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목차 돌아가기] |
181.월남 이상재 선생의 명언
전에 YMCA의 위대한 지도자로 계시던 월남 이상재 선생이 남기신 말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연세가 상당히 높으셨을 때 어떤 청년이 가서 묻기를“지금 신문에 보니까 일본의 아무 수상은 100을 능히 살 수 있다고 장담을 하고, 영국의 사람은 120세를 능히 살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하는데 선생님은 얼마나 사시려고 합니까?”이때에 선생님이 곧 대답하는 말이“그건 다 사람이 어떻게 사는 법을 몰라서 그래, 나는 영원히 살 테요”하는 것입니다.
182.콜게이트 회사의 설립자 이야기
지금도 유명하지마마는 미국의 콜게이트(Colgate) 회사가 있습니다. 비누를 만들고 치약을 만들고 하는 큰 회사인데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그 회사를 처음 설립한 사람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래 전에 그이가 뉴욕 근처 어떤 촌에서 살았는데 아마 17, 8세쯤 나서 자기 촌을 떠나 뉴욕으로 나왔습니다. 그 앞에는 조그만 강이 하나 있는데 그 강을 건너 나룻배에서 어떤 노인을 만나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너 어디 가느냐?”물었습니다.“저 뉴욕에 가요”“뉴욕에 뭘 하려 가느냐?”“나도 뉴욕 가서 뭘 좀 해보려고 갑니다”“그래 너 그것 참 좋은 생각이다 그런데 뉴욕엘 가면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느냐?”“지금은 모르겠어요. 그 전에 우리 삼촌 네 집에서 비누 만드는 걸 좀 배웠는데 가서 비누나 좀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합니다”“대단히 좋은 생각이다. 내 생각은 앞으로 뉴욕이나 온 미국에 비누 잘 만드는 유명한 회사가 생길 줄 꼭 아는데 혹 네가 이 다음에 그런 사람이 될지 아느냐? 그저 내가 부탁하는 건 비누를 만들 때에 진실하게 만들어라. 한 근의 비누를 만들려면 한 근 되리 만큼 재료를 써라. 남 속이지 말고 저울대 속이지 말아라, 그리고 돈을 얼마를 벌었든지 꼭 십일조를 드려라”
이렇게 말한 노인은 강가에 앉아서 그 아이를 위해서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그 후에 이 아이가 뉴욕에서 어떤 비누 만드는 공장에 가서 일하기 시작했고 일을 하는데 이 노인의 부탁을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꼭 그대로 했습니다. 노인의 말이 인연이 되어서 과연 그 방면에 이 청년이 성공을 하였습니다. 제품에 진실이 있어야 합니다. 근면이 있어야 합니다. 살기 위해서 우리는 이 진실과 근면을 택할 수박에 없습니다. <살기 위해서 생명을 택하라>에서
183.은혜를 사모하는 마음 밭
옛날 우리 동양 사람의 글귀에도 악한 사람과 같이 있는 것은 마치 포어지실(鮑漁之室) 에 들어간 것과 같다고 하는 글귀가 있습니다. 생선 많은 방안에 들어가면 생선 비린내가 납니다. 그러나 선한 사람과 같이 있게되는 것은 지란지실(芝蘭之室)에 들어간 것과 같다 하는 말도 있습니다. 지란은 난초를 의미합니다. 좋은 향기가 나는 난초가 있는 방안에 들어가면 향기로 가득해서 자연히 향기에 도취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을 때에는 우리의 심령이 향기를 피우게 되고, 우리의 생활이 향기를 풍기게 되고, 우리의 신앙을 통해서 무언의 감화를 줄 수 있는 높은 자리에까지 우리의 신앙이 오라가야 될 것입니다.
184.깊은 골짜기에 내리는 이슬
이와 같은 은혜를 받으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이슬이 어떤 곳에 많이 내리는지 압니까? 언제 많이 내리는지 압니까? 어떻게 내리는지 압니까?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이슬을 별로 보지 못합니다. 저는 농촌에 자랐기 때문에 이슬을 잘 압니다. 여름에 이슬이 많이 내릴 때라도 길바닥에 이슬이 있습니까? 바위 위에 이슬이 있습니까? 별로 없습니다. 아무리 많이 내리는 저녁이라고 해도 길바닥이나 바위 돌 같은 데는 이슬이 못 내립니다.
