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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에 필요한 4가지 /이사야 40장 6-11절 - 주일설교

by 【고동엽】 2022.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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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에 필요한 4가지

이사야 40장 6-11절 - 주일설교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전도 >

 

  어느 날, 주님이 갈릴리 해변에서 몇 사람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그들을 전도하러 보내며 마태복음 10장 16절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전도는 양이 이리 가운데 가는 것처럼 힘든 일입니다. 그래도 그 일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전도만큼 소중한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도 성도가 전도하러 나가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고,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전도의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처음에는 저희 부부만 거의 매일 전도했습니다. 그러나 전도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전도만큼 복된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전도에 대한 부담을 주는 것을 성도들은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주말에 성도들이 교회에 청소하러 오면 저는 슬쩍 그 자리를 피할 때가 많습니다. 성도들이 청소하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아름답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럽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 목사님은 청소를 싫어하는구나!”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혼자서 소리 없이 청소하고 정리할 때가 많습니다.

 

  분당에서 처음 목회를 할 때는 몇 년 동안 새벽마다 성도의 눈을 피해 매일 한 번씩 걸레질을 했습니다. 새벽에 성도들 모르게 하는 이유는 성도들에게 청소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주기 싫어서이고, 또한 새벽마다 기도하러 오는 성도들에게 깨끗한 환경을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생각 같아서는 성도들에게 힘든 일을 하나도 안 시키고 부담도 전혀 주고 싶지 않지만 필요하다면 목회자는 성도들에게 힘든 일도 맡겨야 합니다.

 

  힘든 일은 다 피하면 나중에 하나님 앞에서 뭐라 말합니까? “하나님! 힘들고 부담되는 일은 안했지만 좋은 일은 많이 했습니다.”라고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힘든 일을 즐겁게 하는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꼭 해야 할 일이라면 부담되는 일도 힘써 맡아 행해야 합니다. 그처럼 남이 하려고 하지 않는 일을 기쁨으로 하려고 할 때 하나님은 더욱 기쁜 일을 많이 주실 것입니다.

 

  물론 전도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전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기쁨으로 순종하면 다른 능력은 많이 부족해도 전도할 수 있습니다. 무디는 초등학교 4학년을 중퇴한 학력으로 일생 동안 백만 명을 전도했습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지만 대학을 세웠습니다. 학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혼 사랑이 중요합니다.

 

  고진감래(苦盡甘來)란 말이 있습니다. 고통이 끝나면 좋은 날이 온다는 말입니다. 그처럼 전도는 힘들지만 한 명이라도 영혼을 구하면 그것만큼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없습니다. 사실상 교회생활에서 전도의 성공만큼 기쁜 일은 없습니다. 아이 낳는 일은 힘들지만 낳은 뒤에는 큰 기쁨이 있습니다. 그처럼 전도는 힘든 일이지만 꼭 해야 하고, 결국 한 영혼을 구하면 천상의 기쁨과 축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 전도의 4가지 원리 >

 

  전도할 때 어떻게 전도해야 할까요? 본문을 통해 전도에 관해 몇 가지 교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인생의 허망함을 전해야 합니다.

 

  본문 6-8절 말씀을 보십시오.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이 구절에서 하나님은 무엇을 외치라고 말씀합니까? 모든 육체는 풀이고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다는 것을 외치라고 말합니다. 그처럼 전도할 때는 먼저 인생의 허망함을 전해야 합니다. 사람이 자신의 허망함을 아는 것은 비참한 일이지만 그 사실을 아는 것이 사람의 위대함을 증명합니다. 그러므로 위대한 삶을 살려면 먼저 자신의 허망함부터 깨달아야 합니다.

 

  어느 날, 한분이 한밤중에 소름끼치는 전화 벨 소리를 들었습니다. 전화를 받자 누군가 자녀가 탄 차가 트럭과 부딪쳤다는 끔찍한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멍한 상태로 허겁지겁 사고 장소로 갔지만 자녀는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고 당시에 4명이 승용차에 타고 있었지만 단 한 사람도 생존자가 없었습니다. 정신없이 자녀의 장례를 치렀지만 그 아픈 일을 어떻게 잊습니까? 그처럼 교통사고로 우리나라에서만 매년 만 명 가까이 죽습니다.

