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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곽선희 목사 설교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약 1:1-8)

by 【고동엽】 2024.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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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약 1:1-8)

 

여러분은 농기계에 대해서 얼마 나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이 제 농촌에서는 그 어느
집에든지 도끼라고 하는 아주 흔한 농기구가 있습니다. 도끼 날은 쇠로 된 것 입니다만은
도끼자루는 나무로 되 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도끼자루 라고 하는 나무는 보통나무로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나무 를 깎아서 만일에 도끼자루를 만들 었다면 한 번 내려치
면은 다 부러 져 나갑니다. 이 도끼자루라고 하 는 이 나무는 우리가 알고 있는 나 무 중에
가장 강하고, 튼튼하고, 굳 은, 그런 나무로 만들게 되는 것입 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자
기 손자를 데리고
"자 우리 오늘은 산 에 가서 도끼자루를 좀 찍어보자."
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손자를 데 리고 산으로 올라가는데 산 중턱에 보니까 그 바위틈에
곧게 자란 좋 은 도끼자루 될 만한 참나무가 있 습니다. 손자를 말하기를
"저걸 찍어서 도끼자루를 하면 되겠습니 다."
할아버지는
"아니다."
그러십 니다. 그 힘든 골짜기를 오르고 올라서 산꼭대기까지 올라갔어요. 한 참나무를 보고
"저걸 찍어라"하 고 말합니다.
"저런 나무는 저 산 밑에도 있었는데요. 저 나무 그늘 속에도 있었고, 바위틈에도 있었고,
계속 있었는데 왜 하필이면 이 높 은 곳에 와서 똑같은 저 참나무를 찍으라는 겁니까?"
그 때에 할아 버지는 말하기를
"비바람을 많이 맞지 아니하고 자란 나무는 아무 소용이 없다. 같은 이름의 참나무 이지만
은 비바람을 많이 맞고 자란 그 나무라야만 쓸만한 도끼자루가 되느니라."
이것이 옛날 어른들이 손자에게 가르쳐 준 교훈입니다.
성공과 성취는 같은 게 아닙니 다. 어떤 객관적 이유에서 성공할 수는 있어도, 그가 누리는
성취라 고 하는 것은 그건 자기 나름의 것 입니다. 성장과 성숙은 또 같은 게 아닙니다. 성
장이란 키가 자란 다는 얘기입니다. 멀끔하게, 아주 훤하게, 튼튼하게 몸은 자랐습니다 만은
성숙이라고 하면 이것은 속 사람 내적 성장을 의미합니다. 여 러분 성장은 있고 성숙이 없
다면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얘기입니까! 몸의 성장은 있어요. 혹은 지식의 성장도 있어요. 많
이 배웠어요. 똑똑해요. 인격의 성숙함이 없다 고 한다면 그 또한 아무 소용없는 인재올시
다. 성숙함이 없다고 한 다면 그 또한 아무 소용없는 인재 올시다. 그런고로 성숙한 인격,
성 숙한 품격, 여기에 우리는 다시 초 점을 맞추고 생각을 해야 되겠다는 말입니다.
히브리서 12장 8절은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가슴을 찌르는 말씀 이기도 합니다. 들어보십시
오.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요, 참 아들 이 아니니라.' 여러분, 징계는 아 픈 겁니다. 그러나
징계가 없다면 내 자식 아니라는 거예요. 내 자 식이요, 내가 사랑하고 내가 기대 를 걸고
있기 때문에 이 자식에게 는 꼭 징계가 있어야 된다는 거예 요. 징계 없이 사람되지 못하니
까 요. 징계 없이 공부를 할 수는 있 어도, 징계 없이 인격이 바로 되지 는 않아요. 그런고
로 많은 비바람 을 맞고 많은 역경을 통해서 단련 시켜서, 징계를 통하여 성숙한 인 격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참 부모 요, 그리고 참 아들에게 대하는 태 도란 말입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세 요. 시련이 없다면 이건 죽은 것 입니다. 또 시련이 없다면
포기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느 때에 권면 하고 징계하고 또 책망하고 하다가 마지막에 아주
낙심해서 포기할 때 에는 '될 대로 되라' 그래 버리고 맙니다. 그 다음에 상관하지 않습 니
다. 그건 버려진 인간입니다. 포기된 인격입니다. 파산된 양심 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거기에
기 대를 걸고 있습니다. 살아있습니 다. 기대를 걸 만 합니다. 그럴 때에 그에게 징계가 있
고 시험이 있고 시련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 러니까 시련이 있다는 것은 살았다 는 증거입
니다. 죽은 사람에게 매 질하는 사람은 없어요. 포기한 인 간을 향해서 징계를 운운하지 않
습 니다. 이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 시험이나 시련에 대한 우리 의 태도가 몇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회피형입니다. 어떻게
하 던지 피해보려고 또 시험 없게 해 보려고 합니다. 부모님들의 잘못 입니다. 시험, 없어서
는 안됩니다. 그래서는 그저 편하게, 편하게, 편 하게…… 그거 아닙니다. 회피시 키는 것,
그거 잘하는 게 아니에요. 절대로 잘하는 게 아닙니다.
