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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충만한 사람의 5대 특징

by 【고동엽】 2022. 12. 9.

< 성령에 의해 길들여지십시오 >

1984년 저는 은혜 체험을 통해 그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새벽예배부터 교회의 모든 예배는 다 참석했고, 항상 거룩한 생각만 했고, 버스를 타도 길을 가도 항상 기도와 찬송을 입에 담았습니다. 또한 성경도 엄청나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은혜 체험과 동시에 무서운 시험도 왔습니다. 그것은 “나만큼 신앙생활을 잘하고, 나만큼 성경 많이 읽고, 나만큼 기도 많이 하는 영성 있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는 교만의 시험이었습니다. 평신도면서 새벽기도회를 거의 빠지지 않으며 아침마다 간절히 기도했고, 수시로 금식을 했고, 그때 당시에 약 10년 동안 훈련된 속독과 집중력으로 성경을 거의 1-2주에 한번씩 독파했으니 부목사와 전도사가 우습게 보였습니다.

가끔 그때 생각을 하면 그때 당시의 나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우습게 보였을까 하는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사람이 제일 부끄럽게 될 때는 내 신앙이 최고라고 착각할 때입니다. 또한 사람은 스스로 가장 성령 충만하다고 자부할 때 가장 성령으로부터 멀어질 수가 있습니다. 영적 교만은 마귀가 가장 애용하는 교만 중의 교만입니다. 우리는 다른 교만보다 영적 교만을 특별히 더 주의해야 합니다.

요새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성령 받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성령 받았다!”는 것은 성령의 능력을 휘두른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 생각과 말, 내 시간과 물질의 사용 등 내 삶의 모든 것이 성령님의 지배 하에 들어가 주님에 의해 길들여진 삶을 뜻합니다. 여기에서 ‘길들여졌다!’는 말은 ‘온유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사람에게 반드시 온유한 모습이 나타납니다.

부드러운 땅에서 열매가 많이 생기듯이 하나님께서는 온유한 사람에게 복을 내려주십니다. 성경에 축복 받은 사람들은 다 온유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온유했고, 이삭도 온유했고, 모세도 온유했습니다. 우리는 성령님에 의해 잘 길들여지고, 날마다 그렇게 길들여진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떤 분은 몇 년 전에 성령 충만을 받았던 얘기, 옛날에 병 나았던 얘기만 합니다. 그러나 옛날 간증 얘기를 많이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오늘의 간증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 18절 말씀에서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현재 명령형으로 말한 것은 매일 매 순간 성령 충만을 받아야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매일 매 순간 성령님께 길들여질 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더욱 넘치게 될 것입니다.

< 성령 충만한 사람 >

성령 충만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말할까요? 본문은 성령 충만한 사람의 모습을 5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1. 시간을 지혜롭게 쓰는 모습

본문 15-16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이 구절에서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시간을 아끼라!”는 말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이란 시간의 청지기 의식을 가지고 시간을 지혜롭게 잘 쓸 줄 아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돈 아낄 줄은 아는데 시간 아낄 줄은 모릅니다. 그러나 사실 돈보다 시간이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없어진 돈은 다시 벌 수 있지만 흘러간 시간은 다시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간 낭비는 돈 낭비보다 더 무서운 것입니다. 어떤 분은 성공의 90% 이상이 시간 관리에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시간 관리가 중요합니다.

어느 날, 한 가난한 어부가 밤에 바닷가에서 돌멩이 자루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배를 타고 고기를 잡는데 고기가 잘 잡히지 않고 무료해서 자루의 돌멩이를 하나씩 바다에 던졌습니다. 점차 동이 텄습니다. 이제 마지막 남은 돌 하나를 던지려고 하는데 그때 햇빛에 그 돌이 반사되어 빛났습니다. 알고 보니 자기가 던진 돌이 보통 돌이 아니고 보석이었습니다. 그는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이미 끝난 일이었습니다.

