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자료 18,185편 ◑/자료 16,731편

하나님의 경고 / 고린도전서 10:1~13

by 【고동엽】 2022. 3. 22.
 
 
목록가기

 

하나님의 경고 / 고린도전서 10:1~13

하나님께서는 이미 구원받은 자신의 자녀가 탈선하거나 멸망의 자리에 이르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복음을 듣지 못해 영원히 멸망 당하도록 내버려지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이런 이유로 자기 자녀들에게는 ?깨어 있으라?는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막13:33)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살전5:6) 우리가 영적으로 잠이 들거나 혼몽한 상태에 빠지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실수하고 잘못된 길로 발을 들여놓기 쉽습니다.
따라서 우리를 건지기 위한 비상 수단으로 하나님께서는 2가지 경보시스템을 마련하셨습니다. 하나는 역사적 경고로서 과거의 사건들을 통해 주시는 경고이며, 다른 하나는 현실적 경고로서 오늘날 벌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주시는 경고입니다.

하나님의 비전이 살아있는 기도
고린도전서 10장은 출애굽기와 민수기에 나오는 사건들을 통합해서 요약해 놓은 말씀으로, 역사적 경고에 대해 가장 선명한 그림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30동안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38년이라는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국민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위기를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몇 십년도 아닌 430년 간을 노예 상태로 있다가 독립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나 다름없습니다. 한 마디로 이미 동화될 때로 동화된 민족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모세라는 위대한 지도자를 세워 오랫동안 고통 받던 자기 백성을 불러 내셨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초자연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그들을 끌어냈습니다. 먼저 어린 양의 피로 애굽 사람과 구별하여 그들의 죄를 씻으시고는, 모세를 앞세워 200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탈출시킨 것입니다.
애굽을 떠나자마자 하나님께서는 혹독한 더위와 햇살을 피할 수 있도록 그들을 구름기둥으로 덮으셨습니다. 그리고는 홍해에 이르자 친히 강을 가르고 길을 내어 그들로 바다가운데로 통과하게 하셨습니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영원히 애굽과 결별하는 큰 축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다시는 애굽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고, 애굽 사람을 만날 필요도 없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소위 출애굽 사건입니다.
이를 일컬어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세례를 받고.?(1-2절) 그런데 구름 기둥의 인도를 받고, 바다를 통과하는 것이 어떻게 세례가 될 수 있을까요?
세례는 누구에게 속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우리가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하였다. 나는 예수님의 백성이다.?라는 것을 전세계에 공포하는 하나의 의식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모세의 인도대로 바다를 통과하여 모세와 완전히 하나가 된 것을 세례로 표현한 것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람이 살 수 없는 황량한 땅, 시내산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에는 먹을 것, 마실 것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과 수백 마리나 되는 가축들을 먹여 살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그들은 죽음의 땅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아침마다 만나라는 귀한 음식을 내려 주셔서 40년 동안 먹게 하셨습니다. 또 큰 바위를 지팡이로 쳐서 그 틈에서 솟아나는 생수를 40년 동안 마시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이것들은 사람이 노력해서 얻은 결과가 아닌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셨기에 신령한 식물, 신령한 물이라고 말씀합니다.
출애굽은 앞으로 예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예비적 사건입니다. 여기에서 모세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린 양의 피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가리키는 예표입니다. 하늘에서 내린 만나를 먹고 바위에서 터진 생수를 마셨다는 것은, 우리가 생명의 양식이자 생수가 되신 예수님을 먹고 마시면서 구원 받게 됨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구약에 일어난 모든 사건들은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에 필요한 예비적인 정보들인 것입니다.