하나님은 물론 모든 사람에게 다 은혜를 내려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길바닥 같거나 혹은 우리의 마음이 바윗돌처럼 굳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내릴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예수 님의 비유에 돌작밭에 떨어진 씨는 열매를 못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부드러워야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내립니다.
그러므로 호세아 14장 1절을 보면 먼저 말씀하시기를“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 오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마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죄를 회개하야 은혜가 우리 마음 속에 미치는 것입니다. 아무리 이슬이 많이 내리는 저녁이라고 할지라도 우리의 마음이 돌처럼 굳은 그대로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내리지를 못합니다.
강퍅한 마음이나 나만 옳다고 하는 독선적인 마음에는 하나님의 은총이 내릴 수 없습니다. 내 잘못을 깨닫고 돌이켜서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그 심령 위에만 하나님의 은혜가 내립니다.
도 여러분, 이슬이 어떤 데 많이 내리는 지 압니까? 산꼭대기입니까? 깊은 골짜기입니까? 깊은 골짜기입니까? 산골짜기에 많이 내립니다. 산꼭대기에는 이슬이 별로 안 내립니다. 깊은 산골짜기에 가보면 거기는 산꼭대기보다는 이슬이 더 많이 내립니다. 아마 신령한 은혜도 이와 비슷할 것입니다 <이슬 같은 은혜>에서
185. 마음속의 천국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의 보좌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성소가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천국의 영역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사람의 마음에 오시고 계셔서 보좌를 정하시고 다스릴 때에 우리의 마음에는 천국이 이미 임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51장 15절에 하나님은 친히 말씀하십니다.“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에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와 영을 소성(蘇醒)캐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 캐 하려함이라”하나님께서 통해하는 마음과 겸손한 마음에 함께 계시겠다고 말씀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15장에서 제자들에게 친히 말씀하셨습니다.“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주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셔서 우리의 생각과 상상과 감정과 그 밖에 모든 것을 다스리실 때에는 천국이 이미 우리 마음 가운데 임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친히 약속했습니다.“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 약속은 리빙스턴과 같이 문자 그대로 믿는 이에게는 언제나 천국이 그 속에 임재(臨在)하는 것입니다.
186.초대 교회의 순교자 이그나티오스
역사적으로 성령께서 오순절에 임하실 때에 120명 신도들에게 천국이 임하신 것입니다. 전에 초대 교회 시대에 안디옥 교회에서 순교를 한 아그나티오스는 디오호르스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습니다. 로마 황제 트라얀(Trajian)이 어찌해서 그런 별명을 가지게 되었느냐고 물어 볼 때에 그는 곧 대답하기를“내 마음에는 언제든지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기 때문이랍니다”라고 하였습니다.‘디오호르스’라고 하는 말은 그리스도를 모시는 문이라는 뜻입니다. 먼저 신령한 가운데 천국이 우리 마음속에 임재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가 일찍이 어떤 열심 있는 청년 사회개혁자에게 이와 같은 권면을 하였습니다.“세상을 위하여 너무 피땀을 흘리지 말고 네 자신을 위하여 땀을 흘려라 세상을 보다 더 낫게 만들려고 하면 네 자신부터 낫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천국을 네 마음속에 먼저 모시기 전에는 세상을 천국 화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가 과연 이 세상을 천국 화하려고 한다면 내 마음속에 먼저 천국이 임재 하여야 될 것입니다. 천국은 우리 마음속에 임재 하는 것임을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느낄 수는 있습니다. 남은 모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은 알 수 있습니다.
“천국은 너희 안에 있느나라”하는 이 말씀을“너희 가운데 있느니라”이렇게 번역한 성경도 혹 있습니다. 그 원어의 뜻은 그렇게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엔토스(entos) 라고 하는 말은 안이라고도 번역할 수 있고, 가운데라고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즉“천국은 너희 중에 있느니라”는 말은 믿는 사람들 가운데 천국이 있다고 하는 뜻이 됩니다. 이것도 역시 사실입니다 <천국이 너희 안에>에서
187.《천로역정》
번연의 이야기를 하였지만, 그는 감옥에서 어려운 생활을 잘 이겨 나가는 은혜만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 가운데서 오히려 주님의 은혜를 더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신앙생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가운데 《천로역정》이라는 유명한 책을 써서 자기가 말로 전도하는 것보다도 더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너무나 깊고 오묘하십니다. .
