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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강) 구원의 통로! (행 16:26-40)

by 【고동엽】 2022. 3. 11.

(제48강) 구원의 통로! (행 16:26-40)

 

오늘 본문은 31절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이 말씀과 비슷한 말씀이 요3:1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기독교가 강조하는 복음의 골자는 쉽고 간단합니다.
본문의 배경은 고대 빌립보 감옥에 바울이라는 죄수가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죄명은 귀신들린 여인을 고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성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귀신들려 점치는 무당이 바울일행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저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들로써 구원의 길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외치고 다닙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날을 그렇게 따라 다니면서 외치니까 사람들이 무당과 바울일행을 같이 취급했습니다. '귀신의 역사와 하나님의 역사를 동일하게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게 될 말입니까? 그래서 바울이 '복음이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 귀신들린 무당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고 명하니 귀신이 그 자리에서 즉시 물러갔습니다.
그렇게 되자 점쟁이를 고용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수입원이 끊기자 바울일행을 심히 요란케 하는 자, 로마 사람이 받지도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하는 자라는 죄목으로 송사함으로 그들이 로마 경찰들에게 붙잡혀 죽도록 매를 맞고 온 몸에 착고를 채워 감옥 깊은 곳에 쳐 박았습니다.
지금 바울은 귀신을 쫓아주고 병 치료를 해준 것 때문에 억울하게 감옥에 갔고, 죽도록 매를 맞고 온 몸에 착고를 채웠습니다. 당시 로마의 감옥은 '외옥과 내옥'이 있었는데, 외옥은 지상에 있는 감옥이라 햇빛도 들어오고 비교적 깨끗했지만 내옥은 지하 깊은 곳에 있어 어둡고 습하며 불결하여 병들어 죽는 죄수가 많았습니다.
죄도 없는 바울과 실라는 그런 내옥에 구속당했습니다. 우리는 본문의 상황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끼니는 생각도 못한 채 억울하게 고문까지 당한 상태로 식사는커녕 물 한 모금도 마시기 힘든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전도하다가 고난 당하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이렇게 당하기는 처음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해도 너무 힘든 상황입니다. 그러니 바울과 실라의 입에서 불평이 나올만합니다. '하나님 제가 언제 유럽에서 전도한다고 했습니까? 저희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저희는 아시아에 가서 전도하려 했지 않았습니까? 제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라는 불평이 나올 법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어려운 상황가운데서도 불평이 없었습니다. 도리어 한밤중에 기도하며 찬송했습니다. 그런 상황가운데서도 그들 마음속에는 감사가 넘쳤던 것입니다.
25절에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한 밤중 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두 손을 붙잡고 합력하여 기도하고 하나님께 찬양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얼마나 분한 일입니까? 그러나 그들은 원망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절망도 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신앙의 절정을 보게 됩니다.
신앙은 이것입니다. /믿/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26절 이하를 보면 바울과 실라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했더니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 감옥 문이 열리고 착고가 풀어지고 옥 터가 흔들리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간수가 세상모르고 자다가 감옥의 땅이 흔들리므로 깜짝 놀라 깨어보니 감옥 문이 열리고 온통 수라장이 되었습니다. 간수가 직감적으로 바울이 믿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렇게 된 것을 알고 검을 들어 자결하려고 할 때, 옆에 바울이 말립니다.
간수들이 깜짝 놀라 외치기를 '선생들아 내가 어찌하여야 구원을 얻습니까?' 바울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렇습니다. 기독교가 강조하는 복음의 골자는 쉽고 간단합니다. 주 예수님만 영접하고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본문의 바울과 실라를 한 번 조명해 보겠습니다.
①자신들의 누명을 벗기 위해 변명을 한다든지 억울함을 호소하는 구차한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②깊은 밤, 깊은 감옥소에서 하나님만 기도하고 찬양을 했습니다.
③옥문이 열리고 착고가 풀렸음에도 불구하고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간수들이 그들을 통해 다른 죄수들과 비교할 때, 상상 못할 면들을 보았습니다. 거기서 받은 충격도 컸을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빌립보 감옥을 지키던 간수와 그의 가정이 어떻게 구원을 받게 되었는가를 알게 됩니다.