어쨌든 시험을 피해보려고 하는 그 마음 하나 있고, 두 번째는 원 망형입니다. 그 책임을 남
에게 전 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 하고, 이웃을 원망하고, 부모를 원 망하고, 다 원망
하고, 책임을 남에 게 전달하고, 그리고 항상 원망과 불평에 살아가는 그런 인격이 있습 니
다. 심지어는 부모님의 권고나 징계까지도 원망합니다.
또한 비관형입니다. 한계를 넘 어선 것처럼 생각해서 그만 절망해 버리고 맙니다.
또 하나는 낙관형입니다. 그 사람은 소망 가운데서 문제를 다시 재해석합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시험, 모든 시련을 풀 수 있는 Master key는, 열쇠는 바로 소망 문제입니다. 소망이
있느냐, 약속 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소망에 대한 확실한 약속이 있으면 오늘의 시련이란
문제 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다음이 무엇입니까? 이것을 통해서 얻어
지는 유익이 무엇입니까?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무엇을 주시려고 하십니까? 그것을 똑바
로 알 수만 있다면 우리가 어떤 시련인들 문제 삼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최근 미국에 스웬슨 박사님이 쓰신
"Margin"이라고 하는 그런 책이 있습니다. 이것은 현대인의 삶의 구조를 설명하고 그 특성
을 말하는 중에 한마디로 말해서 Margin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유가 없는 것
이 현대인의 삶의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그 여 유가 없느냐? 없는 게 아니에요. 넉넉한데 스
스로 자기 스스로 여유 없는 존재로 자기 자신을 가두고 속박해 나가는 것이에요. 그래서
정서적 메마름이 옵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요. 정서적으로 고갈 돼 있고, 또한 신체적으로
탈진상 태에 있어요. 대개 보면 현대인이 피곤해 보여요. 얼굴 보면 떴어요. 누렇게 떴어요.
벌써 화기가 없어 요. 생기를 잃어 버렸어요. 먹기 는 잘 먹는 것 같은데 벌써 화색이 없어
요. 건강지수가 떨어졌습니다. 또 쫓기는 삶입니다. 자유가 없어 요. 언제나 무엇에 쫓겨서
뭐 그 렇게 바쁜지 조금도 여유가 없어 요. 그리고 재정적 압박감을 누리 고 있다는 겁니다.
사실은 정말 내일 일은 내일 해결할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밥을 굶은 것도 아 니고, 옷을
벗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돈에 쪼들리는 지. 어떻게 이보다 더 어려운 때도 살았는
데…… 우리는 넉넉히 가지고도 아주 빈곤한 사람으로 살아요. 왜 이렇게 불행하게 살아야
하느냐? 이것이 바로 여유 없는 인간, 현대 인의 특징이란 말입니다.
