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곽선희 목사 설교

온전한 인내의 사람! (약 1:2-8)

by 【고동엽】 2024. 3. 28.
목차로 돌아가기

온전한 인내의 사람! (약 1:2-8)

 

테크노 가수 이정현이 불러서 아 주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는 '바꿔'라 고 하는 노래가 있습
니다. 그 노랫 말입니다.
"모두 제정신이 아니야/ 다들 미쳐가고만 있어/어느 누굴 믿 어 어찌 믿어 더는 못 믿어/누
가 누 굴 욕하는 거야/그러는 넌 얼마나 깨끗해/너나 할 것 없이 세상 속의 속물들이야/바
꿔 바꿔 바꿔 모든 걸 다 바꿔/사랑도 다 바꿔 거짓도 다 바꿔 세상을 다 바꿔"
노래가 너무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바꿔'라는 소리밖에 들린 게 없는데 그 가사내 용을
알고 나면 이런 겁니다. 참 절묘하게 이 세계를 풍자하는 노래 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에
빌게 이츠라고 하는 유명한 분, 여러분 다 아십니다마는 그가 '생각의 속도' 라고 하는 책을
써서 작년에 세계적 으로 많이 읽히워졌던 때가 있습니 다. 그 책 속에서 말합니다. 1980 년
대를 퀄리티(Quality)의 시대라고 합니다. 1990년대 가리켜서 리엔지 니어링
(Re-engineering)시대라고 했 습니다. 2000년대를 내다보면서 스 피드(Speed)시대라고 했습
니다. 속 도의 시대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변화의 속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변화에 속도를 가합니다. 이 변화속도, 모든 것이 빠르게 변 하고 있는데 문제는 생각의 속
도입 니다. 사물과 세상은 빨리 변하는 데 내 생각의 속도가 그것을 따라가 지 못하면 여기
서 문제가 생기는 것 이올시다. 여기는 안정이 없는 것 입니다. 불안하게 되고, 절망하게 됩
니다. 그런고로 생각에 속도를 가해야 한다는 이론입니다. 그것만 이 아니지요. 생각컨데 인
식의 속 도가 문제고, 조화의 속도가 문제고 요, 다 소화하고 균형을 잡아야 되 겠는데 이
균형을 잡지 못하고 그대 로 달려가면 이거 어떻게 되는 겁니 까? 이 발란스를 잃어버리면
안되 거든요. 이 철학의 속도가 중요합 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되는 것 은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방향입니다. 이렇게 변해나갈 때 어느 방향으론가 가고 있단 말이요. 어느
방향으론가 가고 있는데 도대 체 어디로 가는 거냐 하는 것이 문 제고, 변화의 목적이 문제
고 변화의 동기가 문제입니다. 변화의 동기가 미래냐, 과거냐, 현재냐 하는 겁니 다. 보다 더
앞에 있는 밝은 미래 를 바라보며 우리가 급하게 변화하 고 있는 거냐, 아니면 과거에 몰려
서 그저 막연하게 아무 것도 모르고 변화는 다가오는 거냐, 아니면 현재 라고 하는 것이 지
겨워서 '에라, 모 르겠다 아무렇게나 바꿔보자. 못 살겠다 바꿔보자.' 뭐 그런 얘기냐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건 문제 지요. 그런고로 최종목표 궁극적 가치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
니다. 변화에 속도가 가해진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에 여기에 미치지 못한 다. 우리의 철학
이 이것을 따라잡 지 못한다 할 때에 우리의 도덕이 이걸 함께 가지 못하고 소화하지 못 할
때 세상은 아주 망가지고 마는 겁니다. 인생도 다 망가지고 맙니 다. 오늘 본문 성경에는 '
인내를 온 전히 이루라.'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대단히 중요한 오늘 이 세대를 향한 메시지입
니다. 큰 변화, 속도가 가 해진 무서운 변화 속에서 나는 무엇 을 생각하고 있느냐. 이 변하
는 세 대의 속도와 함께 나는 어느 정도의 속도로 생각을 변화시키고 있느냐. 이제 그 변화
의 속도와 생각의 속도 가 일치하게 될 때 거기에 안정이 있는 것이올시다. 그러면 내 마음
은 어디에 있는 겁니까? 여러분 생 각해보세요. 자동차가 달립니다. 내가 서있을 때 보면 자
동차가 급하 게 달립니다. 그러나 내가 차를 타 고 빨리 가는 차와 똑같은 속도로 가면은
두 차 사이에 균형이 이루어 집니다. 전 하나 재미있는 걸 하나 늘 느낍니다. 내가 운전을
할 때는 내가 모는 차의 속도와 내 생각의 속도가 같이 가기 때문에 아무리 빨 리 가도 빨
리 간다고 느끼질 않습니 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를 타면 '이거 안되
겠는 데' 좀 천천히 가라고. 그게 불안해 진단 말이에요. 그런데 제가 운전 대를 잡으면 안
그렇습니다. 바로 그것이 생각의 속도란 말입니다. 가장 큰 성공의 비결은 안정의 비결 은
변화를 당연한 것으로 수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변화와 함께 내 생각의 속도에 가속을 붙
이는 겁니 다.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대처하 고 어엿하게 때로는 고요하게 넉넉 하게 수용
할 수 있는 여유가 우리에 게 있어야 합니다. 인내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반항이나 저항이
나 혹 은 거부라든가 혹은 증오라든가 혹 은 굴복한다는 그런 얘기가 아닙니 다. 여기 인내
하고 하는 말, 휴퍼모 네라고 하는 말은 어엿하게 대처한 다, 넉넉하게 수용한다, 그리고 사
랑 으로 대한다, 이것이 인내올시다.