 

▶26절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본문은 25절의 결과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준 대가로 공개적으로 옷을 찢어버리고 때린 후에 착고에 채워 투옥시켰습니다. 요즘말로 폭행하고 고문을 한 것입니다.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그러나 저들은 하나님께 원망, 불평하지도 않았고, 사람들을 저주하지도 않았으며 자신들이 겪는 고통 때문에 신음하거나 몸부림치지도 않았습니다.
25절에 무엇을 했다고 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찬미(讚美)'했다고 했습니다. '찬미'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신령한 노래'입니다. '찬미'는 '곡조 있는 간구'입니다. '찬미'는 '기도'입니다. '찬미'는 '신앙고백'입니다. '찬미'는 '회개와 참회'가 있습니다. '찬미'에는 '감사가 있고, 구원의 감격'이 있습니다. /아멘!/
바울과 실라는 죄 없이 감옥에 들어갔지만 그들의 입에서는 기도와 찬미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구원에 대한 감격입니다. 구원에 대한 감사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감옥도 그들의 감격을 가둘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감옥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했던 것입니다. 거기에 열매가 많았습니다. 간수를 구원했고 그 가족을 구원했습니다. 하나님께 찬양하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기도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찬양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26절을 보면 홀연히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옥 터가 움직입니다. 옥문이 모두 열렸습니다. 쇠고랑과 착고가 끊어졌습니다. 모든 사람이 매인 것이 다 벗어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어떠한 역경과 고난이 온다고 해도 절대 믿음이 약해지지 말고 도리어 기도하고 찬송하고 기도해서 마침내 하나님께서 옥문을 열고 쇠사슬을 끊어주시면 우리 삶의 모든 상황을 변화시켜 주시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본문의 지진은 보통 지진이 아닙니다. 보통 지진이 났다하면 집이 다 무너지고 사람들이 다 죽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지진은 집은 가만히 있고, 사람만 깨우는 지진이요, 쇠사슬만 풀리는 지진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역사요 간섭입니다.
이때 쇠사슬이 풀린 것은 귀하고 옥문이 열린 것도 귀합니다만 더 귀한 것은 간수장의 마음 문이 열린 것입니다. 이것이 큰 기적입니다.
어떤 주석학자는 그 날 밤 간수장이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은 것은 그의 영혼이 흔들렸기 때문이요, 감동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즉 그 영혼에 지진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바울과 실라의 기도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 날 밤 바울과 실라의 기도의 제목이 무엇이었습니까? 우리들 같이 감옥에서 나가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의 기도는 고차원적인 기도였습니다. '빌립보 성의 구원을 기도했고,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간수들의 영혼구원을 위해 기도'한 줄 믿습니다.
기도하고 찬양했더니 26절에서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간섭이요, 역사입니다.
영국 격언에 '밤은 좋은 생각을 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 말도 있습니다. 분명히 어두운 역경은 찬란한 새 희망을 안겨 줄줄 믿습니다. /아멘!/

 

▶27절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간수가 자다가 깨었습니다. 감옥의 상황을 보았습니다. '한 밤중에 왠 홍두깨냐?'는 말이 있습니다. 자다가 깬 간수는 옥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알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고 했습니다.
그 감옥에는 바울과 실라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26절에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겨진지라'고 했습니다. 감옥 안에 들어 있던 모든 죄수들의 몸이 풀어진 것입니다. 왜 간수가 자결하려고 했습니까? 그것은 당시 로마의 형벌 때문입니다. 간수들이 죄수를 놓칠 경우 그 죄수의 형을 대신 져야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헬라인이나 로마인들은 그들이 피할 수 없는 위험에 처할 때 자결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간수장이 칼을 뽑아 자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 바울이 큰 소리를 질러 자살을 못하게 했습니다.

 

▶28절 "바울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바울이 크게 소리'를 지른 것은 당시 간수장이 죽으려고 칼을 뽑았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다급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한 영혼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도망하지 않고 다 여기 있으니 당신 몸에 손대지 마시오!'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바울의 이 소리는 실제로 간수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쁜 소식입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리고 이 소식은 그에게 영혼을 일깨워 주는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간수도 아마 바울과 실라가 귀신들린 여종을 고쳤으며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한다.'고 말한 점쟁이의 말을 들었을는지도 모릅니다.
간수장은 바울과 실라가 크게 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등불을 들고 뛰어 들어가 두려워 떨면서 엎드려 절하고 바울과 실라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다음절을 보자!