188.《실락원》
역시 청교도였던 존 밀턴 같은 분은 아주 유명한 분입니다. 그는 선천적으로 문필에 재주가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이 중년에 실명이 되어 눈을 못 보게 되었습니다. 본래 신앙이 독실한 분이었으므로 실명이 될 때에도 이것을 고쳐달라고 간절히 기도했고, 실명이 된 다음에도 혹 볼 수 있는 길이 없을까 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기도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밀턴은 실명한 가운데서도 평안한 마음으로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지낼 수 있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는 은혜 가운데서 계속해서 성경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더 큰 은혜를 받아서 여러분 아사는 바와 같이 만고 불후의 대작인《실락원》이라는 유명한 책을 남기게 된 것입니다.
가시가 좋은 것은 아닙니다. 가시 자체가 선한 것도 아닙니다. 가시는 사도의 사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이것을 통해서 주님의 능력이 온전히 나타날 수 있고, 또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고 큰 축복이 나타나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검은 구름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검은 구름이 없으면 빛나는 무지개를 볼 수 없습니다. 어떤 때에는 무지개와 같은 주님의 빛을 반사시키기 위해서 우리 생활의 어떤 면에 검은 구름이 허락할 때가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습니다.
189.조개와 진주
요한 계시록에 보면 새 예루살렘은 모든 것을 아주 아름답게 꾸몄는데 그 문들은 전부 진주로 만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그 진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기억하십니까? 진주는 본래 바다 속에 사는 진주 패라고 하는 전복, 조개 가운데서 생깁니다. 그 가운데서 어떻게 되는 지 압니까? 조개가 바다 밑으로 기어가다가 어떻게 잘못되어서 깔깔한 모래알이 그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 연한 살에 모래알이 들어가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그러나 진주 패는 이 고통 가운데서 말하자면 생명의 즙을 짜서 그 모래알을 둘러싸고 싸고 또 쌉니다. 한 달, 두 달, 1년, 2년, 여러 해를 지나게 되면, 큰 진주가 되어서 제왕이 면류관을 장식하고 천국의 문을 장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혹 하나님께서 우리 하나 하나로 하여금 많은 사람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진주 문을 삼기 위해서 어떤 가사를 허락하는 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190.곰보 전도사의 이야기
제가 오래 전 학생시절에 어떤 책에서 읽은 이야기를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합니다. 전에 어떤 유력한 가정에 귀한 따님이 하나 있었습니다. 공부도 잘 마치고 성년이 되어서 역시 유력한 어떤 집의 좋은 남자와 약혼을 하고 결혼 날까지 다 작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결혼하기 약 1주일 전에 갑자기 이 여자가 병에 걸렸습니다. 아주 중한 열병입니다. 정신 모르고 앓습니다. 앓는 동안에 결혼 날짜가 다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한 달 이상 중하게 앓고 겨우 생명을 보존해서 살아났습니다. 살아나고 보니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일어나 앉아서 머리를 빗으려고 거울 앞에 가서 지기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거울에 비친 얼굴이 전혀 다른 얼굴이었습니다. 이 여자가 앓았던 병은 마마라고 하는 천연두였던 것입니다. 그 어여쁘던 얼굴이 북한에서 흔히 쓰는 말대로 졸박 졸박 얽었는데 도무지 지기자신 조차도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기가 막힙니다. 머리를 채 빗지도 못하고 그냥 자리에 쓰러져 눕고 말았습니다.
며칠 후입니다. 병이 좀 낫다는 말을 듣고 그녀와 약혼한 남자가 찾아온다고 합니다. 이전 같으면 얼마나 반가웠겠습니까? 참 기가 막힙니다. 하지만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찾아온 남자를 맞아들여서 마주 앉았습니다. 그런데 남자가 한번 곁눈으로 힐끗 보더니 금방 얼굴 빛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나서는 도무지 일불거래(一不去來)입니다. 얼마 후 본래 중매했던 노파가 다시 오더니 머뭇거리며,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마지막에 하는 말이 “저 집에서 파혼하겠답니다” 이 한 마디를 남기고 훌쩍 가버렸습니다. 그 여자가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그런데 설상가상(雪上加霜) 얼마 후에 바로 그 남자가 자기와 친하게 지내는 친구와 다시 약혼을 한다는 소문이 들려옵니다. 이윽고 아무 날로 결혼 날짜를 받았다는 이야기까지 들립니다.
