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처럼 행동하지 마십시오
요한복음 14장 16-20절
<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지 않았다면 >
오늘 본문 18절은 말합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만약 예수님이 이 땅에 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에게는 구원과 참된 위로와 기쁨과 행복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도 없고, 성경도 구약만 있게 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진정한 희망을 줄 것이 없게 되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영광스러운 부활의 메시지와 하늘에 대한 소망의 메시지도 전할 수 없고, 오직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영원한 이별’의 메시지를 전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의 장례식 날은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날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제 저도 나이가 들다 보니까 서서히 사랑하는 사람들이 제 곁을 떠나는 것을 목격합니다. 8년 전에는 누님 한 분이 천국으로 떠났고, 3년 전에는 아버님도 천국으로 떠났습니다. 이제 이 땅에서는 다시 볼 수 없지만 한은 없습니다. 하나님 곁에 빨리 두고 싶었던 하나님의 사랑과 배려로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가셨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합니다. 그리고 천국에서 만날 날을 생각하면 마음이 설레고, 특별한 이유 없이 기분이 좋고 입에서는 찬송이 흘러나옵니다.
저는 가까운 사람이 천국으로 먼저 가면 가장 많이 부르는 찬송이 293장입니다. “천국에서 만나 보자 그날 아침 거기서/ 순례자여 예비하라 늦어지지 않도록/ 만나 보자 만나 보자 저기 뵈는 저 천국 문에서/ 만나 보자 만나 보자 그날 아침 그 문에서 만나자.”
만약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지 않았다면 이 놀라운 천국 소망이 가능했겠습니까? 몇 년 전에 고등학교 동창이 아주 건강하게 잘 살다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그때 불교식으로 입관 예식을 하면서 그의 어머니가 “아이고, 내 아들을 젊은 날에 보내서 아까워서 어떡해?”하고 계속 통곡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천국 소망이 없는 그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 모습이 너무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위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죽은 친구의 머리를 양손으로 붙잡고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친구도 한때 교회를 다녔는데 어떻게 됩니까? 지금 이 친구는 죽었지만 그의 가족이라도 하루빨리 예수님을 알게 하소서!”
그 불신자의 입관 예식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삶이 얼마나 비참한 삶이 될 수 있는지를 절실하게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예수님이 없는 삶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도 아무런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이 얼마나 한없이 감사하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 성령님이 다시 오시지 않았다면 >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 곁에 계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요한복음 14-16장의 유언 설교를 하시면서 제자들의 곁을 떠날 것을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 되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떠나시면서 오늘 본문 16절 말씀에서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뒤를 이어 성령님이 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때에는 ‘위로자’와 ‘영혼의 상담자’이신 보혜사도 없게 되었을 것이고, ‘참된 위로’도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구주께서 그토록 많은 대가를 통해서 성취하셨던 일들이 결코 완벽하게 마무리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수많은 축복들을 잃어버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즉 죄에 대한 인식, 회개, 주님에 대한 믿음, 죄 사함의 확신, 양심의 평화,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는 양자의 영(Spirit of adoption), 주님에 대한 계시, 죄의 권세를 벗어나 거룩하게 되는 역사, 기도를 가르쳐주는 중보의 영, 능력 있는 사역을 위해 주어지는 기름 부으심, 교회 및 성도의 삶에 주어지는 초자연적인 능력들도 다 사라질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만약 성령께서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수많은 것들이 결핍되었을 것이며, 더불어 우리 마음은 정말로 고아와 같은 마음이 되었을 것입니다. 고아란 부모, 가정, 그리고 부모로부터의 모든 도움과 사랑과 관심을 소유했다가 잃어버린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이 이 땅에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정말 서글픈 인생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듣는 제자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은 그들에게 있어서 선생이었고, 안내자였고, 친구였고, 영적인 어머니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야 했는데, 그것은 제자들에게 고아와 같이 버려진 느낌을 주는 충격적인 일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영적 지식은 여전히 어두운 상태였고, 그들의 믿음은 여전히 연약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을 떠나신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들은 극도로 불안을 느꼈을 것입니다. 예수님 한 분만 믿고 고향을 떠나, 일터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왔는데 주님이 떠나시면 이제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합니까? 아마 그들은 늑대의 소굴 속에 있는 양이나 광야에 버려진 고아처럼 “어떻게 이 세상을 홀로 살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을 그냥 버려두고 어떻게 주님이 대책 없이 떠나시겠습니까? 그때 예수님은 제자들의 근심 어린 표정과 떨어지는 눈물을 보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속히 그들에게 확신을 심어 주시기 위해 본문 18절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곧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로 오리라”
예수님이 떠나시게 된다면 어떻게 그들에게 다시 올 수 있습니까? 그러나 곧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분의 뒤를 이을 성령님에 대해서 설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대신해서 제자들과 영원히 거하게 될 그 성령님은 또 다른 형태로 나타난 예수님의 실상이며, 또한 성령님께서는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행하셨을 때와 똑같이, 그러나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더 나은 방식으로 오실 존재라는 사실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본문 20절 말씀에서 덧붙여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이지만 성령님은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대로라면 ‘위로자 성령님이 다시 오신 것’은 예수님을 이전보다 더 실제적인 위로자로 만든 사건이라는 뜻입니다.
< 고아처럼 살지 마십시오 >
예수님의 주된 사역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한 선교사역이었다면 성령님의 주된 사역은 위로와 평안과 능력을 주시기 위한 목회사역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예수님은 위로자 성령의 오심을 통해서 제자들의 마음에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고, 자신과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제자들에게 임하여 그들과 함께 거하겠다는 말씀을 통해서 불안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확신을 심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현존하심’은 영원한 아버지의 계시자로 우리에게 나타나신 ‘주님의 현존하심’과 동일한 것입니다.
사람들의 심령에 위로자 성령이 오신 것은 예수님 자신이 ‘모든 것을 만족케 하는 우리의 영원히 현존하는 상담자 및 아버지’로서 우리 안에 임재하시고 거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상당히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현존 앞에서 아직도 이방인처럼 지내고 마치 진짜 고아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끔 큰 문제를 만나고 삶이 어려우면 고아와 같이 버려진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연약한 감정에 우리 자신을 내맡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성령 충만한 삶으로 부르고 계시고, ‘성령의 임재’를 통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귀한 은총들을 주기 위해서 우리 앞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살면서 힘들고 지치고 피곤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누군가의 용기와 위로와 격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참된 위로자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 문제입니다. 그런 현실이 많은 사람들을 더욱 낙담하게 만듭니다. 이해가 됩니다. 자기도 약한데 누구를 위로하겠습니까? 이 세상에는 남의 짐을 지겠다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성도들도 이웃을 내 몸과 같은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다 알지만 말씀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서로 서로에게 위로자가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명을 온전히 이루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위로가 없다고 해도 너무 실망할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든든한 위로자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주님을 구주로 믿고 고백한 후부터 한번도 우리를 떠나신 적이 없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항상 성령님과의 깊은 교제 가운데 사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 이한규목사(분당 샛별교회)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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