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목차 돌아가기] |
211.토리 박사 이야기
바로 지난 금요일에 세브란스 의수족(義手足)부에서 아침 기도회를 인도해 달라고 해서 갔다 왔는데 거기가 보니까 토리 박사 기념 채플이 있었습니다. 이 토리 박사는 본래 그 유명한 미국의 부흥사인 토리 박사의 아들인데 이 분이 중국의 선교사로 갔다가 제2차 대전 때에 그만 부상해서 팔을 하나 잃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6·25사변이 일어나 다리 없는 사람, 팔 없는 사람이 많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에 나와서 세브란스병원을 중심해서 의수족 부를 설치하고 많은 청년들에게 다리를 해주고 팔을 해주었습니다. 지금 그이는 귀국했지만 현재 그 책임자로 있는 선교사도 두 손이 다 없는 분입니다. 두 손이 다 없는 분인데 한국에 나와서 많은 손 없고 발 없는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212.헬렌 켈러 이야기
헬렌 켈러 같은 여자는 소경이니 눈도 보지 못하고, 귀머거리니 귀도 듣지 못하고, 벙어리니 말도 하지 못합니다. 이런 여자지마는 세계의 가장 유명한 여자 가운데 하나입니다. 몸이 약하다고 불구자가 되었다고 열등감에 사로잡혀서 자포자기하면 안 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사업하다가 실패한 다음에 열등감에 사로잡히는 이가 혹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사실 이유가 안 됩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마는 우리 교회 고한규 장로님은 참 위대한 장로님이십니다. 그가 한 번은 자기의 회고담을 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습니다. 그가 사업에 실패해서 많은 사람에게 빚을 졌던 경험이 있었다고 합니다.
213.김기범 장로님 이야기
내가 신의주에 제2교회에서 봉사할 떼에 그 곳에 참 위대한 장로님으로 김기범 장로님이라고 계셨습니다. 언젠가 김기범 장로님과 하루 저녁 같이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데 하시는 말씀이, 자기는 일생 사업을 한 사람인데 일생에 세 번 크게 실패를 해서 한 푼도 없는 신세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에, 다시 일어나서 회복하여 이 만큼 살아간다고 하였습니다. 사업하다가 누구나 실패할 수 있습니다. 실패했다고 절대로 열등감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214.큰 사업을 한 여자들
부인들 중에는 미안한 말이지마는 얼굴에 허물이 있든지 또 얼굴이 잘못 생겼으면 아주 열등감에 쉽게 사로잡히는 모양입니다. 얼마 전에 어떤 책을 보니까 어떤 분이 세계에서 가장 큰 일을 많이 한 여자들을 전부 조사를 하고 그들의 얼굴이 잘 생겼나, 못 생겼나를 알아보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오히려 큰 사업을 한 야자들 가운데는 못 생긴 여자들이 더 많다고 하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얼굴에 허물이 좀 있다든지 해서 열등감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습니다. <열등감을 극복하는 비결>에서
215.성 안토니오의 결단
주후 4세기 애굽의 한 청년이 성경 말씀을 듣고 돌이켜 생각을 해보니 주님의 이 말씀은 꼭 자기에게 하는 것으로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 청년은 부모에게서 상당한 재산을 유산으로 받았습니다. 가족이라고는 자기의 손아래 여동생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는 예수 님 당시에 재물이 많은 까닭으로 근심하며 돌아간 사람의 전철(前轍)을 다시 밟지 않기로 생각하고 주님이 명령하신 대로 꼭 실행하기로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재산의 대부분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적은 재산만 남겨서 자기의 여동생의 생활비로 준 다음, 자기는 성경에“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고 한 교훈과“항상 기도하라고”한 교훈대로 자기 손으로 일해서 먹으며 기도생활을 하기로 결심하고 애굽 광야에 나가서 손수 곡식을 심어서 거두어 먹고, 남는 시간을 오직 기도와 묵상으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 청년이 교회의 역사상 유명한 성 안토니오 입니다. 수도사들이 아버지로 존경을 받은 분입니다. 현대 청년들도 꼭 안토니오를 모방하라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의 결단을 배워야 되겠습니다. 청년들이 아무리 성품도 좋고, 학식도 있고, 재주도 있다고 하지마는, 결단력이 없으면 무슨 일을 이룰 수 없습니다. 이 역사적 시점에서 사는 우리 한국 청년들은 반드시 결단할 몇 가지가 있는 줄 생각합니다. <한국 청년의 결단>에서
216. 진젠둘프의 헌신
우리가 교회 역사를 읽어보면 물론 위대한 전도자가 거의 하늘의 별처럼 무수히 일어났습니다. 그 여러 사람 가운데도 특별히 우리 신교 역사상에 세계 선교운동을 일으켜서 자기 스스로 실천한 모라비아교회의 창립자요, 또 그 교회의 목사였던 진젠돌프라고하는 이를 기억하게 됩니다.
