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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곽선희 목사 설교

주기도문8(마 6:9~15)

by 【고동엽】 2024.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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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8(6:915)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가장 힘든 기도는 "주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도이며 가장 쉽고 평범하며 일반적인 기도는 "악에서 구하옵소서"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본문인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간구는 일곱번째 간구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이 기도가 가장 실제적이며 최종적인 기도인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기도는 언제나 확실한 믿음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받은 줄로 믿으라" 하시는 그 엄청난 주님의 귀한 당부를 마음 깊이 새기면서 확실한 믿음으로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새롭게 고백하며 그의 능력과 지혜에 자신을 위탁하면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설사 내가 시험을 당해도 이 시험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확실히 나타나 있음을 의심치 아니하며 이 사건을 통하여 더 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과 그의 사랑의 경륜을 믿으면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험을 당해도 피할길 주시고(고전 10:13), 또 경건한 자를 반드시 시험에서 건져주실 것을(벧후) 믿으며 또한 시험의 때에 우리를 지켜 면케하실 것을 분명히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3:10)

주님은 이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하옵시고" 이것은 소극적인 기도이며 좀더 적극적인 기도는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인 것입니다. 구원을 요청하는 기도입니다. 2:12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구원이란 물론 종말론적 의미가 먼저 있습니다.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구원을 뜻하며 그 언젠가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마지막 숨을 몰아 쉴 때 우리가 드릴 임종 기도의 끝부분이 될 것입니다. "나를 구원하소서" 이것은 가장 무겁고 실제적인 기도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헬라어 자체가 표현해 주듯이 현재와 과거, 미래로 구분해서 생각되어야 합니다. 과거는 주 예수의 십자가로 이미 청산된 것으로써 벌써 구원을 이루었고, 또 앞에 있는 미래적이면서 종말적인 구원이 저 앞에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적인 구원입니다. 헬라어의 현재사는 반복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 사건, 사건마다에서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은 바 출애굽사건에 비하여 설명한다면 애굽에서 나와서 홍해를 건널 때에 바다의 세례(고전 10:2)를 통하여 애굽으로부터 분명히 구원받았습니다. 또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 약속의 땅에 들어갈 때 진정한 뜻에서 최종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광야 교회에 있는 동안 매일 당하는 시험과 악으로부터 계속적으로 구원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이로써 계속적인 구원을 받아야 하고 또 이를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대로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에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느니라"(13 : 19)는 말씀에서 예수님은 악의 실재를 인정하셨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구원이란 죄와 사탄과 사망과 율법과 진노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를 뜻한다고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악의 실재를 인정해야 합니다.

(evil)이란 넓은 의미에서 해석하면 여러 가지 뜻을 포함합니다. 그러나 직선적으로는 형이상학적인 악마의 세력을 지칭하는 말임을 분명히 기억하십시다. 넓은 의미로 본다면 첫째, 먼저 신체적인 악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로부터의 구원은 치유이며 자유로서, 온전한 인격과 자유로운 생활을 뜻합니다. 모든 육체적인 고통으로 연약함, 불구됨과 질병, 피로와 굶주림 그리고 우리를 부자유하게 하는 모든 여건들을 가리킵니다. 둘째, 마음의 병고가 있습니다. 판단의 과오, 기억의 실수, 상상의 그릇됨 또한 논리적인 과오 등입니다. 병리적 이상 심리로 인한 병고가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셋째, 마음의 악이 있습니다.

