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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전도/ 열성(성령 충만)
열성이란 자신이 성령 충만할 때 얻게 되는 것으로서 전도의 주체는 성령님이므로 내 마음속에 성령이 충만하여 전도열이 뜨거워질 때 나약하고 메마른 신앙이 활력이 넘치고 생기가 돌아 부정적인 시각이 긍정적인 시각으로 불가능이 가능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전도는 열성으로 하여야 한다.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 도다." (고후 5:13-14)
바울은 사람들이 간곡히 말리는 것을 뿌리치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서 전도를 시작하자 그 소식을 들은 제사장들이 쫓아 나와 바울을 죽이려고 달려들었다. 다행이 천부장의 도움으로 목숨은 건지지만 옥중으로 끌려가면서도 돌층계 위에서 많은 사람들을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열변을 터트릴 수 있었던 것은 미치도록 전도에 대한 열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스스로를 미치긴 미쳤으되 주를 위하여 미쳤으며 "나는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였다. 바울은 주를 위하여 미첬듯이 전도에도 미친 사람이었다.
교회에서 전도왕이 되는 비결은 주를 위하여 미쳐야 한다. 전도왕의 공통점은 전도에 미쳤다는 사실이다. 세상일도 "하는 일에 미쳐야 성공한다"는 말처럼 전도에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전도에 미치도록 열성적이라는 사실이다.
전도란 미적지근하게 해서는 안되며 하든지 말든지 미치도록 확실하게 하여야 한다.
♣† 전도인은 난로와 같이 뜨거워야 한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계 3:15-16)
주님께서도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며 차든지 더웁든지 확실한 것을 요구하셨다.
불신자는 전도인의 뜨거운 열성에 감동되어서 교회에 나오는 경우가 많다. 전도인의 열성은 뜨거운 난로 같아서 아무리 차가운 불신자의 마음도 쉽게 녹일 수 있어야 한다. 냉랭한 불신자를 주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전도인 자신이 먼저 뜨겁게 타올라야 한다. 전도인이 자신도 뜨겁지 않으면서 차가운 불신자를 뜨겁게 만들 수는 없다. 더구나 전도란 악한 사단과 싸우는 전투이므로 뜨거운 열성이 없이 미지근한 마음으로 전도해서는 성공보다 실패를 만날 뿐이다. 전도는 뜨거운 가슴으로 해야 한다. 기도와 찬송을 불러도 뜨겁게 하고 전도 현장에서도 뜨겁게 주님을 증거할 때에 불신자의 마음도 뜨거워져서 쉽게 전도의 열매를 꽃피울 수 있는 것이다. 전도인은 자신이 먼저 열성에 불타지 않고서 불신자를 주님 앞으로 인도하려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 열성은 전염성이 강하다.
하품처럼 열성도 전염성이 강하다. 전도인의 열성적인 말과 태도는 불신자에게 쉽게 전염이 되어서 그의 마음속에도 열성의 훈풍이 일어나 신앙의 불꽃을 피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도인은 활기찬 표정과 높은 음성과 열성적인 태도로 뜨겁게 전도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전도인의 열성적인 태도는 더 나아가 자신의 삶도 열성적으로 만들어서 모든 일에 자신감을 갖고 활기차게 만든다. 열성은 불같이 옆으로 퍼지는 성질이 있으므로 전도인이 열성적으로 전도 할 때에 냉랭한 주변 사람들이라도 모두 불붙게 되어 있다.
♣†열성으로 감동시켜야 한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 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렘 20:9)
복음을 전하는 전도인의 모습이 뜨겁고 열성적일 때에 그를 바라보는 불신자의 마음도 뜨겁게 되는 것이다. 전도인은 너무 열성적이라는 핀잔을 들을지라도 열성적으로 전도함으로서 불신자를 감동시켜야 한다. 초신자가 의외로 오래된 신자보다도 전도를 잘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예수 믿은 첫사랑의 뜨거운 열성으로 겁없이 전도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오래된 신자는 "묵은 닭이 알을 낳을 수 있느냐" 라고 소극적이며 미적지근한 태도로 전도함으로서 결국 아무 성과도 올리지 못하고 중단하고 마는 것이다.
