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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 사도행전 5:30~32

by 【고동엽】 2022.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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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 사도행전 5:30~32

 

거역할 수 없는 명령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과 앞으로 등장할 교회를 향해 복음을 전하라는 특별한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것도 어느 한 민족만이 아닌 모든 민족에게 온 세상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명령은 굉장히 엄숙한 명령이기에 학자들은 대사명, 제일 큰 명령이라고 별명을 지어 부릅니다.

신약성경에는 이 지상명령이 약 5번 반복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마태복음 28장 19절에 의하면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고 말씀합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에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합니다. 또 누가복음 24장 47~48절에서는 복음 전파에 대해 간접적으로 명령하고 있습니다.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여기에서 '이 모든 일에 너희가 증인이라.'는 말에는 '너희가 이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명령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20장 21절에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곧 '파송한다'고 말씀합니다. 이제 사도행전 1장 8절에 가면 그 절정을 이룹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여기에서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에는 역시 '내 증인이 되라.'는 명령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하나님으로부터 위임 받은 최고의 통치자요, 최고의 권력자요, 왕 중의 왕입니다. 바로 그분이 우리를 향해 마지막으로 명령하셨습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 그리고는 하나님 나라로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엄숙한 명령 앞에 그 누구도 '아니오'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일단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주님'으로 부르는 사람은 이 명령에 복종해야만 합니다. 만일 예수를 믿으면서도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을 대수롭게 않게 여긴다면 그분의 가장 큰 명령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물론 전도하지 않고 적당히 신앙생활해도 천국에는 들어갈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장 큰 명령을 고의적으로 거부하거나 무시하고 살았다는 점에서 책임을 면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우리에게 대단한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가 믿지 않는 형제들을 볼 때, '아, 이 형제를 구원해야지. 예수 믿도록 해야지. 어떻게 하면 전도할 수 있을까?' 하면서 안타까워 합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의 명령을 제대로 알고 있는 자일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20년 가까이 대각성전도집회라는 새생명축제를 열고, 해마다 6개월 동안 준비하면서 한 영혼이라도 구원코자 정성을 쏟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만일 교회가 '세상 끝날까지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명령을 조금이라도 등한히 한다면, 그 교회는 존재할 이유가 없어 집니다. 전도는 교회가 세상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이유이므로 이를 거역하면 교회의 머리 되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든지 주님의 이 명령에 순종하고자 하는 몸부림으로 매년마다 대각성전도집회, 새생명축제를 열어 오늘까지 이어온 것입니다. 그동안 얼마나 엄청난 열매들이 우리 앞에 나타났습니까?

그러므로 이 명령을 예사로 보지 마십시오. 선교사들이나 하는 특별한 소명으로 보지 마십시오. 예수님의 나의 주님으로 고백합니까? 나의 왕이라고 고백합니까?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까? 그렇다면 그분이 주신 제일 큰 명령을 거역하면서 인생을 살거나 신앙생활을 해선 안됩니다. 그것은 모순입니다.

 

승산이 없어 보이는 싸움

그러나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세상적으로 볼 때 너무나 비현실적입니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일을 하도록 명령을 받은 사람이라면 무언가 잘 갖추어져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명령을 들은 11명의 사도들을 보십시오. 대부분 그 당시에 무시당하던 갈릴리 지방의 못 배운 사람들이었습니다.

나중에 예루살렘 다락방에 모인 120명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인 무리들, 그들 중에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병이 나은 경험이 있거나 예수님을 통해 인생을 새롭게 시작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공통점이라면 그들 대부분이 사회적으로 주목 받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사람들에게 온 세상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라고 했으니 무슨 현실성이 있겠습니까? 예루살렘에서 명함도 못 내밀 사람들인 것입니다. 만일 베드로가 예루살렘 골목 모퉁이에서 갈릴리 사투리로 "예수 믿으십시오. 예수님은 죽었다가 살아나셨습니다."라고 외치면 어느 누가 그 말을 듣겠습니까?

