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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전도에 힘쓰는 성도가 되자! (마28:18-20)

by 【고동엽】 2022.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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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전도에 힘쓰는 성도가 되자! (마28:18-20)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큰 명령 세 가지를 내리셨습니다. 첫 번째 명령은 '문화명령'으로써 인간이 범죄 하기 이전에 주신 명령입니다. 창1:28절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의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이 문화명령에 의해서 문화가 발전해 왔습니다.
  두 번째 명령은 요13:34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 명령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주신 '삶의 명령'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것은 '기독교의 핵심적인 주제'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가 다 담겨 있고 여기에 예수의 구원의 정신이 다 담겨져 있습니다.
  문화 명령, 삶의 명령에 이어 세 번째의 중요한 명령은 '선교명령'입니다. 즉 죄를 범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명령입니다. 오늘 본문에 '가서 모든 족속으로 삼으라.'고 하십니다. 지금도 이 복음명령은 교회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왜 교회가 성장되어야 하고, 왜 교회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 그 대답은 자명합니다. 우리 주님의 지상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 인들에게는 두 가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진리의 확인'입니다. 자신이 믿고 있는 진리가 참 진리인가? 아닌가를 매주일 말씀을 들으면서 확인해야 합니다. 그 다음 우리가 이 진리를 깨달았으면 그 진리를 나 혼자만 알고만 있지 말고 남에게 전해야 합니다. /아멘!/
  ▶교회가 왜 존재하는가? 한 마디로 교회는 '선교하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교회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드리고 친교하며 의식을 행하는 것,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교회의 궁극적인 목적은 선교하는데 있습니다. /믿/
  초대교회의 두 기둥인 베드로와 바울! 그 복음 사명을 잘 감당했습니다. 또 '어거스틴' 같은 분들이 복음을 전함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든든히 세워졌고, 영국에서 '요한 웨슬레'가 복음을 전함으로 영국이 새로워졌으며, 그리고 '에디슨 테일러'라는 사람이 중국에 복음을 전함으로 말미암아 지금 중국은 교회의 부흥이 불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20여 년 전에 우리나라에도 '언더우드'라는 장로교회의 선교사와 '아펜젤러'라는 감리교 선교사가 들어와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장로교회와 감리교회가 생기고, 연희전문과 이화학당과 배제학당 등 여러 곳에 기독교 학교가 세워졌으며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 날 우리 한국교회는 물량적으로도 세계 제일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들이 다 한국에 있습니다.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예수 밖에 있는 영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들에게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앤더슨'이란 선교학자는 '기독교 선교신학'에서 '불꽃 없이 불이 없고, 선교 없이 교회 없다'고 했습니다. 교회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면서 그의 맡기신 일을 수행하기 위하여 모인 공동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다는 차원에서 그것은 '예배 공동체'요, 맡기신 일을 수행한다는 차원에서 그것은 '선교 공동체'입니다.

  ▶선교가 무엇인가?
  ⑴'보내는 것'입니다. 요20:21절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선교사를 보내는 것입니다.
  ⑵선교는 '가는 것'입니다. 본문에 '너희는 가서'라고 했습니다. 내가 직접 복음의 현장으로 가는 것입니다.
  ⑶선교는 '지원하는 것'입니다. 보내지도 못하고 가지도 못할 형편이면 기도로 지원하고 선교 비로 지원해야 합니다. /아멘!/

 

1.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입니다.

 

