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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예화 모음 10편

by 【고동엽】 2022.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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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찬송의 능력

광주 민주화항쟁이 절정에 달할 때 오기일 전도사는 정보군인이었다. 그는 학생들의 동태를 살피고 오라는 밀명을 받은 후 등산객으로 가장하여 광주 시내에 진입했다. 그러다가 보초를 서고 있는 5명의 대학생들에게 체포됐다. “군인인가?” “아니다” “왜 산에서 내려오나?” “아침에 등산 갔다 온다.” 학생들은 그의 몸에서 육군이라고 쓰인 호신용 권총을 찾아냈다. 군인의 신분이 드러난 것이다. “손 들고 뒤로 돌아서라.” 총에 실탄을 장전하는 소리…. 그는 생명을 포기하고 찬송을 불렀다.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학생이 물었다. “예수를 믿는가.” “나는 신학생 전도사다.” “나도 예수를 믿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종을 죽일 수는 없다.” 이 찬송으로 오기일 전도사는 지금까지 살아있다. 5명의 대학생 중 한 명의 예수 믿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당시 민족복음화율 20%의 은혜였다. 찬송은 우리를 위기에서 건지는 구원의 열쇠다. 인생의 위기를 만나거든 찬송하라.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이다.
/고훈 목사(안산제일교회)

2. 찬송가의 힘

호화 여객선 런던호가 300여명의 승객을 태우고 대서양을 운항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거대한 태풍이 몰아쳐 배가 암초에 충돌하고 말았다. 배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성난 파도가 사납게 밀려들어와 승객들을 삼켰다. 사람들은 고함을 지르며 이리저리 날뛰었다. 평화롭던 배안은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바뀌었다. 그때 선실의 한 귀퉁이에서 찬송가 소리가 들려왔다. 한 소녀가 평안한 표정으로 찬송가 439장 '만세반석 열린 곳에'를 부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한두 명씩 소녀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배 안은 평온을 되찾았다. 승객들은 우렁찬 찬송으로 파도소리를 제압했다. 그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잊고 찬송을 부르며 행복한 최후를 맞았다. 한 소녀의 아름다운 찬송이 사람들의 마음에서 두려움을 내쫓았다. 감사의 노래는 마음의 두려움을 치유하는 묘약이다.

3. 하나님은 찬양을 좋아하신다

하나님은 우리 입에 어떤 노래가 있는지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신다. 그러면서 그 노래가 무엇을 말하는지 유심히 들으신다. 만일 우리가 입으로 '음란함'을 노래하거나 '돈타령'을 노래하거나 '미움을 노래한다면 하나님은 안타까워 하실 것이다. 반면에 하나님이 귀 기울이실 때 우리가 그분을 찬양하고 그분의 역사와 은혜를 찬송한다면 그분은 얼마나 감격하실까?
나는 오랫동안 찬양과 관령된 일을 하면서 한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자신의 영적상태를 진단하는 '자가진단법'이다. 만일 지금 자신의 영적 상태을 알고 싶다면 요즘 자신의 입에 자주 맴도는 노래가 무엇인지 살펴보면 된다. 외롭다면 외로움에 관한 내용이 흐를 것이고 절망하고 있다면 비관적이고 슬픈 노래가 입에서 흐를 것이다. 영적 상태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찬양이 무엇인지 살펴보면 곧바로 지금의 영적 상태를 알 수 있다. '주님과 같이 내 마음 만지시는 분은 없네' 와 같은 찬양을 하고 있다면 위로와 치유를 필요로 하는 상태일 것이다. 우리의 입은 우리 속에 있는 것들을 표현한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자기 입의 노래를 바꾸면 자신의 상태도 바뀐다는 사실이다. 만약 자신의 영적 상태를 바꾸길 원한다면 입술의 찬양을 바꾸면 된다. 하나님은 노래를 좋아하시기에 우리 입술의 찬양을 들으시고 그대로 역사하실 것이다.
/문희곤

