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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강) 감옥에 갇힌 바울! (행 16:16-25)

by 【고동엽】 2022. 3. 11.

(제47강) 감옥에 갇힌 바울! (행 16:16-25)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은 1차 전도여행 시 세웠던 교회들을 찾아가 다시 돌보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바울이 1차 전도 여행 중에 교회들을 세운 곳은 소아시아 지방이었습니다.
우선 바울은 제1차 여행 때 세워둔 교회들을 다시 방문하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새로운 개척교회를 세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세계 선교를 위해서 '드로아'라고 하는 항구로 내려가 철야하고 기도하는 중에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나타나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럽에 복음을 먼저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에 가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빌립보 성입니다.
역사가들은 바울 일행의 빌립보 도착은 새로운 세계역사의 탄생을 예고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유명한 '토인비'라는 역사학 교수는 '바울을 실고 가는 배는 유럽을 실고 가는 배'라고까지 극찬을 했습니다. 그만큼 기독교가 들어가는 곳에는 역사가 바꿔지게 되어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생명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바울 일행이 빌립보 성에 도착하여 현장 답사를 끝내고 안식일이 되어 기도 처를 찾아 '강지데스' 강가에 갔다가 그곳에서 빨래하러 나온 여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그 여인들 중에 하나님이 벌써 루디아라는 큰 인물을 예비하고 계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전도하려고 애쓰면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고 전도 대상자를 하나님이 정해 주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전도의 주체는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빌립보 성에서 루디아를 만난 바울 일행은 그의 집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그 교회가 바로 빌립보 교회입니다.


▶다시 한번 '루디아는 어떤 여인인가?' 알아보자!
①두아디라 성 사람으로서 유럽의 첫 번째 그리스도인이 된 여인이었습니다.
②그녀의 직업은 자주 장사였습니다. 당시 자주 장사는 부유층만을 상대로 하는 고급 의류상입니다.
③루디아는 돈만 있는 것이 아니라 14절을 보면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고 했습니다. 여기 공경한다는 말은 '가치를 돌리다'라는 말의 의미로 '예배행위를 의미'합니다. 즉 루디아는 유대교에 심봉자로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였습니다.
④그런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여 기독교로 개종한 것입니다. 14절에 '두아디라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여기 들었다는 말은 참으로 듣고, 진실로 듣고, 믿음으로 듣고, 계속해서 듣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루디아는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은 여인이었습니다.
롬10:17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중요한 것은 '주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연다'는 말은 '이해하고 깨달음을 의미'합니다.
⑤루디아는 그 믿음을 행위로 나타냈는데 15절에 보면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그랬습니다. 그러니까 그녀는 가족 구원을 이루었습니다. 또 15절의 하반부에 보면 '바울일행을 초청하여 자기 집에 유하게 하고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즉 받은 대로 봉사한 자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바울은 마게도냐의 첫 성인 빌립보의 루디아 집에서 먼저 십자가의 깃발을 꽃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빌립보 교회의 개척사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빌립일행이 본격적으로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점치는 무당을 치료해 준 사건으로 인하여 감옥에 가게 됩니다.
바울이 들어간 그 빌립보 성에는 귀신이 들려 가지고 점치는 여자 노예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귀신들린 계집종이 바울을 보더니 소리지릅니다. 뭐라고 소리를 질렀습니까?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처음에는 그 말을 듣고도 그냥 지나쳐 버렸습니다. 귀신들린 자의 말이라고 해서 바울도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사람들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곳을 지날 때마다 자기들의 뒤를 따라오면서 그렇게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 하루 이틀이 아닌 몇 일을 계속 그렇게 하니까 바울 사도의 마음이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아직 젊디젊은 처녀가 귀신이 들려 소리를 지를 때' 그 여인이 너무 불쌍하고 안타까워서 도저히 그냥 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 속에 들어 있는 귀신을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러자 즉시 그 여인 속에 들어 있던 귀신이 떠나갔습니다. /할/
여러분, 귀신 들린 자가 하나님을 알아봅니다. 우리가 무당이나 점쟁이들을 많이 보는데 그 무당이나 점쟁이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학습 점쟁이, 학습 무당' 즉 다시 말해서 배워서 점을 치는 사람이나 배워서 무당 노릇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배우지 아니하고 어떤 귀신이 사단 마귀의 역사로 신들린 무당이나 점쟁이는 하나님을 금방 알아보는 것입니다. 이 여자 노예는 귀신 들린 점쟁이였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성령 충만한 바울을 금방 알아봤습니다.
여러분, 귀신들린 사람 보셨습니까? 눈이 이상하게 바꾸어집니다. 뒤집힙니다. 그 인격이 온전하지 못합니다. 그 삶이 온전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귀신이 살던 그 영혼의 눈빛을 바로 돌려줬고 그 삶을 그 인격을 바로 돌려줬습니다. 얼마나 좋은 일이요 귀한 일입니까?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이것이 죄가 되어서 이 여자를 이용해서 돈을 벌던 그 주인의 모함으로 인해서 바울이 감옥으로 끌려갔고 간수들에게 실컷 매를 맞고는 지하 감옥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제목소개!▶