전도대상자에게 교리를 잘 설명하고 충분히 이해를 시켰어도 상대방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전도인의 자세가 미적지근하여서 그의 마음에 뜨거운 열의(熱意)를 일으키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미적지근하게 전도한다면 아무리 기독 신앙에 대하여 잘 설명하여도 불신자는 그의 말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의혹의 눈으로 바라 볼 것이다. 그러나 전도인의 자세가 뜨겁고 열성이 넘쳐서 상대방에게 열의(熱意)가 전달된다면 그의 마음에 감동이 일어나고 결국 교회를 향하여 일어서게 된다.
☞ 전도인의 자세
전도란 내가 먼저 열성적일 때 상대방의 마음도 열성적이 된다.
전도인의 미지근한 태도는 불신자의 마음에 미지근함을 낳고
전도인의 망설이는 태도는 불신자의 마음에 망설임을 낳으며
전도인의 소극적인 제의는 불신자로부터 거절만을 받을 뿐이다.
그러나 전도인의 열성은 불신자의 마음에 열성을 갖게 한다.
자신감(믿음)
자신감이란 자기 스스로 갖게 될 때에 교만해지기 쉬운 것으로서 자신감이란 자신이 성령님과 한 몸이 되어 믿음이 강건하게 될 때 어느덧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
♣†성령님 안에 있을 때에 자신감을 갖게 된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 가 모든 것을 할수 있느니라 " (빌4:12-13)
주님께서 자심감을 갖는 비결을 빌립보서 4장에서 가르쳐 주셨으니 내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성령님)안에 있을 때에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교인들이 왜 전도를 못하는가? 성경을 몰라서 전도를 못하는 것이 아니며 왜 전도를 하여야 하는지 이유를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원인은 마음속에 전도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창피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전도에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도하고자 원하면 먼저 세상 체면을 버려야 한다.
리빙스턴은 그의 묘비에 "여기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섰듯이 주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생각할 때에 세상 체면은 아무것도 아니므로 세상 부끄러움과 체면을 버려야 한다. 교인들은 소심하고 창피한 것을 먼저 생각함으로서 자신의 행동을 묶어 두는 자기 최면을 걸고 있다.
자신감이란 직접 뛰어들어 체험할 때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것으로 전도인은 일선에 나가 불신자와 부딪쳐 볼 때에 지금까지 걱정했던 일들이 별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자신감과 두려움은 동전의 앞뒤와 같이 항상 함께 붙어 다니고 있음으로 전도인이 조금만 마음이 해이(解弛)해지면 금방 두려움이 행세(行勢)를 하는 것이다. 전도인은 불가능을 생각하는 습관을 버리고 마음속에 성령이 충만하여 "전도는 쉽다""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전도인은 생각에 폭과 높이를 크게 가져야 한다.
"할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막 9:23)
전도에 성공과 실패는 주위 환경이나 여러 가지 여건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전도인 자신의 마음속에서 적극적인 생각을 갖고 자신감을 갖고 전도를 시작했느냐 아니면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생각을 갖고 시작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개구리는 천장까지 뛸 수 있는 파충류이지만 뚜껑있는 어항에 키우면 나중에 어항 밖으로 내놓아도 어항 높이 밖에 뛰지 못한다. 교회에는 어항 속에서 자란 개구리와 같은 평신도가 많이 있다. 그들은 전도에 대하여 "나는 원래 못한다" 라고 처음부터 자기의 능력을 제한하고 있다. 항상 "나는 자신이 없다" 는 생각을 갖고 있는 전도인은 평생 어항 밖으로 나가보지 못할 것이며 "나는 자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어항 뚜껑 높이 이상 뛰어 보는 전도인은 어항밖에 성령의 권능이 함께 하고 있는 세계를 만나게 될 것이다. 전도인은 이제까지 갖고 있던 생각의 한도를 높임으로서 소극적인 마음의 벽을 뛰어 넘는 혁신적인 사고 기법을 가져야 한다.
