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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강) 디모데와 루디아를 만난 바울! (행 16:1-15)

by 【고동엽】 2022. 3. 11.

(제46강) 디모데와 루디아를 만난 바울! (행 16:1-15)

 

본문은 바울의 제2차 선교여행의 첫 부분에 해당하는 말씀인데 2차 선교여행은 18:22절까지 계속되고, 3차 여행은 18:23절에서 21:17절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15장에서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 단을 조직하는 문제로 의견이 생겨 갈라졌습니다. 1차 전도여행 때 바나바의 조카였던 마가를 데리고 갔다가 그가 중간에 되돌아 왔습니다.
그 문제로 바울은 그런 마가를 데리고 갈 수가 없다고 했고, 바나바는 '젊은 사람이다 보니 실수한 것이다. 기회를 한 번 더 주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일로 크게 다투고는 그만 갈라져 버렸습니다.
인간적인 면에서 보면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요, 덕스러운 일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하여 두 선교 단이 생기므로 인해 세계 선교를 더 빠르게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간섭하신 것입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고향인 구브로로 떠났고, 바울은 실라라는 젊은 사람과 함께 자기 고향인 길리기아 쪽으로 갔습니다. 그러니까 두 선교사가 자기 고향 쪽으로 향한 것입니다.
고향은 누구나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선교준비를 그쪽으로 먼저 방향을 잡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그쪽 선교를 브레이크 거는 내용이 나옵니다.
6절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9절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환상을 보고 유럽 쪽으로 선교 지를 바꾸게 됩니다. 그들이 유럽 변경의 첫 도시인 빌립보에 도착해서 유럽의 최초의 기독교인인 루디아를 얻게 되어 빌립보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1-5절까지는 선교보다는 1차 선교여행 중에 이미 세워진 교회들을 돌아보는 내용이고, 여기에서 디모데를 만나게 되고, 6-7절 아시아 전도를 성령이 허락지 않았음을, 8-15절 마게도냐 쪽으로 선교하게 되는데 그 첫 성에서 루디아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디모데와 루디아를 만난 바울!▶입니다.

 

▶1절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모친은 믿는 유대 여자요 부친은 헬라인이라"
바울의 제2차 선교여행은 약 3년이 걸렸으며 때는 주후 50-51년경입니다. 2차 선교여행의 기록은 행15:36-18:23까지의 기록입니다.
행15:40절 이하에 보면 안디옥교회에서 다시 선교사로 파송한 바울이 실라를 데리고 먼저 간 곳은 수리아와 길리기아입니다. 바나바는 해로로 자기 고향 구르보 섬을 찾았고, 바울은 해안을 따라 육로로 자기 고향 길리기아 다소 성을 찾은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더베와 루스드라'에 온 것입니다. 시간적으로는 5년 만에 들르게 된 것입니다. 사실 이곳은 인간적으로 말하면 사도바울이 생각하기도 싫은 곳입니다. 그곳에서 얼마나 박해를 받았습니까? 루스드라에서는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실신까지 한 곳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그곳에 다시 갔습니다. 왜 갔습니까? 복음의 씨앗을 뿌린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 씨가 '어떻게 되었는가?'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의 복음을 피로써, 희생으로써, 눈물로써 심은 것은 결코 헛되지 않음을 그곳에서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곳에 갔더니 디모데라고 하는 훌륭한 신앙의 인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뼈저린 박해의 곳이지만 그곳에 가보니 하나님께서 귀한 열매를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제자'라는 말은 바울의 제자도 되지만 그 이상으로 예수를 믿고 따르는 크리스천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디모데는 5년밖에 믿지 않았지만 참으로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었고 제자였습니다. 물론 그는 어려서도 어머니와 외할머니로부터 성경말씀과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신앙을 물려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이었고 어머니는 유대인이었습니다.
디모데는 '하나님의 영광'이란 뜻인데 그는 참으로 바울의 믿음의 아들이 되었고 후계자가 될 만큼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됩니다. 우리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사회에서도 좋은 인물을 키우고 후계자들을 키워 가는 것처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중 하나님께서 쓰시는 인물을 얻는 것은 더욱 귀중한 일입니다. 교회는 바로 제자를 키우는 곳입니다. 교회는 많은 성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많은 성도들 가운데 하나님 앞에 붙잡혀 쓰임 받는 일꾼은 더 귀합니다. /믿/ 우리 모두가 그런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일입니다. /할/