이 분은 본래 귀족의 아들입니다. 백작의 벼슬을 가진 분입니다. 자연히 재산도 많은 분입니다. 그러나 이분은 자기의 지위도 버리고 재산도 다 바쳐서 오직 온 세계에 복음을 전파한 분입니다.
그 때에는 불행이 구교도와 신교도 사이에 큰 충돌이 있어서 구교도의 압력을 받은 불쌍한 신교도 피난민들이 갈 때가 없어서 그에게로 찾아 올 때, 이 분은 그들을 영접해서 자기가 소유한 토지를 주고, 그들을 위해서 집을 지어주고, 그들로 하여금 같이 모여서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또 예배당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렇게 되어서 한 5, 6백 명쯤 피난민들로 조직된 교회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수는 많지 않지마는 진젠돌프를 중심해서 이들은 하나님을 공경하며 같이 모여서 기도하고 성경 말씀을 배우며 성례를 거행하는 가운데 온 교우가 성령이 충만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해서 이들은 자기자신들만 믿을 것이 아니라, 이 귀한 복음을 온 세계에 전파해야 되겠다고 하는 새로운 사명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5, 6백 명되는 교회에서, 멀리 아프리카를 비롯해서 웨스트 인디아와 저 북방의 그린란드까지 백 여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게 되었습니다. 보통으로 평균 네 세대, 다섯 세대에서 성교사 한 사람을 담당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와 같은 운동을 일으키게 되었는가? 진젠돌프 자신이, 이 경험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는 어렸을 때부터 자기 할머니에게 독일 경건주의의 감화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그가 젊었을 때에 어떤 박물관에 들어가서 여러 미술품을 구경할 때, 한 그림에 가보니까 그 때의 유명한 화가 스턴벅(Sternburg) 이라고 하는 분이 그린 명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십자가에 못 박이신 모습을 그린 그림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그림을 유심히 볼 때에 은혜를 받아서 주님께서 죄인들을 구속하기 위해서 그처럼 고생을 받았다고 하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자기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보혈을 흘리셨다고 하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게 되어서, 그 그림 앞에 조용히 섯는 동안 주님께서 은연(隱然)한 가운데“나는 너를 위해서 내 몸을 주었건마는 너는 나를 위하여 무엇을 하느냐?”하는 음성이 그 심령 속에 들렸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서 자기의 몸을 바치고 자기의 가진 것 전부를 주님께 바쳤습니다. 그 감격과 그 감사한 마음 가운데서 온 천하에 복음을 전파하게 된 것입니다.
217.흑인 전도자들
바로 몇 칠 전에 신문지상을 통해서 미국에 있는 흑인 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라고 하는 분이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는 뉴스를 다 들으신 줄 압니다. 아프리카 흑인 가운데서도 위대한 기독교인이 여러 사람이 나왔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물론 마틴 루터 킹 같은 사람이다. 한편 지난 세기인 저 19세기 아프리카 흑인 중에 제일 유명하다고 생각되는 분은 나이제리아의 사도라고 이름을 얻게 된 사무엘 애드자이 크라우드( 그 실제 이름은 애드자이) 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나이제리아는 그 때까지 영국의 식민지였지마는 지금은 독립국가입니다. 아프리카 신생국 중에 제일 문화 수준이 높은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기에는 이 애드자이의 큰 공로가 있다고 합니다. 18세기 초엽인 그 때에는 해적들이 아프리카에 가서 흑인들을 강제로 납치해 다가 저 웨스트 인디아라고 하는 섬에 데려가서는 여러 나라의 종으로 팔던 그런 악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 번 애드자이가 사는 동네에도 이와 같은 해적의 무리가 와서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모조리 강제로 납치해 다가 배에 싣고서는 종으로 팔려고 대서양을 건너 웨스트 인디아 섬으로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마치 영국 군함이 그 해적을 발견하고 추격해서 해적을 다 붙잡고 노예로 팔아 버리려든 흑인들을 다시 서 아프리카로 싣고 가서 다 놓아 주었습니다.
그 가운데 열 네 살 된 어린아이도 시에라 레욘이라고 하는 서 아프리카에 내렸는데 마침 거기서 어떤 선교사를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의 자초지종이야기를 다 들은 선교사는 그를 불쌍히 여겨서 도와주고 미침 그 곳에 세워져 있는 기독교학교에서 공부를 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이 아이가 거기서 공부를 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고 또 공부를 아주 잘했기 때문에 학교를 졸업한 다음에는 선교사가 그를 영국까지 보내서 공부를 계속해서 시켰습니다. 이 학생이 영국서 공부를 다한 다음에는, 자기의 생활을 돌아보니 참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합니다. 바다 가운데 노예로 잡혀가서 팔려갈 신세에 있던 것을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고 또한 대학까지 졸업하게 된 것을 생각하니 참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합니다. 그래서 자기 고향에 돌아가서 자기 동족들에게 이 복음을 전파할 수박에 없겠다고 결심을 가지고, 1843년에 청년으로서 다시 자기 고향인 흑암(黑暗) 대륙으로 돌아갔습니다.
