요.” 알고 보니 남편은 매일 아내가 버스를 타면 같이 타 뒷자리에 앉으며 아내의 출퇴근길을 말없이 등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살면서 때로 넘어짐과 서러운 눈물도 있고, 상처와 고독도 있지만 그때도 나의 등 뒤에는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내 앞에 나를 사랑하는 누군가가 없어도 내 뒤에는 그 누군가가 반드시 있습니다. 나는 그 사랑을 떠나도 그 사랑은 나를 떠나지 않습니다. 문제는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쌍둥이도 다르고 아침 해와 저녁 해도 다르지만 그 사랑은 영원히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 사랑은 내가 사랑받을만한 존재가 되었을 때만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 사랑은 내가 배반해도 변함없고, 내가 실패해도 변함없고, 내가 못난 모습을 보여도 변함없습니다. 그 사랑을 배경으로 내일의 지평을 담대하게 열어 가지 않겠습니까? 왜 그렇게 두려워하십니까? 왜 그렇게 염려하십니까?
이미 내 삶의 곳곳에는 그 사랑의 손길이 넘쳐있습니다. 돌아보면 보입니다. 돌아보아도 안 보일 때는 돌이키면 보입니다. 마음과 생각을 돌이키면 이미 내 앞에 와서 환하게 미소 짓고 있는 ‘내 등 뒤의 사랑’이 보일 것입니다. 내가 그 사랑을 향해 한 걸음 내딛으면 그 사랑은 나를 향해 열 걸음 달려올 것입니다. (061101)
ⓒ 글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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