▶여기서 우리는 디모데를 한번 조명해 보아야 합니다.
⑴디모데는 혼혈아입니다. 본문에 보면 그의 모친은 유대여자요, 그의 부친은 헬라인이라고 합니다. 당시 유대 풍속으로 보면 유대인 남자가 이방 여자와 결혼하든, 유대인 여자가 이방 남자와 결혼하든 간에 그것은 율법이 금지하는 결혼이기에 지탄의 대상이 됩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이 많은 이방인들과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디모데는 혼혈아로 자랐습니다. 일반적으로 유대인 사회에서는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그 자녀가 유대인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여자가 이방 사람이면 유대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유대인들의 자식 교육은 어머니의 영향력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디모데의 어머니는 믿음의 신실한 유대 여인으로서 그 이름은 '유니게'였습니다.
딤후1:5절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그러니까 그의 할머니도 신앙이 좋았고, 그의 어머니도 신앙이 좋았습니다. 신앙이 좋은 부모 밑에 신앙이 좋은 아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⑵디모데는 믿음의 뿌리가 깊었습니다.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많이 읽고 묵상하는 자였습니다. 딤후3:15절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믿음의 뿌리는 말씀 안에 내려져야 든든합니다. /믿/
제1차 선교 여행 때 바울 사도가 루스드라에 들려 전도 집회를 열었더니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예수를 구주로 믿겠다고 작정했습니다. 그 중에 유대인들도 예수를 믿겠다고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나머지 유대인들이 떼를 지어 달려 나와서, 한창 집회에 열중하고 있는 바울 사도를 붙잡아 끌어내어 그냥 돌로 마구 쳤습니다. 그리곤 죽은 줄 알고 쓰레기통에 내어 버렸는데, 그 성에 예수 믿겠다고 작정한 사람들이 쓰러진 바울 주위에 둘러 서서 웁니다.
그런데 바울이 아주 죽은 것이 아니라 잠시 후에 정신을 차리고 깨어납니다. 피투성이가 되어 눈을 뜬 바울이 입을 여는데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우리가 이와 같은 환난을 많이 겪어야 한다'고 말하고 루스드라를 떠났습니다.
이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 본 사람 중의 하나가 디모데입니다. 그 디모데가 그 때 결심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려면 이러한 각오를 하고 믿어야 되는구나, 더구나 주님의 제자가 되어서 주님의 일을 하려고 하면 이런 각오를 해야 되는구나' 생각하고 출발을 한 사람입니다.
이런 믿음이 도대체 어디서부터 왔습니까? 외할머니로 시작하여 어머니를 거쳐 내려와 뿌리내린 신앙입니다. 뿌리를 죽 내려주는 믿음. 이런 믿음을 소유한 자는 마치 뿌리깊은 나무가 심한 가뭄이 든다고 할지라도 능히 버티고 견뎌내어 꽃 피우고 열매 맺듯이 귀한 신앙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어 성공합니다. /아멘!/
그러나 믿음의 뿌리가 얕은 자는 조금만 어려움이 닥쳐와도 견뎌내지 못합니다. 뿌리 얕은 나무가 가뭄에 병들고 시들어 말라죽듯이 뿌리가 없는 신앙은 쉽게 병들고 시험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렇습니다. 디모데와 같은 일꾼이 나오게 된 것은 루스드라에서 피를 뿌린 결과입니다. 한 알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한 것처럼 사도 바울이 돌에 맞아 뿌린 피의 열매가 디모데를 맺은 것입니다.
⑶디모데는 형제들에게, 이웃에게 칭찬을 들은 자였습니다. 2절에 봅시다!

