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에서 나타난 이단성
1. 들어가는 말
“이단”이란 용어는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은 복합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말이다. 기독교적으로는 교회사의 흐름과 함께 점차 대체적으로 종합되기를 고대 공교회(Catholic Church)가 진리로 정하고 선포한 정통 교리에 대하여 고의적으로 반대하는 종교적인 과오 혹은 잘못된 가르침이라고 정의하게 되었다. 기독교회는 원래 믿음을 바탕으로 하여 모여진 소박한 공동체였는데 박해와 이단 등 내외적인 위협으로 인한 위기를 겪으면서 자신을 공고히 조직화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2 세기 후반에 이르러서 감독(Bishop)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교권체계와 신조(Creed)의 기준과 그리고 권위있는 정경(Canon)을 바탕으로 하여 공교회를 수립하게 되었다. 기독교가 최초로 인용하였던 공식 명칭인 가톨릭(Catholic)이란 말에는 보편성(Universal)과 정통성(Orthodox)이란 뜻이 함축되어 있어, 공교회는 본질상(by nature) 개체성(particular)과 이단성(heterodox)을 경계하고 있다. 그리하여 기독교회는 일찍부터 이단에 대하여 엄히 다스려 왔던 것이다.
이단에 대한 징계는 니케아 공의회를 전후하여 그 양상이 다르다. 니케아 공의회 전에는 그 징계가 어디까지나 교회적인 것이어서 가장 극한 정도가 파문이었다. 그러던 것이 니케아 공의회 후 기독교회와 로마제국이 병합된 다음에는 그 징계의 정도가 교회적인 파문을 넘어서 행정당국의 관여 아래에 교회의 승인을 얻어 재산을 몰수하거나 축출 혹은 심지어 사형에 처하기까지 하였다. 이와 관련한 첫 사형 집행이 385년에 시행되었다. 기독교회는 마침내 분열되었고 분열된 기독교권은 각기 제나름대로 다른 정통성과 이단을 가지게 되었다. 희랍 정교회 (Greek Orthodox Church)는 서방교회에서 주장하는 교리 가운데 초기일곱 차례에 걸친 에큐메니칼 공의회 (the First Seven Ecumenical Councils)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것들 즉 교황제도 혹은 교황 무오설이라든가 성모 마리아의 무흠회태설 (The I'm maculate Conception of Virgin Mary) 등을 이단으로 여기고 부정하였다.
그런가 하면 로마 가톨릭교회는 트렌트 공의회 (Council of Trent)와 개신교회의 특수한 교리들을 모두 정죄하였다. 개신교는 또한 희랍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교회의 비 성경적 전통들에 대하여 이단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심지어는 개신교 내부에서도 루터는 루터대로 쯔빙글리는 쯔빙글리대로 각기 약간씩 다른 자기들의 주장을 하였다. 그러므로 이단에 대하여 논함에 있어서는 어떤 특정한 입장이 전제되지 않고서 보편적으로 말한다는 것은 어려운일이다. 여기서는 초기 에큐메니칼 공의회에서 정립된 정통성을 중심하여 초기 에큐메니칼 공의회를 전후하여 나타난 이단성에 대하여 개괄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에큐메니칼 공의회 전에도 이미 반정통적인 이단 종파들이 있었다. 소급해 올라가 보면 사도시대에 이미 나타났다(요일 1:13 ; 2:18 이하 ; 4:2, 6). 이들 이단 종파들은 두 가지 주된 근원으로부터 연유하였다. 첫째는 기독교 밖에 있던 것으로서 유대교와 이교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것이었으며 둘째는 기독교 자체 안에서 발견될 수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에비온파(Ebionites), 영지주의(G nosticism), 말시온(Marcion), 몬타니즘(Montanism), 그리고 독재론자(Monarchians) 등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이런 이단 종파들에 대하여 하나하나 논하기 보다는 정통성에 반하는 반정통적인 이단성에 대하여 교리적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론과 삼위일체론적, 그리고 인간론(죄론)과 은총론적 관계성에 입각하여 중점적으로 생각해 보겠다.