  본문을 보세요!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의 배경은 주님이 승천을 눈앞에 두고 제자들에게 마지막 분부하신 명령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예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불효자라도 자기 부모의 유언을 다 지키는 것이 인간의 기본입니다. 청개구리도 그 부모의 유언을 바로 실천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본문은 주님의 마지막 유언이요, 대 지상명령이요, 복음명령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마태복음의 결론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강해 설교가인 '존 맥아더' 목사는 마태복음의 전체를 이해했다해도 이 마지막 부분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마태복음의 관점을 놓친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⑴강권적인 명령입니다.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선택형'이 아닙니다. '가 주었으면 좋겠다.'는 권유형도 아닙니다. '가라! 가서 제자 삼으라! 세례를 주라! 가르쳐 지키게 하라!' 강권적이고도 절대적인 명령입니다. /믿/
  ⑵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자의 명령입니다. 빌2:10절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엄청난 권세입니다. 이 권세 앞에 누가 도전할 수 있습니까? 세상 대통령 권세도 무섭습니다. 하루아침에 장관을 붙였다 떼었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세는 더 큽니다. 이 권세 있는 자의 명령을 우리는 지켜야 합니다. /아멘!/
  ⑶'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시면서 주신 명령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위로가 됩니다. 그 분이 우리와 함께 있겠다고 하신 말씀은 그 분의 권세를 우리에게 다 주었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이 34번 나오고, 바울의 서신에도 19번이나 '복음전파'가 나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명령을 행하지 않는 것은 불순종입니다. 군인들은 상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합니다. 만일 불복종할 때는 항명죄가 되고 전시에는 총살형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군병들입니다. 십자가의 군병이 된 우리들은 하나님의 명령인 복음을 전하는 일에 순종하여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하는 의무와 권리가 있습니다.
  '웨스터 민스터' 소요리 문답 제1문에 '인간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을 통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전도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할/
  여러분 오늘날 왜 교회가 크게 세워져야 합니까? 그것은 교회 안에 있는 성도보다는 아직도 예수 믿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전도의 목적으로 교회를 크게 세워야 합니다. 왜 교회가 성장해야 됩니까? 선교하기 위해서입니다. 교회가 약하면 선교할 수 없습니다. 하고 싶어도 안 됩니다. 교회가 성장되어야 선교도 할 수 있습니다. /믿/

 

2. 복음 명령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①가라! '너희는 가서' 가라는 말은 현재진행형입니다. 한 번 가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반복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 명령 속에는 세상의 복음화가 숨어 있습니다. 이 명령 속에 '예루살렘이, 온 유대가, 사마리아와 땅 끝'이 들어 있습니다. 이 명령 속에는 화양리 뿐 아니라 서울 장안도 포함합니다.
  ▶교회의 두 가지 모습입니다. '에클레시아'와 '디아스포라'입니다.
  ⑴'에클레시아'는 '모이는 교회'입니다. 지금 오늘 이 자리에 모인 회중이 '에클레시아'입니다. 모여서 말씀을 듣고, 성령을 받고 능력을 받는 곳, 모여서 은혜를 받고, 은사를 받고 축복을 받는 곳입니다.
  ⑵'디아스포라'는 '흩어지는 교회'입니다. 말씀 받고, 성령 받고, 능력 받았으면 흩어져야 합니다. 흩어진다는 말은 '세상을 향해 가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가는 '전도'를 의미합니다.
  요즘 들어와서 선교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신학적으로 구분하여 사용할 때 '전도는 동일한 문화권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말하고, 선교는 타 문화권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요즘 들어와서는 대학이나 산업체, 기타 특별한 문화권을 이루고 있는 곳에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학원선교, 산업선교, 문서선교' 등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복음을 전파하여 구원을 얻게 하는 일이 가장 우선적인 일입니다.
  ▶전도는 가는 것입니다. 전도는 공상이나 이론이 아닙니다. 현장에 가서 부딪치는 것입니다. 부딪쳐야 지혜와 깨달음을 주십니다. 요나의 사건은 우리에게 좋은 메시지입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욘1:2)고 했습니다.
  먼저 일어나야 합니다. 다음으로 현장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쳐서 외치는 것입니다. 사단은 가기 전에 공상 속에서 가는 것을 포기하게 합니다. 우리 모두 일어나 갑시다. 그리고 외칩시다. 예루살렘에서 땅 끝까지 어디든지 갑시다.
  가는 것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밟는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수1:3)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현장으로 나가면 하나님은 '하늘의 권능과 권세로 땅의 모든 사단권세'를 묶으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이미 주셨습니다. 예수 안에 능력이 있습니다. 그 분 안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는 능력이 있습니다. 가난한자를 부요케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죄인을 회개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탄을 결박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능력이 내 안에 거하시는 예수 안에 있습니다. /믿/
  막16:17-18절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니라" 주님은 친절하게도 이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까지 상세히 알려 주었습니다. 요14: 14절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할/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영혼을 살리는 복음을 가져야 합니다. 내 속에 예수가 있어야 예수를 줄 수 있습니다. 내 속에 불이 있어야 불을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엡6:15) 가라고 했습니다.
  ▶한 전도자가 '우리는 갑니다.'라는 시를 적어 우리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갑니다/기다리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우리는 갑니다/주님이 가라 하시기 때문입니다/우리가 가면 그들이 살아나고/우리가 가면 변화되기 때문입니다/때로 높은 산을 만나고 거친 들을 만나지만 우리는 갑니다/우리를 가라하신 주님이 어디든지 우리와 동행하시기 때문입니다/우리는 갑니다. 생명이 다하는 그 날까지!> /할/