 

▶2절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신앙의 힘은 위로 하나님을 향하여 나오지만 그의 행실은 사람들로 인하여 평가를 받습니다. 디모데는 진실한 사람이었습니다. 딤후1:5절 '이는 네 속에 있는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디모데가 어느 정도로 칭찬을 받았는가 하면 자기 고향 '루스드라'라는 그 큰 도시에서는 말할 것 없고 멀리 떨어져 있는 이웃 도시인 '이고니온'에까지도 소문이 나서 칭찬을 받았습니다.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을 받았는데 형제들이란 육신의 친척 되는 형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예수 믿는 믿음의 형제를 말합니다. 즉 교인들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어떤 교인을 칭찬합니까? 뒤에 와서 구경하는 구경꾼들은 10년을 나와도 칭찬할 것이 없습니다. 교인들은 구경꾼인지, 열심히 봉사하는 참 일꾼인지 더 잘 압니다. 구경만 하는 사람에게는 칭찬을 안 합니다.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만이 칭찬을 받고, 칭찬하게 마련입니다. 교인들에게서 칭찬을 받았다는 것은 그 만큼 봉사를 잘 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봉사하고도 칭찬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은 이것저것 기가 막히게 많이 하는데 칭찬을 못 받습니다. 왜냐 하면 기껏 봉사하고 기세를 부리거나, 봉사 좀 했다고 도도하게 거만을 떠니 그 꼴을 누가 보아줍니까. 칭찬은 고사하고 오히려 욕을 먹습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서 어떤 사람이 칭찬을 받습니까? 충성스런 사람이 칭찬을 받습니다. 적은 일을 맡겨도 잘하고 큰일을 맡겨도 잘하고, 높은 자리에서도 잘하고, 낮은 자리에서도 잘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롬14:18절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할/ 사실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잘하면 시기하고 잘못하면 비난을 일삼는 것이 민심입니다. 더욱이 젊은 사람이 남에게 칭찬을 받는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함에도 디모데는 모든 사람들 앞에 칭찬을 받았습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를 후에 믿음의 아들로 세웠습니다. 고전4:17절 "내가 주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니 저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3절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경에 있는 유대인을 인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부친은 헬라인인줄 다 앎이러라"
바울이 디모데를 선교 파트너로 세웠습니다. 당시 디모데의 나이는 21세로 추정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디모데는 당시에 세계 선교사로 언어의 장벽을 넘은 자이기에 아주 합당한 자입니다. 헬라어에 능한 자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의 아버지가 헬라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데리고 떠나기에 앞서 할례를 행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왜 논란이 일어났는가? 바울 사도가 할례 의식을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갈2:3절에 보면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라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아니하였으니' 그런데 여기서 디모데에게 할례를 준 것은 구원의 방편으로 준 것이 아니고 선교적인 차원에서 준 것입니다. 사실 디모데는 할례 받을 필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할례를 받은 것은 유대인들을 전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의 전도를 받아들이지 않을 뿐 아니라 할례를 받아야만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우리나라에 온 미국 선교사들이 두루마리를 입고 고무신을 신고 갓을 쓰고 다니면서 전도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야 우리나라 양반사회에서 복음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디모데는 부친이 헬라인이고, 모친이 유대인이기 때문에 전도하는데 큰 유익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할례 받지 않는 사람과는 같이 먹지도 않고 상종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으면 디모데를 데리고 유대인들에게 전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의 유익을 위해 할례를 행한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러면 그 당시 할례의 정신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자녀들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하실 적에 네가 할례를 받으면 네 몸에 흔적이 남아 죽을 때 가지 지울 수 없고, 그 흔적을 볼 때마다 '나는 하나님과 약속을 한 민족, 언약을 맺은 민족이다!' 항상 그런 의식을 가지고 살도록 표징으로 준 것입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이런 몸의 흔적쯤 그것이 문제이겠느냐? 사실상 마음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니냐? 몸에 흔적만 가지고 마음은 전혀 할례와 상관없는 자세를 가지고 산다면 그 무슨 소용이 있느냐? 마음의 할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사도 바울 주장이었습니다.

