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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강) 에베소에서 일어난 소동! (행 19:23-41)

by 【고동엽】 2022. 3. 11.

(제55강) 에베소에서 일어난 소동! (행 19:23-41)

 

오래 된 영화 중에 '우리 생애 최고의 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제2차 대전 때 '헤럴드 레셀'이라는 청년이 공수부대원으로 전투에 참가했는데 어느 날 전투에서 그 청년은 폭탄을 맞아 두 팔을 다 잃어버리고 불구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낙심하고 절망했습니다. 두 팔을 잃어버리고 살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절망적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는 쓸모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쓸모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그래도 잃은 것보다 남은 것이 많지 않느냐?' 레셀이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기에게는 잃은 것보다 남아 있는 것이 더 많았습니다. 두 눈이 있었습니다. 아직 두 귀가 있고, 두 발이 있었습니다. 정말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아직도 많습니다. 그는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나는 잃은 것보다 남은 것이 더 많다. 잃은 것은 겨우 두 팔뿐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다 그대로 남아 있다.' /할/
그는 의사에게 부탁하여 의수를 만들었습니다. 열심히 타이프 치는 것을 연습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지내온 생활을 잘 정리하여 책으로 엮었습니다. 이것이 일약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영화화되었습니다. 그 영화에서는 자기가 직접 주연과 연출을 맡았습니다. 인기가 절정에 올랐습니다. 크게 성공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할/ 이 영화가 바로 '우리 생애 최고의 해'입니다.
어느 기자가 그에게 '당신은 신체적 조건으로 인하여 절망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태연하게 대답하기를 '아닙니다. 나의 육체적인 장애는 도리어 가장 큰 축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향하여 말하기를 '여러분은 언제나 잃어버린 것을 계산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 얻은 것을 생각하며 살아보세요! 그 은혜에 감사하며 그것을 사용할 때 하나님께서는 잃은 것의 열매를 크게 보상해주시고 더 많은 가능성이 그 앞에 열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과거를 말하지 말고 미래를 말해야 합니다. 어제를 말하지 말고 내일을 말해야 합니다. 미래지향적인 사람이 축복을 받습니다. /아멘!/


▶행19장은 바울이 제 3차 선교 여행 중 에베소를 복음으로 집중 공략한 사건을 말합니다. 바울은 그곳에서 무려 3년 동안 복음을 전했으며 특히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동안 집중적인 성경공부를 가르쳤습니다.
그곳에서 말씀운동이 일어나니까 하나님은 바울에게 희한한 능력을 주어서 큰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11절에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어떤 능력인가하면 바울이 안수 기도할 때 병마가 떠나고 악귀가 떠났습니다. 심지어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벌벌 떨고 떠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이 행하신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에게도 이런 능력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행5:15절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뉘우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라고"
한편 바울이 예수의 이름으로 그런 희한한 능력을 행하자 에베소에 사는 마술사들이 바울을 흉내내려고 악귀 들린 자에게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님을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고 꾸짖자 악귀 들린 사람이 '예수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안다면 너희는 누구냐?'고 하면서 그 두 사람에게 뛰어 올라 행패를 부리자, 다급해진 마술사들이 아래 바지가 내려가는 줄도 모르고 도망을 쳤습니다.
이 같은 광경을 에베소에 다른 많은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목격을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면서 자복 통회하며 예수 앞으로 왔습니다.
또 마술사들이 깨닫고 지금까지 마술에 쓰여졌던 책들을 모아 불사르게 되었는데 그 책값이 자그마치 은 오만이나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에베소에서의 전도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자 바울은 새로운 지역으로 돌아가 전도하려는 열심히 솟구쳐 올라왔습니다. 당시 가장 세계적인 도시이며 권력의 본상지인 로마를 복음 화시키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로마 전도에 앞서서 바울은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들어가려고 작정을 했습니다. 왜 '예루살렘 모 교회를 방문하려고 했는가?' 하면 당시 팔레스틴 지방의 심한 가뭄으로 교회가 어렵게 된 것을 알고 마게도냐와 아가야에서 구제헌금을 모아 모 교회에 전달하고자 했습니다.(롬15:25/고전16:3-4)
그런데 이런 계획을 가지고 먼저 디모데나 에라스도 두 사람을 그 지역으로 보내고 바울은 잠시 더 에베소에 머물러 있는데 큰 사건 하나가 터진 것입니다.
바로 데메드리오에 의한 소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제목도 ◀에베소에서 일어난 소동!▶입니다. 본문을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선교사로서 바울의 눈은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와 온 유대를 넘어선 지는 이미 오래 전이었습니다. 1,2,3차 선교 여행을 진행하는 동안 소아시아를 넘었고, 헬라 본산지 아덴과 고린도까지 휩쓸었습니다.
그는 이제 당시로서는 누구도 감히 생각하지 못했던 로마를 넘보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선봉장 바울 사도의 시야에는 이미 로마가 들어와 있습니다.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로마가 어떤 곳입니까? 세계의 중심입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당시 로마는 세계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세상 왕국의 권세를 대변하는 곳입니다. 당시 세계의 정치는 물론 경제와 문화 종교 전반에 걸쳐 모든 길은 로마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세계는 로마의 영향권 아래 있었습니다.
과연 로마는 복음화 될 것인가? 과연 바울은 세계 복음화 기초를 로마에 마련하게 될 것인가?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선발대원 사도 바울이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걸어가는 길은 무서운 도전의 길입니다. 특히 사탄에게는 선전포고 그 자체입니다. 과연 그의 앞길은 어떻게 전개되는 것일까요? 예상했던 대로 그 길(道)에는 적지 않은 소동이 있습니다.