  ②복음의 범위는 '모든 족속'입니다. 좁은 의미로는 내 가정, 내 직장 곧 내가 처한 곳으로 가라는 말씀이요, 넓은 의미로는 세계 각처 5대양 6대주, 이 지구촌 어디든지 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족속은 선교의 대상입니다. 선교에는 언어와 문화 이념의 장벽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족속은 나라와 언어를 달리하는 전 세계의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즉 누구든지, 만백성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요한 웨슬레'는 '세계는 나의 교구'라고 외쳤습니다.
  기독교는 특권주의를 배격합니다. 복음을 들지 못하는 자라면 어느 나라의 어느 누구든지 상관말고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인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복음은 우주적이며 세계적이며 국제적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온 천하 만민에게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했습니다. /할/

  ③'제자 삼으라.' 모든 족속에게 가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바로 그들을 제자 삼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우리 예수님의 지상 명령의 핵심은 '제자를 삼는 일'입니다.
  본문은 다섯 개의 동사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라, 제자를 삼으라, 세례를 주라, 가르치라, 지키게 하라'에서 주 동사는 '제자를 삼으라'입니다. 이렇게 제자를 삼는 일이 귀합니다. 신약성서에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불과 일곱 번 밖에 안 나타나는데 제자란 말은 무려 334번이나 나옵니다.
  ▶제자란 넓은 의미로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다 해당되는 말이지만 좁은 의미로는 특별히 구분하여 선택된 소수를 두고 사용된 말입니다. ▶어원적인 뜻은 '자신들의 마음을 어느 것에 쏟는 것'이라는 의미와 '스승과 관계 속에서 배움에 종사하고 있는 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또 제자란 '자신을 어떤 것에 익숙하게 하다, 배워서 알다, 지도 아래서 배우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제자란 '스승의 철학과 사상이 같고 그 스승과 동행하며 그 스승의 인격과 마음을 품고, 그 스승에 대한 헌신하는 사람, 스승의 생애를 재생산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를 삼아'란 말은 그들은 예수님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사람으로 훈련시키라는 것입니다. 제자는 배운다는 의미입니다. 제자는 교육과 훈련을 통하여 되어 집니다. 그렇습니다. 제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듬어지는 것입니다. 구원은 은혜로 받으나 제자는 훈련의 산물입니다. 구원받은 무리들 중에 선택된 자들을 훈련시켜야 합니다. /아멘!/
  제자의 기본이 있습니다. 눅9:23절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중요한 것은 '자가 부인'입니다. 
  우리 교회의 가장 시급한 일은 제자 만드는 일입니다. 목사도 바른 제자가 되어야 하고 온 성도가 다 예수의 바른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제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제자는 또 다른 제자를 만들어야 합니다.
  전도(선교)의 목적은 제자를 키워내는데 있습니다. 선교(전도)의 패턴은 '가서, 제자 만들고, 교회에서 세례를 주고, 잘 가르쳐, 다시 보내는 것'입니다. 이 사이클이 계속 반복되어 또 다른 제자로 삼을 수 있도록 양육해야 합니다. /아멘!/