 

▶16절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을 크게 이하게(=이롭게) 하는 자라"
여기 '우리가'는 바울 일행, 즉 실라와 디모데와 루디아와 그의 가족들을 칭하는 말입니다. 그들이 기도하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 기도 처는 아마도 13장에 나오는 강가 즉 '강지데스' 강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세계 방방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었는데, 유대인들은 남자 10명만 넘으면 회당을 짓고 그곳에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예배를 드리곤 합니다. 그런데 빌립보 성은 로마의 군사적 요충지로서 다른 곳과는 달리 유대인의 회당이 없었습니다. 그런 경우는 성곽 조용한 장소를 택하여 모임을 갖는 것이 유대인에게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부였습니다.
또한 본문에서 보면 전도자들은 틈만 있으면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선교사의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안고 유럽대륙까지 뛰어 들어온 자들입니다.
저들은 길이 막힐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일이 생길 때 예수의 이름으로 능력을 받아 일을 했습니다. 바울 일행은 빌립보 성에서 루디아 가정의 열매를 보고 다시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여 무장하기를 원했습니다.
바울 일행이 기도하러 가다가 누굴 만났습니까? 점쟁이 귀신 들린 여자 하나를 만났습니다. 빌립보는 정치적 경제적 기반이 든든한 도시인데 반해 우상이 많은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빌립보 사람들은 점을 치는 것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들은 점쟁이를 고용하여 점을 쳐서 돈을 벌었습니다.
우리나라 점쟁이와는 좀 개념이 다른 것 같습니다. 여기 '점치는 귀신'은 '파돈(귀신)의 영'이란 말로 '귀신 혹은 잡신'을 의미합니다. 이 '파돈'은 옛날 '델피아' 신전을 지키던 뱀의 명칭인데 후에 태양신인 아폴로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은 뱀 신의 영을 받아 점도 치고, 예언도 하고, 무당도 하는 그런 여인이었습니다. 귀신들린 무당들은 지나간 일을 귀신같이 압니다. '당신을 보니 근심이 많구먼, 몇 년 전에 아들이 죽었구나! 액이 끼었어!' 이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기겁을 하면서 '아이구!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십니까?'하면서 점쟁이에게 매달려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는지 물어'봅니다.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이 '굿을 한 번 하고 부적을 사서 붙이면 된다'고 합니다. 현대인도 똑똑한 것 같은데 다 넘어갑니다. 한 때 전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의 부인 낸시 여사가 센프란시스코에 있는 한 점쟁이 여인에게 정치 자문을 받은 일로 인하여 세상이 떠들썩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점쟁이들은 과거는 귀신같이 맞추는데 미래는 못 맞추는 것이 보통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요8:44절에 '마귀는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입니다. 거짓으로 사람을 유혹하는 영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선거 철만 되면 아주 장사가 잘 되는 집이 한 군데가 있는데 바로 점을 보는 무당 집이라고 합니다. 정치인들이 단골을 잡아놓고는 '누가 당선 된다'는 말을 흘리도록 유도해서 자기를 내세우기도 하고 상대편 후보를 깎아 내고 거짓소문을 흘리기도 한다고 합니다.
무속 신앙은 아주 원시적이어서 미신이라 불렀고, 그에 따른 폐단들이 많아서 근대화 과정에서 이 미신 타파를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미신만도 못하고 점쟁이만도 못한 정치인들이 들어서면서 이들을 '무속인'이라 부르며 그들의 지위와 신분을 인정해 주었고, 그렇게 되자 그들은 떳떳하게 점 집을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 되었습니다. 정말 한심한 일입니다.
'점으로 그 주인들을 크게 이 하게 하는 자라' 이 여인이 귀신의 힘을 입어 점을 치니까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속칭 족집게 점쟁이가 있다는 소문이 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수입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 수임이 누구에게 갑니까? 주인들에게 갑니다. '크게 이하게' 했다는 말은 큰돈을 벌어주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귀신의 정체를 알아보아야 합니다. 요10:10절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뿐이요' 여기에 '귀신의 삼대 사명'이 나와 있습니다. 여기 '도적'은 '마귀 또는 귀신'을 의미합니다.
⑴마귀는 도적질하는 사명입니다. 귀신은 사람들의 영혼을 도적질해 갑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고 엉뚱한 것을 섬기게 합니다. 이런 것을 통해서 영혼을 도적질 해 가는 것입니다.
⑵마귀는 죽이는 사명입니다. 생각하는 것이 죽는 생각, 비판적인 생각, 폐쇄적인 생각, 극단적인 생각, 더러운 생각만 하게 합니다. 살고 싶고 소망이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둡고 비관적인 것만 바라보고 생각하게 합니다.
귀신이 제일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자살입니다. 자살하는 사람은 맨 정신으로 못합니다. 귀신이 씌워서 자살하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경우 사람들은 살고 싶은 욕망과 희망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실패를 경험해도 다시 일어서려고 합니다. 그러나 귀신이 장난을 치게 되면 매일 죽고 싶은 생각, 마지막이란 생각만 하게 됩니다.
⑶마귀는 멸망시키는 사명입니다. 귀신이 시키는 데로 해서 '성공했다'는 사람 있습니까? 물론 한때 몇 번은 잘될 수 있습니다. 낚싯밥을 줘야 고기가 무니까요. 그러나 끝까지 잘되지는 않습니다. 귀신이 이 땅에서 활동하는 이유가 인간에게 유익을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을 멸망시키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귀신의 지시를 따르면 잘 되겠습니까? 안됩니다. 따라가면 코 뀌는 것입니다. 귀신 좋은 일만 하다가 끝나게 됩니다. /믿/
▶그렇다면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요10:10절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아멘!/