 

  자기 인생을 자신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힘써 전도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없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없다면 세상은 어떻게 되고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그 순간 사람은 겁나는 사람이 됩니다. 확신은 못해도 희미하게라도 하나님을 인정해야 사람이 사람답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있어야 인간도 제대로 될 수 있고, 인간관계도 제대로 될 수 있습니다.

 

  제 1차 대전 중에 참호 속의 한 군인에게 개 한 마리가 다가왔습니다. 그는 전쟁 중에도 개에게 정을 주며 강아지와 함께 먹을 것을 나눠 먹고 같이 잤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막내 동생처럼 아끼던 그 개가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그러자 그는 개 때문에 며칠 동안 식사를 거르며 한없이 슬퍼했습니다. 그처럼 개를 사랑했던 따뜻한 마음을 가진 그 청년 군인이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2천만 명을 죽음에 몰아넣은 히틀러였습니다.

 

  사람이 그렇게 순식간에 변합니다. 그처럼 하나님이 없다면 누구나 겁나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실상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지금 세상이 얼마나 험합니까? 이런 세상에서 하나님이 없이 어떻게 안심하며 살 수 있겠습니까?

 

  요새 맞벌이 부부가 많아지면서 아이 봐주는 일자리도 많습니다. 그런데 어떤 아이는 장난이 심하고 힘들게 합니다. 그러면 아이 봐주는 사람이 아이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아이가 자는 동안에 자기도 쉰다는 얘기도 가끔 보도됩니다. 우리는 지금 이런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처럼 어떤 사고를 만날지, 어떤 상황에 처할지 모르는 세상에서 근심과 두려움 속에 사는 사람에게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이 소망임을 전해야 합니다.

 

2. 참된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 9절 전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이 말씀에서 “높은 산에 오르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 나가 예배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 말은 참된 전도자가 되려면 먼저 참된 예배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배란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랑과 용서를 앞세워 살겠다고 새롭게 다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예배자는 대개 주님처럼 조용한 사랑의 실천자입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기적을 일으키셨지만 그것을 자랑하며 광고하지 않았고, 어떤 때는 그 기적에 대해 말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손길’보다는 ‘주님의 얼굴’을 추구하는 믿음이 진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조금만 기적을 체험해도 자기 믿음과 자기 기도로 된 것처럼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그처럼 사람들은 어떻게든지 신령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은 신령함이 아니라 천박함이라는 사실은 본인만 잘 모릅니다. 아무리 자기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신 역사와 기적이 많이 나타난다고 해도 그것을 의식하지 않고 항상 자신의 영성이 부족함을 인정하는 사람이 깊은 차원에서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주님은 사람의 겉모습이 아닌 사람의 깊은 곳을 보십니다. 베드로의 겉모습은 갈대였지만 주님은 베드로 속에 반석의 모습이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사람들은 막달라 마리아를 창녀라고 했지만 주님은 그녀의 사랑하는 속마음을 보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속을 살피시고 우리 영혼의 신음소리를 우리보다 더 잘 들으십니다. 그처럼 주님과 깊은 차원에서 만나고 매사에 하나님을 높이며 살 때 많은 사람들이 그 삶을 보고 이끌릴 것입니다.

 

  가끔 보면 성도들 중에서도 학교 선생님은 존중하고 교회 선생님은 가볍게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소중히 여긴다면 교회 선생님을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비록 교회 선생님이 나이가 어려도 하나님 일을 하는 교사이기에 최고로 높여주려는 사람이 진정한 예배자이고, 그런 자세를 가질 때 그가 믿는 하나님이 정말 소중한 분인 줄 알고 불신자들도 그 삶에 이끌려 하나님 앞에 나올 것입니다.

 

  탈무드에는 아버지와 랍비 두 사람이 물에 빠지면 먼저 랍비를 구하라고 말합니다. 그 정도로 교회 일꾼을 소중히 여기는 자세 속에 하나님 경외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전도할 때에 그가 전도하는 하나님이 위대하게 보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전도자가 되려면 먼저 참된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3.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야 합니다.