전도란 주님께서 내게 주신 성령에 능력으로 확신과 자신감을 갖고 하는 것이다. 평신도는 이제까지 전도를 "해보기도 전에 어렵다"고 생각해 왔던 전도에 대한 생각의 폭과 높이를 넓게 하여서 내안에 숨겨진 전도 능력을 찾아야 한다. 가나안 땅을 정탐꾼들이 대부분 불가능을 생각하였으나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짐으로서 두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사고 방식에서부터 승리하여야 행동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전도인이 전도 현장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먼저 사고방식(생각)에서 부터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 주님께서 전도할 수 있는 능력을 똑같이 주시었건만 전도에서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의 차이는 전도인의 사고방식에 달려 있는 것이다.
♣†전도인에게 가장 큰 적은 열등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고후 4:16)
☞ 전도를 실패하는 사람의 마음가짐
1) 나는 전도에 자신 없다.
2) 나는 창피해서 전도를 못한다.
3) 나는 전도 할 만한 성격이 못된다.
4) 나는 전도에 재능과 은사가 없다.
5) 나는 전도 해봐도 한 명도 전도하지 못할 것이다
전도인은 전도를 해보기도 전에 패배하는 열등감을 버려야 한다. 일부 평신도 중에는 전도를 해보기도 전에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자기 스스로 열등감에 젖은 말들을 하고 있으니 사실상 전도를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은 바로 자신속에 열등감이다.
미국 정신 과학연구소에 의하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95%이상이 소극적이며 95%이상이 열등감을 갖고 태어난다고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선천적으로 소극적이며 열등감을 갖고 태어 낳으나 가정과 학교에서 적극적이고 자신있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침으로서 사람에 따라서 적극성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전도인의 자신감과 열등감은 본인의 태도와 노력 여하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 것임으로 전도인은 자신있고 적극적인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전도인은 마음속에 있는 열등감의 노예(奴隸)가 되지 말고 활기차고 자신있게 행동함으로서 담대하고 능력 있는 전도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전도인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걱정, 체면심, 염려, 부끄러움, 자존심, 두려움, 패배주의라는 거품에서 벗어나야 한다.
♣†낙관적인 전도인과 비관적인 전도인
◈ 적극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의 차이
적극적인 생각 적극적인 행동 많은 방문 많은 열매 성장
부정적인 생각 의욕상실 적은 방문 열매 부진 책임 전가 포기
낙관적인 전도인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성공의 기회를 찾지만 비관적인 전도인은 기회가 주어져도 소극적인 자세로 말미암아 기회를 잡지 못한다. 낙관적인 전도인은 장미꽃에서 예쁜 꽃을 찾지만 비관적인 전도인은 장미꽃 속에 가시를 먼저 탓한다.
성장을 멈추고 있는 교회의 성도와 사역자는 무의식적으로 "우리 교회는 성장하기 힘들다. 우리 교인들은 전도를 못한다"는 비관적인 생각에 젖어 있다. 이러한 교회는 "사고의 혁신(發想 轉換)"을 통하여 "우리 교회는 크게 성장할 것이다" "우리 교회 성장은 내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낙관적인 생각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전도에 대한 설교와 전도 세미나 등을 통하여서 교인들에게 서서히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 굴곡진 거울로 자기의 모습을 비춰 보는 성도들은 못생긴 자기 모습에 열등감을 갖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성장을 원하는 교회는 교회 내에 비관적인 거울을 전부 내버려야 한다. 그리고 예쁜 거울을 조명등 아래에 걸어 놓음으로서 모든 성도들로 하여금 예쁜 자기 모습에 자신감을 갖게 하여야 한다.
바보 온달에게 시집온 평강공주는 남편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는 말만을 하였다. "당신은 바보 온달이 아닙니다. 당신은 훌륭한 장군입니다" 이 말을 정말로 믿은 바보 온달이 장군처럼 행동함으로서 평강공주의 말대로 훌륭한 장군이 된 것이다. 목회자와 성도들은 서로가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우리는 전도를 잘 할 수 있으며 훌륭한 전도인이 될 것입니다" 라고 힘을 북돋아 줌으로서 모든 교인들이 전도에 대하여 낙관적인 생각을 갖도록 하여야 한다.