한번 전도지를 가지고 젊은이들이 많이 드나드는 광장에 한번 나가보십시오. 그리고 한 골목에 서서 "예수 믿으세요."라고 전해보십시오. 그러면 내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고 약한지 금방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도 남자들은 마음이 너그러운 편인지 대부분 전도지도 받고 머리도 끄덕끄덕 합니다. 그런데 팔짱 끼고 가는 여자들은 얼마나 표독한지 탁 뿌리치고는 안 받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어떻게 해야 그들을 예수 믿게 할 수 있습니까?' 하는생 아, 이것은 절벽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이런 하잘 것 없는 존재를 불러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했으니 현실성이 없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예수님의 명령이 현실성이 없는 이유는 이 세상이 너무나 악하다는데 있습니다. 세상은 아직도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의 점령지역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이미 악한 권세를 짓밟고 승리하신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세력은 활동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마귀와 사탄과 악령을 일컬어 '세상 임금'이라고 요한복음에서 3번이나 반복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그들의 권력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한 지 3~40년이 지난 후에도,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4절에서 사탄을 일컬어 '이 세상 신'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승리하셨지만 아직 사탄은 병도 안 걸렸습니다. 사탄은 드러누워서 앓고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여전히 원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무서운 세력입니다. 그러므로 우주는 아직 전쟁 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사탄의 세력이 비등해서 서로 파워 게임을 하는 전쟁은 아닙니다. 이것은 일종의 내란입니다.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들어와 내란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초강대국인 미국에 몇 명의 테러범들이 들어와 미국 사람들의 마음 속에 공포와 혼란을 일으켰던 것처럼, 오늘날 사탄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이 큰 우주 속을 돌아 다니면서 여전히 내란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세력을 확보하고 자신이 지배하는 백성들을 늘려 나가는 것입니다.

사탄에게 지배와 점령을 당한 지역들이 우리 주변과 세계 도처에 많이 있습니다. 큰 세상을 이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라고 말합니다.(고후4:4) 쉽게 말하면 사람들의 마음을 흐트려놓아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듣지 못하게 하고, 설령 들었다 해도 깨닫지 못하게 하고, 깨달았다 해도 예수를 믿지 못하도록 그 마음을 꽉 붙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이 점령하는 지역입니다. 이런 사탄의 점령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습니까? 이처럼 악한 세상을 향해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므로 너무나 현실성이 없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으면

그렇다면 복음을 전해야 될 사람을 보아도 시원치 않고, 복음을 전해야 될 현장을 보아도 절망적인데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땅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확장할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 분명하게 명령하신, 도무지 될 것 같지도 않은 그 일을 어떻게 완수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이 난제를 푸는 열쇠가 있습니다. 바로 성령입니다. 우리 같은 별수없는 존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성령입니다. 이 악한 세상을 다룰 수 있는 열쇠가 성령입니다. 성령의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으면 강해집니다. 예수님만큼 강해집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으면 아무리 악한 세상이라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고, 우리의 적수조차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이미 입증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무리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입고 오셨다 할지라도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권세를 지배할 수 있는 영광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세상에 오셔서 일할 동안에는 모든 것을 성령께 의탁하셨습니다. 성령이 말하게 하셔서 말하셨고, 성령이 전도하게 하셔서 전도하셨습니다. 성령이 병든 자를 고치게 하셔서 고치셨고, 나중에는 성령이 무덤에서 일어나게 하셔서 예수님이 일어나셨습니다. 전적으로 성령께 의탁하셨습니다.

그 사실에 대해 사도행전 10장 3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예수님께서 세상에 복음을 전하시고 십자가에서 승리하셨습니다. 바로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말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그러셨던 것처럼 이제 제자들과 우리도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은 성령을 받아야 한다. 성령을 받아야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느니라."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여 그 권능으로 무장될 때까지는 밖에 나가 전하지 않도록 말씀하셨습니다.(눅24:49)

그리고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말씀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이어서 그 권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말씀합니다. 우리가 사는 동네에서만 전도할 수 있는 권능입니까? 예루살렘에만 전도할 수 있는 권능입니까? 우리 집안 식구만 전도할 수 있는 권능입니까? 아닙니다. 예루살렘을 넘어 사마리아까지, 우리나라로 말하면 전라도까지, 그리고 더 나아가 갈릴리까지, 저 북한까지 경계를 초월합니다. 성령은 그 능력이 커서 땅 끝까지 맘껏 뻗어 나갑니다. 요즘 말로 하면 세계 끝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능력을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십니다. 교회에 주십니다. 성령의 능력은 이 만큼 강합니다. 이 만큼 역사합니다. 제자들이 성령의 능력을 받아 그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몸소 체험하지 않았습니까? 불가능해 보이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기적의 낳는 성령의 역사