돌아가서는 일생토록 교회를 세우고, 학교를 세우고, 전도, 교육, 문화, 사회 각 방면에 많은 공헌을 해서 나이제이아의 사도라고 하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와 같은 생활의 배후에는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역시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그러니 이 귀한 복음을 내 민족에게 전파해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감사한 마음이 그로 하여금 위대한 전도자를 만든 것입니다.
218. 오직 전도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 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구원의 역사를 마치시고 승천을 하였습니다. 거기서 천사장 가브리엘을 만났다고 합니다. 가브리엘이 예수 님을 만나자, 크게 치하를 하면서 마지막으로 한 가지 물었다고 합니다.“그렇게 큰 구원의 사업을 다 이루었는데, 이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파하여야 하겠는데, 무슨 방법을 가르치고 올라왔습니까?”그러니까 예수 님께서 대답하는 말씀이“내가 열두 제자를 택해서 가르치고 그 열 두 제자에게 가까운 사람부터 시작해서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전하라고 내가 부탁을 하고 왔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던 가브리엘이“참 잘 되었는데 그러나 그 사람들이 만일 주님의 부탁을 잘 받지 않고 부탁대로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입니까? 무슨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하고 또 물었다고 합니다. <감사와 전도>에서
219.하늘의 악대
오늘 우리 한국교회도 문자 그대로 모압 자손 같고, 암몬 자손 같고, 세일 자손 같은 많은 원수들이 침투해 들어왔습니다. 공산당들이 침투해 들어왔습니다. 세속주의가 침투해 들어왔습니다. 소매치기 부대가 많아졌습니다. 인간 송충이라는 도벌부대가 많아진 모양입니다. 탐관오리 부대가 많이 침투했습니다.
여러 원수들이 이 땅으로 지금 침투해 들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정부가 정신을 차려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군대가 정신을 차려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경관들이 정신을 차려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하십시다.
이와 같은 때에 하늘의 악대인 우리 교회가 앞장서서 전국을 복음화 시키며 자유수호운동의 기치를 높이 들면 이 모든 원수들은 자멸될 기회가 머지 않아 올 것입니다. 이 위대한 하늘의 악대가 먼저 전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는 이 모든 일에 먼저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220.타이태닉 호
벌서 반세기가 지났습니다. 1912년에‘타이태닉(Taitanic)호’라는 유명한 여객선이 대서양을 건너던 중입니다. 그 때에는 제일 크게 건조한 배요, 아주 호화롭게 만든 여객선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유명한 배가 처음으로 대서양을 횡단하게되니 유럽과 아메리카의 저명한 인사들이 이 배에 많이 탔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배가 대서양을 건너오다가 빙산에 부딪쳤습니다. 깨어졌습니다. 침몰하기를 시작합니다. 구명정 몇 개를 싣고 가던 것을 내려서 먼저 어린아이들과 부녀자들을 할 수 있는 대로 구호를 했습니다. 그러나 여객의 다수는 구할 길이 없었습니다. 배는 점점 가라않습니다. 그렇게 되니 그 여객선에 탔던 여러 승객들은 정신을 잃고 불안과 공포가운데서 갑판에 나와서 아우성을 칩니다.
그 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압니까? 그 배에 타고 있던 악대가 정복을 입고 각자 악기를 들고 갑판 가운데 나섰습니다. 그 아우성치는 가운데서 꼼짝하지 않고 지도자의 지휘를 따라서 모든 악기가 울리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분주하던 갑판이 조용해 졌다고 합니다. 한 곡 두 곡 위대한 곡을 계속하여 연주합니다.
그러나 배는 점점 가라않습니다. 마지막에 연주한 곡이 무슨 곡인지 압니까? 우리가 잘 아는 364장 찬송합니다.“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한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그리고 마지막 순간이 가까웠습니다. 마지막 절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야곱이 잠깨어 일어난 후 돌 단을 쌓은 것 본받아서 숨질 때 되도록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이 마지막 절을 부를 때에는 점점 침몰해 들어가든 모든 사람들이 일시에 일어나면서 공포도 잊어버리고, 불안도 잊어버리고 하늘을 향해서 승리의 기쁜 얼굴로서“숨질 때 되도록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라고 합창을 하면서 마지막을 승리로 마쳤다하는 기록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습니다. <하늘의 악대>에서
221.성경의 어제와 오늘
성경은 모든 책 가운데 가장 많은 공격을 받은 책입니다. 사상적으로 또는 역사적으로 많은 공격을 받았습니다. 옛날 셀레우스(Celeus) 라고 하는 사람으로부터 시작해서 18세기의 볼테르(Boltair) 같은 사람과 현대 파괴적 비판자에게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공격을 하였습니다.