경험주의 신학자인 다니엘 데이 윌리암스라고 하는 박사님의 우리 고통과 시련에 대해서 그
주는 의 미를 세 가지로 설명해 나가는 것 을 읽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우 리가 많은 시련을 통해서 Identity 를 얻는다"
그래요. 정체감을 알 게 된다. 좀더 냉정하게 생각해 봅시다. 우린 내가 누구냐 하는 것을
우린 모르고 살았습니다. 어 려운 시련에 딱 부딪칠 때 '내가 누구냐' 다시 말하면 한계상황
을 느끼게 됩니다. '여기가 끝이구나. 내가 추구했던 것이 뭐냐, 내가 바 랬던 것이 뭐냐!'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 욕심을 정비하게 됩니 다. 오늘 본문도 15절에 보면은 유명한
말씀 있지 않습니까? '욕 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를 장 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저는
그 래서 요새 그런 생각을 해요. 욕 심이 잉태하여 IMF를 낳고. 이제 회개하지 못하면 사망
을 낳느니라. 그걸 알아야 돼요. 이 무얼 말하 는 거예요. 도대체가. 우리의 욕 심이 어디까
지 왔습니까?
어떤 작가가 재미있는 글을 썼 더라고요. 이제 앉아서 자기 묘비 명을 써라. 나의 무덤에 묘
비명을 먼저 써 놓으라는 거예요. 그리고 남은 시간을 살아라. 내가 죽은 다음에 내 비석을
뭐라고 쓸 겁니 까? 당신 스스로 한 번 써 보세 요. 아주 욕심 덩어리입니까? 형 편없는 인
간입니까? 무슨 묘비명 을 써야 됩니까? 어떤 부자가 세 상을 떠났는데 아버지를 위해서
묘 비를 쓰려고 그래 유명한 사람을 찾아가서 써 달라고 그랬습니다. 아버지가 어떤 분이었
느냐? 아, 뭐라고뭐라고 설명을 아무리 해도 설명할 게 없어요. 그거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
버지 욕심이 많았 어요. 그랬어요. 그래, 그 묘비명 을 쓰는 분이 뭐라고 썼는고 하니 '먹다,
죽다.' 그랬다고 그래요. 뭐 그것밖에 쓸 게 없으니까. 당신의 묘비명을 당신이 써라 이거예
요. 그 유명한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은 돌아가시기 직전에 자기 죽음에 대 해서 미리 말했습
니다. '내가 죽거 든 나는 이런 말을 듣고 싶다. 저 는 모든 사람을 사랑한 사람이라 고……
모든 사람을 사랑한 사람 이다. 그 한마디가 내 마지막 소 원이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묘비명을 써야 합니까? 또한 지능 목록을 한번 살펴보세요. 무 엇을 알 수 있습니까?
또 무엇을 할 수 있었습니까? 이제는 정리해 야 될 때가 됐습니다.
저는 조금 불만이 있어요. 가 끔 식당에 식사하러 가면 뭐라고 써 붙였는고 하니 '냉면전문'
하고 써 붙였어요. 그 냉면 하나 밖에 없어서 잘하나 보다 들어갔더니 냉 면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고, 불고 기에다, 만두에다가, 지짐에다가, 뭐 많이 하더라고요. 도대체 이 집이 냉면
전문이라는 거예요. 여 러분 이것 때문에 우리가 망한 걸 아십니까? 왜 그렇게 욕심이 많아
요? 냉면 하려거든 냉면만 잘 하 시고 다른 거 좋아하는 분은 좀 다 른 집으로 가라고 하세
요. 한 집 에서 다 팔아버리려고 하지 말고 안 그래요? 만두 좋아하는 사람은 저 집으로 가
고, 빈대떡 좋아하는 사람은 저 집으로 가세요. 오로지 냉면만 우리 집으로 오세요. 이게 바
로 정리해고라는 거예요. 이게 구조조정이라는 거예요. 도대체 재벌이라는 말과 회장이라는
말은 이것은 영어로 번역 받지 못하는 말이에요. 그래서 영어로 '자이벌' 그런다고요. 왜요?