자 이제, 우리는 인내를 생각하면 서 먼저 하나님의 인내를 생각합니 다. 인내의 뿌리가 하
나님께 있습 니다. 하나님의 인내를 우리는 성 경 전체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특 별히 예수
님께서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하신 가장 중요한 비유, 탕자의 비유를 보십시오. 아버지 하나
님은 이렇게 참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탕자가 탕자 됩니다. 그 탕자 됨을 참아주십니다. 그
가 집을 나갑니다. 재산을 나누어주면서 참아주십니다. 그가 가서 어떻게 될 걸 뻔히 알고
있습니다. 그 변화를 참아주십니다. 그가 깨닫고 아버지에게로 돌아올 때에 그를 영접해 주
십니다. 아버 지의 인내,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인내를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계시의 말씀
입니다. 여러분 그 좋은 아버 지를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넉넉 합니까, 얼마나 어엿하게 인
내하셨 습니까. 다시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인내를 배우라고. 히브 리 12장에 보면
역력히 말씀하십니 다. 그리스도의 인내는 두 가지입 니다. 하나는 '십자가를 참으사'그 랬
습니다. 십자가를 참으시는 예수 를 보세요. 그 모순과 부조리한 그 십자가, 그리고 빌라도
법정에서 말 이 없으신 예수. 빌라도가 뭐라고 하든 제사장이 뭐라고 하든 예수님 은 벌써
뜻하신 바가 있어서 조용하 게 참으시고 오히려 저들을 불쌍히 여기고 있습니다. 십자가상
에서까 지 자기를 죽이는 자들의 운명을 생 각하며 기도하고 계십니다. 이 인 애하심. 여기
에 그리스도의 인내가 있어요. 이것을 본받으라. 또 있어 요. 그것은 죄인들이 거역한 자, 죄
인들의 거역함을 참으시는 예수를 생각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합니다.
그래도 멀리서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렇게 도 사랑하는 제자들이 지금 본 직책 을 버리고
갈릴리에 물고기 잡으러 갔습니다. 그러나 찾아가서 아무 말씀도 없습니다. 조반을 대접하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의 인내가 있습
니다. 우리 의 부족함, 우리의 허물, 우리의 나 약함을 다 참아주셔서 엄청나게 참 아주셔서
오늘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겁니다. 그의 인애하심, 깊이 깊이 생각해야합니다.
다시 본문 성경은 두 가지 비유를 들어 말합니다. 농부의 인내를 배 우라. 야고보서에서는 '
농부의 인내 를 배우라', 농부가 씨를 뿌리고 가 을을 기다리는 것처럼, 또 다시 야 고보서
에서는 말합니다. '욥의 인내 를 배우라 그리고 본을 삼으라', 욥 기를 우리가 압니다. 물질
과 가정 과 재산과 건강과 의를 다 잃어버렸 어요. 얼마나 고생을 합니까? 이 많은 고생을
치르나 그러나 그는 하 나님이 주신 약속을 믿고 꾸준히 기 다립니다. 인내합니다. 욥의 인
내. 그래서 그 결말을 봅니다. 욥은 다 시 큰 축복을 받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욥의 인내
를 배우고, 그 결 말을 보고, 그를 따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믿음 없는 인내는 고통입니
다. 소망이 없는 인내는 절망입니 다. 결국은 믿음과 소망, 이것이 그 속에 있을 때 넉넉하
게 어엿하게 참 아나갈 수 있는 것이올시다.