Ⅱ. 기독론적 이단성
기독교가 다루어야 했던 최초의 신학적인 문제는 기독론적인 것이다. 기독교는 신앙의 종교이다. 신앙의 종교인 기독교에서 그 초기부터 가장 중요한 문제로 불가피하게 야기되었던 것은 다름 아닌 신앙의 대상에 관한 것이고 그것이 바로 기독론적인 문제이고 또한 삼위일체론적 문제였다. 다시 말해서 나사렛 예수를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고 믿는 신앙의 전제 아래에서 그리스도이신 그 존재는 한편으로는 성부와 서로 구별되면서도 성자로서 한 분 하나님이시라고 하는 신성(神性)의 문제와 다른 한편으로는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하는 인성(人性)의 문제 등이 곧 그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들이 에큐메니칼 공의회를 통하여 정통적인 기독론과 삼위일체론으로 정립되기를 전후하여 이에 반대하는 주장들이 대두되었음이 무엇보다도 주목할 교회사에 나타난 이단성이라 할 것이다.
1.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이단성
일찍이 유대주의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에비온파 (Ebionites)는 주장하기를 예수는 단순히 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들은 예수의 처녀 탄생을 부인하였으며 성령이 예수께서 세례를 받을 때에 처음으로 그에게 임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리스도의 메시야적 사명은 예언자나 가르치는 자의 사명과 같은 것으로 간주되었고 더욱 엄격한 교훈으로 율법을 부연하였다고 생각하였다. 에비온파는 5 세기에 이르러서야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들이 기독교에 대하여 끼친 영향이 있다고 한다면 기독론 형성을 촉진하였다는 점이라고 본다. 삼신론(三神論)을 배격하고 하나님의 단일성 즉 유일신 신앙을 보전하기 위하여 대두되었던 독재론 (Monarchianism)은 동적 독재론 (Dynamic Monarchianism)과 양식적 독재론(Modelistic Monarchianism)의 두 가지 형태로 구분할 수가 있다. 여기서 동적 독재론을 혹은 양자론적 (adoptionistic), 독재론 혹은 인성론적(humanitarian) 독재론이라고도 한다. 동적 독재론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성을 단순한 능력 혹은 세력으로 간주하였다. 그들의 출발점이 된 것은 예수의 인성이었으며 그러한 인성이 결국 신격화 되었다고 한다. 동적 독재론이 에비온파와 어떤 역사적 관련을 가지고 있는지는 입증할 수 없지만 그들의 주장이 에비온파와 매우 비슷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들의 주장은 그리스도는 양자(養子)라는 점에서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동적 독재론파는 동방에서 그 세력이 강하였고 끈질겼다. 그 가운데 가장 뛰어난 대표적인 인물은 안디옥의 감독이었던(260-272), 사모사타의 바울(Paul of Samosata)이다. 그에 따르면 예수는일종의 위탁된 신성을 받으셨던 분이다. 260년부터 269년 사이에 사모사타의 바울의 견해를 검토하는 세 번의 교회 회의(Synod)가 열렸는데 마지막 회의에서 그는 파문되었다.
독재론이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하여 서방교회에서 대두되었던 대표적인 문제였다면 아리우스주의는 동방교회에서 제기된 서방교회에 못지 않는 교회사적으로 큰 파문을일으켰던 문제이다. 아리우스(arius, 250-336)는 그리스도를 한 신화적 표상―반신(半神), 반인간(半人間)의 존재―으로 설명하였다. 그의 스승인 안디옥의 루시안(Lucian)은 사모사타의 바울과 친분이 두터운 사이였으며 그래서인지 그는 사모사타의 바울에게 힘입은 바가 많았다. 그는 또한 그리스도를 하나의 피조물로 보는 오리겐 (Origen)의 가르침을 주장하는 입장을 취했다. 이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질의 존재가 아니라 다른 피조물과 다를 것 없이 무(無)로부터 만들어진 존재인 것이다. 비록 그는 피조물 가운데 가장 먼저 출생하였고 세상 창조의 대행인(代行人)이기는 하지만 영원하신 분은 아니다. 아리우스의 생각에 그리스도는 완전신(完全神)도 아니고 완전인(完全人)도 아니며 양자 사이의 제 3의 존재였다.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인 알렉산더(312-328)는 오리겐의 또다른 측면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은 사람이다. 그의 생각에 성자는 영원하시고 성부와 그 본질에서 동일하며 창조된일이 없는 존재이다. 이들 사이의 논쟁은 320년부터 시작되어 321년에는 알렉산더 감독의 주재 아래에 열린 공의회에서 아리우스와 그의 동조자들이 정죄되었다. 그 결과는 동방교회 전역에 큰 파문을일으켰고 결국 콘스탄틴 대제까지 간여하게 되었다.