역사적 경고를 발판으로 삼고
이렇듯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며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지탱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저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진 결과 두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광야에서 장사되고 말았습니다.
출애굽기 32장을 보면 대표적인 우상 숭배가 나옵니다.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이 무엇이냐? 하나님은 없다. 우리가 만든 금송아지가 하나님이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대적한 사건이 나옵니다.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죽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 문제를 놓고 중요한 경고를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7절)
민수기 25장으로 넘어가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디안 사람들의 미인계에 넘어가 간음죄를 범하고 맙니다. 이스라엘의 건장한 젊은이들이 진중에 있는 아름다운 처녀들을 보고 미혹받아 전부 성적 타락을 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징계로 하루에 24,000명이 목숨을 잃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본문에서 23,000명으로 기록한 이유는 자신의 기억력에 의존하여 썼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참고할 만한 책이나 성구사전이 없었고 다만 장, 절이 구분되지 않은 큰 양피지 두루마리 뿐이었습니다. 따라서 이것을 일일이 들춰가면서 24,000명이라는 사망자 수를 찾아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그 사건을 회상하면서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8절)고 합니다.
또 민수기 14장에 보면 하나님의 명령대로 가나안 땅에 정탐꾼을 보냈는데, 그들이 돌아와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나쁜 정보만을 백성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새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영원히 하나님의 축복을 놓치고 마는 비극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도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9절)고 합니다.
그리고 한때 물과 양식이 없어 원망하다가 불뱀에게 물려 희생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 사건을 보면서 바울은 ?너희는 저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10절)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사건들을 구약에 기록해 놓으셨을까요? 그 이유는 역사를 통해 경고를 받으면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6절)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11-12절)
말세가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우리도 잘못하면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만을 섬긴다고 하면서, 마음에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어떤 우상들이 자리잡을 수 있습니다. 돈입니까? 쾌락입니까? 야망입니까? 아니면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입니까? 이러한 우상은 우리의 눈을 어둡게 하여 잘못된 길로 빠지게 합니다.
우리가 성적 타락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은 없습니까? 우리가 음란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육적인 쾌락의 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 말씀을 펴놓고 ?나도 간음하다가 망한다.?는 하나님의 경고를 들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원망, 불평하거나 시험하진 않습니까? 혹시 마음 속으로 ?세상에 성경 말씀대로 되는 일이 어디 있어? 그 말씀대로 벌 받거나 복 받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다 성경이 하는 이야기지. 사실은 달라.? 하면서 은근히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교만한 생각을 갖고 있진 않습니까? 바로 이런 사람들을 놓고 하나님께서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현실적 경고에 귀를 기울이라
두 번째 경고 시스템은 현실적인 경고입니다. 곧 당장 눈앞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 경고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3장에 적절한 예가 나옵니다. 적지 않은 수의 갈릴리 사람들이 멀리 예루살렘 성전에까지 와서 제사를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갈릴리, 유대나라를 다스리던 로마 총독 빌라도가 군사를 보내 이유없이 제사 지내는 사람들을 살육해버렸습니다. 그러자 그 피가 제단에 올려놓은 제물에 튀는 등 한바탕 난리가 났습니다.
이 끔찍한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달려와 물었습니다. ?예수님, 갈릴리 몇 사람들이 지금 제사를 지내다가 죽임을 당했고, 그 바람에 제물에 피가 섞여 부정한 제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어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한 마디로 희생당한 사람의 죄 값이 무엇인지 물은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죄가 있어서 그런 일을 당한 줄 아느냐? 그렇지 않다. 너희도 그들처럼 회개하지 않으면 똑같이 망하리라.? ?누구의 죄냐?? 그런 것은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을 향해 너희들도 정신차리지 않으면 망할 수 있음을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이 실로암 망대, 즉 높은 망대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공사가 부실했는지 그만 망대가 무너져 추락사고가 났습니다. 그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습니다. ?예수님, 망대가 무너져 거기에 올라간 사람들이 다 죽었습니다. 누구의 죄 값으로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너희들보다 죄가 많아서 죽은 줄 아느냐? 그렇지 않다. 너희들도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느니라.?
이런 경고성을 가진 사건들은 말세가 가까울수록 더 많이 나타날 것이라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니리.?(마24:6,7)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끔찍한 사건들은 재난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사건들이 일어나면 엄청난 비극이 역사의 현장에 나타날 것이라고 성경은 예언합니다. 이것이 바로 현장의 경고인 것입니다.
우리로 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교회를 깨우기 위해서, 불신자들을 각성시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징조의 성격도 있습니다. 이 세상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는 사인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신다는 사인입니다. 이런 사인으로 하나님께서는 현실적인 경고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폐허가 주는 교훈
지난 9월 11일, 미국의 부와 번영, 그리고 첨단문명을 상징하는 세계무역회관(WTC)이 불과 1~2시간 만에 우리의 시야에서 소리없이 사라지는 끔찍한 사건을 지켜보았습니다. 한 마디로 인간이 자랑하는 20세기 고층문명의 첨단인 쌍둥이 빌딩과 20세기 고속문명의 첨단인 제트 여객기가 충돌하여 함께 파괴된 것입니다.
만약 비행기 1대가 중간에 추락하지 않았다면 백악관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으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이 엄청난 테러사건이 일어나는 와중에, 백악관마저 습격을 받고 무너졌다면 3차 대전이 일어날 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백악관만은 지켜주셨습니다. 이 사건은 절대로 우연한 사건이 아닙니다. 많은 것을 시사하는 하나님의 현실적인 경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침 그 비행기에 탑승했던 32세의 신실한 토드 비머라는 청년과 그의 친구들을 통해 최악의 상황을 막으셨습니다. 그들은 휘튼 대학 출신으로 건장한 청년들이었습니다. 미국의 휘튼 대학은 기독교 대학 가운데 가장 우수한 대학입니다. 빌리 그래함을 비롯하여 많은 인재들을 배출하여 사회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친 대학입니다.
그 청년은 컴퓨터 기사이자 어느 교회에서 충실하게 봉사하는 평신도로서, 앞으로 선교사로 나갈 준비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건 발생 당시 믿음 좋은 비머와 그의 친구들은 가족들에게 휴대폰으로 기내 상황을 전한 후, 주기도문을 같이 외우는 것을 신호로 테러범에게 돌진했습니다. 그 결과 테러범들이 의도한 대로 워싱턴에 진입하지 못하고 중간에 추락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미국을 지키신 것을 봅니다.
한편 비머의 아내는 내년 1월에 셋째 아이를 얻을 예정인데, 남편의 뜻을 이어 3자녀를 선교사로 키우겠다는 고백한 것이 신문을 통해 본 바 있습니다.
이번 테러사건을 놓고 어느 목사님은 신문 지면에 다음과 같이 해석해 놓았습니다. 세계무역회관과 펜타곤이 파괴된 이유는 클링턴 대통령 재임 시절, 잦은 여자들과의 스캔들 때문에 하나님께서 징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편협한 해석은 좋지 않습니다. 클링턴 대통령이 잘못했으면 그를 벌할 것이지, 왜 수많은 영혼들이 죽임을 당해야 합니까? 마치 망대가 무너져 희생당한 사람들을 보면서 ?저들에게 무슨 죄가 있어서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라고 묻는 사람들과 똑 같은 것입니다.