 

▶29-30절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간수가 무서워 떤 것은 지진으로 문이 열렸는데도 죄수들이 도망하지 않고 침착하게 있는 모습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런 상황에서 간수가 두려움을 느끼지 아니했다면 그것은 오히려 이상한 일입니다. 렘5:22절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간수의 행동을 주시해 보아야 합니다.
⑴간수의 첫 번째 행동은 '등불을 달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 감옥은 기름으로 불을 밝혔기 때문에 감방마다 밤새 불을 켜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감옥이 어둡습니다. 다 도망친 줄 알고 자살하려는 그에게 깜깜한 감방 안으로부터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도망친 것이 아니라 다 여기 있다'고 말하는 그 얼굴이 보고 싶었습니다. 정말인가? 의심스러웠고 빨리 그 사실을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등불을 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어두운 세상을 보려면 등불이 필요합니다. '내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는 하늘의 기쁜 소식을 들으려면 믿음의 등불이 필요합니다. 이 어두운 세상 속에서 내 인생의 문제를 보려면 지혜의 등불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그 등불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세상의 등불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절대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아멘!/
⑵간수의 두 번째 행동은 '두려워 떨면서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했습니다. 여기서 부복이란 말은 '깊은 경외심의 표현'입니다. 동양에서도 존경하는 어른이나 신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절을 합니다. 바로 부복이란 그것을 뜻합니다.
⑶간수의 세 번째 행동은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려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라는 질문입니다. 죄수가 간수에게 부탁을 하고 청탁을 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그런데 상황이 바뀐 것입니다. 기도하고 찬송하면 바뀌어지는 역사가 일어나는 줄로 믿습니다. 멸망이 희망으로, 슬픔이 기쁨으로, 실패가 성공으로! /할/
지금 이 간수의 외침을 보세요! 그의 인생관이 몇 시간 사이에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지금까지 그 간수에게 있어서 구원의 문제는 그의 마음속에서 가장 먼 곳에 있었으나 이제는 그의 마음의 가장 가까운 곳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는 '내가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좀더 나은 사람이 되며, 혹은 부자가 되며, 어떻게 하면 승진 할 수 있을까?'를 묻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구원의 문제가 그의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할/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질문도 없습니다. 여기서 그들이 말하는 구원은 현실 구원이 아니라 영혼 구원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간수는 죄수들이 도망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어떤 위험에도 처해 있지 않습니다. 그럼으로 그들의 질문은 영혼구원에 있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빌립보 감옥의 한 간수의 질문이 아니라 온 인류 역사를 통하여 인간이 계속적으로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롬3:11절에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고 했고, 롬3:23절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했으며 또한 롬6:23절에서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확실하게 선언하고 계십니다.
겔18:4절에 보세요!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결국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내리는 사형선고를 피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세상을 더 정복할 곳이 없어서 땅을 치며 울던 30대의 알렉산더도, 들판의 사자처럼 유럽을 뛰어다니던 나폴레옹도, 만리장성을 쌓고 불로초를 먹으며 오래 살기를 원했던 진나라의 진시황제도 이 죽음 앞에서 꼼짝 못하고 두 손을 들었습니다.
결국 인간은 누구나 사도바울처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라!'고 절망적으로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우리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빌립보 간수의 질문은 바로 인간 실존의 가장 위대하고 본질적인 질문입니다. 간수장의 질문에 바울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31절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여기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주 예수를 믿는 것이 죄 사함 받는 조건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함이 인생의 어두운 문제를 해결 받는 길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소망의 종교요 행복을 가져다주는 종교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죄 사함을 받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기쁨이 있고, 예수를 믿으면 감사가 있고, 예수를 믿으면 절망이 소망으로, 낙심과 좌절이 희망과 용기로 바뀝니다. 예수를 믿으면 어떠한 절망과 문제 앞에서도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바뀌는 줄로 믿습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갈망이 인간이 구원 얻는 길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완전하신 작정이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용서받은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일1:7절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엡2:8-9절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가 무엇을 해야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믿음을 통하여 공짜로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요6:37절에서 주님은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고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분명합니다. 롬10:13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공포하고 있습니다. 간수장의 질문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예수만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으면 멸망합니다.
지금 이 세상은 죄로 멸망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기 때문에 멸망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멸망하는 이유는 죄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3:18절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히2:3절은 결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여기 '등한이 여긴다'는 말은 예수의 이름을 무시한자들을 말합니다.

 

▶우리는 본문 31-32절에서 두 가지의 교훈을 발견합니다.
①구원받는 길이 너무나 쉽다는 것입니다.
지식으로 구원받고, 권력으로 구원받고, 재력으로 구원받는다면 그 구원의 길은 정말 어렵습니다. 지식이나 권력이나 재물은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직업이 무엇이며, 신분이 무엇이며, 나이가 몇이며, 재산이 얼마인지, 학벌이 어느 정도인지 상황은 없습니다. 정말 마음으로 확실히 믿기만 하면 구원은 틀림없습니다. /할/
②구원의 연쇄성입니다. 내가 예수 믿고 구원을 받으면 그 영향과 변화 때문에 가족, 친척, 이웃 친구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는 연쇄반응이 일어나게 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할/