마침내 콘스탄틴 대제는 325년 5월에 최초의 세계 종교회의인 제 1차 에큐메니칼 공의회(Ecumenical Council)를 니케아에서 모이게 하여 이 문제를 다루게 하였다. 결과적으로 아리우스는 정죄되어 추방되었고 성자는 성부와 본질상 동일하다고 하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가결하게 되었다. 니케아 공의회에서 가결한 그리스도의 신성은 삼위일체론 해결의 바탕을 이루었다고 할 것이다. 진정한 기독론적 발전의 첫 단계는 삼위일체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만일 그리스도가 진정으로 구속주 메시야라면 그는 하나님이어야 한다. 그러나 다신론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혹은 로고스와 한 분 하나님과의 관계를 밝혀놓지 않으면 안되었다. 많은 토론과 논쟁의 결과로 마침내 삼위일체의 교리가 형성되었는데 한 분 하나님의 존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세 인격으로 구별되며 그들은 모두 동일한 신적 본질에 참여하고 단지 기능에 있어서만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 첫 단계인 그리스도의 신에 대한 결정은 기독교 신학의 핵심인 삼위일체론의 형성에 의미심장한일인 것이다. 반대로 이에 반하는 곧, 그리스도의 신성에 반대함은 삼위일체론 형성과 더 나아가 기독교 신학을 파괴하는 행위인 것이며 기독교회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무서운 이단 세력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리하여 기독교회는 니케아 공의회 이후에도 이 문제에 대하여 계속 싸워왔음을 본다.
2.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정하는 이단성
기독론의 발전 과정에서 둘째 단계는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문제였다. 인성에 관하여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은 필요하고도 불가피한일이었다. 구속주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어야 함과 동시에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니케아 공의회 시대에 이 문제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제기하였던 사람은 아폴리나리스 (appollinaris)이다.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문제도 에큐메니칼 공의회 시대에 이르러 본격화 되었지만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문제와 마찬가지로 에큐메니칼 공의회 시대 이전 초기 이단 종파들에게서 이미 나타났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이교(異敎)와 유래한 영지주의 (Gnosticism)이다. 영지주의는 기독교가 생기기 이전부터 시작되었던 종교적 혼합주의였으며 기독교를 그와 같은 혼합종교 가운데 하나로 첨가하려는 의도에서 기독교에 접근하였던 것이다. 영지주의는 이와같이 종교적 혼합주의이면서도 그 저변에 깔려있는 지배적인 사상이 이원론 (Dualism)이었다. 영지주의의 이원론은 조로아스터 종교의 영향 아래에 형성된 시리아 사상으로부터 유래된 것이다. 페르시아의 이원론은 신화적인 것이었으며 두 가지의 상반되는 원리 즉 빛과 어두움의 신화적 이원론이 정신과 물질의 형이상학적 이원론으로 발전되었다. 즉 악의 원리에 따라서 지배되는 물질의 세계는 선하신 하나님에 의하여 지배되는 정신의 세계와는 태초부터 날카롭게 대립되어 있다는 것이다.
영지주의자들은 이러한 이원론적 사상의 배경에서 그리스도를 이해하려 했다. 그것이 곧 그리스도의 가현설(假現說, Docetism)이다. 기독교는 성육(成肉)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말미암지 않는 것이라면 어떠한 속죄의 교리도 인정치 않는다. 그러나 영지주의는 성육의 교리를 부인하였다. 그들은 주장하기를 그리스도는 도저히 육체를 가질 수 없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첫째로는 절대적 존재는 유한한 존재와 진정한 결합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며 둘째로 물질은 악하고 영적 세계는 항상 물질과 충돌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예수라고 불리워진 심오한 영적 인간과일시적으로만 결합된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신성은 단순히 인간성과일시적으로 병존하는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이와같은 결합은 예수가 탄생할 때와 혹은 세례받을 때에 이루어졌으며 십자가에 처형되기 직전에 분리되었다. 그러므로 실제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그리스도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은 환상에 불과한 것이며 실제의 수난자는 인간 예수였던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가현설을 주장한 영지주의는 구속자에게서 어떠한 참 인간성도 모두 박탈해 버렸으며 그리스도의 역사적 인격을 파괴해 버렸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와 나사렛 예수와의 어떠한 참된 결합도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참으로 영지주의의 이원론적 이단성은 기독교에 있어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끈질기게 위협하는 경계해야 할 이단성이라 하겠다. 