  ④그리고 제자 삼은 자들에게 '세례를 주라'고 하십니다. 이 말은 '나가서 전도해 와서 구원의 확신을 주고 그 표로서 세례까지 받게 하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전도라 하면 사람을 교회로 데려오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만 사실은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전도자는 세례 받게 하는데 까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아기를 낳으면 혼자 자립할 때까지 양육이 절대 필요합니다. 영적인 자립은 세례 받을 때까지입니다.
  세례란 쉽게 말하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내 자아가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경험'을 말합니다. 세례에는 물세례와 불 세례가 있습니다. 이 두 가지의 세례를 경험해야 합니다. 이 경험이 없이는 아무리 예수를 오래 믿었어도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 체험이 이 시간 우리 모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있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⑤그리고 본문에서 더 중요한 것은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분부입니다.
  여러분, 가르치는 궁극적인 목적은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군인을 훈련시키는 것은 전투하고 힘과 기를 길러주려는 것이고, 선수를 가르치는 것은 경기를 치러내는 기술과 힘을 길러 주려는 것입니다.
  예수의 제자를 양육하는 방법은 '가르치고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교육에 의해서 되어지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육은 대단히 무섭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처음부터 대단한 사람들입니까? 아마도 평균을 밑도는 사람들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들의 직업만 보아도 어부 세리 등 적어도 엘리트 계층은 아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3년 동안 데리고 다니시면서 가르쳤더니 당시의 엘리트들은 물론이요 로마의 권력까지도 그들을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믿/ ▶가르침에 있어서 두 가지가 중요합니다. '무엇을 가르치느냐?'이고 '언제까지 가르칠 것인가?'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를 가르쳐야 하고, 지킬 때까지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킨다.'는 말은 '수호한다, 유지한다, 실천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지킬 것을 세 가지로 명령합니다.
  ⑴나 자신을 지켜라! 딤전5:22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 자신을 지켜 정결케 하라!'고 말했습니다. ⑵믿음을 지키라! 딤후4:7절에서 바울은 '내가 믿음을 지켰다'고 했습니다. ⑶말씀을 지켜라! 요14:15절에서 주님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제 아무리 훌륭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 믿음을 바로 지키지 못하면 그것은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나 아무리 작고 약한 믿음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 믿음을 바로 지키기만 하면 그 믿음이 점차 자라서 큰 믿음이 됩니다. /믿/ 우리 모두 믿음을 잘 지킵시다. 말씀대로 살고, 말씀대로 지키면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할/

 

3.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에 그 분'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파스칼'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닮은 공백이 있는데 그것은 어떤 피조물로도 채워질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알게 하신 창조주 하나님만으로 채워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물고기는 물 속에서 살아야 하고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현실적인 삶에 만족하지를 못합니다. 변화 받기를 원하고, 새로워지기를 원하고, 구원받기를 원합니다. 사실 이 세상은 온통 '질병 투성'입니다. 가정이 병들었고, 사회가 병들었고, 내 마음이 병들었습니다. 그래서 롬3:23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죄는 인간의 마음을 병들게 하고 육신을 병들게 합니다. 이 죄의 문제는 어떤 지식으로도 안 되고 권력으로도 안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 받아야 합니다. /믿/ 예수님만이 인간의 죄를 해결하실 수 있고, 병든 세상을 고칠 수 있습니다.
  '칼 아스퍼스'라는 사람은 '인간의 한계상황'이란 학설을 내놓았습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철학과 이성이 발달되고 과학이 발달되었다 하더라도 그것들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많은 문제들이 있는데 그것이 인간의 한계상황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과학으로도 이성으로도 죄의 문제를 치료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하나가 '불안'이라도 했습니다. 먹을 것, 입을 것 다 있는데 왜 불안합니까? 이 불안이 인간의 실존의 모습입니다. 또 그는 말하기를 '싸움'이라고 했습니다. 내 마음에 싸움이 일어납니다. 내 가정에 분쟁이 일어납니다. 사회와 나라에 분쟁이 그칠 줄 모릅니다. 이것은 과학이 발달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철학이 발달되지 못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이것이 '칼 아스퍼스'가 말하는 '인간의 한계상황'입니다. 