 

▶32절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2절의 배경은 밤이 되자 간수는 바울일행을 데리고 자기 집으로 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그 간수 집에 가서 그냥 자고 간 것이 아니라 그 밤에 부흥회를 연 것입니다.
행10장에서도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가정 부흥회를 했습니다. 본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간수장 집에서 부흥회를 연 것입니다. 지금 바울은 너무 많이 맞았기 때문에 온 몸이 얼얼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온 식구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어려운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했더니 간수장의 일가족이 온전히 주님 앞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빌립보 교회에 큰 기둥 같은 일꾼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지금도 형무소장 정도면 큰 인물입니다. 당시 간수장도 큰 인물입니다. 빌립보 교회에 루디아와 간수장이 기둥 같은 일꾼으로 세워졌습니다.

▶전도를 해 보면 어려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①기독교에 대하여 상당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더 어렵습니다. 믿다가 타락했거나 기독교를 연구했거나, 상당한 식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더 전도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도보다 더 성경을 많이 아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을 많이 안다고 해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②기독교에 대하여 도전적이고, 공격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를 매도하고 하나님과 예수를 매도하고 성도들을 싸잡아 매도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비리나 부정적인 요소를 '미주알 고주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③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 향락에는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영혼, 구원, 천국, 영생'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차라리 이런 사람들보다는 기독교에 대해 전혀 접촉이 없었던 사람들이 더 전도하기 쉽습니다. 본문의 간수장의 가족들은 복음에 대하여 전혀 접촉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설교를 듣고 다 예수 믿고 구원받아 세례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할/

 

▶33-34절 "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은 후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본문을 보면 간수 한 사람만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온 가족의 구원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바울의 대답처럼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33절에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고 했고, 34절 하반절에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간수장을 한 번 점검해 봐야 합니다. 이 간수장은 자신만 구원받고 적당히 감사한 뒤 그들을 석방시킬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다음 날 날이 밝으면 다시 한 번 만날 것을 약속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단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신앙의 결단을 보자!

①섬기는 자리로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33절에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그는 즉시 죄수의 상처를 씻어주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상식적으로 말하면 죄수가 간수 앞에 무릎을 꿇고 명령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섬기는 자리로 낮아졌습니다.
②즉시 세례를 받았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6개월이 지나면 학습세례를 주고 그 다음 6개월이 지나면 세례를 줍니다. 사실 학습제도는 우리 한국에만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예수를 믿기만 하면 바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세례란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사는' 천국인의 표입니다.
③가정으로 초대를 했습니다. 초대해서 맛있는 음식을 정성껏 대접했습니다. 여기서 음식을 대접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온 가족이 똘똘 뭉쳐 하나님의 종들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족공동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가족이란 동고동락하는 공동체입니다. 슬픔을 함께 나눔으로 작아지는 것이고, 기쁨을 함께 나눔으로 커지는 것입니다. 나쁜 일은 서로 하지 말라고 붙잡아 주는 것이 가족이고, 좋은 일은 서로 격려하고 많이 행하자고 다짐하는 것이 가족입니다.
옛날에 아브라함은 혼자만 하나님을 공경한 것이 아닙니다. 온 가족이 하나님을 공경했습니다. 여호수아도 혼자만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닙니다. '나와 네 집은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겠노라!' 온 가족이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축복 중에 축복입니다.
④그 날 이후 그 가정은 기쁨이 넘쳤습니다. 34절 '하'에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할/
어느 정치인의 고백이 생각납니다. 그 사람은 국회의원 선거 때,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열심히 선고 운동을 한 결과 상대방을 누르고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 그 기쁨은 헤아릴 수가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계속해서 걸려오는 수백 통의 전화, 수십 개의 화분, 전보, 그리고 매일같이 찾아오는 수십 명의 축하객들 때문에 정신이 없더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다음 선거에서 차점으로 낙선했을 때, 그 허전함과 비애, 그리고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방문객도 없고, 전화도 전보도, 화보도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세상의 조건이 가져다주는 기쁨은 다 비슷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누리는 기쁨은 세상의 기쁨과 다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안에는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또 주님이 주시는 복음은 세상의 평안과는 다릅니다. 요14:27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렇습니다. 간수는 바울과 실라를 자기 집으로 모시고 갔습니다. 그들의 맞은 자리를 치료해 주었습니다. 사도들의 권위를 회복시켜 준 것입니다. 그리고 간수와 그 가족들은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를 받은 후 간수는 음식을 차려 사도들을 대접했습니다. 큰 기쁨이 그 가정에 넘쳤습니다. 이런 기적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기도입니다. 여러분! 기도는 능력이 있습니다. 찬송은 권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 못할 축복을 예비하셨다가 기도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아멘!/
렘33:2-3절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여러분! 지금 우리가 기도할 때입니다. 지금은 우리 교회가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행여나 내 남편이 구원받지 못했는데, 자녀들이 구원받지 못했는데 기도를 쉬고 있지는 않습니까?
바울과 실라의 기도는 감옥 문을 열었습니다. 그들의 수갑을 풀었습니다. 간수의 마음 문까지 열어지게 했습니다. 우리들도 바울과 실라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제일 어리석은 성도가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까? 기도해야 하는데 기도하지 않는 성도입니다. 축복은 받고 싶은데 기도는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믿/
지금 우리는 빌립보 감옥보다 더 어둡고 침울한 터널 속에 갇혀 있습니다. 경제문제, 직장문제, 회사문제, 사업문제, 자녀문제, 장래문제, 가정문제, 실직문제, 요 근간에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는 정치문제까지 수를 셀 수 없는 문제들이 나라와 민족 속에 내 가정과 사업장을 조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해결책이 무엇입니까? 간단합니다. 바울과 실라처럼 기도하고 찬송하면 됩니다. 기도는 지금도 기적이 일어납니다. 부모의 기도 때문에 자식이 잘되고, 아내의 기도 때문에 남편이 잘되고, 가장의 기도 때문에 가정이 살고 기업이 되살아나고 묵인 것이 풀어지며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아멘!/