 

▶23절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인하여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여기서 '그때쯤'이 정확히 언제쯤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21절의 '이 일이 다 된 후'와 거의 비슷한 시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에베소로 떠날 계획을 세우고 준비중에 있을 때,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그 때를 말합니다.
그런데 학자들 가운데는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마게도냐로 보낸 시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마게도냐로 먼저 보내게 된 것은 '데메드리오'의 선동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디모데와 에라스도와 함께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떠나려고 했는데 이 소동이 일어남으로 두 사람만 먼저 보내고 자신은 그 소동을 잠재운 후에 떠나게 된 것입니다.
'이 도'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의미합니다. 사실 복음이 들어간 곳에 소동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기적과 이적 때문에 일어난 소동도 있고, 은혜를 받고 깨닫자 소리치며 통곡하며 회개하는 소동도 있었으며, 반대자들이 핍박하고 박해하는 소동도 있기 마련입니다.
여기서 일어난 소동이 바로 반대자의 소동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소동이 일어나도록 원인제공을 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울입니다. 나중에 바울의 죄목은 '천하를 소용케 한 자'로 지금으로 말하면 '데모 주동자' 정도일 것입니다.
그래서 정치범이 되어 시위대 안에 갇힌 것입니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어떻게 된 셈인지 사람들이 예수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염병'이라고까지 했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바로 급성 전염병과 같이 퍼져 버리더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아멘!/

 

▶24절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아데미의 은감실을 만들어 직공들로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본문을 이해하려면 먼저 에베소를 알아야 합니다. 당시의 에베소는 아데미 여신을 섬기는 우상의 도시였습니다. 거리거리에는 아데미 신상을 세워놓았고, 특히 에베소 중앙에는 길이가 120m, 둘레가 60m되는 엄청난 아데미 신상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이 아데미 여신은 근동지역에서 다산을 상징하는 모신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아데미의 신상이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 신상은 유방이 12개로 모든 만물을 먹여 살린다는 상징적인 신상입니다.
그래서 아데미 신상은 대지의 어머니로 통하고 모든 인간이나 모든 동물의 생식을 장악한다는 신입니다.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은 많은 직공들을 데리고 아데미 신상을 만드는 업자입니다. 아데미 신을 위한 축제는 매 5월 달에 열리는데 그때 많은 사람들이 와서 그 신상을 사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팔아서 아주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수많은 여행자들은 5월 달이 아니더라도 이 신전을 방문하려고 원근각처에서 몰려들었습니다. 신전 주변에는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음식점, 여관, 기념품을 파는 장사꾼들이 성시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 중 가장 수입이 좋은 장사는 '데메드리오' 같은 자들이 취급했던 아데미의 은감실 장사였습니다.
은감실이란 아데미 여신상을 넣어주는 함을 뜻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모조 은신상을 기념품이나 서원의 신으로, 또는 호신용으로 품고 다녔습니다.
다시 '아데미의 은감실'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은감실이란 은으로 만든 감실을 말하는데 신전의 평평한 벽에 움푹 파인 곳이 넣어두는 함입니다. 그 곳에 부적을 올려 두기도 하고 신상을 새겨 두기도 하고, 장식도 할 수 있고, 쉽게 말하면 신주단지 넣어두는 움푹 파인 곳을 감실이라고 말합니다.
신전에는 감실이 많아야 돈을 버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 이름으로 어떤 신상을 사거나 부적을 사서 혹은 유품을 구해서 거기에다 바치는 사람이 누구라고 어느 신에게 써서 감실마다 가져다 놓으면 그것이 다 신전으로 말하면 수입도 되는 것이고 또 믿는 자들로 말하자면 자기 봉헌의 표시이기 때문에 감실을 만드는 일이 귀중한 일입니다.
어느 지역이나 아주 종교적으로 발달된 모든 유적지는 은세공업자들이 발달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형과 신상을 사가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기념품으로 사가지만 옛날에는 그것 자체가 부적이기 때문에 신앙의 표현으로 사갔단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 데미드리오가 누구인고 하면 그 해에 에베소에 은세공업자협회 회장입니다.
그런데 그 에베소에 바울이 나타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되자 바울이 전도로, 여신을 섬기는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게 되자 데메드리오의 사업이 치명적인 손해를 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그의 직공들과 동업자들을 선동하여 소동을 피운 것입니다.