 

▶4-5절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의 작정한 규례를 저희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니라"
바울은 그가 1차 선교여행 때 세운 교회들을 순방하였습니다. 왜? 그가 세운 교회의 믿음을 더욱 굳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곳에 가서 무엇을 중심적으로 가르쳤습니까? '예루살렘 총회 때 세어진 규례'를 가르쳤습니다. ⑴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멀리하라고 했습니다. ⑵음행을 멀리하라고 했습니다. ⑶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했습니다. 그 결과 교회들이 더 더욱 믿음 위에 굳게 서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날마다 그 수가 더해져 갔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단어는 '그 수가 날마다 더하니라'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그 전에 '믿음이 더 굳어지고' 그 후에 '그 수가 날마다 더하니라'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교회 성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참된 교회 성장은 질과 양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6-7절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바울과 그의 일행들은 죽음이 기다린다고 해도 주님을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기꺼이 생명을 드릴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열정으로 아시아로 달려가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습니다. 아마 지금의 중국 대륙 쪽에서 사역을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곳으로 가고 싶은 열정이 강했으나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여기 '가고자 애쓰되'라는 말은 '아시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의미함이요 간절한 그들의 기도가 포함된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아무리 애써도, 아무리 기도해도 문제가 풀리지 않았습니다. 왜?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기 '예수의 영'은 성령을 가리키는 말로서 '그리스도의 영'(롬8:9), '그리스도 예수의 영'(빌1:19), '하나님의 영'(롬8:9), '양자의 영'(롬8:15)으로도 불려지고 있습니다.
여기 '허락하지 않았다'는 말은 심령에 계속해서 '성령의 압력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본문에서 '성령이 금했다'는 말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아무리 전도를 해도 '열매가 없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열심히 전하고 열심히 가르쳤는데도 결과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이럴까? 기도하는 중에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바울은 나름대로 전도여행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성령의 세밀한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성령께서 아시아에 복음이 필요하지 않아서 막으신 것이 아니라 유럽의 복음화에 우선을 두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로써 복음 사역의 주도권은 항상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시사해 준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어느 누구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8절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바울은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습니다. 드로아는 무시아 서쪽의 항구인데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가는 관문이라고 합니다. 이곳에는 '마게도냐'로 가는 배가 있는 곳입니다.
바울은 이와 같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전도 지를 찾느라고 많은 수고를 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신의 계획이나 뜻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바울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의 선교가 성공을 거두었던 것은 따지고 보면 성령의 지시에 절대 순종한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멘!/

 

▶9절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밤에 기도를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아시아로 가려고 해도 성령이 허락하지 않고 또 비두니아로 가려고 해도 예수님의 영이 허락지 않아 전도의 길이 막혔으므로 힘써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를 쓴 것 같습니다.
그때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 마게도냐는 헬라지역입니다. 그러니까 로마로 가려면 이곳으로 가야 길이 통합니다. 바울은 환상을 많이 본 사람입니다. 고린도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환상을 보았습니다. 행18:9절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여기 '환상'은 단순한 꿈이나 무의식 속에서 느끼는 그 어떤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느끼는 황홀한 영적 상태를 말합니다. 환상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한 방편입니다. ▶하나님은 특별 계시인 성경 말씀이 기록되기까지는 여러 모양을 통해 자기의 뜻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히1:1).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확실한 하나님의 환상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자꾸 이상한 것을 보려고 눈을 뒤집어 까 보기도 합니다만 우리에게 주어진 최대의 환상, 최고의 환상은 성경 66권입니다. /믿/ 성경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고자 하는 모든 환상이 담겨져 있고 모든 비전과 꿈이 담겨져 있습니다. 또 인생들이 받아야 될 수많은 축복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정말 성경 외에 다른 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성경 말씀 외에 어떤 환상도 보려고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의 말씀에서 인생의 승부를 거는 축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계시의 방편이었던 환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썼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어떤 때는 격려의 환상을 보았고, 또 본문에서는 지시의 환상을 본 것입니다.
여기서 나타난 마게도냐인은 천사로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 천사는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 그리스도의 뜻은 마게도냐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지시했습니다.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이 말은 몇 가지 뜻이 있습니다.
⑴'너는 많은 사람들을 도왔다. 그런데 왜 와서 우리를 돕지 않는가?'라는 물음이요, ⑵'이곳에 죽어 가는 영혼의 환자들이 많으니 와서 도와 달라'는 말이요, ⑶'기도도 좋지만 직접 와서 우리의 영혼을 건져달라'는 표현입니다.