이 얘기에서 어부가 던지는 보석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뜻합니다. 그 시간을 다 허비하고 나서 나중에 “내게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이라고 땅을 치고 후회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시간을 소중하고 지혜롭게 쓰지 못하는 사람은 겉모습이 아무리 성령 충만한 모습이라도 성령 충만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2. 주의 뜻을 온전히 따르는 모습

본문 17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가장 중요한 시간관리는 주의 뜻을 이해하고 그 뜻대로 시간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시간을 많이 들여 노력하는 것’보다 ‘주의 뜻대로 방향을 바로 잡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주의 뜻입니까? 가끔 보면 “성령님이 지시하셨다”고 하면서 이상하게 주의 뜻을 해석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느 날, 선교를 작정한 영성이 깊은 사람이 어느 나라로 갈지 고민하는데 마침 시내에 나갔다가 필리핀 대사관 앞에서 차가 막혀서 1시간 이상 지체되었습니다. 그때 그분이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필리핀으로 선교를 가라는 하나님의 뜻이구나!”하고 필리핀으로 선교를 떠났다고 합니다. 그것은 신령한 모습이 아니라 유치한 모습입니다. 요새는 일반 평신도들도 그런 신앙이 잘못이라는 것을 압니다.

어느 날, 한 여인이 신문에서 “최신의 보잉 747기를 타고 성지순례를 가세요!”라고 광고를 보았습니다. 그녀는 가고 싶었지만 입시생 자녀를 두고 떠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 문제를 위해 늦게까지 기도하다가 다음날 아침 눈을 딱 떴는데 디지털시계가 7시 47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그 숫자를 보면서 그 여인은 “이것은 보잉 747기로 성지순례 갔다 오라는 하나님의 뜻이구나!”라고 받아들이고 성지순례를 갔다고 합니다. 그런 신앙은 바른 신앙이 아니고 미신입니다.

요새 정 목사님이 새벽기도 시간이 아주 부담이 된다고 합니다. 왜 그런가 이유를 들어보니까 이해가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지금 4월에 사모님을 잃고 아직도 이전의 사모님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데 어느 날, 교회의 한 여자 분이 목사님과 결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프러포즈를 했습니다. 그 다음부터 새벽마다 와서 목사님 바로 앞에서 말씀을 듣겠다고 앉아 있으니까 너무 부담이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팔아서 프러포즈 하는 것을 무수히 봤지만 이제까지 아직 한번도 결혼에 성공한 예를 보지 못했습니다. 요새 미신적인 신앙이 많이 없어졌지만 아직도 하나님의 뜻을 자기 멋대로 파는 사람들이 가끔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내가 팔아서 영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 뜻대로 온전히 실천하며 살라고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마음을 열면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가장 기초적인 틀이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태복음 6장 33절에 나오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과 누가복음 13장 24절 말씀에 나오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말씀입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뜻과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십자가를 지려는 삶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를 지고 살려고 하면 그에게 화려한 능력과 은사는 없어도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3. 남에게 기쁨을 전해주는 모습

본문 19절 말씀을 보십시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이 말씀은 단순히 찬송을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찬송을 할 때 마음을 다해 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이 말씀에서 아주 중요한 포인트는 “서로 화답하며”라는 말씀에 있습니다. 그것은 찬송을 통해 서로 기쁨을 전해주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실망한 이웃에게 격려의 말을 해주고, 긍정적인 말과 희망을 주는 말을 해주는 것도 일종의 찬양입니다. 그처럼 남을 기쁘게 하는 말을 많이 하고 좋은 안색을 많이 해서 분위기를 밝게 해주는 사람이 축복도 많이 받고 행복도 얻게 됩니다.

어느 날, 아이젠하워 장군이 장병들 앞에서 연설하고 강단을 내려오다가 그만 빗물에 미끄러져 진흙탕에 넘어졌습니다. 참모들이 주변 청소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무서운 질책이 있을 줄 알고 불안에 떨었습니다. 그때 아이젠하워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다시 강단으로 올라가 말했습니다. “여러분 재미있었습니까? 재미있다면 다시 한번 더 넘어질까요?” 그 얘기를 듣고 그곳 분위기가 밝아졌고 군의 사기도 높아졌다고 합니다.

성공한 사람이 되려면 먼저 입술부터 성공해야 합니다. 남을 기쁘게 해주고 편안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살면서 누구나 숱한 고난을 만나기에 다 격려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서로 힘써 격려해주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입술의 헌신이 손길의 헌신으로 발전해서 선교와 구제에는 항상 최선을 다해 임해야 합니다. 그처럼 서로 좋은 말과 안색과 손길과 찬송으로 화답하는 성령 충만한 사람이 많아질 때 그 공동체는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4. 범사에 감사하는 모습

본문 20절 말씀을 보십시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성령 충만의 가장 뚜렷한 특징 중의 하나는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인지라 어떤 일을 당할 때는 잠깐 동안은 불평도 나오고, 원망도 나오고, 섭섭한 생각도 들지만 그 일이 지나고 나면 몇 시간도 되지 않아서 불평했던 것을 후회하고 금방 감사거리를 발견하는 사람은 어느 누구보다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감사의 축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감사는 모든 관계를 견고하게 만들어줍니다. 감사는 모든 것을 아름답게 보이게 만듭니다. 계속 감사하면 사고와 가치관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도 커집니다.