이 소식을 들을 때 이 여자는 너무나 원통해서 이불을 쓰고 집안에 들어 누었습니다. 밥도 못 먹고 고생을 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날 저녁에도 이불을 쓰고 가만히 누워서 바로 내일이 그 결혼식 날이라고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하고 분하기만 하고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그만“아무도 원치 않는 이까짓 몸이 살아서 무엇 하나”하고 생각한 끝에 결국 자살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부모들이 안보는 사이에 지기 집을 빠져 나왔습니다. 어스름 저녁인데 천천히 걸어서 멀지 않은 강가로 나갔습니다. 높은 벼랑 위에 앉아서 달빛이래 흐르는 푸른 강물을 내려다보며 자기 신세를 생각하니 기가 막힙니다. 그만 서러움에 복받쳐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기진맥진해서 앉았는데 이상스럽게도 그 날 저녁 따라 멀리서 이상한 노래 소리가 드려왔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귀를 기울여서 듣기를 시작했습니다. 전에도 듣지 못하던 노래 소리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어떤 노래 소리인가 하고서, 노래 소리 나는 곳으로 점점 찾아가 보았습니다. 좁은 오손 길을 지나서 송림 사이를 한참 지나가 보니까 조그마한 집이 한 체 있는데 그 집에 사람이 가득히 모여서 찬송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게 아니고 조그마한 농촌 예배당이었습니다. 때마침 부흥회를 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밖에서 서성거리니까 웬 사람이 나오더니 친절한 태도로 들어오라고 합니다. 자기는 그다지 들어갈 마음도 없는데 억지로 들어오라고 합니다. 무슨 설교를 하고 무슨 설교를 들었는지 모르지마는 이 여자가 그날 저녁에 처음으로 교회에 발을 들여놓았고, 자기는 아무 소망이 없었는데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믿으면 새로운 소망이 있다고 하는 말을 듣고, 결국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후부터 이 여자의 부모에게 공부를 더 하겠다고 청을 했습니다. 넉넉한 집안인지라 부모들은 딸의 소원대로 공부를 더 시켰습니다.
마침내 이 여자는 지금으로 말하면 여자신학교를 마치고 어떤 교회에 여전도사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주를 위해서 자기의 전심 전력을 다 했습니다. 이 분은 자기를 원하는 남자는 이 세상에 하나도 없는데 주님만이 자기를 자기의 신랑이 되어 주셨다고 생각하여 주님의 신부로서 정성껏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받들겠다는 결심 아래, 힘껏 전도하고 기도하고 가난한 사람을 구제했던 것입니다.
받은 월급을 다 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 아버지에게서 받은 유산도 전부 다 써가면서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고 특별히 불구자를 불쌍히 여기고 불쌍한 사람을 위하여 일했습니다. 이렇게 몇 해 동안 교회 일을 보았더니 그 교회에서“우리 전도사의 얼굴은 예수 님의 얼굴과 같다”하는 말이 돌게 되었습니다.“우리 전도사의 얼굴은 어떻게나 은혜가 충만한지 모르겠어! 그 오목오목한 자리마다 주님의 사랑이 가득 담겨 있고 그 올통 불통한 데는 주님의 영광이 반사되는 것 같단 말이야”이런 말이 퍼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밉고 고운 것은 보기 탓입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금강산에 있는 만물상을 가보신 분이 게십니까? 만물산은 미끈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모든 것이 그러합니다.
우리 중에는 가시를 가지고 있는 이가 많습니다. 이 가시를 혼자 가슴에 두지 말고 주님께 내 놓으세요. 기도하세요. 은혜 받으세요. 그러면 오히려 이 가시로 말미암아 더 축복을 받습니다. <내 몸의 가시>에서
191.서반아 왕 페르디난도 이야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에 서반아(스페인)왕 가운데 페르디난도 5세라고 하는 왕이 있었는데 이 왕이 어떤 점쟁이에게 왕께서는‘마드리갈’이라고 하는 곳에 아예 가지 마세요. 그 ‘마드리갈’에서 왕은 장차 죽을 것입니다.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 왕의 별궁이 있습니다. 그래서 왕은 무서워서 자기의 좋은 궁전을 지어 놓고도 21년 동안 거기를 못 갔습니다. 그러다가 한 번은 서반아 지방을 여행하다가 어떤 조그마한 촌락에서 하룻밤 자면서 그만 병이 났습니다. 왕은 이 지방이 어떤 지방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옆에 있던 사람이"이곳은 '마드갈레' 입니다" 하고 대답을 했습니다‘마드리갈'과 비슷했습니다. 사실은‘마드리갈’은 아니고 비슷한 이름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왕은“아이고 나는 죽었구나!”하드니 며칠 안되어서 죽었다고 합니다. 병이 죽인 것이 아닙니다. 공포심이 죽였다는 말입니다.