  인간은 한계에 이르기 때문에 이런 것을 종교의 세계, 신앙의 세계에 들어갈 때만이 해결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인간한계 상황 속에 살고 있는 불쌍한 영혼들을 오늘도 부르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할/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아무리 철학과 이성을 가지고 따져보아도 하나님은 계셔야 되겠고, 내세는 있어야 되겠고, 영생도 있어야 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아브라함 매슬 로우'라는 사람은 인간의 마음속에는 기본적인 욕구가 다섯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⑴육체적인 욕구: 먹고, 입고, 쓰고, 자고 이것이 해결되면 이것보다 더 높은 차원의 욕구를 찾게 됩니다. ⑵안전에 대한 욕구: 어떻게 하면 평안하게 그리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하는 욕구입니다.
  또 이것보다 더 높은 욕구는 ⑶사랑의 욕구입니다. 그리고 더 높은 욕구는 ⑷명예와 존경의 욕구입니다. 그래서 국회의원도 하고 싶고 출세를 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단계는 ⑸이것들을 다 해보았지만 모두 신통치가 않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인간의 가치가 무엇인가 하는 실존의 문제를 고민합니다.
  왜 인간이 이 땅에 왔는가를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가치를 바로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인간이 어디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고, 어디로 가는가?'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하나님을 위하여 살다가 하나님께로 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인간 최고의 욕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위에서 말한 기본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 종교의 힘을 의지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차적인 욕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바울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고전10:31절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여러분 하나님과 관계를 바로 맺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리고 창조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죄의 문제를 청산하고, 영혼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주시는 위로와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요14:27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할/

 

4. 왜 우리가 전도해야 하는가?

 

  ⑴영혼의 가치 때문입니다. 막8:36-37절을 보면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예수님은 한 영혼이 온 천하보다도 귀하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무엇과 여러분의 생명과 바꾸겠습니까? 우리의 영혼이 얼마나 귀하든지 예수님께서 죽으실 만큼 귀한 존재입니다.
  ▶'단지 15분 뿐!'이라는 연극이 있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장래가 촉망되는 총명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20대에 논문 통과로 박사 학위 심사위원들이 논문을 심사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결혼하려고 아름다운 여인에게 청혼하여 놓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갔습니다.
  진찰 결과는 실로 충격적이었습니다. '당신의 생명은 15분 남았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초조한 가운데 5분이 지나갔습니다. 이 때 전보 한 통이 날라 왔습니다.
  '억만장자 삼촌이 방금 운명하셨습니다. 재산 상속자는 당신뿐입니다. 와서 재산 상속 절차를 밟으십시오.' 10분남은 인생에게 억만 금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2분이 또 흘렀습니다. 이제 8분 남았는데 또 전보가 날라 왔습니다. 애타게 기다리던 애인이 보낸 전보입니다. '당신의 청혼을 우리 부모님이 승낙했습니다.' 이제 12분이 지나고 3분 남았습니다. 세 번째 전보가 날라 왔습니다. '당신의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되었습니다.'