또 성경은 가장 박해를 많이 받은 책입니다. 로마 제국에서 큰 핍박을 받을 때에, 항상 성경을 빼앗아서는 불살랐습니다. 중세기에 천주교에서 성경을 박해했습니다. 즉 일반이 읽지 못하게 금했습니다. 현대에는 공산당들이 성경을 박해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그러나 지금도 성경은 세계의 어떤 책보다도 제일 많은 방언으로 번역된 책입니다. 제가 알아보니 현재 1천 2백 23방언으로 번역이 되었다고 합니다. 세계에서 이렇게 많은 방언으로 번역된 책은 다시없습니다. 또 성경은 지금도 세계의 어떤 책보다 제일 많이 팔리는 책입니다. 요새 말로 베스트 셀러(Best seller)입니다.
작년에 여러 성서공회를 통해서 판매된 부수가 아마 쪽 복음까지 포함해서 4천 9백 88만7천4백28권이라고 합니다. 우리 한국에서만 반포된 수가 933만 5천 6백61권이라고 합니다. 거이 1천만 권에 가깝습니다. 세계에 이렇게 많이 반포되는 책은 없습니다. 지금도 성경은 어떤 책보다 제일 많이 읽는 책입니다. 학생도 읽고, 청년들도 읽고, 노인들도 읽고, 남자 여자, 학자, 정치가, 과학자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읽는 책입니다. 이런 의미에서도 성경은 무적의 책입니다. 대적이 없는 책입니다.
222.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
18세기 불란서 자유사상가 볼테르 같은 사람은 그 때부터 약 40년 후에는 이런 책을 읽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혹평을 하고 예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실상 50년 후에는 그이가 앉아서 그 이야기를 했던 그 집이 바로 성서공회가 되어서 마루에서 천장까지 성경으로 가득 쌓이게 되었다고 하는 유명한 이야기는 우리가 다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디모데 후서 2장 9절에 사도 바울이 기록한 바와 같이“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할”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습니다. 이런 책은 온 세계의 하늘 아래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유일무이한 책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이유가 몇 가지 잇습니다.
첫째는 이 성경은 여러분이 방금 들으신 대로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입니다.“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고 디모데 후서 3장6절에 기록되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 후서 1장 21절에“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기록했습니다. 성경은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서 말한 것을 기록한 책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이 가르치시고 성령이 생각나게 하신 대로 기록한 책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책이 많지마는 이런 책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이런 책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근원이 하나님께로서 났습니다.
223.성경을 읽는 자
매일 매일 성경을 읽는 사람은 매일 매일 좋은 음식을 먹는 사람과 습니다. 강건하고 튼튼히 살 수 잇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신앙에 유일한 표준입니다. 전통이 신앙의 표준이 아닙니다. 이성이 신앙의 표준이 아닙니다. 물론 감정이 신앙의 표준이 아닙니다. 오직 성경만이 우리 신앙의 정확무오(正確無誤)한 표준입니다. 이단과 사설이 횡행하는 이러한 때에 우리가 어떻게 하면 신앙의 정로(正路)를 밟아갈 수 잇는가? 성경을 읽고 그대로 믿으면 신앙의 정로를 밟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행위의 정확무오한 표준입니다. 성경 가운데에는 지고의 윤리가 있습니다. 성경은 최고의 도덕적 법칙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여러 가지 계명을 비롯해서 산상보훈에 이르기까지 우리 인간이 인간으로서 또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세상에서 어떻게 행해야 될 모든 규례(規例)를 분명하고 똑똑하게 가르쳐 줍니다. 행위의 정확무오한 표준입니다.
그러므로 읽어야 합니다. 이렇게 성경은 우리에게 새 사람이 되게 합니다. 우리 신앙의 표준이 됩니다. 전에 라볼드 잉그솔이라고 하는 무신론자가 역시 그 때에는 믿지 않던 친구 류 월리스(Lew Wallace) 라는 장군에게 기독교를 반대하는 책을 쓰라고 권면을 했습니다. 그 권면을 듣고 그런 책을 쓰기 위해서 붓을 잡게 되었는데, 반대하는 책을 쓰려니까 부득이 기독교가 무엇인가 알아야 하겠단 말입니다. 알려고 하니까 부득이 성경을 읽을 수박에 없습니다. 성경을 읽는 가운데 생각이 점점 변했습니다. 마지막에는 회개하고 오히려 성경의 감화를 받았습니다. 그리해서 그분이 결국 무슨 책을 썼는지 압니까? 한국에서도 영화로 상영되어 우리가 다 본‘벤허’라고 하는 유명한 소설을 썼습니다. 오히려 예수의 생활을 묘사하는 그런 책을 썼습니다. 성경의 감화력이 이렇습니다. 성경을 반대하고 성경을 믿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내용을 알아보면 열이면 열 모두가 성경을 읽어보지 못한 삶들입니다.