공포심이 사람의 마음을 엄습하게 되면 신경이 쇠약해지고, 혈압은 높아지고, 위액 분비가 잘 안되어서 소화도 안 되고, 심장이 뛰고, 당뇨병이 생기기 쉽습니다. 이렇게 되어서 사실은 세균에 의한 병보다도 이 공포심이 원인이 되어서 병 나는 이가 더 많고, 죽는 사람도 더 많다고 합니다. 이렇게 공포심이 우리 인생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192.카네기의 공포심 없애는 비결
그러면 공포심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마음을 들어다 보면 공포심을 안 가진 이가 별로 없습니다. 이 공포심을 어떻게 해야 극복합니까? 미국의 카네기라는 사람의 저서를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공포심이나, 근심을 없애는 방법이 있다고 하면서“첫째는 무서워하는 것, 또는 근심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하나 하나씩 책에 기록을 해 보라. 그러면 실상 그 가운데 대부분은 근거가 없는 공포라고 하는 걸 알게될 것입니다. 둘째로 나머지 공포심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할 수 있는 것들을 기록해 보라. 셋째로 그 중에 무엇을 먼저 할까 하는 것을 작정하라. 넷째로는 그 공포심을 이기기 위해서 작정한 대로 행하라. 그러면 그 어떤 공포심이든지 대체로 이길 수 있다.”이런 말을 했어요. 물론 이런 것도 다소 도움이 될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근본적으로 극복하는 비결은 우리의 심령이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하나님을 의지하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193.요한 웨슬레와 모라비안 선교사
우리 인간 생활에 큰 방해가 되는 것이 두 가지 잇습니다. 하나는 죄, 하나는 공포심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구속하실 뿐 아니라 공포심 가운데서 해방을 주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를 믿고 주를 의지하고, 성령을 충만히 받을 때에는 공포심까지 없어집니다.
요한 웨슬레의 전기를 보면 그가 젊었을 때, 큰 은혜를 받기 전에 미국에 전도하려 갔었습니다. 그러나 실패했습니다. 실패하고 돌아가는 뱃길에 대서양에서 큰 풍란을 만났습니다. 아주 위험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큰 공포에 싸였습니다.
그런데 살펴보니까, 그 가운데 모라비아교회에서 이 곳에 전도하려 왔다가 돌아가는 선교사가 몇 사람 있는데 이 사람만은 아주 태연합니다. 그래서 요한 웨슬레가 그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보았습니다.“당신 네 들은 이런 가운데서도 두렵지 않습니까?”그 때에 그 중 하나가 조용히 대답했습니다,“우리는 그리스도를 압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환경을 당하든지 두려운 마음이 없습니다.”그리면서 그 청년이 웨슬레에게 물었습니다.“당신은 그리스도를 압니까?”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압니까? 그리스도를 여러분 마음 가운데 영접합니까?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계셔서 성령과 힘과 능력을 주십니까? 그리스도께서는 공포심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 20세기에 사는 현대인의 양상을 보면 과학문명이 발달되었고, 예술이 발전되었고, 모든 방면에 큰 진보가 발전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인처럼 불안과 공포에 쌓인 이런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루즈벨트 대통령이 인간의 4대 자유를 주장할 때에, 한가지는 공포에서의 자유를 부르짖었습니다. 물론 공포 없는 세계를 만들면 그것은 더 좋습니다. 그러나 그건 하루아침에 될 일 아닙니다. 성경 말씀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어떠한 시대, 어떤 환경에 살든지 공포심 없는 생활을 할 수 있는 분명한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공포심을 극복하는 비결>에서
194.주의 선하심을 발견하는 길
오늘 이 시간 다윗의 신앙간증을 잠깐 생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시 34:8) 먼저 이 말씀을 생각합시다. 맛을 보아서 알아보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선하심을 알아보는 길은 몇 가지 있습니다.
이성의 길이 있습니다. 추리의 길이 있습니다. 이치를 미루어서 무엇을 아는 길이 있습니다.