감사는 최고의 영적 화장품입니다. 감사하면 얼굴이 예뻐집니다. 감사는 최고의 영적 자본입니다. 감사하면 성공합니다. 감사는 최고의 영적 교육입니다. 불평하면 인생이 퇴보하고 계속 미성숙한 상태로 있게 되지만 감사하면 인생이 전진하고 점점 성숙하게 됩니다. 감사는 최고의 영적 보약입니다. 감사하면 젊어집니다. 감사는 최고의 영적 치료약입니다. 감사하면 병도 치유되고 건강도 되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감사는 최고의 영적 항암제입니다. 감사하면 암 세포도 꼼짝 못하고 죽습니다. 감사는 최고의 영적 진통제입니다. 감사하면 고통이 사라집니다. 감사는 최고의 영적 수면제입니다. 감사하면 불면증도 사라집니다. 감사는 최고의 영적 방부제입니다. 감사하면 영혼이 부패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면 마귀와 두려움이 틈을 탈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진짜 부자가 있습니다. 바로 범사에 감사하는 자입니다. 재벌이라도 불평하며 살면 영적인 가난뱅이이고 가난해도 감사하며 살면 영적인 부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축복받은 사람은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불평하면 받은 것도 점차 사라지지만 감사하면 점차 더 받게 됩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때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것입니다. 바로 감사입니다. 하나님은 어려울 때 감사하는 모습을 제일로 보고 싶어 하십니다.

사실 어려운 일이 있어도 성도는 감사할 조건이 충분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구원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구원에는 거의 모든 축복이 다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최악으로 어려워도 그런 때일수록 더욱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면 아무리 어려운 문제가 있어도 감사하는 그 시점부터 그 문제는 해결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최악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감사함으로 승리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감사하는 신앙을 무엇보다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자녀를 기를 때 언제 가장 기쁩니까? 자녀가 감사한 마음을 가질 때입니다. 성 프랜시스는 ‘태양의 노래’라는 글에서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마지막으로는 죽음을 주신 것에도 감사했습니다. 그처럼 죽음까지도 감사의 노래로 만드는 사람이 진정으로 성령 충만한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하나님께 최고로 영광 돌리는 가장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5. 온유하고 겸손한 모습

본문 21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이 말씀을 하고 바로 이어서 22-33절까지 아내와 남편이 피차 복종하고 사랑하는 원리를 강조하고 있고, 6장으로 가면 1-4절 말씀에서 부모와 자녀들이 서로 사랑하고 받아들이라는 말씀을 하고, 5-9절에서는 종들과 상전들이 서로 이해하고 받아주라는 말씀을 합니다. 그 말은 하나님께서 곁에 두신 사람과 인간관계를 아름답게 잘하는 사람이 성령 충만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인간관계를 잘하려고 죽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무엇이 필요합니까? 본문 21절 말씀처럼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피차 복종해야 합니다. 주님은 어떤 마음을 가졌습니까? 주님은 마태복음 11장 29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성령 충만하다는 것은 주님의 마음으로 가득 찼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대표적인 2대 성품인 온유함과 겸손함이 없으면 결코 성령 충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아무리 죽었다가 살아난 기적이 있고, 성령의 9가지 은사를 다 가지고 있는 것 같고,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방언도 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몸짓으로 방무를 할지라도 성령 충만의 가장 결정적인 증거인 온유하고 겸손함이 없는 사람은 결코 성령 충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유함과 겸손함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내 곁에 두게 하신 사람을 최선을 다해 섬겨주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0장 28절 말씀을 보면 “주님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래서 주님의 마음이 충만하고 성령 충만하면 다른 사람을 잘 섬겨줍니다. 반대로 사단의 영이 충만하면 섬김을 받으려고만 하고, 섬겨주지 않는 사람에 대해 화가 나고 섭섭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 충만함을 받아서 섬겨주지 않는 것에 대해 결코 섭섭함을 가지지 말고, 더 나아가 섬겨주는 자리까지 나가야 합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었지만 겸손하게 우리를 섬겨주셨습니다. 그처럼 우리는 어떤 성취를 해도 겸손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인간의 성취가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한번 외면하시면 순식간에 망하고 죽게 됩니다. 그런 모습으로 결코 마음이 높아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늘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자연 앞에서 겸손하고, 우리보다 못한 사람 앞에서도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실패의 최고봉은 겸손하지 못한 것입니다. 반대로 성공의 최고봉은 끝까지 겸손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지만, 겸손한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스코틀랜드에 존 케인즈라는 유명한 교육자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교육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기차를 타고 몇 시간 후에 목적지에 도달했습니다. 기차를 내리자 수많은 사람들이 위대한 교육자의 방문을 축하하며 그에게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그때 케인즈는 생각했습니다. “누군가 유명한 사람이 이 기차에 탔구나!” 그리고 얼른 다른 승객 뒤로 숨어서 자신도 열렬히 박수를 쳤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환영객 대표가 뛰어와 묻습니다. “선생님! 지금 누구에게 박수를 치세요?” 케인즈가 대답했습니다. “지금 누군가 훌륭한 사람이 이곳을 방문한 것 같아서 나도 박수를 치는 거예요.” 존 케인즈가 그토록 훌륭한 교육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의 겸손한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 끝까지 겸손함을 잃지 마십시오 >