 

▶25절 "그가 그 직공들과 이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유족한 생활이 이 업에 있는데"
이 소동의 취지가 무엇입니까? 데메드리오는 이러한 소동을 통해 그들의 연합회 사람들을 선동하여 바울의 복음전파를 저지하고 오히려 아데미 여신에 대한 관심을 사람들에게 더욱 고취시키려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연합회 사람들을 모아 놓고 강연하기를 '여러분, 우리가 지금까지 잘 살게 된 것은 다 아데미 신을 만들어 판 결과인데 그만 이 사업이 사양사업이 되어버렸으니 큰일이라고 선동을 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듣고 다 예수를 믿어버리니 우상이 팔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에는 유난히 술집들이 많습니다. 만약 술집 주인들이 모여서 '야! 예수쟁이들이 억척스럽게 전도하더니 술꾼들이 줄어들어 문 닫게 되었다'고 한다면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 것입니까?
실제로 미국에서는 1857-58년에 찰스 피니 목사가 큰 부흥을 일으켰을 때에 3년 가까이 술집 영업들이 되지 않아서 큰 소동이 일어난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영국에서도 요한 웨슬레가 부흥을 일으켰을 때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당시 영국은 얼마나 부패했든지 사회도 썩고, 교회도 썩었습니다. 웨슬레가 우리가 살 길은 '오직 예수 믿는 길뿐이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자'고 외치자 왜 떠들고 전도하느냐고 잡아 가두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당신의 교구가 어디인데 이곳까지 와서 전도하느냐고 책망하자 '나의 교구는 세계요'라는 유명한 말을 그때 웨슬레 목사가 말했습니다. 영국이 썩어져 내릴 때, 세계를 교구 삼고 복음을 전했던 웨슬레 목사님이 있었기에 지금도 대영국제국은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어째든 본문에 에베소에는 바울사도 때문에 우상 쟁이 들이 밥줄이 끊어지게 되자 모여서 궐기대회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권에서는 선동하거나 데모하면 신경을 곤두세우게 됩니다.

 