우리는 30, 31절을 통해 전도가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다시 살아나셨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예수님"하고 부르면 죄사함을 얻는다고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전도현장에서 한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나 혼자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32절) 곧 성령도 증인이더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전도할 때, 나 혼자 전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나와 같이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엄청난 열매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렇듯 성령의 능력을 받으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렇게 비겁한 사람 베드로가 전도를 하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가 복음을 전한 대상은 몇 일전만해도 살기등등하여 예수를 못 박아 죽이자고 흥분했던 폭도들이었습니다. 아직도 그 감정이 누그러지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너희들이 못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다. 예수 믿고 죄사함 받으라."고 전하자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가슴을 치며 돌아오는 기적같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사도행전 1장부터 28장까지의 기간을 약 30년으로 봅니다. 맨 처음 사도행전에서 등장한 성도 수는 120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약 30년이 지난 후, 사도행전의 기간동안 예수 믿고 돌아온 성도들의 수를 학자들은 10만 명까지 추정합니다. 이 기간동안 120명의 갈릴리 촌사람들이 복음을 전한 결과, 한 세대가 가기 전에 사마리아를 넘어 헬라권에 이르기까지 수만 명의 사람들이 예수 믿고 돌아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그 능력이 얼마나 큰가를 입증하셨습니다. 사도들이 성령을 받고 그 능력이 얼마나 강한가를 입증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초대교회도 이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과 사도들과 초대교회 사람들이 마신 우물물을 똑같이 마셔야 됩니다. 즉 하나님의 능력의 원천인 성령을 마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성령은 이미 교회에 임하셨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임하셨습니다. 지금 우리 마음에 거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를 드리며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지난 23년 동안 성령이 사랑의교회에 임하셔서 역사하셨기 때문에 대각성전도집회를 18번 거듭하면서 많은 기적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적어도 14,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 자리에서 복음을 듣고는 예수를 믿겠다며 눈물 흘리고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성령이 거하시지 않았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교회에, 그리고 내 안에 임하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안주하면 안됩니다. 중요한 사실은 그 성령이 충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와 내 안에, 내 가정에, 그리고 한국교회에 충만해야 됩니다. 충만할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도행전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행4:8), '바울이...성령이 충만하여'(행13:9),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행7:55) 하나같이 충만하다는 대명사가 있습니다. 이 충만의 역사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된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돌아오는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당신은 성령 충만합니까?

성령 충만은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 충만한 교회는 특징이 있습니다. 자신이 성령 충만한 지 안 한지를 한번 점검해 보십시오. 만약 성령 충만하지 못하다면 충만하기를 사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첫번째로 성령 충만하면 입이 열립니다. 오순절 다락방에 임한 성령은 제일 먼저 120명의 입을 열어 놓았습니다. 꼭 다물고 있던 사람들의 입을 열어 하나님의 큰 일, 복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도록 하셨습니다. 온 예루살렘에 소동이 일어날 정도로 외쳐댔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안 믿는 사람을 옆에 두고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합니다. '아, 저 영혼을 어떻게 하면 구원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피곤해서 입을 다물고 전할 기회를 놓쳐버린 날이면 집에 돌아와서 마음이 편칠 않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에게는 그런 감정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차에서든, 길에서든, 음식점에서든 믿지 않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이상하게도 말을 건네고 싶습니다. 어쩌다가 20년 전의 동창을 만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할까?' 하고 머뭇거립니다. 그러나 "너 교회에 나가니? 예수 믿니?" 하고 일단 입을 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전도폭발을 배웠던지 안 배웠던지, 성경을 많이 알든 모르든 관계없이 나도 모르게 말문이 트이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성령이 충만하면 성령께서 말씀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성령충만하면 담대해집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겁쟁이 베드로가 성령충만하자 얼마나 담대해졌는지 사도행전을 열기만 하면 금방 나옵니다. 전도라는 것은 사탄을 향해 선전포고하는 것입니다. 내가 전도지를 들고 나가는 자체가 사탄을 향해 선전포고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를 일컬어 '전투하는 종교'라고 합니다. 지금도 사탄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교회를 핍박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얼마나 혹독하게 교회와 전도자들을 핍박하는지 모릅니다.