왜 성령 충만을 마술적인 능력을 가지는 것으로 오해합니까? 그것도 겸손하지 못한 마음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이란 어떤 능력이나 은사를 나타내는 삶이 아니라 내 뜻과 의지를 온전히 주님께 맡기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온유함과 겸손함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겸손하면 겸손할수록 더 복을 받습니다.

행복한 삶의 가장 큰 장애는 환경이 아니라 자신입니다.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보지 못하는 마음이 높아지고 욕심이 많아진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겸손함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겸손한 사람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처럼 겸손할수록 하나님의 은혜도 넘치게 될 것이고 성령 충만도 얻게 될 것입니다.

가끔 영성이 있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 성령 체험을 했어?” 그런 사람들은 뒤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은 성령 체험을 하지 않을 것 같아요.” 마치 과거에 성령 체험 한번 하면 평생 동안 최고의 신앙과 영성을 가지게 되는 줄 압니다.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치고 현재 성령 체험을 하고 있는 사람은 저는 거의 보질 못했습니다.

성령 체험은 한번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매일 성령 체험을 해야 합니다. 성령 체험과 영적 교만은 완전히 상극입니다. 그래서 현재 진짜 성령 체험을 하고 있는 사람은 “당신 성령 체험 했어!”라고 결코 교만한 모습으로 묻지 않고, 예수님처럼 낮은 곳에 내려가 남을 섬겨주기를 힘쓸 것이고, 항상 자기의 부족함을 인식하고 그런 부족한 자신을 붙잡아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면서 범사에 감사하며 살 것입니다.

우리는 특이하고 기적적인 삶을 살아야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결코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가끔 기적적인 은혜도 있으면 감사합니다. 그러나 기적적인 은혜가 없어도 우리는 얼마든지 성령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실 기적이 있을 때 감사하는 사람보다 기적이 없을 때 감사하는 사람이 더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일상적인 삶이 성령 충만한 삶을 보여줄 가장 위대한 현장입니다.

얼마 전에 인터넷으로 문자 보내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때 아내에게 장난으로 문자를 보냈습니다. “항상 웃으세요! 남편 올림!” 그날 집에 들어가니까 아내가 저에게 유머를 섞어서 핀잔을 주었습니다. “‘남편 올림!’이라고요? 평소에 한번 올려줘 봐요!” 물론 웃자고 한 말이지만 우리는 평소의 일상적인 삶에서 하나님을 최대한 높여드리고 주님의 뜻을 따르며 성령 충만한 삶이 나타나기를 힘써야 합니다.

과거에 체험 몇 번 한 것 가지고 신앙이 높은 척 하는 것은 죽는 길입니다. 사실 그런 모습은 시간이 지나면 우리를 가장 수치스럽게 만드는 길입니다. 남이 부끄럽게 만들기 전에 나 자신이 부끄러워서 견딜 수 없습니다. 저는 84년 은혜 체험 후 몇 년 동안 교만의 시험을 겪고 나서 영성이 있는 척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와 수치와 허물이 되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신앙 자랑과 영성 자랑은 영혼의 치명적인 암이고, 성령 충만과 진정한 축복을 가장 방해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일상생활에서 묵묵히 헌신하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오늘도 주신 말씀처럼, 시간을 지혜롭게 쓰고, 주의 뜻을 온전히 따르고, 찬송과 기쁨을 전해주고, 범사에 감사하며, 온유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복된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 글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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