 

▶17절 "바울과 우리를 좇아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하며"
이 귀신들린 여종이 먼저 바울과 일행을 알아보고 좇아왔습니다. 귀신이 먼저 알아본 것입니다. 바울은 내가 누구라고 밝히지도 않았고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귀신들린 여종이 먼저 알아봤습니다. 신기할 정도입니다.
영은 영을 알아봅니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이 말씀 잘 보시면 귀신이 지금 하나님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했습니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The Most high God)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최고로 높으신 하나님, 최고의 신이신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신중의 신이요 왕 중의 왕이라는 사실을 귀신이 떠들고 있습니다. 귀신이 먼저 알아보고 놀라서 난리가 났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과 그들이 '무엇 하는 사람인지' 까지도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귀신도 제법 압니다. 예수님께서 전도하러 가셨을 때도 무덤 옆에 있던 귀신들린 자가 나와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여! 때가 이르기 전에 쫓아내시렵니까? 우리를 쫓아내시려면 저 돼지에게 들어가게 해 주소서!'
당시 유대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귀신들은 예수님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았습니다(눅8:28). 또 약2:19절을 보면 귀신들로 '예수님을 믿고 떤다'고 했습니다. '네가 하나님을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 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본문에서도 귀신들린 여인이 '바울일행을 가리켜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사람들에게 구원의 길을 전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무당들이 사도바울을 딱 보더니 '이 사람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즉 지금 표현을 빌면 저 사람은 목사님이야! 또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야! 족집게 같이 맞췄습니다.