배신, 불신, 의심 그리고 교만과 허무함 또한 절망 같은 악이 마음속에 있습니다. 이 모든 악으로부터 구원받기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기도 없이 스스로는 자기를 구원하지 못할 것을 인정하고 기도로써 구원을 얻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악의 직선적인 의미는 악마입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 곧 사탄의 세력을 뜻합니다. 어떤 분은 악을 심리적 현상으로 보고 악의 실재를 믿지 아니하려고 합니다. 이상 심리나 병리적 심리 현상으로 간주해 버린단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악의 실재를 말씀하셨고 귀신을 내어 쫓으셨으며 또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어쫓으라고 명하시고 계심을 분명히 봅니다. 어떤 분은 "마귀로서는 사탄이 자기 존재를 믿지 않도록 설득해서 성공할 때처럼 성공적인 때는 없다"고 재미있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현대인은 악의 존재 자체를 믿지 아니하려 듭니다. 이 때문에 부지불식간에 악에 빠지며 악의 종이 되어 버리는 것을 참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악을 단순한 관념이나 추상적 논리의 전제처럼 이해하여서는 안 됩니다. 악은 인격적으로 존재함을 성경적 근거와 경험을 근거로 해서 믿고, 이를 대항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루터의 기록에 의하면 마귀를 보았으며 마귀와 구체적으로 싸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악으로부터의 승리만이 진정한 구원을 이룬다고 그는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으로부터 구원받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따라서 내부의 악에서도 구원받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사탄은 본래적으로 "거짓말하는 자", "교만한 자", 불신앙의 존재입니다. 이로써 악은 우리 마음속에 불신앙적 교만과 거짓을 심어버립니다. 이 같은 악으로부터 속히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이 내적인 악이 곧 죄악입니다. 죄는 악의 성공의 열매입니다. 죄는 행복의 파괴자입니다. 행복한 병이 있고 행복한 고난도 있으나, 행복한 죄는 없습니다. 그래서 "고통의 바다 속에는 행복이 있을 수 있어도 죄로 물든 화려한 방안에는 어떤 행복도 없다"고 말한 사람이 있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주여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구원하소서"라고 기도하였으며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자기 안에 있는 싸움을 적나라하게 고백하기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울부짖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내 안에 있는 엄연한 악의 존재를 확실하게 깨닫고 시인하며 이것과의 싸움의 승리를 위하여 열심히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외부의 악에서 구원받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는 악한 세대를 뜻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두루다니며 찾는" 악을 의식하고 이를 경계하였습니다. 정치적인 악, 사회적인 인조적인 악이 존재하며, 경제와 문화 안에 깊이 뿌리박은 무서운 악의 세력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에 대한 예수님의 경고를 소홀히 여기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지 못하고 잠들었다가 그만 예수를 세번이나 부인하는 결정적인 시험에 빠졌습니다. 이 악한 세대의 무서운 세력을 의식한다면 더욱 더 열심히 기도해서 승리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갖가지 재난이 악한 세력의 기구로 쓰여집니다. 재난 자체는 하나님의 섭리 중에 있으나 그 재난 앞에서 하나님을 원망케하는 악마의 세력이 작용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슬픔에 잠기게 하며 결국 하나님을 의심하며 원망하게 되어서 시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실제적으로 우리를 어떻게 건져주시는 것입니까? 여기서 주님의 놀라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데려 가기 위함이 아니요, 악에 빠지지 않게 보존하기 위함이라"(17:15)고 하신 예수님의 중보의 기도를 듣고, 그 뜻을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대체로 두 가지 방향에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첫째는, 권능과 섭리로 직접 건져내시는 것입니다.

다니엘을 사자굴에서 건져내시며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것같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친히 건지시며 때로는 피할 길을 주셔서 그 악의 역사를 모면케 하시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보다는 더 많은 경우에 기도하는 당신의 자녀에게 힘과 지혜와 용기와 사랑을 주셔서 그 악을 이기게 하십니다. 승리가 곧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이루십니다. 깨닫는 지혜를 주시며 신령한 총명과 영적 판단력을 주셔서 악을 분별하며 그 정체를 민첩하게 판단케하며 신령한 경건을 주셔서 이를 물리치며 그 악한 계책에 빠지지 않게 하십니다. "계시의 영"을 주셔서 악의 정체를 바로 알게 하셔서 승리케하십니다. 또한 그 악의 유혹에 빠질 때 어떤 비참한 현상이 올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게 하여서 그 진상을 예견하며 경험하기 전에 먼저 강하게 느끼고 이를 떠나게 하여서 구원하십니다. 서양 속담에 마귀는 네 가지 말로 사람을 유혹한다고 합니다. 첫째 "누구든지 하니까" 둘째, "이까짓 일이야!" 셋째, "한 번만 하라" 넷째, "아직도 앞날이 많으니" 하고 속삭입니다.