195.아르키메데스의 원리 발견
옛날 헬라 사람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다가 갑자기 뛰어나오면서“나는 깨달았다, 나는 깨달았다.”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러했습니다. 목욕탕에 들어가서 몸을 물에 잠가보면 몸이 가벼워집니다. 그런데 그 때까지는 왜 가벼워지며 또 얼마나 가벼워지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아르키메데스가 목욕을 하면서 그것을 꼼꼼히 생각했습니다.
이성적으로 추리를 해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그 이치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즉 물 속에 들어가면 몸의 용적만 한 물의 중량만큼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추리를 통해서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는 것입니다.
196.아이작 뉴톤의 만유인력 발견
영국의 유명한 아이작 뉴톤 같은 이도 과수원 안에 앉아서 사과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을 자세히 살피다가 지구에서는 모든 것을 잡아당기는 인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것은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성을 통해서 무엇을 아는 예입니다. 그러나 그 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197.직감으로 깨닫는 주의 선하심
다음으로, 직감 혹은 지각 곧 느낌으로 깨닫는 길이 있습니다.
무지개가 아름다운 줄 아는 것은 무슨 이치를 생각해 보고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아침해와 저녁 노을이 아름다운 줄 아는 것은 누가 설명해서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꽃을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위대한 문학이나 시를 읽어나, 혹은 위대한 조각품을 볼 때 아름답다고 느끼고 놀라움을 나타내게 되는 것은 이성으로 생각해서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직감입니다. 예술적 방면의 모든 지식은 흔히 이런 직감 경로를 통해서 우리가 알게 됩니다.
198.권위를 통해서 믿음으로
또 다른 길은 우리가 많이 쓰는 길인데 권위입니다. 이 권위를 통해서 믿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각 방면에 전문가가 있습니다. 나는 깨닫지 못하지만 그 전문가의 말을 듣고 신용함으로 우리가 압니다. 지금은 어린아이들이라도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게 아니고 지구가 태양을 도는 줄을 다 압니다. 그러나 옛날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코페리니투스가 이 세상에 나타나서 주장하기 전에는 다 태양이 지구를 도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분은 지구가 태양을 도는 줄 다 압니다.. 어떻게 압니까? 여러분이 생각해서 알아냈습니까? 직감적으로 압니까? 아닙니다. 무엇으로 압니까? 권위의 말을 믿음으로 즉 천문학자의 말을 믿음으로 압니다. 그들의 말을 신용합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모든 교과서를 앍고 지식을 배울 때에는 다 이런 여러 가지 경로를 이용해서 배웁니다.
199. 실험을 통해서 아는 길
다른 또 하나의 길은 매우 중요한 방법인데 실험을 통해서 아는 길입니다.
프랜시스 베이컨 같은 분은 이 방법의 시조라 할 수 있습니다. 과거 3백년 동안의 위대한 과학자의 발견은 모두 이 길을 통해서 이루어 졌습니다. 어떤 학설이나 진리가 과연 옳은지 알려면 그대로 실험을 해보고 그 결과를 보아서 귀납적으로 그 이론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지로 해보는 것이 새 지식을 아는 방법입니다
여기 맛보아 안다는 말은 이치를 미루어서 안다고 하는 말도 아니고, 직감적으로 안다고 하는 말도 아니고, 본인의 말을 듣고 안다고 하는 말도 아니고, 실지로 해 보라는 말입니다. 실지로 해보아서 이것이 사실인지 아니지 알아보라는 말입니다.
200.나폴레옹과 부하 군인들의 대화
나포레옹 같은 사람은 군인이지마는 이런 직감이 있었던 사람 같았습니다. 그가 한 번은 자기 군대를 거느리고 애굽을 정복하려 가기 위해서 지중해를 건너갑니다. 마침 바다는 잔잔하고 달은 밝은 밤인데 많은 군인들이 갑판 위에 올라와 눕기도 하고, 앉기도 하고, 이런 이야기 저란 이야기를 합니다. 나폴레옹이 조용히 뒤로 다니면서 이 군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나? 살펴봅니다. 한편 구석에 가보니까 어떤 군인들이 앉아서 열심히 변론을 합니다. 가만히 들어보니까 한 사람은 하나님이 있다고 하고, 한 사람은 하나님이 없다고 서로 다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는 무신론자요 하나는 유신론자입니다. 나폴레옹이 가만히 뒤에서 듣다가 성미가 급해서 불쑥 한마디를 했습니다.“여보 ! 변론만 하지 말고, 눈을 들어 하늘을 좀 바라보시요”두 사람이 깜짝 놀라서 하늘을 쳐다보니 명랑한 달빛이 이름답게 비치고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면서 그들을 내려다봅니다. 그 때에 나폴레옹이 두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저걸 보고도 하나님께서 계신 것을 모르겠소”직감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아는 길이 있습니다.