  이 세 통의 전보는 이 청년이 가장 귀하게 여기던 것이었지만 그러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원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귀중한 것은 영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고 하셨습니다. 멸망할 이 세상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한 사람의 영혼의 가치와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예수님은 택한 백성들의 영혼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옛날 '에티오피아'의 왕조인 '아비시니아'인들이 '캠벨'이라는 영국인을 옥에 가둔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캠벨을 숲 속으로 데리고 들어가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6개월 동안 지하토굴이 가두었습니다. 대영 제국에서는 6개월 후에야 그 소식을 들고, 즉각 석방을 요구했으나 그 '아비시니아' 왕은 거절했습니다.
  그로부터 열흘도 못되어 영국군 만 명이 그를 구출하기 위해 배에 올랐고 마침내 그 나라에 상륙했습니다. 뜨거운 태양, 높은 산지를 1,100km나 걸어서 도착하여 전투를 벌였고 그를 구출하여 돌아왔습니다.
  영국은 그 한사람을 구출하기 위해 그 당시 화폐가치로 2,500만 달러(약242억)를 사용했습니다. 그것은 국가가 백성 한 사람을 그토록 귀중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교훈한 이야깁니다. 그렇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든지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나라는 강대국이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생명을 경시하는 나라는 망하고 맙니다. /믿/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돈을 벌어도 돈이 목적이 아닙니다. 지식을 얻어도 지식이 목적이 아닙니다. 권세를 얻고 인기를 얻는다면 권세나 인기가 목적이 아닙니다. 돈이나 권세나 인기나 지식이나 모두다 복음을 위하여 벌고 얻고 또 벌어야 합니다. 성도가 성공을 해야 하는 것도 전도하여 영혼을 더 많이 구하기 위하여 성공을 해야 합니다.
  ⑵멸망의 위험 때문입니다. 요3:18절을 보면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를 구주로 믿지 않는 사람은 심판아래에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도덕적으로 결함이 없고 깨끗한 사람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멸망 받을 죄인이라고 정죄를 받은 것입니다.
  이미 정죄를 받았기 때문에 그 상태로 죽는 다면 멸망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 보다 더 심각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인간에게는 세 가지 죽음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과 단절된 영적인 죽음입니다. 둘째는 육신적인 죽음입니다. 셋째는 영원한 죽음입니다. 육신의 죽음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잘 압니다. 그러나 자신이 죄와 허물로 죽은 존재요 영원한 죽음인 지옥에 가게 될 운명을 아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그래서 전도를 통해서 가르쳐 주어 멸망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⑶내일 일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잠27:1절을 보면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고 했습니다. 히9:27절을 보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아무도 자기 앞날을 모릅니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합니다. 얼마나 살게 될지 모릅니다. 예수를 믿지 않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 영혼은 멸망을 받아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⑷예수님의 오신 목적이고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재림하신 목적도 인간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전도는 예수님의 목적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고, 전도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와 능력을 다 가지신 주님의 거역할 수 없는 명령입니다. /아멘!/
  ⑸사회를 정화하는 최선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날로 악해져 가고 타락하고 부패해져 가고 있습니다. 사탄은 자기의 세력을 이 사회 전반에 확산해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탄의 영향력에서 비틀거리고 젊은이와 청소년들이 사탄의 문화에 빠져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를 표현한다면 '병든 인간 병든 세상'입니다. 여러분 무엇으로 이 병든 인간과 병든 세상을 정화할 수 있습니까? 교육으로 됩니까? 제도를 바꿈으로 됩니까? 군대나 경찰력을 됩니까? 세상에는 그 길이 없습니다. 병든 인간이 사회를 병들게 하기 때문에 사람을 구원해야하고, 사람을 변화 시켜야합니다.
  오직 복음으로 새사람 새 세상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전도는 단순히 영혼구원 차원이 아니라 내가 사는 이 세상을 정화시키는 일입니다. 그래서 전도가 중요하고 전도에 투자해야합니다.