자랑거리가 위협거리로
이번 사건은 오만불손과 방종, 그리고 물질을 우상으로 섬기는 미국을 향한 하나님의 엄한 경종입니다. 뿐만 아니라 갈수록 세속화되어 가는 미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경종입니다. 너무 오랫동안 풍요로운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영적으로 깊이 잠이 드는 것입니다. 40만개에 이르는 미국 교회 중 교역자가 없는 교회가 지금도 많습니다. 왜냐하면 목회자가 되면 생활고에 시달리며 고생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제는 똑똑한 젊은이들이 신학교를 들어가질 않습니다. 이와 같이 점점 힘을 잃어가는 미국 교회를 향해 하나님께서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미국은 국민소득이 우리나라의 5배나 되는 35,000불로 부유한 나라입니다. 또한 세계 에너지의 50%이상을 북미가 사용하고 있어 세계를 오염시키는 주범이기도 합니다. 얼마나 자원이 풍부한지 ?미국 사람들은 200년 동안 놀고 먹어도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복을 받은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국익을 위해서라면 앞을 가리지 않습니다. 지난 90년 파나마의 국가 원수인 노리에가(M. A. Noriega)를 미국 법원에 압송하여 재판에 회부하기까지 했습니다. 소수민족에 대한 인종차별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나친 자국민 우월의식에 젖어있습니다. 그리고 구약적인 잘못된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팔레스타인에 무차별 공격을 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옹호하여 국제평화질서를 어지럽힌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우산 아래 온갖 범죄를 세계 도처에 퍼뜨리는 죄악의 온상이요, 물질주의와 개인주의의 대명사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금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직시해야 합니다. 곧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은 그들이 자랑하는 것 때문에 망합니다. 그들이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고 생각하는 것 때문에 망합니다. 이번에 테러범들이 사용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의 첨단 기술의 상징인 여객기, 초현대식 고층빌딩, 신용카드, 렌터카 시스템, 인터넷... 미국이 우상으로 여기는 최첨단의 과학을 이용해서 이번 테러가 저질러졌습니다.
결국 미국이 자랑하는 민주주의, 개방성, 자유 등을 악한 세력들이 역으로 이용했던 것입니다. 이는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신화를 다시 한번 입증한 것입니다. MD(Missile Defense: 미사일 방어)로 상징되는 미국의 철통 같은 방어망을 작은 손가락 하나만으로도 뚫을 수 있음을 입증한 것입니다.
미국은 보복만을 앞세우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준엄한 경고가 무엇인지를 깊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선 줄로 생각하면 넘어질까 조심하라.?(12절)는 말씀은 개인은 물론 국가, 교회에도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준엄한 경고에 다시금 영적으로 깨어나지 못한다면 미국과 미국교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11일 사건이 터지자마자 그 다음 주일, 사람들이 교회마다 많이 몰렸다고 합니다. 미국 윌로우크릭교회의 통계에 의하면 주일 출석인원 18,000 명에서, 사건 이후 5,000 명이 증가된 23,000 명이 출석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일회성으로 끝날 것입니다. 충격과 흥분이 가라앉게 되면 또다시 교회를 멀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경고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번 사건은 미국과 미국교회를 향한 경고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이는 한국교회와 대한민국, 그리고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도 미국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의식구조가 점점 미국 사람을 닮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생활 패턴이 점점 미국 사람을 흉내내고 있지 않습니까? 교회조차도 점점 영적으로 잠들고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까? 오늘날 개인과 교회가 하나님보다도 더 크게 생각하고 있는 우상이 무엇입니까? 돈, 명예, 야망, 좋은 건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랑하는 그것들을 통해서 얼마든지 경고하실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이 경고를 귀담아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경고가 담긴 사건 앞에서도 여전히 기도하지 않고 즐기는 데만 바쁩니다.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인 경고를 듣고도 지나쳐 버립니다. ?옛날에 있었던 사건일 뿐인데, 지금 나와 무슨 상관이람. 신앙생활을 등한히 해도 잘 사는 사람이 허다한데 말이야.? 