세상에 없는 말이니까. 왜 이렇게 욕심이 많아 요? 한 가지, One item! 하나만 좀 잘하세요
제발! 하나도 신통치 않으면서 뭐 그렇게 많이 해서 욕 심부리다가 이 난리를 맞은 거예
요. 그 좀 다른 사람도 벌어먹도 록 해주세요. 왜 저만 벌겠다는 거예요. 다른 사람 사업도
좀 되 게 해주세요. 왜 나만 혼자 하겠 다는 거예요. 이게 망조라고요. 전문화, 세계화는 전
문화예요. 기 능화올시다. 생각을 바꾸세요. 다 른 건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이건 저런 사람
에게 맡기고 나는 이것 하나만! 그것이 충실한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 시련을 통해서
욕심을 조정해야 돼요. 줄여야 돼 요. 아주 작게, 아주 작게! 여태 까지 작은 사업, 작은 정
부 그건 무얼 말합니까? 수없이 들으면서 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려요. 이 제는 깨끗한 마
음으로 내가 할 일 내가 하고, 다른 사람이 할 일은 다른 사람에게. 정체를 분명히 해 야 돼
요. 한계의 상황을 바로 이 해해야 된다 말이에요. 이것이 시 련을 통해 얻는 것이에요.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할 수 없는 것 이 무엇인지 한계를 알게 합니다.
또 하나는 Communication! 소 통을 가능케 합니다. 대개 보면 일이 잘못될 때는 다같이 교
만해 요. 그래서 소통이 없어요. 아내 와도 말이 없고, 친구와도 말이 없 고 모든 사람은 다
그저 무시하고 자기만 잘났지. 이것이 바로 어려 운 시련을 당하게 되는 이유입니 다. 이제
이 시험과 함께 우린 생 각해야 합니다. 마음을 열어요. 그래서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알
고, 이웃과의 대화를 열어야 되고, 하나님과의 대화를 열어야 돼요. 이제 비로소 낮추고 낮
춰서 아주 겸손한 가운데서 벽 없이 격이 없 이 마음을 열고 소통합니다. 아시 는 대로 고
통을 당하는 사람들끼리 소통해요. 실패한 사람들끼리 소 통해요. 실패하고도 아직도 소통
이 없다면 그 사람은 좀 더, 좀 더 뜨거워야 돼요. 아주 발바닥이 밑 에 땅에 닿을 때까지
겸손해 져서 아주 완전한 서민으로 돌아가서 너 와 나의 수평관계에서 대화할 수 있는 그러
한 소통을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고난입니다.
또한 그 다음에는 치유능력이 생깁니다. 이건 좋지 않은 말입니 다만은 지금 북한에 식량이
없어서 너무 어렵거든요. 식량배급을 못 주어서. 그러니까 그분들하고 얘 기를 하면서
"아이고! 이렇게 몇 달 동안 혹은 어떤 때는 몇 년 동 안 식량배급을 안 주면 어떻게 사 노.
당신들 참 딱하다."고 했더니 대답이 뭔지 아세요?
"아니에요. 식량배급을 안 주어 봤더니 자생능 력이 생겨요."
그래요. 이 무서운 소리입니다. 자생능력이요. 하기 야 그렇죠. 여러분, 우리가 이 고 난을
당할 때 그 고난 속에 깊이 들어가 보면은요 사실은 자생능력 을 얻습니다. 자기 치유능력
을 얻 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도 3D 기피 현상이 있습니다. 어렵고, 더럽고, 힘든 일 안 하겠다고. 요새도 보
니까 어떤 회사에서 사람을 모집해도 사 람이 안 온대요. 힘들다고. 며칠 하고 다 가버린대
요. 이게 어려운 거 아닙니까? 그러나 아시는 대로 분명히 생각해 보세요. 3D를 떠나 서는
절대로 지식도 없고, 깨달음 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누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 사 람은 남달리 고생을 많이 한 사람 이에요. 돈 없고 힘든 일 한 사람 이에요. 뼈가 부
러지도록 일한 사 람이에요. 그렇지 않고는 절대로 능력의 사람이 될 수가 없어요. 우리는
고난 속에서 힘을 얻습니 다. 자생능력을 얻습니다. 극기 능력을 얻습니다. 이 3D속에 깊이
들어 갈 때 창조적 능력을 얻게 되 는 것이에요.