224.성경독서와 토론
전에 프리스턴에 잭 윌슨 박사라고 하는 유명한 구약학자가 있었습니다. 그 때에 프린스턴 대학 학생 몇 명이 와서 그 윌슨 박사에게 “우리는 구약의 이것도 믿을 수 없고 저것도 믿을 수 없는데 토론 좀 하려고 왔습니다”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늙은 박사가 그 말을 듣더니 웃으면서 토론하는 것도 좋은데 성경을 토론하겠다니 성경을 몇 번이나 읽어보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학생들은 성경을 한 번도 못 읽어보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박사는 나는 적어도 40년을 밤잠 안 자면서 몇백 번을 읽고 연구해도 믿지 못할 것이 없는데 우선 몇 번 읽고 오라고 말했습니다. 보통 성경을 읽지 않고 반대합니다. 우선 몇 번 읽어보세요. 그러면 문제는 성경 자체가 여러분에게 대답해 드릴 것입니다. <성경을 아는가?>에서
225.참된 지혜의 생활
전도서 12장 1절에 “너는 청년의 때…너희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청년시대에 은혜를 받아서 옳은 길을 가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젊은 시대에 옳은 길을 걷기 시작하면 평생에 즐겁고 기쁜 생활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인생이 잠간이요, 수고와 슬픔이 많지마는 젊을 때부터 참된 인생생활을 하게 되면 일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인생의 아침에 바른 길을 택해야 됩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226.생애의 인수분해
어떤 책을 보니 스위스의 어떤 노인이 약 80년을 살았다고 합니다. 건강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80년을 가는 동안에 자기의 시간을 어떻게 썼나 한 번 조사해 봤다고 합니다. 그랬더니(확실한 조사인지 모르지만) 26년간은 침상에서 누워만 있었습니다. 아마 잠을 넉넉히 잔 모양입니다
또 21년간은 일만 했습니다. 6년 동안은 음식 먹는 데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음식도 굉장히 많이 먹은 모양입니다. 또 다른 6년 동안 은 불쾌하고 노한 중에 지냈다고 했습니다. 어려운 일을 많이 당한 모양입니다. 5년 동안은 다른 사람이 시간 안 지키기 때문에 남을 기다리느라고 허비했다고 합니다. 사실 시간을 안 지키는 것은 큰 골치입니다. 남 때문에 허비한 시간이 5년 동안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28일 동안은 수염 깎는데 허비했다고 하였습니다. 또 26일은 아이들을 욕하는데 허비했다고 하였습니다. 손자가 많았던 모양입니다. 또18일 동안은 넥타이 매는 데 허비했다고 하였습니다. 그것도 모으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모양입니다.
또 80일 동안은 코 푸는데 허비했다고 하였습니다. 거기에 시간이 가는 모양입니다. 열 이틀 동안은 담배 불 붙이는데 허비됐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담배 피운 시간은 그보다 더 길 것입니다. 담배에 불붙이는 데만 열 이틀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저 기쁨과 웃음으로 지낸 시간을 잘 계산해보니 마흔 여섯 시간밖에 없더란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날을 어떻게 계수 하십니까? 여러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십니까?
227 참새와 같은 인생
주후 17세기초에 복음이 처음으로 영국에 전파될 때의 이야기에 이런 것이 잇습니다. 그 때에 영국은 작은 나라 여섯으로 나뉘어 있던 때입니다. 그 나라 가운데 노듬브리아(Northumbria) 라는 나라가 있는데 그곳에 에드워드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어떤 전도자가 그 왕에게 가서 전도를 했습니다. 왕이 자기 혼자는 암만 생각해야 확실히 알 수가 없어서 하루 저녁은 연회를 베풀고 모든 신하를 다 초청해서 저녁을 잘 대접한 후에 이 문제를 꺼냈습니다.“어떤 이가 와서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데 우리 나라에서 믿을 것인가, 안 믿을 것인가 하는 것을 토론해 보자”고 그러니까 여러 가지 다른 의견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어떤 늙은 재상이 일어나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이렇게 가끔 저녁에 불을 켜고 연회를 하게 될 때 밖은 어둡고 마침 비가 오고 바람마저 불게 되면, 참새란 놈이 창으로 날아 들어와서는 이 밝은 방안을 한 번 휘돌고 저편 창문으로 도로 나가는 그런 경우를 보지 않았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우리 인생이 그 참새와 비슷합니다. 이 밝은 세상에 잠깐 와서 사는데 어디서 왔는지도 알 수 없고 마지막에 어디로 가는지도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만일 이 새로 들어온 종교가 우리 인생의 이 깊은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하면 우리는 이 종교를 믿어야 될 줄 압니다”이렇게 말을 할 때에 모든 신하들이 다 옳게 여겨서 예수를 믿기로 작정했다고 합니다.