▶26절 "이 바울이 에베소 뿐아니라 거의 아시아 전부를 통하여 허다한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선동자의 대중연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울 때문에 우리가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만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닙니다. 아시아 구석구석 다니면서 오직 참 신은 하나님이시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의 메시아라고 외치고 다니니 우리 우상쟁이들은 이제 큰일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참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는 없다고 외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하나님 그분만이 살아 계신 참 신이십니다. 바울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고 외쳤습니다.
그때 우상을 만드는 직공들도 다 들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래 맞는 말이야! 우리가 손으로 뚝딱 만들어 놓고 신이라고 절하라고 했더니 엉터리 짓을 한 거야 바울의 말이 백 번 맞는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했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시115:4-7절에서 다윗은 우상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저희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소리도 못하느니라"
어떤 분이 파키스탄을 갔다 와서 이상한 일을 보았다면서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돌 뿌리에 탁 하고 넘어졌는데, 우리 같으면 다칠 뻔했다면서 툭툭 털고 일어나면 그만인데 미신에 꽉 붙들린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고 하면 '이상하다. 왜 그 많은 돌 중에서 하필 이 돌이냐? 그리고 하필이면 나냐? 이게 뭐가 있지 아마?' 그러면서 '이 돌이 그냥 돌이 아니라 신이 내게 뭔가 이 돌을 통하여 말씀하신다' 생각하고 그 표시로 그 돌에다가 빨간 잉크로 꼭 찍고 절을 한번하고 간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빨간 점을 꼭 찍어놨으니까' 저 돌은 신성이 있는 돌이라고 생각하고 그 앞에 지나갈 때마다 절을 하고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사실 바울이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은 이미 아덴 사람들에게 가르친 내용입니다. 앞에서도 말씀했지만 대체로 에베소에서는 5월 무렵에 아데미 신전은 중심으로 대축제가 벌어지는데 이 축제는 아시아 전역에서 가장 큰 축제로서 이 축제에 근동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본문의 배경은 은장색들이 이 축제가 곧 닥쳐왔는데 바울이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니 이 축제가 빛을 잃게 될 것이 뻔하고 그러다 보면 자기들의 수입이 줄어 들 것이 뻔하기 때문에 이렇게 모여서 데모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27절 "우리의 이 영업만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전각도 경홀히 여김이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큰 여신 아데미의 전각도 경홀히 여김이 되고' 다시 아데미에 대하여 생각해 보면, 아데미 여신은 근동 지역에서 다산(多産)을 상징하는 모신(母神)이라고 했습니다. 아데미의 신전은 에베소 북동쪽 약 2.4km지점에 있었는데 가로와 세로가 각각 120m, 60m나 되어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수많은 여행자들이 이 신전을 방문하려고 원근 각처에서 몰려들었습니다. 기념품을 파는 장사꾼들로 성시를 이루었습니다. 그 중 가장 수입이 좋은 장사는 데메드리오 같은 자들이 취급했던 아데미의 은감실 즉 모조 은신상을 제조해서 여행자들에게 파는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복음 전파로 많은 사람들, 심지어 마술사들까지 개종함으로 자연히 우상 숭배의 악습이 점차 폐지되어 은장색(은세공업자)들의 수입이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은장색 조합의 우두머리는 기독교를 대항하여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물론 그들의 명분은 경제적으로 손해를 보기 때문이라고 발설하지 않았습니다. 아주 고상한 명분을 내세웠습니다. '큰 여신 아데미의 전각도 경홀히 여김'이 된다고 했습니다.
데메드리오는 만약 바울의 전도를 막지 못한다면 자기들의 상업은 몰락할 것이라고 그들에게 경고했습니다. 또한 그들의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에베소, 아시아, 나아가서 온 천하에 알려져 있는 아데미 여신의 위험도 위협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데메드리오가 지금 출동한 내용은 세 가지입니다.
⑴자기들의 직업이 천하여질 것이라는 것과, ⑵돈벌이가 잘 안되게 되었다는 것과, ⑶아데미의 위엄이 떨어지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 같이 일어나서 바울과 그가 전하는 복음을 반대하고 아데미 신상을 수호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데메드리오는 아데미 여신에 대한 강한 애정과 충정의 열심을 갖고 있은 척 가장하여 말하지만 그의 궁극적인 관심은 자신의 이익뿐입니다.

 

▶28-29절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분이 가득하여 외쳐 가로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온 성이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가지고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들어 가는지라"
데메드리오가 그들에게 자신들의 직업이 천하여지고 천하가 위하는 아데미의 권위가 떨어진다고 하므로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분이 가득하여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요'하고 일시에 외쳤습니다.
아데미 신은 사람들이 크게 만들고 있습니다. 신을 어떻게 사람들이 크게 만들 수 있습니까? 가짜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크다고 하면 큰 것이고, 작다고 하면 작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참 신이시기 때문에 누가 크다고 해서 큰 것이 아니고 누가 작다고 해서 작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오늘도 살아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믿/
군중들은 그들의 신을 놀리는 말에 속아서 격동을 하고 소란을 피웠습니다. 바울은 그때에 거기에 없었으므로 다른 신자들을 잡아갔습니다. 연극장으로 갔습니다. 저들은 마게도냐 사람인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잡았습니다.
가이오는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할 때, 바울을 친절하게 그의 집으로 초청했던 사람입니다. 고전1:14절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롬16:23절 "나와 온 교회 식주인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이 성의 재무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또 아리스다고는 바울이 로마에 죄수를 넣었을 때, 함께 같이 있으면서 돌봐주던 사람입니다(골4:10).
여기 '연극장'은 노천극장으로 연극 뿐 아니라 대중 집회를 하는 곳으로 에베소 동쪽에 위치해 있었으며 약 2만4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건축물이었습니다. 왜 이들이 두 사람을 잡아다가 연극장으로 달려갔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주석가들은 두 가지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첫째, 이 두 사람을 여론재판하기 위함이요 둘째, 이 두 사람을 맹수와 싸우게 하려고 야외 연극장으로 갔을 것이란 추측입니다. 어디까지나 추측입니다.