 

  본문 9절 하반부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이 말씀은 전도할 때 담대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확신을 가지고 전도하라는 말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확신을 가지고 알리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그 좋은 것을 좋은 것으로 인식시키지 못합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자신이 잘하는 것과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홍보하는 것은 교만 같지만 교만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장점이 남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확신하면 오히려 최대한 홍보해야 합니다. 저는 ‘이한규 네트영어’를 홍보할 때마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이 자랑한다고 오해하면 어떻게 하나?” 그러나 한국 사람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조금 오해가 있어도 열심히 홍보하자고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열심히 알리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정말 좋다고 확신하면 최대한 알려야 합니다. 사업도 좋다는 확신을 가지고 해야 사업이 되고, 전도도 확신을 가지고 전해야 합니다.

 

  어떤 탤런트는 전도는 하고 싶은데 못하는 친구에게 이렇게 충고해 주었다고 합니다. “아무개야! 우리는 각본을 가지고도 진짜 사실처럼 말하는데, 너는 진짜 사실이라고 믿는 것을 가지고도 그렇게 희미하게 전하면 누가 믿겠냐?” 우리가 전도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확신을 가지고 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확신을 가지고 전해야 합니다.

 

  지금부터 약 40여 년 전, 한 사람이 역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너무 불쌍해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체면을 생각하지 않고 그렇게 몇 시간 동안 무릎 꿇고 간절히 기도하자 3시간 후에 그것을 지켜보던 근처 노점상 한 명이 옆에서 같이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렇게 둘이 기도하자 얼마 후에 몇 사람이 더 와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던 8명 중에 6명이 함께 교회를 개척했는데 그 교회가 지금은 엄청난 대형교회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체면을 생각하지 말고 담대하게 주님을 전하십시오. 그렇게 주님을 전하면 겉으로는 체면이 깎이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반드시 깎인 그 이상 체면을 하나님이 올려주십니다. 성도는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자랑하는 마음이 아닌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자신을 참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자신이 가진 소유와 능력과 달란트를 가지고 영혼 구원에 힘써 사용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생각합니다. “나는 아무 능력도 없고, 남에게 내세울 것이 없다!” 그러나 화려한 능력은 없어도 은사가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 하나님이 주신 나름대로의 은사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꼽추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남을 위로하는 일은 끝내주게 잘합니다. 그래서 그분을 만나는 사람마다 큰 힘을 얻습니다. 그처럼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로 영혼을 구하면 됩니다.

 

  지금 자신이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해보십시오. 분명히 남들보다 탁월하게 잘하는 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영혼 구원에 활용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열심히 피알(PR)도 해야 합니다. 피알은 ‘피할 것은 피하고 알릴 것을 알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교만은 피해야 하지만 좋은 것은 열심히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처럼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 최대한 영혼 구원에 활용할 때 영혼도 얻고, 축복의 가능성도 커질 것입니다.

 

4.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본문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는 목자같이 양 무리를 먹이시며 어린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사랑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전도할 때는 특별히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동시에 믿는 사람으로서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왜 요새 전도가 힘듭니까? 성도에게 사랑의 냄새가 잘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도에는 다른 불순한 동기가 없어야 합니다. 전도할 때 이런 생각은 꿈에도 없어야 합니다. “저 사람을 전도하면 내가 교회 전도 왕이 되어서 부상으로 마티즈를 타겠지.” 어떤 교회에서는 한 사람을 전도하면 30만원을 준다고 합니다. 그처럼 돈을 노리고 전도하는 것은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사냥하는 것입니다. 전도의 유일한 동기는 오직 영혼 사랑 때문이어야 합니다. 그런 사랑을 보여주면 반드시 영혼을 얻을 것입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운동회를 하면 ‘왕자님 모시기’란 프로그램을 했습니다. 달리다가 중간에 있는 쪽지를 집습니다. 그러면 쪽지에는 모실 대상이 적혀 있습니다. 선생님이 적혀 있으면 선생님을 모시고, 아빠라고 적혀 있으면 아빠를 모시고 와야 합니다. 그리고 모신 그분과 함께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결승점까지 가면 이깁니다. 그처럼 전도대상자를 왕자님을 섬기듯이 사랑하고 섬겨주면 전도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요새 교회를 보면 2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서 있는 사람과 달리는 사람입니다. 서 있는 사람은 남의 잘못이 쉽게 눈에 들어오고 비판을 잘합니다. 그래서 서 있는 사람이 많아지면 자연히 교회는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 어느 악인이 의도적으로 자기가 속한 공동체를 망치려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냥 서 있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잘못을 보는 비판적인 눈만 발달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같이 달려야 합니다. 지금 마음에 교회로 인도할 왕자님을 몇 사람 꼽아보고 최선을 다해 그들을 교회로 모셔 오십시오. 기도하고, 전화하고, 방문하고, 왕자님처럼 섬겨주면 반드시 복된 결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 영혼 구원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에는 한 해양 동물원이 있습니다. 그 동물원에서 모든 동물을 다 구경하면 마지막 우리에 이런 글귀가 써 있다고 합니다. “The greatest animal in the world(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동물.” 그 글귀를 보고 도대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동물이 뭔가 하고 가까이 가보면 한 장의 대형 거울이 나타나고 그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이 보입니다. 즉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동물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인간처럼 약한 존재도 없습니다. 태어나 한참 누워만 있다가 10달이 되어야 경우 걸음마를 합니다. 그러나 송아지는 낳자마자 뜁니다. 인간이 100m를 9초대에 뛰면 인간 탄환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인간 탄환이 개와 시합하면 제일 느린 개한테도 지고, 다람쥐한테도 집니다. 인간 탄환이란 명칭이 부끄럽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연약한 사람에게 새로운 생각과 결단이 들어가면 엄청난 능력이 생깁니다.