아폴리나리스 (appollinaris, d. 390년경)는 한 때 니케아 기독론의 열광적인 옹호자였고 정통주의 수호자이기도 하였다. 그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인 동시에 인간이며 만일 그리스도가 인간만이라면 세상을 구속하지 못하였을 것이라고 하였다. 만일 그리스도가 인간만이거나 하나님만이었다면 그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가 되지 못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리하여 아폴리나리스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속주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인 동시에 인간이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신념은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이 어떻게 한 인격 안에서 유지될 수 있느냐는 중요하고도 까다로운 문제에 당면하게 되었다. 아폴리나리스는 생각하기를 만일 완전한 하나님이 완전한 인간과 결합되었다고 한다면 거기에는 두 개의 주체 즉 본성에 의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 인격이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인격적 통일은 유지되지 않으면 안된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을 강조한다면 그의 무죄함은 보증될 수 없으며 두 의지 사이의 조화를 이룰 길이 없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아폴리나리스는 인간의 구성 요소를 육과 영혼과 이성으로 삼분(三分)하는 아리스토틀과 고린도전서 5장 23절에 의해서 제시된 견해로부터 추론하여 그리스도의 인성은 육체와 영혼과 이성 대신에 로고스로 이루어졌다고 가르쳤다. 이를 위해서 요한복음 1장 14절 로마서 8장 3절과 같은 성경의 구절이 인용되었다. 이것은 결국 그리스도가 육체에 있어서만 인간이었으며 하나님의 아들은 마리아의 몸으로 나타나셨다가 그것을 자기의 신성으로 흡수해 버렸다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높인 것이 되기는 했지만 그러나 그의 진정한 인성을 거부한 결과가 되었다. 아폴리나리스의 기독론에 있어서의 잘못된 점은 그 당시의 정통적인 카파토키아의 교부들에 의하여 분명히 지적되었다. 첫째로, 그들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이지러지게 만드는 아폴리나리스의 견해에 반대하여 지적하기를 아폴리나리스는 결국 가현설에 기울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둘째로, 아폴리나리스가 주장하는 그리스도는 구속을 성취할 능력이 없다고 하였다. 죄는 우리의 육체와 영혼뿐만 아니라 이성까지도 침범하였다. 그러므로 완전한 구속을 위해서는 자기의 육체로 우리의 육체를 구속하고 자기의 영혼으로 우리의 영혼을 구속하며 자기의 이성으로 우리의 이성을 구속하는 하나님이신 동시에 인간이신 구속자가 필요하다. 그리스도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꼭같은 인간성을 가짐으로써만 인간을 하나님과의 사귐으로 이끌 수가 있다. 아폴리나리스와 그 추종자들은 37년에 로마의 종교회의에서 38년에는 안디옥의 종교회의에서 381년에는 콘스탄티노플에서 열린 제2차 에큐메니칼 공의회에서 그리고 382년에는 다시 로마에서 정죄받게 되었다. 아폴리나리스는 교회로부터 배척을 받고 단성론자들 (Monophysites)의 대열에 참가하였다.
결국 제 4차 에큐메니칼 공의회는 칼케돈 신조(451년)는 아폴리나리스를 배격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즉 그리스도는 이성적 영혼과 육체를 가진 참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이신 분이라고 하였으며 우리와 똑같은 성질의 인간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기독론에 관한 논쟁은 제 2차 콘스탄티노플 에큐메니칼 공의회 3 8 1년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제 3차 에베소 공의회 (431년)에서는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하여 논의한 결과 그리스도의 인격은 하나라는 것이 제 4차 칼케돈 공의회(451년)에서는 그리스도의 양성일인격에 대하여 결정을 보게 되었다. 삼위일체론과 연관된 기독논쟁에 있어서 가장 중시될 문제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할 때 이 점 곧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하여 반대하거나 부정하는 것처럼 무서운 기독교의 이단성은 없다고 본다.
Ⅲ. 인간론적 이단성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기독교는 신앙의 종교이다. 그래서 신학 발전과정을 보면 최초의 관심이 신앙의 대상이 되는 기독론이었고 그 다음은 신앙의 주체가 되는 인간론이었다. 이제 인간론적 이단성에 대하여 분량적으로는 앞에서 살펴본 기독론적 이단성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그 성격상 약간이나마 언급하고자 한다.