♣†전도인은 적극적인 생각을 가져야 한다.
어린 소년이 걸을 수 없는 불구자인 아버지를 휠체어에 태우고 강가에 나갔다. 소년은 아버지를 강가에 남겨 두고 혼자서 수영을 하다가 급류 휘말려서 익사 직전에 놓이게 되자 고함을 질렀다. 멀리서 이 광경을 보게 된 아버지는 자신이 걸을 수 없는 불구자라는 사실 잊은 체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나 쏜살같이 물 속에 뛰어들어가 아들을 구하였다. 그 일로 소년의 아버지는 자기도 남과 같이 걸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그 후로 혼자서 걸어다닐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행동하기 전에 먼저 생각을 하게 되어 있어서 적극적인 사람은 적극적인 생각으로 적극적인 행동을 하게 되지만 소극적인 사람은 소극적인 생각을 하고 소극적으로 행동함으로서 실패를 하게 된다. 불신자를 만났을 때에 마음속에서부터 "이 사람은 전도하기 어렵다" 는 패배 의식을 갖고 전도한다면 결국 패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도인은 결코 소극적인 생각으로 "나는 안된다"는 부정적인 자기 예언을 하여서는 안된다. 전도인은 항상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갖고 "나는 자신 있다""나는 성공 할 것이다"는 긍정적인 자기 예언을 하여야 한다.
전도인은 하나님의 일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와주심과 성령의 역사 하심으로 불가능이 없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아무리 굳게 닫힌 은행의 금고도 작은 열쇠 하나로 열 수 있는 것처럼 아무리 두렵고 어려운 문제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자신감이란 열쇠"만 갖고 있다면 모두 열 수 있는 것이다. 전도인은 "나는 전도에 자신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전도할 때에 내안에 있는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성령의 권능이 나타나는 것이다.
♣† 성공과 실패는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무엇이든지 알아맞히는 만물 박사 노인을 골려주기 위하여 어느 소년이 풍뎅이를 손안에 넣고 노인에게 물어 보았다. "제 손안에 풍뎅이가 있는데 살았을까요? 죽었을까요?" 이 소년은 살았다고 하면 풍뎅이를 눌러서 죽이고 죽었다고 하면 손을 그대로 펴 보일 참이었다. 이것을 알고 있는 노인은 소년에게 "예야 그 풍뎅이의 생사는 네가 마음먹기에 달렸구나" 라고 대답함으로서 소년의 얼굴이 붉어졌다.
전도란 전도인이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이다. 전도인은 자기가 맡은 불신자의 영혼을 살리느냐 죽이느냐의 문제는 전도인의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사명감을 갖고 전도하여야 한다.
☞ 고난이 발전을 도모한다.
미국의 어느 학자가 100명의 학생을 50명씩 나누어서 A반의 아이들에게는 아주 좋은 기숙사 환경을 만들어 주고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면서 공부하도록 하였으며 B반의 아이들은 열악한 환경속에서 공부하도록 하였다. 3년 후에 조사해 보니 부족함을 모르고 풍요로운 환경속에서 공부한 A반의 아이들은 의욕이 없어지고 무기력한 아이들이 되어서 매일 즐기며 노는 것이나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열악한 환경속에 B반 아이들은 무엇이든 스스로 찾고 만드는 적극적이며 진취적인 아이들로 변하였다.
이와 같이 편안하고 풍요로운 삶은 인간으로 하여금 타락과 안일과 나태를 낳는 요인이 된다. 그러나 고난과 시험에 부딪치면 어려움에서 벗어나려는 끈기있는 정신으로 말미암아 결국 진취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고생을 겪은 부모는 재산을 모으지만 고생을 모르고 자란 자식은 망하기 쉬운 것이다. 고생한 부모는 부자가 될 수 있지만 고생을 모르고 과보호(過保護)속에서 키운 자식은 방탕의 길로 들어서기 쉬운 법이다.
/세계제일교회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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