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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에 서서 계신 주님 /디모데후서 4:17~18

by 【고동엽】 2022.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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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에 서서 계신 주님

 

디모데후서 4:17~18

 

4: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4: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설교:

일본의 여류작가로 유명한 "미우라 아야꼬"가 언젠가 누구에게  이런 질문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기독교에는 불교에서와 같은 염불은 없습니까? '나무아미타불'이라든가, '주문을 외우는 그런 것이 없습니까?"

그가 대답하기를 "엄밀히 말하면, 기독교에 염불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과 비슷한말은 있습니다."라고 했답니다.

그녀는 13년간의 투병생활에서 오직 "임마누엘, 아멘" 이라는 기도로 많은 응답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오랜 요양생활 가운데 문득 쓸쓸해지면, 곧잘 이 '임마누엘, 아멘'을 불렀습니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전능하신 주님께서 곁에 계셔서 온전히 지켜주시는 느낌을 체험케 되었고 결국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어떤 좋지 않은 생각이 마음에 스치는 때에도 '임마누엘. 아멘'이라고 했답니다.

그는 그의 책에서 이런 간증을 합니다.

"이 짧은 기도는 악의 유혹에서도 나를 구원해주었습니다. 누구에게 오해를 받는 때에도 이 짧은 기도를 드리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것을 알아주신다는 기쁨이 솟아납니다."

 

그렇습니다. 임마누엘의 신앙, 즉, 하나님이 언제나 어디서나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우리에게 분명하게 세워져 있다면 하나님은 놀라운 은총을 우리에게 베푸시고, 결국 그 은혜로 우리 삶은 승리의 신앙 생활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하게 쓰임 받은 신앙인들의 공통점은 남다른 뭐가 있는 것이 아니고 아주 평범하고도 간단한 이 임마누엘의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함을 느끼며 살았고 특별히 다윗은 그의 시편을 통해 날마다 그런 고백을 하며 살았던 사람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인 디모데 후서에도 바울의 임마누엘 신관을 살펴보게 됩니다.

17절을 보세요.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이 짧은 구절에서 선교사 바울은 주님이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신다는 고백을 합니다. "주께서 내 곁에 서서" 이 구절은 임마누엘의 가장 정확한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임마누엘이란 이름을 갖고 오신 예수님은 어느 때 우리와 임마누엘 하시는가? 임마누엘 하셔서 어떤 일을 하시는가를 살피며 함께 큰 은혜를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1. 주님은 어느 때 우리 곁에 계시는가?

그리고 왜 우리 곁에 "서서" 계시는가?

우리가 주를 위해 고난 당할 때  우리 주님은 우리 곁에 서서 계십니다.

초대교회 최초의 집사중 한 사람인 스테반이 돌에 맞아 순교할 때를 아십니까?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보았습니다. 그때 그가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믿는 주의 성도가 고난을 당하면 그냥 구경하고 계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서 우리를 바라보시며 응원하십니다. "그래 스테반아 참 장하구나! 네가 나를 위해 네 목숨을 아끼지 않고 충성하는 구나?"

오늘 우리 옆에 계신 주님도 우리가 주를 위해 고난을 당하고 믿음 때문에 핍박을 받으면 언제나 우리 곁에 함께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신앙 생활은 나 혼자만의 싸움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시나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도우시고 지키시는 삶입니다.

그러기에 고난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요?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43장에서 그렇게 고백합니다.

"1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모세도 주님이 맡기신 엄청난 사명을 감당할 때 두려울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바로를 대적하여 싸운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입니까? 그런데도 한번도 두려워 하지 않고 나아갑니다. 출애굽 후에는 백성들이 돌로 치려 합니다. 원망 불평이 가득하여 폭동이 일어나려 합니다. 그런데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하나님이 그를 부를 때 하신 약속 때문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여호수아도 똑같습니다.

수 1:9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또한 사단의 세력과 대적하고 있을 때 함께 하십니다.