 

▶18절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와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이 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여러 날 동안 귀신을 쫓아내지 않은 것은 이 점쟁이가 외치는 소리가 처음에는 그다지 위험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자꾸 따라다니며 소리 지르니 복음이 방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귀신들린 자가 '저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니까 다른 사람들 생각에 '아! 바울과 점쟁이는 4촌 관계쯤 되나보다! 그러니 저렇게 말하지'
그렇게 되면 귀신들린 점쟁이와 바울과 같은 동료처럼 취급되어 하나님의 복음이 완전 와해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야 될 것은 어떻게 보면 점쟁이가 바울을 돕는 것 같지만 사탄의 치밀한 작전이 그 속에 들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①바울이 전한 복음을 믿는 사람 중에 점치는 무당의 말을 듣고 믿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②바울일행은 귀신들린 무당과 같은 종류의 사람으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만일 그런 오해를 받게 되면 사도바울이 행하는 이적도 귀신들린 여종이 행하는 것과 같이 취급할 수가 있었습니다. 마귀의 술책은 아주 간교합니다. 귀신들린 여자가 사도바울을 하나님의 참된 종이며 구원의 도리를 전하는 자라고 말해줄 때 가만히 있었다면 바울이 전한 복음이 전부 귀신의 말과 귀신의 일로 되어버려 하나님의 복음이 전부 실패하게 됩니다.
그러니 얼마나 바울이 괴롭겠습니까? 본문에 보면 바울이 '심히 괴로워'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결단하고 '그 귀신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하니 귀신이 즉시 나왔다고 합니다. /할/ 사실은 여자에게 말했습니다만 그 여자를 붙들고 있는 귀신에게 말한 것입니다.
바울과 그 일행이 가만히 있을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고 외칠 때' 일이 일어났습니다. 귀신이 떠나가고 여자가 온전해 졌습니다. 물론 점치는 능력도 없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귀신은 예수님의 이름 앞에 벌벌 떱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 귀신들린 자들을 다 쫓아내셨습니다.
눅10:17절 이하에 보면 70인의 전도대가 예수님께 말하기를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님이 보고를 받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사단이 하늘로써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귀신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그러시면서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아멘!/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귀신을 나오라고 했더니 즉시 나왔습니다. 예수 이름의 권세가 큽니다. 그래서 예수 생명, 예수 능력, 예수 권세,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마10:1절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막16:17-18절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할/
그렇습니다. 예수의 이름의 권세가 역사를 일으킵니다. 본문의 귀신의 힘을 빌려 점을 치는 여인에게서 귀신을 쫓아 낼 때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역사 했습니다. 앉은뱅이를 고칠 때에도 '예수 이름으로' 역사 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때도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갈 때 승리했습니다(삼상17:45).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냅니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항복을 합니다. /아멘!/ 골3:17절에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능력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신비합니다. 우리가 그 이름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 이름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 받아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믿/
오늘 본문의 바울은 귀신들린 점쟁이가 계속 쫓아다니면서 복음을 방해하므로 심히 괴로워하다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쫓겨났습니다. 하나님의 복음과 마귀의 역사는 갈라놓아야 합니다. 이것이 혼합하게 된다면 하나님의 일은 다 무너지고 맙니다.
진리와 비 진리는 갈라져야 하며, 참 영과 거짓 영은 갈라놓아야 합니다.
계2:20절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두아디아 교회는 이세벨을 용납한 것이 잘못되었습니다.

 

▶19절 "종의 주인들은 자기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잡아 가지고 저자로 관원들에게 끌어갔다가"
본문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이 여종의 주인들이 자기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잡아서 끌고 갔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여인이 자유케 되었음을 말해줍니다. 신통력이 없어졌습니다. 귀신의 능력은 사라졌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영적인 세계가 어떤 것인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잘 알려줍니다. 지금도 영적인 세계에서는 치열한 영적 전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전투의 요지는 '누가 예배를 받느냐? 누가 인간의 영혼을 소유하느냐' 라는 소유권 싸움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은 누구에게 속해 있습니까? 하나님께 속한 자들입니다. /믿/ 그런데 안타까운 일은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도 아직도 마귀에게 절하고 예배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 생활을 하는데도 '밤에 자면서 가위눌리는 일이 있고 무서운 꿈을 꾸어서 잠을 설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분이 안 좋고 의욕도 안 난다고 합니다.
이것은 왜 이렇습니까? 어떻게 한 가지로 답할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이 '예수 믿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려 할 때 여러 모양의 공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여러분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도록 그냥 바라보고만 있지 않습니다. 어려운 일이 생기게 한다든지, 가위눌리게 한다든지, 몸이 아프게 한다든지 여러 가지 공격을 합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종교를 바꾸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고 무섭게 만듭니다. 이런 일이 있다면 걱정하지 마시고 안심하십시오. 지금 여러분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있다는 사인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인입니다. 마귀가 질투 나서 빼앗으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요10:29절에 '저희를 주신 아버지는 만유 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할/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보호하시면 누구도 건들 수가 없습니다. /아멘!/
여기 '종의 주인들'이란 말은 '점쟁이의 주인들'이란 말로 이 점쟁이의 주인이 여럿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동업 관계가 아닌가?' 추측됩니다.