그리고 오늘 성경말씀은 말합니 다.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여기 온전하다는 말은 텔레이
오스라 (perfect)가 아니고 이것은 파스 (every)라고 하는 말입니다. Every circumstances,
모든 경우에 서 기쁘게 여기라. 이런 일을 당 하나 저런 일을 당하나 모든 경우 에서 기쁘
게 여기라. 왜요? 믿음 의 시련이기 때문에. 이 사건을 통해서 믿음을 얻고, 믿음을 굳히 고,
믿음을 성장케 하기 때문에 금 보다 귀한 중요한 가장 큰 신용과 믿음, 이 믿음을 주시고
믿음을 자 라게 하시는 일이기 때문이요. 우 리는 건강을 잃으면서 믿음 얻는 사람 많이 봅
니다. 재산 잃어버리 고 모처럼 믿음을 정비하는 사람을 봅니다. 믿음의 시련입니다. 하나
님은 믿음 외의 다른 것을 생각지 않습니다. 거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믿음의 시련!
그 뜻을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또한 인내를 이룬다고 했어요. 끈기를 이룹니다. 구체화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또 현대인이
라는 게 대체로 너무 약해요. 의지가 약해요. 이건 시련을 못 겪었기 때문이에요. 많은 시련
을 겪어야 돼요. 끈기 있는 인간이 됩니다.
세상에서 뭐 요새 골프가 유행 입니다만은 야구라고 하는 운동이 있는데 베이브 루스(Babe
Ruth)라 고 하는 유명한 야구 왕이 있습니 다. 그는 1976년까지는 세계 제일 입니다. 왜냐
하면 홈런 왕으로써 714개의 홈런을 날렸어요. 그래서 홈런 왕이라고 기록되고 있는데 이
사람이 홈런 왕인 동시에 Strike-out 세계 기록보유자라는 건 모르고 있어요. 왜냐하면 그는
1330번의 Strike-out을 당했습니다. 1330번의 실패가 있고 714개의 홈 런을 날린 것이요. 사
람들은 실패 한 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 홈런 왕만 생각하더란 말입니다. 많은 시련이 없이
강인한 인격이 존재하 지 않습니다. 훌륭한 믿음도 없습 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그래 오
늘 성경 말씀은 '온전히 기뻐하 라.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 게 하여야 한다.' 구비한
다는 말은 완전무장이라는 말이에요. 능숙해 진다는 말이에요. 앞으로 어떤 시 련을 당해도
잘 넘길 수 있어요. 문제가 되질 않아요.
저는 이런 재미있는 얘기를 들 었어요. 다방 레지로 있던 사람이 결혼을 하면 그렇게 잘 산
다면서 요. 그거 왜 그러냐 하니까 다방 레지로 있을 때 그 별 남자들 많잖 아요? 그 싱거
운 소리하는 걸 다 척척 받아넘기다가 능숙해져서 그 다음에 결혼해 가지고 남자 하나쯤 휘
어 잡는 건 문제가 아니래요 그 것은. 좀 능숙해야 된다 이거예요. 근데 뭐 한마디에 눈물
짜고 죽는 니 사는니 이런 겁나는 여자하고 어떻게 삽니까? 안 그래요? 좀 능숙해 져야 되
는데 이게 어디서 오느냐? 많은 시련 속에서. 그런 고로 과거도 아니요, 현재도 아니 요. 오
로지 미래! 약속의 땅을 바 라볼 때, 이 오늘의 당한 시련은 잘 견딜 수가 있는 것이요.
여러분! '왜' 라고 하는 질문은 더이상 하지 맙시다. 과거는 그만 합시다. 그만 들추어요. 밤
낮 청 문회 해 봤자 별 것도 아네요. 그 만하고 우리에겐 미래가 있을 뿐입 니다. 온전히 기
쁘게 여길 것입니 다. 왜냐하면 이것은 살았다는 증 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시 련이
있다는 것은 아직도 하나님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 미하기 때문이요, 쓸모가
있기 때 문이요, 적어도 온전히 기쁘게 여 길 것은 아직도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생각하시고 더 유익 하게 더 훌륭하게 더 크게 쓰시고 자 하시는 깊은 섭리가 있는 것으 로
확실하게 믿기 때문입니다. 여 러분,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 쁘게 여기는 거기에 도달해
야 오늘 의 시련을 극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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