 

▶10절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바울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환상을 보자마자 즉시 마게도냐로 떠날 채비를 갖추었습니다. 또 눈치도 빠릅니다. '하나님께서 마게도냐로 가서 선교하라고 하시는구나!'하고 깨달았습니다.
깨닫는 자가 복 받는 자입니다. 깨닫는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성령의 사역을 다시 한 번 조명해 보겠습니다.
⑴예수의 영은 선교의 장소를 알려주십니다. ⑵예수의 영은 선교사의 마음을 움직이십니다. ⑶ 선교비전을 주십니다. 마게도냐 환상을 통하여 바울은 유럽 선교의 비전을 보았습니다. 바로 주의 영이 선교의 주체가 됩니다. 주님께서 친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고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아시아로 가려는 바울을 막으시고 마게도냐로 보내셨는가?'에 대하여 선교학자들은 이렇게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복음이 아시아로 들어가서 중국으로 갔다면 그 복음이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정체되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미신과 우상 숭배가 넘실거리는 아시아 지역에 복음이 들어올 경우 사람들로 말미암아 복음의 색깔이 변질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게도냐로 복음의 방향을 바꾸셨다고 말합니다. 마게도냐는 헬라 문화의 본산지로서 복음이 마게도냐를 중심으로 통일된 언어를 통하여 로마제국 전체에 급속히 확산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계획을 가지시고 일을 진행시키고 계셨습니다. 바울은 이런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깨닫고 마게도냐로 행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대로 달려가야 합니다.

 

▶11절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드로아는 아시아의 끝입니다. 유럽 쪽으로 나가는 항구인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사문드라게로 갔다고 했는데 이 사몬드라게는 유럽과 아시아 중간에 있는 조그마한 섬입니다.
이 섬은 주위가 약 20마일쯤 되는 섬으로서 죄수들과 도망자들을 위한 피난처이기도 합니다. 그곳으로 직행하여 네압볼리로 갔다는 것은 가장 빨리 가는 길을 선택하여 갔다는 것입니다.

 

▶12절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경 첫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네압볼리에서 육로로 빌립보에 이르렀는데 이 빌립보는 첫 성이라고 했습니다. 첫 성이라는 말은 '첫 째 가는 성'이라고 성경 밑에 주해를 했습니다. 이 마게도냐 지방은 빌립보와 데살로니가와 베뢰아 도시에 있는 지방입니다. 그 옆에 고린도 지방을 가리켜 아가야 지방이라고 합니다.
마게도냐 지방은 알렉산더 대왕이 다스린 지역입니다. 그러니까 마게도냐 지방에서 빌립보 성이 첫 째 가는 성이라는 것입니다. 이 빌립보 성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상당한 영향이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로마의 식민지'라고 했는데 나라에서 직접 다스리는 곳입니다. 빌립보는 원래 '다도스'라고 불렀으나 마게도냐의 왕이요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빌립의 이름을 따서 개축한 후에 그렇게 불렀습니다.
빌립보 지역에서는 여러 번에 걸친 로마인들과의 전투가 있었던 곳입니다. 빌립보 성은 경제적으로 부요가 있었고,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위치에 있었는데 그 성은 우상과 점쟁이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앞으로 나오지만은 점쟁이를 고용해서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성의 사람들은 점치는 것을 아주 좋아해서 점쟁이가 많은 돈을 번 것을 보면 영적으로 아주 타락한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성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바울이 그런 타락의 도성을 복음으로 접수하려고 들어간 것입니다. 바울 일행이 이곳에서 수일을 유했습니다. 빌립보는 작은 우물이라는 뜻입니다. 옛날에 유명한 금관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빌립보는 전도를 시작할 만한 회당이 없었습니다. 당시 회당은 유대인 남자 10명만 있으면 세워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빌립보에 회당이 없었다는 것은 그만큼 로마 세력이 강한 나머지 유대인들이 없었다는 이야기이며 그래서 유대인의 세력도 미미한 곳임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바울의 일행이 그 전도 처 빌립보 성을 며칠 동안 머물면서 조사를 끝내고 안식일에 성문 밖 강가에 있는 기도처에 갔다가 거기에 모여 기도하는 이방 여인들을 만났습니다. 그곳에서 루디아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13절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바울 일행이 회당이 없어서 기도처를 찾다가 강가에 가서 조용히 기도하려고 갔는데 그곳에 여인들이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아마 빨래를 하고자 나와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도하고자 하는 자에게 이렇게 사람들을 붙여 주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도바울의 선교사역 중에 빼 놓은 수 없는 것이 기도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생명선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여는 통로입니다. 특별히 주의 종들은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런데 더 특별히 선교사들은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언어가 다르고, 풍속, 문화가 다른 곳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옛날에 우리나라에 선교하러 오신 선교사들이 한국말을 잘해서 전달한 것이 아니고 기도하고 짧은 한국말로 전했더니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온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성자 리빙스톤도 아프리카 말을 잘해서 간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기 나라 말도 시원시원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만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가서 전했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타나게 되었다고 증거 했습니다.