이렇듯 교회 안에도 얼마든지 잠자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리 흔들어도 깨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예로 담배로 인해 1년에 8~900만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담배갑에 아무리 담배의 해악성에 대한 경고문을 표기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앞으로 20년 후면 세계적으로 1,000만 명이 담배 때문에 희생당한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서 700만 명은 개발도상국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이런 끔찍한 경고를 받으면서도 여전히 담배를 피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현실적인 경고를 듣지 않는 것만큼 비참한 일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끔찍한 사건으로 우리에게 자꾸 경고하실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잘못되지 않도록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위험한 벼랑에 서게 되면, 어떤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우리를 깨워 위험에서 벗어나도록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입니다.
우리 각자 자신을 돌아 봅시다.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경고를 받고 있는 것이 없습니까? 자녀에게 어떤 문제가 일어납니까? 하나님께서 무엇을 경고하는지를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또는 예기치 않은 사건이 일어납니까? 거기에 메시지가 담겨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어쩌면 나에게 우상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잘못된 생활에 발목이 잡혀 있는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죄를 범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중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면서 마음으로는 돈과 명예를 더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경고 시스템이 어떻게 발동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그래서 ?아, 이것은 어떤 의미가 있구나! 하나님께서 나를 깨우기 위해, 그리고 나로 하여금 돌아서도록 하기 위해 신호를 주시는구나.? 하고 깨달아지면 반드시 순종해야 됩니다. 그것을 무시하고 지나치면 그 다음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신앙적으로 교만이 틈탈 때면 넘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크고 작은 일들을 통해 경고를 할 때마다, 항상 두려운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깨어있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아무리 경고를 해도 자기 갈 길을 달려가는 불쌍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도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들로 하여금 정신차리도록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지진, 기근, 테러, 전쟁을 통해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구원하도록 우리를 먼저 구원해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찾아가서 하나님의 경고를 전해야 합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쌍둥이 빌딩이 붕괴되기 직전, TV에 방영된 한 장면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 빌딩 위쪽에서 창문을 열고 하얀 보자기를 계속해서 흔드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는 빌딩 아래에서부터 솟구쳐 오르는 화염과 연기 속에서 구조의 손길을 절박하게 기다리며 있는 힘을 다해 보자기를 흔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탈출할 수도, 구조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3~40분 후 빌딩이 무너지면서 그 사람도 무서운 폭음과 함께 우리 눈에서 사라졌습니다.
보자기를 흔드는 그 사람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습니까? 오늘날 우리 주변에 예수 안 믿는 사람의 모습과 같지 않습니까? 그들이 지금처럼 살면 마지막 날 아무리 보자기를 흔들어도 건져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어두움의 권세에 사로잡혀 있는 불쌍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보자기를 흔들며 살려달라고 아우성 칠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영의 눈으로 그들을 보아야 합니다.
아직도 구원의 문이 열려있는 지금, 그들을 찾아가서 하나님의 경고를 전하고 구원받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은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에는 유토피아가 없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는 것만이 이 땅의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눈 앞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각자가 어떠한 경고를 받아야 하는지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직도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 하나님의 경고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들을 구원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남편, 자녀, 친구, 이웃이 그런 비극을 맞이하지 않도록 그들을 구원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주신 이번 경고를 통해 다시 한번 영적으로 깨어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 : 전도카페
글쓴이 : 전도자:박목사 원글보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