 

▶30절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한편 이 소식을 들은 바울은 같이 수고하던 복음의 동역자들이 잡혀갔다는 말을 듣고 그들과 같이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연극장으로 쫓아가려고 하는데 제자들이 신중을 기해달라고 간청을 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바울이 위험 속에 뛰어드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의 시민권이 있고, 또한 친분이 있고, 로마 관리들에게서 호의를 받고 있기 때문에 군중을 진정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고, 또한 그 자리에 모인 군중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면서 폭동을 진정시키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추측이 됩니다.

 

▶31절 "또 아시아 관원 중에 바울의 친구된 어떤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다른 거리는 그들의 성질을 아는 관원 중 바울과 가까운 사람도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사서 고생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동네에서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생명 운동을 하다보면 고난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은 자처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기 나오는 아시아 관원은 아시아에서 가장 고귀한 신분이며 가장 부유한 가문 출신으로서 해마다 10명씩 선출하여 로마 정부에서 파견한 공적 관리입니다. 굉장히 신망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그런 사람들을 친구로 많이 두었습니다.

 

▶32절 "사람들이 외쳐 혹은 이 말을 혹은 저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본문은 연극장 안의 풍경입니다. 그 안에 모인 군중들은 완전히 혼란에 빠져 버렸습니다. 모인 사람들마다 하는 말들이 서로 달라 장내는 온통 뒤범벅이 되어 무엇 때문에 모였는지 조차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무엇이 폭동의 원인인지 누가 탄핵의 대상인지 무슨 용건인지를 몰랐습니다. 지금도 데모하는 사람들은 이 모습입니다. 앞에 서서 격렬하게 고함지르는 사람들은 모인 무리 중에 몇 명되지 않습니다.
그저 군중 심리 속에 묻혀서 따라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 군중심리가 사실을 외면할 수도 있고, 대사를 그르치게 할 수고 있습니다.
본문 속의 연극장에 모인 사람이 태반이나 무엇 때문에 모였는지도 모르고 외쳐댔습니다. 이런 무질서와 혼동은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방법입니다. 사탄은 사람을 몰아가기 때문에 질서가 없고 혼돈스럽습니다.
이 집회는 40절에 보면 '불법집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모여 있습니다. 소요를 선동한 데메드리오는 결정적인 순간에 슬그머니 뒤로 빠져버렸고 그와 함께 행동했던 동료들도 특별히 나서는 사람이 없어서 그 집회가 혼돈스러웠습니다.

 

▶33-34절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발명하려 하나 저희는 그가 유대인인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가로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 동안이나 하더니"
무슨 말인가 하면 에베소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는데 바울이 유대인이므로 잘못 하다가는 아데미 신앙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해를 입혔다 생각하여 '알렉산더'을 보내어 자신들을 변명하여 바울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자들의 입장에서는 유대인들이나 그리스도인들 모두 배척의 대상입니다. 왜냐하면 모두다 우상숭배를 배격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적대감이 자신들에게까지 파급될 것을 두려워한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해명하기 위해 알렉산더를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군중들은 알렉산더가 유대인들인 것을 알고는 데메드리오와 그의 연합회원들이 했던 것처럼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라고 일제히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고함소리는 두 시간 동안이나 계속되었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자들에게는 유대인들도 그리스도인처럼 못마땅했습니다.