오늘 본문 성경에서 인내의 지혜 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참 을 것이냐고요. 먼저는
시련의 원 인이 나 자신에게 있음을 알아야 합 니다. 오늘 어려운 일 당할 때 이 이유가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먼 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미국에 아주 저명한 정신과 의사인 스코
트 팩(M. Scott Peck)이라고 하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쓴 '더 로드 레스 트레블드(The
Road Less Traveled)'라고 하는 책이 있는데요 '아직도 가야할 길' 그렇게 번역이 됩니다.
이 책에서 많은 정신병자 들을 치료하면서 정신병이 왜 걸렸 을까? 또 어떻게 해야 정신병
자가 나았나? 어디서부터 치료가 되기 시작하나? 그의 많은 경험과 지식 으로 이렇게 요약
해서 말해줍니다. 맨 먼저 중요한 것은 책임이 나에게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되면 그때부터
벌써 50%는 병이 낫는답니다. 내 불행의 원인이 남에게 있다고, 세상 에 있다고, 남을 원망
하는 동안은 절대로 병이 낫지 않습니다. 이건 구제불능입니다. 그걸 알아야합니 다. 애당초
정신병 걸린 이유도 바 로 여기에 있는 겁니다. 이 불행의 원인이 나 외에 다른 데 있다고
생 각하면서부터 병에 걸리는 겁니다. 억울하고 분해서. 그러나 '이것이 나 자신의 문제다'
라고 생각하는 순 간부터 벌써 치료가 되기 시작을 합 니다. 그걸 말하고 그걸 설득하는 데
그렇게 어려운 시간이 걸립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가 이 고통은 나 에게 필요한 것이다. 내
가 당하는 고통은 내게 꼭 있어야 하는 것이 다. 나의 인간을 위하여, 나의 생각 을 위하여,
나의 철학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다. 그 다음에는 이 시 련은 유익한 것이다. 이걸 긍정적
으로 대하게 되는 것, 이것을 통해 서 발전하고, 이것을 통해서 나는 새로운 궤도의 인간으
로 살아가게 된다―사건 앞에 진실해지고, 그리 고 삶의 균형을 잡게 됩니다. 그것 은 자기
가 당한 지금 어려움에 몰두 하지 아니하고 좀더 멀리 떠나서 현 실을 객관적으로 보면서
마음의 균 형을 잡게될 때 치유는 가능하게 되 더라, 하는 얘기입니다. 다시 말씀 합니다마
는 '시련의 원인이 나 자신 에게 있는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인내의 시작입니다. 또
한가 지는 '믿음의 시련이'라고 말하고 있 습니다. 그 초점을 믿음에 맞추어 야 합니다. 믿
음을 가지게 하고, 믿 음을 순수하게 하고, 믿음을 온전케 합니다. 그것이 시련이 있는 이유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에서 40년을 헤맵니다. 왜? 하나님께서 믿음
을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만나를 일년 분을 한꺼 번에 주지 아니하시고 매일매일 주 십니다.
아침마다 거둬들여서 식사 하게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성경, 신명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일용 할 양식을 통해서 하나님을 의지하 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하나 님만 의지하고
시간시간 매일매일 의지하게 하기 위해서 이 시련을 주 셨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깊이 생
각해야합니다. 믿음, 하나님께 향한 믿음을 주시기 위하여. 자,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때때
로 물질이 중 요하고, 명예가 중요하고, 건강이 중 요하지만 좀더 달관된 세계에서 생 각을
해보십시오.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면은 오직 믿음만 중요합니 다. 깨끗한 믿음, 하나님을 의
지하 는 순수한 믿음, 하나님은 그것을 주시려고 하는 거예요. 이게 시련 이 있어야 하는 이
유입니다. 그걸 인정해야 하고, 또 한가지는 이 시 련은 시련이지 시험이 아니라는 겁 니다.
같은 개념같이 보이지만은 시험이란 부정적인 의미가 있고, 시 련이란 긍정적인 의미가 있
습니다. 시험은 남을 넘어뜨리게 한다고 하 는 그런 의미가 있는가하면 시련은 이것을 통해
서 강하게 만든다는 뜻 이 있어요. 마치 훈련과 같은 거예 요. 그런고로 이 사건 속에 의미
가 있고, 하나님의 의지가 있다는 말입 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말씀에 '구 비하여 조금도 부
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이 구비한다는 말은 헬라 원문대로 하면 완전 무장한다는 뜻 입
니다. 군인이 무장을 하고야 일 선에 나가잖아요. 제가 최일선에서 군인으로 있을 때 보니까
요 이제 전 쟁의 실전에 나가게 되면요 탄약을 쭈욱 갖다놓고 수류탄 많이 갖다놓 고 가지
고 갈 수 있는 데까지 가지 고 가라 그래요. 그래서 군인들의 옷이 그렇게 얼기설기한 거예
요. 모조리 갖다가 수류탄을 여기다 걸 고, 여기다 걸고, 허리에다 띠고, 또 탄알을 될 수 있
는 대로 많이 가져 갈 생각이거든요. 어떤 사람은 욕 심 많게 많이 가져다 넣고 일어서질
못해요. 왜요? 어떻게든 이걸 가 지고 가야하거든요. 맨손으로 싸우 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가 구비 해야 합니다. 이 시련을 통하여 계 속 훈련을 받아서 강인하게 훈련을 받아서
채워나가야 되는 것이거든 요. 그러니까 여기에 의미가 있어 요. 그래서 고칠 것을 고치고,
버릴 것을 버리고, 취할 것을 취하고, 깨 달을 것을 깨닫고, 사랑할 것을 사 랑하게 만드는
것, 시련을 통해서. 이것을 알고 인내하시는 거지요. 이것을 알 때에 참을 수 있는 거지 요.