기독교는 인생의 이 깊은 뜻을 해결해 주는 종교입니다. 순간적인 욕심을 가진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의 길을 보여주는 종교입니다. 인생이 비록 잠깐이나 이 동안에 영원한 거처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인생은 허무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생활의 최고 목표는 하나님을 찾는 것이요. 인간 지혜의 최고의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을 계수 하는 지혜의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의 하루하루 아니 한 시간 한 시간을 천금같이 아끼면서, 바로 사용하고 위로는 하나님께 봉사하고, 아래로는 모든 사람 즉 민족과 국가에 봉사하면서 사는 것이 참된 지혜 있는 생활인 것입니다. 할 수만 있으면 인생의 아침에, 일찍 젊었을 때, 이 진리를 깨닫고 이대로 나아가면, 비록 수고가 많고 슬픔이 많은 이 세상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만족히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빠른 세월 가는 인생>에서
228.헨델의‘메시아’작곡
미국 포스턴 시에는 헨델과 하이든회라는 것이 있어서 150년간을 계속해서 보스턴에서 연극을 한다고 합니다. 이런 얘기를 실었던 타임지가 계속해서 헨델이 메시아를 쓸 때의 얘기도 좀 썼는데, 이 때 헨델이 런던의 어떤 집에 들어가서 23일간을 조용히 방에 앉아서 두문불출하고 하나님을 묵상하며 영원한 나라를 묵상하는 가운데서 이 메시아를 썼다고 합니다. 그 메시아를 쓰는 동안에 어떤 날 한번은 그 집의 일꾼이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자, 헨델이 대답하는 말이“하늘이 내 앞에 열렸다”고, 아니“전능하신 하나님 자신을 내가 뵈었다”고 하였습니다.
헨델은 그 위대한 작곡을 하기 전에 하늘을 보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면한 것입니다. 이 새해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면해서 그 하나님 앞에서 내 자신을 보세요. 고칠 것을 다 고치세요, 그러면 하나님의 음성을 우리가 듣게 되고, 하나님이 하시고자하는 일을 내가 깨닫고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한 마음 한 뜻으로써 복음을 전파하면 우리 온 한국이 새 한국이 될 것입니다. 이 새해에 새 비전을 보고 이 비전이 현실로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일해야 합니다. <새해의 새 비전>에서
229.비전과 순종
조금 넓은 의미에서 보면 모든 위대한 생활, 모든 위대한 사업, 모든 위대한 예술, 모든 위대한 음악. 모든 위대한 건축, 모든 위대한 과학적 발명이나 발견에 이르기까지 그 배후에는 먼저 비전이 있었고, 다음에는 거기 대한 순종이 있습니다.
230.예술가 라파엘의 비전
문예부흥 시대에 유명한 예술가로서 성화 마돈나를 비롯해서 많은 위대한 성화를 그린 라파엘(Raphael) 에게 어떤 친구가 한 번은 그 비결을 물어보았습니다.“당신은 어떻게 그런 위대한 작품을 내십니까?”그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별다른 비결은 없습니다 다만 어떤 그림을 그리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그 그릴 그림을 내게 보여 주십니다. 나는 내 마음으로 보는 그 그림을 캔버스에 옮겨 놓는 것뿐입니다”먼저 위대한 비전을 보고 거기에 순종할 때에 위대한 작품이 나타난 것입니다.
231.비전의 뼈대 역할
위대한 가정을 건설하려고 하더라도 거기 대해서 먼저 하늘로부터의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그 비전대로 가정을 건설해야 되는 것입니다. 위대한 국가를 건설하려고 하면 거기 대해서 먼저 보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 비전대로 나라를 건설해야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 칼럼버스는 먼저 지구는 둥글다고 하는 비전을 확실히 보았습니다. 만일 지구가 사실 둥글다고 하면 서편으로 계속 가도 반드시 떠난 곳으로 돌아올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동양에 가기 위해서 서편으로 배를 지어갔습니다. 그 결과 새 대륙을 발견했습니다. 비전에 순종할 때에 새 대륙을 발견했습니다.
1919년 봄에 무엇이 우리 민족대표 33인으로 하여금 나라가 다 망한 그 때에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3.1운동을 일으키게 하였습니까? 그들은 한국이 비록 망하였지마는 장차는 반드시 독립하리라고는 생각에서 독립된 한국의 비전을 미리 보고 독립만세를 부른 것입니다.
여러분, 비전은 꼭 순종의 의무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비전과 순종>에서
232.죄의 영향
어째서 우리는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려야만 합니까?
첫째는 우선 내가 살기 위해서 벗어 버려야 합니다. 우리 육체로 보면 이 육체의 모든 기관이 다 튼튼하다고 하지마는 어떤 한 기관이 약하고 기관에 병이 들어서 그 병을 고치지 못하면 그 한 기관의 병 때문에 전체가 죽을 수 잇습니다. 이건 의사가 아니라도 다 압니다.
다른 기관은 다 튼튼해도 심장 하나가 약해서, 심장병이 든 것을 치료하지 못하면 죽을 수 있습니다. 다른 기관 다 튼튼해도 폐가 약해서 폐병이 든 것을 잘 치료를 못하면 죽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적은 죄 하나야 어떤가 하지마는 이것을 그냥 두었다가 이것이 정 심하게 되면 마지막에는 이것 때문에 내가 구원을 못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집에 수돗물이 안 나와서 이유를 안만 찾아봐야 모르겠더랍니다. 깊이 파 들어가면서 수도관을 빼 보니 어떻게 들어갔는지는 모르지만 죽은 쥐 한 놈이 수도관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죽은 쥐가 수도관을 막으니 수도가 나올 리가 있어요?