 

▶'종의 주인들' 이들은 누구인가?
①인신 매매 자들입니다. 귀신들린 불쌍한 여인을 노예로 공동 소유한 자들로 그 노예들을 '사고 팔고' 하는 자들입니다.
②그들은 귀신들인 자들이 점을 쳐서 얻은 소득으로 크게 이익을 보는 파렴치한 이기주의자들입니다.
③사람의 생명보다 물질을 더 중요시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이 나가고 그녀의 정신이 온전하여진 일에는 기뻐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로 인하여 저들에게 이익이 끊어진 것에 격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행한 일은,
④저들은 마침내 바울과 실라를 잡아 로마의 관가로 끌고 갔습니다. 여기서 디모데의 이름이 안 나옵니다. 이유는 디모데는 바울과 실라보다 덜 유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 시각에 디모데는 다른 곳에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디모데는 반 헬라인이었고, 바울과 실라는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공격대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자'로 끌로 갔다고 했는데 이곳은 지역이름으로 그곳에는 법원과 감옥이 있었습니다.

 

▶20절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케 하여"
'상관들'은 로마의 관리자들입니다. 아마도 경찰서장쯤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들은 가자 말자 '유대인'이라고 말한 것은 당시 1년 전에 로마의 황제 '글라우디오'가 로마로부터 유대인들을 축출하자는 칙령이 내려질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바울과 실라가 귀신들린 여인을 치료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오직 유대인으로서 로마제국에 평화를 헤치고 폭동의 씨앗을 뿌리는 자들로 몰아세웠습니다.
당시나 지금이나 유대인들은 세계 어느 곳에 가든지 돈벌이를 하는데 있어서 재주가 뛰어난 자들입니다. 그 이유는 구약 성경을 먼저 받았기 때문에 모든 직업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직업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부지런하면 어디를 가든지 산다는 철저한 사상을 잠언 서에서 일찍이 배웠기 때문에 어떤 직업이든지 부지런하게 집중한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하기 싫어하는 것을 골라 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하는 것을 개발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그만큼 지혜가 뛰어났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마찰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지금 말하는 왕 따를 많이 당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미국 은행가에서 유대인들이 돈을 빼버리면 은행이 무너질 정도로 유대인들이 잡고 있습니다. 뉴욕은 유대인들의 식민지라고 할 정도로 유대인들이 그 지역 상권, 경제권을 잡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도 유대인이라고 하면 우리가 옛날 중국 사람이라고 하면 돈을 모았다는 사람들로 인식했듯이 유대인들도 그런 인식을 했습니다. 그래서 관가에 끌고 가자마자 유대인이라고 강조한 것은 민족적 차별을 내세운 처사입니다.
그들이 고소한 죄목은 '유대인이라는 점과, 우리 성을 심히 요란케 한다'는 이유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의 능력이 빌립보 성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가를 짐작케 할 수 있습니다. 그 성 전체가 심히 요란해졌다고 합니다.
아마도 바울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많은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고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운 사실이 본 성에 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이런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믿/
또 여기 '요란케 했다'는 의미는 '데모주동자'란 말로 '이 사람들이 다니며 문제를 일으키고 다닌다'는 식입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은 '데모꾼'들입니다.
다음에 '요란케 한다'는 말은 종교적인 의미로 해석합니다. 당시 유대교는 금지된 종교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공식적인 종교는 황제 숭배였기 때문에 유대교를 전파하는 것은 위협적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당시 로마사람들은 기독교를 유대 종파의 하나로 보았기 때문에 그들은 유대인이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21절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빌립보 성은 심히 요란케 했다는 구체적인 뜻이 바로 이상한 풍속을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 제국이 다스리는 전역을 통해서도 유대인에 대한 반감이 매우 컸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로마인들이 결코 받아들이거나 행할 수 없는 풍속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로마사람들은 로마 황제를 신으로 섬기며 경외하는데 바울이 예수님을 믿고 섬기며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본문에서 말하기를 그들이 로마 정부에 아첨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로마 사람이 아닙니다. 마게도냐 사람이나 헬라인으로서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그런데 말하기를 '우리가 로마 사람된 것을 아주 명예롭게 생각하는데 이 사람은 로마 사람이 행하지도 못하는 말을 하고 있다'고 아첨했습니다.
일본 제국시대에 아첨하는 자들이 일본 사람에게 우리가 일본의 다스림을 받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22절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송사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송사하니' 여기서 바울 일행은 대중들의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여기 무리는 정치는 여인의 주인들과 그의 다른 종들 그리고 로마 정부에 아첨하는 아첨꾼들 그리고 빌립보에 사는 다른 일반 사람들까지 다 포함합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여론이라고 하면 꼼짝 못합니다. 어떤 문제는 수사를 안 하다가도 여론이 시끄러우면 수사하는 모습을 우리는 종종 보게 됩니다. 그들도 여론을 이용하여 바울 일행을 고소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저런 인간들을 그냥 두었다가는 안 됩니다. 당장 처벌하십시오.'라는 청원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소리소리 질러대서 상황이 심각해졌습니다. 이런 고발은 대게 식민지를 관할하고 있는 로마 당국자들은 그것을 법에 의해 검토하지 않고 군중의 고발에 따라 즉흥적으로 판결합니다.
먼저 '옷을 찢으라' 다음에 '매로 치라'고 했습니다. 당시의 법은 죄인들을 칠 때에 옷을 전부 벗기고 치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바울은 이때의 경험을 고후11:25절에서 고백하기를 '세 번 태창에 맞았다'고 표현했습니다. '태창에 맞았다'는 말은 로마의 중형입니다.
가죽에다가 중간에 쇠를 박아 두었기 때문에 한 대 때리면 그 쇠에 걸려 살이 뚝뚝 떨어집니다. 여기 '옷을 찢는 것'은 '수치'를 더함이요, '매를 쳤다'는 말은 '능멸'을 의미합니다.