데이빗 바렛(David B. Barrett)이라는 유명한 통계학자가 있습니다. 그의 통계에 따르면 1900년대 복음을 전하다가 그리고 믿음을 지키다가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이 1년에 15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북한에서의 참혹한 핍박까지 포함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매일같이 400명 가량이 지구 도처에서 예수님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사탄은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집요하게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핍박하고, 복음을 듣고 예수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는 자들을 못살게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탄이 아우성을 쳐도 우리가 성령 충만하면 사탄의 역사를 짓밟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미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보면 겁이 납니까? 전도하려고 하면 부끄럽습니까? 아직도 충만하지 못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충만하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술을 마시고 갈 지(之)자 비틀거리며 걷는 것은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지 않으면서, 한 영혼을 영원한 죽음에서 구원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을 만들고자 수고하는 것은 부끄럽게 생각합니까? 이것은 성령 충만하지 못해서 나오는 인간적인 반응입니다.

 

성령 충만한 대부흥의 현장

세 번째로 성령 충만하면 표적과 기사가 나타납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16:17-18)

개인적으로 기독교 일각에서 주장하는 능력 전도에 별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전도할 때 무조건 악한 귀신과 혈투를 벌여야 전도가 된다는 주장에 의견을 달리합니다. 우리가 전도하러 갈 때마다 '귀신들아, 내가 왔다. 한번 싸워보자.'는 식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무슨 표적이 뒤따라야 전도가 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나갑니다. 그 이름 자체에 권능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시고 충만합니다. 이것 만으로도 충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난 23년 동안 사랑의교회가 무슨 표적, 기사와 같은 것을 보지 않았어도 수많은 심령이 어두움의 쇠사슬을 끊고 주님 앞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예수의 이름과 복음 그 자체에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표적과 기사를 일으키기도 하십니다. 특별히 전도하기가 어렵고, 잡다한 귀신이 진을 치고 있는 선교지의 최전방에서는 필요할 때마다 표적과 기사를 일으켜 주십니다.

램지 맥뮬란(Ramsay MacMullan) 박사라는 예일대 역사학 교수가 있습니다. 로마 제국을 연구한 가장 권위있는 교수로 알려져 있습니다. 알다시피 로마 제국은 황제를 신으로 섬기는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잡다한 신들과 신화에 겁을 먹고는 날마다 제사를 지내는 나라였습니다. 이런 나라가 어떻게 300년 사이에 기독교 국가로 바뀌었을까요? 어떻게 그 짧은 기간 안에 별볼일 없는 몇 사람들이 전하는 복음 앞에 그 큰 제국이 무릎을 꿇게 되었을까요? 이것이 맥뮬란 박사에게는 굉장한 관심사였습니다.

그는 이에 대한 연구를 계속한 결과 책 1권을 출간했습니다. 그 책에 의하면 당시 기독교가 로마 제국을 정복할 수 있었던 가장 두드러진 이유로 귀신을 쫓는데 아주 탁월했음을 들고 있습니다. 전도자들이 귀신들린 사람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물러가라."고 선포하면 귀신이 깨끗하게 물러나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고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또 어떤 신전에서는 예수 믿는 사람들의 한 마디 외침에, 그 신전에 있는 모든 것들이 아수라장 되어 버리는 역사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소위 이러한 하나님과 하나님보다도 열등한 어떤 신과의 대결에서 예수의 이름이 이기는 능력과 표적이 계속 나타나자, 나중에는 로마 제국을 흔들어 놓는 큰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지금도 선교지에 가면 무식한 토족들을 상대로 복음을 전할 때면 선교사를 통해서 표적과 기사가 많이 나타납니다. 우리도 성령 충만하면 이와 같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네 번째로 성령 충만하면 놀라운 전도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예루살렘에서처럼 집단 회심이 일어납니다. 빌립보에서처럼 가족들의 회심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개인 회심이 일어납니다. 개인적으로, 가족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는 대부흥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성령 충만할 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전도해서 한 사람이 예수 믿고 돌아왔다면 내가 성령 충만한 증거입니다. 때로 예수 믿은 그 한 사람때문에 가족들이 다 예수 믿고 돌아와서 교회에 나오기도 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으라고 하는 것은 회개를 촉구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신다는 약속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란 결코 쉬운 말이 아닙니다. 그 말은 지금까지 하나님을 대적하고자 든 칼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으라는 말입니다.