가장 귀한 비결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확증해줌으로서 이기게 하십니다. 더 큰사랑 더 확실한 사랑을 깊이 체험하게 하면서 그 사랑의 감격으로 악의 세력을 이기게 하십니다. 개인적이고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에 확실하게 포로 되어 있으면서 그 큰사랑에 "미쳐서"(고후 5) 주를 찬송하며 감사하고 있는 동안은 모든 악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감사와 찬송보다 마귀를 이기는 더 강한 무기는 없는 것입니다. 그 귀한 사랑의 힘으로 악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으로이깁니다. 세상을 이길 힘은 오직 우리의 믿음인 것입니다. 성령의 은혜로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사 충만한 믿음의 힘으로써 "넉넉히"(8)이기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에 비상한 능력과 비상한 지혜가 기도의 응답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더욱 깊이 이해해야 하는 것은 악을 이기는 힘의 근본은 의로움에 있고 의의 힘에 달린 것입니다. 루터의 경험 중에도 마귀는 계속해서 그를 괴롭혔고 또 고소하였다고 했습니다. "너 같은 죄인이 무슨 종교개혁이냐! 너는 죄인이다. 오늘도 또 너는 죄인이다"라고 그를 비난하였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루터는 죄인입니다. 이 고소에 굴하지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Sola Fide!"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을 것을 다시 확실히 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Nevertheless!)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며 주는 십자가로 나를 구속하셨으며 주는 나를 의롭다 하셨다누가 나를 정죄하리오!"(8:33)라고 외치면서 의롭다 함을 얻은 그 의를 내세운 것을 그의 저서에서 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내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음으로써 "힘입은 그 의"로써 악을 이기며 율법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죄는 죄책과 오염으로 우리의 영혼을 파괴합니다. 악마는 죄와 죄책 그리고 무서운 율법의 심판을 무기로써 우리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이를 이길 수 있는 힘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은 그리스도의 의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그 믿음이 더욱 확실해지며 견고해져서 죄책과 율법의 심판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고 이로써 악의 세력을 이기고 하나님의 자녀된 특권을 찬송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할 때 성령의 은혜를 힘입어서 성화(聖化:Sanctification)하게 되면서 더욱 악을 쉽게 이기게 되고 악의 도전을 예지하며 또 예방할 수도 있게 됩니다. 이 때문에 항상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 없이 악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를 믿는 큰 죄가 됩니다. 예수께서도 기도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40일 금식하시고 악마의 시험을 물리친 그 승리를 보고 깨달아야 합니다. 기도하셨고 또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요한복음 16장에는 성령이 "내가 말한 것을 기억나게 하여 감당하게 하신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성경을 읽고 깨달으며 믿고 받아들이는 이 모든 것이 성령의 역사이지만, 이 들은 바 말씀을 시험당하는 현장에서 기억나게 하여 "말씀이 능력화"하여서 악을 이기게 하는 귀한 역사도 역시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런즉 기도하는 중에 성령이 역사하며 성령이 내가 들은 말씀을 생명의 능력으로 화하게 하여서 악을 이기게 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라" "구원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은, 이 같은 기도의 역사 없이는 악을 이길 수 없음을 뜻하며 연약한 우리의 처지를 파악하시는 주님의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권면인 것입니다. 우리들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러한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9 : 29)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기도 없이 사는 것은 무기 없이 전쟁터에 나아가는 사람과 같은 것입니다. 또한 "기도하라" 하심은 응답하시고자 하는 약속이 있고 또 응답하셔서 악에서 구원하시려 하는 약속과 허락이 보장되는 말씀입니다.

악을 이기기 위해 작전 계획을 세우거나 악의 세력이 강하다고 공포에 떨 필요가 없습니다. 문제는 기도하면 주께서 싸워주시며 주께서 우리로 승리케 하시며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승리와 구원을 벌써 보장받고 기도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이제라도 악으로부터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할 것입니다.  

주기도문8(6: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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