 

▶23-24절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영을 받아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
'많이 친 후에' 해석이 두 가지입니다. ①유대인들은 법에 의해 40대 이상 때리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39대를 맞았다는 것(고후11:24)입니다.
②유대인들은 그런 법이 있지만 로마 사람들은 식민지 사람들을 마음대로 때리기 때문에 많이 맞았다는 것입니다.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말하기를 '든든히 지키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위험한 존재임을 밝힌 것입니다. '든든히 지키라'는 말속에는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깊은 옥에 가두고' 로마의 감옥은 보통 3종류로 분류가 됩니다. ①햇볕을 쬐고 공기를 들어 마실 수 있는 보통 감옥과 ②견고한 빗장을 치고 잠그는 내옥과 ③사형수를 수감하는 지하 옥이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들어간 곳은 두 번째 내옥이었습니다.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다'고 했는데 착고에 대하여 상상해 보자면 '춘향이가 큰칼을 목에 차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면 됩니다.
'착고'는 통나무로 만들어진 것으로 죄수의 팔목이나 발목이 들어가는 구멍 4개와 목에 끼는 한 개의 구멍으로 되어 있는 일종의 당시의 로마의 형기구입니다. 이 착고를 채워 놓으면 앉지도 못하고 서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한 상태로 밤을 새워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맞는 것보다 더 아픈 고통을 주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를 보십시오.

 

▶25절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한 밤중에' 실컷 두들겨 맞고 시간이 상당히 지나갔으니 맞은 부위가 더욱 부어오르고 얼얼하게 아파 옵니다. 그렇다고 몸을 움직일 수도 없고 그런 상태의 한 밤중에 바울과 실라는 무엇을 했습니까?
'기도하고, 하나님께 찬양'을 했습니다. 얼마나 위대한 신앙입니까? 바울과 실라는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시50:15)는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히 믿고 기도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벧전4:1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고 하신 말씀을 따랐습니다.
'터툴리안'은 착고에 매여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말하기를 '마음이 하늘에 있는데 어찌 발을 묶고 있는 착고를 느낄 수 있을 것인가?'라고 말했습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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