  ▶전도는 다음 몇 가지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⑴전도 대상자를 작정하는 단계입니다. 내가 '누구를 전도할 것인가?' 선택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가족들 중에서, 일가친척들 중에서, 친구와 동료들 중에서, 가까운 이웃들 중에서, 가끔 만나는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의 마음이 머물러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한 사람씩 살피다 보면 마음이 뜨거워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⑵그 사람을 놓고 집중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⑶이제 작정한 사람과 좋은 관계를 발전시켜가야 합니다. 전화도 해 보고, 자주 만나야 합니다. 서로 간에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는 관계로 발전시켜가야 합니다.
  ⑷교회로 인도해 오는 단계가 절대 필요합니다. 이 때 교회의 자랑이 필요합니다. 담임목사를 자랑하고, 교회 분위기를 자랑하고, 교인들을 자랑해야 귀가 열립니다. /아멘!/ 
  ⑸일단 교회로 인도했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잘 관리해야 합니다. 교회에 한번 나왔다고 해서 그 사람이 당장 신자가 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체면 때문에 간곡한 부탁 때문에 나와 줄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 한번 나온 것이 지속될 수 있도록 공을 들여야 합니다.

  ▶전도는 축복과 상급을 받는 일이기에 우리가 더욱 힘써야 합니다.
  ⑴우선 전도하면 내 신앙이 성장하고 영이 강하게 됩니다. 딤후2:1-2절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⑵풍성한 영육간의 복을 받습니다. 요15:16절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전도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면, 장수의 복을 받습니다. 정성을 투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시며 마음의 평강을 얻습니다. 우리가 물질을 투자하면, 물질 축복을 받습니다. 복음을 위하여 우리가 핍박과 멸시를 받으면, 영원한 위로와 넘치는 기쁨을 축복'으로 받습니다. /믿/
  하나님은 선교하는 나라를 축복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선교하는 교회를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은 전도하는 개인을 축복하십니다. 세상에는 많은 좋은 일들이 있지만 사람을 옳은 길로 인도하고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고 그 생명을 구원하는 일보다 더 좋은 일은 없으며 더 급한 일도 없습니다.
  선교와 전도는 비슷한 말입니다. 우리의 차원을 조금 넓게 하는 것이 선교입니다. 예전에 탁구선수 현정화씨가 올림픽 경기에서 중국의 덩야핑 선수를 이기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TV가 이 모습을 비쳐주었습니다. 이것이 선교입니다.
  지금은 목회자의 길을 가고 있는 이영무선수는 한 골을 넣을 때마다 환성을 지르거나 박수를 받는 것보다 먼저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선교입니다. 우리는 이제 차범근 감독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그가 기도하는 모습을 TV에서 비칠 때 그는 세상의 선교사가 된 것입니다. 이제 그 바통을 넘겨 박주영 선수가 골을 넣을 때마다 두 손 모아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전도는 예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자랑하는 것도 전도입니다.
  그런데 전도는 능력을 받은 자가 할 수 있습니다. 행1: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권능 받지 못하면 부끄럽고 두려워서 전도하지 못합니다.
  전도를 어떻게 할까? 사실 막막합니다. 대상마다 다르고 환경 따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내가 한다'가 아니라 '성령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전도는 하는 것이 아니라 되어지는 것'입니다. /믿/
  ▶초대교회 최권능 목사님은 하루라도 전도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사람이었습니다. 한 번은 애석하게도 자신의 아들이 세상을 떠나 장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에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도를 했다고 합니다. 이때 동료 목사님이 '오늘은 전도 안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고 하자, 목사님은 '무슨 말입니까? 내 아들이 죽어서 천국 갔는데 저 예수 모르고 죽어 가는 사람, 지옥 가는 것, 그냥 보고 어떻게 하느냐?'며 다시 복음을 외쳤다고 합니다.

 

5. 전도의 동력은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느니라'는 약속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함께 하심을 믿으십니까? /아멘!/ 그런데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함께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죄 속에 빠지고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들을 죄에서 건져내고 사망에서 건져내야 합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느니라.' 이 세상은 영원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백년을 해로하자고 굳게 맹세했던 남편이 먼저 가는가 하면 아내가 먼저 가기도 합니다. 코 흘리게 철부지를 두고 부모가 먼저 가는가 하면, 노부모를 놔둔 채 자식이 먼저 가기도 합니다. 행복한 환경도 영원한 것이 아니고 부귀영화도 영원한 조건이 못됩니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고 붙잡고 있고 장담하고 있는 것들은 언젠가는 내 곁을 떠날 것들에 불과합니다.
  미국에서 목회 하시는 어떤 목사님은 하나밖에 없는 딸이 시집가는 날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영원히 내 곁을 떠나지 않는 분이 계십니다. 모든 것이 온다간다 말 한마디 없이 내 곁을 떠난다 해도, 그렇게 철석같이 믿었던 것들이 내 곁에서 사라져간다 해도 영원히 나를 떠나지 않는 하나님이 계시고 임마누엘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믿/아멘!/
  ▶서울 대학병원에 심장수술에 유명한 의사 한 분이 계십니다. 심장을 수술하는 것은 고도의 외과 기술을 가진 자라야 할 수 있습니다. 그분이 '레지던트'에 올라갈 때 주임교수와 면담을 했습니다. 그때 주임교수는 '공부를 얼마나 했느냐'는 질문을 하지 않고 첫마디가 '교회에 나가느냐?'고 묻었다고 합니다.
  그 면담이 끝난 후 주임교수의 권유를 따라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주임교수는 심장 수술을 하러 들어가기 전에 꼭 기도를 한 후에 수술을 하더랍니다. '저는 최선을 다해 수술하지만 생명의 주관자는 당신입니다.' 그 때부터 이 제자도 그 스승과 똑같은 신앙의 길을 가고 있다고 합니다. /할/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예수 모르고 사는 영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영혼들에게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과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바울은 고전9:16절에서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 우리 모두 전도에 힘쓰는 성도들이 되자! /할/ (2007년 7월15일 대예배 설교)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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