201.열등감을 극복하는 비결
누구나 나는 부족하다 하는 느낌이 다 있는 줄로 생각합니다. 이것은 건전한 자기 성찰인줄 압니다. 그러나 이런 느낌이 도가 지나쳐서 항상“나는 부족하다, 나는 모자란다, 나는 할 수 없다”하는 느낌에 사로잡히게 되면 이것은 일종의 병적 심리상태입니다. 이것을 심리학적으로 열등감이라고 합니다. 영어로 말하면 인페리오리티 컴플레스(Inferiority Complex) 라고 합니다.
202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되면
사람이 이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면 자기에 대한 자신력을 전혀 잃고 무능하고 무력하게 되어서 인격상 또는 생활상 불행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런 이들은 흔히 자기의 할 일을 하지 못합니다. 씨름을 하기도 전에 누울 자리부터 봅니다. 마땅히 해야 될 경우에 할 말을 하지 못합니다. 겁이 나고 도에 넘치는 역병에 걸려서 정당한 사교생활도 하지 못합니다. 이런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으면 교회에 출석은 하지마는 교회에 봉사하거나 전도는 하지 못합니다. 사회에 나가서 일한다고 하지마는 부정과 불의에 항거할 용기가 없습니다. 그대로 나가면 결국은 그 일생은 실패로 돌아가고 맙니다.
203.열등감을 보충하려는 행동
반면에 이런 이들이 자기의 열등감을 보충하기 위해서 다른 방면으로 도에 지나치는 일을 하는 수도 있습니다. 가령 어떤 여자가 이런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되면 도에 지나치는 화장을 한다던가 의복을 별스럽게 입고 사치하게만 차리려고 애를 씁니다. 미국 같은 데를 가보면 흑인들이 많이 있는 데 흔히 흑인 여자들이 너무 화장을 도에 지나치게 합니다.
아프리카에 가나 같은 나라에 가보니까 거기 흑인 야자들이 옷을 입었는데 별스럽게 울긋불긋한 옷들을 전부 입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일종의 열등감에 사로잡혔는데 이것을 다른 면으로 보충을 하려니까 이런 화장이나 이런 의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어떤 남편이 자기 부인보다 좀 못하다는 열등감이 있다고 하면 흔히 자기 아내에 대해서 더 괴롭게 굽니다. 그저 자기 아내를 꼼짝 못하게 지배하려고 달라붙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열등감을 어떻게 해서든지 보충하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이런 이들은 흔히 도에 지나치는 대접을 다른 사람에게 요구합니다.
보통 사람은 섭섭해하지 않을 것도 이런 이들은 나무라기를 잘합니다. 혹 어떤 사람이 그저 무심중에 인사를 좀 잘못해도“아 저 사람이 나를 업신여겨서 인사를 안 하느냐?”하고 대단히 섭섭해합니다. 또 어떤 때에는 어린아이들이 도에 지나치는 자기 자랑도 해봅니다.
하여간 이것은 병적인 심리상태입니다. 따라서 이런 아이들이 가정에 있으면 가정이 불화하기 쉽고, 이런 아이들이 교회에 많이 있으면 교회가 불화와 불평에 빠지기 쉬운 것입니다.
204.겸손과 열등의식
자기를 낮추는 것은 미덕이지마는 이 열등감이라고 하는 것은 병적 심리상태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꼭 극복해야 신앙생활도 바로 하고, 모든 다른 사업도 바로 합니다. 그런데 누구나 이 열등감에 사로잡히기 매우 쉽습니다. 이런 열등감을 극복하는 길이 어디 있는가 몇 가지로 생각해 보고자합니다.
첫째는 자신을 잘 살펴서 이런 병적 열등감에 사로잡혔는가 알아야 합니다 .또 그 원인이 어디 있는가 알아볼 것입니다. 원인을 알면 그것을 우리가 고칠 수 있습니다. 먼저 아성을 통해서 이 열등감을 시정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205.부모와 교사의 책임
열등감을 가진 이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어렸을 적에 부모에게 좋은 가정교육을 받지 못하고 부모가 못한다고만 윽박질러서 이런 열등감이 깃들인 경우가 더러 잇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가정에서 아이들을 기를 때에 잘못한다고만 자꾸 윽박지르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아이 마음 가운데“난 그저 못난 놈이야”하는 생각이 늘 들게됩니다.