 

▶35절 "서기장이 무리를 안돈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성이 큰 아데미와 및 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전각지기가 된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이 난동 속에서 서기장이 나타나 무리들의 질서를 회복시킵니다. 여기 서기장은 로마가 임명한 관리는 아니지만 지방의회를 통해 선출된 에베소의 최고의 행정관리였습니다.
이 서기장은 본토출신의 관리이기 때문에 담당 지역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요사태에 대한 책임이 그에게 있기 때문에 빨리 진정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서기장은 에베소 사람들의 자존심을 살려주면서 '에베소 성이 아데미와 쓰스(제우스신)를 섬기는 것을 누가 감히 부정하겠느냐?'고 하면서 에베소 사람들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위세 당당한 인종의 서기장이 연단에 등장하자마자 소란했던 군중들이 고함소리가 굉장했습니다. 알렉산더를 대했던 태도와는 달리 그의 말을 막으려 하지 않는 군중이 그의 말을 경청했습니다.

 

▶36절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
이 말은 '너희들이 위대한 아데미를 섬기는 자들이라고 스스로 말하면서 이렇게 경솔하게 행동하면 위대하다는 것이 다 헛된 것이 되지 않겠느냐? 위대한 사람이라면 위대하게 놀아야지 이렇게 경솔하게 행해서야 되겠느냐?'는 충고였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의 처신이 신중하지 못했다는 질책을 하고 있습니다.

▶37절 "전각의 물건을 도적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훼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잡아 왔으니"
서기장은 바울 일당이 신성 모독이나 혹은 여신을 섬기는 제단에 봉헌할 어떤 헌물을 훔치지 않았으므로 그들을 고소할 수가 없음을 선언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데미 신전이나 그곳의 기물을 파손도 하지 않았는데 이러한 사람들을 왜 잡아들이느냐고 따졌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보호하실 때 때로는 불신자들을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38-39절 "만일 데메드리오와 및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송사할 것이 있거든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거든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단할지라"
서기장은 군중들에게 법률에 의한 정식 절차를 이용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데메드리오와 그의 직공들에게도 그들이 손해를 당했다면 민회의 법의 절차를 따라 정식으로 소송을 제기하라고 했습니다.

 

▶40-41절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의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가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재료가 없다 하고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37절에서 종합적으로 다시 한번 상고 보면 이런 이야기입니다. '훔친 물건도 없고 아데미 신을 대놓고 욕한 것도 없는데 너희들이 현행범도 아닌데 왜 그러느냐? 그러니 고소하려면 정식으로 해라 재판을 청구하고 그들을 불러서 변호할 기회를 주고 민회로 모이라 그렇게 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우~하고 모이면 로마에서 가만히 있겠느냐? 그러므로 흩어져라'고 해서 불법집회가 흩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에베소에 복음이 전파되면서 어둠권세의 방해가 있었습니다마는 결국 승리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사건을 두고 많은 영적인 해석자들은 두란노 서원을 통해서 배출된 지도자들의 중보기도 역사가 크게 작용한 것 같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에베소는 그 당시 엄청나게 큰 세계적인 도시입니다. 이 도시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고 우상을 섬기던 어둠의 자식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돌아오는 역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고 하니 하나님께 헌신하고 그걸 전파하는데 생을 위탁한 헌신된 사람이 있었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게 된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복음이 확장된 곳에는 언제나 소동이 있었습니다. 이걸 꼭 기억해야 합니다. '복음에는 소동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특별히 '좀 잘 믿어보자고 다짐하면서 이번 주부터는 기도생활을 꼭 좀 해보자'고 작정하면 꼭 무슨 일이 생겨 기도를 방해하지 않습니까? 이겨야 합니다. /아멘!/
서기장은 이 소동에 대해 로마의 지배자가 책망할지도 모르며 소요사건의 원인을 해명하라고 할지도 모른다고 말하면서 군중들에게 두려움과 중압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당시 로마는 관대한 식민지 정책을 실시하였으나 소요하던 데모만은 엄히 다스렸습니다. 사실은 그 치안책임은 서기장이 져야 합니다. 그런데 서기장은 군중들에게 로마의 준엄한 징계가 있다고 엄포 함으로 군중들이 다 흩어졌습니다.
결론적으로 데메드리오의 음모와 요구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사실 이로써 위기적인 상황은 보이지 않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무사히 종결된 것입니다. 바울이 직접 나서지 않았어도 다급한 상황을 진정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어떠한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의 출구를 열어 놓으시고 당신의 백성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시121:4절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 하시리로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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