 

  그런 엄청난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 성령님의 감동을 따라 거룩한 일에 나서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그처럼 나 한 사람을 통해 엄청난 일이 일어날 수 있고, 교회도 부흥기를 맞이할 수 있고, 내가 교회로 인도한 한 사람을 통해서도 엄청난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미국에 킴볼이란 주일학교 선생님이 무디란 흑인 소년을 전도했을 때, 그 무디를 통해서 백만 명의 영혼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처럼 나 한 사람의 힘이 결코 작은 힘이 아닙니다.

 

  이제 전도에 한두 번 도전했다가 실패해도 결코 전도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인생의 성패는 거절과 실패의 순간에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 번만 실패해도 납덩이처럼 깊은 바다 속으로 잠기지만 어떤 사람은 여러 번 실패해도 매번 새처럼 다시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그처럼 실패해도 영혼 구원의 사명을 향해 도전할 때 반드시 많은 영적인 자녀를 낳는 꿈같은 역사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아기는 여러 번 넘어져야 걸음마를 배웁니다. 자전거도 여러 번 넘어져야 탈 수 있습니다. 실패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실패는 성공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하는 지불금입니다. 어떤 사람은 많이 시도하고 실패하지만 결국 크게 성공합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시도도 하지 않기 때문에 실패도 없지만 큰 성공도 없습니다. 사실 실패가 두려워서 아무 시도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실패입니다. 

 

  처칠이 상원의원에 출마해서 낙선했을 때 아주 낙심한 상태로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창가에서 밖을 내다보는데 벽돌공이 벽돌을 한 장씩 쌓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쌓은 것이 마음에 안 들면 확 밀어버리고 다시 쌓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큰 담장이 완성시키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 장면을 보고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인생은 벽돌을 한 장씩 쌓는 것과 같다. 내가 여기에서 포기할 수 없다.” 결국 그는 다시 일어나 영국 수상에 올랐고,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전도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몇 번 시도했다가 자존심 상하는 일도 당하고, 오해도 받고, 상처도 받으니까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계속 영혼 구원의 열망을 가지고 전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반드시 좋은 영혼을 낳게 하셔서 우리의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 인생의 가장 큰 목표인 영혼 구원을 다시 한 번 결단하고, 영혼 구원에 나서십시오.

 

  큰 강물도 작은 물방울로부터 시작되듯이 큰 축복의 역사도 작은 것에서 시작됩니다. 세상의 변화는 우리의 결단과 작은 변화로부터 시작되고, 우리가 속한 교회에서 있을 큰 부흥의 역사도 잃어버린 영혼 한 사람을 구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처럼 사명감을 가지고 잃어버린 영혼을 구하는 데에 최선을 다함으로 하늘나라 확장의 초석이 되는 큰 기쁨을 누리고,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 이한규목사(분당 샛별교회) http://www.john316.or.kr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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