우리 생명의 수도관에 죽은 쥐와 같은 죄가 있으면 내 전체 생명이 말라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적은 모래알 하나가 큰 기계가 돌아가는 것을 정지시킬 수 있습니다. 적은 죄 하나가 우리의 큰 신앙의 운동을 아주 막아버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걸 꼭 벗어 버려야 합니다.
금년은 특별히 전국 복음화 운동의 해입니다. 우리가 전국 복음화 운동에 가담하려고 하면 우리 하나 하나가 전도자가 되어야 하겠는데 내가 전도자가 되려고 하면 내가 먼저 이 죄를 온전히 벗어버려야 합니다. 사람들은 우리말만 듣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활을 봅니다. 그뿐 아닙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죄를 다 회개하고도 한 가지의 죄를 회개하지 아니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회개한 죄는 보지 못합니다. 회개하지 않은 죄 하나만 있으면 그걸 보고 교회를 비방하고 예수를 비방하고 하나님을 비방하는 것입니다. 아무개 보라고, 믿는 사람이 저런 죄를 짓는다고, 우리의 최고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있고, 우리 교회의 최고 목적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있는데, 이것을 회개 못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못 돌립니다.
233.천국계단과 쇠사슬
어떤 사람이 이런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꿈에 보니 높은 계단이 보입니다. 대리석으로 쌓은 높은 계단이 보이는데 그 계단 맨 위가 천국이라고 합니다. 자기가 천국에 올라가기 위해서 그 계단을 올라가고 다른 사람도 천국에 올라가기 위해서 계단을 다 올라갑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사람마다 거이 발꿈치에다 쇠사슬을 하나씩 매고 올라갑니다. 쇠사슬이 좀 잡아당기기는 하지만 처음에 올라갈 때에는 과히 길지 않으니까 그냥 그런 대로 올라갑니다.
그러나 얼마쯤 올라가서 쇠사슬이 길어지니까 그 다음엔 힘이 들어서 겨우 끌고 그저 조금씩 올라갑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얼마쯤 올라가다가 어떤 사람은 그 쇠사슬을 끊어버립니다 그 다음에 그저 나는 듯이 올라갑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끊을 줄을 모르고 계단만 올라가려고 합니다. 자기도 그냥 계단을 올라가려고 하다가 미끄러져 떨어져서 깨어보니까 꿈이더라고 합니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하고 생각을 하다가 우연히 성경을 펴 보니까 이 구절이 나타났다고 합니다.“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이걸 벗어버려야 결국은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아침 내 스스로를 생각하면서 내게 달라붙어 있는 이런 무게와 죄가 무엇인가 이것을 꼭 찾아서 이 시간에 벗어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벗어버릴 때는 이 시간입니다. 지금입니다. 용단이 필요합니다.
234.김 유신 장군의 용단
여러분, 김 유신 장군의 유명한 이야기를 기억하시지요? 그이가 젊었을 때에 어떤 창기에 미쳐서 날마다 그 창기네 집에 놀려갑니다. 자기 어머니가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젊은 김 유신을 자기 앞에 끓어 앉히고 단단히 책망을 합니다.“네가 그런데 다녀서 될 수가 잇느냐, 내가 얼마나 큼 소망을 가지고 너를 길렀는데 네가 이게 무슨 짓이냐? 주색에 빠지다니!”효심이 많은 이 김유신은 어머니 앞에 끓어 앉아서“제가 다시는 가지 않겠습니다.”맹세를 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달 안 갔습니다. 봄이 돌아왔습니다. 날이 좋습니다. 그래서 좀 놀기 위해서 말을 타고 사방을 바라보면서 교외로 혼자 노래를 부르면서 갑니다. 거리를 건너갑니다. 한참 지나가다가 말이 갑자기 섭니다. 이거 왜 서나 가만히 보니까 전에 늘 다니던 창기네 집 앞에서 말이 섰습니다. 습관이 되어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걸 보고 김유신 장군은 내려서 칼을 뽑아 말의 목을 베었다고 합니다. 그런 용단이 있기에 유명한 김유신 장군이 된 것입니다. 용단이 필요합니다.
베드로도 법정 멀리 서서 비겁하게 예수를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죄를 짓다가,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예수 님의 시선에 마주친 다음에야 예수 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곧 그 자리에서 떠나 밖으로 나가서 슬피 울고 통곡하면서 회개했습니다. <얽매이기 쉬운 죄>에서
235.이 큰 사랑을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고 침묵의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저버리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구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 크신 사랑과 은혜에 의지해서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 큰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리는 사람입니다.
236.기쁜 소식
제가 얼마 전에 어떤 교우에게서 편지를 받았는데 그 내용을 보니,“우리 아기가 작년에는 입학 시험에 떨어졌는데 금년에는 좋은 학교에 입학이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입학은 되었으나 등록금이 없어 크게 염려하였으나 본 교회 어느 잡사 님께서 이 사정을 알고 내주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서 이 기쁨을 목사님에게 알려야 하겠기에 편지를 합니다.”라는 내용입니다.