C. S. 루이스의 말처럼 '회개하라'는 말은 그 사람을 향해 죽으라는 말과 같습니다. 즉 일종의 죽음을 각오하라는 말인데, 누가 감히 사람들에게 '너 칼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죽으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성령 충만하면 실제로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성령 충만한 자들을 통해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놀라운 열매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 가운데 전세계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작년에는 중앙 아프리카에서 복음을 전할 기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제 전도집회가 열린다는 말을 듣고 수만 명이 마을 외곽의 큰 광장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명이 발달하지 못한 탓에 그곳에 화장실 시설이 없었습니다. 문제는 이 목사님이 몸에 약한 부분이 있어 화장실을 자주 가야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대로 시설이 된 곳이면 단상에 앉아 있다가도 필요할 때 잠시 다녀오면 되는데, 이곳은 상황이 달랐습니다. 결국 고심 끝에 유아용 기저귀를 차고 나갔습니다.

이제 말씀을 전하려고 단상에 앉아 있는데, 원래 약했던 심장이 그날 따라 더욱 조여 오면서 답답함을 견딜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 앞에 계속 기도로 매달렸습니다. '하나님,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러 왔는데, 만약 심장에 무리가 와서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무슨 망신입니까? 이 잡다한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 앞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됩니다. 복음을 전하고 숙소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순간만은 저를 좀 도와주세요. 꼭 좀 도와주세요.' 그리고는 일어나서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복음을 전하시자 수천 명이 예수를 믿겠다고 나오는 광경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렇듯 성령 충만하면 지금도 엄청난 열매가 나타납니다.

지난 8월에 박우인, 임효숙 집사 부부가 팀장이 되어 자원자 39명과 함께 제주도 섬전도를 떠난 적이 있습니다. 팀원 중에는 71세의 허학관 집사님도 있었습니다. 알다시피 제주도는 전국에서 복음화율이 가장 낮은 지역으로, 단지 8%만이 신자일 정도로 열악한 곳입니다. 그래서 현지에서 사역하시는 목사님들은 "한 사람 전도해서 예수 믿고 돌아오면 육지에서 100명이 돌아오는 것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저희 교회 전도팀이 그곳에서 기도하고 300명 가까운 사람에게 복음을 전한 결과, 놀랍게도 110명이 예수를 믿겠다고 결신했습니다. 이것은 전도팀이 성령으로 충만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결신으로 끝나지 않고 그들이 교회에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날 제주도에 있는 법환교회 목사님이 매우 흥분해서 연락하셨습니다. 사랑의교회 전도팀이 다녀간 후, 그 주일에 13명이 예수를 믿겠다고 교회로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일에 나온 사람까지 합하면 35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는 1명이 100명에 해당되기 때문에 3500명의 영혼이 돌아온 것이나 다름없는 숫자였습니다. 이렇듯 그 교회가 새생명의 잔치로 들떠 있었던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성령 충만하면 하나님께서 큰 열매를 주십니다. 내가 성령 충만하면 가정에 불신을 고집하는 사람이 있어도 반드시 그가 예수 믿고 돌아 올 수 있습니다. 사랑의교회가 성령 충만하면 서초동 젊은이광장을 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결국은 우리 모두가 성령 충만하면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 충만할 수 있습니까? 대답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만일 개인적으로 '나는 성령 충만하지 못한 것 같다.'고 생각되면 열심히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의교회가 대각성전도집회를 앞에 놓고 기도해야 됩니다. 성령 충만하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미 몇 일전부터 24시간 연속기도모임이 가동되었습니다. 다락방 순장과 순원이 정해진 시간에 교회에 나와서 기도합니다. 1시간 동안 기도하고는 다음 다락방에 바통을 건네주고 갑니다. 그래서 24시간 동안 기도가 끊어지지 않도록 앞으로 2주 이상 기도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기도를 통해서 개인이 성령 충만하게 될 뿐만 아니라 교회가 성령 충만하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중보기도실에는 이 예배를 위해 기도하는 팀들이 있습니다. 설교하는 저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24시간 변함없이 성령 충만하기를 위해 기도하고, 대각성전도집회에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받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기도하면 성령 충만해집니다. 우리 모두 성령의 사람이 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성령 충만해서 우리 입이 열리도록 합시다. 성령 충만해서 담대한 전도인이 되도록 합시다. 성령 충만해서 우리를 통해서도 이적과 기사가 나타나도록 합시다. 성령 충만해서 우리를 통해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받는 대부흥이 일어나도록 합시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소원입니다. 남의 일처럼 생각하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큰 명령을 공공연히 거역하면서 예수를 잘 믿는 것처럼,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처럼 착각하지 마십시오. 다시 한번 우리 모두가 성령 충만하길 바랍니다.

 

출처 : 전도카페
글쓴이 : 전도자:박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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