인간론의 주된 내용은 인간의 본래 상태와 타락 그리고 그 결과이며 구원론과 은총론으로 연결된다. 이 문제는 성향상 사변적 경향이 강한 동방교회보다는 실천적인 서방교회가 주로 다루게 되었다. 이 문제는 교회사에 있어서는 펠라기우스 논쟁으로 알려져 있다. 펠라기우스 (Pelagius, 418)는 영국 혹은 아일랜드의 수도사였다.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 가운데 켈리스투스 (Caelistus)와 줄리아누스(Julianus) 두 사람이 가장 열정적인 지지자였다. 펠라기우스의 주장 가운데 인간의 죄와 자유의지 그리고 은총에 관하여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펠라기우스에 따르면 죄는 인간 본성의 상태에서나 의지의 경향성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왜냐하면 아담의 타락은 그의 후손들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 행위라고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펠라기우스는 원죄의 교리 혹은 대대로 전달되는 죄된 성향에 관한 가르침을 배격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펠라기우스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하여 반대로 선택할 수 있는 힘 혹은 이른바 현실적 자유를 주장하였다. 그들에 따르면 인간은 옳은일을 행할 수 있는 인간 본성의 능력을 가진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옳은 율법을 부과하였은즉 인간은 그것을 성취할 능력을 가지고 있음이 틀림없다. 따라서 인간이 죄된 생활을 극복해 나가는 것은 불가피한일이 아니다.
펠라기우스의 은총에 관한 가르침은 이러한 인간의 본성 및 자유의지에 관한 견해와일치되어 있었다. 펠라기우스는 진정한 의미의 은총을 믿지 않았다. 그는 은총은 영적 능력에 미치는 하나님의 세력이라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은총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이성을 계발시켜서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게 하며 그리하여 자신의 능력으로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은총은 돕는 힘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인간은 그러한 도움 없이도 옳은일을 행할 수가 있으므로 은총은 절대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단지 상대적 의미에 있어서만 필요한 것이라고 펠라기우스는 주장하였다.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役事)는 단지 인간 의지의 바른 행위를 도와주는데 지나지 않는다. 기독자의 완전은 그러므로 개인이 덕성과 선행을 쌓아 올리는 것이라고 생각되었으며 참된 기독교적 생활의 필수적인 근거로 신생(新生)된 마음이 요구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펠라기우스주의에 대한 어거스틴의 공격으로 벌어진 논쟁은 기독교에 관한 근본적으로 다른 두 가지 입장의 대립이었다. 결국 펠라기우스주의는 412년 칼테이지에서 열린 종교회의에서 펠라기우스의 추종자였던 켈리스투스가 파문당함으로써 교회에 의하여 배격되었으며 또한 418년에 열린 칼테이지 종교회의와 제 3차 에큐메니칼 공의회인 431년의 에베소 회의에서도 펠라기우스주의는 정죄를 당하였다. 인간론에 대하여는 펠라기우스 논쟁 이후에도 반펠라기우스 (Semipelagius)논쟁에서 계속되었고 그 후에도 교회사를 통하여 줄기차게 대두되었던 문제이다. 은총의 필요성을 상대화하고 그리스도의 속죄 공로를 격하 혹은 무시케 하는 낙관적인 인간론은 기독교의 뿌리를 흔드는 엄히 경계해야 할 기독교의 이단성인 것이다.
Ⅳ. 맺는 말
이상에서 살펴본 기독론적 및 인간론적 이단성 외에도 여러 가지 모양의 다른 이단들이 교회사에 나타났었다고 보지만 지면 관계상 여기서 줄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기독론과 인간론은 신앙과 구속의 종교인 기독교의 신앙과 신학에 있어서 주축이 되는 두 기둥으로서 기독교의 존립에 관한 문제이기에 이를 중점적으로 다룬 것이다. 왜냐하면 기독론은 신앙의 대상 혹은 객체로써 은총의 시여에 관계되는가 하면 인간론은 신앙의 주체로써 은총의 수용에 관계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은총의 시여자로서의 기독론과 은총의 수용자로서의 인간론에 대한 정통성을 위협하는 주장이나 세력처럼 무서운 기독교를 파괴하려는 이단성은 없다. 여기서는 교회사에 나타난 어떠 어떠한 종파들에 대하여 개별적으로 다루지 않고 기독교의 기본적인 전통성을 파괴하려는 교회사를 통하여 부침하였던 반전통적인 세력과 성향을 염두에 두고 필자는 “이단”이라기보다는 “이단성”이라는 표현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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