4. 찬양소리

전도사님이 늙은 과부의 집을 심방하려고 길을 나섰습니다.
진흙탕이 되어 있는 좁은 길을 지나 다 찌그러진 허술한 집을
찾았습니다. 인기척을 들은 흑인 과부가 "거 밖에 누가 왔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방에 들어가 불을 켠 전도사는 방안 풍경에 할말을 잃었습니다. 그 방안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한 여인이 누더기 침상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의 얼굴은 먹물처럼 새까맣게 변했고, 삶에 찌든 주름살 자국으로 얼기설기 얽었고, 차가운 겨울 밤인데도 불도, 빛도 없는 냉냉한 방에 쓰레기처럼 버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은 성스러운 평화와 신뢰의 신앙으로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그의 입은 끊임없이 "찬양하라, 영광, 할렐루야"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입에서 세상을 저주하며 욕하여도 들어줄 수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그녀였지만 그녀의 입술에서는 거룩한 찬양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아름다운 미소를 머금은 채 하나님의 나라에 갔습니다. 당신은 죽음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사면이 하얀 색 페인트가 칠해진 공간에 당신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의 기분이 어떨 것 같습니까? 두려우십니까? 벗어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죽음에 대한 준비가 아직 덜 된 사람입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 10)

5. 찬양의 능력

사이가 좋지 않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술을 마시고 서로 치고 받으며 싸웠습니다. 그것을 해결하려고 부부는 함께 여행을 가기도 하고, 상담도 받아 보고, 함께 자살하려고 수면제까지 먹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화해가 되지 않자 별거를 하였습니다. 물론 이혼을 전제로 한 예행연습과도 같은 별거였습니다. 이 부부는 아무리 애써 봐도 안 되니 마지막으로 이 상황을 주님께 맡기면서 찬송을 하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자신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하나님께 찬양을 하자 그들의 마음이 서서히 풀렸습니다. 찬송을 할 때에 그들의 마음 속에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새로이 싹튼 것입니다. 그래서 부부는 다시금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찬양하는 자녀들에게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주변에서 단순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드리는 찬양이 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질병을 고치는 능력으로 작용했다는 간증을 듣습니다. 찬양은 감사이고 감사하는 자세는 동시에 하나님을 높이고 기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면서 찬양하는 생활을 새롭게 시작하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저가 네 문빗장을 견고히 하시고 너의 가운데 자녀에게 복을 주셨으며 네 경내를 평안케 하시고"(시147:12-14)
* 기도: 주님만을 기쁘시게 한다는 일념으로 찬양하게 하옵소서.
/시편을 통한 매일 묵상집



6.죽을 목숨을 살려준 찬송가

부흥사 무디 목사의 유명한 찬송 인도자였던 생키가 여객선을 타고 여행하고 있었다. 신문에서 그의 사진을 자주 본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그 분의 작곡인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여’를 불러달라고 졸랐다. 생키가 그 찬송을 부르기를 마치자 한 사람이 다가왔다.“생키 선생님, 남북전쟁 당시 북군으로 참전한 일이 있습니까?”“네, 있었습니다”“저는 그때 남군으로 참전했는데 당신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당신은 북군의 파란 군복을 입고 있었고 그 날 밤이 만월이었는데 제 사정거리 안에 있었습니다. 제가 당신을 겨냥해 방아쇠를 막 당기려고 하는데 당신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밤에 부른 바로 그 찬송이었지요. 그런데 제 어머니께서 그 찬송을 자주 부르셨거든요. 당신이 예수 믿는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자 저는 도저히 당신을 쏠 수가 없었습니다” 생키는 너무 감격하여 자기 옛날 적을 힘껏 끌어안았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나의 방패시라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니 그가 나를 도왔도다. 그러므로 나의 마음이 크게 기뻐하고 내가 내 노래로 그를 찬양하나이다’(시편 28:7).

7. 소리가 나는 곳에는 생명이 있다

9.11테러로 쌍둥이 빌딩이 붕괴된 다음에 잔해 속에서 생존자를 찾는 작업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삼풍 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비슷한 구조 작업을 하였습니다. 구조 대원들이 잔해 속에서 생존자를 찾을 때 제일 먼저 소리를 찾습니다. 잔해 속에 만약에 생존자가 있다면, 그리고 그 사람에게 의식이 있다면 비록 다리가 부러졌을지라도, 몸이 상했을지라도 뭔가 소리를 낼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잔해 속에서 “똑 똑똑 똑똑” 뭔가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면 그 잔해 속에 누군가가 살아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내 환경이 지금 건물이 무너져서 내가 그 잔해 사이에 깔려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누군가가 소리를 낼 수만 있다면, 기도하는 소리, 하나님께 부르짖는 소리가 나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거기에 귀를 기울이신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도 소리를 냈습니다. 사실 기도할 기분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찬양할 기분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일수록 기분에 좌우되지 않고 믿음으로, 내가 기분이 어떠하던지, 우울하든지 괴롭든지간에 더 힘써 찬양하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분위기라는 것은 우리가 만들어야지 내 기분에 좌우되서는 안됩니다. 우울하더라도 그럴 때일수록 더 박수 치고 기뻐하고 큰 소리로 기도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비록 무너진 건물 속에 있는 우리의 삶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우리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구조 대원들은 소리를 찾아서 소리가 있는 곳부터 파기 시작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리를 내는 사람, 누군가가 부르짖는 사람부터 하나님께서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그 사실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됩니다.