또는 학교에서 선생이 버릇이 좋지 못하다거나, 공부를 잘못 한다 거니 하고 자꾸 못한다고만 놀려주고 욕해 주면 그만 그 아이가 마음에 깊은 상처가 나서 일생토록 열등감 가운데 사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학교 선생들은 이런 점을 조심해야 합니다.
206.오해로 인한 열등감
그러나 이 밖에는 열등감을 가질 이유가 없는 데도 오해 때문에 혹은 그릇된 가치판단 때문에 열등감을 가지는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한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처럼 상당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이“난 젊어서 교육받을 기회를 잃어서 남처럼 대학을 졸업 못했어, 그러니까 난 남보다 못해”이런 생각을 자꾸 하면 결국 열등감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사실 오해입니다.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반드시 열등한 것은 아닙니다. 또 학교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반드시 사업에 성공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습해서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많습니다.
207.아브라함 링컨의 이야기
미국의 유명한 아브라함 링컨 같은 이는 학교에 몇 달밖에 못 다녔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미국의 제일 유명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인도의 라빈그라나드 타고르 같은 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인이요 시인입니다. 그러나 이 분은 대학에 들어가 보지 못했습니다.
208.학별과 돈과 열등감
요사이 듣는 말로는 젊은 사람 가운데, 어떤 사람은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돈이 없어서 대학을 그만 못 가게된 것이 남부끄러워서 교회에 못 나온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 것으로 열등감에 사로잡혀서 되겠습니까?
또 어떤 학생은 부모가 학교를 보내 줘서 시험도 치르고 합격도 했는데 소위 일류학교에 입학 못하고 이류나 삼류학교에 들어갔다고 부끄러워서 마크를 못 달고 큰 거리로도 못 다니고 친구를 만나면 피해 다닌 일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것 때문에 열등감에 사로잡힐 필요가 조금도 없다는 말입니다. 오해와 그릇된 판단에 의해서 열등감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습니다.
또 특별히 생활이 빈궁한 이들이 가난하니까 옷도 다른 사람처럼 입지 못하고 해서 스스로 마음이 열등감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것도 사실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세례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요단강에서 외칠 때에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 나와서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약대 털옷이라고 무슨 모직 옷이 아닙니다. 변변치 못한 옷입니다.
예수 님도 친히 말씀하시기를“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일 곳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예수 님은 가장 가난하였습니다. 주후 4세기 사람인 성 안토니오 같은 이는 본래 부자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예수 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하신 그 말씀 그대로 살기 위해서 자기의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자기는 가죽으로 옷 한 벌을 해 입고 광야지대에 나가서 일생을 굴속에서 살았습니다.
209.안토니오 이야기
한 번은 어떤 사람이 지나가다가 얼마나 안토니오의 모양이 험했던지 그를 짐승으로 오인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한 번은 알렉산드리아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외칠 때에 온 알렉산드리아 성 사람이 그 앞에 나와서 무릎을 끓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것입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열등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201.열등감에 사로잡힌 사람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떻게 사느냐, 얼마나 진실히 살고 얼마나 옳게 살고 얼마나 봉사를 하느냐? 여기에 우등과 열등이 있지, 돈 많고 없는데 열등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그 말씀입니다. 지위가 높고, 지위가 낮고, 벼슬을 하고, 벼슬을 못하고, 여기에 우등과 열등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해해서 열등감에 사로잡히지 맙시다.
몸에 병이 있거나 특별히 불구자가 된 이들 가운데“나는 일생 병이 있고 나는 불구자가 되었으니 아무 것도 할 수 없다”하고 열등감에 사로잡히는 이들이 혹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이유는 안 됩니다.
'◑ 자료 18,185편 ◑ > 자료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예화 모음 33편 (0) | 2022.03.03 |
---|---|
【창조】예화 모음 29편 (0) | 2022.03.03 |
제2권-8 한경직 목사 설교 예화 211-240 (0) | 2022.03.03 |
제2권-9 한경직 목사 설교 예화 241-275 (0) | 2022.03.03 |
【찬송】예화 모음 10편 (0) | 2022.03.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