언제 함께 하실까요? 우리 성도가 사단의 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당할 때 항상 함께 계실뿐 아니라 하늘의 천군 천사를 동원하셔서 함께 하십니다. 엘리사 시대에 아람군대가 쳐들어 왔습니다. 왕과 게하시는 난리 법석입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요? 그는 하나님이 천군 천사 데리고 옆에 와 계신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을 넘어트리려는 악한 영의 역사가 우리를 공격하고 대적 할 때 하나님은 모르는 척 뒷짐지고 계시지 않습니다. 반드시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다니엘을 사자 굴속에서 보호하신 하나님, 다니엘의 세 친구를 풀무불 속에서 건지시고 지키신 하나님의 은총이 오늘 우리와도 함께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중국 선교역사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도시에 도적 떼들이 수백 명의 여인과 어린이들이 피하여 있는 "몬센"이라고 하는 선교사의 저택을 포위했습니다.

그러나 전날 밤, 선교사는 말라리아에 걸려 밤새도록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는 아직도 심한 열로 고통스러웠지만 "그 약탈자들이 여기에 오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이 저택에 불이라도 지르면 우리가 믿어왔던 그 약속들은 무엇이 되겠느냐?" 하고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몬센 선교사는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주여! 나는 이 젊은 사람들에게 수년 동안 당신의 약속은 진실하다고 가르쳐왔고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며 지켜 주신다고 가르쳐왔습니다. 그런데 만약 지금 그 약속들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나는 이제 더 이상 설교를 할 수가 없고 결국 나는 본국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간절히 병상에 누워 기도만 했습니다. 그날 밤 그는 밤새도록 하나님께 우리를 구해 달라고 기도하고, 또 구해줄 것을 믿으라고 그들을 격려하였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게 그 도적 떼가 아무런 짓도 하지 않고 물러갔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도적들은 선교사의 저택에는 손대지 않고 그대로 떠나갔습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각각 다른 방향에 사는 세 이웃들이 찾아와서 선교사에게 "어젯밤 밤새도록 당신 집 지붕 위에 세 사람이 앉아서 지켰는데 그들이 누굽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자기 집 지붕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말하자 그들은 모두 "우리 눈으로 똑똑히 보았는걸요" 하면서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위험을 당하자 그들을 보호해주신 것입니다.

 

특별히 복음 전도 할 때 함께 하십니다.

우리 주님이 특별히 임마누엘 하실 때는 복음전도 할 때입니다. 주의 천사를 동원하셔서 돕기도 하시고 친히 주님이 우리 속에 臨在하셔서 우리를 도우시는 것입니다. 복음은 사람의 힘으로나 능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깨닫게 하시고 믿어지게 해 주셔야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도하는 성도, 전도하는 선교사, 특히 설교하는 목사에게 언제나 함께 하셔서 역사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마지막 장 마지막 절 28:20을 보세요.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 약속이 여러분에게 주어지는 약속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우리 주님은 우리 곁에서 어떤 일을 하시는가?

1) 우리를 영육으로 강건케 하십니다. (17절)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신다"고 하십니다. 무엇을 강건케 하신다는 것일까요?

첫째는 영적으로 강건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영력이 강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육체적으로 강건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곁에 계신 주님이 여러분을 강건케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 시간 여러분 중에 병든 자에게 이 강건케 하심의 은총이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믿음이 약하여 참 진리를 알지 못하고 헤메시는 분들에게도 강건케 하심의 은총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중요한 것은 강건케 하시는 이유를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17절을 다시 읽읍시다.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라"

바울은 하나님이 자기를 강하게 해 주시는 이유를 분명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즉 복음전파를 통한 이방인 구원, 이것 때문에 하나님이 힘주시고 은혜주시고 강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왜 여러분은 건강하기를 원하십니까? 여생을 멋지게 살기 위해서입니까? 틀렸습니다. 인생을 떵떵거리고 살고 싶어서입니까? 틀렸습니다. 하나님이 강건케 하시는 이유는 다른데 있습니다.

그러기에 병들고 상하신 몸을 가지신 분들이여. 우리 주님께 건강주시면 복음을 세계만방에 전하겠습니다. 고백해 보시기 바랍니다. 건강 주시면 쓸데 없이 싸돌아 다니실까 안주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건강주시면 죄짓는 짓거리하며 다닐까 허락치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2)우리 곁에 서셔서 우리를 위험에서 보호하십니다.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마치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이 품으며 보호합니다. 그 모습을 성경은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시편17:8의 말씀처럼 "눈동자같이 보호하시는 하나님"이란 것입니다.