유익한 것이니까. 나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니까. 그런고로 또 한가지 오늘 성경말씀에 아주
중요 한 요절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시 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 라. 기쁘게 여기
는 것, 그리함으로 그게 참는 거예요. 여러분 참는다 는 거, '두고보자' 이거예요. 이를 갈면
서, 눈물을 흘리면서, 신세 타령 하면서, 그건 참는 게 아니에요. 찬 송을 불러야 참는 거예
요. 기쁘게 여겨야 참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 을 알아야합니다. 사도바울은 로마 서 5장 3절
에서 말합니다. 환난 중 에도 즐거워하나니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
루 는 줄로 앎이니라. 인내가 필요해 요. 소망이 필요해요. 그런고로 우 리는 환난 중에도
기뻐한다는 거예 요. 보다 더 중요한 것을 얻게 되 기 때문에 그런 말씀입니다. 여러 가지
시련을 당할 때 두려워하지 말 것입니다. 기뻐할 것입니다. 그것 이 인내할 수 있는 비결이
에요. 사 도바울은 로마서 8장 37절에서 말합 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서 내가 넉
넉히 이기느니라. 넉넉 히 이기느니라, 이것이 인내요.
사람은 임종시에 세 가지를 후회 한답니다. 첫째가 좀더 베풀 걸, 둘 째가 좀더 즐길 걸, 셋
째가 좀더 참 을 걸. 참지 못한 유감이 우리 마 음을 임종시에 괴롭힌다고 합니다. 잘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대만의 역사가이자 사학자이자 작가인 백양 이라고 하는 분이 쓴 글이 있
습니 다. 그 글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이 런 재미있는 얘기가 있어요. 일본 사람하고 미국사
람하고 중국사람 세 사람이 밀폐된 돼지우리 속에 들어 가서 돼지가 있는 돼지우리 속에 들
어가서 상금을 걸고 인내심 경기를 하게 됐습니다. 누가 오래 참나 보 자. 일본사람 들어가
자마자 아이고, 숨 막혀 못 견디겠다고 나왔고, 미 국사람 어지간히 견디더니
"아이고, 이제는 실신하게 되어서 더 이상은 못 견디겠다"고 나왔어요. 아무리 기다려도 중
국사람이 안 나옵니다. 심사위원들이 들어가 보니까 돼지를 떡 베개하고 누워 자고 있더랍
니다. 이 중국작가는 말합니다. 이것이 중국사람이라고. 이것이 중국사람 의 저력이라고. 여
러분 인내로서 승부가 결정이 됩니다. 얼마나 참 느냐, 얼마나 잘 참느냐, 얼마나 넉 넉하게
참느냐, 얼마나 어엿하게 느 긋하게 참아내느냐,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말든 내가 어엿하게
대처하 면 그게 생각에 속도를 가하는 거예 요. 변화를 즐겨야 합니다. 겁내지 맙시다. 파도
타기하는 청년들처럼 파도가 밀려오면 타고 즐기는 거요. 세상 파도 무서워하지 맙시다. 우
리 앞에는 확실한 약속의 땅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 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니
라"

기도
하나님 아버지, 생각컨데 넉넉히 참을 수 있었던 일에 참지 못한 일 이 너무 많았습니다. 인
내가 부족 함으로 해서 많은 실수가 또 있었습 니다. 간절히 바라옵는 것은 이 급 변하는
세대에서 우리의 마음은 고 요하게 하시고 넉넉하게 잘 수용하 면서 참고 견디는 가운데서
하나님 이 약속하신 저 미래를 바라보면서 오늘도 승리할 수 있는 주의 사람으 로 살게 하
여 주시옵소서. 넉넉히 이기는 지혜와 용기를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 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