그와 같은 은혜도 감사히 생각하여 기쁨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밖에 없었거든 하물며 우리가 하나님의 이 큰사랑, 이 큰 은혜를 받고, 이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전파할 줄 모르면 우리에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
237.큰 바위 종의 성귀
세기의 위인이라 이름을 듣는 처칠 경이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나서 그 장례식을 런던 성 바울 성당에서 거행했습니다. 성 바울 성당은 영국에서 제일 큰 예배당입니다. 성 바울을 기념하여 지은 예배당이라 이름을 성 바울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예배당이 여러 가지로 유명하지마는 그 중에도 유명한 것은 그 종각 꼭대기에 큰 종을 달은 것입니다. 그 종의 이름을 큰 바위(great stone)라 합니다. 왜 그 종을 큰 바위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그 종에는 빙 돌아가면서 성경 구절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구절이 바로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이 성경 말씀입니다.“만일 복음을 전파하자 아니하면 내게 화가 미치리로다”아마 이 종 둘레에 성경 구절을 새긴 것은 바울을 기념하여 예배당을 짓고 바울을 기념해서 이 종을 만들면서, 이 구절이 성경의 어떤 구절보다도 바울의 신앙과 정신을 표시한다고 여긴 까닭인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 종이 한 번 땡 하고 울릴 때마다 모든 영국사람이 이 성경 구절을 듣기 위해서, 그리고 잊지 않기 위해서 이 구절을 새긴 것입니다.
오늘 이 종소리를 우리 영락교회 교인 들, 아니 온 한국교회 교인들이 들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 때에 보음을 전파하면 열 두 가지 축복을 받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열 두 가지 화를 받는 것입니다. <침묵의 화>에서
238. 놀라운 평화
마음의 평화가 얼마나 귀한가는 밀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세력이 많고, 돈이 많고, 지식이 많고, 지위가 있고 무엇이나 다 있다고 할지라도 마음에 평안(平安)이 없으면 그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가령 이런 것들이 없다고 할지라도 그 마음속에 진정한 평안이 있으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239.심령의 평안에 대한 증거
어떤 심리학자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마음만 평안하면 만난(萬難)을 돌파할 수 있지마는 마음이 불편하면 적은 일도 할 수 없다”심지어 편지 한 장을 바로 쓰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평안하면 병도 속히 고칩니다. 혈액도 순환이 잘 됩니다. 소화도 잘 됩니다.
요새 의학계의 말을 들어보면 병 가운데 거이 6, 7할이 마음이 불편한 가운데서 심리적 원인으로 생긴다고 합니다. 마음이 평안하면 머리가 맑아져서 생각을 바로 합니다. 손과 발이 바로 움직여져서 모든 일을 바로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평안하야 장사도 잘 할 수 있고 마음이 평안하야 공부도 잘할 수 있고 학생들도 마음이 평안하야 시험을 바로 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부인들은 마음이 평안해야 밥도 바로 짓습니다. 마음 불편한 부인들이 지은 밥을 잘 못 먹다가는 이빨 상하기가 쉽습니다.
마음이 평안해야 바느질도 바로 합니다. 마음이 불편한 가운데 바느질 하다가는 손톱을 상하기 쉽습니다. 평안한 마음이 얼마나 귀한 축복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 가운데 하나는 모든 사람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시려는데 잇습니다. 우리가 다 이 축복을 받습니까? 이 축복을 받으려면 몇 가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심령간에 평화를 수립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옳은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합니다.
240.두 마음의 다툼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말을 들어보면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서로 싸움을 합니다. 왕 양명의 말을 빌리자고 하면 우리 속에 도둑놈이 있어서 이 도둑놈과 항상 싸움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란이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하면 성신의 소욕(所欲)과 육신의 소욕이 서로 거슬려서 마음속에서 싸움을 합니다. 우리 마음속 자체에 이런 분열이 있고 내란이 있는 동안에는, 우리의 마음이 평안할 수가 없습니다. 언제나 불안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런 경험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7장에 보면 “오호라 나는 곤고(困苦)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한 글귀를 우리가 읽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성경 가운데서는 이런 글귀만 읽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그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우리 마음에 이렇게 분열이 있고, 우리 마음에 이렇게 내란이 있지마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내 주로 영접하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속에 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게 되면, 마음속의 모든 원수를 소멸해 주시고 우리의 마음을 통합하고 하나로 만들어서 우리 마음속에 평화를 주시는 것입니다.“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는 말씀은 그 말입니다. 삶의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平康)이라고 하는 말은 그것을 의미합니다.
이사야 42장 10절을 여러분 기억하시지요?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우리가 사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믿고, 예수 님을 영접해서 내 마음에 모시고, 사실 예수 님의 마음을 품고 주님과 같이 동행하면 이 축복이 우리와 같이 하시는 것입니다
241.평화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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