8. 말한 대로 산다면..

오래 전 미국 남부의 어떤 지방에서 부흥회가 열렸다. 설교자는 밤 집회 때 마귀에 대하여 설교하겠노라고 광고를 하였다. 그러자 그 동네의 꼬마 아이들이 그 늙은 설교자를 놀려주려고 작당하였고 한 아이가 그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귀신으로 변장하였다. 그는 빨간색의 옷을 입고 여러 갈래의 꼬리를 달고 손에는 큰 갈퀴를 들고서 예배가 시작하기 전에 예배당의 다락방으로 올라가 숨어 있었다. 예배가 시작하여 찬송과 기도가 끝났을 때 설교자는 마귀에 대한 설교를 시작했다. 설교자의 설교가 절정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계단 문이 활짝 열리면서 귀신으로 변장한 소년이 마루로 뛰어내려와 설교자를 향하여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밖으로 재빨리 도망쳤다. 그 전까지 귀신에게 경고까지 했던 설교자는 귀신탈을 쓴 모습에 정신을 잃고 이렇게 외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 오 마귀 선생님!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나는 입으로만 말했지 마음으로 그렇게 믿은 것은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 이 이야기가 실화인지 아닌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쩌면 우리의 모습을 간접적으로말하는 내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로는 사랑을 외치고 선한 삶을 살라고 하지만 실상 말과 행동이 다른 우리의 이중적인 모습 말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찬송과 기도라는 사실을 잊지맙시다

9. 거룩한 찬양소리

전도사님이 늙은 과부의 집을 심방하려고 길을 나섰습니다. 진흙탕이 되어 있는 좁은 길을 지나 다 찌그러진 허술한 집을 찾았습니다. 인기척을 들은 흑인 과부가 "거 밖에 누가 왔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방에 들어가 불을 켠 전도사는 방안 풍경에 할말을 잃었습니다. 그 방안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한 여인이 누더기 침상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의 얼굴은 먹물처럼 새까맣게 변했고, 삶에 찌든 주름살 자국으로 얼기설기 얽었고, 차가운 겨울 밤인데도 불도, 빛도 없는 냉냉한 방에 쓰레기처럼 버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은 성스러운 평화와 신뢰의 신앙으로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그의 입은 끊임없이 "찬양하라, 영광, 할렐루야"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입에서 세상을 저주하며 욕하여도 들어줄 수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그녀였지만 그녀의 입술에서는 거룩한 찬양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아름다운 미소를 머금은 채 하나님의 나라에 갔습니다.
당신은 죽음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사면이 하얀 색 페인트가 칠해진 공간에 당신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의 기분이 어떨 것 같습니까? 두려우십니까? 벗어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죽음에 대한 준비가 아직 덜 된 사람입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 23:10)

10. 찬송 중 쓰러진 무당

내가 살고 있는 농촌 마을에 개척교회가 세워졌다. 나는 그해 성탄절 전까지 중학생과 고등학생 20여명을 전도했다. 성탄절 새벽송을 위해 학생들에게 찬송가 3곡을 외우게 했다. 교인집에 가서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불신자 집에 가서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기로 했다. 새벽 4시쯤 귀신들린 무당집을 방문했다. 징을 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우리는 대문 밖에서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큰 소리로 불렀다. 요란하던 징소리가 그쳤다. 그때 집 주인이 겁에 질린 모습으로 달려나와 “굿하는 집에 웬 찬송가여. 우리 집 이제 망했어”라며 고함을 질렀다.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찬송가 소리가 들리자 일어나서 춤추던 무당과 앉아서 징을 치던 무당이 쓰러졌다는 것이다. 여호사밧왕의 찬송대가 찬송 부른 때에 여호와의 복병이 적군에 임하여 그들이 패망한 일이 생각났다(대하20장). 그 일로 인하여 그 집이 모두 다 예수를 믿어 구원받게 되었다. 하나님은 찬송 중에 임하신다.
/최낙중 목사(해오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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