 

▶14절 "두아디라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이른 아침에 바울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찾다가 안식일에 강변(양기데스 강)에 나가 앉았는데 여자들이 모여 있기에 바울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루디아를 만나게 해 주신 것입니다. 루디아는 자주 장사를 하는 장사꾼인데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루디아는 포목 장사를 하면서도 그 마음이 신실하여 주를 섬기는 은혜를 받은 사람인데 그 여인을 통해서 빌립보 교회 개척이 아름답게 이루어 졌습니다.
루디아는 빌립보 교회를 설립하는데 아름답게 쓰임 받았고, 많은 협력을 아끼지 않은 여인입니다. ▶루다아는 어떤 여인이었는가?
①자주 장사를 했습니다. 자주란 당시 가장 값비싼 색깔로서 대부분의 왕자들이나 부자들만 입을 수 있는 최고급의 옷에 속합니다.
루디아가 자주 빛 비단을 파는 장사꾼이었는지 자주색 염료를 파는 장사꾼이었는지는 확실히는 모릅니다. 루디아라는 이름의 뜻은 '루디아 출신의 여인'이라는 뜻입니다. 이 여인은 죽은 남편의 사업을 맡아서 하는 사업가로서 재산도 넉넉한 여인이었습니다.
②하나님을 공경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이 말은 유대교로 개종한 자에게 일반적으로 붙여지는 칭호입니다. 그러니까 루디아는 구약 성경을 배우고 마음이 열린 상태로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예수님의 소문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가 '구약의 메시아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전할 때 그 여인의 마음이 열린 것입니다.
③루디아는 마음이 열린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여는 것이 아닙니다.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할/
④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한 여인이었습니다. '청종'이라는 말은 '말씀을 잘 듣고 그대로 아멘 하고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행10:33절에 보면 고넬료라는 이방인 백부장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청종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들어오니 '이제우리가 주께서 명하시는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주의 말씀을 경청하다가 성령을 받았습니다. 말씀을 경청하는 것은 내 영이 사는 것이며, 하늘의 신령한 축복을 받는 길입니다. /아멘!/

 

▶15절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
루디아가 예수를 영접한 뒤 당장 집에 가서 식구들에게 전도한 것입니다. 선교의 사역은 먼저 가정입니다. 가족복음화가 그렇게 소중합니다.
①그 집의 온 식구가 세례를 받았습니다. 루디아는 자기만 믿고 그친 것이 아니라 집에 돌아 와 온 가족으로 더불어 전도하고 결심시켜 바울에게 세례를 받게 했습니다.
②바울 사도 일행을 강권하여 집에 유하게 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이렇게 자주 장사 루디아의 집에서 시작하였습니다. /할/ 루디아는 큰 사업가이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이 많고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이 있는 여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말씀을 사모할 뿐만 아니라 가정을 믿음으로 하나되게 하고, 주의 일을 하는 종들을 정성껏 잘 도울 뿐만 아니라 기도를 쉬지 않던 여인입니다. 우리도 이런 여인의 믿음을 본받아야 될 줄 믿습니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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