 

▶35-36절 "날이 새매 상관들이 아전을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간수가 이 말대로 바울에게 고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
'날이 새면' 전날 밤에는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고 하고서(간수장의 사택은 형무소 안의 간사입니다.) 그런데 하루 밤사이에 어떻게 된 일인지 로마의 상관이 아전을 시켜 그들을 석방시켜 주라고 합니다.
여기서 학자들의 견해는 '지난밤에 지진으로 인하여 두려워하여 아전을 보냈다'고 하는 학자와, '그 상관들이 바울과 실라에 대한 송사가 거짓된 것임을 발견하고 그들의 석방을 명령했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옥사장의 가정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과 빌립보 교회의 기초를 든든히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감옥을 이용하신 하나님의 섭리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동안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가난, 실패, 질병, 사고, 사건 등 그러나 그 역경은 우연히 아니라 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믿/

 

▶37절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우리를 내어 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저희가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하리라 한대"
왜 바울이 자신이 로마 사람이라고 밝히고 있습니까? 그는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행22:27-29).
당시 로마 시민권을 취득하는 방법으로 돈을 주고 사는 경우가 있고, 날 때부터 시민권을 가진 자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날 때부터 시민권이 있는 자였습니다. 왜 이제야 그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까?
그때 바울을 친 고관들에게 권력이 없어서 맞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서 맞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참고 맞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회에 간수장과 전 가족을 전도한 것입니다.

 

▶38-39절 "아전들이 이 말로 상관들에게 고하니 저희가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바울이 로마의 시민권자라고 말하자 그 상관이 벌벌 떨었습니다. 왜 그렇게 떨었을까요?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함부로 때리지도 못하고, 재판 없이 감옥에도 넣을 수가 없었습니다.
'재판도 하지 않고 나를 때리고 감옥에 넣었으니 내가 상고하겠다'고 할까봐 벌벌 떤 것입니다. '요세푸스' 역사가에 의하면 그때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 빌립보 성에는 몇 명 없을 정도라고 했습니다.
높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로마 시민권을 가질 수 없는데 바울 사도가 가지고 있었으니 그의 신분이 대단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절대로 그 신분가지고 자기를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믿는 사람이 권력을 부리면 안 믿는 사람들이 두려워 할 뿐더러 복음 전도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바울 일행은 로마 고위 간부들의 환송을 받으며 감옥에서 나왔습니다.

 

▶40절 "두 사람이 옥에서 나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감옥에서 나와 어디로 갔습니까? 루디아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러니까 빌립보 교회로 간 것입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위로하고 빌립보를 떠났습니다.
바울 일행은 떠나면서 하나님이 왜 마게도냐로 보내었는가를 깨닫고 선교의 주체는 역시 하나님이심을 더 확실히 믿게 되었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우리는 2천년 전 빌립보에서 옥문을 여신 하나님께서 빌립보 간수의 마음까지 여신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은 이렇게 하여 그 삭막한 빌립보에 임했습니다. 그리고 이 빌립보는 유럽 선교의 전초기지가 되었습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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