 

우리의 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머리인데 머리 부분에서도 우리가 가장 예민하게 보호하고 지키는 것은 바로 "눈"입니다. 눈은 주위에서 어떤 일이 있을 때 제일 먼저 반응을 보이는 신체기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신체는 이 눈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보호책을 갖도록 만들어 졌습니다.  위험할 때 눈은 거의 본능적으로 작동하여 눈동자를 보호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사고를 당해 온 몸이 다 깨어져도 멀쩡한 곳이 있습니다. 그것은 눈동자입니다. 강한 보호본능이 눈에 제일 먼저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바로 하나님이 보시기엔 눈동자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어떤 일을 만나도 무사할 수 있고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떨 때는 이 보호가 귀찮아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좀 자유를 누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좀 힘들어도 그 보호가 복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제 후배중 권모라는 목사님이 있는데 운전할 때 운전석의 안전밸트를 매는 것을 되게 힘들어합니다. 안전밸트가 조금 조여주는 것이 우리 안전을 위해 아주 중요한 도구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힘들다고 밸트가 조여지지 않도록 하는 집게를 달고 다닙니다. 좀 느슨하게 한단 말입니다. 좀 참고 견디면 그것이 오히려 편안함을 줍니다. 그런데 그것이 힘들다고 형식적으로 매고 느슨하게 매면 예상치 못한 사고 때 일나는 것입니다.

 

신앙의 안전 밸트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에게 단단하게 매여 있어야 합니다. 매는 부분이  약하다든지 고정시킨 부분이 불량하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디에 고정된 안전벨트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돈도 안전벨트가 아니고, 권력도, 지식도, 진정한 안전벨트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만이, 하나님이 매어주시는 벨트만이 진정한 안전벨트가 됩니다. 이 벨트를 매고 안전하게 인생 길을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3)우리 주님은 우리 곁에 서셔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시키십니다. (18절)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 곁에서 늘 우리의 구원을 완성시키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미 믿어 구원을 얻었으나 그 얻은 구원을 완성시켜야 할 숙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숙제를 우리 스스로나 혼자 힘으로는 온전히 이루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늘 옆에서 도우시고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여러군데를 보면 우리 하나님이 당신의 종들을 도우시는 모습을 봅니다.

시편 46:5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그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했고

로마서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하셨습니다.

 

 한 젊은 의사가 몽블랑 정상을 정복하고자 하여 마침내 성공한 것이다. 그리하여 조그만 마을은 그를 축하하느라 밝게 빛났으며 산꼭대기에는 그의  승리를 알리는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캠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산을 오른 후, 내려오던 중에 안내자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했습니다. 로프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혼자 가기를 주장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안내인은 극구 만류했습니다. 그렇지만 기어이 그는 로프에 대해 싫증을 느끼고 자유로워지기를 선언했습니다. 마침내 안내인은 그를 포기하고 줄에서 풀어주었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서 젊은 의사는 발이 얼음에서 미끄러졌는데, 얼음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자신을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로프가 없었으므로 안내인이 그를 붙잡아서 다시 끌어당길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벼랑 밑 몇백미터 아래로 떨어져 죽었습니다. 등반의 성공의 종이 울리고 마을 전체가 그의 성공을 축하하며 기뻐하였지만 불행히도 성공 후에 한순간 로프가 싫어서 안내 받기를 거절하다 그 꼴이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간섭에 싫증을 느끼십니까?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를 붙잡고 막으실 때, 때로 우리는 이에 대해 싫증을 느끼기도 하나 우리에게는 안내자가 필요합니다. 그분은 다름아닌 우리 주님입니다. 이 세상을 떠날 그때까지 필요한 분입니다.

 

우리가 구원 얻었으나 천국에 들어가도록 늘 끝없이 도우시고 인도하시는 그분이 여러분 곁에 계십니다.

그러기에 탈선하지 마세요. 신앙의 줄에서 벗어나려 하지 마세요. 주님은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강건케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 곁에 계신 그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한마디가 있다면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 지어다 아멘"입니다.

 

기도합시다.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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